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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사람에게도 각각 다른 버릇이 있다는 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소설이라는 매개체는 작가의 가치관이나 사상등을 영향받기 쉽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컨대 작품 중에 나오는 어떤 인물의 이름에 있어서도 가령 이러이러한 성격과 환경의 인물을 등장 시키려 하면 그런 사람들이면 이런 이름을 붙인다는 등 지인의 이름을 가져다 쓰는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저역시 공감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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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부터 애정이 있어서 결혼한 바가 아니요, 딸자식이 하나 생기기 때문에 결혼했던 바라 핑계 좋게 안해와 헤어졌다니.. 동시에 그 서무주임 아래서 일하기가 싫어서면서기도 사임하였다니 잘된것 같아요. 십 년에 한 번씩 큰 전쟁을 해온 일본의 군국주의는 그 기한 십 년을 그저 넘길 수가 없어서 이번은 일독전쟁을 치뤘다고 나오더라고요. 독일의 군국주의는 연합군의 무력으로 부수기까지! 대단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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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송첨지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16)를 구매한 후 읽고 리뷰를 작성합니다. 금의 환향이라 하지만 송군의 입장에서는 결코 금의환양이 아니라 적혀잇는 글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면서 쭉 읽어보았는데요. 그의 학비를 대어주던 은인도 그가 일본 계집애와 어울린 것을 알자 거래를 끊고 말았다는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송군이 불쌍해지네요. 우선 유학을 잘 마친것만으로도 대단한 의지인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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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다름에서 출간된 김동인작가의 송첨지(근현대한국문학읽기116)를 읽고작성한 리뷰입니다. 본 리뷰는 작품의 내용을 담고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하시길 부탁드려요 첨지는 예전 나이많은 남자를 낮잡아서 부르는 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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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작가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능력이 발휘되는 작품 중 하나의 작품이다 송첨지라는 이름에서 보여주듯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은 입체적이다 못해 현실에서 만날 것 같은 그리고 그 인물을 통해서 제대로 시대상을 보여주는 그래서 김동인의 작품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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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근대 이야기에 푹 빠져서 지내고 있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 시대까지를 아우르는 근대의 역사와 시대상에 관한 책을 종종 읽어 본다. 김동인의 이 소설도 일제시대의 암울함과 근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상이 엿보이는 소설이다. 첨지라고 아울러서 부르는 하급 관리 내지는 선생이 살아온 그 당시의 이야기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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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晩年)에 들면서 차차 미신과 운명론에 기우는 자신을 스스로 조소하면서도 이러한 꿈밖엣 꿈을 생각해 보려는 자신을 스스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이번 전쟁의 결과로서 조선이 일본의 굴레에서만은 벗어나게 될 것이다. 조그만치라도 내 실력만 있으면 이러한 절호의 기회에 온갖 세력 다 물리치고 조선 혼자서 스스로 설 기회를 지우 수 있으련만. 많은 고생을 한 탓인지 오십까지는 아직 수년간 남아 있지만, 송 첨지는 어떻게 보면 육십에 가까운 노인같이도 보였다. 그리고 최근 갑자기 체력이 감소되고 원기 없어짐을 스스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소위 대동아전쟁은 저편이 잠잘 동안에 내려친 첫번 일격만은 원기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는 꾸준히, 일정한 속도로 쫓겨 돌아온다. 이 속도로 보아서 1945년을 넘기지 못할 것만은 인젠 확정적으로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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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결!” 온 조선의 지하로는 이 한 마디가 홍수와 같이 싸다녔다. 이월 초여드렛날, 동경 유학생의 집단에서는 조선 독립을 선언하였다. 조선 총독부는 온 헌병력과 경찰력을 동원하여 무슨 사고가 일지 못하게 하고자 만전의 책을 다하였다. 그러나 민족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흐르는 이 물결은 경찰력 헌병력의 담으 로도 어찌할 바이 없었다. 게다가 조선총독부는 스스로 믿는 데가 있었다. 그새 십 년간을 그만치 강한 힘으로 눌러 놓았으니 조선인의 마음에는 딴 생각 품을 여지며 용기가 없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설사 한두 명 혹은 불온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것쯤은 단 한 마디의 호령으로 삭아 버리리라. 어디 감히 맞서고 덤벼들 광인(狂人)이 있을 줄은 꿈에도 안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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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라기보다 ‘선생’이라든가 ‘주사’라여야 좋을 우리의 송 첨지는, 사실 면주사(面主事)노릇도 해보았고, 선생 노릇도 해본 사람이다. 그러니까 역시 송주사라든가 송 선생이라야 옳을 사람이다. 학업은 동양의 학도(學都)인 일본 동경에 가서 닦았다. 학운(學運)은 좋았던 모양으로 열일곱 아직 어머니의 품 그리울 시절에 어떤 고마운 후원자의 덕으로 현해탄을 넘어가서 그때 한창 명치(明治)의 건설시대를 지나서 대정(大正)의 난숙(爛熟)일본의 공기를 호흡하며 꿈 많고 희망 많은 소년기를 이역에서 보낸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