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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 또는 항균제(영어로는 antibiotic 또는 antimicrobial agent)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세균을 죽이는 약’이면 다 항생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좁은 범위의 정의를 보면 ‘어떤 미생물에서 만들어진,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미생물이란 세균이 될 수도 있고, 곰팡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항생제라 부르며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물질 중에는 미생물에서 나오지 않은, 실험실에서 합성해낸 물질이 적지 않다. 그것들을 이용해서 세균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데 굳이 항생제의 범위에서 배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최초의 항생제는 공식적으로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이다. 그런데, 이 최초라는 타이틀은 조금 논란이 있다. 우선 페니실린과 똑같은 물질을 발견한 전례가 있다. 그냥 그런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냥 넘어간 게 아니라 그 물질의 세균 사멸 효과까지 알았었다. 프랑스의 뒤셴이라는 청년의 이야기인데, 그는 심지어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발견은 잊혀졌고, 약으로 만들어진 건 플레밍의 발견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무 논란 없이 플레밍의 페니실린이라고 해도 괜찮을까? 그것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그에 관한 에피소드는 너무 유명하니 생략) 1928년이고, <영국병리학회지>에 발표한 것은 1929년이다. 그러면 그후 바로 약으로 쓰였거나 약 개발에 힘을 썼을까? 아니다. 그의 발견도 잊힐 뻔했다. 옥스퍼드대학의 플로리와 체인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플로리와 체인은 도서관에서 잊혀져가던 플레밍의 논문을 찾아내 가능성을 보았고, 갖은 노력 끝에 치료에 쓰일 수 있도록 페니실린을 순수분리했다(플로리와 체인이 찾아가서 문의했을 때 플레밍은 그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플레밍을 더 많이 기억한다. 아니 플레밍만 기억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논란이 있다. 플레밍, 플로리, 체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1945년이다. 그러면 그들이 항생제 개발의 공으로 노벨상을 받은 게 최초였을까? 아니다. 193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에 지명된 것은 독일의 연구자 게르하르트 도마크였다. 그는 설포닐아마이드, 즉 설파제 개발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에 지명되었다. 그 당시는 나치가 노벨상을 거부하던 때로 나치에 의해 수상 포기 종용을 받았고 실제로 수상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가 되었지만, 그리고 그 물질이 세균 감염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은 1934년 경의 일이지만, 어쨌든 노벨상 수상 년도는 페니실린보다 더 먼저였다. 이 설파제, 상품명으로는 프로톤질(protonsil)이 바로 세균 감염을 치료하는 합성 항생제였다. 그래도 최초의 항생제라는 타이틀은 플레밍의 페니실린이지만, 그 역사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감염의 전장에서》(이 우리말 제목은 지금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바로 도마크의 설파제에 관한 이야기다. 도마크에 대해 현재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파고들만한 소재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야기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여러 갈래로 전개된다. 우선은 세균 감염의 무서움이다. 지금이야 코로나-19로 바이러스 감염의 무서움을 절감하고 있지만, 1차 세계대전 즈음만 하더라도 세균 감염이야말로 무시무시했다. 전쟁에서 총칼에 의해 직접 죽는 병사보다 전쟁 도중 어떤 방식으로도 세균에 감염되어 죽는 숫자가 더 많았다. 실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거의 죽을 뻔한 위험에서 살아나 의학을 전공하고, 세균 감염 정복을 위한 길에 나선다. 물론 그 전부터 그 길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들이 있었다. 세균설을 확립한 파스퇴르와 코흐를 비롯하여, 매독 치료제를 최초로 개발한 에를리히 등이 그런 인물들이다. 특히 염색산업이 발달했던 독일에서는 염색약을 이용하여 세균 감염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게 되는데, 그것은 세계 최초의 대규모 기업 수준의 연구개발 사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연구개발 사업의 한 가운데에 도마크가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실제 설파제, 프로톤질 개발의 과정이다. 가능성이 보이는 염색약에 이저러저런 작용기를 붙여보고, 그것들은 변환시키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약효를 관찰하는 것이다. 도마크는 바이엘사의 화학자들이 만들어내는 물질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실험했고, 결국은 수백번의 시도 끝에(정확히는 730번째 물질) 연쇄구균에 효과적인 물질을 찾아낸다. 그게 바로 나중에 프로톤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설파제였다(설파제란 sulphur, 즉 황을 기반으로 한 물질이란 뜻이다). 그리고 성공의 역사가 시작된다. 독일과 영국 등 유럽에서의 알음알음 명성을 쌓아가던 설파제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아들을 치료하면서 그 명성이 미국에까지 이어졌고, 그에 대한 의존은 과하다 여겨질 정도였다.
온통 성공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에서 만든 프로톤질은 기본적으로 염색약에 황을 포함한 가지를 다는 것이었는데, 프랑스에서는 염색약은 아무 필요 없고, 황을 포함한 물질만 있어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특허를 낼 수 없는 물질이라는 사실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마구잡이로 비슷한 물질을 만들어냈고, 의사며 약사들은 그것들을 치료에 사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잘못된 용매를 사용한 약품 때문에 적지 않은 인명피해가 생겼고 그것을 기화로 미국 FDA가 강화되고, 의약품에 대한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진다. 설파제 때문에 생긴 일인 셈이다.
설파제는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의 대성공을 뒤로 하고 페니실린을 비롯한 다른 항생제에 그 자리를 넘겨준다. 지금은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고 trimethoprim이라는 다른 항생제와 함께 사용한다(상품명으로는 bactrim이라고 한다). 설파제가 최초의 항생제라는 영광은 받지 못했고, 도마크는 지금은 거의 잊혀진 개발자가 되었지만, 도마크의 설파제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많은 목숨을 살린 것은 물론이고, 제약산업의 변화가 일부 그로부터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머스 헤이거(그는 《공기의 연금술》에서 역시 인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 하버-보슈 공정을 발견한 과학자에 대해서 다루었었다)는 ‘감염의 전장에서’ 최초로 승리의 보고서를 쓸 수 있도록 했던 설파제 개발의 역사라고 하는, 어쩌면 딱딱하기 이를 데 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마치 역사 소설처럼 매혹적으로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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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했던 1차 대전에 영화 1917을 보면서 가장 가슴 철렁했던 장면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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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감염병의 시대에 큰 의미를 지닌 책이다. 오늘날 코로나 상황에서 의료진의 노고에 큰 감사를 드린다. 도마크는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를 발명하고 노벨상까지 받는 이 이야기의 주역이지만, 이 책은 도마크의 행적만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세균 감염이 당시 과학자와 의학자들에게 어떤 위협이었는지,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국가와 거대 제약회사는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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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토마스 헤이거(Thomas Hager)의 The demon under the microscope (현미경 아래 악마)가 “감염의 전장에서”라는 번역서(노승영 역)로 출간되었다. 원저 출판 후 15년 지난 2020년 5월에야 국내 출간된 것은 코로나에 편승한 마케팅의 일환이었을 듯. 요즘 흥미를 끌 수 있는 제목이긴 해도 설파계 항생제에 대한 역사서이기에 COVID-19와의 연관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감염병에 대처라는 어느정도 공통 주제가 될 수도 있겠다. ? 도마크(Gerhard Domagk, 1895-1964)라는 독일 의사와 그가 주도적으로 개발한 설파계 항생제에 대한 역사서다. 1930년대 중엽 항생제의 개발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기술하고 있다. 항생제의 사용으로 세균 감염에 의한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인 것은 물론 의사의 역할도 크게 변화시켰다. “형편없는 급여를 받으며 집집마다 왕진하고 밤새 환자를 간호하고 가족을 위로하는 이타적인 간병인”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진료실에서 처방전을 써주는 부유한 전문직”으로 달라졌다. 달콤한 무색액체인 디에틸렌글리콜이 첨가된 설파제 부작용(Elixir Sulfanilamide)으로 미국에서 10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현대 제약 관행의 주춧돌”이 된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이 1938년에 통과되면서 현재의 FDA가 돌팔이 의료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 실용과학의 정점으로 일컬어지는 현대(서양)의학의 과거는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감염병의 원인인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로마시대에도 상하수도 등 위생을 중시했으나, 서양을 지배해온 기독교 의료는 깨끗한 손보다는 순수한 영혼을 수백년 동안이나 강조해왔다. 산업혁명 이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1914-18)이 이전의 전쟁들과 다른 점은 더욱 강력해진 화력이다. 강력한 폭발로 주변 잔해들이 병사들의 살을 파고드는 살상 무기들로 치러진 전쟁이었다. 파편에 의한 부상은 외부 소독제와 절단으로 치료되었다. 외부 소독제는 당시 존재 자체를 몰랐던 각종 세균들을 죽일 수는 있었으나, 주변 정상 조직에까지 피해를 입혔다. 남아 있던 세균으로 인해 이내 창상 감염으로 많은 병사들은 수족은 물론 목숨까지도 빼앗겼다. 2차 세계대전(1939-45)은 석유 기반의 전쟁이었다. 전쟁 부상 중 화상 사례도 많이 발생했으나 이전과 달리 항생제가 충분히 공급되어 감염에 의한 사망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1900년대 초기의 기대수명의 급격한 증가가 세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위생개념의 도입과 무관하지 않다. From www.gapminder.org ?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는 독일에서 개발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도마크는 전쟁이 끝난 후 의대를 졸업하고 이게파르벤(IG Farben, 당시 독일의 염료화학공업 복합기업)에서 생체내에서 세균만 골라 죽일 수 있는 마법의 탄환 (Zauberkugel) 개발에 뛰어든다. 특정 물질에 달라붙는 염료에 착안해 세균에만 달라붙는 소독제 개발에 매진한다. 기술력과 자본의 우위로 첫 설파제 개발에 성공했고, 이후 프랑스, 영국에서도 유사한 설파제가 발매되었다. 설파제 개발로 도마크는 1939년의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나치 독일하였기에 실제 상을 받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연구를 계속했고, 뒤늦게 노벨상 메달과 상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해 1947년에는 설파제는 더 나은 항생제 페니실린에게 이미 자리를 내어주고 있을 때였다.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전범기업 이게파르벤은 많은 특허들을 승전국 기업들에 상납하고, 바이엘사 등 6개의 작은 회사로 쪼개졌다. ? 이 책은 설파제가 주인공이고, 도마크 등 많은 과학자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의학역사서다. 역사서에 익숙한 필자의 기대와는 다른 제3자 관점의 장편 소설같은 필체였기에 400쪽이 넘는 분량을 3일만 완독했다. 무엇보다 저자(혹은 역자)가 전문지식을 일반인의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이 큰 감동이었다. 항생제를 주제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장엄한 계곡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 감동이 폐렴 같은 감염병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일상인 필자에게 하나의 큰 숙제를 던져준다. ? “의술은 자연이 병을 치유하는 동안 환자를 달래는 일이다.” - 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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