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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우리 역사로 끌어 들이려는 최초의 시도
"발해를 우리 역사로 끌어 들이려는 최초의 시도" 내용보기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시키고자 처음 시도한 이가 유득공이란다. 시대를 따져 보면 정조대. 1700년대 후반이다. 그 전까지는 발해를 아무도 우리 역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가 이 책을 지은 것은 서얼 출신이었음에도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어 귀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던 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시를 짓는 것에 재능이 있었던 그를 명실공히 역사학자로 자리매
"발해를 우리 역사로 끌어 들이려는 최초의 시도" 내용보기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시키고자 처음 시도한 이가 유득공이란다. 시대를 따져 보면 정조대. 1700년대 후반이다. 그 전까지는 발해를 아무도 우리 역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가 이 책을 지은 것은 서얼 출신이었음에도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되어 귀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었던 덕이기도 했을 것이다. 시를 짓는 것에 재능이 있었던 그를 명실공히 역사학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바로 이 발해고(渤海考). 책이름에 굳이 고()를 붙인 것은 역사서로서의 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단지 자료정리에 그쳤기 때문이라고 서문에서 스스로 말하고 있다.

 

워낙 명성이 자자했음에 기대도 컸으나 살짝 아쉬운 면도 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위치를 추정함에 있어 현재의 지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그것. 당시의 사료인 당나라 역사에 평양은 만주에 있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굳이 그것은 잘못이라고 하며 북한의 평양이 맞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것은 번역자도 마찬가지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요즘 새롭게 밝혀지는 학설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에 보낸 발해의 국서내용도 마찬가지. 내용을 읽어보면 이것은 완전한 신하국이 종주국에 보내는 것인데 발해가 실제로 일본의 종속국이었다고는 믿기지 않지만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외교상의 관용적인 문장을 그대로 직역해 놓은 것 같은 번역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기록들에 대해서는 글자 하나하나까지 잘못된 점이나 오류를 지적하면서 말이다.

 

책의 절반은 원문이 실려 있다. 따라서 실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은 편. 그저 발해를 우리 역사로 끌어 들이려는 최초의 시도였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지 뒷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r****l 2020.12.07.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