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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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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 중의 하나가 바로 국사, 세계사와 같은 역사 과목이었다.암기 과목으로 단기간의 학습으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도 작은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네 인류가 과거 살아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본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그때 달달 외웠던 지식이 한참이 지나고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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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 중의 하나가 바로 국사, 세계사와 같은 역사 과목이었다.

암기 과목으로 단기간의 학습으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도 작은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네 인류가 과거 살아온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서 살펴본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웠고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때 달달 외웠던 지식이 한참이 지나고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 보면 참 재밌기도 하다.

훔볼트.

역사를 좋아했음에도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들어본 인물이다. 역사라는 게 승자의 기록이고 모든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주류 학문이 인정받는 현실에서 비주류 학문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모르리라. 과연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지구에 존재하는 어떤 지리적 공간도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도 땅에서 불쑥 솟아오르지도 않았다. 현재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아메리카, 대서양, 아프리카, 인도양, 동남아시아, 태평양은 아랍, 서구, 러시아의 탐험가들에 의해 촉발되어 발명된 공간이다. 발견은 애당초 없었다. 오래전부터 열대에서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 서구의 탐험가들과 조우했을 때, 누가 누구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은 서구 중심적 역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 학창 시절에 별생각 없이 시험 문제에 자주 출제되어 외웠던 것 중의 하나가 희망봉 발견이나 신대륙 발견 등과 같은 연도였다. 책의 이 문구를 보니 머리가 띵~해지는 느낌이다. 아무도 살지 않고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봤을 때가 발견일 텐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이 서구 중심적 역사의식에 사로잡혀 그들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봐왔고 외워왔다. 요즘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책은 어떻게 기술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세계사는 언제 처음으로 탄생했는가? 동양과 서양의 통합을 촉발시켰던 몽골 제국의 성립(1206)을 세계사의 탄생 시기로 볼 것인가, 아니면 구세계와 신세계 사이의 식민적 문화융합이 시작된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을 그렇게 간주할 것인가? 만일 이 물음을 서구인들이나 서구의 역사학자들에게 던진다면, 그들은 십중팔구 후자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 세계관의 산물이다'

--> 중세 이후로 서양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고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며 인문학의 발달에 따른 여러가지 분야에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지며 수 많은 저작문들이 나왔고 지금 우리는 그것들을 배워왔고 가르쳐왔다. 동양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기술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훔볼트는 1769년에 태어나 1859년에 세상을 떠난 학자로 자연사, 예술, 기후학, 지리학, 지질학, 광물학, 식물학, 철학, 문학, 천문학, 인구학, 정치경제학의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의 많은 학문 분야를 두루 아울러 연구한 학자이다. 1799년에서 1804년까지 약 5년 간의 아메리카 탐험과 당대 여러 석학들과의 수 많은 서신 교환을 통해 다양하고 깊이있는 학문적 성과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메라카 탐험을 통해 정보를 얻었던 콩고-아이티 노예혁명과 같은 사실은 은폐하였는데 이 혁명이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소한 역사적 사실들이 다른 거대한 흐름의 시작점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것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융합적인 사고가 필요할 것이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미중 패권다툼, 코로나 사태등과 같은 전 세계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나라가 휩쓸리지 않고 고민에 또 고민을 해야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b****n 2020.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역사] 훔볼트 세계사 - 자연사 혁명
"[역사] 훔볼트 세계사 - 자연사 혁명" 내용보기
<훔볼트 세계사>를 접하기 전까지 훔볼트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다.유럽에서 가장 유명인사를 나폴레옹, 그 다음으로 훔볼트를 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세계사를 최애 장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학술 탐험의 선구자, 훔볼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다행스럽게도 <훔볼트 세계사>에서 훔볼트 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접할 수 있었다.그저 책을 보고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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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를 접하기 전까지 훔볼트가 누군지 모르고 살았다.

유럽에서 가장 유명인사를 나폴레옹, 그 다음으로 훔볼트를 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세계사를 최애 장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학술 탐험의 선구자, 훔볼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훔볼트 세계사>에서 훔볼트 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접할 수 있었다.

그저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면서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여 연구했다는 것이 대단하다.

요즘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도 아닌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종횡무진하며 탐험과 연구를 지속했다.

 

그동안 비슷한 내용의 세계사 책은 많이 봤지만 열대 자연사에 초점을 맞춘 설명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책은 보편적인 세계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훔볼트라는 학자가 세계사를 어떻게 연구하였는지 자연사, 열대학 측면에서 설명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뜬금없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훔볼트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학문이라는 것이 이 분야, 저 분야 명확하게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닌데,

우린 철저히 과목별로 구분하여 학습을 하고 전공마저 확실하게 정해서 공부를 하도록 되어 있으니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 시스템에서 훔볼트와 같은 학자가 나오길 바라는 건 무리가 아닐까.

 

요즘 미국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흑인 차별 문제와 아울러 노예 혁명 이야기가 나오는데,

열대학이라는 학문은 어쩌면 백인에게는 절대 알고 싶지 않은 학문일 수도 있겠다.

흑인은 왜 백인의 노예가 되어야했고 아직까지 차별받고 사는 걸까.

백인이 발 닿는 곳곳을 식민지화하고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에 바빴던 과거를 열대학에선 알고 있다.

여전히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과거의 잘못은 숨기기 급급하고 누구하나 제대로 연구하려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인디언과 아시아인의 상관관계를 누구보다 잘 풀 수 있는 인종이 우리일 수 있는데

열대학이라는 학문이 그 어떤 학문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상 누가 그런 연구를 하려고 들까.

역사는 살아남은 자의 것이라는 말이 너무나 와닿는 순간이다.

아직까지 훔볼트와 같은 세계관을 가지고 세계사를 연구하는 유명한 학자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훔볼트 세계사> 같은 책이 출간되고 나처럼 일반 독자가 보고 알게 되면

점차 이와 같은 연구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다보면 약자의 사라진 역사도 바로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h****1 2020.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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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_이종찬_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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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만큼 학문의 융합적 성격을 갖춘 인물은 아직 본 적이 없다. - 괴테 이 말은 1장의 시작에 쓰여 있는 글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까지 '훔볼트'가 누구인지 몰랐다. 이 책이 그냥 흔히 알고 있는 세계사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면서 다른 세계사 책과는 뭔가 다른 것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타 세계사 책에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느낌 같은 느낌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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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만큼 학문의 융합적 성격을 갖춘 인물은 아직 본 적이 없다. - 괴테

이 말은 1장의 시작에 쓰여 있는 글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까지 '훔볼트'가 누구인지 몰랐다. 이 책이 그냥 흔히 알고 있는 세계사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면서 다른 세계사 책과는 뭔가 다른 것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타 세계사 책에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느낌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감사의 글을 읽으며, 분명 뭔가 다른 것이 들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감사의 글의 첫 시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책 머리에 : 왜? 훔볼트 세계사인가'를 읽으면 알 수 있듯이, 《훔볼트 세계사》는 그의 탄생 250주년을 단순히 기념하기 위해 쓴 평전이 결코 아니다.

왠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사의 글에 들어 있는 수많은 석학들의 이름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책 머리에 들어있는 《코스모스》라는 단어, 그리고 그의 말년에 남긴 대작이라는 설명, 《코스모스》는 칼 세이건이 쓴 책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훔볼트세계사》를 읽기 시작했다.

1장을 읽기도 전에 이미 충분한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1장 한국에서 훔볼트는 어떻게 환생하는가

훔볼트는 1769년에 태어나 1859년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의 평균 수명으로는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49p

훔볼트는 스무 살이나 많은 괴테와 실러, 부유한 은행가 가문의 작곡가 멘델스존, 영국의 왕립학회 회장과 동인도회사의 총재와 규식물원 원장을 맡았던 조셉 뱅크스, 프랑스 자연사 분야에서 권위자로 군림했던 조르주 퀴비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유럽 최고의 인물들과 자유로이 교류했다. 훔볼트의 열대 아메리카 탐험이 파리와 베를린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도 유럽의 저명한 인물들과의 광범위한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0p


책 속에서

훔볼트가 넘어서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 85p

1. 훔볼트는 다양한 교육을 섭렵했다.

- 청년 훔볼트는 독일 학문의 요람인 괴팅겐대학, 독일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소통 공간인 예나대학, 해양 무역의 거점 도시 함부르크의 상업 아카데미, 광물학과 지질학을 비롯한 자연사에 관한 유럽 최고의 프라이베르크 광업학교에서 미래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

- 훔볼트가 살았던 시기 독일의 대학은 '유체형' 시스템이었다. 한 대학에서만 공부하지 않고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이동하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한 대학에서만 공부해야 하는 '고체형' 시스템이다. 이런 교육체계에서는 다양한 학문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융합적 사유를 함양할 틈조차 없다.

- 청년 훔볼트가 환생해서 한국의 대학을 다닌다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 한국에 근대적 대학체계가 시작된 이후로 교수도 학생도 고체형 생활문법에 철저히 길들여져 왔다. 이런 지식 공간에서 훔볼트와 같은 유목적인 융합형 인물을 배출할 수 있을까?

2. 다양한 국가와 사람들에 대해 경험할 수 있었다.

- 청년 훔볼트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당대 최고의 열대 탐험가와 학자를 만났고 열대에 관한 예술 작품도 눈여겨 감상했다. 그리고 30대 초반에 약 5년에 걸쳐 아메리카를 누비고 다니면서 약 6만여 종에 달하는 자연사 자료를 수집했다.

3. 열대 탐험을 했다.

- 한국의 대학 사회는 서구적 근대의 열매를 수확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열대 탐험이 어떻게 씨앗에서 성장해서 근대적 학문과 예술의 열매로 나아갔는지, 그 전체적이고 유기적인 과정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4. 학문적 융합을 했다.

- 윌리엄 휴얼은 영미문화권에서 1833년에 처음으로 '융합'(consili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당시 유럽의 열대 탐험에 주목하면서 융합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융합은 열대 자연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반증한다.

- 훔볼트는 한평생 생물지리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사물을 융합적인 지평에서 탐구해 왔다. 융합은 열대 자연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생물지리적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이다.

- 한국에서 융합을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열대 탐험이 융합적 지식과 실천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5. 다양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 훔볼트에게 독일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한 하이데거의 명제를 떠올려 보자. 30년간 독일어로 살았던 그가 아메리카에서 에스파냐어로 탐험을 했고, 파리에서 22년간 프랑스어로 저술 활동을 했다. 또한 미국을 포함해서 서구의 수많은 정치인, 사상가, 학자, 외교관, 무역가, 문학가, 예술가들과 1년에 무려 3천 통이 넘을 정도로 서신 교류를 했다. 이런 훔볼트에게 어떻게 독일이라는 근대 민족국가의 표식을 붙일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것이 꽤 많이 있는데 그중 몇 가지는 아래와 같다.

1. 괴테

- 괴테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한평생 수집했던 광물 표본이 5만 종이나 되었다.

- 철학자 니체가 독을 최고의 양서라고 높이 평가했던 '괴테와의 대화'(1836-1848)에서, 괴테는 두 가지 점에서 광물학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하나는 광물학은 이익을 실제로 가져다주며, 다른 하나는 태고 세계의 형성에 관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 그는 어릴 적부터 자연사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지금은 퇴화되어 버린 간악골이 사람의 신체에 원래 있었다는 것을 밝혀낸 사람도 괴테다. 125p

-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괴테는 식물의 자연사에 관한 '식물의 변태'(1790)를 출간했다. 식물의 형태가 떡잎에서 줄기, 잎을 거쳐서, 가지에 붙어 있는 꽃의 배열 상태를 뜻하는 화서와 꽃받침, 마지막으로 꽃부리인 화관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117p

2. 나폴레옹

- 나폴레옹이 1798년에 '이집트학사원'(Institut Egyptien)을 설립하면서, 167명의 관련 전문가들이 여기서 경쟁적으로 참여했다. 나폴레옹은 이 학사원의 첫 모임에서 여섯 가지 물음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빵을 완벽하게 구워 낼 수 있는가?

맥주를 제조하는 데 호프를 대신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까?

나일 강물을 정화시킬 수 있을까?

카이로에 물레방아를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풍차를 만들어야 할까?

이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을 가지고 화약을 제조할 수 있을까?

이집트의 사법 제도와 교육을 위해 어떤 개혁이 필요할까?

이 중에서 마지막 한 가지를 제외하면 모둔 자연사에 근거한, 기술과학적인 질문이다.

나폴레옹은 군사력만으로 이집트를 정복하지 않았다. 118p

황열은 미국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운을 안겨다 주었다.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를 포기하면서, 미국은 1천 5백만 달러에 이 광활하고 풍요로운 영토를 낚아채었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아메리카의 역사적 경로는 혁명적으로 바뀌어 버렸다. 다시 말해서, 황열은 열대 아메리카의 자연사를 혁명적으로 전환시켰다. 194p

에스파냐 천연두의 아즈텍 침략

에스파냐의 하층 계급 출신인 코르테스(Hernan Cortes 1485-1547)가 달랑 수백 명의 부대를 이끌고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na)를 침략하러 왔을 때, 어느 누구도 그의 부대가 수만 명의 아즈텍 군대를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천연두에 이미 면역된 군인과 그렇지 않은 군인 사이의 열대 전쟁. 양쪽 당사자들은 이를 전혀 몰랐다. 아니, 지금까지도 거의 모든 역사는 천연두라는 전염병의 창궐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139p

천연두를 비롯해 구세계의 미생물들이 신세계에 유입됨으로 해서, 인구가 얼마나 급격하게 감소되었는지 알아보자.

멕시코 영토 내의 토착 원주민은 1518년에 2,520만 명이었는데, 코르테스의 정복 전쟁이 끝난 후인 1532년에는 1,690만 명, 1548년에는 740만 명, 1568년에는 260만 명, 1608년에는 고작 100만 명 정도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서구의 미생물이 아즈텍 문명에 작용한 지 60년 만에 원주민 인구의 95%가 사라졌다.

유럽의 세균이 아메리카 인구의 90% 이상을 쓸어버리는 데는 한 세기가 걸렸지만, 그 인구가 정복 이전으로 다시 회복되는 데는 무려 4세기가 걸렸다. 140p

자연사의 복합적 층위

이에 대해서는 13p, 188p에 걸쳐 두 번에 나온다.

이 중 188p에 나오는 '자연사의 융합적 층위'는 필자가 10여 년에 걸쳐 열대와 서구를 직접 탐사하고 공부하면서 추가적으로 포함한 것인데, 생태학, 해양학, 민속 의약학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188p~189p)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 이유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만하다.

 


열대의 다양성

열대에 대한 훔볼트의 관점은 명료하다. 열대에 접근하면 할수록, 식물의 구조가 더욱 다양해지며, 형태가 더욱 우아해지고, 여러 유형의 색깔이 더욱 많아지며, 생명력을 더욱 오랫동안 지속하게 된다. 유럽과 같은 온대 지역에서 한평생 살거나, 식물지리학을 모르는 사람들은 열대 식생의 이런 특성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훔볼트는 '식물지리학: 열대 자연도'에서 풍경화야말로 열대 자연사에 대한 유럽인들의 이런 무지를 보완할 수 있는 탁월한 예술이라고 말했다. 258p


이 책은?

어렵다. 그리고 세계사 책은 아니다. 세계사 이야기를 생각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끝까지 세계사에 대한 내용을 찾지 못하고 책을 덮을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런 기대를 하고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다른 책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은 훔볼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책이다. 나도 그렇지만 훔볼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는 다윈에 비교될 사람이라고 얘기되며, 그가 교류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에 의해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책에 나오는 몇 사람의 이름들(괴테, 가우스, 멘델스존, 볼타)의 이름만 보아도, 우리는 훔볼트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자연사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당시의 사회상이 그렇듯, 광물학과 자연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나온다. 우리는 역사라는 것을 말할 때, 개별적 사건들만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역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간 이야기이지만 모든 사람은 자연의 바탕 위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자연계의 현상과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를 얘기할 때는 반드시 자연에 대한 얘기가 바탕이 되어야 하고, 이전의 역사와 그 후의 역사를 엮어서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훔볼트의 연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많은 자연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 번에 같이 연구한 사람, 그리고 다양한 언어를 통해서 그 문화를 들여다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훔볼트를 넘어서기 위한 다섯가지 조건'에도 써놓은 것처럼 이런 다양한 사항들을 융합적으로 연구하여 결론을 내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훔볼트는 그중에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훔볼트라는 사람에 대해 아주 작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280여 페이지인 이 책을 통해 훔볼트를 조금 들여다봤지만,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정도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종찬'도 그렇게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책을 쓰면서도 약 300페이지 만으로는 훔볼트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상당히 어려운 책이다. 쉽게 읽을 수 있지는 않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충분히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책이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 훔볼트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l*****2 2020.06.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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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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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훔볼트.그의 책은 도서관 분류코드 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컨셉이어서 끌렸다.훔볼트의 관심분야는 나의 평소 관심사와 전혀 관련이 없었고, 방대했다.콩고-아이티 노예혁명, 열대 자연사 탐험, 괴테의 자연 탐구, 보두교, 열대 아메리카 여행기 등,'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나?', '내가 관심가지려 노력이라도 해본 적 있었나?'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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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훔볼트.

그의 책은 도서관 분류코드 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컨셉이어서 끌렸다.

훔볼트의 관심분야는 나의 평소 관심사와 전혀 관련이 없었고, 방대했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 열대 자연사 탐험, 괴테의 자연 탐구, 보두교, 열대 아메리카 여행기 등,

'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나?', '내가 관심가지려 노력이라도 해본 적 있었나?' 싶은 분야가 목차에 한가득 있었다.

책을 펼치기가 왠지 모르게 설레고 약간은 두려웠다.

조금이라도 아는 분야가 아닌, 미지의 세계에 첫발을 딛는 느낌이랄까?

이종찬 님의 <<훔볼트 세계사>>는 훔볼트에 관한 자서전같이, 전기 같이

내가 전혀 몰랐던 훔볼트 임에도 흥미롭게 한 페이지씩 잘도 읽어내려갔다.

                            

열대가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알렉산더 훔볼트

. 플랜테이션, 보두교, 황열이 삼위일체가 된 콩고-아이티 노예들의 혁명이야말로, 프랑스혁명을 추동시킨 역사적 원동력이다. 15쪽

. 정확한 측정, 실용적인 지도 제작, 예술적 감성.

'훔볼트과학'은 이 세 가지 차원이 서로 유기적으로 융합됨으로써 만들어졌다. 18쪽

. 훔볼트의 위대한 학문적 성취는, 17세기 과학혁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열대 자연사 탐험에 기초한 식물지리학과 광물학을 근대 과학의 핵심적인 층위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18쪽

자연사는 인류사와 공명한다.

-훔볼트의 명제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다보니, 훔볼트 어머니의 교육관에 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을 두 번이나 사별하고 외롭게 살다 갔지만, 두 아들의 교육에 만큼은 큰 투자를 한 대단한 여인이자 엄마.

. 현재 독일의 기술은 세계적으로 최고를 자랑한다. 한국인들은 가정에서 독일 기술이 가져다주는 생활의 편리함을 마음껏 누린다. 그렇지만, 독일 귀족들이 18세기 후반부터 기술 분야에 직접 종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같은 시기 조선 성리학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105쪽

. 훔볼트는 <<코스모스>>에서 자신이 열대 탐험을 향한 결심을 굳히는데 세 가지 결정적 사건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게오르크 포르스터의 남태평양 탐험, 윌리엄 호지스의 갠지스 강 풍경화, 용혈수와의 대면. 107쪽

. 우리는 자연사가 점차 높은 차원의 자연 현상들을 다루는 분야로 발전되어 가리라고 희망한다... 색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생명체의 표면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색은 생명체의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외적인 표지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15쪽

.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자. 누가 커피, 설탕, 차의 플랜테이션에서 그토록 몸과 마음을 바쳤는가? 결국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아니었다면, 서구는 현재와 같은 발전을 할 수 없었음을 서구의 역사학자가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151쪽

. 정든 땅과 하늘을 강제로 떠났던 생도맹그의 노예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플랜테이션의 노동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카리브 해의 노예들은 인류사와 자연사를 모두 관장하는 정령인 '르와(Loa)'가 아메리카에도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프리카의 보두 신앙에서는 식물적 우주에 의한 치유 행위와 노래가 지속되고 있었다. 156쪽

. 정작 훔볼트는 자신이 한평생 성취한 것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식물지리학과 열대 자연도, 등온선 이론과 지도 제작, 지자기와 자기장의 정립을 손꼽았다. 그의 탁월한 세 가지 업적을 열대 공간의 관점에서 추상화한다면, 이 셋은 서로 연결되면서 열대 공간의 발명으로 귀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78쪽

아,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는가!

이종찬 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몰랐던 노예무역, 보두 신앙 등, 까막눈이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준 고마운 책이다.

뭔가 피부에 닭살이 돋는 듯 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다.

A******9 2020.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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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 <열대학>에 대한 책을 만났다.‘열대학’(tropical studies)은 예술,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기술공학, 보건의료를 융합하려는 문제의식을 지향한다.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2016)는 열대학의 총론에 해당하며, 이 책 훔볼트 세계사는 그 각론의 첫 작품이다. 훔볼트가 탐험했던 아메리카의 멕시코시티, 아바나, 보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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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 <열대학>에 대한 책을 만났다.


‘열대학’(tropical studies)은 예술,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기술공학, 보건의료를 융합하려는 문제의식을 지향한다.열대의 서구, 朝鮮의 열대(2016)는 열대학의 총론에 해당하며, 이 책 훔볼트 세계사는 그 각론의 첫 작품이다. 훔볼트가 탐험했던 아메리카의 멕시코시티, 아바나, 보고타, 키토, 쿠스코, 리마 등에서 현지 조사하고 난 연구 결과물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이종찬 교수님은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존스홉킨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사회사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과 열대학연구소 교수이다

저자가 말하는 열대 自然史는 훔볼트과학, 식민적 문화융합, 낭만주의 예술이라는 세 차원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 근대 공간으로 발명되었다. 이것이 열대 自然史혁명의 요체이다.  

의학사 연구자인 이종찬 교수는 전통적인 의학사, 즉 히포크라테스나 허준을 연구하는 공부가 아닌 ‘열대’에 푹 빠졌다. 그는 ‘열대학’이란 이름의 학문 분야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아주대에 열대학연구소를 만들었다.


열대학은 아마도 난학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 에도시대에 서양의 의학과 과학지식이 보급되었고, 이것은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정립되었다. 주로 네덜란드를 통해 전래되었다는 의미에서 난학이라 한다. 네덜란드와의 교역을 통해 보급된 서양의 기술서적을 연구하는 학문활동이 활발히 일어났고, 이들을 난학자라고 하였다. 일본의 근대화에 대한 각성은 이들 난학자들에 의해 싹트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일본의 난학자들은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중국 중심의 중화적 질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고민했다. 그때 찾은 돌파구가 난학이다. 난학을 통해 동남아란 열대로 진출,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18세기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의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어린이 과학위인전이나 과학탐험 동화에서도 그를 만나기가 힘들다. 정조와 순조가 통치하던 조선에서

우이도의 홍어 장수 문순득이 제주도에서 류큐를 거쳐 루손 섬까지 표류되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아카풀코에서 마닐라에 이르는, 열대 해양무역 네트워크의 실체를 느꼈으리라.


대서양은 푸르지 않다. 검다. 1억 2천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약 350년에 걸쳐서 노예무역으로 팔려 갔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 세계 최초로 노예가 주도한 혁명이 일어났다.

콩고 왕국에서 어릴 때부터 터득했던 열대 自然史에 뿌리를 둔 영성적인 힘으로, 50만 명의 노예들이 뭉쳐서 플랜테이션의 식민체제를 전복했다. 아메리카 전역에 거쳐서 독립혁명의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인종’은 서구 노예무역에 의해 발명된 개념이다. 참다운 인간이라면 이 용어가 아닌, ‘종족’을 사용해야 한다.검은 대서양의 노예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다른 민족과 종족에 대한 서구의 차별주의는 근대성의 형성에 깊이 내면화되어 왔고 지금도 그렇다.


잉글랜드와의 7년 전쟁에서 패한 부르봉 왕조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세금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유용한 식물과 광물을 찾아야 했다. 이런 과업을 수행하라고 훔볼트와 봉플랑에게

특별 여권까지 부여했다.‘식민적 문화융합’이다. 훔볼트는 현지 토착 自然史학자와의 협력이 절박했다. 에스파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계몽주의 교육을 받은 크리오요를 포함해서 물라토, 메스티소, 삼보 사람들이 훔볼트와 봉플랑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침보라소와 코토팍시 산을 중심으로 한  식물지리학에 관한 거대한 실험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열대 공간은 원주민들에게 전체적인 구조가 없는 장소에 불과하다. 그 장소는 열대 특유의 다양한 식물과 숲, 강, 습지, 산, 암석, 초원, 동물들로 오밀조밀하게 짜여 있는, 自然史의 망이다.

훔볼트는 이 공간을 선, 각, 숫자, 지도, 지자기로 이루어진, 근대적 공간으로 발명했다.



g****y 2020.06.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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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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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 이다. 이 말은 2020년의 절반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생활 15년 동안 업무 이외의 공부는 전혀 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올해 2020년에는 꼭 내 마음공부와 더불어서 역사인문학 공부를 해보자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마음을 다짐하고 만난 나의  첫 역사책인 이종찬 저자의 ‘훔볼트:세계사’이다. ‘훔볼트’라는 단어는 처음 듣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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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월 이다. 이 말은 2020년의 절반이 마무리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생활 15년 동안 업무 이외의 공부는 전혀 하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올해 2020년에는 꼭 내 마음공부와 더불어서 역사인문학 공부를 해보자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마음을 다짐하고 만난 나의  첫 역사책인 이종찬 저자의 훔볼트:세계사이다.

훔볼트라는 단어는 처음 듣진 않는다. 대학시절에 경제전공을 하였기에 전공서적에서 많이 보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정확히 잘 모른다. 그가 어떠한 업적을 수행하였고 현재 우리가 사는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이다.


그랬기에 이 책을 펼치고선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흥미가 생겼다. 내가 몰랐던 당대의 역사와 세계관,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의 교류와 업적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나름 경제공부도 대학원까지 마쳤기에 그 방면에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한창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될수 있기에 너무 즐거웠다.

배움이라는 것은 역시 평생해도 모자른가 보다.


조금씩 나누어서 훔볼트 세계사를 읽으니 어느새 한권 뚝딱 독파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읽는 내내 흥미롭고 몰랐던 지식을 배울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알아가는 기쁨을 또 알게해준 훔볼트 세계사에 대하여 더욱 알고싶어서 관련 책을 구매할만큼 흥미로웠다.


이번주말에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이 책을 다시금 읽고 나의 지식세계를 더 넓혀보고 싶다.

 


r******s 2020.06.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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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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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화에 깃든 열대 자연사.우리나라는 수도 서울에 정치, 경제, 문화의 기능이 거의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상당히 커요. [훔볼트 세계사]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자연사를 인류사와 연결하여 융합적 세계관을 펼치는 내용이라니 기대되었습니다. 이 글의 서문은 영문으로도 써있습니다. 지식이나 살아있는 지혜, 학문의 융합적 성격에 관한 한 훔볼트만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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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화에 깃든 열대 자연사.


우리나라는 수도 서울에 정치, 경제, 문화의 기능이 거의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상당히 커요. [훔볼트 세계사]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자연사를 인류사와 연결하여 융합적 세계관을 펼치는 내용이라니 기대되었습니다. 


이 글의 서문은 영문으로도 써있습니다. 지식이나 살아있는 지혜, 학문의 융합적 성격에 관한 한 훔볼트만한 인물이 없다며 칭송해요. 훔볼트는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에 아메리카, 유럽 등을 여행하였고 이 무렵부터 열대 해양무역 네트워크가 전 지구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서구는 열대 자연사에사 경제적 효용성을 발견했고 식민화를 가속시키고 낭만적 감성도 충족시키려 했습니다. 


저자는 훔볼트가 아메리카 탐험 시기의 조선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조선의 홍어 장수 문순득이 표류에 휩쓸려 류큐를 거쳐 여송까지 떠내려갔다가 약 3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문순득은 유배온 실학자 정약전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대화를 나눴어요. 외국인의 용모와 해외 무역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뜬 겁니다. 


정약전은 표해시말에 문순득의 체험을 기록했어요. 실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조선이 세계에 대해 배울 기회를 놓친것이 안타깝네요. 반면 훔볼트는 귀족 가문으로 광업 관리가 되어 18세기 후반부터 독일 귀족들이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붐에 합류합니다. p.56 


에스파냐 하층 계급인 코르테스가 수백 명의 부대로 수만 명의 아즈텍 군대를 이긴 건 천연두의 창궐때문입니다. 자연사에서 천연두를 비롯한 구세계의 미생물들이 신세계에 유입되어 인구 급감을 일으켰습니다.  코르테스의 정복 이후 멕시코 토착 원주민은 60년 만에 95%가 사라졌어요.


18세기 아프리카에서 카르브해의 생도맹그로 끌려온 노예는 50만 명이 넘었습니다. 미국 남부 전체의 흑인 숫자와 비슷했어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노예들에 의해 유럽이 지탱되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은 노예들이 주역이 되었단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큽니다. 17세기 콩고는 왕족 자녀들을 포르투갈에 유학 보낼 정도로 유럽과 교류하고 있었어요. 조선 사대부들의 '직방외기'에도 콩고가 의리있고 천주교를 신봉하는 콩고에 대한 언급이 있을 정도입니다. 노예들의 신앙인 부두교가 카톨릭에 탄압받자 인종차별을 부르짖으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생도맹그의 항쟁이 그들의 혁명보다 2년 앞선 프랑스혁명에도 영향을 줬을거라 해요.  p.139


훔볼트는 자연과 예술을 밀접하게 보고 자연사와 인류사도 관련 깊다 합니다. 열대 자연사 탐험에 기초한 훔볼트과학은 정확한 측정, 실용적 지도 제작, 예술적 감성을 융합하여 작용해요. p.249


훔볼트과학과 낭만주의의 공명은 광물, 설탕, 커피, 담배, 차 등을 발명시켰고 근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음악, 미술에도 반향을 일으킨 훔볼트에 의한 근대 공간의 발명이 인류사에 지금까지 끼친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합니다. 훔볼트의 생애에 대해서도 말하고 당시의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려주니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b***t 2020.06.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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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자연사 혁명. 이종찬,지식과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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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열대 自然史는 훔볼트과학, 식민적 문화융합, 낭만주의 예술이라는세 차원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 근대 공간으로 발명되었다.이것이 열대 自然史혁명의 요체이다.훔볼트를 비롯해 칸트, 괴테, 헤겔 등 당대 유럽의 최고 사상가들은‘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을 은폐시켰다.왜? 이 노예혁명이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기때문이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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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열대 自然史는 훔볼트과학, 식민적 문화융합, 낭만주의 예술이라는

세 차원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통해 근대 공간으로 발명되었다.

이것이 열대 自然史혁명의 요체이다.

훔볼트를 비롯해 칸트, 괴테, 헤겔 등 당대 유럽의 최고 사상가들은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을 은폐시켰다.

왜? 이 노예혁명이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의 지평에서 프랑스혁명은 혁명적으로 다시

탐구되어야 한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세계사.

나처럼 세계사.세계지리를 안배운 다른학교 친구녀석이 어느날인가, 세계사와 지리를 줄줄 외우며 나에게 무언가를 얘기했다. 그것도 아주 "신이나"서. 알고보니 얼마전 시작한 게임이 배를 타고 무역하는 그런 게임이기에 복잡한 유럽의 지리와 바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세계의 도시를 줄줄 외우고있던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잘 모르면서 세계사와 지리는 왜 이리도 궁금한건지...

책 제목만 보고 덜컥 신청했다가 당첨되어 받은 이 책.


훔볼트 세계사 - 자연사 혁명

갈증의 실수인가?. 연대별, 사건별로 정리한 책처럼 제목이 '자연사 혁명'이기에 뭔가 다른 접근방식이려니 생각했으나. '오,마이 갓'. 이건 뭐지?

읽으면 읽을수록 내 짐작이 틀렸다는 생각에 실망감이 커져갔지만, 그 실망감 만큼이나 또다른 호기심이 생겨났다.지난 역사를 기록한 세계사책이 아닌 '훔볼트'라는 괴테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바라본 세계의 돌아가는 이야기,세계의 자연 이야기 라고나 할까?

유독 1등만이 기억되는게 인간사라고 하지만 훔볼트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들이,훔볼트를 학자로 인정한 사람들의 이름을 등는다면 그동안 학계에서, 일반 대중들이 그를 너무 무시했던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훔볼트만큼 학문의 융합적 성격을 갖춘 인물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또 다른 사람은  5년에 걸쳐 아메리카 자연사 탐험을 한 후 쓴 '열대 아메리카 여행기'를 읽고 '글쓰기 양식의 결점이 오히려 매력' 이라며 극찬하고 훔볼트를 인정했다.

이 두사람은 괴테와 니체 이다.

아직도 스승으로 인정받는 그들조차 극찬한 훔볼트의 학문에 대한 열말과, 경험, 책.

이제라도 다시봐야하는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훔볼트의 자연사는 다시 봐야할 중요학문임을 확신하였고.

우리나라가 앞장서서라도 그를 재조명하며 세계사에 중요인물, 사건, 학문으로 인정해야 할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계사를 못배워서 처음보는것은 분명 아닐것이다.

어찌보면 학계에서 무시당하는듯한 훔볼트, 그의 학문적 업적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자고 작가는 성토하는듯 하다. 이 한권의 책으로 훔볼트의 위대함에 푹 빠질 정도인데 학계에서 중요하게 생각안하는 이유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시간이 된다면, 작가의 또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a****2 2020.06.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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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 * 훔볼트를 통해 본 열대 지역과 열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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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누구인가?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지리학자. 근대 지리학의 창시자로 중남미와 중앙아시아를 직접 답사하여 화산과 지진을 연구했다. 괴테와 찰스 다윈, 헨리 소로 등의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관련 분야에서 위대한 학자로 인정받는 한편, 최근에는 유럽 제국주의 팽창의 첨병이자 수혜자로 비판받고 있다.상세내용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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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누구인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지리학자. 근대 지리학의 창시자로 중남미와 중앙아시아를 직접 답사하여 화산과 지진을 연구했다. 괴테와 찰스 다윈, 헨리 소로 등의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관련 분야에서 위대한 학자로 인정받는 한편, 최근에는 유럽 제국주의 팽창의 첨병이자 수혜자로 비판받고 있다.


상세내용 :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상세내용 : 네이버 지식백과 참■ 읽고 나서

나에게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매우 낯선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괴테, 찰스 다윈, 헨리 소로 등은 적어도 내게 익숙하다. 도대체 훔볼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을 읽기 전에 조사한 훔볼트는 자연과학 전반에 영향을 끼쳤으며 그 중에서도 지리학에서 탁월한 학문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는 점 정도였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훔볼트는 자연과학 또는 지리학을 공부하지 않는 다면 크게 익숙하게 느껴질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과 성취는 놀랄 일이었다. 그리고 이를 분석하고 있는 저자 이종찬 교수(아주대학교 의과대학과 열대학연구소 소속)에 대한 놀라움도 느꼈다. 방대한 내용을 무척 잘 정리해줬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는 논문을 출판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교수들이 자신이 쓴 논문을 묶어서 책으로 출간하는 느낌이 든달까. 그러면서도 문학적인 느낌이 든다. 책 서문을 읽다가 전혀 안 어울리는 소설에서나 쓸 법한 문장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장르가 어색하게 혼합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책의 구조는 분명 논문 형태인데 그 안의 내용은 문학적 필체가 느껴지는 아이러니함. 그러면서 내용의 방대함에 조금 질리는 기분도 들었다. 훔볼트의 전반적인 삶과 학문적 성취를 배워나가기에는 꽤나 만족스러운 책이지만 가독성은 보통. 훔볼트 개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자연과학, 지리학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표, 그림, 참조 항목도 생각보다 많지만 아무래도 내용이 주는 어려움을 다 소화해내기에는 힘들더라. 대학교 때 논문 형태의 책으로 공부도 했고, 꽤나 재미나게 읽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훔볼트란 존재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보니 조금 애매하게 읽혔다. 개론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처음 훔볼트를 접하는 책으로는 좀 잘못된 결정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보다 읽는 데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그리고 훔볼트가 살던 시대 상을 고려했을 때, 현재 기준으로 비판받고 있는 지점들이 명확히 보이기도 했다. 물론 노예제도의 실상을 보고 비판했다는 점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를 평가하기에는 참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책의 중반부터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도록 했다. 왜 그는 우리에게 잊혀졌을까? 물론 관련 분야 학자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그가 일군 성취가 많다. 예를 들어, 탐험을 하면서 고산병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밝혀냈고 다양한 학문적 뼈대를 만들었다. 물론, 그로 인해 잊혀져 간 인물들도 있다. 훔볼트와 함께 <열대 아메리카 여행기>를 저술한 봉플랑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튼, 물론 이 책은 훔볼트의 삶과 학문적 성취의 단편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당시의 시대 상황 속에서,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이나 부두교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유럽인들의 강압과 횡포, 그리고 편협한 시각이 들어가 있음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훔볼트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의 시대 상과 그가 열렬히 탐구했던 열대 지역에 대한 열대학의 여러 시각을 풀어내주고 있다. 어렵게 다가오지만 흥미로운 지점이 분명히 있는 책이었다.


리뷰가 중구난방으로 흘러 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훔볼트 세계사 自然史 혁명>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훔볼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에선 쉽게 접할 수 없는 학자기도 하고, 그의 삶이 탐험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언젠가 좀 더 일반인을 위한 훔볼트 관련 개론서가 나와주길 바란다.



a********k 2020.06.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