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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조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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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본기≫의 제왕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이다. 역사책에 기술된 고조의 행적은 ≪한서≫ 외 ≪사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두 책의 내용이 무척 상이하다. ≪한서≫의 고조가 인의를 상징하는 분위기를 풍긴다면, ≪사기≫의 고조는 세속적이며 모략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고조는 어떤 성격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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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 본기≫의 제왕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이다. 역사책에 기술된 고조의 행적은 ≪한서≫ 외 ≪사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두 책의 내용이 무척 상이하다. ≪한서≫의 고조가 인의를 상징하는 분위기를 풍긴다면, ≪사기≫의 고조는 세속적이며 모략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고조는 어떤 성격의 인물일까? 개인적으로 두 책을 두루 읽어본 바, ≪사기≫에 기술된 모습이 사실에 근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서≫는 기본적으로 한나라 왕조를 높이기 위해 집필된 책이다. 이렇다 보니 한나라 본기에 다루는 황제들의 치적은 드높인 반면, 과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생략한 경우가 많다.


고조가 인의와 거리가 있다면, 그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자신의 잘못을 재빠르게 시인하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적극 수용한 점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그 실수를 대하는 태도는 무척이나 다르다. 한 고조는 무뢰배 출신이기에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프라이드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과오를 비판하는 조언가들의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과오를 재빠르게 인정했으며, 개선하는데 솔선했다. 반면 고조의 라이벌인 항우는 귀족 특유의 자부심과 허영심으로 인해 조언이나 충언을 무시하고 매사에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 유방의 주변에는 인재가 모였고, 항우는 있는 인재조차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현실적인 시야다. 한 고조의 현실적 감각이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바로 후계구도에 대한 고심이다. 천하를 통일한 고조는 황제에 자리에 오르자 고민에 빠진다. 힘써 일군 제국의 운명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원래 고조는 장자를 폐하고 척 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한나라 건국은 고조 혼자서 이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나라의 세력을 나누자면 첫 번째 유방과 유 씨 종친들, 두 번째 유방의 처가인 여 씨 일가, 세 번째가 바로 공신 집단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처가인 여 씨 일가다. 유방의 본부인 여 씨는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 한 고조를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으며, 통일 제국을 뒤흔드는 반역자(혹은 위험분자)들을 지혜로 처단했다. 그렇기에 왕위에 오른 유방도 현실적으로 여 씨와 처가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태자를 정하는 것은 결국, 태자를 후원할 수 있는 후견인을 고려하는 것과 같다. 고조 유방은 척 부인을 무척 사랑했고, 그렇기에 척 부인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유방은 끝내 여 태후의 아들인 태자(혜제)를 선택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 씨 일가는 개국에 공이 있었으며, 날고 기는 개국공신들과도 무척 가까웠기 때문이다. 여 부인과 척 부인의 정치적인 자질을 볼 때에도 단연 여 씨가 압승이었다. 여러모로 현실적인 조건을 따져봤을 때, 한나라 왕조를 지탱할 수 있는 세력은 여 부인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고조가 젊은 나이에 대륙을 통일했다면, 한신이나 팽월, 영포의 사례와 같이 여 씨 일가들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조선조에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태종 이방원과 민 씨 일가였다. 태종은 처가인 민 씨 일가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아 권력을 획득하고 보위에 오른다. 그렇기에 민 씨 입장에서는 태종의 왕권에 지대한 공이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일가의 사적인 권력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보위에 오른 태종은 그런 처가의 행동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렇기에 태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처가에 베풀었던 권력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한 고조와 조선 태종. 두 지도자의 공통점은 바로 비대하진 처가 권력을 마주했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태종은 처가를 제압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고조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고조는 처가를 억누를 생각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여 씨의 자식, 장자를 태자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고민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보단 감정에 치우친 결정을 내리고 후회한다. 만약 고조가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척 씨 소생을 후계자로 내세웠다면 한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여 씨에게 정복당하거나, 야심찬 개국공신들의 발호로 인해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고조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최선의 결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k******m 2020.05.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