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14일부터 27일까지 14일간의 기록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이 당시 사람들의 실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대화나 심경의 묘사는 일부 변경됐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남긴 글, 했던 일은 최대한 사실과 가깝게 적혀있다는 점이 그들을 다시 떠올려보고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이 병든 역사를 위해 갑니다. 이 역사를 위해 한 줌의 재로 변합니다. 이름없는 강물에 띄어주세요.' 평상의 삶을 살던 시민들과 자신의 신념을 외치던 사람들에게 닥친 비극을 덤덤히 그려내서 더 가슴아픈 소설.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기억되어야할 이야기. |
|
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다큐소설이다. 솔직히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들을 대하게 될 것이 뻔했으니까. 예상대로 하루하루 읽어나가는 게 무척 힘들었다. 평범했던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나름의 행복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폭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민주화를 부르짖었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이 작품을 읽기 전 접했던,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도 그 날의 잔인함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행적과 사연들을 읽고 있자니 다시 그 날이 눈 앞에 재현되는 것 같다. '다큐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전달되는 리얼리티.
대학을 졸업한 뒤 주택은행 신입사원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현장을 떠난 노동운동은 관념'이라는 생각에 6개월만에 광주로 내려와 한남플라스틱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하고 들불야학에도 강학으로 들어온 윤상원, 교사였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극장을 운영하는 박효선, 용접공이었던 나명관, 여기에 주방장, 구두닦이, 요리사,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회사원, 농사꾼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1권 초반에 그려지는 시민들의 삶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비록 전남대 학생과장인 서명원의 눈에 현재 시국이 매우 불안정하고 어지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도 앞으로 다가올 비극을 구체적으로 예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12.12 사태 이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등 요직을 맡게 되면서 일어난 민주화에 대한 요구, 학생들의 시위로 조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큰일이 닥치기 전에는 예방해야 한다고 생각한 정도 아니었을까. 설마 국가가, 나라가, 국민들을 잔인하게 도륙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동시장의 모습을 그린 평범한 장면에서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저 자식 걱정, 먹고 사는 걱정이 전부인 평범한 사람들. 그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을 광주의 상황이란 얼마나 처참했을 지, 나와 다를 것 없는 그들의 시간을 이렇게 마주대하고보니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안타까움에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들의 시간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계엄군들이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이미 며칠 전, 그들은 군화도 벗지 않고 전투복을 입은 채 비상대기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평화와 민주화도 멀어진다 생각하는 그들의 눈에 시위를 주도하는 대학생들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경찰들과도 협력하며 시위하는 광주시민 앞을 마침내 막아서는 계엄군들. 작전명은 '화려한 휴가'였다. 고된 시위진압 훈련이 끝났으니 이제 휴가를 즐기듯 시위 시민, 학생을 상대로 산짐승몰이 방식으로 인간 사냥에 나서자는 뜻이었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피를 흘린다. 시위대가 아니었음에도 구타당하며 끌려가고 대검과 총탄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 그 한명 한명의 목숨이 그리 가볍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책 속에 문장 하나로 기술되어버린다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계엄군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시민들을 살상했을까. 어디선가 그 때의 후유증을 겪는 진압군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람이라면 그것이 당연해야 한다. 여전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돌아가신 신부님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매도하는 그. 그의 존재 자체가 비극이다.
2권을 읽어야 하는데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다. 1권을 읽으면서도 대체 이 기록이 언제 끝나나, 언제 끝나나만 되뇌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범한 우리가 평범했던 그들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폭도가 아닌,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부당한 국가의 진압에 온몸을 바쳐 저항한 사람들의 불꽃같은 시간들을.
|
|
광주 아리랑 1
올해로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정찬주 작가의 <광주 아리랑>은 제목만 봐도 뭔가 울컥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시대를 산 것도 아니고, 광주와는 연고도 없는 1인이지만 왜 하필 '그 당시 그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의문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왜 하필 그곳이어야 했을까.. 사실 광주가 아니었더라도 어느 곳에서든 무고한 시민이 같은 국민에게 무력으로 처참히 죽어갔다는 것 자체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1980년 5월 14일을 시작으로 이 다큐 소설은 광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민들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부마항쟁,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등 어지러운 시국에 군사 정권을 거머쥐려는 '전두환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대학생들, 각지의 대학생들이 시위를 하는 상황이라 서울에 상경해 공부하는 자식이 못내 걱정돼 전화를 걸어 광주로 내려오라 당부하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 등 불안한 그들의 상황과 시국을 보여주고 있다. 점차적으로 학생들의 시위는 확대되고 삼 일간의 민주화 성회로 곳곳에 대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는 평화적이었고 경찰도 평화시위에 도움을 주는 상황이었다.
한편 그들을 타깃으로 하는 불온한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7공수여단이었다. 광주로 지형정찰을 나오는가 하면 시위 학생들을 상대로 때려눕힐 오동나무 진압봉 훈련을 하며 그들을 만나 짓밟을 생각에 혈안이 돼 있는 계엄군들이었다.
5월 17일 광주에 있는 각 대학에 계엄군이 투입되고 학생들을 향한 그들의 진압봉은 가차 없이 휘둘러졌다. 모여있던 대학생들은 각지로 흩어졌고 계엄군을 피해 만나 시위를 이어갔다. M16 소총을 메고 진압봉을 들고 다니는 공수부대원들은 두려움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을 넘어서 시민들에게까지 거친 행위는 이어졌고 급기야 가슴이 드러나도록 여성을 끌고 가기도, 가슴을 난도질하기도 한 계엄군이었다. 점점 더 거칠어지는 그들의 만행, 무장한 헬기도 떠다니고 불안이 커져가는 그때.. 광주 시민들은 함께 일어난다.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뀌고 그 실탄을 든 계엄군의 총이 광주 시민을 향하던 날.. 시위대도 곳곳에서 총기를 구해오며 계엄군을 향해 전력투구할 준비를 갖춰 나간다.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나고.. 왜 같은 국민끼리 총을 겨눠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자꾸만 분노하게 만든다. 가슴 아픈 역사를 대면하는 것이 이리 힘들 줄이야... 그 당시를 살아내며 눈앞에서 자식이 죽어가고, 가족이 피로 물드는 장면을 목격했을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
우리에게는 슬픈 역사가 있다.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사실 잘 알고 싶어하지 않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자꾸 알다보면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도 알것은 제대로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상처도 소독을 제대로 해야 새살이 돋아나듯이 아프다고 덮으만 두면 아픈것 같다가도 안 아프고 안 아픈것 같다가도 아프기 떄문이다. 5. 18에 관한 영화와 책은 예전 시대에 비해 많이 나온듯 하다. 하지만 이상하다. 읽을 때마다, 영화를 볼 때 마다 새롭다. 이번에 읽게 된 광주 아리랑1 도 마찬가지다. 정찬주선생님이 쓰신 이 책은 선생님이 그 날 그 자리에 이름없이 사라져버린 횃불이 되어버린 이들을 주인공으로 쓰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더 가슴이 아팠다. 왜 광주였을까? 이런 질문은 어리석다. 그곳에서 가난에 찌들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휘말린 일들이다. 가난하지 않았더라도 그 시간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 중에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 했던 사람들은 없었으리라. 젊다는 이유만으로 군인들의 군화에 짓이겨지고 젊은이를 태워줬다는 이유만으로 총칼에 찔리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그 짦은 시기를 누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1편에서 계엄군이 그냥 바로 광주로 보내진것이 아니라 몇주 전부터 철저히 상황 연습하에 보내졌다는 사실이 제일 가슴 아팠다. 그들의 가슴에 피로 물들었을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 잔인한 계절이 되어버린 5월... p332 "공포탄이 아니여!" 김수영은 한 사내를 따라서 미문화원 쪽으로 도망쳤다. 그때 뒤따라 오던 학생이 쓰러지며 소리쳤다. "아저씨, 아저씨! 나 총 맞았그만요." 그 학생 말고도 도청 앞에는 두세 명이 쓰러져 있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저자인 정찬주 작가 [광주 아리랑]을 읽어보았다. 광주 민주화 운동은 세월이 흘러 소설과 영화로 알았다. 전남대생이던 사촌 오빠가 며칠 밤을 산길을 걸어 우리집으로 몸을 피신했었다는 부모님 이야기도 들었다.
저자는 실화를 소재로 삼더라도 소설이라는 사실을 기록하는 보고서가 아닌, 진실을 탐구하는 묵시록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래서 논픽션의 다큐와 픽션의 소설을 오가는 다큐소설이다.
지금까지 잘 조명되지 않은 광주시민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등장인물은 주방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공장 여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대학교 교직원과 수위, 비운동권 학생, 영업사원, 재수생, 구두닦이, 농사꾼 등등이다. 이들 역시 80년 5월에 계엄군과 맞서 싸웠던 엄연한 실존이자 최대 피해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 ‘광주 5.18 역사로서의 소설’에 주인공이자 증인으로 기리고 싶었다. 등장인물들을 통해 광주시민이 계엄당국에서 줄곧 주장한 폭도가 아니었다는 관점이었다.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고달픈 사람들이었지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들이었을 뿐이다.
도피생활, 연극에 대한 열정, 산 자로서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친구는 45세 나이로 요절했다. 친구에게 광주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감히 집필을 생각지도 못했다가 2020년 40주년이 되는 해 경험하지 못한 어린 세대에게 더 늦기 전에 80년 5월이 광주 역사를 전해주어야 할 책무를 느꼈다고 작가는 전한다.
[광주 아리랑]을 읽으면서 마음도 아팠지만 실명이 나올때는 검색도 같이 하였다. 1권은 5월 14일부터 5월 21일까지의 기록이며 독립운동을 하신 아버지를 둔 ‘학생과장 서명원’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한다. 양동시장 명태가게를 운영하는 병규 엄마 김양애씨는 아들이 내려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들불야학에서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는 나명관과 신은주는 해고 통보를 받고 대학생 집회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공수 특수전 교육을 받던 이경남 일병. 신학대 졸업을 앞두고 입대를 했는데 강원도 화천의 최전방이었다. 공수 및 특수전 교육을 받았다. 주민등록증 분실 신고하러 내려 온 김현채는 대학생들의 요구가 무엇이고, 시국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나명관은 들불야학 동기이자 동갑인 김성섭과 유인물을 만든다.
주방장 염동유는 박래풍이 구두를 공짜로 닦아주는 보답으로 한잔하며 시국을 논한다. 래풍은 친구 김용호 집으로 갔다.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은 횃불 시위를 기획한다. 전남대 국문과 동기이자 연극반 회원인 이희규와 박정권, 박효선은 연극한다고 동참을 못했는데 오늘 집회가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서명원은 복학을 앞둔 농대 축산과 윤한봉과 녹두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국문과 출신 김상윤과 나눈 시국 이야기가 가슴을 답답하게 눌렀다. 신군부를 이끄는 전두환이 언제 어느 때 허수아비로 내세운 최규화 대통령을 밀어내고 얼굴을 내밀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베짱 좋은 학생이 나서서 항의하자 계엄군이 학생을 진압봉으로 실신할 만큼 두들겨 패고 나서는 후문 앞에 꿇어앉혔다. 동네 주민들이 보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입대를 앞둔 범진염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아버지 농사일을 거들며 입대했으나 귀가 조치 되어 다시 입영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삭발한 모습이었다. 원예사로 농약을 사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공수부대원들이 승객들을 내리라며 휘두르는 진압봉을 두어 대 맞아 귀가 얼얼했다. 농약을 사서 집으로 갔지만 가족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한 채 혼절해 일어나지 못했다.
전남대 안에서는 특전사가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학생들은 군홧발로 채이고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안경이 깨지면서 피가 흘러 얼굴을 붉게 적셨다. 학생 진호림을 조카라고 속이고 구해준 수위도 있었다. 군용헬리콥터 한 대가 프로펠러 회오리바람으로 최루가스 분말과 먼지를 일으켜 눈을 뜨지 못하게 했다. 대학 연극반 출신들은 동료들이 시위할 때 연극만 했으므로 시위에 동참하기로 했다. 공수부대원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나 붙들고 진압봉을 휘둘렀다. 부상당한 학생을 업고 병원으로 가는 위성삼, 예비군 소대장 문장우는 넥타이를 풀고 시위대에 가담했다.
3학년 박금희는 공수부대원이 칼로 미자 언니 가슴을 찔렀다는 것을 친구에게 전해 듣는다. 승려 진각은 부상당한 청년을 업고 개인병원으로 착각하고 동구청 안으로 들어갔다. 전옥주와 차명숙은 가두 방송을 하였다. 페인트공 오인수는 트럭으로 버스를 못 타는 사람들을 태웠다. 박병규도 트럭을 탔다.
차량 시위에 대형 버스 네 대와 화물차 여덟 대, 택시 200대가 가담하고 있었다. 전경들과 공수부대원들은 당황했다. 노동청 쪽에서도 시위 차량이 도청 공수부대를 향해 강하게 압박했다. 이틀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잔 위성삼은 카빈소총을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조원들에게는 잠을 자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지만 정작 자신은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2권에 계속>
|
|
광주 아리랑
정찬주 장편소설 광주 아리랑 1권의 방대한 소설읽기가 끝났다. 거대한 민주화의 몸부림 앞에 감히 내가 이 책의 서평을 쓸 자격이나 있는가? 감히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이나 되는가! 광주에 엄청난 빚을 진 기분이다. 도저히 갚을 길 없는 블로그에 끄적이는 이 허접한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해봤다. 해마다 5월이면 광주에는 제사 지내는 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광주' 를 떠올리면 늘 아픔이 저며온다. 1980년의 광주. 80년에 태어난 아이가 마흔한살이 되었다. 40년전 광주를 아는가? 어줍잖은 변명으로 근현대사의 아픔을 외면해오다가 지난 여름부터 민주화에 관한 책들을 조금씩 읽고 있다. 너무 잔인할까봐, 너무 리얼할까봐, 너무 폭력적일까봐 뒷전으로 밀어낸 광주의 봄! '광주' 2017년 가을에 큰맘먹고 달려간 광주! 어디서 왔냐길래 대구서 왔다니까 어찌나 반기던지. 멀리 대구서 왔으니 물이라도 한 잔 더 ,반찬이라도 한 가지 더 내주던 광주사람들. 코로나로 전국이 몸서리칠 때 달빛동맹으로 먼저 대구에 의료진을 보내고 마스크를 보내준 광주. 달빛고을 아름다운 도시. 실천하는 사람들. 먼저 손 내밀어준 그래서 나는 광주가 좋다. 이것은 소설이지만 팩트다! 그들은 빨갱이도 공산당도 아니었다. 나랑 같은 대한민국 국민. 내 아버지, 내 오빠, 언니였던 그들. 작가의 말처럼 역사의 큰줄기는 남을지라도 개개인은 기억에서 잊힐것이라고. 잊히는 것은 두렵다.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좀 불편하고 무거운 주제일지라도 이제는 직면해야 한다. 전남도청 시계탑을 한바퀴 돌아봤다. 5.18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전남도청까지 걸으면 15분. 5월의 광주 햇빛을 뜨거웠던 기억이. 밀려나오는 함성을 상상하며 광주를 걷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학생과장 서명원 씨 이야기로 책은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을 그를 따랐다. 운동권 학생들은 그에게 찾아와 돈을 꾸어 가기도 했다. 형처럼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전남대에서 학생들을 보호한다. 60대 초반의 김양애 씨. 명태 가게를 한다. "잡초가 따로 읎어. 밟아도 밟아부러도 죽지 않는 잡초가 우리랑께." 전라도 사투리가 익숙치는 않지만 무슨 의미인지 느낌이 전달된다. 책에서 꼽은 명문장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잡초다. 이름없지만 밟아도 죽지않는! 책에는 이름없는 시민들이 대거 등장한다. 민주화의 생생한 기억이고 파편이다.
익모초보다 쓰디쓴 삶들. 막걸리를 마시며 '목포의 눈물' '울고 넘는 박달재' 등 노래를 부른다. 나는 이 노래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몰랐다. 아니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해야 맞을 듯.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고 들으니 더욱 애절하다. 목포의 애국가로 불린다는 목포의 눈물.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국민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가에 나온 노래라고 한다. 또한 나는 이것이 궁금했다! 계엄군들... 그들도 지금 어딘가 살고 있을텐데. 광주에서 그많은 사람들이 죄도 없이 죽어갔는데. 11공수여단무자비한 진압, 부마사태에서 부산과 마산 시민들을 죽인 그들은 지금 어딨을까? 그들이 무슨 일을 한 건지 지금은 알고도 남을 텐데... 누가 그들을 좀 찾아서 인터뷰 좀 안 하나? 내가 기자였다면 취재해 봤을지도. 이경남 일병, 최 일병 이 사람들도 지금쯤 그때 일을 후회하지 않을까? 지금쯤 누군가의 아버지로 삼촌으로 할아버지일 것이고 사회 요직에 있을수도 저명한 인사가 되었을 수도 그들은... 작전명은 화려한 휴가....아이러니한 이름이다. 그날은 광주시민들에겐 '피의 날' 죽음의 날이었다. 수많은 계엄군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흩어져 살고 있는걸까? 아마도 가까운 곳 어딘가에서 친절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다연출판사의 광주 아리랑 1권에서 만난 인물 중 꼭 기억하고 픈 인물이다. 지난번에 민청학련을 읽으며 경북대 여정남 열사를 만났다면 이번엔 광주의 아들 박관현 열사를. 지금까지 두 분이 살아계셨더라면 우리나라 민주화가 한걸음 더 성장했으리라 생각해본다. 경북대는 우리 지역이라 여정남 열사기념공원에서 찾아뵐 수 있을 것이다. 광주에 가면 꼭 박관현 열사 기록을 더듬어 볼 예정이다. 전남대 안에서는 특전사 제7여단 33대대가 들어와 대대장 권승만 중령의 지시로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학교는 공수부대원들이 받아왔던 적진 침투 훈련의 실전지가 돼버렸다. 이승룡 일행도 잡혀 얼굴이며 온갖 구타를 당한 뒤 본부로 끌려갔다. 특전사 제7여단 35대대는 방송국을 장악하기 위해 사전 정찰조를 보낸다. 방송반 선후배 20여 명은 종합운동장 야구장으로 끌려갔다. 염려하던 비극은 현실이 되었다. 그것을 본 아주머니가 "니덜 어느 나라 군대냐!"고 소리쳤다. "전방 지키라고 세금 냈제 대학생 때려잡으라고 세금 냈냐!"고 항의하자 학생을 풀어줬다. 학생들은 도청 앞으로 모여 시위를 계속한다. 페퍼포그차 등장. 전경들이 최루탄을 쏘자 학생들은 쓰러졌고, 쓰러진 학생들을 주동자인 양 잡아갔다. 고시학원에 들이친 공수부대는 죄없는 학원생들을 끌고 간다. 군인시점에서 이경남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참으로 궁금했던 점이다. 그당시 광주에 진압요원으로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들의 생생한 증언(양심선언)이 궁금했다. 이경남 그는 63대대 소속이었다. 상관의 명령에 따라 MBC 방송국 앞에 내렸다. 고참들이 지나가는 청년을 잡아 사정없이 패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다. 한 청년이 살려달라고 사정한다. 그는 갈등하다가 화장실로 몸을 숨겨 살려준다. 구두 수선공 스물여덟 살의 김경철은 농아장애자였다.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였다. 농아장애자 증명을 보여주고 두 손으로 빌었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 실려왔을 때 그의 상태는 뒤통수가 깨지고 눈알이 튀어나왔으며 엉덩이와 허벅지가 깨진 중상이었다.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그를 시민들이 트럭에 긷고 와병원에 입원시켰지만 어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공수부대가 광주에 투입된 후 첫 죽음이었다. 내가 이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묘사를 다 옮기는 이유는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것이 신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잘못 심어진 신념, 인식이 사람의 인생을 뒤바꾼다. 그들은 가두방송을 시작한다. 신문이나 방송이 다 막혀 있으니 그 방법밖에! 용달차 짐칸에 서서 두 젊은 여자는 교대로 방송을 했다. 서른둘의 전옥주와 스물 한 살 차명숙이었다. 택시 기사들이 학생만 태우고 가면 차를 세우고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박병규는 군용트럭에 오른다. 군용트럭에 몸을 실은 오인수를 만난다. 오인수 역시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한 뒤 객지로 돌았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 현재 페인트칠을 해서 먹고 산다. 전남대 쪽으로 가다가 시민군들을 태운다. 고 3학생 최치수도 드럭에 오른다. 차량시위는 《화려한 휴가 》 영화에도 나오는 장면이다. 삼화다방 주방장 염동유, 박래풍 등 이름도 몰랐던 일개 시민들, 평범한 사람들이 나섰다. 이제는 버스기사, 택시 기사들이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전재산인 택시, 버스를 몰고온다. 성당의 사제들도 나선다. 상황이 이렇게 될 동안 그 당시 광주시장 구용상이나 도지사 장형태는 도대체 뭐하고 있었나? 궁금했다. 자료를 하나를 찾다가 그 자료가 또 다른 궁금증을 낳고 궁금증을 해결할 때쯤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렇게 몰랐던 게 많았나? 80년 광주에서 그토록 무고한 민주시민들이 죽어나갈 때 다른 지역에서는 뭘 하고 있었나? 광주가 전면 봉쇄되었으니 어떨수 없었나..... 요즘 같으면 SNS로 실시간 보고될 텐데 그 당시에는 언론만 잘 막으면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요며칠 마음이 계속 전남도청 앞에 가있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시민 군이 결성된다. 그들은 파출소와 아세아 자동차 공장에서 차와 총을 빼내오지만 총을 잡아본 적 없는 사람도 많았다 정식 군대를 가본 적 없는 학생들도 많았고 공포에 질려 질서유지가 어려웠다. 그들의 신념이 좀 더 조직적으로 전국적인 규모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죄송스럽게도 감히 생각해본다. 혼란과 공포, 자유에의 갈망이 한 데 응집된 1권 읽기를 마치는 감회가 참으로 참으로 비통하다. 가슴에 불덩이가 솟아오른다. 마른침을 삼킨다. 목울대가 뜨겁다. 때로는 힘들어 한 쪽으로 밀쳐버렸다. 다시 또 꺼내본다. 증오의 밤이다. 인권은 유리 같다고 누군가 말했다. 인권은 유리 같아서... 유리는 너무나 약해서 조금만 금이 가도 못 쓰게 된다. 그래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 인권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상처받고 억눌려도 쉽게 으스러지고 회복되기 어렵다. 소중히 해야할 인권이 군부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남은 이들의 기억마저 조작당하는 근현대사의 비극 중 비극이다. 내 기억도 왜곡되지 않기 바라며 광주 정신은 계승되어야 한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고 본질 그 자체로 이어져야 한다. 신이시여!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거꾸고 작가의 서문을 읽었다. 책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책 속 등장인물인 친구 박효선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계엄군의 눈을 피해 서울로 도망하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함께 짧은 인생을 마쳤다. 실명이 나와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부분을 감수하고라도 팩트를 전달하고싶었다는 작가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끝으로 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실존자이자 최대 피해자였던 광주 시민들을 마음 깊이 애도합니다.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
![]() 광주 아리랑 1,2 정찬주 다연
"80년 5월, 따뜻한 가슴들이 살고 있었네”
어느새 40주년을 맞이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회심작인 《광주 아리랑》1,2권이 발간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책 중 읽어본 《5월 18일, 맑음》이 논픽션, 《소년이 온다》는 픽션이라면, 《광주 아리랑》은 그 두 장르를 아우르는 ‘다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실명을 그대로 가져와 쓴 옴니버스 형식의 《광주 아리랑》은 소설이지만 5.18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광주 아리랑》은 1980년 5월 14일 전남대 학생과장인 서명원의 시선에서 시작하여, 5월 27일 새벽에 계엄군에 맞서지 못하고 이불 속에 숨어서 떨면서 쓴 이희규의 비망록으로 끝난다. 약 2주간의 시간의 순서에 따라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는 누구를 주인공이라고 특정 할 수 없다.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식당 종업원, 주방장, 수위, 구두닦이, 재수생, 넝마주이, 구두닦이, 날품팔이, 농부, 시장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공장 여공 등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고 각자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려준다. 어떤 이는 죽고, 어떤 이는 살아남는다. 어떤 이는 시위에 적극 참여하지만 어떤 이는 이불 속에 숨어 떨면서 좌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여 누가 누구인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 많은 소시민들을 통해서 작가는 이들이 하루하루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폭도’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민초들’이었음을 알리고자 한다. 《광주 아리랑》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이 같은 시민을 구하고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따뜻한 가슴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 ‘광주’였음을 이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아무튼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이가 《광주 아리랑》을 통해서 80년 5월의 광주를 실상 그대로 봐주기를 바랄 뿐이다. 정말 광주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통의 도시였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시위 중에 들었던 횃불이 밤하늘의 별이 된 도시라고나 할까. p.9 「작가의 말」 중에서”
5.18에 대한 책을 읽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자행한 잔인한 폭력과 폭행들을 묘사한 부분들을 읽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읽어야하고 관련 책들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날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기에...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그날 광주에 울려 퍼지던 아리랑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광주아리랑 #정찬주 #장편소설 #다연 #5.18 #광주민주화운동
|
|
#정찬주장편 #다연 #광주민중항쟁
광주 아리랑
광주 이야기는 언제나 무겁다. 그렇다고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아는 체하게 된다. 듣는 귀가 있었다고 말이다. 두 권에 이은 정찬주 작가님의 장편 소설 <광주 아리랑 1,2>는 5월 14일부터 28일까지 닥치는 대로 불어닥쳤던 피바람의 기록을 담아냈다. 정점을 찍었던 5월 18일을 중심으로 인연이 맞닿은 수많은 영혼들이 기록의 끈을 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주류를 인물을 따라 이동하며 내가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던 광주에 대한 르포가 짜깁기 되었다. 가슴 시리게 안타깝고 아프기만 한 억울한 그들의 사연이 어찌 지나갔다 할 수 있을까. 아직 청산하지 못한 무고한 사람들의 죄 있음이란 오명에 책을 덮고도 마음은 체증이 그대로인 듯하다. 처음 소설을 읽으며 이물과 사건의 수평적 구성과 짜임에 집중할 원 포인트를 찾지 못해 힘들기도 했다. 그러다 광주라는 큰 그림으로 눈을 돌렸고, 한뜻으로 모이는 그들의 소망에 나의 소망을 더하며 <광주 아리랑> 장편소설 읽기의 가닥을 잡아내려 갔다. 한 번으로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지금 리뷰를 남기고 있지만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내용이다. 내겐 너무나 공포스럽고 믿기지 않는 장면들의 묘사도 상당했기에 중간중간 쉬며 납득하거나 받아들여야 할 시간적 여유도 필요했다.
<광주 아리랑 1,2> 완독의 의미는 나에게 있어 처음으로 5월의 이야기를 자세히 관찰해 본 낯선 경험이다. 아직도 정의를 정의롭게 정의 내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얽힌 실타래 아래 따뜻한 그들의 5월 광주를 울린 민중 가슴이 잠들어 있음을 기억하며 잠시 묵상해 본다.
|
![]() 5.18 민주화운동이 벌써 40주년을 넘었다. 하지만 어느 정권도 전두환을 심판하지 못했고 피해자인 광주 시민들의 한은 겹겹이 쌓여간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그의 만행을 고발하지만 가해자들은 모르쇠로 자신의 범행을 부인한다. 5.18을 기념한 수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새로운 회고록들이 출간된다. 올해 출간된 《광주아리랑 1,2》는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그려주며 잊히지 않는 광주 시민들의 설움을 위로해준다. 《광주아리랑 1,2》는 1980년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들의 긴박한 14일을 그린 소설이다. 두 권의 책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저자 정찬주씨는 자신이 5.18의 간접 경험자임을 고백한다. 소설 속 인물 중의 한 명인 박효선씨의 친구인 저자는 친구인 박효선씨가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떠나간 친구를 보며 항상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친구가 떠난 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더 늦기 전에 이 민주항쟁을 다음 세대들에게 알게 하기 위한 책무로 《광주아리랑》을 집필했다. 《광주아리랑 1,2》에서는 주인공이 없다. 아니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시위를 주도했던 전남대,조선대생은 물론, 녹두서점 김상집, 여고생 박금희, 전남대 학생과장 서명원, 연극하기 위해 교사를 사직한 박효선 등 이 민주항쟁을 겪고 끝까지 함께 한 모두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구두닦이부터 식당 종업원이였던 김현채는 물론 신부님, 스님 등 광주 시민들의 투쟁을 어느 하나 치우치지 않고 14일의 투쟁을 써내려간다. 1권의 첫 번째 이야기는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시위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소개된다. 민주화를 꿈꾸는 대학생들의 모습과 함께 소박한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소개해준다. 공장에 다니다가 해고당한 나명관,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여러 직업을 전진하던 김현채, 신문사 보급총부 안상섭, 연극배우 박효선 등등 그들의 소탈한 일상이 소개된다. 부귀영화보다 내 자식이 잘 되길 바라거나 부모님을 도왔던 그들의 일상과 광주시민을 진압하기 위한 공수부대의 충정훈련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이야기는 긴장감을 고조한다.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 빨갱이로 세뇌시키며 그들의 충성심을 북돋는 군인들의 진압 작전 훈련과 포상금 제공 하는 등 충성을 요구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쇼를 위해 며칠 동안 사자들을 굶겨 극도의 허기를 느끼게 한 후 처형일에 사자를 풀어 놓아 사자들이 마음껏 죄수들을 짓밟을 수 있도록 한 고대 로마를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공수 부대가 쳐들어오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들의 무차별적인 구타가 이어진다. 사나운 맹수가 먹이감을 찾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진압봉으로 대검으로 사정 봐주지 않으며 구타하는 군인들은 "너희들 때문에 힘든 훈련을 계속 받았어"라며 자신들이 받은 고된 훈련이 오로지 광주를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한 작전이었음을 확인시켜준다.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광주 시민들이 차츰 분개하며 일어나 시민군을 꾸려가며 본격적인시민군의 모습이 2권으로 이어진다. 정치와 관계없이 내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하던 각각의 인물들이 시민군으로 합류하며 죽음을 각오하며 싸울 걸 다짐하지만 인간이기에 그들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보여주며 이 소설은 슬픔을 배가시킨다. 그들 안에서 내분도 있고 점점 다가오는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떠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두려워한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하며 후를 기약하는 그들의 모습을 저자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시민군의 외로움이 대형 스피커에 울러퍼지는 박영순씨의 울먹이는 목소리와 겹쳐 더욱 큰 외로움을 발산한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도청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어서 도청으로 오셔서 우리 형제자매들을 살려주세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빠 형제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나오셔서 학생들을 살려주세요. 《광주아리랑 1,2》의 초반 광주에서 있던 횃불시위 속에 2016년의 촛불 혁명을 생각하게 한다. 광주에서 횃불을 들던 1980년대와 2016년 촛불 또는 스마트폰의 불빛을 들고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광장으로 나온 촛불 집회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비록 5.18 민주항쟁은 철저히 짓밟혔지만 이 항쟁이 씨앗이 되어 2016년 비로소 결실을 거두었음을 알게 한다. 한명의 승리가 아닌 모두의 승리였듯 민주항쟁 또한 모든 광주시민의 항쟁이었다. 저자는 소설이지만 이 항쟁을 미사여구가 없이 사실 그대로 서술하는 데 집중한다. 용감하게 싸운 시민들의 모습도 그려내지만 차마 용기내지 못하고 나서지 못한 인물들의 모습도 그려낸다. 과도한 감정과잉이 없이 사실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읽는 동안 가슴이 아파서 몇 번씩 읽기를 멈추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매년 수많은 5.18 관련 책들이 출간되고 일부 사람들은 무덤덤해한다. 40년이 넘는 세월 속에 가해자들은 빨리 시간이 지나가서 사람들이 제 풀에 지쳐 포기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각인 된 이 고통은 매년 새롭게 되새김질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분노해야 한다. 더 잊지 말아야 한다. 《광주아리랑》 은 우리에게 이 진실을 계속 되새김질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산 자의 시선에서 멈춘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들이 마침내 길고 긴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이 소설의 후속편을 써야 한다. |
|
광주 아리랑
광주 민주 항쟁 40주년 기념 <광주 아리랑>은 1980년 5월 광주 민주 항쟁 14일간의 행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다큐 소설이다. 그때 그 시절 광주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그 안에 얽힌 수많은 인물들의 40년 전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그 당시 계엄 선포가 일어난 광주의 실상을 그 무엇에도 치우치지 않고 덤덤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표지만큼 예쁘기만 한 이야기가 진행됐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얼마 전이 바로 5·18 민주 항쟁이 있었던 바로 그날이었다. 40년 전 광주의 어느 곳이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학생들은 시위에 하나 둘 참여하고, 서울로 유학 보낸 부모들은 노심초사 대모에 합류하지 않을까 마음 졸였던 시간들.. 최루탄이 터지는 시위 현장에선 괴로운 함성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전두환이 무력으로 장악한 권력에 맞서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점점 더 커져갔다. 계엄군은 학생들을 포위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다.
매일매일의 행적을 좇으면서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바로 지금인가? 하면서 긴장감의 수위는 점차 고조된다. 그러다 펑~!!! 터지고 만다. 안타깝게 죽음에 이른 이들의 모습이 글을 통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한창 즐겁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해야 할 대학생들의 시간이 거기에서 멈춘다. 변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에겐 죽음뿐, 다른 것이 기다리지 않는다....
어떻게 같은 민족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지? 북한군이 넘어온 것도 아닌데.. 그들을 왜 그런 식으로 개죽음으로 만들고 사람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처참히 죽어가도록 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며 인정하지 않듯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는 전두환의 모습에 욕이 다 나올 지경이다. '네가 저지른 일은 네가 해결하고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40년.. 앞으로 40년이 더 흐른 들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다 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사과가 필요한, 정말 머리 숙여 사죄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