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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나는 왜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이 책을 덥석 내 것으로 만들고 말았을까. 그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아는 거라곤 출간한 작품의 제목 서 너 개와 이름 석 자. 사방팔방 뻗어있는 머릿결과 투박하고 거친 얼굴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프로필 사진. 꺼내고 꺼내봐도 오직 그게 다였다. 언젠가부터 어떤 작품이 되었든 읽어주리라 생각했고 타이밍 한 번 기막히게 이 책이 나에게로 왔다. 제목처럼 고상한 그(그녀)의 연애사를 상상하는 건 금물일지어다. 감성이 폭포수처럼 터지지도 않고 눈물방울이 얼굴선을 타고 어여쁘게 흘러내릴 일도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연애사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못났게, 심하게 못나고 요란스럽게 눈물 콧물 찍어 바르며 엉엉 악다구니를 쓰는 게 더 어울릴 그런 사랑 일색이다. 아니... 사랑 일색이라고 하는 건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맞되 일색은 아니니까. 사랑이 남녀라는 교집합에서만 성립되는 거라면 이 책에 실린 9편의 단편 모두가 '사랑'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남남의 우정('무적이 운다, 가라')도 있었고 연애라고 하기도 사랑이라 부르기도 모호할지 모를 소년소녀의 설익어 여물지 않은 순정('내 사랑 개시')도 있었고 사람들의 개인사를 엿보는 느낌의 글('발')도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통틀어 '사랑'이라 한다면 어렴풋하게 맞아떨어질지도 모를, 그런 그들의 이야기(연애사)였다.
하긴. 어떠한 사람의 어떠한 사랑 이야기도 줄거리는 몹시 단순하지 않던가. 사랑에 빠졌고 그리고 헤어졌다는 것. 그도 그랬다. -'그 남자의 연애사'(10쪽)
여느 사랑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랑은 찰나에 다가오든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서 오든 만나야 시작되고 끝나야 신파로 완성된다. 이별하지 않고 이루어진 사랑은 신파극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남자의 연애사』에는 꽤나 그럴듯한 신파들이 존재한다. 신파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으랴. 그 옛날 이수일과 심순애라는 연극을 설렘을 안고 기다리던 쌍팔년도 여고생들이나 좋아했을 신파가, 거친 남자의 손에서 언어로 치환되면서 자극적이지만 이렇게 깊게 와 닿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신파의 갑은 단연 표제작인 '그 남자의 연애사'와 '뭐라 말 못할 사랑'이었다. 첫 번째는 주인공의 거대한 외로움 구덩이를 알 것도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몇 곱절이었고 두 번째는 주인공의 걸쭉한 입담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어도단을 일삼든 바른 국어를 사용하든 사실적인 글이자 작가의 냄새가 리얼하게 풍기는 글은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행여 나의 괜한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비속어, 욕설이 난무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겠다 하는 분들은 책 선택에 신중을 기하시길.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멋진 작품들을 읽고 나서 비난하는 건 개인적으로 참 슬플 것 같다.)
나는 끝내, 아름다웠다 말하리.
사랑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 'amor'이다. 'mor'는 죽음. 'a'는 저항하다. 사랑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단어를 알고 나서야 독한 불면과 눈물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이 거듭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의 연애사이다.-작가의 말
소설을 읽으며 으레 '우리네 이야기', '사람 사는 세상사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정의하고는 한다. 그런데 아니다. 이 작품은 그보다 더 찐하다. 구수하다. 한창훈 그의 문체만큼 각 단편집의 사랑도 날 것 그대로다. 아작아작 씹어먹어야 할 정제되지 않고 여과되지 않은 거칢, 날단어의 묘미. 무엇을 애타게 갈구하면서 일방적인 행보로만 보일지도 모를 사랑이다.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다. 타자의 눈에는 전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여할 수 없는듯 보이지만 그들이 사랑이라는 감정과 단어를 언급했다면 그것도 사랑인 것이다. 불완전해서 메말라버린, 사랑 같지 않은 담담하면서 고독한 사랑. 애절하면서도 구차한 사랑. 대부분 소외된, 사회에서 권리를 내세우기 어려운 계층, 약자들의 사랑이다. 직업이 초라하고 행색이 남루하고 가진 거라곤 몸뚱어리가 전부라고 해도 그러려니 할 사람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떠돌이 노동자, 뱃사람, 창녀, 그런 이들을 연인, 배우자, 혹은 친구로 둔 이들의 이야기는 섬을 표류하다가 육지로 건너온다. 실제로 작가는 섬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일종의 동경일까. 섬사람은 육지에 대한 동경이 있고, 육지 사람은 정착할 곳은 아니되 잠시 잠깐 머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지상 낙원이라 생각하는 섬에 대한 동경이 있지 않을까. 동경에서 파생된 기대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충족시킨 것도 모자라 또 다른 섬(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면 그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전해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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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 뻥 뚫린 고속도로가 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차 안 에어컨 온도를 24,23,22도로 차례로 낮추어도 도무지 차 안은 시원해지지 않았다. 고속도로 양 옆으로 한 여름 산이 보였다. 녹색이라고는 차마 할 수 없는 진녹색 숲이 우거져 있었다. 나는 그대로 숨이 탁 막혔다. 먹잇감을 유혹하려 촉수를 아름답게 뻗친 어느 심해의 괴생명체 마냥 있는 대로 가지를 뻗쳐 마치 풍덩 뛰어들면 초록빛 바다 같았다. 하지만 관능적인 촉수에 이끌려 들어갔다가는 괴상망측한 입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초록빛 바다 같은 여름 숲속으로 공중으로 뛰어 들어갔다가는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한참을 후텁지근한 차창 밖 숲을 쳐다보고 있으니 취한 듯 몽롱해졌다. 녹색은 사람의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한 여름 숲을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머리는 핑핑 돌고 쓸데없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오래전 나는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는 완행버스를 타고 있었다. 여차하면 미끄러지는 탓에 버스는 심하게 흔들렸고 거듭 시동을 꺼뜨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상차도 멋대로 춤을 췄다. 길이 좁고 험한 탓이기도 했지만 곳곳에 쌓여 있는 눈 때문에 더 그랬다. 비탈을 스쳐왔던 봉우리들이 저만치서 아득했고 다가오는 것들은 더 넓고 우뚝했다. 산과 산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골짜기도 깊었다. 골짜기마다 나무도 빼곡했는데, 한 그루도 빠짐없이 눈 더미를 화관처럼 이고 있었고 길은 진창이었다.” (p.121) <내사랑 개시> 한창훈의 글이 좋다. 이 책에 담긴 단편 작품 중 <내사랑 개시>의 도입부다. 나는 그의 글과 함께 오래전 탄 것 같기도 한 완행버스 속에서 매캐하고 비릿한 냄새에 취한다. 분명 한 여름 고속도로 변에 보이던 여름 숲을 회상했는데 지리산 속 어느 아찔한 겨울 계곡을 지나고 있다. 심하게 흔들리는 시골 완행버스의 서스펜션은 지면의 충격을 고스란히 내 위장에 전해 준다. 생전 한 적도 없는 멀미를 겨울 산 완행버스 안에서 하고 앉아 있다. 골짜기에 빼곡한 나무만큼 잡생각이 많아진다. 화관처럼 눈을 이고 있는 나무들이 애처롭다. 여전히 글은 진창이다. 그의 이전 작품 「홍합」을 읽고 한창훈의 팬이 되었다. 무심한 듯 펼쳐내는 비릿하고 반가운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로 버무려 내었다. 이 책 「그 남자의 연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책에 실린 단편들 모두 내 주변 사람들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 같았다. <내사랑 개시>의 도입부는 별 생각 없이 마주하게 되는 잡념을 무던하게 풀어내는 그의 글 특유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종종 그럴 때가 있다. 한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다가 갑자기, 신나게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인생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갑자기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뒤틀리고 얽히며 태풍경보가 내린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 안에 겪는 멀미처럼 지독한 고통을 겪을 때. 그럴 때가 있다. 나는 난리가 났는데 다른 건 아무렇지 않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고, 아내는 잘 자고 있고, 다른 차들은 쌩쌩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나만 슬로비디오다.
“생사를 다투는 응급실 시계와 바둑 시합장 시계가 똑같이 돌아가듯이 그의 시계도 그랬다. 하루하루는 죽겠는데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돌아보면 나이가 한 살씩 들어 있기도 했다. 그는 전국의 일터를 떠돌았다.” (p.22) <그 남자의 연애사>
작가는 인생을 어렵게 그려내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을 만들지도 않는다. 물론 그의 작품을 다 읽지는 못해서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읽은 작품들은 모두 그랬다. 애써 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전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이 더 좋다. 생사를 다투는 응급실 시계도 바둑 시합장 시계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 액정에 뜨는 시계도 똑같은 각도로 시침과 분침이 벌어져 있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1분만 더 빨리 옮겨 왔으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이었음을 깨닫는 응급실 안의 통곡 소리도, 아무리 복기를 해도 1수조차 물릴 수 없는 바둑 시합장의 탄성 소리도 똑같은 절대적 시간 앞에서는 똑같다. 그래서 ‘그 남자의 연애사’를 들어보는 것이 때론 ‘나의 연애사’를 돌아보는 것만큼 아슬아슬하고 짜릿하다.
“하나가 가면 또 하나가 오고. 고통스럽지. 죽을 맛이었어. 그런데 정말 못 견디겠는 것은 이 햇살인 거야. 아, 그 여름 햇살. 뜨거운 한낮의 태양이 저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거야. 내 눈만 찔러대는 거야.” (p.169) <판녀> 물론, 나의 고통이 가장 크다. 내 군생활이 가장 힘든 것처럼 내 고통을 다 표현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는 세상이지만 암에 걸리지 않는 나머지 2명의 가족은 암에 걸린 가족의 고통을 전혀 알지 못한다. ‘판녀’는 꽃다운 중학생 나이에 동네오빠 3명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중에는 사촌오빠도 끼어 있다. ‘판녀’가 그림을 그리는 창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는 차치하고, 고통의 한 가운데에 있는 사람은 오롯이 그것이 세상의 전부가 된다. 그 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믿는 신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거나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세상이라는 고약함과 나. 이렇게 단 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처절하고 차가운 세계다. 한참동안 성폭행을 당하는데도 여전히 내 눈만 찔러대는 뜨거운 한낮의 태양은 어쩌면 ‘판녀’가 살아갈 인생의 격랑을 미리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세상의 비열한 동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아까 사실, 당신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어. 내가 보고 있다는 거 몰랐지? 꼭 사막이나 바다를 마주하고 선 사람 같더라. 그런 경우 있잖아? 길이 너무 멀어 출발을 못 하는.” (p.163) <판녀> 고통에 마주한 사람만이 고통에 마주한 사람을 알아낼 수 있다. 인사치레로 툭툭 던지는 동정은 구역질을 동반한다. ‘판녀’는 세상 끝에 홀로 선 사내를 발견한다.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길이 너무 멀고 참담해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서성임. 작가의 이전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섬’이다. 세상의 끝, 인식의 끝을 ‘섬’으로 상정한 작가의 끈질김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름답고 고즈넉하고 손때가 묻지 않은 아담하고 따뜻한 ‘섬’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득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참담함의 이미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아득함과 참담함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섬’에 닿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보통의 이야기, 나와 너의 이야기를 ‘섬’의 이미지에 투영해 낼 뿐이다.
“결혼을 했어도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애생이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p.108) <인생은 이렇게>
리사무소에 있는 주민현황표에 나온 여자주민들 중 스무 살 이하와 늙은이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을 좋아한 남편과 함께 사는 여자 ‘애생’의 인생은 그야말로 외딴 ‘섬’이다. 만약 가능한 일이었다면 마을 여자 전부에게 장가를 들려고 하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이 더 가관이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다.
“솔직하게 말해봐. 그놈이랑 뭔 짓을 한 거야?” (p.206) <그 여자의 연애사> <그 남자의 연애사>가 있었다면 당연히 <그 여자의 연애사>도 있어야 한다. ‘애생’의 남편이 마누라는 복창 터지는 줄 모르고 세상 편한 이야기를 지껄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복잡하고 다단하다. 이 사람이 있으면 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김없이 섬을 찾아와 아니, 자신을 찾아오는 박선장과 몸을 섞은 그 여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부리는 주사 섞인 추궁이 기가 막히다.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남자들의 시시콜콜한 과거사까지 감자 캐듯 캐내고 볶아대는 그 여자의 남편이 역겹다. 그저 빌어 붙어사는 주제에 남편이라고 욕지거리를 쏟아 낸다. 하지만 그 여자의 우악스러움으로 자식 놈들 키워 내고 이날 이때껏 살아냈다. 능력 없는 남편이라는 작자의 욕지거리는 먼지일 뿐이다. 그마저 술기운으로 악을 쓰는 모습이 애처롭기는커녕 더 화가 난다. 그 여자는 일격에 상황은 역전시킨다.
“솔직히 말해. 이 시간까지 그 관광객 여자들이랑 뭐했어?” (p.221) <그 여자의 연애사> 그렇다. 살아가는 꼴이, 모습이. 만화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복잡하다. 누구 하나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모두가 모두에게 ‘다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니,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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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빠지는 얍삽한 펀치가 아니라, 뒈지게 얻어맞을 것을 알면서도 덤비고 또 덤비는 맷집의 문장주의자..."(264쪽)
발문에 나와있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참 잘 쓴다, 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는 작가다. 짧은 내 독서이력에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민망하지만 잘 쓴다. 읽으면서 빨리 넘어가는 책장을 붙들고 싶다가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는 소설. 그래서 더 멋지다.
'사랑' 종교차원이든 그렇지 않든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가장 사람을 멋드러지게 만드는 것이 그것인 반면, 가장 슬프게 만들고 가장 비참하게도 만들어주는 것 또한 그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 사랑은 어땠으며 지금은 어떠할까? ..... 참으로 오랜만에 내 사랑을 떠올려 보게 되고, 지금의 사랑을 점검해 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젊은 한 때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사랑이 분명 있었을 것인데 지금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랑이 그렇게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사랑도 (글쎄~~~) 모르겠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내 삶에 있어서의 사랑이 싱겁기 때문에 한창훈 작가의 [그 남자의 연애사]에 실린 모든 사랑 이야기가 가슴을 울리고 서글퍼서 불쌍하고, 때로는 이별로 끝난 그들이 사랑이라는 추억을 부여잡을 수 있어서 부럽기도 하다. 매번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슬픔으로 끝나버릴 것을 알면서도 외로워서 오는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인물들이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해 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까.
섬이라는 특정한 공간이 주는 한계성으로 그들이 더욱 외로움을 잘 타고 그로인해 그들앞에 불쑥 나타난 사랑을 밀쳐내지 못하는 여린 그들에게서 그래서 인간미를 더욱 갖게 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별 것 아니라는 생각, 아주 일상적인 너무나도 자잘한 것들이라 의식도 하기 전에 내 몸에 배어 버리는 습관들이 어느덧 '사랑'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리 잡아버리는 것이 신기하다. '저게 과연 사랑이 맞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그 사랑이 끝이나 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사랑이 옆으로 와 버리는 그들의 일상사가 위태롭고 무질서하고 때로는 비도덕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되지만, 그들의 사랑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덧 소설 인물들에 동화되게 만드는 작가의 솜씨가 여간 아니라는 생각을 또다시 가지게 된다. 우리 일상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부딪히게 되는 것들을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잘도 버무리고 둔갑시켜버리고 모른 척 해버리는 작가의 능청스러움 또한 이 소설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이다.
이 순간도 이 소설과는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사랑으로 기뻐하고, 가슴앓이 하면서 밤잠 설치겠지만, 그러한 사랑이 있어서 그들의 삶이 더 숨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사랑의 슬픈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있어 안타깝지만 사랑은 분명 우리 삶에서 많은 부분을 휘두르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 휘두름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 아닐까.
이번만큼은 한창훈 작가의 작품을 내쳐 읽어가지 않고 두고두고 하나씩 꺼내서 읽는 꿀맛같은 설렘을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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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잘 생긴 사람들을 보면 괜히 가까이 여기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이성간에는 더욱 그렇다. 고등학교 시절에 걸어서 학교로 가는 길에 늘 마주치던 여학생이 있었다. 서로 학교가 엇갈려 있는 탓에, 등교 시간이 비슷한 길에 늘 같은 시간에 교차한 것이다. 마음이 많이 갔다. 예뻤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갔다. 그런데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했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관계였고, 그녀의 마음은 모르고 나만 설렘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그렇게 천진난만했다.
삶이란 것은 순간적인 체험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올 수 있다. 더구나 여성들의 삶은 더욱 그렇다. 이 책 속에서도 많은 사랑이 그려져 있고, 특히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아픔들이 많이 표현되어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채색된 아픔, 그 언어들을 읽고 있다. 책을 보면서 삶이란 것이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저자는 그 별 것 아닌 사랑의 이야기를 몇 편이나 그려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언어로 조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언어가 읽는 사람들을 많이 아프게 만들고 있다. 그 아픔의 자리를 따라가 보려고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 등장인물들에 대해 스스로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야기의 무대는 어촌이 많다 아마 저자의 생활반경이 그쪽이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다. 어촌의 생활을 잘 아는 사람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랑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글들의 배경이 거의 어촌이다. ‘그 악사의 연애사’도 ‘뭐라 말 못할 사랑’도 . ‘발’도, ‘애생은 이렇게’도 ‘판녀’도 거의 모든 소제목의 글들이 해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해안과 별로 관련이 없는 내용도 해안이 배경인 것은 그 쪽의 이야기가 하기가 좋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거리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일상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 이야기의 토대가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바다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바다를 통해서 듣고 있는 느낌은 또 다른 맛이 있다. 그것은 바다가 주는 광활함, 거침 등의 속성을 바탕에 깔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뭐라 말 못할 사랑’에서는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조금 부족한 여인을 이 세상과 다른 공간에서 온 듯한 존재로 치환하여 얘기를 만들고 있다.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여인을 만나 같이 살았는데 사라져 버린다. 그 여인을 찾기 위해 갖은 무속적인 노력을 한다. 하지만 여인을 찾을 수가 없고 그 여인을 결국은 인어에 빗대어 표현하면서 영원히 사라짐을 정당화하고 있다.
‘발’에서는 해안에 갔다가 쓰레기더미에서 발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신고함으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적고 있다. 본의 아니게 조사과정에서 참고인으로 잡혀 끔찍한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이 안쓰럽다. ‘애생은 이렇다’에서는 남편이란 작자가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예쁜 여인들을 병적으로 사랑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적고 있다. 부인과 사랑을 하면서도 그 여인들을 생각하고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다. 또한 시아버지의 경찰에 대한 황당한 행위는 약간의 웃음이 된다.
‘내 사랑 개시’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치기어린 사랑이 그려져 있다. 암울한 조건이 만들어내는, 사랑이라 착각하는 내용이 슬프게 그려진다. ‘판녀’에서는 어린 시절 겪었던 아픔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를 보여 주는 글이다. 읽으면서 쓰린 마음이 된다. 주인공들을 내 누이라고 생각할 때 아마 모두 공분하리라. 세상이 악하고, 그 악함이 인간들의 삶을 부정적으로 결정지어 가는 것을 보는 일은 서러움이다.
책은 제목이 ‘그 남자의 연애사’다. 그런데 소제목으로 ‘그 남자의 연애사’는 보이지 않는다. 소제목에 ‘그 여자의 연애사’는 있어도 말이다. 아마 모든 글을 통칭해서 그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나 혼자 생각해 본다. 보통 소제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책 제목으로 삼는데 조금은 특이하단 생각을 해보았다.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또 그렇게 보여 진다.
‘그 여자의 연애사’는 새벽 4시 대문에서 남편과 만나게 된 부인의 이야기다. 샤워를 하고 있는 와중에 남편에게 ‘무엇을 했느냐’는 공격을 받는다. 다른 남자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남편의 생각이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장사에 도움이 되는 선장과 밤을 보내고 들어왔다. 하지만 남편의 입장도 당당하지만은 않는 입장이다. 그러기에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자기들 드러내는 상황이 된다. 마지막에 가서 하는 여인의 말 ‘당신은 4시까지 뭐했나.’하는 말은 역공격의 말이 된다. 아픈 가족의 슬픈 이야기다.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는 사랑이야기가 8편이 들어 있다. 사랑이 정신적인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육적인 사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야기들이 모두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것이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하나의 장면이기에 내용을 용인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덕성과 질서를 구하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감정에는 조금 거리가 있게 다가온다. 아프게, 잘못 읽으면 애욕 소설로 인식되는 내용들이 펼쳐져 있다. 그렇게 마음에 와 닿는 내용들은 아니다.
조금 감성적이라도 마음의 미묘한 연결이 주는 사랑, 그 인간관계를 이루는 글들이 독자들의 마음에 더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너무 적나라한 육적인 욕망을 그려내고 있는 글들이 순수와 도덕을 추구하는 내 습성에는 잘 맞지 않다. 많이 아프게 읽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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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연애사가 참 애달프구나. 속아도 믿고 또 주는 그 남자의 연애사. 그것도 사랑이겠지. 이 또한 사랑이겠지 싶었다. 그런 것도 모두 사랑이겠지..나도 해봤던 사랑이 아닌가.
이 책은 섬이란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랑에 이렇게 맘이 쓰이다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나이가 들면 걱정이 많고 남의 일에도 훈수두고 싶은 법이니까 말이다.
주인공이 만나는 인물들의 사랑은 참 아프고 아리다. 참 많이 아리고 힘든 전쟁같은 사랑 이야기였다. 그들은 아직도 그 섬에서 사랑을 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여자가 그리워, 밥을 혼자 먹기 싫어서, 여러가지 이유로 그 남자의 연애는 시작되고 끝나버리고 다른 놈과 만나는 눈꼴시러운 장면도 속이 쓰리지만 받아넘겨야 한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가야하니까 말이다.
돈을 주고 사는 사랑도 그 남자에게는 사랑이라 했다. 남자들이 치마만 둘러도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말 맞는 말인 건 알지만, 믿고도 싶다.
애인있어요의 최진언이 말하는 사랑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사랑처럼 말이다. 드라마 속의 그 남자의 연애사를 보는 재미가 솔솔한 이유는 아내를 두번이나 보고 설레는 말도 안되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그 남자가 지진희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저자 한창훈에 대해 궁금해졌다. 그의 책들을 훑어보니 섬사나이의 진한 사내 냄새가 나는 글발이 제법인 작가였다. 그의 자산어보 시리즈도 흥미로왔고 그의 소설도 진한 바다 냄새가 났다.
그래서였을까. 인어와 비슷한 여인을 마음에 품은 사내 이야기도 어린왕자를 읽고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가 남편이 되는 애생이 이야기도 사람냄새가 물씬 났다.
섬에서 사는 섬사람들 사랑이야기가 참으로 구성지다. 그리고 애절하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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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풍경이 없다면 사람은 좀 덜 다치고 덜 한숨 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생은 그런 것들이 좋다. 바다 위로 지는 노을, 아침의 맑은 기운, 따뜻한 봄 날씨, 동박새 우는 소리, 벼랑에 핀 나리꽃…… 따져보면 사랑하는 대부분의 것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의 사랑이 늘 그런 것처럼 사랑은 소유와 아무 상관이 없다. 밤이 되자 서늘하다. 춥기는 하지만 친구란, 문이자 방이면서 이불과도 같다. 같이 있으면 포근하다. _「애생은 이렇게」
이 책을 읽고 '깊이', 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동안 읽었던 연애소설, 사랑이야기들은 달달하면서 낭만적이거나 비극적이면서도 마냥 부러웠던 연애들이었는데...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은 나름 아름다운 연애들이었지만 이런(부러운?) 느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다가온 사랑에 대해선 진지하고 열정적일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사랑=삶,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삶일 수도 있는 지나간, 아픈 사랑들이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소외된, 그들의 삶을 알고 있는 작가였기에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그 아픈 사랑을, 때론 가슴 짠~하게 또 한 편으론 마구 웃겨주면서 아무렇지 않게 들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무렇지' 않은 무심함에서 느껴지는 깊이!!! 그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글들. 그 사랑들이 어쩜 하나 같이 그토록 아름다워보였는지.. '남'의 '사랑'들이 이렇게 맘에 다가오다니. 연애란 갈증과 원망에 감염된 염증이 같은 부위에서 계속 재발되는 소모성질환 같은 것이다. 그런 게 없는 관계를 우정이라고 따로 부르면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여기는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고 한 이글스 돈 헨리의 작사에는 결함이 있었다. 돈 헨리가 그사이 연애를 몇 번 해봤다면, 세상 어디든 짧은 천국 긴 지옥일 뿐. 이라고 고쳐놨을 것이다. _「그 악사(樂士)의 연애사」 『그 남자의 연애사』에 나오는 그들의 사랑은, 평범하다 못해 이게 정말 사랑이라고? 의문이 드는 사랑들이다. 늘 보아 왔듯이 운명과도 같은 사람을 만나 첫 눈에 반하고, 그 사람 없으면 죽고 못사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삶에 찌들고 힘들지만 그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보듬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라 생각하고 살아'지'는 그런 '사랑'. 외로운 남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고 그 남자들을 거부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이게 사랑인가보다 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고 사랑이 삶이 되어 버리고 나면 그제야 아차, 이건 뭐지? 잠깐 떠올리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버렸고 모든 것은 과거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모르고 지나온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맞은편 섬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다. 보기 좋다. 여기서는 노을이 하루에 한 번밖에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녁노을이 지면 갈 곳이 저런 술집밖에 없거든요. 남편이 했던 말이다. 어린 왕자는 해가 지는 것을 마흔세 번이나 연속 봤다지 맞아 저 노을 때문에 결혼했을지도 모른다. 쓸쓸함. 어린 왕자는 쓸쓸한 것을 좋아했던 거야. 남편은 그게 싫었던 것이고. _「애생은 이렇게」 사랑은 어떤 형식으로든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어린 시절 아련했던 추억으로(「내 사랑 개시」), 흘러흘러 섬으로 들어와 외로운 총각에게 마음주고 살림을 꾸린 여자의 삶에서(「애생은 이렇게」), 인간인지 아닌지 어디선가 나타나 마음만 가지고 떠나버린 그녀를 못 잊어 애타게 찾는 외로운 총각에게도(「뭐라 말 못 할 사랑」). 다시 태어나고 싶지만 또 다시 그렇게 살아'질'까, 두려워하는 창녀(「판녀」)나, 찌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중년의 부부에게도(「그 여자의 연애사」). 아무나(!) 이런 연애이야기를 쓰진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되어 버린, 비슷한 시기에 읽었던 또 다른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지난 주에 읽은 어느 글에서 한창훈 작가의 책을 읽었다는 어느 분이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본인은 좋았다, 라고 포스팅한 글을 읽었다. 이 소심한 태도는 뭘까? 의외로 본인은 좋았다면서 권하지 않는 독자(?). 왜? 숨겨놓고 혼자만 읽고 싶다는 욕심..(움..나도 은근 그런 마음?^^;;)때문?!^^; 많이 사귀었지만 몸을 탐해서 접근을 하는 건지, 사랑으로 접근한 다음 애정이 식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도 진심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하루종일 떠드는 소리가 모두 진심이라니 그중에서 진짜를 골라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가 알 수 있었던, 그들의 진정한 진심은 마지막 말이었다. 군대 가야 해. 돈 벌러 배 타야 해. 학교에 가야 해. 동업하러 가야 해…… _「그 여자의 연애사」 달달해서 평생 그것만 먹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랑이, 결국은 "같이 밥 먹고 잠 잘" 사람이면 족한 것으로 끝나 버리는 일은 씁쓸하지만 그런 깨달음이 있으므로 우린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이 밥 먹고 잠 잘 '사람을 찾기 위해. 그게 비록 사랑이고 연애의 끝이라고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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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 'amor'이다. 'mor'는 죽음, 'a'는 저항하다, 사랑은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 단어를 알고 나서야 독한 불면과 눈물을 감수하면서까지 사람들이 거듭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의 연애사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Amor Fati (아모르 파티)'라는 말,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말이다. 요즈음 책 속에서 꽤나 많이 인용되고 있다. 나는 그동안 이 말 덩어리 자체를 기억해왔을 뿐이었는데, 사랑을 뜻하는 'amor'의 어원이 '죽음'과 '저항하다'에서 왔다는 것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 말의 어원을 아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옛날의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있기 때문인데, 그 오래전부터 '사랑'을 죽음에 저항하는 행위로 인식해왔다니, 한마디로 사랑은 '삶' 자체가 아닌가.
이 책, 한창훈 작가의 『그 남자의 연애사』는 바로 이전에 포스팅을 한 방현희 작가의 『로스트 인 서울』과 상반되는 부분이 많다. 두 작품 모두 단편 작품들을 엮어놓은 소설집이기는 하지만, 삶을 다루는 배경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로스트 인 서울』에서는 현대사회의 '도시'가 작품의 주요 공간적 배경, 장소였다면 『그 남자의 연애사』는 바다에 둘러싸인 어촌, 작은 섬마을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된다. 여성 작가가 쓴 도시 이야기를 읽다가, 남성 작가가 쓴 섬마을 이야기로 넘어와 읽게되니 소설을 읽는 묘미는 두 배가 된다. (앞으로 책을 읽을 때에는 무작정 읽기보다는 이렇게 선택적으로 읽기도 해야겠다.)
바다, 어촌마을, 작은 섬마을. 같은 바다라지만, 피서철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해수욕장과는 거리가 멀다. 주민도 몇 안되는 한적한 분위기의 작은 섬마을은 도시 생활에 있어서 피난지, 탈출구가 되어준다. 도시 속 복잡함과 소음 속에서 벗어나 자연속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하여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늘 가고 싶은 여행지로 꿈꾸는 1순위가 되고는 한다.
그러나 장기간 머무르는 것은 자신이 없다. 도시에서 쭉 살아온 이들에게 인적 드문 섬마을에서 터를 잡고 살라고 하면 잘 버틸 이가 몇이나 될까. 한적함과 고요함, 잔잔함, 여유로움은 시간이 지나 모두 지루함, 쓸쓸함, 외로움, 고독함이 되어버릴지 모른다.
한창훈 작가의 『그 남자의 연애사』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여러 문예지에 실린 그의 단편 작품들을 모아 엮어낸 것으로, <그 남자의 연애사>, <뭐라 말 못 할 사랑>, <발>, <애생은 이렇게>, <내 사랑 개시>, <판녀>, <무적이 운다, 가라>, <그 여자의 연애사>, <그 악사의 연애사> 등의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모두 어촌이나 섬마을이 배경인데, 흘러가는 인연이든, 지겹게 붙어있는 인연이든 그곳에도 어김없이 '사랑'은 존재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그가 말하는 사랑은 가벼운 것, 무거운 것 가리지 않고 잘 받아 먹는다. 한없이 쓸쓸하게 만들면 어떻고, 불타 없어질듯 뜨거우면 어떤가. 그래도 사랑이 아닌가. 어쨌든 내가 죽음 대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니까. 지나간 숱한 사랑 이야기를 파도를 안주삼아 술 한 잔에 흘려보낸다. 들어줄 이만 있다면, 다시금,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사랑이야기 아닐까.
'저쪽에서 봄바람이 부는가 싶은데 그만 내 가슴속에 꽃이 피어버리는 것. 쌍방이 그러한 것. 이쪽에서 마늘을 까기 시작하는데 저쪽에는 벌써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 그것 또한 서로 그러한 것. 그게 사랑 아닌가.' - <그 남자의 연애사> 中
'해가 지는 풍경이 없다면 사람은 좀 덜 다치고 덜 한숨 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생은 그런 것들이 좋다. 바다 위로 지는 노을, 아침의 맑은 기운, 따뜻한 봄 날씨, 동박새 우는 소리, 벼랑에 핀 나리꽃…… 따져보면 사랑하는 대부분의 것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의 사랑이 늘 그런 것처럼 사랑은 소유와 아무 상관 없다.'
'술과 사랑. 그것 없으면 섬에서는 못 산다. 그것은 어쩌면 섬에서 사람이 살아남는 법인지도 모른다.' - <애생은 이렇게> 中
'사람이 그렇게 안 죽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하고 슝, 사라진다면. 최소한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반듯하게, 단정하게 눈감고 가면 보기에도 좋을 것인데.' - <무적이 운다, 가라> 中
'그 나이 때의 연애는 길 걷다가 만난 꽃밭 같은 거였다. 보고 있으면 좋지만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아도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 <그 악사(樂士)의 연애사> 中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의 글을 또렷하게 구분해낼 수는 없겠지만, 또 일반화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느낌을 찾아본다면 여성작가는 인물의 내면을 거침없이 상세하게 서술하고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반면, 남성작가는 인물을 둘러싼 외부적인 것을 깊은 관찰력으로 둘러보고 주변세계를 잘 구축해낸다는 생각이 든다.
한창훈 작가가 그러했다. 작가는 인물 주변에 흐르는 공기를 통제하는 방법을 알고있다. 그 덕에 잘 구축된 작품 속 세계에서 우리는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하지 못했던 세계를 이해하도록 자연스럽게 설득하는 힘, 그것이 바로 한창훈 작가의 필력의 한 부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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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니 동네 문고에 있는 책에서 얼핏 보았지만 큰 관심이 없었기에 기억을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 책에 있는 작가 소개를 보고 나서야 아! 그 책을 이 작가님이 썼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내륙 중심의 시각으로 섬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긴 힘들다. 한창훈은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산 작가다.
그 남자의 연애사는 (문학동네 2013)에 실려 있는 아홉편의 소설 가운데 「내 사랑 개시」를 제외한 모든 소설의 공간이 섬이다. 그만큼 그는 섬이라는 주변의 시각으로 경험적인 삶을 서술하고 있다. 그 남자의 연애사에 극화된 “한동안 섬에서 살기로 작정한 나”나 「뭐라 말 못할 사랑」에 등장하는 ‘작가’는 소설 밖에 있는 작가와 구분되지 않는다. 작가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전달한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들이 ‘연애’라는 테마에 맞춰져 있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린 이야기는 사랑, 섬, 바다 그리고 추억이다. 자신의 연애담을 이야기해주는 그 남자의 연애사를 읽으면서 결국 그리운건 사람이구나.. 내옆에 나를 반겨줄 사람을 그리워 했던 남자의 이야기, 사랑에 자주 빠지는 남편의 이야기를 쿨하게 풀어내는 애생을 보면서 와~우 하고 외쳤던 애생은 이렇게도 참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었다. 아마 이건 작가가 여자들에게 바라는 남자들의 마음을 쓴건 가 하는 생각도 잠시했다. 몸을 팔고 그림을 그리는 판녀의 이야기는 참으로 슬프지만 그것 또한 사랑이야기이다. 그녀의 연애사나 그 악사의 연애사도 그들의 연애 스토리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이야기꾼 답게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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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된 건 내가 6개월간 금주하며 읽었던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품집들 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