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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역사책을 읽으면서 정조 이후의 조선 후기 역사를 마주하는 순간 가슴이 콱 막힌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장기간의 세도정치가 이루어지면서 왕권은 하염없이 약해져만 갔으며, 온갖 자연재해는 물론 탐관오리의 수탈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고, 대규모의 민란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유교는 별다른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양반들의 기득권만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그 배타적인 성격으로 새로운 학문의 도입을 통한 변화마저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1863년 고종의 등극과 함께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게 된다. 세도정치의 철폐와 더불어 기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상당히 획기적인 개혁 정책들이 다수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변화가 고종에 의한 것이 아닌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살아있는 대원군인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왕의 아버지가 되기까지의 행보는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상갓집 개'라 불리울 정도로 당시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 일족으로부터 천대받으며 비굴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시대에 왕족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세도정치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하여 세도가에서는 똑똑한 왕족을 역모죄로 처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후사가 없던 헌종의 뒤를 이은 인물은 강화도에서 나무꾼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강화도령 이원범(철종)이었으며, 철종 역시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와중에 살아남기 위하여 이하응은 가슴에 품은 큰 뜻을 철저히 감추면서 안동 김씨의 감시를 피했고, 왕실의 어른인 신정왕후(조대비)와 미리 입을 맞추게 된다. 안동 김씨는 마땅히 왕으로 추대할 왕족을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신정왕후는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을 왕으로 지명하니 그가 바로 고종이었다. 여기에서 이하응은 자신의 첫째 아들이 아닌 둘째를 왕위에 올림으로써 자신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게 된다.
이러한 치밀한 과정을 거쳐 흥선대원군이 등장하였으니 조선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에서 7권이 거의 유일하게 조선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이유 역시 바로 흥선대원군의 개혁이 조선 후기의 큰 변화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자연스럽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막을 내리게 된다. 다만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러한 과정에서 딱히 피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점이다. 흥선대원군은 명목상 김병국과 김병학과 같은 일부 안동 김씨는 물론 풍양 조씨의 인물들도 함께 정치에 참여시킨다. 여기에 그동안 소외되었던 전주 이씨를 대거 불러들이고, 또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남인과 북인 계열의 인물들도 받아들이게 된다. 비록 고종이 왕으로 등극하였지만,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흥선대원군의 거처였던 운현궁이 컨트롤 타워가 된 셈이다.
흥선대원군의 개혁 초반부는 분명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문란해진 삼정(三政)을 바로잡기 위하여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에 대한 개혁을 실행하였으며, 1971년에는 서원 철폐령을 내려서 47개를 제외한 1000여개의 서원을 없앰으로써 백성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준다. 1864년부터 1871년까지의 이러한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은 확실히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개혁정책조차 장기적으로는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을 지적한다. 삼정(三政)의 개혁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보완한 수준에 그쳤으며, 서원을 철폐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선은 유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양반에 의한 지배 체제는 굳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역시나 기득권층의 관점에서 현상 유지 내지는 안정에 그친 것이었고, 발전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뜻하지 않게 열강의 침략을 받고 또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국가의 부의 크기를 확장하는 단계였음을 떠올려 본다면 흥선대원군의 개혁 정책은 그저 찻잔 안의 태풍과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반기에 이루어진 흥선대원군의 실정은 이후 조선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뼈아픈 것들이었다. 그 시기에 굳이 경복궁을 재건하여 왕권의 권위를 드높인다는 생각 자체가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대한 한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광해군도 임진왜란 당시에 총명하다고 여겨졌지만, 정작 전쟁 이후에 대규모 왕국을 지으면서 민심을 잃었는데, 흥선대원군은 화재 사건에도 불구하고 원납전 강요, 당백전 발행 등을 통하여 결국 경복궁을 완성시켰으니 이는 조선의 명줄을 더 앞당긴 결과가 되었다. 민심이 이반한 것은 물론이요 조선의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보더라도 앞서 이루어진 흥선대원군의 개혁이 과연 백성과 조선의 장래를 위하여 이루어진 것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외교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개혁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취하면서 조선의 시계를 더욱 뒤로 되돌리게 된다. 청나라와의 조약을 통하여 러시아는 연해주를 획득하게 된다. 이는 곧 조선이 두만강을 경계로 청나라가 아닌 러시아와의 국경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전세계 곳곳에서 부동항 확보와 남하정책을 취하던 러시아가 곳곳에서 영국과 충돌하는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러시아가 조선으로의 진출을 꾀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흥선대원군은 국내의 천주교 교인들을 통하여 프랑스를 이용하여 러시아의 진출을 막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유연한 외교적인 전략보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성격이 짙었지만, 훗날 척화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흥선대원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천주교인들이 확실한 포교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에 접근하였지만, 그들이 프랑스의 힘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이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고, 오히려 흥선대원군은 그를 견제하려던 세력으로부터 외세와 결탁하였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를 타파하기 위하여 결국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도들을 탄압하면서 척화를 내세우게 된다.
1866년 발생한 병인박해로 인하여 중국에 주둔한 프랑스의 로즈 제독 휘하의 극동 함대는 조선을 공격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있으니 본격적인 침공에 앞서 프랑스의 극동 함대는 척후선 3척을 조선에 보내고, 이들은 강화도를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도성 근처의 양화에 이르게 된다. 조선은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면서 정중하게 떠날 것을 요청하고, 프랑스는 불법적인 조선의 영내 침입을 강행한 이후 중국으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의 극동 함대는 강화도를 공격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병인양요의 시작이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역사서적에서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열강의 침입에 맞서 조선이 승리를 거둔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실상은 두 전투 모두 패배에 가까웠다. 병인양요는 정족산성 전투에서 조선이 승리를 거두긴 하였지만, 프랑스가 큰 타격을 입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강화도에 있던 각종 서적과 문서를 약탈당하였으며, 신미양요는 미국의 전사자는 전무하였지만, 조선의 강화도 수비진 수백명이 사망한 전투였다. 다만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어 이후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 뿐이었다.
이 책에서도 병인양요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것을 프랑스의 극동 함대의 사정을 설명하면서 그 진실을 보여준다. 당시 프랑스는 조선보다는 베트남을 포함한 인도차이나의 식민지화에 주력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스는 베트남과의 전투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중국에 남은 극동 함대는 전력적인 측면에서 그리 크지 않았고, 실제 이들의 목적 역시 조선의 수도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도를 공격하여 한강으로의 수로를 차단하여 조선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 열강들이 엄청난 규모의 시장으로서의 중국과 막대한 광산에서 대규모의 은을 제련하는 일본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조선이 그다지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조선이라는 나라의 부는 중국과 일본에 비한다면 크게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병인양요는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호랑이를 잡는 포수들을 대규모로 동원하여 프랑스를 압박하는 데 성공하여 그들이 물러가게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제대로 된 정규군이 없어서 호랑이를 잡는 포수를 동원하였다는 점과 프랑스가 사용하는 후장식 소총과 조선이 사용하던 화승총이 무려 수백년의 간극이 있다는 점은 조선의 암울한 사정을 다시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병인양요 이후에 흥선대원군 역시 국방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껴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모하지만, 제대로 현실에 적용된 것은 전무하였다. 그만큼 조선이라는 나라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도 못하였고, 내부적인 역량 역시 스스로의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른 상황이었다. 이에 반하여 비록 나중에 실패로 돌아가지만, 중국의 양무운동은 적어도 그 규모에 있어서 중국의 부(富)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근대화의 속도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니 이 시기의 흥선대원군에 의한 변화의 크기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에서는 조선의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다소 냉소적으로 보고 있다. 병인양요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자평하면서 일본에도 그러한 사실을 공유해주지만 당시 일본은 오히려 막부의 육군은 프랑스 출신의 교관들로부터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근대화의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본의 입장에서 병인양요에서 승리하였다는 조선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다음 이야기는 아마도 일본이 막부와 도막을 부르짖는 번과의 내부 갈등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근대화의 길을 걷는 과정과 중국의 양무운동이 청일전쟁에서 어떤 결실을 맺는지를 다루지 않을까 예상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8권은 나오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7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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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한국사'가 펼쳐진다. 5권까지 중국과 일본의 '근대의 여명'을 살펴보았고, 6권에서 총정리를 한 다음에, 드디어 '한국사의 근대'를 살펴보게 되었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근대사가 아름답지만은 않은 까닭에 우리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 마음 편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중국,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인 안목을 넓혀보아야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시도 '역사적 고찰'을 멈춰서는 안 된다. 누군가 그랬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 번은 '우연'으로, 다음에는 '필연'으로 말이다. 우리 역사에서 단점을 보았다면, 그 단점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각설하고, 우여곡절 끝에 고종이 등극하고, '대원군'이 권력을 잡았다. 조선왕조 사상 '대원군(임금자리에 오르지 못한 현 임금의 아버지)'이 살아 있는 권력의 실체로 등장한 것은 처음이며,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일이다. 앞서 '세도정치 시대'가 매우 엉망이었던 관계로 새로운 실세인 '대원군의 등장'으로 개혁의 물꼬가 찬란하게 펼쳐질 것인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먼저, '토지개혁'이다. 삼정문란의 하나였던 '전정'을 대대적으로 손을 본 것인데, 전국토지조사를 실시하여 토지대장을 재작성하고, 은닉을 찾아내고 면세지를 대폭 축소하는 등 비효율적이던 제도를 깔끔하게 손 보았다. 다음은 '환곡 개편'이다. 환곡 업무를 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바꾸는 사창제도를 실시하여 백성들이 직접 운영하게 하여 부담도 확 줄이는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군정 개혁'도 실시하여 양반들도 세금을 매기는 '호포제'를 실시하였다. 양반들의 반발로 인해 실제 효과는 미미했지만,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는 만빵이었다. 여기에 '서원철폐'를 통해 세도가문 뿐만 아니라 지방유지들의 정치적, 경제적 향촌 기반을 위축시켜 '왕실과 왕권의 강화'를 꾀하면서, 동시에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까지 노렸다.
하지만 이런 '대원군의 개혁'이 빛 좋은 개살구로 그친 까닭은 '경복궁 중건' 강행, '당백전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심화, 천주교 탄압으로 인한 서양세력의 침략 유발 등등 삽질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이 '나라안'에서만 일어나는 '근시안적인 조치'에 그쳐 나라밖에서 벌어지는 일과는 세계로 넓혀 볼 것도 없이 이웃나라인인 중국과 일본과도 사뭇 다르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동시대인 19세기에 청 왕조와 일본 막부는 서양의 침탈에 내리막길을 탔으며 서양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호된 신고식을 치뤘고, 그로 인해, 청 왕조는 '양무운동'을, 일본에서는 신정부가 등장해 '명치유신'을 일으키며 확실히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결과론적인 비판'일 수 있다. 대원군 시절에 조선이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뒤쳐진 까닭은 이웃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 '서양의 관심'이 덜 집중되었던 탓이 크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웃나라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때론 '충격요법'이 가장 확실한 효과를 낳기도 하는 법이다. 조선은 임진, 병자, 양란 이후에 또다시 200여 년의 평화시기를 거치면서 다시 병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오랜 병을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대원군의 개혁'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하여서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안타까운 시간은 흘러흘러 '제너널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가 벌어진다. 조선에겐 아직 서양이 '낯선 조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건 모두 조선이 '서양의 힘'을 직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조선은 그 소중한 기회를 그저 날려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두 사건 모두 '조선의 승리(?)'를 가져다주었지만 이는 온전히 '조선의 힘'이 서양을 압도한 결과가 아니라 서양이 미처 조선을 제대로 탐색하지 못하고 섣불리 다가섰다가 낭패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비슷한 경험'을 한 중국과 일본도 제대로 본 바다. 비록 조선이 얼떨결에 승리하고, 서양의 힘이 의외로 깊숙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조만간 조선이 자신들처럼 '호된 신고식'을 당할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이다. 그 예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오직 '조선'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의 지배층'이었다.
실세에서 조금 벗어난 '식자층'에서는 서양의 힘이 중국과 일본을 어떻게 요리(!)했는지 여러 소식통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서양의 문물을 직간접적으로 맛보면서 '개항의 필요성'과 '상업의 발달'이 중요하다는 것도 일찌감치 알아채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력'을 갖고 있는 세력들은 이를 애써 무시하면서 '당장 맛볼 수 있는 떡밥'에 안주하고, '어항속의 풍요'처럼 자신들만의 안락함에 빠져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권력층이 그리 폭망하는 것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대원군의 개혁'이 거기서 멈춘 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는 것이다. 조금만 더 내다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안목이 없었음이 미치도록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과거의 영광'에 취하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연구하는 학문이지만 진실은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매진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우리는 한 치 앞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지만, '과거'를 연구하는 것으로 '미래'를 점쳐볼 수는 있다. 왜냐면 '현재'는 과거의 시점에서 바라본 '미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를 연구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다보면, 어느 정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가능한 범주안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는 반복한다'는 대전제를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비교적 정확한 예측이다.
물론, 역사에 '정답'은 없다. 이렇게 보면 '이것'이 정답 같고, 저렇게 보면 '저것'이 정답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예측한 것은 신뢰할 수 없지만, 수천, 수만 명의 연구자가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저것이 정답 같다'라고 예측한 결과보다 높은 결과치를 내놓았다면, 정답이 없는 역사에도 '신뢰성'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서로의 '정답'을 비교분석할 수 있는 깜냥을 갖춰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역사전문가'가 되어야만 할 것이고 말이다. 이제 역사교양이 더욱 널리 보급되어야 하는 첫 번째 까닭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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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력 높은 사람에게는.깨알같은.무한한 재미가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한 즐거움이 있는 책 한권을 읽을때마다.앞의 내용을 자꾸 되살려야하기에 만화임에도 시간이 오래걸리는 속이 꽉 찬 책 참으로 오래간만에 만화를 사서 보는데 절대 후회 하지 않을것 같다. 시간이 엄청 많이 흐른 뒤에도 계속 꺼내서 볼것 같은 느낌이기에 기본적으로 한중일 의 근대사를 이렇게 통찰력을.가지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책은 거의 없을듯. 완결까지 굽본좌의 건강을 빌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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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한 국가의 역사만을 배우면 어떤 역사적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지점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역사/세계사를 묶어서 보는 것은 필수이지만, 그렇다고 그 방대하고 복잡한 세계사를 한 사람이 다 알아보기에는 너무 힘이들죠. 그런고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는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동북아 지역사로 함께 톺아볼 수 있어야, 우리 역사의 진면목이 보이는 법인데, 이 책은 그러한 외국의 영향으로 발생한 우리 역사의 진면목과 재평가라는 목적에 아주 충실히 부합할뿐더러 재미있기까지합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최근 유행어나 인터넷 드립을 많이 써서 초등 저학년 이하 자녀와는 함께 보기 힘들지만, 초등 고학년이나 중고생 자녀와는 함께 읽고 부모와 자식간에 역사 토론도 할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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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걸렸다. 책의 부제도 변경되었다. 이번권의 주제에 맞게 잘변경된 부제가 이번권에서 다루는 중점을 알려주는것 같았다. 양헌수가 이끄는 조선군 포수들의 용맹?도 프랑스군을 상대로 나름 작은 전과를 이루었으니 화력을 열세를 나름 극복해봤지만 딱 거기까지 이제 신미양요때는 어떻게 될지 .. 청나라부분도 태평천국 이후 판도정리를 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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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를 애독하고 있는 독자로서 반년만에 나온 이번 7권은 기존에 비해 늦은 만큼 내용에 있어 보다 충실해 졌지를 기대했는데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런 저런 신변잡기적 내용이 추가되고 정말 알아야 할 새로운 역사적 이슈가 있어 보이지도 않아 실망이다. 그냥 안일하게 권 수만 늘리는게 아닌지 도대체 몇 권까지 예상을 하고 집필을 하고 계신지 궁금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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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까지, 국사과목을 대략적으로 암기하는 형식으로만 배워왔었던,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세계사와 연관시켜서 국사를 보는 것이 매우 간략한 느낌이었지요. 주변 열강이라고 해봤자, 겨우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거문도 점령을 하던 영국과 러일전쟁의 러시아 그리고 미국 정도.. 아~ 도굴꾼... 문화재 약탈하면 일가견이 있는 프랑스도 있긴 하네요. 즉, 이런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과연 얼마나 조선말의 당시 국내사정에 실익이 있었냐? 하는 관점이랄까라기보다는, 세계사적으로 얼마나 역학관계가 있었는지의 고찰은 좀 전무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건 수능에 안나오니까.. 따로 더 알고 싶으면, 대학교 가서 교양한국사를 들어라!!! 고만 말씀하시던 당시 선생님의 말만 듣고 참았던 것이 나중에는 좀 후회가 되더군요. 차라리, 그 시절에, 교과서로서의 국사말고, 이 책이 그때 나왔다면, 과연 얼마나 관심있게 제가 읽어봤을지... 요즘, 고등학생들은 국사교육을 얼마나 더 심화과정으로 공부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국사과목이든 세계사든 그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에 대한 지적 갈증이 느껴지는지 그게 개인적인 궁금증이고요.
워낙 요즘에는, 인터넷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국사책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배울 수 있는 자료는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와중에 필터링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것이겠고요.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흥선군(이하응)은, 요즘 내지, 대략 30년전의 여의도 정치를 빗대는 소재로 많이 활용되면서, 정치인의 생존능력과 그 암투 등등을 묘사하는 요소로서 쓰이는 것을 봤을때, 약간은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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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이 하도 검색어에 자주 올라오길래 그냥 재치 있게 만든 만화 책 이라고 만 생각했었네요. 버뜨 이걸 읽고 난 지금은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뒤늦게 알게된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다행인 점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일찍 알게 되었더라면 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속 태우면서 기다리는 안타까움이 있었겠지만, 뒤늦게 알게 된 덕분에 어쨌든 8권 까지는 시원하게 정주행 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 책은 정말 제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라는 래리 고닉의 만화책을 본 이후로 오히려 래리 고닉을 훨씬 뛰어넘는 재치와 유익함을 줍니다. 그림과 그래픽의 깔끔함과 귀여움도 보는 즐거움을 주지만, 재치와 유머 속에 날카로운 통찰력과 세밀한 정보들 까지 담고 있어서 한참을 깔깔 거리고 웃다 보면 그 와중에 저는 이미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준 전문가가 되어 있는 희열까지 주네요. 이런 책을 아직도 안보신 행운아 들께 이 역사 만화를 강력히 추천 드리며, 저 또한 9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
| 굽시니스트의 명작 본격 한중일 세계사 7권입니다. 여태까지는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만을 다루다 드디어 한국, 당시 조선의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실권자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에 어떻게 대처해서 정치를 펼쳤는지 잘 나와있습니다. 조선과 서양의 갈등의 결과는 바로 병인양요였는데요. 과연 조선은 서양세력과 어떻게 했을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