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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사고의 잔재를 떨어내려는 우리의 몸부림
"가부장적 사고의 잔재를 떨어내려는 우리의 몸부림" 내용보기
[서평]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결혼 후 아이없이 5년 이상을 지낸 우리 부부는 친구들이 같이 자취하는 것 처럼 대충 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매일 저녁에 남편의 저녁을 챙겨주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남편이 내게 저녁상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 남편은 외국인이라 누구보다 남녀 평등의식이 강한 사람인데 늘 나 혼자 죄책감을 느꼈다.아이를 낳고 나니
"가부장적 사고의 잔재를 떨어내려는 우리의 몸부림" 내용보기

[서평]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결혼 후 아이없이 5년 이상을 지낸 우리 부부는 친구들이 같이 자취하는 것 처럼 대충 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매일 저녁에 남편의 저녁을 챙겨주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다. 남편이 내게 저녁상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리 남편은 외국인이라 누구보다 남녀 평등의식이 강한 사람인데 늘 나 혼자 죄책감을 느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이 죄책감은 더 했다. 자식에게 손수 밥을 지어먹이지 않고 배달을 시키거나 인스턴트를 먹이면 왠지 좋은 엄마나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실패자인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던 중 영어스터디모임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 모임에 참여한 분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이나 자기 자신의 삶에 집중하시는 여성 분들이셨다. 이 분들께 나의 고민을 나누자 하나같이 입모아 "도대체 네가 맞벌이인데 왜 밥을 해야되며 사먹고 배달시켜 먹는 것에 왜 죄책감 따위를 느끼냐" 며 심지어 집에서 밥을 안 해먹어 밥솥이 없다는 분들도 계셨다.



그 날 이 주제로 10분 남짓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10분 이 후 부터 오랜 기간 내가 느껴오던 압박이 완전히 해소되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나만 그런가? 나만 이상한가?' 라고 고민할 때 '너만 그런거 아니야. 다 그래. 너가 이상한게 아니야' 라는 지지가 주는 힘은 엄청났다.



저녁 식사 뿐 아니라 수많은 자잘한 '엄마'와 '아내'의 역할을 매일애일 꾸역꾸역 쳐내가며,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데 내려놓지도 못하면서, 불공평하다고 억울해만 하는 내 자신의 모순된 모습을 보며 늘 복잡한 감정을 느껴왔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마이뉴스' 에서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라는 연재물 중 한 줄을 읽고서 37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 내재화 되어있는 가부장의 잔재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늘 궁금했다. 내 마음은 왜 항상 이렇게 복잡한지 늘 궁금했고 남들은 다 무던히 잘 사는데 왜 나만 유난스럽게 생각이 많은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 자체도 죄책감이 들었다. 무던한 아내나 무던한 엄마랑 살면 우리 가족들도 더 행복했을텐데 라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미안할 일이 전혀 아닌데 늘 미안하던 내 마음이 스스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던 칼럼.



그 연재 글들을 엮어 송주연 작가님의 신간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가 탄생되었다. 책의 대부분의 글들은 오마이뉴스 연재 중 보았던 글들이 분명한데 이번에 읽으니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마이뉴스 연재글을 읽을 때 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게 꾸역꾸역 힘들거나 마음이 힘들지 않았다.



연재 글을 읽던 시절보다 쉬이쉬이 페이지를 넘긴 걸 보면 그 사이 나 자신이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나의 복잡한 감정의 원인을 송주연 작가님이 활자로 정리해준 걸 눈으로 읽음으로써, 거리를 두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위에서 언급한 영어모임에서 가졌던 10분의 수다 시간에서 얻은 것 처럼 나만 이러는게 아니란 것, 나 혼자가 아니란 걸 느끼고 나니 나의 복잡한 마음이 많이 풀린 것 같다. 기억해보면 어느 순간 부터 나는 저녁밥을 안해도 집이 좀 더러워도 죄책감을 갖거나 나의 바지런하지 못함을 탓하지 않는다.



애 둘 키우면 공부방 운영하고 강사 뛰고 부동산도 배우고 블로그도 하고 우리 가정을 위해 구성원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가부장적 사회가 바라는 여성상에서 조금 엇나간다고 해서, 예전처럼 몰아세우지 않는다.



내가 이전 보다 이기적이 되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니 오히려 가족 모두가 더 편안해졌다.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부동산 학원가서 수업을 듣고 온다.



배우고 싶은 것 맘껏 공부하니 그 기쁨이 있고 내가 공부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아주었으니 그 고마움도 있고 여러모로 긍정적인 감정이 충만해지니 아무래도 더 웃는 낯으로 신랑을 대하게 된다.



가정 주부로서의 역할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저녁 외출을 삼가하고 집에만 있으면서 자기계발을 못한게 과연 가족을 위해서도 좋았던 일인가 싶다.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해 억울한 마음에 인상쓰고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틱틱대면 남편은 내가 왜 속상한지도 모르고 감정적인 공격만 당하게 된다.



이런 모든 이야기가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책에 있다. 작가 송주연 작가님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고 내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였다. 이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다.



별시덥지않은 이 시대를 사는 보통 여자의 삶을 그린 [82년생 김지영]이 얼마나 큰 히트를 쳤는가. 별시덥지않은게 시덥지않은게 아니었던거다. 다들 내색만 안 할 뿐이지 마음 속은 엉켜있고 곪아있다.



[82년생 김지영] 에 공감하는 여성이라면 꼭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송주연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어보길 바란다. 가부장제의 잔재를 마침내 떨쳐버리고 아내, 엄마의 역할이 아닌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며 사는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어줄 인생 책이다.    


n****a 2020.06.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