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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케인즈도 라파르그를 읽었는지, 그가 말했던 것과 비슷하게, 2030년 경이 되면 인간은 하루3시간 노동이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를 즐기는데 사용할 거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사회주의자인 라파르그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로, 노동자들이 하루 3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쟁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 경제학자인 케인즈는 그러한 요구가 없어도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이 되어 삶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람'을 우위에 두어야 한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케인즈의 전기를 30년에 걸쳐 펴낸 경제학자이자 영국 상원의원인 아버지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철학자인 아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가 함께 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를 읽었습니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에세이에서, 하루 3시간 즉 1주일에 15시간만 일하는 세계, 노동시간보다 긴 여가시간을 즐기는 삶은, 2030년이면 도달 가능하다고 예측합니다. '창조된 이후 처음으로 인간은 자신의 진정하고도 영원한 문제에 대면하게 된다. 즉 경제적인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과학 및 관련 지식 덕분에 누릴 수 있게 된 현명하고 즐겁고 잘 살 수 있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하는 문제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예측대로 경제는 끊임없이 성장을 했고 이미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풍족한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상황임에도, 노동시간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고 여가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여기에서 스키델스키 부자가 묻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있어야 충분하다고 여길 것인가?'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동서양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어느 시대에도 '노동'을 신성시하거나 권장했던 과거는 없다는 걸, 노동보다 삶을 즐기는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자본'이 종교가 되면서 그 어떤 도덕적, 철학적 비판도 허용하지 않고, 진작에 개종하여 신 대신에 '자본'을 신봉하는 종교,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끊임없이 최면을 거는 언론, 내 안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미디어까지... 결국 우리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지니고 있으면서도 욕망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꿈꾸어야 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을 만큼 '빨리'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저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떤 삶을 원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많이 소유하는 삶이 아닌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일곱 가지 기본재는,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부분 동의를 하면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조건없이 지급되는 기본소득'입니다. 소득하위층에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찔끔 지급하는 보조금이 아닌,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평균적 삶을 누릴 정도로 지급을 한다는 개념입니다. 그 수준에 만족을 하면 여가나 다른 활동에 시간과 열정을 쏟으면 되고, 그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면 추가적으로 일을 해서 소득을 올리면 된다는 것이죠. 몇 년 전에 행복과 소득의 상관관계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월 400만원 정도까지는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 이상에서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심리학계의 논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민 4천만 명에게 매월 200만원씩의 기본월급을 제공한다고 할 때 월80조원이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충분히 감당할 정도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건 따져 봐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게 이런 논의를 가능하게 할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 충분함을 넘어 늘 부족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욕망'을 제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미 종교화된 '자본'을 현실 속으로 끌어내리는 작업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린, 우리가 당연히 꿈꾸어야 할 세상을 얘기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도 필수적일 것입니다. 지금 주 40시간을 근무하는 우리 회사에서, 직원을 두 배로 늘리고 급여는 6,70%선으로 줄이는 대신에 주 20시간만 일을 하게 된다면(물론, 국가의 급여지원을 전제해야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더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월화수 일하고, 일일일일 나흘을 쉬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그럼에도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는 생활이라면-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고용을 안정시키고,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급여를 지급하는 게 누군가 말하는 경제를 살리는 첫 걸음이자 기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미 우리는 그 모든 걸 이루기에 충분한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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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을 기대할 수 있을 때만 행동할 마음이 생긴다는 선천적인 게으름뱅이로서의 인간상은 근대 특유의 것이다. 특히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려면 당근이든 채찍이든 자극이 있어야 하는 노새 같은 일짐승이라고 본다. 근대 경제학 이론의 개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William Stanley Jevons)는 인간의 문제가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만족을 충족"하려는 것이라고 보았다. 어는 날 일자리를 잡을 나이를 훨씬 넘었고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갑자기 부모형제자매가 " 넌 왜 계속 놀고 있니?“ 라고 물어본다면 단신은 ‘그럴 것이다. ”자금사회가 블러블러,,“ 그러고 나면 상대방은 한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기분 나쁜 말을 점잖게 할것이다. 완전 자존심의 스크래치내는 방향으로 말이다. ”너 나이 값은 언제할건데“. 그날의 하루는 이에 대한 생각으로 저물 것이다. ”난 언제 취직이 되는 걸까“ ·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이 젊은 청춘들이 목적에 대한 고민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어떠한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자본’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정치질서에서 ‘자유’인가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나키스트적 무정부주의자인가? 여기에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은 똑같이 사려고 하는 밴드왜건효과(band-wagon effect), 남들과 다른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스노브효과(snob effect)가 공존하는 것이다. 인간은 예로부터 노동의 인간이었다. 전쟁을 수행하고 밭을 경작하면서 도로, 다리, 성벽을 건설하며 음식과 의류를 만들며 모두 자기의 손으로 지접 삶의 의식주를 실행했다. 그런데 국가가 건설하고 계급이 생기면서 노동의 활용은 국왕, 봉건영주, 혹은 지역토호들의 독점적인 거래가 되었다. 그러나 농노계급의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물물거래가 생기고 나서부터 인간에게는 편리한 교환도구에 대해서 생각한 나머지 화폐를 발명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의 대가를 화폐로 지급하게 하고 그 화폐를 받은 농노들은 드디어 원시시장에서 그 화폐로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게 된다. 그리고 난 이후부터 잘 알다시피 소비사회로의 이행이 시작된 것이었다. 베블런효과(veblen effect)라는 것은 과시효과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비효율적이지만 부를 차인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명품의 구입, 그러한 향락과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계급은 자본가 혹은 권력자로 한정되어 있다. 젊은 청춘들이 그들의 직업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 계급이 그들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으며 잉여자본에 대한 정의로운 분배를 실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다른 세대들에게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비정규직, 시간제일자리, 인턴, 아르바이트 모두 최저임금 테두리에서 형성된 직업의 총칭이며 노동시간은 그것과 반비례해서 길어지며 노동의 강도도 그만큼 그들의 신체를 갊아 버리는 레몬시장의 대표적인 청춘이 가질 수 있는 잡이다. 그들은 건강, 주거, 복지, 육아, 결혼, 그들의 앞선 세대들이 손쉽게 하던 것을 이 세대들은 소득의 불충분한 분 때문에 그들 스스로 그러한 통과의례나 국가로부터의 의무를 포기하게 만든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How it much enough)라는 말은 이 책 주장과는 다르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의 세대들은 예전 세대만큼 돈을 소유해 본적이 없었던 빈곤의 세대이기 때문이다. 경험은 그 경험만을 해본 사람만이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다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말했다. 행복의 척도가 자본이 아니라고, 한 번 그 자본을 가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질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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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지 다소 시간이 지났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화두는 시간을 넘어서도 생각할 화두를 던져준다. 제목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화두가 대상(what)이 아니라 량(much) 이 다른 접근법이라 생각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want'와 'need' 행복의 의미 좋은 삶의 조건, 경제학자와 철학자의 시각으로 적은 공저이다 보니 다른 결로, 방향으로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있다. 추천사에 적힌 감수내용을 참고해서 읽다보면 새롭게 바라볼 시선이 생긴다. P7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가 비슷한 문제의식 위에 있는 다른 책들과 눈에 띄게 다른 지점은 돈에 대한 사랑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한 걸믕 더 나아가 이런한 가치관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적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행복한 삶이란 일련의 즐거운 심리적 상태나 욕망이 단순히 충족한 삶이 아니라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선 또는 '좋음'들이 구현되는 삶이다. 이들은 행복 경제학의 한계가 고대의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좋은 삶'이라는 비전을 통해 극복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삶이란 많은 이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라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며, 행복이란 단순한 주관적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건강한 태도이자 입장이 된다. P127 좋은 삶이란 단지 욕망이 종족되는 삶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올바른 목표를 가르킨다. 욕망은 진정으로 바람직한 것을 향해 길러져야 하고 그 방향을 향해야 한다. 도덕 교육은 감성 교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