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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민족의 죄인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61)을 구매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쌀알갱이라야 눈 씻고 보아야 하나씩 둘씩 섞였을 뿐의 불면 알알이 다 날아갈 듯 퍼실퍼실한 노란 조밥, 씹으면 모래와 흙이 지금지금하ㅡㄴ 그 알뜰한 조밥과 쓰다쓴 산나물이 아니면 시꺼멓게 썩은 세 조각의 짠무조각 반찬이 어떡하면 그렇게도 입에 회화 감기고 맛이 난다니 얼마나 배고팠을 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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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민족의 죄인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61)을 흥미롭게 읽어보았습니다. 문인협회로부터 북지 방면으로 황군위문대를 회원 중에서 파견하고자 하는데 그 구체적 협의회를 아무날 아무곳에서 ㅇ려겟으니 참석하라는 엽서가 지난번 서울을 가기 조금 전에 온건이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바로 그엽서! 나중 놓여 나가서 알았지만 자신이 놓여 나가던 십여 일전에 두번째 와서 수색을 하던건 아니였더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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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민족의 죄인을 읽고 광복된 후 신문사를 함께 다니던 친구가 찾아와 신문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닌 것에 대해서 말하였습니다. 친구는 그러한 것에 대해 친일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신문사를 다닌 것은 먹고살기 위한 일이라고 변명하였습니다. 먹고사는 일이 죄가 된다면 일제 강점하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본에 세금을 바친 일도 결국 친일 죄가 된다는 논리를 펴면서 자신의 잘못을 변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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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이 민족의 죄인이 자전적 소설이라 이 작품으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걸로 면죄부를 준다는 것은 아마 작가 자신도 여러가지 감정과 지난날에 대해 반성등 적어도 자신이 한 일이 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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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윤이라는 사람을 아는 것이 별로 많지 못하였다. 일찌기 일본 동경서 어느 사립대학의 정경과를 마치었다는 것, 학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고향에서 잠시 동안 신문지국을 경영한 경력이 있다는 것,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기 전후 2,3년은 서울 어느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로 있으면서 논설도 쓰고 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잡지에 발표한 당시의 구라파 정세에 관한 정치 논문을 두 편인가 읽은 일이 있고. 그 문장과 구성이 생경하고 서투른 혐의는 없지 못하나 사상만은 대단히 진보적인 것을 엿볼 수가 있었고. 대강 이런 정도의 것이었었다. 그 밖에 사람이 성질이 어떠하다든가 가정이나 주위 환경이 어떠하다든가 하는 것은 알지를 못하였고 알 기회도 없었다. 공적으로 혹은 사사로이 생활상의 교섭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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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나’는 독서회를 조직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는 조건으로 석방된다. ‘나’는 일제의 정책을 합리화하는 강연을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고 시골로 내려간다. 얼마 후 ‘나’는 서울에 갔다가 신문사에 들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대화가 일제의 식량증산운동에 ‘나’가 적극 협조했다는 내용으로 신문에 기사화된다. 해방 후 ‘나’는 친구 윤을 만난다. 전혀 친일을 한 바 없는 그는 ‘나’의 친일 행위를 조롱하고 멸시한다. 집으로 ‘나’를 찾아온 조카는 친일 경력이 있는 선생 때문에 학교에 분란이 일어나 이를 피해 왔다고 말한다. ‘나’는 조카에게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하며 위안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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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민족의 죄인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161)은 민족의 죄인답게 민족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해놓았더라고요. 차별대우를 받지 않도록 자신들도 실력을 가져야겠다는 말에 저 역시도 공감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 사람네보다 떨어지지 않는 수준에 도달을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 법이라 생각하거든요. 전체가 노력해서 그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