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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mate3416 <책방 하고싶은 면서기>
“어른이 된다는 게 고작 이런 거구나. 잃어버린 것들과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손보는 것.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약속들을 지키는 것.”
나의 꼬마들이 좀 더 어렸던 어느 주말 오후, 아주 긴 창 하나를 가슴으로 받았다. 어찌나 긴 지 몇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여직 나를 뚫고 있는 중이다. 벼려지긴 또 얼마나 날카롭게 벼리어졌는지….
“나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는 누가 제일 좋아? 나?” 그럼, 하고 대답하려는데 옆에 있던 남편이 먼저 답한다. “아닐걸.” “그럼 아빠?” “아니, 그것도 아닐걸.” “그럼 누구?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군데?”
나도 궁금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네 엄마는 자기 자신을 제일 좋아해.” 남편은 나보다 좀 더 똑똑하다. 그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별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망연해하는 아이 앞에서 그렇게 창을 맞았다.
그 때 나는 시청에서 장학사업, 학교교육, 평생교육, 마을교육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아침 6시 20분에 사무실에 도착해 저녁이 되면 서류상자를 양손에 들고 퇴근했다. 4시에 일어나 상자를 열었고 정말 바쁠 땐 2시에도 일어났다. 주말은 전화응대 없이 일할 수 있는 다른 근로일이었다. 그렇게 사는 와중에 또 이런 일들도 했다. 일 년 내내. 아침운동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썼다. 술을 마셨다. 영어공부를 했다. 산에 다녔다. 밤이 오면 꼬마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우쿨렐레를 치고 여행을 다녔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지?
직원들도 가족들도 내게 지독하다고 했다. 돌아보니 그렇기는 하다. 인간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겠다. 하여간 열심히 살기는 했는데, ‘그런데 왜?’라고 묻는다면 글쎄, 딱히 내놓을 답이 없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왜.
대답도 갖지 못했으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중이라고 착각했다. 그 착각은 내게 소중한 사람들을 약탈했다. 잃으면 안 되는 것들을 잃었다. 가족에게 늘 부재중이었다. 꼬마들도 남편도 부모님도 그 귀한 세월을 나를 기다리는 데 버렸다. 나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완벽해야 했으니 외줄에 올라탄 사람처럼 집중과 긴장으로 살았다. 사무실에서는 조마조마한 사람이었다. 저거 저러다 병나지, 직원들이 불안해했다.
그렇게 살아서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 시(市) 역사상 최연소 나이로 6급 승진을 했고 팀장 보직을 받았다. 휴직기간을 뺀 실근무 기간을 따져보면 역대 인사담당자들 보다도 훨씬 이른 승진이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하지 않았다. 계산하지 않았고 아첨하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매년 정해진 교육시간을 채워야 승진이 가능한데 순위에 들었음에도 이조차 해놓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열심히 일했고 굉장한 보상을 받았다.
그런데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우울증,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사회불안증 같은, 이름만 다를 뿐 내내 한 덩어리로 비정상적인 것들이었다. 2017년부터 증상을 보였지만 2년 동안 무시하고 눌러왔다. 더는 어려웠다. 한 쪽짜리 보고서를 쓰는 것에도 하루가 걸렸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게 고통스러워 바닥만 보고 걸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변형되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온몸의 혈관이 일순간 빨려나가는 듯한 불쾌한 경험이 자꾸만 찾아왔다. 빈도가 늘었고 주기가 짧아졌다. 내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성실히 살았던 일터에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괴로웠다 정말. ‘들었어? 걔 그렇대.’라는 낙인이 조직생활에서 얼마나 치명적인지 수차례 봐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달 반의 병가를 냈다. 복귀하고도 한동안을 홀로 지냈다. ‘그런 애’로. 가족들에게서도 내게서도 내가 빼앗은 것들은 모두 되돌려 되찾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프랑스 작가 델핀 드 비강이 3부작의 인간관계 소설 중 첫 번째 작으로 낸 『충실한 마음』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열심히 살고 있다. 이혼한 부모의 집을 오가며 지내는 소년 테오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충실하다. 그런 생활의 괴로움을 부정하기 위해 아직 어린 자신을 나락으로 몰고 간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소년 마티스는 테오에게 충실하다. 친구를 잃는 것이 두려워 해보지 않은 거짓말을 하고 부모를 속인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린 시절을 공포로 보내야했던 교사 엘렌은 의심쩍은 테오에게 집착한다. 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충실하다. 마티스의 엄마 세실은 사회적 계급이 낮은 자신과 결혼해준 남편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충실하다. 말투도 옷차림도 표정도 그가 원하는 것으로 살아간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도 각자의 판단에 따라 열심히 살아간다. 그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안타깝지만 당사자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이들에게만 보인다. 당사자는 자신이 산 세월을 멀리 지났을 때에야 그것을 볼 수 있다. 나처럼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내 스스로에게도 갚아주지 못할 약탈을 다 끝낸 후에나 보일 터이다.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 지, 그래서 도출된 +와 -가 각각 어떻게 되는 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아주고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해주는 장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게 있었다면 꼬마들을 덜 기다리게 하고, 부모님의 가슴에 아픈 주름을 덜 그을 수 있었을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어두는 일이 없었을까.
지금 나는 조금 다른 생활을 한다. 여전히 아침운동을 하지만 몸이 무거운 날에는 거르기도 한다. 매일 책을 읽지만 별로였던 책은 서평을 쓰지 않는다. 더 이상 서류상자를 집으로 들고 가지 않는다. 밤이 오면 의무감 없이 꼬마들과 똑같은 호기심과 설렘으로 모험 가득한 동화책을 읽고 아침이 오면 아직 어린 무릎과 발목을 주무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라는 부름을 ‘왜’라는 짜증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나의 엄마가 내게 했듯 ‘응’이라 답한다. 매일 밤 항불안제와 항우울제, 신경안정제를 몇 알씩 삼키는 게 참을 수 없이 지겹지만 하라는 대로 하기 위해 술을 참고 약을 먹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조이는 심장 위에 손을 얹은 채 내게 쏟아지고 부닥칠 것 같은 키 높은 빌딩들과 차들을 헤치고 병원에 다녔고 얼마 전 드디어 “4주 뒤에 오시죠.” 소리를 들었다.
물론 숨 막히게 충실했던 착각의 날들로 받은 보상이 아니었다면 ‘조금’ 다른 날들을 아직 갖지 못했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상처 주고 외면한 날들 덕에 남들보다 이르게 갖기 어려운 것을 가졌다는 것도. 하지만 빼앗고 잃은 것들에 대한 죄의 사함은 영영 받지 못할 거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사악하게 충실했던 세월을 되돌려 약탈당한 그들의 소중한 것을 되찾아 주고 싶다. 무참하고 무력하다.
여름 해가 길어져 퇴근하고 만난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깔깔대며 박장대소하는 꼬마들의 천진함이 가슴에 꽂혀있는 창을 쑥 밀어 넣는다. 한 번 더 아프다. 샤워를 하고 나온 뽀송뽀송한 아이들의 살냄새를 맡으며 속으로 약속한다. 내 죄를 대신 받은 나의 사람들과 죄 진 나에게. ‘다시 잘못 충실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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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 드 비강'의 소설들을 인상적으로 읽었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동시대 최고의 프랑스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 작가가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를 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책이다. 진짜 짧다. 그러나 내용은 강렬하다. 충실한 마음이 무엇을 보여주려는 걸까 했다.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양쪽 집을 오가는 '테오', 테오를 보고 한 눈에 같은 영혼인걸 알아 본 친구 '마티스', 테오의 미세한 내면의 균열을 알아보는 선생님 '엘렌', 각자의 힘듬에 버거워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엄마, 아빠들... 테오는 무너지는 아빠를 엄마와 주변으로부터 지키려 충실하게 침묵한다. 부모 어느쪽에서도 받을 수 없는 사랑과 부모를 지키려는 마음이 테오 스스로 사라지고 잊어버리게 싶어 한다. 열세 살의 테오가 선택한건 알코올 혼수상태. 어린아이가 독한 술을 계속 찾는다. 혼수상태가 될 때까지, 나를 잃어버릴 때까지... 처음엔 뭐지? 애가 왜 술을 찾지? 했는데 책을 계속 읽으면서 미쳐버릴것 같았다... 테오는 침묵으로 충실함을, 마티스는 테오에게 우정의 충실함을, 앨렌은 집착에 가까운 충실함으로 자신이 무너졌던 그 느낌을 테오에게서 본다. 극적인 부분에서 뚝 끝나버린 결말이 부디, 제발 이라는 마음이 들게 했다. 오늘도 테오처럼 나를 잃어버리고픈 외로운 아이들과 부모에게 사랑의 위로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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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악몽을 꿨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마음이 합쳐져 날 몰아붙이는 꿈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 몸 한구석이 뻐근하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어떤 지난 시간은 지독한 얼룩 같다. 문제는 그 얼룩진 마음을 새 걸로 바꿔버리거나 세탁할 수 없다는 사실. 얼룩을 지닌 채 살아야 하는 마음 앞에서 우린 어떤 충실함을 가질 수 있을까.
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충실한 마음』은 네 명의 주인공 테오, 마티스, 세실, 엘렌 각자의 시점으로 얘기가 진행된다. 서로의 이야기에 얽혀있는 이들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각자의 ‘충실함’에 대해 생각한다. 이 충실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는 권두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각각의 인물은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에게 충실함을 묻습니다. (...) 충실함은 우리는 만들고, 우리를 구성하며, 우리가 지키려 노력하는 가치가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충실함은 우리를 가두고, 우리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테오의 침묵, 충실함이라는 굴레
이혼한 부모의 집을 일주일마다 오가는 테오는 아빠의 피폐해져가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목격하지만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아빠의 형편을 학교나 친구(마티스)의 엄마(세실),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알면 아빠가 자신에 대한 양육권을 모두 넘겨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테오는 단지 아빠의 양육권 때문에 이를 함구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건 아빠와 엄마라는 두 세계에서 자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위인 ‘침묵’을 그 나름대로 충실하게 해낸 것이며, 여기에는 심지어 어떤 종류의 불안정한 애틋함마저 있다.
문제는 테오가 지닌 충실함의 기저에 있는 의존성인데, 그에게 의존의 대상은 술이다.
“알코올성 혼수상태. 그런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는 이 단어들을 좋아한다. 그 소리를, 약속을 좋아한다. 그 누구에게도 빚진 것 없이 사라지는 순간, 어김없이 지워지는 순간이라는 약속.”
엘렌의 응시, “잃어버린 것들과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손보는 것”
13살이 채 되지 않은 테오의 흔들리는 대지를 선생 엘렌이 주시하고 있다. 엘렌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그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시도한다. 하지만 뚜렷한 근거 없이 테오에게 개인적인 것들을 끄집어내게 할 수는 없기에 엘렌은 전전긍긍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의 감추어진 부분을 목격하려고 한다. 엘렌의 행위가 어딘지 투박하고 집착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엘렌은 그 자신이 겪은 가정폭력과 그로 인해 자기를 침독당한 기억을 지녔기에 테오가 지키려고 하는 것들-자신의 부모와 일그러진 약속-이 충실함이 아닌 어떤 굴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모를 보호한다. 그 무언의 약속은 때때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이제 나는 안다. 그래서 모르는 체할 수가 없다.”
엘렌이 테오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들은 바로 어린 시절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그로 하여금 다시 되찾는 것이고, 테오가 그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의 손에 꼭 쥐여주는 것이었다. 엘렌의 충실한 마음. 이는 옳고 그름을 구분 짓는 감각이 아니라 자신을 등지지 않음이고, 결국 과거에는 놓쳤을 수도 있는 손을 붙잡는 행위였다. 또 “기억의 주름 속에 숨겨둔 빚”이자, “잃어버린 것들과 잘못 끼운 첫 단추를 손보는 것”이기도 했다.
나에게 지난밤의 악몽은 내가 감추고 싶은 부분이 드러나는 고통을 알려줬다. 얼룩과 흉터가 드러날 때의 수치심. 내가 그 자국을 먼저 바라봐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나를 이해하려면 아직 너무 먼 길이 남았다. 조금만 천천히 지치기를 바랄 뿐이다.
“충실함은 파괴적인 속성을 지니기도 해요. 그러니 자신의 충실함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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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게 되었다. 현대의 사회문제들을 골고루 다룬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동 학대부터 온/오프라인의 이중인격까지 짧은 소설 안에 모두 서술되었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공감이 가는 면이 있다. 원작의 제목이 불어로 '충성'을 의미하는 단어였나본데, 우리나라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충성의 의미와는 달라 '충실한 마음'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적절한 선택이라고 본다. 핫한 작가인가본데, 다른 작품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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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과 대중성을 갖춘 동시대 최고의 프랑스 소설가 델핀 드 비강이 『충실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델핀 드 비강은 2001년 『배고픔 없는 날들』로 데뷔한 이후, 두 권의 밀리언셀러 『길 위의 소녀』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비롯해서 총 8권의 소설로 프랑스 내에서만 3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더불어 르노도상,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의 빼어난 이력을 갖춘 델핀 드 비강이 3년 만에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며 전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첫 번째 소설이 바로 2018년 1월 출간 두 달 만에 16만 부가 팔린 『충실한 마음』이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갖춘 동시대 최고의 프랑스 소설가 델핀 드 비강이 『충실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델핀 드 비강은 2001년 『배고픔 없는 날들』로 데뷔한 이후, 두 권의 밀리언셀러 『길 위의 소녀』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비롯해서 총 8권의 소설로 프랑스 내에서만 3백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더불어 르노도상,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의 빼어난 이력을 갖춘 델핀 드 비강이 3년 만에 인간관계에 대한 짧은 소설 시리즈를 발표하며 전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첫 번째 소설이 바로 2018년 1월 출간 두 달 만에 16만 부가 팔린 『충실한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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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3 충실한 마음(델핀 드 비강, 레모) 다른 이들 ? 살아 있든 죽었든 ?에게 우리를 묶어두는 보이지 않는 끈. 속삭였으나 그 반응은 알 수 없는 약속, 무언의 충성, 대부분 자기 자신과 맺은 과거의 다짐, 들은 적 없지만 따라야 하는 명령, 기억의 주름 속에 숨겨둔 빚. 몸속 어딘가 잠들어 있는 어린 시절의 법칙, 우리를 바로 서게하는 가치, 저항하게 하는 근거, 우리를 갉아먹고 가두는, 해독할 수 없는 원칙, 우리의 날개이자 굴레. 우리의 힘이 펼져지는 발판, 그리고 꿈을 묻어둔 참호(p. 11). 이 책은 네 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큰 줄거리로 만나게 되는,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책을 고를 때, 제목과 표지를 많이 보는데, 이 책은 제목이 끌렸다. 삶에 충실했지만 그만큼의 결과물을 얻지 못한 인물들의 삶이 건네는 숙제가 가볍지 않다. 문제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면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연약한 인간이다. 책임을 묻기에 너무나 약해빠진 인간의 실체. 테오 테오를 보며,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가 생각났다. 어른이 겪는 불행이 아이들에게 옮겨졌을 때 슬픔은 배가 된다. 깨져버린 가정에서 가족의 끈, 삶의 끈을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열 두 살 테오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술 뿐 이었다. 부모, 선생님, 친구들도 그에게는 알코올만큼의 위로도 되어주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병든 부모 사이에서 그 아이가 가야할 곳은 어디일까? 그러나 아빠는 문을 열 준비가, 그를 맞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현관으로 다가오기까지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건 그사이 아빠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p. 79 테오). 때로 그는 생각한다. 어른이 되는 수고가 정말 그만큼 가치가 있을까? 할머니 말마따나, 손톱만큼의 가치라도 있을까?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할머니는 자를 대고 긴 선을 그어 ‘장점’과 ‘단점’이라는 칸을 만들어 양쪽을 채워보았다. 어른이 되는 문제는 어떨까? 두 개의 칸은 똑같은 길이로 채워질까(p. 144 테오)? 엘렌 불행한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했기에 불행을 겪는 아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민감함을 갖게 되었다. 자신 속의 상처가 다 아물지 못했기에, 때로는 아이들의 문제 속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한다. 테오를 관찰하며,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그 문제 속에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아이가 학대받는다고 생각했다. 아주 금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새 학년이 시작되자마자는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한참 지난 시점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 두들겨 맞았을 때, 나는 끝까지 그 흔적을 감추었다. 그러니 나를 속일 수는 없다(p. 13 엘렌). 세실 알코올 중독자의 딸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가는 아들을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이 들까? 아들을 바르게 키우려 하지만 마티스는 자꾸만 자신의 손에서 벗어난다. 평범하다고 믿었던 남편의 평범하지 않은 이중성을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는다. 지금까지 충실했던 가정에 대해,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낀다. 그날 아버지는 내가 떠나리라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내가 곧바로 다른 세계, 다른 삶의 방식으로 이동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분명 언젠가는 우리가 같은 언어로 말을 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p. 74 세실). 없는 듯 지내고, 남편과 그의 가족이 귀에 거슬려하는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지워내고, 내 아이들에게 우아한 말투와 부드러운 태도를 전달하려 그토록 많은 노력을, 그토록 많은 시간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었을까(p. 76 세실). 마티스 흔들리는 친구를 둔 평범한 가정의 아이가 겪는 갈등이 안타깝다. 물론 그의 가정도 평온하지만은 않지만, 테오의 가정에 비하면 가정이라는 형태라도 남아있지 않은가. 테오를 혼자 둘 수 없어 자신도 어둠 속에 함께 걸어들어가지만 그 어두움은 열 두 살이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다. 엄마를 부른다면, 필하모니 공연에 가지 않았음을 자백해야만 한다. 그는 거짓말을 했고 엄마의 신뢰를 배반했다. 엄마는 미쳐버리겠지. 무엇보다 엄마는 테오의 부모에게 이 모든 걸 얘기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테오 아빠 집에 가는 일이 생기면 테오는 영원히 친구를 원망할 것이다(p. 212 마티스) 충실해 보이지 않는 삶에 우리가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삶과 마주하면서도 그 삶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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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핀 드 비강은 ‘나는 충실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서 이 소설이 탄생했음을 밝혔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그 질문은 온전히 나를 관통해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 누구에게나 충실해야 할까? 라는 질문으로.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고, 그러한 행동이 사뭇 위험하다는 경고를 소설 속에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역자 후기에 인용된 작가의 말이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긴의 충실함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