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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존재는 세상의 암종이외다. 그대가 뉘 집 문간에 설 때에 그 집 주부는 가계부에 일전 한닢을 더 적어넣지 않을 수가 없사외다. 그대가 어느 집을 다녀간 뒤에 그 집에서는 그대가 먹은 그릇을 부시기 위하여 소독약과 얼마를 소비하지 않을 수 없사외다. 그대가 잠을 잔 근처에는 무수한 이가 배회합니다. 많은 며느리들은 그대를 위하여 두벌 설거지를 합니다. 를 읽으니 점점 그 시대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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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장래에는 암담이 놓여 있을 뿐이외다. 삶이라 하는 것은 그대에게 있어서는 고라는 것과 족믕도 다름이 없사외다. 낙 희 안 그대는 그대의 장래에서 이런 것을 몽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여는 단언하노니 그대의 장래에는 암과 고와 신이 있을 뿐이외다. 이 문간에서 저 문간으로 도 그다음 무간으로 한덩이의 밥을 구하기 위하여.. 작가의 문필에 감동받은 부분인데 진짜 글 잘쓰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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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근현대 문학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던 작가라는 생각이 왜 그는 부유한 삶에서 그렇게 방탕해서 결국 집안과 나라를 버렸는지 솔직히 이해 할 수 없는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천재라는 생각이 이 거지라는 작품도 그가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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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얼른 방 안에 들어갔다 나왔다. 사실에 있어서 여는 전속력으로 방안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현대인의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여는 그 표랑객에게 호의를 표하면서도 경계하는 마음은 풀지를 못하였다. 여는 몇 푼짜리 되지 않는 숟갈과 그릇을 감시하기 위하여 도로 나와서도 아닌 듯이 그의 위에 경계의 눈을 붓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그로서(10전짜리밖에 되지 않는)그 숟갈을 몰래 허리춤에라도 넣었으면 여는 달려가서 그의 따귀에 여의손을 붙이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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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랑객에게 자선을 베풀고 기뻐하던 ‘여’가 알게 된 사실을 그려 보여주고 있는 김동인의 단편 소설이다. 가족이 다 나가고 혼자 남은 ‘여’는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몸이 안 좋아 집에 혼자 있던 것이었는데... 가족이 아님을 직감하고 나가보니 표랑객이 아주 야윈 모습으로 나흘 동안 굶었다며 밥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부엌에 가서 서툰 솜씨로 밥에 찌개를 넣어 먹기 좋게 가져다준다. 순식간에 밥을 비운 표랑객에게 은전 50전을 함께 줘서 보내고 뿌듯한 마음에 다시 방에 누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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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거지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50)를 읽었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생각한 거지는 노숙자랑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했는데 이 당시에는 아니였더라고요. 주림으로 인하여 그 발음은 비록 분명하지 못하지만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끊어서 말하는 그의 호소는 현대에 처한 사람의 공통적 애소로서 그것은 여의 마음을 움직였다니 구구절절한 마음이 전해진것 같아 다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