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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치유자, 나무의 일생 강판권 두앤북/2020.5.29.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것들 중 하나가 나무다. 그만큼 인간과 가까이 있는 것이 나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이름뿐만 아니라 언제 잎이 피고 지는지 바쁜 일상으로 지나치는 때가 많다. 화려한 꽃을 피우면 그 때 눈에 잠간 담았다가 이내 잊혀지는 그런 존재다. 나무에 대한 연구의 성과를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고 <위대한 치유자, 나무의 일생> 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권의 책을 선보였다. 평소 나무의 상처가 마음에 걸려 꼭 세상에 그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들을 저자의 생활권 가까이에 있는 31그루의 나무에 대해 정리하여 엮어낸 책이다. 나무의 역사적 사실이나 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강판권은 계명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청대 농업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무 인문학자로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나무 열전>, <세상을 바꾼 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등 많은 저서가 있다.
벚나무를 한 때 일본의 ‘국화’라 하여 베어버리자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식물이나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잘못된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 후로도 벚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이 심은 나무라 하여 수난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벚나무는 일본에서 ‘사쿠라’라고 부른다. 사쿠라는 본래 앵(櫻)이고,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인 앵두를 가리키는 것인데, 일반대중에게 잘못 인식된 것이 제자리를 찾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봄에 잎이 피기 전에 꽃이 먼저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은 요즘 공원이나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로 우리사회에 자리 잡았다.
“매화를 향한 사랑과 예찬이 송나라 때 유별났던 것은 사대부들의 도학 정신과 매화의 자태에 담긴 의미가 통했기 때문이다. 중국 최초의 매화 족보라고 할 수 있는 <매보>가 이 시기에 나온 배경이다. 이어서 명나라 때에는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에 뽑힌 것이다.(p.24)” 산청 산골에 정당매를 심은 강회백의 손자인 강희안이 지은 조선시대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에서 할아버지가 심은 매화나무를 소개하면서부터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외진 산골에 살고 있는 정당매를 찾아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청 사람들은 정당매와 남명매, 그리고 원정매를 일러 ‘산청 삼매’라고 부른다. 산천재 앞에 있는 500살의 나무를 남명매라고 부르고, 고려 후기의 문신 원정 하즙이 남사리에 살면서 심고 가꾼 매화를 그 후손들이 원정매라 이름 지었다. 현재 산청은 대한민국 최고의 매화나무 명소라 할 수 있다.
“내가 살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씨앗에 독이 있기 때문이다. 벌레나 동물의 위협에서 나와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독을 만든 것이다.(p.59)” 개가 살구 씨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개가 무슨 살구 열매를 먹느냐고 할 수 있지만, 열매가 익어서 땅에 떨어지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살구꽃에서 나는 향기를 행향(杏香)이라고 하지만 매화 향기처럼 진하지 않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곳을 행단(杏亶)이라고 하는데, 살구나무 그늘이라는 뜻이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이것을 은행나무 그늘로 오해하여 전하고 있기도 하다. 살구나무 잎은 매화나무보다 더 크고 둥글며, 잎맥은 똑같이 어긋나지만 선명하지 않은 매화나무와 차이가 있다. 줄기 색깔은 살구나무가 밝은 편이고 매화나무는 검은 편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살구나무에는 가시도 있다. 부모인 장미를 닮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퇴화하여 도드라져 보이진 않는다.
아까시나무는 꿀을 따기 위한 밀원이나 헐벗은 산을 보호하는데 사방공사용으로 심는 수종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 향기는 진하여 꽃피는 시기에 달콤한 향기를 도시에서도 쉽게 맡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름을 ‘아까시아나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원래 ‘아까시아 나무는 사막에 사는 까시가 달린 큰키나무이다. 일본인이 아까시나무를 처음 우리나라에 심은 것은 1891년 인천공원 이었고, 1898년 일본출정철도감부에서 아까시나무를 인천 월미도와 다른 지역에까지 보급했다. 철도청에서 열심히 보급한 것은 재질이 강해서 철도침목용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밤나무가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후 산림녹화 사업을 할 때 전국적으로 많은 아까시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학교 교정이나 관공서 화단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향나무가 ‘가이즈카향나무’다. 그런데 “내게 이름을 붙인 사람은 나의 고향을 중국과 일본이라고 기록했다. 한국인들은 주로 일본식 이름을 사용한다. 오사카의 가이즈카에서 많이 살고 있어서다. 일본에서는 패총(貝塚)으로 표기한다.(p.144)” 하지만 그것은 지명에 불과할 뿐 나의 속성과는 거의 무관하다. 중국에서는 나사백(螺絲栢)이라고 부른다. 가지가 소라 모양의 실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한 때 배나무 과수원에 피해를 입힌다고 하여 수난을 당한 때도 있다. 그러나 잎에 까시가 없고 모양을 만들기에 좋아서 사람들이 정원 등에 많이 가꾸기도 한다.
“사람들은 히말라야시다와 개잎갈나무를 다른 나무로 착각하기도 했다. 모두 개악 탓이다. 국산화라는 명분하에 이름을 바꾸었지만 도리어 잘못된 결과를 낳고 말았다.(p.171)”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원래 ‘히말라야시다’라고 원산지 지명을 이름으로 쓰고 있었는데, 한국식으로 이름을 고친다고 ‘개잎갈나무’라고 바꿨다. 원래 이름대로 그냥 놔두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나무와 닮았지만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소나무의 잎은 2개가 한 묶음이지만, 히말라야시다의 잎은 한 가지에 20-50개씩 달린다. 꽃도 가을에 암꽃과 수꽃이 뾰족이 솟아오른다. 열매는 다음 해 가을 무렵 달걀형으로 완성되고 꽃처럼 가지 위로 불쑥 올라오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다. 열매도 소나무 솔방울보다 크고 조직도 전혀 다르다. 솔방울은 익으면서 벌어진 채로 있지만, 얇은 막으로 구성되어 있어 비늘처럼 벗겨진다. 이렇게 정교하게 열매를 만드는 것은 날개 모양의 씨앗이 바람에 쉽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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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치유자, 나무의 일생 강판권 두앤북/2020.5.29. sanbaram
우리 주변에서 늘 만나는 것들 중 하나가 나무다. 그만큼 인간과 가까이 있는 것이 나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이름뿐만 아니라 언제 잎이 피고 지는지 바쁜 일상으로 지나치는 때가 많다. 화려한 꽃을 피우면 그 때 눈에 잠간 담았다가 이내 잊혀지는 그런 존재다. 나무에 대한 연구의 성과를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고 <위대한 치유자, 나무의 일생> 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권의 책을 선보였다. 평소 나무의 상처가 마음에 걸려 꼭 세상에 그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들을 저자의 생활권 가까이에 있는 31그루의 나무에 대해 정리하여 엮어낸 책이다. 나무의 역사적 사실이나 식물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강판권은 계명대학교 사학과에서 역사학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경북대학교에서 중국 청대 농업경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무 인문학자로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 <공자가 사랑한 나무, 장자가 사랑한 나무>, <나무 열전>, <세상을 바꾼 나무>,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 등 많은 저서가 있다.
벚나무를 한 때 일본의 ‘국화’라 하여 베어버리자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왕벚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식물이나 나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도 잘못된 인식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 후로도 벚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일본인들이 심은 나무라 하여 수난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벚나무는 일본에서 ‘사쿠라’라고 부른다. 사쿠라는 본래 앵(櫻)이고, 장미과의 갈잎떨기나무인 앵두를 가리키는 것인데, 일반대중에게 잘못 인식된 것이 제자리를 찾기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봄에 잎이 피기 전에 꽃이 먼저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은 요즘 공원이나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 중 하나로 우리사회에 자리 잡았다.
“매화를 향한 사랑과 예찬이 송나라 때 유별났던 것은 사대부들의 도학 정신과 매화의 자태에 담긴 의미가 통했기 때문이다. 중국 최초의 매화 족보라고 할 수 있는 <매보>가 이 시기에 나온 배경이다. 이어서 명나라 때에는 최고의 영광을 안았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에 뽑힌 것이다.(p.24)” 산청 산골에 정당매를 심은 강회백의 손자인 강희안이 지은 조선시대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에서 할아버지가 심은 매화나무를 소개하면서부터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외진 산골에 살고 있는 정당매를 찾아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청 사람들은 정당매와 남명매, 그리고 원정매를 일러 ‘산청 삼매’라고 부른다. 산천재 앞에 있는 500살의 나무를 남명매라고 부르고, 고려 후기의 문신 원정 하즙이 남사리에 살면서 심고 가꾼 매화를 그 후손들이 원정매라 이름 지었다. 현재 산청은 대한민국 최고의 매화나무 명소라 할 수 있다.
“내가 살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씨앗에 독이 있기 때문이다. 벌레나 동물의 위협에서 나와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독을 만든 것이다.(p.59)” 개가 살구 씨를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 개가 무슨 살구 열매를 먹느냐고 할 수 있지만, 열매가 익어서 땅에 떨어지면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살구꽃에서 나는 향기를 행향(杏香)이라고 하지만 매화 향기처럼 진하지 않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곳을 행단(杏亶)이라고 하는데, 살구나무 그늘이라는 뜻이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이것을 은행나무 그늘로 오해하여 전하고 있기도 하다. 살구나무 잎은 매화나무보다 더 크고 둥글며, 잎맥은 똑같이 어긋나지만 선명하지 않은 매화나무와 차이가 있다. 줄기 색깔은 살구나무가 밝은 편이고 매화나무는 검은 편이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살구나무에는 가시도 있다. 부모인 장미를 닮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살면서 퇴화하여 도드라져 보이진 않는다.
아까시나무는 꿀을 따기 위한 밀원이나 헐벗은 산을 보호하는데 사방공사용으로 심는 수종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 향기는 진하여 꽃피는 시기에 달콤한 향기를 도시에서도 쉽게 맡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름을 ‘아까시아나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 원래 ‘아까시아 나무는 사막에 사는 까시가 달린 큰키나무이다. 일본인이 아까시나무를 처음 우리나라에 심은 것은 1891년 인천공원 이었고, 1898년 일본출정철도감부에서 아까시나무를 인천 월미도와 다른 지역에까지 보급했다. 철도청에서 열심히 보급한 것은 재질이 강해서 철도침목용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밤나무가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후 산림녹화 사업을 할 때 전국적으로 많은 아까시 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
학교 교정이나 관공서 화단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향나무가 ‘가이즈카향나무’다. 그런데 “내게 이름을 붙인 사람은 나의 고향을 중국과 일본이라고 기록했다. 한국인들은 주로 일본식 이름을 사용한다. 오사카의 가이즈카에서 많이 살고 있어서다. 일본에서는 패총(貝塚)으로 표기한다.(p.144)” 하지만 그것은 지명에 불과할 뿐 나의 속성과는 거의 무관하다. 중국에서는 나사백(螺絲栢)이라고 부른다. 가지가 소라 모양의 실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한 때 배나무 과수원에 피해를 입힌다고 하여 수난을 당한 때도 있다. 그러나 잎에 까시가 없고 모양을 만들기에 좋아서 사람들이 정원 등에 많이 가꾸기도 한다.
“사람들은 히말라야시다와 개잎갈나무를 다른 나무로 착각하기도 했다. 모두 개악 탓이다. 국산화라는 명분하에 이름을 바꾸었지만 도리어 잘못된 결과를 낳고 말았다.(p.171)”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원래 ‘히말라야시다’라고 원산지 지명을 이름으로 쓰고 있었는데, 한국식으로 이름을 고친다고 ‘개잎갈나무’라고 바꿨다. 원래 이름대로 그냥 놔두는 게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나무와 닮았지만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소나무의 잎은 2개가 한 묶음이지만, 히말라야시다의 잎은 한 가지에 20-50개씩 달린다. 꽃도 가을에 암꽃과 수꽃이 뾰족이 솟아오른다. 열매는 다음 해 가을 무렵 달걀형으로 완성되고 꽃처럼 가지 위로 불쑥 올라오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있다. 열매도 소나무 솔방울보다 크고 조직도 전혀 다르다. 솔방울은 익으면서 벌어진 채로 있지만, 얇은 막으로 구성되어 있어 비늘처럼 벗겨진다. 이렇게 정교하게 열매를 만드는 것은 날개 모양의 씨앗이 바람에 쉽게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천자를 만나려면 나무 아래에서 기다려야 했다. 신분에 따라 나무가 달랐다. 그중에서 회화나무는 천자 다음으로 신분이 높은 삼공이 기다리는 나무였다.(p.259)” 삼공은 제후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인 태사, 대부, 태보를 가리킨다. 창덕궁에 있는 천연기념물 회화나무처럼 조선시대의 궁궐에서 살고 있는 회화나무들도 이같은 주나라의 예를 따른 것이다. 회나무는 그렇게 대대로 양반들의 나무로 추앙받았다. 양반들이 회나무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사(士)의 무덤에 회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신분사회인 주나라에서는 천자의 무덤에는 소나무를, 제후의 무덤에는 측백나무를, 사의 무덤에는 회화나무를, 백성의 무덤에는 버드나무를 심도록 했다. 그 후로 이런 관행이 생겨나 나무에게도 높고 낮은 신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신라 말의 도선이라는 사람이 중국의 풍수에서 벗어나 한국만의 풍수를 제창한 이래 나무를 통해 마을을 보호하는 풍습이 성행했다. 비보풍수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p.75)” 이런 영향으로 마을 앞에 숲이 조성되어 바다바람과 홍수로부터 지켜내며 아름다운 경치를 가꾸게 되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보고 있다. 이런 지혜는 앞으로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나무 인문학자가 전하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조상들과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볼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스2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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