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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동안 인적 드문 산 속을 헤매이는 것 같았던 소설집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몇몇 작품을 읽으면서는 에셔의 판화도 자주 생각났다. 출구 없는 미로. 내가 만든 나의 감옥. 초현실적인 세계. 그런데 그 세계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고목들. 맨발로 딛고 선 땅에서 풍겨오는 흙내음. ? 이 책에는 미술평론가이자 목수인 저자가 써낸 10편의 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평소 자주 접하는 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결을 가지고 있어 생각보다 더디게 읽혔지만, 이내 웅장한 배경이 그려지면서도 그 안의 세밀한 감각들이 느껴지는 표현만큼은 대단했다. 특히 축축하고 부드러운 토양과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가득 자란 숲 속 정경에 대한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은 표제작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와 '안섬 한 바퀴', '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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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무엇보다 표지가 무척 아름답다. 감색과 회색 언저리의 양장 표지에 녹색 글리터의 에폭시를 입힌 책은 빛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책을 펼친 순간, 나는 첫번째로 실린 표제작에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강력하고 굵직한 문장들이라니. 책의 종이에서 흙냄새만 나는 것 같았다. 아 이 소설집은 이런 분위기구나. 역시 목수의 소설인가, 단정하며 두 번째 소설, '짝'을 읽었는데, 어라 뭐지. 완전히 다른 작가가 쓴 작품 같았다. 무척 이상한 소설이었는데 김영하 작가님의 '옥수수와 나'의 느낌이 아주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 비현실적이면서도 그래도 재밌었다. 책을 읽다보니 소설 하나 하나의 색깔이 무척 진하고 굉장히 강력했다. 개인적으로 '달팽이를 사랑한 남자'와 '종이 인간'은 조금 충격적이고 당황스러웠지만 반면 '신의 기원'이나 '어린 왕자의 귀환'과 같은 소설의 상상력은 너무도 나의 취향이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어린 왕자의 귀환'이었다. 실제 목수로 작업하는 소설가가 쓴, 개인 작업실에 실제로 어린 왕자와 소행성 B612를 구현하려는 설정의 단편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쳤다고 해야할까, 자유롭다고 해야할까. "전업 소설가"가 아닌, 역사를 연구하고 나무를 작업하는 작가의 첫 소설집은 여느 소설들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나는 이런 소설가들을 응원하고 싶다. 문유석 판사의 소설 <미스 함부라비>가 판사만이 다룰 수 있는 법적 소설의 디테일을 담고 있듯이. 미술 평론가이자 공예가이자 목수만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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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뉴스에서는 전일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이야기했고,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가 700만 명이며 사망자는 40만 명을 넘었다고 보도했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벌써 5개월째 겪고 있다. 처음 코로나 발병을 들었을 때는 사스나 메르스처럼 조금 겪고 나면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확산세를 보며 공포감을 느꼈고 사스, 메르스 때와는 다르게 일상이 바뀌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일은 화장을 하고 외출하는 일처럼 습관이 되었고, 주기적으로 열체크와 손소독제를 바르는 건 자연스러워졌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도 멈추었다. 나라 간 하늘로 통하던 길은 막혔고, 생산과 제조는 멈추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점점 더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범죄는 매일 일어나고 있으며 코로나를 악용한 범죄 또한 덧대어지고 있다. 바뀐 일상과 그대로의 일상이 혼재하는 상황이 아직도 혼란스러운 나. ‘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을 읽으며 이 상황이 다시 오버랩되었다. 세상 사람을 아니 서울 사람들을 분류하면 그렇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철의 일곱 좌석을 기준으로 보면 그 비율은 5대2일 것이다. 그러다 박선생은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일반화의 오류. 하지만 이게 일반화일까? 아니 오류일까? 예외는 있다. 끊임없이 눈을 좌우로 돌리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경로석의 노인. 팔짱을 끼고 건너편을 응시하는 갈색 피부의 동남아인. 허리를 잔뜩 끌어 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연인들, 선풍기 커버를 파는 행상과 예수 천국을 읊으며 지나가는 신자.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2 쪽일까 5 쪽일까. p322 언젠가는 분명 우리의 일상도 이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정상리처럼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삶의 방향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김진송 작가도 사라진 희근이를 통해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무로 깎은 책벌레 이야기로 알고 있던 김진송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사실 공예가가 아닌 소설가라는 것도 처음 알았던 사실. 찾아보니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와 <가부루의 신화>가 있다).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후 지금은 나무 작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소설가. 부모님 세대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것 또한 오랜만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조금 생경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오히려 한편으로는 더 차분하게 한 자 한 자 짚어 읽어나갈 수 있었다. 중년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삶에서 많은 방황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좋은 어른을 찾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그런 내게 김진송 작가의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는 좋은 어른이 해준 이야기였다. 어디 집뿐일까. 사는 것도 다르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숟가락을 뜨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 모두 중력에 저항하거나 타협하는 일이지. 사는 게 버겁다면 그건 곧 중력에 저항할 힘이 없다는 뜻이야. 말하자면 중력은 인간의, 아니 살아 있는 생명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 힘이 들면 사람은 주저앉거나 누울 수밖에 없어, 중력과 타협할 힘조차 남아 있지 못하면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 p23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 부모님처럼 김진송 작가도 6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며 많은 일들을 겪으셨구나 싶었다. ‘나도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았던 일이 있었고 숨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지만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희생하고 있는 의료진을 비롯해 아직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주변인들과 더불어 따뜻하게 살아가자.’라고 말해주시는 듯했다. 어여 내려와. 이거 마시고 하게. 노인은 챙겨온 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흔들리는 손으로 간신히 무언가를 따른다. 그가 허리에 맨 줄을 풀고 내려가자 노인이 컵을 내민다. 플라스틱 컵 속에 뜬 식혜의 밥알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듯 흔들린다. 풍을 앓고 있는 게 틀림없다. 어째 혼자 일을 한다요. 이 더운 날씨에. 노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컵을 받아든 그의 손이 가볍게 떨린다. 노인은 한 잔을 더 따라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 p29 5개월간 지속된 코로나로 인해 혼란스러운 이 시기. 이 시점에 꼭 읽어 보면 좋을 작품. 좋은 어른이 해주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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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부터 편안하게 중독되는 몰입감. 목수님의 소설이라니... 직업상 집짓는 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나는 호흡을 고르고 있다. #문장설레임 굴참나무. 졸참나무. 구절초. 청미래덩굴.아까시아. 개옻나무. 탱자나무.... 10편의 중,단편중 표제작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때>에 나오는 내가 모르는 나무 들이다. 자연을 마주하며 산속에서 홀로 집을 짓는 마음과 그 살아감에 대해 명상의 시간을 주는 글. 아마도 저자의 자전적 소설인듯하다.e독특하고 다양한 주제의 소설들은 묵직했지만, 개인적으로 사유깊은 표제작이 제일 맘에 들었다. 집을 짓는 일은 다른 모든 물리적인 일과 마찬가지로 중력에 저항하거나 타협하는 일이다. 그가 알고 있는 집짓기의 유일한 원칙이다. 그는 바닥에서 짠 벽체를 들어 올리면서 중력의 실체를 절감했으며 그때마다 그의 육체가 중력과 타협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중력은 일과 노동 그 자체이도 하지만 집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집이 중력을 버티지 못하면 무너져내릴 것이다. 기둥과 벽체를 똑바로 세워야 하는 이유는 중력에 저항하는 가장 큰 힘이 수직이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사실은 결코 망각될 수 없다. 어디 집뿐일까. 사는 것도 다르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숟가락을 뜨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일 모두 중력에 저항하거나 타협하는 일이지. 사는 게 버겁다면 그건 곧 중력에 저항할 힘이 없다는 뜻이야. 말하자면 중력은 인간의 아니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 힘이 들면 사람은 주저앉거나 누울 수밖에 없어, 중력과 타협할 힘조차 남아 있지 못하면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 p22~23 #그가홀로집을짓기시작했을때 #짝 #달팽이를사랑한남자 #꼭대기의사람들 #종이아이 #안섬한바퀴 #신의기원 #어린왕자의귀향 #섬 #서울사람들이죄다미쳐버렸다는소문이 입체감 있는 만듦새가 너무 예뻐 표지를 몇번이나 손으로 비벼보고 만져보고, 요기 놓아보고 죠기 놓아보고 혼자 행복한 호작질 하게 해준 난다에 엄지척.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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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많이 웃었다. 진짜 말이 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볼 때 입꼬리가 흥미진진하게 올라가는 그런 것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소설집의 톤을 몰라서 헤매기도 했지만, 반복되는 설정들이 꼬리를 물면서 금세 빠져들었다. 10개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몇몇 소설은 앞의 소설과 같은 주인공인지 아닌지 모르겠을 모호함도 매력적이었다.
시골, 만드는 사람, 미침. 이 세 가지 코드가 다르게 조합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시골의 풍경이 배경이다. 그리고 만드는 사람이 나오는 소설이 많다. 책의 제목처럼 홀로 집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부터, 망치와 땜납과 용접기로 어린 왕자와 그 행성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인간을 만든 신의 이야기 등.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는 '미침'이다. 그것이 추가되어야 이 소설에 대한 내 감상이 완성될 것 같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화자, 달팽이와 섹스(?) 후 사람의 얼굴을 한 달팽이 자식들을 갖게 된 사람, 자기도 모르게 송전탑, 크레인, 피뢰침 등 꼭대기로 올라가는 사람, 종이의 아이를 잉태해 종이 아이를 낳은 사람, 똑같은 하루를 무한히 반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사람 등등! “아니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화자를 믿게 된다. 오히려 세상이 진실을 몰라주는 것 아닌가 싶다. 누가 진짜 미친 건지 모르겠을 그 오묘한 선에서 자꾸 웃음이 난다. 그러다 절정은 마지막 소설인 「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 이었다. 한 사람 대 세상의 대결에서, 한 마을 대 세상의 싸움으로 스케일이 커졌다. 읽는 동안 누가 진짜 미친 건지 궁금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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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라는 제목, 1997년부터 나무 작업을 시작한 ‘목수’이기도 하며, 몇 년 전부터 강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작가의 소개글을 읽으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책에 실린 10편의 소설 중 앞쪽에 배치된 것들은 어느 정도 그 상상과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뒤로 가면 갈수록 숲에 들어가 홀로 고요히 사는 삶을 택했지만, 실은 세상일에 너무도 관심이 많고 할 말도 많은 이야기꾼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이 소설로 김진송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났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배경도 없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는 동안 갸우뚱하기도 하고, 와! 하며 감탄사를 내뱉기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늘 꿈과 현실을 오가고 있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지식들을 쉴 새없이 쏟아내기도 했다. 그 복잡함 속에서도 한순간도 흥미를 놓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듯한 상세한 묘사, 한 문장의 길이가 엄청난데도 술술 읽히는 리듬감 있는 문장 덕분이었다. 소설 속 배경 역시 어찌나 구체적인지 자꾸만 실제 이야기로 읽혔고, 현실 풍자가 많아 소설로만 읽을 수는 없었다. 작가는 자꾸 현실을 비꼰다.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하고 싶은 말을 죄다 쏟아 붓는다. 그 안에는 누군지 다 알만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얼굴이 여럿 겹치고, 우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겹친다. 처음엔 그냥 피식거리며, 재미있게만 읽었다. 시사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으로. 그러다 서서히 거리두기가 되는 시점이 찾아왔고, 지금 우리, 그 안의 나를 내려다보는 느낌으로 읽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숲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피식거리며 웃다가, 뒷맛이 씁쓸해지면서 마무리 되는 10편의 소설을 참 맛있게 읽었다. 매일 걷는 길,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들, 아침마다 듣는 뉴스, 숲에서 새로 만난 나무, 상추를 씻다 발견한 달팽이(?) 하나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설이기도. 작가의 다른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 돌아가야 할 수식이지 않을까 싶다. '만드는'이라는 말 앞에 '아주 잘'을 붙여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