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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 산 너머’라는 영화를 봤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라고 홍보가 된 영화이다. 잔잔한 스토리 전개와 푸르고 맑은 영상이 매력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7살 수환은, 자신의 마음 밭에, 엄마가 뿌린 천주님의 씨앗을 찾아 산을 넘어간다. 사제보다는 인삼 장수가 되고 싶은 수환은, 엄마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형처럼 무조건 엄마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대화를 한다. 그렇게 씨앗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결심하고 그 길을 가게 된다.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평생 자라게 할, 씨앗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질문을 통해 자신의 길을 찾았던 수환과 하느님께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던 욥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생각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쉽게 이해가 되는 것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주님께 질문하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 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의미를 찾는 노력을 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에 관여하고 계시고,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된다.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한다. 욥은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하느님께 인정받게 된다.
욥은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고 표현된다.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그의 이런 모습을 칭찬하였다. 사탄은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많은 소유의 축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떠나가면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하자,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그의 모든 소유를 넘긴다. 그렇게 그의 재산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식마저 죽게 된다. 하지만 욥은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셨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한다. 그 모습을 보고,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의 마음을 칭찬한다. 사탄은 하느님께, 욥의 뼈와 살을 치면 하느님을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번에도 사탄에게 욥을 넘기신다. 욥은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고약한 부스럼이 났다. 욥의 아내가 하느님을 저주하라고 말하자,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욥의 세 친구가 불행한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 처음에,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욥은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탄식을 한다.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건만, 숨겨진 보물보다 더 찾아 헤매건만 오지 않는구나” (욥 3,20-21)
욥의 세 친구는 돌아가면서 욥이 이렇게 된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통점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불행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성에 갇혀, 욥의 고통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욥은 자신의 정의와 의로움을 주장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찾는다. 하느님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원한다.
“아, 그분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알기만 하면 그분의 거처까지 찾아가련마는.” (욥 23,3)
“네!”하고 따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대답은 “네!”라고 하지만, 마음은 “네?”라고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대화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 마음속에 있는 ‘?’를 ‘!’로 만들 때까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같이 청해야 한다. 사람의 지식과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가 떠오르게 하는 지혜는, 주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다.
“보아라, 주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며 악을 피함이 슬기다.” (욥 28,28)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욥의 요구대로 목소리를 들려주신다. 다만 욥의 질문에 답을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욥에게 질문으로 질책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보상 교의에 대해 부정하신다. 어떠한 성찰도 없는 신학의 노예가 되는 것에 의문을 가지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욥의 무지에 대해 질책을 하신다.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 (욥 40,2)
욥은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한 것을 인정한다. 주제넘음으로 죄를 지었다는 것, 자신의 고통과 함께 계시지 않았고, 사랑으로 현존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욥은 친구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비난은 인정한다. 하느님께서 욥을 질책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욥은 하느님의 현존에 대해 자기 생각을 쏟아붓는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통받는 원인을, 자신들의 지식으로 쏟아붓는다. 그 생각에는, 하느님이 계실 공간이 없다.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를 이렇게 안내한다. ‘우리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특히 주님과의 관계에서 그렇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해야 한다.’ (p252)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말에, 욥을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하느님의 축복에 관해 설명해준다. ‘욥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호소하며 주님의 자비로운 현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의 표지이다.’ (p253)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물어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 관해 물어야 하고, 답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함께 계시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물어야 한다. 책의 제목처럼, 욥에게 얻은 희망은, 희망을 품고 끊임없이 물을 때 하느님께서 답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 답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도 함께 청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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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코로나19로 여전히 개인방역에 신경쓰고 생활 속 거리두기로 이어지고 있는 요즘 건강히 잘 지내시는 지요? 어서 코로나19를 잘 극복하여 건강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없는 시간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런 날들을 지내고 마음을 보듬어 주는 백신 같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욥기의 희망 수업』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 욥기를 읽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욥기 거룩한 독서의 안내서입니다. 욥기에서 말하는 고통의 의미, 우정과 함께함의 의미, 하느님께서 주신 대답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풀어 주고 있습니다. ![]() 이탈리아의 저명한 성서학자인 저자 암브로지오 스쁘레아피꼬 주교는 깊이 있는 체험을 통해 욥기의 거룩한 독서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 ‘나는,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느님과 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이 책은 또 거기에 대한 대답을 욥기에서 찾아 주며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 『욥기의 희망 수업』은 욥기를 1장부터 42장까지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풀어내어 욥기 전체를 충실하게 안내하는 데에 공을 들이며, 독자들이 각자 자신의 삶에서 능동적으로 욥기를 묵상하도록 길을 열어 줍니다. ![]() 『욥기의 희망 수업』은 욥과 욥의 네 친구 모두에게서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섣부른 위로의 말로 더욱 상처를 주거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여 더 깊은 오해를 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특히 욥의 친구들에게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우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할 때 지녀야 할 태도를 소상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 욥에게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는 말하고 주님께 질문하면서, 역사와 창조 안에서 끊임없이 주님의 현존을 찾으며 탐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통받고 투쟁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 악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실존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에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고뇌하는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고통의 물음들을 인내롭게 하느님 앞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하느님의 현존이 더욱 불확실해질 때, 욥은 하느님 앞에 서 있기 위한 투쟁의 무게를 느낍니다. 때로는 욥처럼 어쩌면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우리 역시 하느님의 부재 때문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매우 약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욥은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이의 깨우침이며,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순간에도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이의 깨우침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희망’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께 질문하고 응답을 청한 욥은 결국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십니다. 욥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호소하며 주님의 자비로운 현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의 표지입니다. 『욥기의 희망 수업』에는 욥기 전문이 담겨 있고 그 전체를 꼼꼼하고 밀도 높게 분석하지만,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읽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성경 본문을 읽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 생각해 보는 패턴의 리듬감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에 관하여, 그리고 그 고통 안에 언제나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 관하여 각자 나름대로 정리된 관점과 생각을 갖고 싶다면 『욥기의 희망 수업』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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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의 삶은 완전하고 평온하다고 한다."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비밀은 인내와 경청을 요구한다. 그 비밀은 깊은 곳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 안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차차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나라면 하느님께 호소하고 내 일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겠네." 아멘. 요즘 평상시에 공부하는 순간마다 하느님을 찾지 않고 소홀했다. 다시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나의 몸과 마음도 올바르게 부여잡자. 욥기를 통해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있어도 하느님께 등 돌리지 않고 그 끈을 계속 붙잡고 있으려고 노력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이사 40, 6)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서평 작성을 목적으로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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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의 서평단 모집에 우연찮게 두번째로 당첨되었다. 하느님의, 예수님의 말씀이 아닌 '욥'이라는 의인의 고통받는 이야기이기 때문인인듯도 하였다. 먼저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욥`기를 먼저 읽는 것이 순서인듯 하여, 차근차근 읽어보기로 했다. 역시나 `욥기`는 나에게는 어려운, 아니 지루하기 그지없는 성경이었다. `욥기의 희망수업`의 서평단 모집에 지원한 것도 이 기회를 삼아 `욥기`를 읽을 요량이었다. `욥`은 하느님시대에 의롭고 올곧은, 한마디로 의인중에 의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욥`처럼 정직하고 하느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따른이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도 느끼듯 `욥기`를 통해서 우리들은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욥`은 한마디로 고통받는 의인이었다. 지금 우리들은 펜데믹이라는 버거운 혼란과 낯선 바이러스로 인하여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늘상 해오던 일들, 언제나 그곳에 가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 반복된 일상들이 지금은 재제를 받기에 당연시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만나면 서스름없이 손도 잡고, 어깨동무도 하고, 안아도 주던 행동들에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이런때에 읽은 또 한 권의 책. `욥기의 희망수업` 정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의인인 `욥`도 고통을 받는데, 하물며 평범한 우리라고 해서 고통을 피해갈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처럼 온갖 소소한 일상에 `거리두기`를 해야만 하고, 나와 타인을 위하여 `마스크를 착용`해야하는 불편함과 `손씻기`,`기침예절`등 이런저런 지켜야 할 수칙들이 많아졌다. 문득 이럴때 우리가 잠시만이라도 동정성모님을 생각하며 `곰곰이` 혼란속 샘각들을 비운다면, 불편한 일상에서 자비를 배우게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속에서 `욥`처럼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고, 청하면 어떨까! 현실을 외면하지만 말고, 내가 이겨나가야 할, 내가 할 수 있다는 의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청`하고 끈임없이 `기도`한다면, 지금 내게 놓인 일들은 손가락에 박힌 가시보다도 아픔과 고통를 적게 느낄 것이라 생각해보았다. `욥기의 희망수업`을 읽으면서 저자의 배려깊음도 느꼈다. 바로 성서의 원문과 저자의 해석과 느낌들을 나열하여 이해를 도와준 점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본문들도 우리들의 삶을 비유하며, 머리에 속속 스며들도록 잘 풀이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경읽기의 난독증 초기인듯한 나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기 연습을 시켜주는 저자가 마치 마음씨 좋은 선생님과 같은 기분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몇몇 부분들을 다시한번 옮겨 보았다. -우리의 탐욕과 방황한 삶의 방식때문에 빈곤해지고, 파괴되고 있는 세상에 대해 더욱 책임을 갖게 될것이다. 놀라움은 `믿음의 문`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과의 친교에 들어간다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기도는 듣고 대화하는 것`이다.- -`욥`은 언제나 기도의 힘을 청해왔다. `욥`이 원래대로 돌아가게 된것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호소하며, 주님의 자비로운 현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든사람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의 표지이다.- 나름 이러한 결론을 내려 보았다. 어려움과 고통속에서도 희망은 분명히 존재한다. 단지 우리들의 의지와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겸손과 자비와 사랑의 미덕을 실천한다면 말이다. 언제나 하느님의 존재를 믿으며,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믿음과 끈임없이 하느님과 대화하고, 청하라고 감히 얘기하고 싶다. `기도는 듣고 대화하는 것`임을 다시한번 강조해 주고 싶다. 그러면 우리들이 청한 `희망의 기도`는 `기쁨의 무지개`가 되어 다가올 것임에 분명할테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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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성경을 읽을 때 해설이 필요한 부분을 만난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이 사람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걸까 등등. 이 책은 욥기를 혼자 조금씩 읽으며 기도하고 묵상하기에 좋은 책이다. 성경 본문과 함께 해설이 쓰여 있는데, 욥과 그의 친구들의 말, 태도 안에서 나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돕는다. 욥은 끝까지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자 노력한다. 기도를 놓지 않으며 오로지 '나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151쪽. 그는 단지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실 것을 원할 뿐이다. 우리는 어려움 앞에서 쉽게 미워하고, 분노하며 이 고통에서 빠져나오기만을 바란다.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욥기를 읽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신앙을 좀 더 돌아볼 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르는 실타래가 한순간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신앙이 아님을 배운다. 인내하는 시간, 고통을 바라보는 시간 앞에서 나의 하느님과 온전히 대면하는 용기, 그 시작을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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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공부를 하면서 욥기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삶이 고통스러울때 욥을 떠올리면서도 뭔가 개운하지 않은 감정이 늘 남아 있었다. 의인이 고통을 받는데 다들 그것은 네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다.라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모습이 고통 중에 있는 내게 희망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힘들때 욥기를 펼치지만 성서속의 친구라 불리는 그들의 비난에 나는 또 다시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러나 '욥기의 희망수업'이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서 욥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욥기를 이해하기 쉽게 쓰신 암브로지오 주교님께 일단 감사드리고, 우리 말로 쉽고 재미있게 번역 해 주신 박영식 신부님께도 감사드린다. 나의 욥기에 관한 불편함을 해소 시켜 준 고마운 분들이므로^^ 다 읽고 번역이 쉽게 잘 되어 있어 표지에서 번역하신 신부님을 보니 언젠가 본당에 강연 하러 오셨던 신부님이시라 반가웠다. 정말 말씀을 재미있게 쉽게 잘 해 주셔서 인상에 남은 신부님이신데... 번역도 쉽고 재미있게 하셔서 욥기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도 좋지만 욥기에 관한 명화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욥에 관한 묵상을 했다는 반증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누구나 고통의 의미를 묵상 하면서 욥기를 읽으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의 구성은 욥기를 각 장마다 성서 본문을 싣고 있고,성서 해석이 있다. 그리고 저자의 욥기 각장에 관한 해설이 있다. 이 책을 읽고서 내게 울림이 컸던 부분을 소개하자면... 더욱 어렵고 중요한 것은 고통 받는 사람이 절망에 빠져들지 않도록 그 사람 곁에 있는 것이다. 욥의 말을 고통 받는 사람을 버리지 않도록,엘리파즈와 빌닷과 초파르처럼 스승 행세를 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하는 말이기도 하다.122p 욥의 호소는 우리에게도 하나의 질문으로 부각된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로부터 솟아오리는 도움의 부르짖음에 우리는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182p 우리는 특히 오려운 순간에 하느님께 자신의 문제들을 마구 쏟아내며 많은 말을 하면서 정작 하느님께는 대답할 시간조차 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236p 욥과 시편들은 기도하는 것은 절대로 중단하지 말아야 하며, 하느님은 필요한 순간에 당신께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237p 친구들과 달리 욥은 절대로 체념하지 않았다. 욥은 침묵하시는 하느님께 계속해서 탄원하고 기도하였다.252p 이런 귀절들을 읽으면서 지금 아직도 가시지 않는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과의 갈등.그로인한 분노의 고통 중에 있는 내가 해야 할것. 끊임 없이 기도하면서 하느님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것. 그럼으로 인해 나의 얄팍한 평화라도 지켜내는것. 그리고 깨우치지 못하는 나의 이웃을 위한 중재기도.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주변에 고통 받는 이들에게 의미 없는 상투적인 위로나 혹은 비난 보다는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 해 주는 그런 이웃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중에서도 포기 하지 않고 기도했던 욥처럼...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서평 작성을 목적으로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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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세상에는 인과율이 적용되며, ‘착하게 살면 고통은 피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고통받는 이들을 보면서 뭔가 원인이 있거나 죄를 지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오래 겪고,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또한 세상에는 부조리가 너무 많으며 착하거나 신앙심 있는 이들도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의문이 생겼다. 답답함을 풀고자 고통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성경에는 신명기적 사고(인과율)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인간사의 부조리한 면도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책이 욥기이다. 욥기는 쉬운 책이 아니기에 가능하면 해설서와 함께 읽어야 한다.
생활성서사에서 출판된 [욥기의 희망수업]은 욥기를 자세히 공부하고 묵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들어가는 말]에는 욥기에 대한 전반적 설명이 나온다. 그 다음에는 욥기 1장부터 42장까지의 성경 내용을 소개하며, 각 구절을 해설해준다. 욥기의 전 내용이 수록되어 있어, 대조해가며 읽기에 편하다. 특히 고통 중에 있거나 있었던 분들은 욥의 하느님과 주변인들에 대한 원망에 크게 공감하면서,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고 삶을 살아갈지와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얻을 것이다.
내가 욥기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도움받았던 책들이 있다. 생활성서사의 김혜윤 수녀님이 쓰신 [시서와 지혜서], [구약성경 통권노트]에는 욥기의 핵심 내용과 신학적 주제와 교훈들이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분도출판사의 [욥이 말하다: 고난의 신비와 신학이야기]는 욥기를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또 욥기는 아니지만 고통에 대해 다룬 [팀켈러: 고통에 답하다] 등의 기독교 서적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을 묵상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견뎌나가는데 유용하다.
이런 책들은 기복신앙이나 인과율적 세계관을 넘어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더 큰 시각을 갖게 해주며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해도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사를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지혜를 줄 것이다.
욥기를 통해 고통이 죄에 대한 징벌이라기보다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은총과 지혜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소문으로 알게 된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체험되고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추천 대상] 1.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거나 부조리 때문에 혼란스러운 분들 2. 타인의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고 싶은 분 3. 고통(의인의 고통)에 대해 묵상하고 싶은 분들 4. 권선징악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하느님과의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희망하는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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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신간 도서 『욥기의 희망 수업』 특별서평단에 지원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서 도서를 제공 받아서 읽고 서평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제는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 입니다. 이 책을 쓰신 암브로지오 스쁘레아피꼬 주교님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고 성서대학 교수, 우르비노 대학교 교수와 총장을 역임한 후 2008년 프로시노네-베롤리-페렌티노 주교로 서품되셨습니다. 옮긴이 박요한 영식 신부님은 서울대교구 사제로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고, 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 우르바노 대학교 초빙 교수를 역임했으며,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욥은 하느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시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고통에 대한 답을 주시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인물입니다.
욥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욥은 결국 하느님을 만나뵙습니다. 욥은 항의를 마치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자기와 함께 계셨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고통받는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고, 결코 고통의 원인이 아니십니다. 욥은 자신의 모든 고통 곁에 계셨던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하느님께서는 결국 나타나셔서 욥의 의문을 해결해 주십니다. 하느님을 만나뵙고자 하는 욥의 바람이 마침내 이뤄지게 됩니다. 욥은 재산을 잃고 자식들도 잃게 되지만 하느님을 저주하지 않고 자신을 친 악의 원인을 하느님께로 돌리지 않습니다. "고통을 받고 재산을 모두 잃어도 사람은 하느님께 충실하게 머물 수 있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를 계속 읽다보면 욥은 자신을 친 악에 대해 불의의 하느님을 고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점은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의 부르짖음을 듣고 옆에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입니다. 고통과 시련 중에서 진정으로 위해주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위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비난하고 욥의 고통의 원인이 욥에게 있다고 이야길 하는데 그걸 들으면서 욥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우정과 함께함, 그리고 기도입니다.
좋은 뜻으로 충만한 친구들은 욥에게로 다가가지만 고통 중에 있는 욥은 악에 굴복하지 않도록 하느님께 다가가 그분께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습니다. 이때, 욥의 친구들은 반론을 제기할 뿐 욥이 울부짖는 그 말의 의미에는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을 진심으로 위로할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욥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욥은 고통 중에서 침묵하시고 희망을 주시지 않는 하느님을 비난하지만 마침내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욥이 지닌 믿음의 힘에 대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욥은 믿음으로 인해 절망에 떨어지지 않고, 친구들에게 속지 않으며, 하느님과 더불어 하느님이 나타나시도록 계속해서 그분을 찾고 그분이 나타나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오만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그는 하느님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만을 염원하며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행위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어합니다. 욥은 세상과 권력자들의 불의에 항거하는 예언자들의 부르짖음을 대표하며, 고통과 죽음의 선고를 받고 하느님의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투쟁을 묘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욥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주장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삶에 떨어진 많은 불행에 대한 답을 하느님께 청합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친구의 몰이해 때문에 낙담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의 시험대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 관해 성찰하도록 친구를 초대하면서 비꼬아 대답을 합니다. 이어서 욥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칭송하고, 하느님의 창조에 대해서, 그리고 피조물과 악의 힘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에 대해 언급합니다.
하지만 욥은 계속 침묵하시는 하느님의 침묵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은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지 않는 걸까요?
고통 속에서 기도하며 하느님을 찾을 때,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 수록 더 기도하며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이 하느님으로부터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문시하지 않지만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고통이 생겼다는 것을 의문시합니다. 욥의 이러한 태도는 고통받는 사람의 삶이 곧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고 여길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요청을 뿌리쳐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욥이나 친구들에게 직접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하느님은 거기에 계셨으며 욥의 고통 밖에 멀리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욥에게 대답을 촉구하십니다. "하느님을 비난하는 자는 응답하여라."(욥 40,2) 이에 욥은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특히 어려운 순간에 하느님께 자신의 문제들을 마구 쏟아 내며 많은 말을 하면서 정작 하느님께는 대답할 시간조차 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때로는 독백으로 끝날 위험이 있습니다. 필요나 고통에서 생겨나는 우리의 기도를 주님이 듣지 않으시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도 들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과의 친교에 들어간다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기도는 듣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는 독백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기도는 침묵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겸허한 마음이 요구가 되지만, 자신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악 앞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이 도와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235~237쪽) 기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해 주시는지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친구들을 위한 욥의 기도를 지적하시는 것은 감동적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욥이 제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드리자, 주님께서는 그의 운명을 되돌리셨다."(욥 42,10) 하느님은 욥기 기도 때문에 욥의 친구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기도는 하느님은 물론 (심지어 적대감을 드러냈을 때까지도 포함한) 이웃과의 예기치 않은 화해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 251~252쪽) 욥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그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욥의 친구들을 단죄하지 않으십니다. 기도는 화해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특히 주님과의 관계에서 그렇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욥은 자신이 이 신비의 주인이 아니며 하느님만이 그 신비를 일으키시고 계신다는 것을 압니다. 이 때문에 욥은 마침내 드러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현존을 받아들이게 되고, 고통과 시험 중에도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욥이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하느님께 끊임없이 호소하며 주님의 자비로운 현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의 표지입니다. 이 책은 포기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고통 중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을 찾고 기도하는 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불행을 보고 욥을 비난하지만 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욥과 그의 친구들에게 나타나셔서 자비하심을 드러내십니다. 욥은 결국 그토록 바랐던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항상 행복하고 즐거울 수만 없고 때로운 시련과 고통으로 고난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하느님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심을 청하고 주님께 더욱 의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은 앞이 보이지 않고 절망스러운 상황일지라도 주님께서는 항상 함께 해 주시고 희망을 보여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고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제공해 주시고 서평을 쓸 기회를 주신 생활성서사 관계자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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