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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바다, 인문학으로 항해하다
동북아라고 하면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대만, 북한, 러시아의 나라를 의미하고, 동북아 나라들은 모두 바다로 연결되어 있어서 바다를 통한 교류가 많았다. 우리와 중국은 개항전까지는 외국인과 해양교류를 금지하였으나 서구의 개항압력을 받아 개항 이후로 바다와 접한 많은 도시들이 개발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부산, 원산, 인천 등이 일본에 의하여 강제적 개항되었고, 그후 군산, 목포, 청진, 여수, 함흥 등이 순차적으로 개항되어 큰 도시를 이루었다. 조선시대만해도 그러한 도시들은 작은 어촌에 불과하였으나 중국과 일본의 교류 영향으로 해안 도시는 내륙의 도시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 중국의 경우에도 텐진, 칭타오, 상하이, 홍콩, 선전, 마카오, 광저우 등이 대표적인 해안 도시이다. 일본도 미국의 흑선 함대에 의하여 강제로 개항당하여 요코하마, 고베, 하타코테, 니카타, 나가사키 등이 개발되었다. 이렇게 동아시아 3국은 개항을 전후로 여러 해안 도시가 개발되면서 상호교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천의 경우는 1883년 1월에 정식 개항을 통해서 근대화의 문물들이 인천항을 통하여 들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전화, 커피, 사이다, 성냥 등이 있다. 이러한 개항의 역사는 서구 문물의 전래와 관련이 깊다. 그래서 이러한 개항도시에는 서구의 건물양식들이 많이 도입되었고, 인천이나 군산, 목포 등에는 서구나 일본풍의 건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인천의 경우에는 외국인 묘지도 있어서 3곳에 중국인, 일본인, 외국인 묘지가 지금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서구 강국이 만든 조계들이 서로 연결되어 외국인들이 일본, 중국, 한국을 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이전에 개항하여 외국인이 거주한 곳은 부산의 초량왜관이나 일본 나가사키의 데지마가 있다. 일본은 데지마를 통해 난학을 수입하여 많은 지식을 획득하였으나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인들을 왜관에 한정하여 살도록 하고 그들의 지식을 받아들이는데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근대화에 대한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해양네트워크는 외부의 세력이 침략하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인류 지식의 이전 통로이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청나라 말기부터 도쿄로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많을때는 매년 1-2만명이 갔다고 한다. 그것은 일본 요코하마와 중국 상하이간에 기선을 타고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루쉰의 경우에도 1902년에 도쿄로 유학을 가면서 난징에서 출발하여 요코하마까지 배로 10일이 걸렸다. 난징에서 상하이로, 상하이에서 시모노세키, 고베, 요코하마를 거쳐서 도쿄는 기차를 타고 갔다. 기선의 등장은 동아시아의 교류를 확대시켰는데 우리는 1890년에 이르러야 오사카와 부산 사이에 기선 항로가 생겼다. 오사카와 인천간의 기선은 1893년에 생겼다. 지금은 인천에서 오사카 가는 배는 없고, 부산에서 시모노세키와 후쿠오카 가는 배만 있다. 당시 일본에는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인도, 베트남에서도 서구문물을 배우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모였다고 한다. 오사카로 가는 기선이 있다보니 일제시대에는 한국에서 일자리가 없던 사람들이 오사카에 가서 일하고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우리 재일교포가 가장 많은 곳도 오사카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사람들이 오사카에 많이 진출했고, 나중에 오사카의 재일교포들이 제주도에 감귤묘목을 1960년대에 많이 보내주어 제주가 감귤을 특화하여 재배하는 곳이 되었다. 그 감귤을 통해 제주인들은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게 되어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동북아 국가들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문화들이 이전하는 현상이 생겼다. 식사로는 스키야키, 돈까스, 빵 등이 이러한 루트를 통해 전달되었다. 일본의 나가사키 짬뽕이나 카스테라도 인천에 전해져 지금 인천에서는 나가사키 가스테라 전문점이 있다. 이러한 해양을 통한 교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직접 다니면서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는 여행소재이다. 작년에 왕초님과 같이 대만순행을 하였을 때에도 대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부산을 통해 일본 하카타항으로 들어가서 큐슈지역을 보고 다네가시마, 오키나와를 통해서 중국 상하이, 항저우, 천저우, 샤먼에 이르는 동아시아 해로를 다니는 것을 구상해 본 적이 있다. 바다는 해안을 가진 어느 나라와도 연결이 되는 정말 좋은 교통로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와 접한 나라가 100개가 넘는다는 말을 하는데 왜냐면 바다로 연결되면 모두 접한 나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나라들과 접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이다. 해양으로 나가야만 우리가 발전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이러한 측면에서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50년 동안 경제적 발전을 한 것도 결국 바다를 향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바다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나라는 바다를 잘 이용하는 나라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다. 2020. 6. 11. 걷는 명품변호사 조용주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