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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 미학의 도덕 교육적 가치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면서 실러의 문학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다룬 논문을 찾아보면 철학적 미학의 논의만큼이나 그의 문학을 분석하고 비평하면서 전개해가는 논의도 많다. 후자에 가까운 논문 중 가장 자주 이름을 접할 수 있는 필자 중 한 명이 김수용이다. 철학 고전을 번역해서 좋은 책으로 만들어 출간해주곤 하는 아카넷에서 그의 글을 깔끔하게 책으로 엮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소장하게 되었다. 소논문으로만 만났던 김수용의 글을 실러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미학을 일관되게 제시하는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니 좋다.
낭만주의자들이 선호했던 키워드 중 하나는 '아이러니'였다. 실러 역시 '모순의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 쉬웠을 것이다. 초기낭만주의자들은 계몽주의를 일정부분 계승하면서도, 계몽주의가 지녔던 문제점을 비판했다. 실러가 '비판적 이상주의자'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이성과 감정의 균형과 조화를 꾀했다. 실러가 칸트 미학을 계승해 미에 아름다움에 더해 숭고함까지 포함시키고자 한 것 역시 감정을 매개로 이성이 좀 더 바람직하게 작동하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 담지한 자유의 성격이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예술은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의 '이념'을 현상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자유롭고 순수한 예술은 결과적으로 도덕적, 정치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을 향해 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합목적적이다. 그러나 예술은 어떤 외부의 목적이나 가치와 상관 없는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 예술이 순수해야만 바람직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아이러니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이중적 본성인 소재(감각) 충동과 형식 충동이 팽팽하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유희 충동이 필요하다. 유희 충동은 총체적 인간, 완전한 자유에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 유희 충동은 소재 충동으로부터도 형식 충동으로부터도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감각과 이성, 내용과 형식 사이를 자유롭게 유희할 수 있는 인간이 실러가 이상적 인간상으로 삼은 미적 인간이다.
"두 충동의 힘은 미적인 "중간 상태"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소멸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상대방을 지양하고 상대방에 의해 지양된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 인간은 감각적 인간도 이성적 인간도 아닌 전혀 다른 인간이 되며, 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소재 충동도 형식 충동도 아닌 제3의 전혀 다른 충동을 본성으로 가지게 된다. 이 새로운 충동을 쉴러는 "유희 충동(Spieltrieb)"으로, "유희 충동"을 본성으로 하는 인간을 "미적 인간(asthetischer Mensch)"으로 규정한다. 말하자면 "유희 충동"은 아름다움의 본성인 것이다." p. 82
그런데 실러는 그 자신이 비극을 여러 편 썼던 것이 반증하듯 아름다움만으로는 미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고 거기에는 숭고함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거대한 자연이나 비극에서의 파토스 자체가 숭고함이 될 수는 없지만 그것들은 숭고한 감정을 일으키는 매개가 될 수 있다. 비극의 주인공이 만난 고통을 통해 연민을 느끼지만 그것이 극 속의 서사임을 알기 때문에 관객은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그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넘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실러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일종의 예방주사라고 본다.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을 만나면 인간은 생존 욕구에 매몰되게 하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다. 실러에게 숭고한 감정을 일으키는 비극이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실제로 만나기 전에 비극을 관람하면서 어떻게 대처할지 연습해보는 일종의 예방적 치료의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실러 미학에서 숭고함에 포함된 미적 과정은 도덕적 결과로 가는 일종의 과정이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도덕적 결과'는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쉴러의 미학에서 내용적으로 상극을 이루는 개념들임에는 물론 의문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개념적, 내용적 관점에서 보면 두 이념 간의 매개나 상호 보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작용 미학(作用美學, Wirkungsasthetik)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아름다움"과 "숭고함" 사이에는 상호 보완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가정적 전제이다. 즉 두 개념이 독자나 관객에게 상이한 작용을 미치고, 이 상이한 작용이 기능적으로 서로 보완해서 쉴러가 원래 목적한 인간의 "미적 교육(美的敎育)"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전제이다. '숭고함에 대해서'라는 글에서 쉴러는 "미적 교육을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숭고함을 아름다움에 추가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p. 35-36
실러의 "발렌슈타인"을 통해 근대를 넘어서는 그의 역사관을 보게 된다. 실러는 역사는 진보하며 인간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근대적 역사관을 비판한다. 극 속에서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시대에 팽배했던 기계적 세계관을 비판한 것이다. 세계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질서와 법칙으로 인해 움직인다. 인간은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고통스러운 운명과 죽음의 문제를 인간의 의지로 피할 수 없다. 단지 자유로운 이성을 통해 자율적 자아결정을 한다. 그래서 실러 작품의 결말에서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열심히 자살하는 것일까.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능동적으로 '선택'한다는 면이 사르트르를 떠올리게 한다. 선택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쉴러의 숭고함의 이념은 죽음이 피치 못할 경우, 이 죽음을 외부의 폭력이나 강요로서 피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의적 선택으로서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이 죽음을 자율적 자아결정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p. 179-180
책 전체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짜임새 있고 일관성 있게, 명쾌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잘 읽힌다. 실러 미학에서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잘 정리된 기분이다. 그리고 책을 잘 읽는데에는 부수적인 효과일지 모르지만 종이질이 두꺼우면서 너무 좋아서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