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융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거 같다. |
|
'너 자신을 알라.' 궁극의 지혜는 자기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의 근본적인 화두는 언제나 이미 '나는 누구인가'이다. 그럼, 인류 공통의 정신자산과 집단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던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카를 구스타프 융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융은 스스로를 자연인, 경험주의자, 영혼의 치유자로 보았다. 이런 자기평가는 오랜 자기분석의 결과물일 것이다.
일단 '자연인'은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루소의 '신성한 야만인'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인은 분명 가면과 허위로 치장한 문명인에 반하는 개념이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진실, 즉 자연의 힘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유일한 통로인 나를 이용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순간에 사악해지는지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살아가면서 태도를 일부러 꾸민 사람은 나를 못 견디게 만드는데 내가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나는 결정체가 되고 발효한다. 인위적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무의식은 나를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내가 말하는 방식, 웃음 등 나의 모든 것이 그들을 괴롭힌다. 그들이 나에게서 자연을 느끼기 때문이다."(27쪽)
'경험주의자'라는 평어는 기계론적 인간관과 행동주의 심리학에 반하는 융의 '장인' 정신 혹은 '실험' 정신을 잘 대변한다. 문화, 무의식, 역사, 원형을 묶는 분석심리학 작업은 책상물림이 아니라 '적극적 상상'과 같은 구체적인 방법에 근거한 체험과 일련의 예술적 실천에 뿌리를 박고 있다. "원형은 원초적 형태, 깊은 무의식의 암호, 정신적 에너지의 배열, 관계의 유형 등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융의 주요 개념들, 가령 아니마/아니무스, 페르소나, 집단적 무의식 등은 융 자신의 자아성찰과 무의식 세계에 대한 경험에 근거한다.
그리고 '영혼의 치유자'라는 평어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고 무의식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융의 삶을 말해준다. 심층심리학의 가장 핵심은 "인간은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 온전한 자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융은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융은 자신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겪은 정신적 변화를 분명하고 통찰력 있게 표현함으로써 개성화 과정을 효과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클레어 던이 쓴『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지와사랑, 2013)는 '눈으로 보는 융 심리학’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동료들의 인터뷰, 서신, 사진, 융이 직접 그린 그림 등 풍부한 시각적 자료들을 동원하여 융의 삶과 사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돕는다. 국내에 출간된 융의 자서전이나 평전 가운데 책부피에 비해 그림과 사진이 가장 많은 책이라 보면 된다. 『융과 그의 저작』(한국심층심리연구소, 2013)이나 『C. G. 융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집문당, 2012)에 비하면 비주얼한 편집이 훌륭하다. |
|
사회복지학이나 심리학 등 여러 학문에서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을 학습할 때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인물이 프로이트와 에릭슨, 아들러 그리고 융입니다. 이 중에서도 프로이트가 발표한 정신분석 이론과 그의 제자인 아들러와 융의 이론을 비교해 보는 작업은 학습의 관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세 명의 학자 모두 인간 행동을 ‘정신 내의 운동과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고 정신이 행동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정신과 행동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강조하는 주요 골자는 다르지 않지만 각자가 주장하는 이론의 주요 내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세 명의 학자가 주장하는 각기 다른 이론 중 나의 생각은 어떤 이론에 더 가까이 닿아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욱 의미 있습니다. 이론을 나에게 적용시키는 순간 개념으로만 존재하던 이론은 영향력을 갖춘 실천 학문으로 다가옵니다. 그 존재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학자가 주장하는 이론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적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시험 준비를 위해 정신분석 이론, 개인심리학, 분석심리학 등 다양한 이론들의 주요 개념과 병리의 출발점, 발달 단계 등을 암기하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이것이 학자의 생애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이론의 토대가 되는 경험은 무엇인지 숙지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중요한 개념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경우를 비추어 보았을 때 학자의 삶과 연구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눈으로 보는 융 심리학’이란 부제가 붙은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2013.06.10. 지와사랑)》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융의 연구가 개인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자신이 경험한 어떤 변화가 그의 이론의 토대가 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책입니다. 카를 융이란 인물에 대해서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입체감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가 수록한 편지글, 자서전, 사진 등의 방대한 양의 자료가 이 책을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게다가 융의 이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페르소나, 집단적 무의식 등의 주요 개념을 융이 어떤 경험과 인식의 과정에서 정의하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그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환영 속에서 보는 신화적 사고, 신의 존재를 느끼는 것에 대한 접근법, 연금술을 탐구하는 등의 융의 행태 때문에 그의 연구가 과학적이지 못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로 여겼던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그가 겪어야만 했던 고립도 융이 깊은 내면을 탐구하는데 일조했으리라 짐작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부분인 프로이트와 융이 결별하게 된 과정, 이유를 자세히 알게 되어 평소에 갖고 있었던 궁금증을 해결하였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이 주고받았던 편지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경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솔직히 털어놓으면 나는 ‘카를 융’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모든 심리적 문제를 성적 욕구와 연결시킨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의 이론의 핵심인 ‘방어기제’나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요소로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를 읽은 뒤인 지금, 나는 프로이트 연구 뿐 아니라 융의 연구에도 강렬한 흥미를 느낍니다. 프로이트와 융, 두 사람이 동일하게 강조한 무의식(꿈)의 연구가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두 사람이 바라본 무의식의 측면은 뚜렷한 차이점을 가지지만요. 이 책은 평소 프로이트라는 학자에 관심이 가졌던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큰 획을 그은 프로이트와 융은 각기 다른 이론을 주장했지만 두 사람을 아무런 관련 없이 서로 다른 이론을 주장한 학자라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 찾기’ 혹은 ‘자아 찾기’에 몰두했던 카를 융이란 학자의 삶과 그의 연구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인간의 불완전성이 어떤 위대한 이론으로 탄생되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한다면 카를 융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제 마음이 그러하니까요.
|
|
1. 이 책은 카를 융의 평전이다. 이 책은 그의 사상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카를 융이라는 한 인간의 삶에는 어떤 고난들이 있었는지. 그러한 고난을 경험하면서 한 사람의 인간에 존재하는 아주 상반된 성향이라는 뜻을 지닌 '대극'을 발견했고, 발견에 그치지 않고 그 둘 사이의 통합을 연구함으로써 자신을 극복했던 외로운 학자의 업적을 기려냈다. 그리고 그 외로운 뒷모습을 지켜봤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첨부해두었다.
2. 대표적인 심리학자인 융과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친밀하게 지냈다(그들이 생각하는 사상 간의 격차는 처음부터 존재했지만 융은 그것을 체계적으로 부수지 못했고, 경험의 부족을 토로한다.)고 한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오다가 결국, 융은 꿈에서 나타나는 무의식의 산물은 프로이트의 "억압된 성욕"이라는 견해에 반대함으로써 갈라서게 된다.
만약, 프로이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화는 단지 억압된 성욕이 표출된 병적인 결과라는 것인데, 융은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카를 융의 평생의 경험을 따르면 꿈이 알려주는 상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원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물리학으로 따지자면 꿈은 원자와 같았다. 철학 사상으로 보자면 꿈이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플라톤의 동굴에서의 그림자가 아닌 존재(이데아)의 측면이 강했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이데아와 카를 융의 원형의 차이점이라면 플라톤의 '존재 너머'에는 '선' 만이 존재할 수 있었고, 그것을 모방하여 원래의 존재를 유혹하고 변질시키는 예술을 멀리함으로써 선의 추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것에 반해서. 융의 원형은 선과 악을 모두 인정하고, 양극단(대극)을 전부 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에게는 온화한 천사 같은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갑고 냉정하며 잔인한 악마의 요소도 함께 지니고 있음을 주장한다.
3. 그는 여러 나라의 신화, 영지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연금술. 그리고 동양의 사상과 종교 같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인용하자면. 그리스도, 살로메, 땅의 영혼인 Ka[고대 이집트인이 생각한 사람 혹은 신의 혼], 만다라, 파네스[오르페우스 밀교 신화의 자웅 양성을 지닌 개벽의 신], 중국의 연금술서인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 주역 등) 정상 학문과는 다소 거리가 먼.
그 당시에는 명맥이 희미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분야를 깊이 공부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이유는 유럽인들의 제국주의적인 행태에 염증을 느낀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한계 짓던 '유럽인'이라는 틀을 깨고, 다양한 인류 속의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양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어릴 때부터 품어온 의문점(외향적인 제1 자아와 내향적인 제2 자아)을 풀어줄 도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그가 말하고자 하는 영혼과 그 너머의 세계는 이미지로만 상상하기에는 상당히 다채롭고 화려한 모습이다. 깊이 파고들기에는 어려운 주제인 동시성이라는 그의 사상은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관계되고, 차원 이론과도 관계있는 상당히 생각할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그러나 그처럼 현실 생활과는 다소 먼 주제는 일단 제쳐 두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내린 그의 결론만 놓고 보면 그는 사람들의 개성화. 즉, 각각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정확히 파악한 뒤, 그것에 맞추어 충실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지난번에 읽었던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라는 책이 환상적이고 다차원적인 요소가 배제된 책으로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추천할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 책에서 주장하는 바도 한결같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대중의 한 사람으로 만족하지 말고, 개인의 목적을 위해 애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카를 융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명징한 삶의 권유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
|
오래도록 좋아하고 존경해온 게 프로이트라 난 당신편! 이라는 얄궂은 의리라도 있는 건지, 프로이트와 의절하고 새 이론과 학파를 형성해나간 이들에게는 마음이 완전히 쏠리지 않은 채로 공부하게 되는 것 같다. 『융 심리학 입문』을 읽으면서 융의 이론에 감탄하며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다시 융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 하지만 이것은 책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내 개인적인 문제이다. 바로 앞에 말했듯 프로이트를 사모하고 있는데 원치 않게 프로이트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기도 하고, 융의 강직한 학자적 정신에 위축되기도 한다. 이거 뭘까, 전이일까 투사일까 역전이일까? 암튼 난 그렇게 프로이트를 좋아한다. 그래서 책에서도, 융의 부인이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가 더 흥미롭고, 프로이트가 제자들로부터 느꼈을 배신감이나 위협감, 후에 느꼈을 외로움이나 수치심 등이 더 신경쓰였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게 만들었다는 건 융의 이론이 설득력 있음을, 융의 인간성이 압도적인 매력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경쓸만하지 않으면 안 그러면 되니까.
프로이트 이외에도 융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로 그 부분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고, 또 한 가지는 상담자의 능력에 관한 부분이다. 책에서는 융 본인도 그랬듯 치유자의 직관이나 무의식적인 선택이 치유에 효과적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의식적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니 약간 막막하게 만드는 부분이고, 치유자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 만큼만 내담자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는 부분이 또 하나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는 아마 융을 받아들이는 데 대한 나의 저항일 것이다. ㅋㅋ
책을 본 순간 잘 만들어진 서양미술사 같은 책 한 권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촘촘히 삽입된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융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융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도 많이 어려웠다. 융의 이론 자체보다는 융의 일생, 그의 상처와 치유자적 삶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개인적인 다양한 일화와 가까운 이들이 그에 관해 묘사한 글들도 읽을 수 있다. 나의 상처를 점점 더 치유해 융의 저런 주장에도 저항을 일으키지 않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분화가 더 되어 프로이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지 않으며 연구에 대한 진실한 열정으로 머리가 받아들인다면 마음도 함께 받아들이는 자세로 더더욱 공부하고 나도 타인도 치유해나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