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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한권으로 읽는 로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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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로마의 탄생에서부터 멸망까지 이천년의 긴 역사를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칩거하며 이 책과 <<법의 정신>> 두 권을 출간했다고 한다. 몽테스키외는 저술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1748년 <<법의 정신>>출간 후 실명 상태를 겪으며 죽게 되었다고 하는데 생명과도 바꾼 책이라는 소개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과연 어떤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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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명한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로마의 탄생에서부터 멸망까지 이천년의 긴 역사를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칩거하며 이 책과 <<법의 정신>> 두 권을 출간했다고 한다. 몽테스키외는 저술에 너무나 몰두한 나머지 1748년 <<법의 정신>>출간 후 실명 상태를 겪으며 죽게 되었다고 하는데 생명과도 바꾼 책이라는 소개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과연 어떤 책일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5현제의 팍스로마나 시기의 번영을 한 마디로 압축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로마인들은 검투사의 경기를 즐기며 늘어뜨린 옷자락처럼 자신들의 문명을 즐기던 자부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로마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로마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신화를 갖고 있다. 기원전 753년에 건국된 로마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번영을 이뤄나간다. 몽테스키외는 로마가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원인으로 전쟁과 더불어 적에게서도 기꺼이 배우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로마는 전쟁을 통해 획득한 전리품들을 병사들과 시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서 강성해지기 시작했다. 초기 로마는 엄격한 규율이 군대를 지배했는데 그 예로 마르쿠스 만리우스 장군은 자신의 아들이 허락도 없이 적과 싸웠다고 해서 승리한 아들을 처형했다고 한다. 이런 지도자들의 엄격함이 로마 군대를 세상의 어떤 군대보다 강하게 만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이득보다는 명예욕이 가득했던 로마군대는 당시 명장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비롯하여 그리스, 마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 등을 굴복시켰다.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모든 민족을 굴복시키기까지 로마인들이 쓴 전략을 7가지로 꼽고 있다. 군대가 휩쓸고 가는 곳마다 공포를 심어놓으면 원로원이 로마법에 따라 정복민들의 상벌을 결정했다. 로마는 적들에게 가혹하게 대했기 때문에 주변 국가들은 로마에 대항할 연합 전선을 펼 수 없었는데 결국 이런 주변국들의 개별행동이 로마의 번영을 오래 지속시켜주는 구실을 했다. 로마는 전쟁에 패한 적들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실현시켰고 패배한 국가는 로마에 모든 것을 갖다 바쳐야만 했다. 로마는 정복민들에게 자신들의 법과 관습을 강요하는 대신 오로지 로마에 <복종>하는 것 하나로 다스렸으며 그래서 정복민들은 차츰 로마화 되어갔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강성한 로마가 멸망한 원인을 이 번영에 있다고 보았다. 로마인들은 여러 민족들의 도움을 받아 온 세계를 정복했다. 정복민들은 자신들이 멸망하거나 로마 시민이 되거나 해야 했는데 원래 로마 민족이 아닌 사람들이 로마인이 되면서 로마의 분란이 시작되었다고 본 것이다.


초기에 보여주었던 엄격했던 군대의 규율은 애국심을 잃어버리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이민족들을 로마의 군인으로 받아들이면서 무너졌다.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던  로마 군대가 스스로의 부주의로 무너지기 시작하자 주변국들이 일시에 로마로 침공해 들어왔고 로마는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로마 건국에서부터 공화정에서 맞이한 번성기와 제국시대의 멸망까지의 약 2,000년을 다루고 있다. 마치 한권으로 된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느낌이다. 세세한 내용 대신 굵직한 사건을 위주로 로마의 역사를 짚어놓았다. 이 책을 읽다가 궁금하거나 흥미로운 부분이 생긴다면 따로 그 부분을 찾아서 읽으면 좋겠다.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t******e 2013.07.05. 신고 공감 6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먼 나라의 역사에서 익숙한 느낌이…….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먼 나라의 역사에서 익숙한 느낌이……." 내용보기
원제 - Conside'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e'cadence (1734년)   부제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저자 - 샤를 드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라니! 예전에 학교 다닐 적에 책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당시는 그냥 무조건 외울 대상의 하나로, 책에 적힌 하나의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시인이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먼 나라의 역사에서 익숙한 느낌이……." 내용보기

  원제 - Conside'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e'cadence (1734년)

  부제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저자 - 샤를 드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라니! 예전에 학교 다닐 적에 책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당시는 그냥 무조건 외울 대상의 하나로, 책에 적힌 하나의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가 나에게 다가와 ‘어서와, 내 책은 처음이지?’하면서 말을 건네는 순간 그는 의미 있는 이름이 되었다. 그냥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예전에 살아 숨 쉬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그가 저술한 것으로, 로마가 어떻게 세력을 확장하고 번영을 누렸으며 어떤 식으로 몰락해갔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부제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로마의 번영이 몰락의 시초라고 주장한다.

 

 

  특이한 관점이다. 대개 한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것을 보면 번영 후부터 몰락의 원인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 나라가 융성할 때부터를 시초로 본다.

 

 

  하긴 무척이나 잘 살던 시기가 지나가면 쇠퇴기가 온다. 그건 어느 나라건 비슷했다. 대제라 불리는 왕이 영토를 넓히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의 후계자들이 다툼을 벌이면서 나라를 조각내고 결국은 망한다. 음, 그렇다면 국가의 몰락 시기를 번영 때로 잡은 몽테스키외의 관점이 더 타당할지 모르겠다.

 

 

  로마가 세력을 넓히는 과정을 읽으면서, 참으로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렇게 상대를 속이고 자의적으로 조약을 해석하며 뒤통수를 치는 걸까? 그런데 다른 나라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로마에게 점령당하는 나라들을 보니, 참 어수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도 모르는 건가?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로마의 정치가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신뢰라 신용 같은 건 애초에 없던 모양이다. 오직 그들에게 있는 것은 자기 나라의 부국강병뿐!

 

 

  로마가 서서히 망해가는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문득 생각나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역사를 왜곡시키는 걸로 모자라, 어떤 부분은 잊으라고 어린 세대를 교육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그 나라가 로마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도 아니다. 하아, 그 나라가 어찌될지 걱정된다. 이민을 떠나지 않는 이상,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곳이니 말이다.

 

 

  로마 민중은 이제 더 이상 국사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대다수는 해방 노예이거나 직업도 없이 국고를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하여, 느끼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무능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처럼 애통해하면서 나약한 자신들의 처지를 비통해했다. -p.206

 

 

  우리가 평민이라 부르는 로마 민중은 가장 악랄한 황제들조차 증오하지 않았다. 민중은 권력을 잃고 난 뒤 더 이상 전쟁에 몰두할 일도 없어졌고, 결국 그 어떤 민족보다 비열한 처지로 추락해버렸다. (중략) 그들은 각종 시합과 구경거리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줄 호민관도, 또 정무관을 선출할 일도 없어지자 이런 쓸데없는 오락거리만이 중요해졌고, 나태함 속에서 기호만 날로 높아졌다. -p.212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다. 로마라는 글자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몇몇 상황을 현대적으로 고치면……. 문득 삼십여 년 전부터 유행한 3S 정책이 생각난다.

 

 

  그나저나 콘스탄티노플의 민중이 두 개의 당파로 나뉘어져 싸웠다는 대목에서는 웃어버렸다. 청색당과 녹색당으로 나뉜 이유가 어느 배우를 더 좋아하는가에서 비롯되었다니! 그 결과 제국의 모든 도시가 두 파로 나뉘어 경쟁했고, 유스티니아누스가 청색당을 지지해서 편애하는 바람에 갈등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동로마의 분열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하지만 지금도 가끔 벌어진다. 전 국민이 열성적으로 하진 않지만, 아이돌 팬들끼리는 싸우긴 한다. 음, 그런 거였구나.

 

 

  돌고 돌아오는 것은 부메랑이나 패션만이 아니다. 역사도 그러하다. 부메랑은 잘못 받으면 던진 사람 손만 아프고, 패션은 따르지 않아도 개성이니까 넘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를 잘못 다루면 미래가 사라지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책을 덮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v********0 2013.06.30. 신고 공감 2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몽테스키외가 보여주는 로마의 흥망성쇠 ...
"몽테스키외가 보여주는 로마의 흥망성쇠 ..." 내용보기
먼저, 이 책이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부터 말하고 싶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가 1734년에 세상에 내놓은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몽테스키외 전체 저작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뒤이어 나올('법의 정신'은 이 책으로 부터 14년 후에 세상에 나왔다.) 몽테스키외의 최고 대표작 '법의 정신'으로 가는 길을 여기서 닦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성공,
"몽테스키외가 보여주는 로마의 흥망성쇠 ..." 내용보기

 

  먼저, 이 책이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부터 말하고 싶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가 1734년에 세상에 내놓은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몽테스키외 전체 저작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로 뒤이어 나올('법의 정신'은 이 책으로 부터 14년 후에 세상에 나왔다.) 몽테스키외의 최고 대표작 '법의 정신'으로 가는 길을 여기서 닦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를 읽으면 그가 어째서 '법의 정신'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근본 뼈대가 되는 삼권분립을 주창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법의 정신에서 최초로 삼권분립을 주장하기에 이르게 되는 사유의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나 같다. 그는 새로운 체제가 무엇보다 사법권 독립이 바탕된 삼권분립 체제가 되어야 함을 로마 제국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확신하게 된다.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로마의 건립부터 멸망까지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데 사실은 1728년에 떠난 유럽 여행에서 각 나라의 역사와 제도를 관찰하고 연구한 끝에 찾아낸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삼권분립을 역사적으로 검증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몽테스키외는 어째서 이렇게 직접 각 나라의 제도와 역사를 관찰, 연구하고 실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검증하는 일을 행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그것이 그의 사상을 만들어가는 근본적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의 방법론적 태도는 1721년에 나온 '페르시안의 편지'에서 잘 드러나 있는데 거기서 그는 '사물의 본성'이라는 말을 쓴다.

 

몽테스키외의 초상 

 

 

 '사물의 본성'은 칸트에 의해 중요해진 말이긴 하지만 사실은 몽테스키외도 썼다. 물론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뜻은 칸트의 것과 다르긴 하지만. 몽테스키외가 이 말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바로 '풍토성'이다. 아시다시피 몽테스키외는 정치체제에 관심이 많았다. 몽테스키외는 1689년 브레드 성에서 태어났다.

 

 

 이 곳이 바로 몽테스키외의 생가인 브레드 성이다. 아무나 이런 성에서 태어나지는 않을테니 당연히 그는 프랑스에서 아주 유서깊은 가문의 출신이었다. 물론 그 출신 때문에 몽테스키외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 젊은 시절에 그가 본 정치 상황의 격변 때문이었으니까. 가장 직접적으로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은 영국의 명예혁명이었다. 그 혁명으로 영국은 스스로 입헌군주국이라 선언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절대 왕정 국가 아래에서 살고 있었던 몽테스키외에게 그것은 실로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전히 절대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에게 반감을 가졌다. 그 반감은 1721년에 발표된 '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주로 자신의 사상을 직접 여행을 하면서 보고 겪은 것을 토대로 하여 다듬어나갔는데 '풍토성'은 바로 그러는 가운데 정립된 것이다.

 

  우리도 여행을 하면 발길이 닿는 모든 지역마다 모두 저마다 다른 고유한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중국 고사에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같은 사물이라도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풍토성에 따라 다른 것으로 바뀌고 만다. 몽테스키외는 정치체제도 그렇지 않은가 여겼다. 즉 모든 나라에 이상적으로 통용되는 정치체제란 없다. 한 나라의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고유한 자연환경과 역사속에 형성된 문화에 적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거기서 나타나게 된 개념이 바로 '사물의 본성'이다. 그 나라가 가진 고유한 환경과 조건. 그것이 바로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사물의 본성'인 것이다.  이 '사물의 본성'은 그러니까 '풍토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개념이며 한 나라의 이상적인 정치 체제란 그 나라의 사물의 본성에 가장 맞는 정치 체제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즉 사물의 본성은 한 나라의 정치 체제가 얼마나 그 나라에 적합한 것인가를 나타내는 일종의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사상을 실제 역사를 가지고도 많이 검증했다. 로마의 역사 또한 그러한 고찰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로마 역사가 몽테스키외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로마가 존립한 오랜 역사 또한 인류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정치체제가 다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로마는 한 때 평민의 힘이 그 어느 계급보다 강했던 때도 있었고(그렇게 민주정) 원로원 중심의 공화국이었던 때도 있었으며 세 명이 정치권력을 삼분했던 삼두정치를 비롯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총집결된 독재정권도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로마 제국은 그야말로 몽테스키외에겐 자신의 사상을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로마 제국의 역사를 훑어 본 결과 그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로마 쇠망의 원인은 분열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번영 그 자체에 있었다고 말이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그 광대한 제국 자체가 몰락의 전조였으며 침략을 통해 형성한 막대한 부도 쇠망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고 말이다.

 

 로마가 자유를 잃어버린 것은 추진하던 그 과업을 너무 빨리 이루었기 때문이다.(p. 137)

 

  이건 무엇보다도 그가 내세우는 로마 몰락의 원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직도 여전히 로마가 무엇 때문에 몰락하였는지는 논쟁의 대상이지만 몽테스키외는 그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즉 그 광대한 제국을 유지하느라 필요하게 된 막대한 수의 군인에게 드는 비용 때문에 그 재정적 부담으로 결국 로마는 몰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로마 제국이 형성되고 난 뒤 원로원이나 황제들은 언제나 군인들에게 주는 월급이 가장 큰 문제였다. 로마 재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군인들의 월급은 늘 지급하기가 빠듯했으며 그 때문에 조금이라도 삭감하려들면 군인들의 반란에 직면해야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로마 체제가 유지되는데 많은 부담이 되는 많은 수의 군인들로 인한 하중을 견디다 못해서 로마 제국은 등허리가 휘어지다 못해 아예 부러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몽테스키외는 군인들이 로마의 초기 때와 같이 애국심과 명예심만 가지고 있었으면 그렇게까지 악화일로를 걷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문제는 로마의 번영이 그들의 명예심과 도덕심을 갉아먹고 오로지 탐욕에만 치중하도록 만들어버린 데 있었다. 로마 초기, 로마는 자신들보다 훨씬 힘센 카르타고의 침략을 받았다. 하지만 로마는 결국 카르타고에게 승리했는데 거기에 대해 몽테스키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난한 로마에 전쟁을 건 부유한 카르타고는 바로 그 부유함 때문에 패배했다. 금과 은은 쉽게 동이 난다. 그러나 덕과 의연함, 체력과 청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p. 61)

 

  로마가 카르타고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마도 카르타고만큼 번영해지면서 카르타고가 취했던 탐욕에 역시 취하고 말았다. 몽테스키외는 후대로 갈수록 나날이 없어지는 명예심과 도덕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 단적인 모습은 케사르가 암살되고 브루투스를 비롯한 암살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거기에 도전해 온 안토니우스 앞에서 키케로와 카토가 보인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 여지없이 드러난다. 몽테스키외는 거기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로마를 구하려한 카토는 칭송하지만 키케로는 오로지 자신만 구하고자 로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면서 비판한다.

 

 미덕은 키케로에게 부차적인 장식품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카토에게는 명예가 부속품이었다. 키케로는 자신을 먼저 생각했고 카토는 자신을 잊어버렸다. 카토가 공화국을 구하고자 했던 것이 국가 자체를 위해서였다면 키케로에게는 그것을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 때문이었다.

(p. 177)

 

  아마도 몽테스키외는 키케로에게서 로마의 몰락을 초래한 로마인들의 변절된 그 대표적인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로마에 유입된 에피쿠로스 철학도 도덕보다 현실적 쾌락을 강조하여 이 같은 변절을 부채질했다며 비판한다. 그리고 마리우스와 재판권을 원로원과 기사계급 중 누구에게 주느냐로 논쟁을 벌였던 술라도 다른 나라를 침략했을 때 로마 병사들에게 무한정의 노획을 허용하여 결국 군인들을 탐욕으로 길들여 버렸다면서 비판한다.

 

 이로써 우리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제를 구현함에 있어 몽테스키외가 무엇을 그 필요조건으로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과잉된 것을 적절히 절제시킬 수 있는 견제의 시스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엇보다 그 구성원들에게 물질적인 것 보다는 명예심과 도덕심, 의연함과 청빈함을 더욱 함양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견제 시스템에 대한 몽테스키외의 선호는 로마 제도들 중 그 로마의 유지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하는 '감찰관직'에 대한 설명에서 드러난다.

 

 나는 여기에서 로마 정부를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한 관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감찰관직'이다. 이 자리에 오른 사람은 인구 조사를 시행했다. 나아가 공화국의 힘은 규율과 엄격한 관습의 준수, 그리고 일부 풍속에 대한 부단한 관찰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법이 미처 예견하지 못하거나 보통 정무관이 처벌하지 못하는 법의 오남용을 바로잡았다. (...) 로마에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색다른 풍속을 들여오거나 시민의 정신과 생각을 바꾸거나 국가의 영속성을 방해하거나 하면, 즉 가정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모든 무질서가 감찰관에 의해 바로잡혔다.(p. 125)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감찰관직에서 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견제와 절제로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함을 느꼈고 그 감찰관직이 정치적인 이유로 훗날 사라지게 됨을 보고서는 무엇보다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그 어느 권력으로 부터도 독립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이 감찰관직에 대한 생각이 훗날 '법의 정신'에서 삼권분립에서 가장 중요한 사법권의 독립'으로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법권 또한 사람이 맡는 것이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사법권을 맡는 자들의 심성이다. 몽테스키외가 이 책에서 누누히 탐욕과 비도덕성을 경계하고 덕과 의연함, 명예심, 청빈함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몽테스키외의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지금 우리나라 사법 현실만 들여다봐도 여실히 알 수 있다.

 

 '로마의 성공, 로마 제국의 실패'는 로마 역사 전체를 개관하고 있지만 단순히 그 역사의 기술뿐 만 아니라 훗날 '법의 정신'에서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질 사상들이 투영된 책이다. 다시 말해 '법의 정신'이 말하는 것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할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혹시 어렵지 않나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몽테스키외는 원래 문장을 참 잘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도 그의 유려한 문장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데 때문에 더욱 마치 할아버지에게 옛 이야기를 듣듯이 부담없이 벗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읽다보면 기억해 두고픈 멋진 문장들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단일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당파간의 갈등은 쉽사리 가라앉는다. 군주에게는 대립하는 당파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국 체제에서는 그런 갈등이 훨씬 오래 지속된다. 그것은 그 갈등의 해악이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 자체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p.61)

 

 사람들이 영예를 허락할 때는 그들이 주려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권력이 결합될 때는 그 힘이 어디까지 미칠지 말할 수 없다.

 국가에서 도를 넘는 지지가 한 시민에게 집중됐을 때는 필연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민중은 질투심에 사로잡히거나, 그 인물에 대한 대책없는 애정만 키우거나.(p. 150)

 

 뒤의 말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것 같다. 이런 문장을 곰곰히 음미하다보면 그냥 괜히 나온 말은 아니라 오랫동안의 연구와 경험에서 우러나온 혜안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서 공감을 얻게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오랜만에 몽테스키외를 만났고 듬뿍 빠져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몽테스키외는 민주주의 사상에 뿌리를 형성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 비중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의 진가를 느껴볼만한 제대로 된 번역서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부분이 일어 중역으로 알고 있는데 모처럼 프랑스 원문을 번역한 2002년에 다른 세상에서 나온 '페르시아인의 편지'도 지금은 절판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원문을 번역한 이 책의 발간이 더욱 반갑기도 하다. 이 책을 계기로 '법의 정신'을 비롯하여 몽테스키외의 주저들이 제대로 된 번역으로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몽테스키외의 말을 하나만 더 인용한다.

 

"우리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가 남들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정말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남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이 말에서도 과잉 자체에 바로 몰락의 씨앗마저도 배태되어 있다는 이 책의 기본 생각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l****1 2013.07.05.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근래에 접한 인문 사회 저작 가운데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눈에 확 들어오는 책
"근래에 접한 인문 사회 저작 가운데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눈에 확 들어오는 책" 내용보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위시하여 로마제국 흥망의 원인을 분석한 책들은 그동안 꽤 있어 왔다. 그런데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이런 모든 근대 저작물의 전범이자 모태가 되는 기념비적 저작이라 하겠다. 연도가 앞선 것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와 접근 방법의 독창성이 이후에 발간된 책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관련 저작
"근래에 접한 인문 사회 저작 가운데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눈에 확 들어오는 책" 내용보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위시하여 로마제국 흥망의 원인을 분석한 책들은 그동안 꽤 있어 왔다. 그런데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이런 모든 근대 저작물의 전범이자 모태가 되는 기념비적 저작이라 하겠다. 연도가 앞선 것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와 접근 방법의 독창성이 이후에 발간된 책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관련 저작 대부분이 그의 책에 기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18세기에 씌어졌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밀한 논리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게 다가온 미덕 몇 가지를 꼽아보고자 한다.

 

우선 로마 몰락의 원인에 대한 인식이 기존의 상투적인 논리를 훌쩍 뛰어넘고 있어 무척 신선하다. 로마 몰락의 원인이 전쟁 패배에 따른 제국 자체의 쇠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영과 팽창에서 비롯되었다는 독특한 시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 오히려 몰락의 빌미가 되었다는 분석에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발상도 그런 역발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차근차근 몽테스키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감하게 되었다 할까? 작은 도시국가 규모의 공동체일 때는 오순도순 공화정을 펼쳐나가며 수준 있는 삶을 영위하던 로마인들이 인접 국가를 정복해가며 판도가 넓어지게 되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권위주의 지배 스타일을 채택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누렸던 정치적 자유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민중의 활력이 저하되었다고 분석한 대목에선 무릎을 치고 말았다. 또 정복 과정에서 획득한 부의 증가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지는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지배 스타일의 차이에 따른 당파주의도 횡행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자연스레 공동체의식의 실종으로 이어져 제국 소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논리를 펴고 있다.

 

이렇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몽테스키외는 국가의 힘이 정복의 규모나 지속적인 정복행위 수행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 내부의 건강함에 좌우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가의 융성이 정복과정에서 노획한 부에 있지 않고 내부 구성원들의 도덕의식을 기반으로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공동체의식의 실종은 결국 집단의 건강한 생태계를 해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논리이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제국의 멸망이 특정세력의 한 번 침입 때문이 아니라 이런 모든 내적 모순들이 누적되고 그 위에 여러 번에 걸친 이민족의 침입, 이를테면 아라비아인, 투르크인, 십자군 등의 침입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보고 있다.

 

두 번째로 짚고 싶은 것이 로마제국 몰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드러나고 있는 몽테스키외의 정치철학이 무척 진보적이라는 점이다. 여러 면을 따져볼 때 몽테스키외는 근대 공화국을 지지한 공화주의자임이 명백하다. 계몽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 루이 14세 같은 부르봉 왕조가 건재한 때에 왕정보다 공화정을 이상적 정치체제로 보았다는 점은 파격이라 하겠다. 그는 고대 로마의 미덕을 회복하자고 본 것이리라. 군주제의 불평등보다는 로마 초기 시행되었던 공화제의 평등을, 군주의 영광보다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찬탄하며 로마를 모델로 한 근대 공화국을 바람직한 정치체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들고 싶은 이 책의 미덕은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한 근대적 연구 태도이다. 이 책에서 몽테스키외는 역사적 사건의 단순한 서술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건들을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찾아 공통의 원인을 지적하는 등 탁월한 연구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소한 사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주류 역사학에서 소홀히 다뤄진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광범위한 각주를 사용하여 정연한 논리를 펴는 등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엄정한 연구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힘 있는 문체에 실린 명료한 논리는 지금 읽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연구 보고서라 하겠다.

 

이렇게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로마 몰락의 원인을 제국의 팽창에서 찾는 독특한 접근에서부터, 깊이 있는 정치 철학적 토대에다 정밀한 근대적 연구방법의 도입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로 다른 책에서 보기 드문 미덕으로 빼곡하다. 더불어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삽화도 글의 이해를 돕고 있어 쉽고 편하게 읽혀진다. 하여 근래에 접한 인문 사회 저작 가운데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라 하겠다.



a*****7 2013.06.27. 신고 공감 1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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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 철학자 몽테스키외.... 고등학교 때 세계사 과목에서 공부할때 외에는 많이 들어본적은 없으나 이름만 들어도 머리속에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나는것이 없는 그런 이름이었다. 세계사를 공부할때는 그 인물의 됨됨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여, 그리고 그 사람의 저서 등을 통해서만 약간 알았을 뿐 특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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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치 철학자 몽테스키외....

고등학교 때 세계사 과목에서 공부할때 외에는 많이 들어본적은 없으나 이름만 들어도 머리속에서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나는것이 없는 그런 이름이었다. 세계사를 공부할때는 그 인물의 됨됨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여, 그리고 그 사람의 저서 등을 통해서만 약간 알았을 뿐 특별하게 나의 머리속에 각인될만한 큰 기억은 없었던것 같다.

몽테스키외의 3대 저서로 "법의 정신", "페르시아인의 편지" 그리고 오늘 리뷰를 적어가는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이다.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던 사실들은 시간이 지나면 크게 머릿속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계기나 어떤 환경속에서 그들을 대하다보면 보다 새로운 의미를 찾게되고 그속에서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더 머리속에 오랫동안 기억된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읽어 감동을 받았다던가 심히 공감하는 내용은 나이가 들어서도 한구절만 떠올려도 기억이 새록새록 나게 마련이다.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저서는 그들의 깊은 생각과 상황, 환경등이 깊이있게 관여하고 있어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접하다보면 왠지 어렵게만 느껴지고 문장속의 단어들, 어렵게만 생각되는 그들의 생각을 쉽사리 따라잡기란 쉽지 않은것이 사실이다. 다른 시대와 환경에 살면서 이전의 환경과 사건들을 동일하게 생각한다는것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러기에 도서를 처음 대했을때는 왠지 무겁게 느껴지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읽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역사적 사실들과 로마의 정세, 2000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로마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등 모든 사실들이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지는것은 왜일까? 프랑스의 철학자가 로마의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런 역사서를 쓸수 있었다는 사실은 놀랄만 하다.  1700년대에 인물이 기원전부터 2000여년에 걸친 로마의 역사를 이렇게 저술할 수 있었던데는 뭔가 큰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는 대목이다. 또 한편으로 이러한 역사를 기술할 수 있었던데는 그 만큼의 역사적 기록이 그나마 많이 남아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많은 역사적 사실과 전쟁속에서도 그런 기록들이 남았있었기에 이러한 역작이 탄생했을것이고 로마를 동경하는 마음 또한 가슴속에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로마와 그리스라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신비롭게 들리는 이름이다. 로마 신화, 그리스 신화가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즐겨읽게되고 그리하여 신비로운 마음과 그들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신비롭게 생각하게 되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것 같다. 또한 2000년의 역사속에서 굳건히 지켜내고 보존하고 있는 수 많은 유적들을 통해 당시 로마 문명을 오늘날까지 기억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역사만을 기록한것이 아니라 로마가 멸망하게된 원인을 밝히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로마를 멸망으로 이끈 원인이 로마의 분열에 있지않고 번영에 있다는것을 밝히기 위해 저술했다는 것은 아마도 로마 멸망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것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서문에서 거의 모든 역사적 흐름과 변화를 먼저 언급하고 요약함으로써 내용을 파악하는것이 훨씬 편하게 생각되었으나 내용을 읽어가면서 이미 서문에서 한번 본것을 다시 보는 느낌이 들어 읽어가는 재미를 반감했다는 생각이다. 서문은 아마도 역자가 서술한것으로 보이는데 역자의 서술이라면 역자 후기에 남겨두었더라면 다 읽고 난후 다시 한번 요약하는 기분으로 되새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이제 로마의 역사로 들어가보자...들어가기전에 요즘 영화로 많이 제작되고 요즘도 방송되고 있는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한 '클레오파트라, 네로, 카이사르 등의 인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인물들의 역사적 사실들이 언급되면서 이해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포에니 전쟁, 한니발, 십자군 전쟁 등 많은 역사적 사실도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기에 어찌보면 식상할 수도 있는 사실들이지만 영화와 같은 수단은 인물들의 미화와 상황의 각색등이 이루어져 진실한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어 오히려 몽테스키외의 역사가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된다.

또한 로마시대의 역사를 지도를 통해 검색해 본 결과 조그만 섬나라에 불과했던 로마의 영역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중해를 둘러싼 여러 대륙으로 확잠됨을 알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로마 시민, 군인들의 용맹함을 예측해 볼 수도 있다. 유럽대륙은 물론 아프리카지역까지 그들의 영역이 확장되고 많은 외부의 문물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그 시대의 로마를 번성하게 했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로마의 탄생은 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신을 신성시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신과 사람의 차이를 확인하고 신의 아들로서 시민을 통치하는 수단을 이용했을것이다. 그래서 신이내린 왕만이 정치를 통해 시민을 통솔할 수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역시 왕이 왕권을 쥐게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또 다른 정치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왕정, 공화정, 삼두정치, 전제정치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또한 시민들을 통합하기 위한 호민관 제도 또한 유용한 견제 장치의 하나로 당시의 로마 시민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던것 같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사람이기에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것이고 특히 권력욕에 의한 권력의 남용은 시민을 힘들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제 정치 또한 통치 영역이 확장됨에 따라 그 통치 개념이 흐트러지면서 많은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식민지를 만들었으나 문화의 형태가 다르기에 식민지를 어떻게 다룰것인가가 한편으로 왕이나 황제의 걱정이었고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많은 억압수단과 조약이 맺어지기도 하였으나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불평등 조약이었고 공물을 바치게 함으로서 오히려 식민지 시민들의 분노를 사 식민지의 반발로 로마의 영토가 점점 작아지는 형태로 바뀌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몽테스키외는 로마의 멸망의 원인을 로마의 번영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의 시기에는 엄격한 군사적 규율과 체력등이 요구되기에 로마의 군인과 시민은 언제나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되어 있고 승리에 대한 전리품의 배분등으로 민생의 기본이 되는 농사등의 일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어 오로지 전쟁에만 전념하게 되어있었다. 그러기에 주위의 많은 영토와 민족을 통합하게 됨에 따라 군인들과 시민들의 인식은 나태함에 빠지게 되었고, 정치 군주들 또한 자기만의 영욕을 위해 행동하게 됨에 따라 서서히 내부의 균열과 민심의 혼란을 야기하기에 이르게 된다. 반면에 많은 왕이나 황제들이 이러하한 정세를 추스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한번 달라진 상황들은 쉽게 되돌리지 못하게 된다.

통지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동로마, 서로마로 분리하여 통지하게 됨에 따른 효율적인 통치가 어렵게 되고 민생의 동요에 따른 반란등으로 최후에는 로마와 비잔티움이 서서히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랍인, 페르시아인등의  침입을 받게 됨에 따라 로마의 멸망을 초래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라고 하는것이 몽테스키외가 주장하는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된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민족과 국가라고 하더라도 통일된 국가는 분열되게 되고 분열된 국가는 언제는 통합돌 수 있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근래에 들어 잘 접하지 못했던 철학자의 저서를 읽게 되어 큰 감동과 함게 로마의 역사에 관한 지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l*****7 2013.07.0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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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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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중에 흥하고 성했던 로마제국을 이야기해주는 책들도 있고, 쇄퇴와 망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있으며, 이 둘 모두를 함께 다루고 있는 책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로마의 흥망성쇠와 관련하여 좋은 측면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측명을 함께 다루는 책을 보는 것을 더 좋아 하지만, 이번의 경우 저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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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국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는 책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중에 흥하고 성했던 로마제국을 이야기해주는 책들도 있고, 쇄퇴와 망함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있으며, 이 둘 모두를 함께 다루고 있는 책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로마의 흥망성쇠와 관련하여 좋은 측면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측명을 함께 다루는 책을 보는 것을 더 좋아 하지만, 이번의 경우 저자가 몽테스키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아. 꼭 한번 읽어 봐야 할 것이다. 그의 진단을..

YES마니아 : 골드 c***b 2016.10.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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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로마제국의 실패]몽테스키외의 로마평전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로마제국의 실패]몽테스키외의 로마평전" 내용보기
17세기후~18세기의 프랑스출신인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 그의 관점에서, 그가 산 당시의 관점에서 평가한 로마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글이다.   로마의 건국에서 공화정, 로마제국에 이르기 까지 긴 여정의 사실관계를 쭉 나열하여 중간중간 객관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평가를 더하였다.   너무나 긴 역사를 한권의 책에 함축하려 했고 수많은 황제들의 이름또한 등장하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로마제국의 실패]몽테스키외의 로마평전" 내용보기

17세기후~18세기의 프랑스출신인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

그의 관점에서, 그가 산 당시의 관점에서 평가한

로마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글이다.

 

로마의 건국에서 공화정, 로마제국에 이르기 까지

긴 여정의 사실관계를 쭉 나열하여

중간중간 객관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평가를 더하였다.

 

너무나 긴 역사를

한권의 책에 함축하려 했고

수많은 황제들의 이름또한 등장하여

쓰는 이나, 번역하는 이나, 읽는 이나 한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너무 꼼꼼히 읽다보니 책을 다 읽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었다.

후반부에 가서는 속도를 내어 읽었더니

오히려 이름까지 꼼꼼히 봐가며 읽었던 것 보다

이해하기에 수월했다.

 

몽테스키외의 관점에서 평가한

로마제국의 실패원인.

로마의 긴 역사를 머리속에 다 넣은듯한 기분이 든다.

 

j******s 2014.06.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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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 제국의 실패]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 제국의 실패]" 내용보기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한 문장이 나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도대체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페르시아인의 편지>와 <법의 정신>과 함께 몽테스키외의 3대 대표 저작 중 하나라고 한다. 몽테스키외 하면 <법의 정신>을 먼저 떠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 제국의 실패]" 내용보기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 한 문장이 나에게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도대체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있는 것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페르시아인의 편지>와 <법의 정신>과 함께 몽테스키외의 3대 대표 저작 중 하나라고 한다. 몽테스키외 하면 <법의 정신>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 책도 3대 대표 저작 중 하나라고 하니 더욱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몽테스키외라는 이름이 유명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오래전 책이라는 것도 머뭇거리게 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니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빠르다.

 

 이 책이 그저 로마사만 쭉 나열한 것이었다면 지루하게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문의 제목에서 이야기해주는 궁금증을 굵직굵직하고 시원시원하게 알려주는 구성이 마음에 드는 책이었다. 얇지는 않은 책이지만, 그다지 두껍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었다. '역사'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약간은 움찔하게 되지만, 이 책은 그런 거리감이 좁혀지고 바로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 순식간에 빨려들어가 읽어볼 수 있는 책, 나의 선입견을 거침없이 깨준 책이다. 로마의 융성과 쇠락, 그리고 제국의 멸망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며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s*****a 2013.07.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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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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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 제11편 13장에서 언급했다던 “아무도 로마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역시 로마와 로마인이 몽테스키외 자신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로마제국의 몰락에 대해 시작부터 말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공화정이 무너지게 된 것은 내전과 그로 인한 로마 내부의 혼란과 분열 때문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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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키외가 『법의 정신』 제11편 13장에서 언급했다던 “아무도 로마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역시 로마와 로마인이 몽테스키외 자신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로마제국의 몰락에 대해 시작부터 말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공화정이 무너지게 된 것은 내전과 그로 인한 로마 내부의 혼란과 분열 때문이라는 통설에 몽테스키외는 반기를 드는 셈이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에 분열은 늘 있어 왔고, 또 늘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복 사업으로 인한 공화국의 ‘번영’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서문) 몽테스키외에 의해 요약된 로마인의 역사는 이렇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 원칙으로 모든 민족을 정복하였으나, 그것이 성공하자 그들의 공화국은 더 이상 존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로마는 정치 체제를 바꾸어야 했고, 이 새로운 통치 행태에 따라 초창기와 상반된 행동 원칙들이 도입되었고, 결국 이로 인해 그들의 위대함은 추락하게 되었다고. 서로마 제국은 야만족들과 동맹을 맺고 있던 동로마 제국으로 인해 멸망을 향하게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으로 야만족을 변경 지역으로 불러들여 자리를 잡게 한 것도. 로마가 한 민족을 몰락시키고 나면 그 뒤로 다른 민족이 공격해 오곤 했던 것까지 그렇다. 또 동로마는 투르크인들이나 십자군 전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터다. 이 일련의 과정, 로마제국의 성공과 실패를 풀어나가면서 몽테스키외는 주구장창 ‘번영’과 ‘몰락’을 키워드로 삼는다. 로마의 정복 사업이 그들의 쇠락을 불러왔다고 말이다. 정복 사업으로 인한 번영이 가져온 것은 갖가지 분란과 민중의 소요, 그들 고유 정치의 타락, 그리고 스스로 이민족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빌미를 주었다는 것. 그가 이 책을 매듭지을 때 했던 마지막 말이 무엇이던가. “나는 차마 그 뒤로 닥친 재난을 묘사할 자신이 없다. 다만 최후의 몇몇 황제 치하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교외 부락들로 축소된 제국은, 마치 대양 속으로 흘러들어가 사라져 버릴 때는 개울에 불과할 뿐인 라인 강처럼 그 종말을 맞이했다는 사실만 말해 두겠다.” 물론 이 문장이 지니는 강렬한 인상도 있겠으나 실지로 몽테스키외의 대담한 이야기는 그보다 더하다.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는 단 한 문장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실로 그 장대한 이야기를, 역사서가 아닌 소설을 읽듯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것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u******o 2013.06.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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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부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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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신상몽테스키외라고 통상 지칭되고 원래 그의 이름은 부르기도 어려운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이며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정치사상가이다. 그는 권력분립론에 관한 명확한 설명으로 유명한데, 이 권력분립론은 정부에 대한 근대의 논쟁에서 허용되었고, 자유주의 입장에서 권력분립에 의한 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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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신상


몽테스키외라고 통상 지칭되고 원래 그의 이름은 부르기도 어려운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이며 계몽주의 시대의 프랑스 정치사상가이다.


그는 권력분립론에 관한 명확한 설명으로 유명한데, 이 권력분립론은 정부에 대한 근대의 논쟁에서 허용되었고, 자유주의 입장에서 권력분립에 의한 법치주의를 제창하였으며 전 세계 많은 헌법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법학과 관련하여서는, 몽테스키외는 토머스 홉스와 스피노자의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의 영향을 받아 법의 연구를 가치판단으로부터 ‘순수화’시키고 체계적인 경험적 관찰에 기초시키려 시도한 점에서 법사회학적 관점에서도 주목되고 있었다.


그는 저서 <법의 정신 Esprit des Lois>(1748)을 남겼는데. <법의 정신>은 두 가지 취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법규범의 형식적인 껍질 아래에서 법규범과 통치형태와의 관련성 및 여러 정치적 집단과의 관련성을 탐구하려는 취지이며, 다른 하나는 여러 종류의 정치-법적 유형의 발생을 다른 여러 사회현상과 관련시켜 설명하여 주는 자연적 법칙을 정립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여러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관계’를 가지고 법이라 규정하는 인과적·합리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1734년)에서 벌써 취급되어 다루고 있었던 기후·종교·민족성 등의 사물을 매개로 하여 법의 정신을 다채롭게 전개하였으며, 중국·일본 등에도 언급하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의 남서부에 있는 샤또 드 라 브레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였던 줄리아 컬리지를 졸업한 후 26세에 개신교였던 아내 장 드 라르티규를 신부로 맞아들였으며, 그의 아내는 부유한 귀족 집안 출신이었으며 결혼 지참금으로 포도 농장의 소유권을 가져왔다.


몽테스키외는 귀족이었으나 장남이 아니었기 때문에 작위와 봉토를 물려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결혼한 이듬해에 백부가 사망하였고 그의 유서에 따라 백부의 작위와 봉토를 계승하여 제2대 몽테스키외 남작(Baron de secondat Montesquieu, 바론 드 세콘다 몽테스키외)가 되었다. 작위를 상속하기 전 몽테스키외의 원래 이름은 샤를 루이 드 스공이었다. 백부의 작위를 상속한 몽테스키외는 백부가 맡고 있었던 보르도 지방법원의 원장직 역시 계승하게 되었다.


몽테스키외가 보르도 지방법원의 원장에 취임하게 된 무렵 잉글랜드에서는 명예혁명이 일어나 입헌군주제가 선포되었다. 그 후 1707년 연합법에 의해 스코틀랜드가 합병되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세워졌다. 1715년 오랫동안 재위하였던 루이 14세가 사망하고 루이 15세가 즉위하였다. 이후 프랑스의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은 여러 부문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정은 이후 몽테스키외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으며 그의 저작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어 서술되고 있다.

1721년 <페르시아인의 편지>라는 글을 발표하여 당시의 정치와 사회를 비꼬았다. 이에 진로를 고심하던 몽테스키외는 세습하여 물려받은 그의 법원 원장직을 경매로 처분하고 파리로 이주하여 연구와 저술에만 전념하게 된다. 그 후 법률 연구를 위하여 각국을 여행하였는데, 특히 영국 정치의 좋은 점에 감명을 받았다. 1734년 선보인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은 몽테스키외의 이름이 유럽 전체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1748년 <법의 정신>을 발표하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법학 연구에 처음으로 역사 법학적, 비교 법학적, 사회학적 방법을 적용하여 법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또 삼권분립설, 입헌 군주 제도론 등을 전개하는 한편, 전제주의를 극력 공격하면서 법은 각국의 여러 환경에 적합한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 정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디드로, 달랑베르 등이 편찬한 <백과전서> 에도 협력하는 등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혁명이 시작되자 그의 사상이 실현되는 듯하였으나, 삼권 분립론을 제외하고는 그 영향력을 잃었다.


몽테스키외의 3대 저서 중의 하나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Considerations on the Causes of the Grandeur and Decadence of the Romans, 1734>(2013)은 그의 나이 45세때 저술해 유명세를 이끌어낸 저작이다. 그는 ‘분열’이 로마를 파멸로 이끌어 냈다는 에드워드 기번과는 다르게 로마의 성공과 몰락의 원인은 ‘번영’이라는 한 단어로 집약시켰다. 민주주의는 정복사업의 팽창으로 인해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도시 규모의 공화정에서 판도를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로마는 정치적 자유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그 정치의 자유의 소멸은 관료사회의 부패와 독재를 불러 오게 되었다. 그리고 “장군들과 병사들과 동떨어진 민중의 활력은 감소”되어 로마의 부흥을 정체하게 만들어 국가의 흥망의 주요원인이었던 정치제도와 경제구조가 동반적으로 쇠락이ㅡ 길을 걷게 된다.


지금 몽테스키외를 읽는다는 것은 옛 이야기를 배운다는 역사적 소명의식과 더불어 헌법의 기원에 대해서 맹렬하게 탐구하는 여정의 출발지이다. 로마의 체계가 원활하게 이뤄진 것은 서로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의 안정이었다.


삼군 분립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이 세 개의 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 작동방식을 연구하던 몽테스키외는 모든 것을 호황기였던 로마제국시절에서 배웠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가의 수평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로마제국의 몰락과 같은 길을 걷지는 않겠지만 저개발의 국가로 추락 할 수도 있는 이때에 그 역학관계에 대해서 심사숙고하게 고찰해 볼 필요는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그러한 가치는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2013년 여름에도 300년이 지난 고전이 다시 부활했기 때문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n*****m 2013.06.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