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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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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연구의 선구자였던 마리 퀴리는 수십 년간 아무 보호장치 없이 주머니와 책상 서랍에 희미하게 빛나는 물질들을 방치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퀴리는 남편 피에르와 함께 우라늄을 실험하면서 새로운 원소로 토륨, 폴로늄, 라듐을 발견해 명명했고 네 원소에서 나오는 특이한 파동의 효과를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퀴리는 이 파동들을 방사선이라 칭했고 연구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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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연구의 선구자였던 마리 퀴리는 수십 년간 아무 보호장치 없이 주머니와 책상 서랍에 희미하게 빛나는 물질들을 방치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퀴리는 남편 피에르와 함께 우라늄을 실험하면서 새로운 원소로 토륨, 폴로늄, 라듐을 발견해 명명했고 네 원소에서 나오는 특이한 파동의 효과를 조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바쳤다. 퀴리는 이 파동들을 방사선이라 칭했고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원자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작은 단위라 믿었다. 그런 원자가 분열하면서 방사선이 방출된다는 퀴리의 발견은 획기적이었다. 라듐 형광이 사람의 병든 세포를 건강한 세포보다 먼저 파괴한다는 퀴리의 연구 결과는 검증 없이 순진한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미국 임상학회지에서 "방사능은 정신 이상을 막고 고결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노화를 늦추고 빛나고 활기찬 즐거운 삶을 선사한다"고 주장한 데이비스 박사를 비롯해 권위있는 전문가들이 유행을 부추겼다. 손목시계와 벽시계의 문자판, 군사 장비의 계기판, 사격 조준기, 아이들의 장난감에도 라듐을 발랐다. 라듐화장품, 치약, 콘돔, 초콜릿, 담배, 빵, 좌약, 털실, 비누, 안약, 어린이 놀이용 라듐 모래상자  등 방사능을 자랑하는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었다. 대중은 1930년대와 40년대가 되어서야 우라늄보다 약 270만 배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라듐의 진정한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유럽 전역의 과학자들은 원자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맹렬한 노력을 계속한 결과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었던 중성자를 제임스 채드윅이 찾아냈다. 원자의 구조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었음이 밝혀져 진정한 원자력의 시대가 열렸다. 원자핵이 쪼개지고 새로운 핵이 만들어지는 핵분열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며 연쇄 핵분열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2차 세계대전의 절박하고 위급한 상황에 핵분열 무기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미국도 핵분열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해 1년이 지나기 전에 성공했다. 일본의 도시 히로시마에 최초의 원자 폭탄이 떨어졌고 사흘 뒤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을 떨어뜨렸다. 일본이 항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원자 폭탄이 만들어낸 끔찍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몇몇 지역에서는 조그마한 장치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를 몰아내고 경이와 낙관주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원자로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카자흐스탄의 사막에서 원자 폭탄을 시험했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원자력의 무시무시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즉 인류의 기적 같은 발명품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대신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데 쓰이도록 온 힘을 다할 결의에 차 있다고 선언했다. 핵무기 증산을 눈가림하려는 선전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도 평화로운 원자 1을 줄인 AM-1이 민간 원자력 발전소중 최초로 전기 6메가와트를 생산했다. 감속재와 냉각재로 각각 흑연과 물을 사용했던 이 원자로는 체르노빌에 건설된  RBMK 원자로의 원형이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에는 명과 암이 반드시 존재함으로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인류의 건강과 안전, 환경 등에 대한 문젯점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j*****1 2020.08.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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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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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1986년 우크라니아의 체르노빌이라는 도시에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사건으로 약 34년이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엔 사람이 살지 않으며 당시 지역 주민들의 후손들까지도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가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이유는 아마 당시 정부의 사고 대처 무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소련 정부는 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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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1986년 우크라니아의 체르노빌이라는 도시에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사건으로 약 34년이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엔 사람이 살지 않으며 당시 지역 주민들의 후손들까지도 고통에 시달린다고 한다.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가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된 이유는 아마 당시 정부의 사고 대처 무능력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소련 정부는 원자력 사고에 대한 수습이나 처리보다는 숨기기에 바빴고 사고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무능력함으로 체르노빌 사태는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남아 있다. 그리고 최근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체르노빌 4호기 원자로에서 검사가 시작되었고 잠시뒤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수백 명의 직원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4호기 원자로에서 방사선이 노출되고 방사선을 막기 위해 강철과 콘크리트로 막아두고 있었다. 체르노빌 방사선 유출로 공기까지 방사선 핵종으로 오염되어 몇 분 만에 목숨을 잃었다. 체르노빌 사태가 일어나자 가장 먼저 현장에 간 것은 소방관들이었고 소방관들은 이미 재앙이 된 사고가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파국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원자로 잔해가 발전소 전역에서는 모든 인화성 물질에 불을 붙이고 있었고, 불행하게도 많은 소방관들이 방사선의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체르노빌>은 당시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진실을 전달하려고 한다. 사고가 터진 후 당시 소련 정부가 숨기고 선택적으로 공개했던 정보로 많은 사람들이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다큐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의 진실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s********3 2020.06.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