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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수비대, 시의 변경에서 부르는 센티멘털 저격수의 노래
"국경수비대, 시의 변경에서 부르는 센티멘털 저격수의 노래" 내용보기
1. 휴일에 시집을 읽다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는 불량이 많다고 한다. 내 시의 대부분은 휴일에 씌어졌다.                                                         (7쪽)   라고 겸손인지 능청인지 모를 글을 ‘시인의 말’에 적어놓은 리 산의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읽었다. 그것도 참 공교롭게도 휴일에 읽었다. 우연이겠지만 혹시 그는 정말 불량시인이고 나 역
"국경수비대, 시의 변경에서 부르는 센티멘털 저격수의 노래" 내용보기

1. 휴일에 시집을 읽다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는 불량이 많다고 한다.

내 시의 대부분은 휴일에 씌어졌다.                                                         (7)

 

라고 겸손인지 능청인지 모를 글을시인의 말에 적어놓은 리 산의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읽었다. 그것도 참 공교롭게도 휴일에 읽었다. 우연이겠지만 혹시 그는 정말 불량시인이고 나 역시 불량독자여서 그랬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게야, 시란 맥주랑 동류로 취급될 수 없는 것이고, 그러니 시인의 시 쓰기도, 또한 독자의 시 읽기도 휴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테지, 라는 건 순진한 내 생각일 뿐이었다. 그 바로 뒤에 오는 차례에서 시들의 제목을 한번 쭉 훑어보고는 나는 곧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건 뭐,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제목들이 태반이었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인명이나 지명 따위로 점철된 시들이 수두룩했다. 파베세와 장고 라인하르트氏는 도대체 누구고 화절령과 호탄이란 곳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발푸르기스의 밤은 뭐고 테네브레 독본이란 또 뭐란 말인가? 불량한 시들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해하기 힘든 요령부득의 시들이 펼쳐질 거라는 강한 예감이 내 대뇌피질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무작정 시집의 책장을 넘겨 시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낮은 포복으로 전진 또 전진. 전전긍긍이 아니라 전진, 그러나 끙끙(!). 예상했던 대로 초벌 읽기는 힘겨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즐거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그 의미를 도무지 파악하기 어려운 자욱한 오리무중 속을 걸어가고 있는데도 말(言語)들이 그려내고 있는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구태여 뜻을 따지는 수고 없이 그저 읽으면서 말들이 그려내고 있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끌리는 시들이 참 많았으니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시.

 

행성 제니스 조플린

 

 

검은 콜타르가 칠해진 일곱 겹의 복도를 지나면

 

보내지 못한 편지로 가득한 방이 있어

 

손톱 밑에 긴 바늘이 꽂힌 여자 하나

 

흰 뼈를 달그락거리며 검은 벽 위에 편지를 쓰지

 

오래전 사라진 도시와 거리의 이름

 

이제는 흔적뿐인 나라의 우표들

 

그 여자의 바늘 끝에서 피어나는

 

먼지 낀 거미줄 속으로

 

한번도 읽히지 못한 말들이 사라지고

 

모렌도 모렌도

 

제 그늘 깊이

 

외따로 떠돌던 시간은 봉인되지

 

희끄무레 말라가는 여자가

 

달그락거리는 흰 뼈 위에

 

먼 옛날의 글씨를 쓰면

 

말들의 무덤 가득 돋아나는 붉은 살별들

 

이를테면 당신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억오천만 년쯤 된 이야기지                                                         (70~71)

 

몽환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느낌을 주는 이 아름다운 시에 등장하는 여자는 분명 제니스 조플린일 텐데, 그녀가 미국의 유명한 재즈 싱어라는 정도만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는 내 얕은 지식으로는, 몇 번을 거듭 읽어봐도 이 시를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인터넷 검색에 기댈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해서 새로운 사실, 즉 제니스 조플린은 블루스 가수로는 드물게 백인이었고 마약 과용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추가 지식을 더하고 그녀의 대표적인 히트곡도 찾아서 몇 곡 감상하고 난 후 이 시를 다시 읽으니 확실히 좀더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시의 의미를 해독하는 데는 그런 추가 지식들이나 원본의 감상이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시의 말미에서 읽은당신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는 구절이 내게는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어쩌면 시인은 의도적으로 의미로부터 벗어난 시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게 바로 그의 시가 나를 끌어당긴 묘한 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시 말고도 낯선 인명을 표제로 삼거나 포함하고 있는 시들은 거의 모두가 그랬다. 체사레 파베세는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서 자기 첫 소설의 주인공처럼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자살했다는 사실은 「토리노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파베세에게 묻지 못한 것들」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시를 이해하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한 장고 라인하르트는 프랑스에서 활동한 벨기에 출신의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18살 때 화상을 입어 왼손 두 손가락을 못쓰게 된 장애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와 부단한 연습으로 성공한 뮤지션이 되었다는 사실 역시 「장고 라인하르트氏」를 이해하는 데 별 쓸모가 없었다.

 

이처럼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나 묘하게 매력적인 시들로 가득한 리 산의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토요일과 일요일에 걸쳐 읽었다. 시들에 나오는 낯선 인명과 지명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가면서, 내가 모르고 있던 가수들의 음악들도 찾아 몇 곡씩 들으면서, 휴일에 (맥주는 없이!) 시집을 읽었다.

 

2. 피드백 주법으로 쓴 시

 

리 산 시인은 음악을 즐겨 듣는 모양이다. 제니스 조플린이나 장고 라인하르트 이외에도 너바나, 에디뜨 삐아프, 벨벳 언더그라운드, 애니 로리, 테네브레, 데스페라도 등 가수 이름이나 노래 제목(또는 악곡 형식)을 시의 표제로 삼거나 포함하고 있는 시들을 이 시집에서 여러 편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들 역시 마찬가지여서, 시의 제목이 언급하고 있는 가수나 음악에 대해 독자가 지니고 있는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그 시의 내용에 대한 이해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시인이 독서 또는 음악감상을 통해 알게 된 이런 가수들의 생애와 그들이 만들고 노래한 음악들이란 다만 그가 시적 몽상을 펼치게 하는 기폭제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 산 시인의 시적 몽상 속에서 그런 가수나 음악 들은 그들이 지닌 원본으로서의 형태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시인이 쓴 시는 비록 그들의 삶과 음악으로부터 촉발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인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시창작법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독자로부터 제기될 이 물음을 미리 예상했는지 시인은 친절하게도 그 대답이 될 만한 시 한 편을 이 시집에 실어 놓았다. 아래 시인데, 함께 읽어보자.

 

게리 무어의 피드백 주법을 위한 연주 독본

 

 

비보호 좌회전을 일삼던 마음도 직진을 하던 마음도 다 진심이었습니다만

 

교차로 신호등이 너무 많아 어느 순간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운전을 하면서 당신의 음악만을 리플레이 해서 듣는 까닭은 차 안에 있는 단 한 장의 음반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피드백 주법으로 연주되는 곡들을 들으며 다음 또 다음 곡에 이를 때까지 직진만을 하고 싶었지만

 

진땀이 나는 손은 자주 핸들을 놓치고 크기가 잘 맞지 않는 신발 속의 발은 액셀러레이터인지 브레이크인지 두 개의 페달 위에서 헛발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도록 연주할 때의 당신 눈빛이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환호하는 눈길에 중독된 늘 해시시에 취한 듯한 무대 위의 당신

 

원본을 되받아 증폭시킨다는 피드백 주법처럼 무대 아래 선 나도 당신을 조금씩 뜯어 말아 피워보고 싶었던 겁니다만

 

증폭된 것이 아무리 진하고 오래간다 한들 원각본만 하겠습니까 더구나 교차로에 서 있는 당신과 나 보통명사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인걸요

                                                                                               (54~55)

 

이 시가 표제로 삼은 인물 역시 뮤지션인데, 검색해보니 아일랜드 출신의 세계적 기타리스트(라고 하는데 왜 나는 여태 몰랐던 것일까?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 창피^^;;;)라고 한다. ‘블루스 기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게리 무어의 장기가 피드백 주법이었던 모양이다. 이 시에서는원본을 되받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간략하게 밝혀놓은 그 주법을 좀더 상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과 마주쳤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이 마이크로폰으로 들어가 앰프에서 증폭되어 스피커로 나와 다시 마이크로폰으로 들어간다. 이 현상을 하울링이라고 한다. 일종의 귀환발진으로 귀환루프 중에 신호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발생한다. 마이크로폰에서는 공기 진동을 흡수해 하울링을 일으키는 일이 많지만, 바닥으로 전달된 진동이 마이크 스탠드로 전해져 마이크로폰에 도달해서 발생할 때도 있다. 하울링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기타 주법이 피드백 주법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여기에 유튜브에서 그의 음악을 찾아 몇 곡 들어보니 피드백 주법이 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의도적인 노이즈 공명인 셈인데, 리 산 시인은 자신의 시가 바로 그렇게 피드백 주법으로 씌어졌음을 이 시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게리 무어나 제니스 조플린, 또는 애니 로리나 데스파라도 등 그가 삶에서 조우한 원본들을 그의 시적 몽상으로 증폭시켜 쓴 게 바로 자신의 시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피드백 주법으로 얻은 소리가 주선율과는 거의 무관한 일종의 효과음인 것처럼, 피드백 주법으로 쓴 시 역시 원본과는 거의 무관하다는 사실이겠다. 아마도 이 무관함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말임에 분명한 이 시의 마지막 행은, 그래서 자못 음미할 만하다. ‘증폭된 것이 아무리 진하고 오래간다 한들 원각본만 하겠습니까 더구나 교차로에 서 있는 당신과 나 보통명사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인걸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또한시인의 말에 쓴 글처럼 그의 겸손 또는 능청이 아닐까? 그가당신이라고 부르고 있는 원본들은 이미 보통명사로 전락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원본으로 삼아 자신만의 독특한 시적 몽상을 펼쳐놓고 있는’, 즉 시인 리 산은 아직 온전한 고유명사가 아닐까? 아니, 더 나아가 우리가 앞으로도 오래 눈여겨봐야 할 새로운 이름이 아닐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몇 편의 시들을 더 읽어야 한다.

 

3. 국경수비대의 눈이 멀어가는 저격수

 

이 시집에서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마주치는 단어 중의 하나는국경수비대인데, 그걸 제목으로 내세운 시들이 다섯 편이나 되고, 시어로 사용하고 있는 시들도 세 편이나 된다. ‘국경수비대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그와 연합할 수 있는 단어인이나저격수따위를 시어로 사용하면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시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이십 편에 육박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모두 55편이니, 이 정도면 시인이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그 중 한 편을 골라 함께 읽어보자.

 

검정은 색깔이다

 

 

시간을 읽는 방법으로는 4997개의 길이 있지만

그건 완전히 다른 식으로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웅크린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본다

새벽 세시 낯선 고도

 

상처받은 채로

가책도 없이

 

지난밤에는 죽은 사람들의 손톱으로 만든 배를 타고

긴 불면의 강을 떠다녔다

처녀들의 노래를 듣고 싶었는데

길 잃은 양과 말을 위해 나 혼자 노래를 했다

 

두고 온 것도 기다리는 것도 없지만

귀환하는 국경수비대처럼 산림감시원처럼

얼굴을 가리고 황금빛 사막으로나 가고 싶다

 

일람표와 통계로 가득 찬 서랍에 못질을 하고

작은 황조롱이 하나 머리 위에 띄우고

그곳으로 가면 불면이 완성될 수 있을까

사라져버린 외로운 창자를 만날 수 있을까

 

바람은 불어 사막을 서성이는 차도르가 펄럭이고

검은 눈동자 속 주홍빛 허벅지

흥청이는 바람을 다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

아무도 배가 고프지 않도록

 

먼 산에 눈이 쌓이면 독사의 입 냄새가 약해지고

새들의 가슴에 살아남은 들꽃의 씨앗이

모래산을 넘어 먼 곳까지 날아간다

 

몇 번의 그믐을 더한 어둠

잊혀진 도시를 수십 번 뒤덮을 모래 먼지 속에

뒤적뒤적 이름들을 새겨 넣으며

불면의 시간인지 불멸의 시간인지나 탕진해야지

 

꽃송이 팡팡 터지는 화승포를 쏘아대며

10월의 혁명이 가고

11월의 혁명이 온다

 

상처받은 채로

가책도 없이                                                                                (18~19)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시다. 그래도 거칠게 시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불면의 밤을 지새우곤 하는 시의 화자가황금빛 사막이라고 표현된 곳으로 가서 자신의 불면을 완성시켜 줄불멸의 시간을 누리고 싶다는 것이 골자다. 그걸귀환하는 국경수비대처럼 산림감시원처럼/ 얼굴을 가리고가서, ‘뒤적뒤적 이름들을 새겨놓으며시간을 탕진하면서, ‘상처받은 채로/ 가책도 없이해보고 싶다는 말인데,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이런 꿈을시 쓰기라는 작업을 통해 이미 현실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이 시집이 바로 그 꿈이 이룬 찬란한 결실로 여겨지니 말이다.

 

이 시에 나오는국경수비대가 시인 자신의 군대체험에서 나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함께 읽은 여러 시편들까지 고려에 넣는다면, 시라는 공화국의 국경을 지키는 시인들에 대한 은유임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동서, 고금, 의미와 상상력 그리고 현실과 몽상이 접경을 이루고 있는 그 국경의 계절은 겨울이어서 자주 눈이 내리거나 안개로 자욱하고 때는 주로 저녁이거나 밤이어서 어둡고 적막하다(현재 한국의 시단이 그만큼 음울하다는 뜻일까?). 그곳에서 리 산 시인은저격수인데, 문제는 누구보다도 눈이 생명이어야 할 그 저격수가 점점 눈이 멀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럼 나는 나무와 나무를 두드리며 그 여자 없는 강가 마지막 눈물이나 길으러 가야지 눈멀어 눈멀어 그 여자 마지막 거짓말이나 돼야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잡꾼」)

 

말하자면 나는 옛날 거닐던 강가 안개와 바람을 먹이는 한 마리 검은 짐승 제 발자국 안에 제 발자국을 새기며 걷는 천천히 눈멀어가는 저격수 (「그리워라 애니 로리」)

 

눈벌판을 내내 달려와 반쯤 멀어버린 두 눈에

산림조합 산불조심 흰 기둥에 쓰인 초록 글씨가 보이면

비로소 귀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산」)

 

이렇게 여러 시들에서 읽게 되는 시인의 시력 상실은 이 시집의 첫머리에 나오는 시의 제목인오드아이(odd-eye)’, 즉 홍채이색증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역시 검색을 해보았더니 과연 눈이 멀 수도 있는 증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드 아이’(odd-eye)는 눈이 짝짝이라는 뜻이며, 보통 양쪽 눈 색깔이 다를 때 쓰인다. 의학적으로는 홍채 세포의 DNA 이상으로 멜라닌 색소 농도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과다색소침착과 과소색소침착에서 비롯된다.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96%이며 주로 백인에게 나타난다. 후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외상이나 녹내장 치료를 위한 약물 치료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이런 경우는 실명할 위험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리 산 시인이 실제로 오드아이를 가졌는지, 그래서 정말 점점 눈이 멀어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집에 유난히 가수와 음악에 관련된 시들이 많이 나오는 사정을 이로써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그러하든 아니면 시적 은유(아름다움을 노래하기보다는 의미를 더 앞세워 목소리만 드높고 시적인 이미지에 대해서는 눈이 먼 시들이 지배적인 한국의 시단에 관한 비판적인 은유?)이든 간에, 점점 눈이 멀어가는 시인에게 있어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음악이야말로 시적 몽상의 도구였던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위에 인용한 시 「검정은 색깔이다」의 제목의 뜻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차츰 눈이 멀어가면서몇 번의 그믐을 더한 어둠속에서 살게 된 시인에게 보이는 세계란 검정색 일색인데, 그에게는 그 검정색 속에서도 꿈꿀 수 있는 시가 있으니 검정색도 색깔인 것이다. 물론 그 시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는 검정색이 아니라 온갖 색채로 물들여 있음은 당연한 일이겠다.

 

이처럼 리 산 시인은 의미과잉으로 점점 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시 공화국의 변경에서 참된 시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하여 불면을 마다하고 깨어 있는 저격수이다. 국경 너머 더 깊고 넓은 상상력의 땅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이 야심만만한 저격수가 쏘아 맞추고 있는 시적 몽상은 아름다운 울림이다. 그 울림을 도취된 듯한 유연한 언어로 포획해서 노래한 아름다운 시들이 바로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인 것이다.

 

4. 센티멘털 노동자 만세

 

하지만 시인의 이 고단하면서도 의미 있는 작업을 방해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자본이다. 자신의 육체적, 지적 노동을 시장에 팔아야만 유지되는 생활 앞에서 시인은 안타까워한다. 자본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틀 속에서 시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테니까 말이다.

 

아니, 오히려 시인은 자본이 우리의 일상에 구축해 놓은 정교하고 빈틈없는 시스템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더 많이 고통 받는 존재이다. 이 시스템 내에서는 하루의 대부분이 생활을 위한 노동의 시간을 중심으로 채워지기에 시 창작을 위한 시적 몽상의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이란 거의 예외 없이, 은퇴할 때까지 무한 반복되는 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가 있다. 시인 자신까지도 포함하는 그런 현대인들을 시인은테일러주의자들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테일러주의자들

 

 

버려진 후궁처럼 궁궐의 후원을 걸어봐도

텅 빈 모자 속을 휘젓는 마술사의 심정으로

평일 오전 도심을 배회해봐도 아무것도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등 뒤에 두고 온 컴퓨터 속의 문서들과 전화벨 소리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물음들

 

내일이면 나는 다시 800번 라인에 서게 될 것이고

600번 라인에도 가게 될 것이다

900번 라인에는 말할 수 없는 심정으로

오방색으로 치장한 안경을 쓰고 가지만

그곳에 갈 때 나는 그렇게 한다

최근에는 지나간 서울의 봄에 보았던 것을 보았다

잠시라도 품에 안고 싶었나

무엇으로도 도취되지 않는 날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치의 노동을 끝내고

빈방으로 돌아와 책꽂이 사이 술병을 찾아내는 센티멘털

한밤중 시를 노래하는 것은 크게 상서롭지 못하다는

언젠가 읽었던 산림경제 국역본의 글을 다 믿진 않지만

시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 혼잣말이나 중얼거리네

 

청계천은 내린천 내린천은 타호강 타호강은 북한강                          (40~41)

 

무엇으로도 도취되지 않는그런 날들, 그리고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치의 노동을 끝내고/ 빈방으로 돌아와 책꽂이 사이 술병을 찾아내는 센티멘털이 우리가 누리는 위안의 전부인 그런 날들. ‘한밤중 시를 노래하는 것은 크게 상서롭지 못하다는 선현의 말이 아니어도, 몸과 마음이 다 지친 그런 날 밤에는 시는 쉽게 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시도 아니고 노래도 아닌 혼잣말이나 중얼거리는 것이다.

 

그 중얼거림이 만들어내는 건, 고작청계천은 내린천 내린천은 타호강 타호강은 북한강이라는, 끝말잇기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주문도 아닌 이상한 말들이지만, 놀랍게도 그게 시인을 위로하고 또 그걸 읽는 우리를 위로한다. 이 시집에 모아놓은 리 산 시인의 많은 시들이 그렇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으면서도 왠지 마음이 끌리고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보아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따라서 리 산 시인에게는 일주일이 모두 이런 시들의 창작에 바쳐져야 마땅하거늘, 아쉽게도 고작 휴일에나 그게 가능하다.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휴일에 공장에 나가 기계가 만들어내는 맥주의 제조를 거들어야 하는 일이란 또 얼마나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인가.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에 불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겠다. 하지만 시인이 휴일에 시 창작, 즉 센티멘털 노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니 불량품이 나올 리가 없다. 대부분 휴일에 씌어진 시들로 채워진 이 시집이 불량품일 리가 없는 확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겠다.

 

그런 시집을 나는 지난 토요일, 일요일에 걸쳐서 참 즐겁게 읽고 월요일, 화요일에 걸쳐 리뷰를 썼다. 내 리뷰는 그렇다면 불량일까? 적어도 나는 불량독자는 아니라고 자신하지만 내가 쓴 리뷰도 과연 그러할까? 이 같잖은 리뷰를 쓰느라고 센티멘털 노동보다는 어쩐지 인텔렉추얼 노동을 더 많이 사용한 것 같으니 영 자신이 없다. 아무쪼록 쓸모없는 노력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라쇼, 센티멘털 노동자 만세!



c*****t 2013.10.30. 신고 공감 1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쓸모있기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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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문학 작품이라도 詩를 통해서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소설을 통해서 작가의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은 차이가 나는 듯 합니다. 시인의 마음이 詩라는 작품을 통해서 더욱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2. 시집 제목이 주는 느낌이 독특합니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라. 시인은 책 표지 안쪽과 시집 첫장에 이런 말을 적었군요.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는 불량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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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문학 작품이라도 詩를 통해서 시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소설을 통해서 작가의 마음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은 차이가 나는 듯 합니다. 시인의 마음이 詩라는 작품을 통해서 더욱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2. 시집 제목이 주는 느낌이 독특합니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라. 시인은 책 표지 안쪽과 시집 첫장에 이런 말을 적었군요. '휴일에 만들어진 맥주는 불량이 많다고 한다. 내 시의 대부분은 휴일에 씌어졌다." 오히려 시인의 이런 솔직한 고백이 마음에 듭니다.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신감으로 그려집니다. '센티멘탈 노동자 만세'란 타이틀이 독자를 맞이합니다. 노동자의 휴일에 담은 시상이군요. 그나저나 노동자에게 센티멘탈은 약이 될까요? 아님 그 반대일까요?


3. 시집의 제목으로 등장하기도 한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전편을 옮겨봅니다. 이 시는(시인의 다른 시도 그러하지만) 연이 없이 문장이 깁니다. 숨은 알아서 눈치껏 쉬셔야 합니다. 


그 박물관에 걸쳐진 코카사스 산맥 가슴팍에는 백야가 출렁이고 골짜기마다엔 흑야가 깊었지 보랏빛 유리알 샹들리에 불빛으로 앵두주와 체리주가 익어가던 시절 쿠바 축음기안의 밥 딜런과 존 바에즈는 아직 사랑을 하고 검은 모래 해안가 로큰롤 가수는 은빛의 징을 번쩍이며 노래를 불렀지.  까만 턱수염의 사서가 조는 밤이면 스파트필름 이파리 속 풍경은 더욱 느리게 돌아갔어 잠 깨어난 마법 등잔 속 지니가 어깨를 흔들며 긴 숨을 쉬면 지니의 숨결 속에는 작고 검은 꼬리요정이 살아 밤새 책 위를 술잔 위를 날아다니며 길고 진한 그림자를 새겼지. 산초나무 여린 이파리 폴리셔스 그늘 속으로 하롱하롱 지는 달과 쇠의 공항 2046 게이트를 지나면 델피의 부서진 바람이 불고 교토의 산산한 봄이 피었다 지는 박물관이 있지


4. 이 시를 대하시면서 어떤 그림이 그려지시는지요. 코카사스 산맥에서 교토까지 이어지는 여정인가요? 배경은 시의 제목처럼 '박물관'이군요.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이 시의 모티브군요. 백야와 흑야가 상존하는 그 곳. 그곳은 아마도 우리가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 땅 어디에도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쿠바 축음기는 체 게바라를 생각나게 합니다. 느닷없이 오버랩되는 책 속 한 구절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쿠바인들이 가진 파괴적인 습성 가운데 하나." (쿠바망명객의 딸 에이나 메네데즈의 '사랑하는 체 게바라 / 끌림. 2007) 


5. 박물관과 '과거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서로 엮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체 게바라를 생각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혁명'입니다. 노동자의 혁명은 무엇일까요? 사장을 내쫒고 사장하겠다는 건가요? 아니지요. 그저 사람 대접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힘들여 일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접과 보수를 받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이 기본적인 것 조차도 안 지키는 경영자와 운영자가 얼마나 많은지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6. 그러고보면 이 시의 분위기는 좀 우울하군요. 참. 체 게바라는 밥 딜런과 존 바에즈의 노래를 좋아했을까요? 그랬을지도 모르겠군요. 세 사람의 공통 키워드는 '자유'니까요. 그나저나 지니는 왜 저러고 밤새 돌아다니는지..누가 불러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젠 사람들이 하도 속아 살아서 지니 같은 요정도 별로라고 합니다. 주는 건 바라지도 않을테니 더 뺐아가지만 말아다오.


7.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내 안에도 있군요. 쓸모없는 노력을 '헛된 노력'으로 바꿔도 뜻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헛된 노력'은 '헛된 꿈'과 같이 놀지요. 미처 이뤄지지 못한 꿈이라고 해서 '헛된 꿈'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겠지요. 그러나 지난 시간 돌이켜보면 그 땐 분별력이 없기도 했지만, 허망한 꿈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는지 후회스럽습니다. 박물관의 전시품들은 그저 눈으로만 보는 것이지요. 그나마도 일정한 거리 이상 접근을 하면 안되지요. 그러니, 헛된 꿈과 그렇지 않은 꿈은 이런 차이인 듯 합니다. 그저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오기와 객기로 시간을 죽이느냐 아니면 '쓸모있는' 노력을 통해 무언가 성취감을 나누고 내 주변은 물론 넓은 범위까지 멋진 영향력을 주며 사느냐는 온전히 나의 몫과 나의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력이 쓸모 있어진 박물관'은 세워 봄직 합니다.




이달의 사락 s******5 2013.10.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노래책시렁 208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노래책시렁 208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내용보기
숲노래 시읽기 2022.1.1. 노래책시렁 208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리산  문학동네  2013.5.31.       바람이 불다가 바람이 잡니다. 구름이 흐르다가 구름이 걷힙니다. 비가 오다가 눈이 되고, 눈이 흩날리다가 해가 뜹니다. 일찍 자리에 누운 아이가 일찍 일어납니다. 늦게 잠자리에 든 아이가 일찍 깹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웅크리고, 이불을 걷어차고서 마당으로
"노래책시렁 208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내용보기

숲노래 시읽기 2022.1.1.

노래책시렁 208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리산

 문학동네

 2013.5.31.

 

 

  바람이 불다가 바람이 잡니다. 구름이 흐르다가 구름이 걷힙니다. 비가 오다가 눈이 되고, 눈이 흩날리다가 해가 뜹니다. 일찍 자리에 누운 아이가 일찍 일어납니다. 늦게 잠자리에 든 아이가 일찍 깹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웅크리고, 이불을 걷어차고서 마당으로 뛰어나갑니다. 쌀을 씻어서 불리고, 솥에 물을 맞추어 밥을 안칩니다. 햇볕을 머금으며 물을 한 모금 누리고, 별이 쏟아지는 밤에 조용히 춤을 춥니다. 이렇게 보내는 하루 가운데 ‘돈이 될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 한 가지조차 없을 만합니다만, 즐거울 길을 생각하며 걸어가노라면 ‘돈이 될 일’은 어느 날 문득 살포시 찾아든다고 느껴요.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을 읽었습니다. 쓸모없을 땀방울이 있다고 여긴다면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덧없는 땀방울은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애써 달렸는데 막다른 골목이라면, 이 골목까지 오면서 누린 해바람이며 골목빛으로도 넉넉해요. 먼길을 찾아갔는데 닫았다면, 이 길을 오는 사이에 맞이한 생각이며 발걸음으로 널널합니다. 스스로 쓸모있다고 여기니 쓸모있고, 스스로 값었다고 바라보니 값없습니다. 스스로 웃으려 하니 웃고, 스스로 울려 하니 울어요. 스스로 꾸미니 겉치레로 나아가고, 스스로 노래하니 별이 됩니다.

 

ㅅㄴㄹ

 

천 개의 거짓말을 모아놓고 하나의 비밀이라 써보았지 먼곳에서 밀려온 유빙이 생을 다하는 밤 시베리아 붉은여우가 제 냄새를 눈펄에 묻히며 마지막 벌판을 지나가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잡꾼/16쪽)

 

너는 몸이 아프고 나는 마음이 아프니 너와 내가 결의하면 환(幻)의 제국을 세우겠구나 (심금心琴/80쪽)

 

 

스스로 읊는 말은

스스로 짓는 글로 간다.

글(문학)은 왜 쓸까?

글(문학)은 서로 무슨 빛일까?

 

교과서가 사라져야

비로소 슬기롭게 배우면서

글이 글대로 빛나리라 느낀다.

 

이달의 사락 h*******e 2022.01.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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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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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시인이다. 리산.그리고 이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그의 첫 시집이고.등단한지 7년만에 첫 시집이란다.처음에 시인 이름만 봐서 남자 시인인줄 알았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제목을 주욱 훑어봤을때 왠지 박정대 시인이 생각나서 더 남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치의 노동을 끝내고빈방으로 돌아와 책꽂이 사이 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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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시인이다. 리산.

그리고 이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은 그의 첫 시집이고.

등단한지 7년만에 첫 시집이란다.

처음에 시인 이름만 봐서 남자 시인인줄 알았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의 제목을 주욱 훑어봤을때 왠지 박정대 시인이 생각나서 

더 남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하루치의 노동을 끝내고

빈방으로 돌아와 책꽂이 사이 술병을 찾아내는 센티멘털

- 테일러주의자들


세상 저쪽은 안개가 깊어

망설이며 떠나던 누군가는

지연되는 편도행 승차권을 찢어버리고

잠결에도 기다리는 품속으로 되돌아오기도 하겠지

- 국경 트레일러 남쪽


목소리가 그리운 날에는 혼잣말을 한다

- 서쪽의 국경수비대


괜찮다 다 괜찮겠지

나는 내 별자리 아래 서 있을 뿐이니

바람 소리 빗소리가 그리우면

꺼지지도 살지도 않는 불씨를 뒤적이며

밤을 잊었네

- 황산의 먹 만드는 사람


한순간도 너를 잊은 적은 없지만

나는 이제 저무는 거리에 혼자 서 있지 못하겠구나


이토록 외로운데 우리

듀엣으로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함께 승천할 수도 없으니

헤어지는 거리라도 같이 해볼까

- 그럴지라도 데스페라도


그립다는 말 바람결에 돌아오니 능소화 가지마다 불덩이구나 더러 눈시울에 맺히는 것이 툭툭 지는 꽃멍울인지 눈물방울인지

- 산악(散樂)


성기완 시인이 쓴 해설을 보면 '시가 어떻게 혁명에 관여하는지 잘 알려준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도 혁명이라는 말을 쓰거나 생각할 일이 없는 나는 읽어도 잘 모르겠다.

몇번 더 읽어보면 알수 있으려나...

e*****e 2017.02.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