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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의 역사를 보기는 힘들다ㅡ.많은 서적과 연구를 통해 공부해야만 알수있는데..이렇게 그 당시의 현장간을 느낄수있는 소설이 나오니 기대가 되어서 구입하였습니다. 물론 소설과 성경의 내용이 다른부분이 많겠지만 그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볼수있다라는것이 아주 흥미가 생겼습니다. 다들 추천드리고..이런 책이 나와주서 고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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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의 역사를 보기는 힘들다ㅡ.많은 서적과 연구를 통해 공부해야만 알수있는데..이렇게 그 당시의 현장간을 느낄수있는 소설이 나오니 기대가 되어서 구입하였습니다. 물론 소설과 성경의 내용이 다른부분이 많겠지만 그 시대적 상황을 들여다볼수있다라는것이 아주 흥미가 생겼습니다. 다들 추천드리고..이런 책이 나와주서 고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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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들이 예수를 이야기해왔다. 신학책으로, 신앙고백으로, 소설로. 예수는 어떤 작가에 의해 신의 아들이 되었고, 또 다른 작가에 의해 사람의 아들이 되기도 했다. 다시 예수의 이야기를 만난다. <소설 예수>. 제법 두꺼운 책이 한꺼번에 2권이나 나왔다. 예수 얘기라면 뻔한 거 아닌가, 기독교인도 아닌데 다른 재미있는 책이나 읽자, 이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나, 궁금해서 만져보다가 슬그머니 내려 놓는다. 그러다 다시 집어든다. 슬쩍 들춰본 첫 구절이 벌써 뇌리에 각인돼버린 것이다.
피 묻은 손을 하늘 한 자락에 쓱 문질러 닦은 듯 저녁노을이 섬뜩했다. 석양을 정면으로 받은 예루살렘 성전은 잘 달궈져 모루 위에 올려놓은 쇳덩어리처럼 붉게 빛났다. (첫 시작)
종교적인 관심이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호기심이 확 달아오른다. 멋진 문장 아닌가! 아하! 이 작가 누구지? 무명작가의 글이라고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촉촉함과, 묵직한 힘과 속도감을 잘 안배한 문장들에 사로잡히면 이 두꺼운 책은 빠르게 읽힌다.
한 번 더 아들을 가슴에 깊이 안아주어야 한다. 어미는 안다. 자식에게 위험이 닥치는 순간을., 공연히 가슴이 떨리고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어미는 그 때를 안다. (20쪽 끝부분)
이런 글을 읽는데 종교적 성향이 무슨 역할을 한단 말인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구의 이야기라도 독자는 이 어미의 마음에 가까이 닿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얻는다. 예수는 한 어미의 아들이구나. 한 어미의 아들 예수.
어릴 적부터 그랬다.
----- “얘야! 예수야! 얘야! 내 아들아….”
어차피 예수의 이야기니까 이 책에서 예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찾아본다.
예수는 누구인가? 큰 힘을 가진 사람이다.
거친 파도에 당당히 맞서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파도를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예수 안에서 조용히 운동하고 있다.(302쪽 아래)
폭력보다 더 깊고 큰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이미 폭력으로 꺾을 수 없는 세상에 들어간 사람, 폭력보다 더 깊고 큰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 제국이 가진 것이 폭력뿐이라면 제국도 그를 멈출 수 없으리라고 느껴진다. (317쪽 윗부분)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가족들도 만져주지 않던 상처, 문둥병이라 부르는 상처를 만져주고 쓰다듬어줄 때, 병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 예수가 무릎 꿇고 옆에 앉아 상처를 씻어 주고 싸매 주고 위로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다정한 음성으로 위로하고 기도하는 예수는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416쪽 중간)
고독한 사람이다.
그 여러 제자들 중 오직 마리아만 안다는 말인가? …… 저들은 손에 쥐여 주어도 무엇인지 모르고, 눈앞에 들어 보여주어도 못 보고, 입안에 넣어주어도 삼킬 줄을 몰랐다. 서로 다른 공간에 정신이 머물러 있고, 다른 시간 속에 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예수는 그때까지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다.(534쪽 윗부분)
예수가 누구인지 묻는 말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누구라는 답이 아닌 자신이 무엇인지를 답하고 있다.
“선생님은 누구이십니까?” “들과 밭, 하늘 아래 온 땅에 심어지는 씨앗이요.때로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549쪽 아래)
이 소설은 두껍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든 이야기의 힘이 있다. 단단한 서사 구조를 매력적인 문장들이 잘 이끌어가고 있다. 먼 옛날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 먼 나라라는 공간이 여기로 다가와 그 시간과 공간이 빚어내는 문화는 어쩌 그리도 우리네 감성을 닮아있는지 놀랍다. 예수, 그가 살던 마을의 정서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피던 우리 마을의 정서와 똑같다. 이 책을 기독교인들만의 책으로 지레짐작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끌고 달려가는 참 아름다운 문학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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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배꼽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이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1권 22쪽)
지리적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사이에,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패권 다툼의 한 가운데 있는 우리의 현실이 슬쩍 비쳐진다.
로마제국의 폭력적인 억압과 수탈, 그에 앞장선 간악한 군림자 예루살렘 성전의 행태를 읽으며 식민지시대를 겪은 우리들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 뿐인가, 예수 시대로부터 2천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우리에겐 2천년 전의 로마제국과 같은 제국의 힘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지 않은가. 그 때의 예루살렘 성전은 2020년에도 우리 곁에 모습을 바꾸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시리즈로 나오기 때문에 1권에서 던져졌던 이야기뭉치를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가 누구인지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에게는 --- 사람들이 예수를 누구라고 믿고 따르는지 그것이 더 중요했다. 예수가 하는 일, 가르치는 내용보다 --- 그 존재가 더 중요했다.”(84쪽 중간)
89족에서부터는 여러 장에 걸쳐 예수와 아버지가 토라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장면을 그린다. 여기서 작가는 예수의 아버지 입을 빌려 이렇게 토라를 말한다.
“토라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하느님을 모시고 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지. ---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말이 있겠니? (94쪽 아래)
아버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예수의 말이 이어진다.
“근본 내용으로 보면 서로 돕고 아끼고 귀하게 여기며 살라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결국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말 아니었어요?” (95쪽 위)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안다니는 사람이든, 그러니까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그동안 많이 들어왔고 알고 있었던 기독교적인 사랑의 개념을 발견하게된다.
“남이 너에게 대해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너도 남을 대하라. --- 너에게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94쪽 아래)
공사장에 오가며 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던 어린 예수는 아버지를 통해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땅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삭이고 그 말씀이 체화된 사람이다. 목수, 석수 요셉(예수의 아버지)이 예수에게 던지는 일상의 말들은 큰 가르침이 되었고 예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에는 나무의 결, 돌에는 돌의 결이 있다. / 돌에게도 생명이 있고, 숨결이 있고, 돌마다 각각 간직하고 있는 얘기가 있단다.” (357쪽)
1권에서는 예수와 아래웃집에 살던 히스기아와 예수의 길이 다름을 이야기했는데, 2권에서는 요한과 예수의 길이 다름을 이야기한다.
“세례자 요한은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고, 역사를 회복하자는,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자는 운동을 --- 예수와 요한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128쪽 아래)
예수는 분봉왕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예수의 주장은 무엇일까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라 / 모든 빚을 취소해라 / 빚 때문에 종이 된 사람들을 풀어주어라’ (277쪽 위)
이러한 예수의 주장은 지배자가 들어줄 리도 없는 일이다.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나라다. ---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위아래를 뒤바꾸는 일 --- 예수가 이루려는 하나님 나라는 결코 로마가 용납할 수 없는 나라였다.” (291쪽 아래)
지배층에서는 예수를 선동가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는 자신이 바라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어떤 선동을 했는가? 혁명대군을 이끌고 성전으로 쳐들어 갔는가? 작가는 예수의 행적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히스기야가 이끄는 의적 하얀리본이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것과 달리 예수는 “하느님 나라를 가르쳤고, 하느님 나라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 (301쪽 아래)
“누군가를 통하지 않고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사람, --- 스스로 자유의 땅으로 걸어가도록 인도하는 사람” (409쪽 아래) 이것이 예수의 역할이었다.
예수가 전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도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먹을 만큼만 고기를 잡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라고 부르십니다. --- 농부는 자기가 거둔 밀로 가족이 먹는 빵을 만들어 먹고,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자기가 담근 포도주를 마시고 자기 무화과 열매를 먹는 나라” (444쪽 아래, 445쪽)
하느님 나라에서는 어떻게 살면 될까? 예수의 혁명적인 연설을 들어보자.
“땅이, 풀밭이, 호수가 여러분에게 내어주도록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지 마십시오. 힘으로 빼앗아가는 사람을 위해 더 이상 한계를 넘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새 세상---“ (446쪽 위)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기에서 곱씹어볼 내용이다. 예수, 책 소개에서는 그를 혁명가라고 단언했다. 그 소개처럼 예수의 위험한 발언이 이어진다.
“여러분은 내가 선언하는 복음, 하느님 나라는 예루살렘 성전의 가르침이나 바리새파 선생들이 말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509쪽 위)
<소설 예수>는 기출간 1,2 권과 출간 예정 3,4,5권으로 예수가 유월절기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그 시대적 배경과, 예수의 행적을 이야기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된 기념일이다. 그런 유월절에 성전과 로마의 지배하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해방이란? / 압제에서 풀려났다는 얘기지 / 그런데 지금은? / 지금 유월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595, 596쪽)
혁명가로 칭해진 예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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