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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며 경주 계림이 생각났다. 5년 전, 딱 이맘때쯤 처음으로 경주에 갔었다. 학생 때 수학여행으로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경주. 홀로 아침에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역에 도착해 며칠 먼저 지내고 있던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경주가 처음인 내게 프로 가이드처럼 1박 2일을 여유롭고도 알차게 안내해주었다. 상상으로만 생각했던, 역사 교과서 같았던 경주를 마주한 나는 많이 벅찼던 것 같다. 문무대왕릉, 감은사지, 인왕동 고분군, 첨성대까지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다 해질녘 차분하게 계림을 거닐었다. 지금에 와 돌아보면 경주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건 언니와 호젓하게 걸었던 계림이다. 저기 언니와 나처럼 숲을 걸어가는 두 사람은 누구일까. 책을 펼치기 전, 표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책 소개를 읽을 때 저자 김인환 선생님은 황현산 선생님의 지기지우라고 했는데, 그 두 사람은 아닐까. 처음 뵙는 김인환 선생님은 이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실까-라며 책을 펼쳤다. 책을 읽을 때 밑줄 긋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머리말을 읽으며 난 바로 연필을 들었다. 로자의 <자본축적론>부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독서의 가치’부터 이야기해주신다. 사실 다독에 욕심이 있는 나는 선생님께 혼쭐이 나고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한 권 한 권의 책을 공들여 천천히 읽는 것이 독서의 유일한 방법이다. 천천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에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일 것이다. 책은 우리가 시간을 들인 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려준다. p26 이 책은 산문집이라고 하기에는 동학, 철학, 문학비평 등에 내용이 인문서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처음 말씀하셨던 독서의 맥락, 관계 등을 통해 배우는 이 책에 담으신 삶의 태도에서 단순한 인문서가 아닌 그 어느 것보다 가치 있는 어른의 산문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핵심에 가라앉는 것이 바로 정념일 것이다. 이제 마음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은 인지 착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p53 위에서도 말했지만 솔직히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과 관심사가 비슷한 분야에서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지만 평소 관심을 미처 가지지 못했던 분야에서는 물음표를 안고 연필을 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부분이 오히려 좋기도 했다. 선생님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고대 사상을 학습하기 위하여 중세에는 침묵의 공간을 자유롭게 비워두었다. 학교와 수도원이 그러한 공간들이었다. 수도원 안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식물도 천수를 누렸다. p74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신 황현산 선생님을 ‘좋은 어른’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다. 나 역시도 겸손이 필요할 때는 그리운 황현산 선생님의 책을 읽곤 했다. 유난히 연초부터 어려움이 계속되는 올해, 난다 출판사에서 황현산 선생님에 이어 좋은 어른을 또 소개해 주었다. 선생님의 깊고 따뜻한 말씀을 통해 봄을 이겨내 본다. 분명 곧, 우리는 잘 극복할 거고 멋진 현재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여름이 오기 전, 이 책을 들고 계림에 가서 선생님과 산책하듯 다시 읽고 싶다. 아이는 아이로서 최고이고, 어른은 어른으로서 최고이며, 남자는 남자로서 최고이고, 여자는 여자로서 최고라는 믿음이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딛고 미래를 설계하며 현재의 과제를 수행하지만 그는 동시에 동시성과 완전성을 지닌 영원에 참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현재는 영원과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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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인환 선생님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이 책을 읽었다. 표지처럼 산뜻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책일 것으로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서 책을 폈다. 그리고 서문을 읽다가 놀랐다. 글자를 읽었지만 읽히지 않아서 (!!). 이렇게 읽을 책이 아니구나 싶어서, 일어나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읽었다. 그리고서도 계속 책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해서 조금 헤맸다. 그러다 알았다. 이성을 깨우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조용한 카페에 가지고 나가서 한 챕터씩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것을.
이 책은 독서의 가치, 동학, 중세 철학, 과학기술, 라캉 등의 주제로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꼭지마다 주제에 관해 넓은 범위를 포괄해 말하면서도, 본론으로 들어가면 깊게 탐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말해주는 것 같다. 깊다는 것은 무한한 맥락으로의 확장이었다. 첫 번째 꼭지 「독서의 가치」에서 "하나의 작품은 동시대의 또는 이전 시대의 작품들과의 연결 관계 속에서만 이해된다. 어느 책도 다른 책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무한한 맥락'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저자는 매 꼭지 이 '무한한 맥락'에 따라서 논리를 진행한다. '동학'과 '니체'가 연결되고, '기독교'와 '유교'가 연결되고, '릴케'와 '한국의 시인'이 연결된다. 나에게 쉽게 읽히는 문장은 거의 없었지만, 이 무한한 맥락의 신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이 책만의 독보적인 매력을 느꼈다.
3.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를 느낀 부분은 중세철학(중에서 기독교 철학), 특히 에카르트에 관한 부분이었다. 신에게로 간다는 것은 마음을 비우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세계 속에서 '무언가를 가지게 되는 것',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 '무엇인가를 원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특히 재미로 하면 안 되고, 메마름을 견디며 어두움 속에 버려져 있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한때 기독교인이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정말 수많은 사람이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것을 봤지만, 나 스스로도 어떤 모순 속에 있고,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하는 회의 속에서 기독교와 조금씩 멀어져 왔다. 이 글을 보면서 '종교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갖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한 사람이라도 "무욕과 무지 속에서 사랑만이 홀로 정화의 어두움 속에서 타오르며, 영혼이 비로소 하느님과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신앙을 바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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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를 처음 펼쳐들었을 때, 그 웅장함에 반하게 된다. 지도를 들여다 보면 볼 수록 각 나라들의 생김과 위치가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곳부터 낯선 곳까지. <타인의 자유>는 하나의 지도다. 저자 김인환 선생이 어쩌면 평생에 걸쳐 그려놓은 공부의 흔적, 책의 지도가 눈 앞에 펼쳐진다. 한 권의 책이 가지는 의미는 그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닌,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는 것(30p)이다. 그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맥락'을 파악하게 된다. 맥락은 광장과도 같아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선 방향을 정하고 길을 선택하는 가지치기를 해야한다. 그렇게 그려가는 것이 책의(공부의) 지도다. <타인의 자유>는 문학, 인물, 철학, 예술, 정치, 경제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다룬다. 책을 처음 접하게 되면 그 웅장함에 당황하거나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이 하나의 지도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즐거워진다. 그리고 김인환 선생이 그려놓은 지도의 맥락을 짐작케 되는 순간 가슴이 뛴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지도를 그릴 것이다. <타인의 자유>는 하나의 견본이다. 모범답안이 아니라 견본이라 말하는 까닭은, 그 어떤 지도에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김인환 선생은 <타인의 자유>라는 제목은 로자의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밝힌다. 나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도를 그릴 자유'라 해석해본다. 나의 책 지도는 어떤 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을까. <타인의 자유>와 같은 멋진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금 갈 길과 이제 할 일에 집중하며 걸어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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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보물 같은 문장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번 책은 사실 문장 찾기는 실패했다.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 통째로 좋아서 읽다 보면 페이지 전체가 좋고 대체 필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거든요. ㅤ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어려운 책'. 머리와 마음이 동시에 바빠지는 책이었다.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것들이 많으며 채워진 부분보다 채워나갈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김인환 교수님의 산문은 어느 분야의 지식으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았다. 나는 인문학자들을 존경하는데 그 경지에 계신 분이라고 밖엔 설명을 못하겠다. 같은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기에 그의 견해를 읽고 있으면 나까지 똑똑해지는 기분이든다. ㅤㅤ 내가 뭐라고 이런 고귀한 책에(다른 말로 대체 불가) 대해 서평을 남길까 싶었지만 부족한 지식을 갈망하게 만드는 귀한 글들이었다. 또한 읽을수록 겸손해졌다. ㅤㅤ 난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장인 같은 느낌이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물적인 책 그 자체에도 공들인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덤불, 불로뉴의 숲> 을 표지로 채택하였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황현산 선생님과 나란히 동행하고 계시는 김인환 선생님의 모습이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ㅤㅤ 237페이지의 절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아주 많다(그리고 깊다). 사유(思惟)의 기쁨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조심스레 추천드려요. 결코 쉽지 않은 책 읽기지만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큰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ㅤㅤ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고 질문하였지만, 이제 우리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라고 질문해보아야 한다. 음식에 쓰레기가 있고 공장에 폐기물이 있듯이 지식에도 찌꺼기가 있다. 온갖 잡다한 정보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현대의 속물들에 저항하여, 창조적 직관을 함양하는데 기여하는 독서야말로 올바른 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독서는 정직하고 관대한 생활의 한 부분이다. p35 ㅤㅤ ?밭은 흙 고르고 씨 뿌리고 물 대고 김매고 거두는 때를 어기지 않으며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황폐하게 된다. 마음받 일에는 희랍어로는 스콜레라고 하고, 라틴어로는 오티움이라고 하는 여유로운 긴장이 필요하다. 마음밭 일도 일이다. 일을 하려면 입품을 줄이고 손품과 발품을 늘려야 한다. 마음밭 일은 침묵 속에서 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사실들을 인식하는 훈련이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생각도 빗나간다. p52 ㅤㅤ ?참이 미래시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에는 진리의 결여라는 고통이 수반된다. P57 ㅤㅤ ?깨달음은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상처를 견디면서 상처의 한복판을 뚫고 넘어서는 자연 치유이다.치유된 사람은 이 세상의 모순과 혼란이 파괴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p65 ㅤㅤ ?야만과 문명의 공존 또한 중세의 특징이었다. p71 ㅤㅤ ?우리는 소유와 지식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거기에 끝까지 매달린다면 우리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마지막까지 보장하려 든다면 우리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그것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해내려 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p84 ㅤㅤㅤㅤ ?사유 대상은 사유 작용과 분리될 수 없다. 의식과 대상을 분리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은 성공할 수 없다. 대상은 의식에 대한 대상이고 의식은 대상에 대한 의식이다. 의식은 섬이 아니다. 의식이 자신을 넘어 작용하는 것을 지향성이라고 한다.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식이 어떤 것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의식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 지각이다. 지각은 운동감각을 통해 수용된 대상의 다양한 국면을 동일성으로 구성한다. 지각의 수동성과 능동성은 서로 상대방을 함축한다. 가까이 가서 보고 듣고 또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 전후좌우를 둘러 보면서 우리가 직관하는 지각 내용은 학문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p102 ㅤㅤ 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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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문학, 인물, 예술 등 광범위한 지식을 탐구하는데 쏟아온 김인환 평론가의 산문집 <타인의 자유>. 총 11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챕터마다 독서, 동학, 중세철학, 불교, 팝 음악 등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읽기 쉽지 않았다. 문장이 어렵지는 않으나 문장 간 사유의 폭이 촘촘하여 책을 읽는 내내 쏟아지는 폭포를 그대로 맞는 것 같았다. ? 가장 인상 깊었던 글은 단연 '독서의 가치'다. 얼마 전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을 읽고 고전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터라(<지난날의 스케치>) 이 글이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한 권 한 권을 천천히 공들여 읽는 독서이며 옆으로 확장되는 맥락의 독서다. 요즘 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독서와 공부를 위한 독서를 구분하려는 참인데, 저자의 글은 특히 후자의 독서법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새겨들을만했다. '창조적 직관을 함양하는데 필요한 독서'를 위하여. ? 그런가 하면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다룬 '릴케의 천사' 챕터도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천사학부터 기독교-이슬람교의 전통을 거쳐 중세와 근대의 상호 조명까지 논하고 있다. 이제껏 나는 릴케를 제대로 읽고 있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당장이라도 중근대 역사와 철학을 파헤쳐야만 할 것 같은 투지가 불타올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앎을 향한 투지. ? 책장을 덮고 나서야 띠지에 적힌 '공부의 모자람을 알게 하여 자유롭게 공부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문구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 책과 저 책을 넘나들고, 잔뜩 메모를 적고, 새벽 서너시쯤 어떤 깨달음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을 다시 겪고 싶어진다. 이대로 무지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바짝 선다. ? www.instagram.com/vivian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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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밑줄을 빽빽하게 긋고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여가며 느리게 읽었던 故 황현산 교수님의 책들을 떠올리며 김인화 교수님의 《타인의 자유》 를 맞이했다. 서문부터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다. 읽다가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천천히 곱씹으며 읽을수록 짜릿한 지적 희열이 느껴졌다. 작년, 롤랑 바르트나 마사 너스바움의 저서를 접했을 때도 텍스트는 읽히는데 의미가 읽히지 않아 같은 페이지를 여러 번 다시 읽었는데, 그 때는 번역문이 잘 와닿지 않아 힘겨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는 건 그것과는 달랐다. 문장 하나 하나는 분명하고 확실했지만, 그 사유의 깊이를 내가 따라가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던 것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줄기를 뻗고 가지를 쳐나간 한 지식인의 사유를 이제 막 공부라는 걸 시작하려는 내가 술술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게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리라. 나는 다시 한 번 대학교로 돌아가 교수님의 수업 한 학기를 직접 수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하며 책을 천천히 읽었다. 막힐 때마다 나는 표지의 띠지로 돌아갔다. "공부의 모자람을 알게 하여 자유롭게 공부하게 만드는 책!" 과연, 책을 읽으면서 모자람을 느낄수록 나는 설렜고 또 두근거렸다. 밀도 있는 공부에 대한 도전 의식이 불타올랐다고 해야 할까. 대학교를 벗어나서도, 이렇게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일상의 가벼운 단상들과 유머러스한 에피소드가 가득찬 에세이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나 나를 쩔쩔매게 하는 책을 내 맘대로 정한 속도에 맞춰 여러 번 반복해서 천천히 읽어볼 수 있다는 건 그보다 더 신이 나는 일이다. 이토록 헤매이며 교수님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조금은 닮은 모습으로 사유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언젠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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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언제나 공백과 싸우고 있으며 시는 이 공백에 이름을 지어주려는 욕망의 실험이다. 욕망은 어떻게 작동하고 고장 나는가? 욕망은 어떻게 한 신체로부터 다른 신체로 옮아가는가? 어떠한 욕망이 어떻게 흥분하는가? 욕망이 편력하는 환경은 어떠한가? 문제는 거창한 지식이 아니라 정직한 욕망이다. 욕망만이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자신을 개방하는 용기를 선사한다. 욕망은 있음이 아니라 넘어서서 있음이고 욕망의 본질은 타자의 부름에 있다. 욕망은 모든 한계를 꿰뚫고 분열과 모순을 자체 내에 보존하는 끝없는 의욕이며 깊은 정열에 의하여 특별하게 충격된 심적 운동의 끊임없는 충실성이다.<랭보와 모던 팝>중에서 ???????????????????????????????? 동학을 세계 최고의 사상으로 생각하는 나는 몇년전 계간지 <대산문학>에서 니체와 동학 창시자인 수운 최재우의 유사성을 조명한 인상적인 에세이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난다 서포터즈 책으로 받은 이책에 그 에세이가 실려 있어 어찌나 반갑던지. 저자는 문학평론가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작고한 평론가 황현산 선생과는 가까운 벗이자 학교동문이다. ????????????????????????????????? 짧지만 집중을 요하는 230p 분량의 책 <타인의 자유>는 독서, 동학, 중세철학 ,천사, 법, 황현산과 랭보, 라캉등 11개의 철학적 키워드로 다채로운 글들이 수록 되어 있어 인문학자 김인환 선생의 사상 면면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 특히 <라캉과 나> 는 지금까지 지적 맹신과 지적 컴플렉스로 위축되어 있던 내언어의 한계에 새로운 성취와 갱신의 체험을 주었다. 철학자 지젝의 라캉 혹은 <에크리>는 통독은 커녕 한줄 읽고 울고, 난해한 해설 또한 언발에 오줌 누기식이던 나같은 독자에게 김인환 선생의 이번 신간 산문집은 누구에게나 열린 배움의 강단이 될 것이다. p18???????????????????????????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회로를 따라가면서 독자는 책들의 의미를 재조정하고 재분배해야 한다. 맥락은 닫힌 창고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광장이기 때문에, 맥락의 정체는 언제나 우리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맥락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에 맥락의 독서는 시작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는 놀이가 된다. 독서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창조적 놀이이다. ???????????????????????????????? 자유롭고 창조적인 독서를 위해 맥락의 독서 (측면독서)를 강조하는 저자는, 책이 지식의 도구나 정보 창고가 아닌 우리의 존재 양식으로서 가치를 논한다. ?????????????????????????????????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타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 저자는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1871~1919)의 저서 <러시아혁명에 대하여>에 나오는 구절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유”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 타인의 자유에 관한 로자의 대중주의 신념을 한국의 ‘화백 민주주의’와 연관지었고 타자의 존재와 권리를 존중 하고 타인을 있는그대로 받아 들일수있는 겸손과 배움의 자세가 나자신의 것임을 깨닫해준 귀한 책. ????????????????????????????????? 끝없이 이어지는 앎과 깊은 사유의 발자국은 호흡을 조절하지 않으면 자칫 길을 잃게 된다. 시민의 언어는 지껄임이고 시인의 언어는 얼말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고 스님은 시를 사는 사람이고 평론가는 시인과 스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사람이다.<자정의 성찰중>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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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과 의식을 아우르는 지식의 결정체]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허영으로 가득한 날들이었으리라. 아는 척, 유식한 척, 종내 잘난 척으로. 그렇게, 주욱 나아가려 했던 사람이 있다. 김인환 교수 앞에 섰다. 마주하고 바라보는 행위는 인식을 넘어 의식과 깨달음을 향해 내달린다. 지난 날들에 대한 반성이 몰려온다. 스노비즘, 말하자면 지적 허영심은 산산조각난다. 대양에 빠진 돌덩이는, 조약돌이든 다이아몬드든 쉬이 찾을 수 없다. 내 빈약한 지식이 돌덩이고, 대양은 이 책, 아니 김인환 교수의 생각 자체로 비유해볼 수 있겠다. “인간은 현재 이 순간에 그때그때 보편적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결단하지 않을 수 없다. 참이 미래시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에는 진리의 결여라는 고통이 수반된다. 백만 년 후에도 인간은 제가 아는 것을 넘어서 참을 찾고 있을 것이다.” __(57p) [생각의 길을 지나 바다에 빠지기까지의 일] 저자는 책의 첫 장에 “독서의 가치”를 배치한다. 이는 즉, 이 책 또한 그렇게 읽히기를 바라고, 그정도의 힘을 가진 독자를 만나길 기대한 것이 아닐까. 나를 돌아본다. 반성과 후회를 품는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 이 책 앞에선 나의 부끄러움은 숨을 곳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한 권 한 권의 책을 공들여 천천히 읽는 것이 독서의 유일한 방법이다. 천천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에 읽을 가치가 없을 책일 것이다. 책은 우리가 시간을 들인 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려준다.” __(26p) 독서에서 시작한 논의는 경제와 법을 통과해 시(詩), 음악(모던팝), 언어, 그리고 과학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이 때 중심을 잡아주는 사상은 <의식 - 사유 - 관조 - 언어>라는 핵심 채계 안에서 수용성을 확보한다. 말도 안 되는 일이겠지만, 나는 이미 그의 사유를, 사상을 탐하고 만다. 아무렴 어떠한가. 그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욕망은 거부인 동시에 개방이고 부정인 동시에 사랑이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과학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인간에게 우주는 측정과 분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공감과 참여의 공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정교하게 단위 요소들을 끊어내고 단위 요소들의 형식 체계를 치밀하게 구성해도 우주의 대부분은 과학적 절단에서 새어 나온다. 우리에게 붙잡히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수많은 진동이 과학을 해체하고 과학을 쇄신하는 바탕이 된다.” __(23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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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한 권의 책을 공들여 천천히 읽는 것이 독서의 유일한 방법이다. 천천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에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일 것이다. 책은 우리가 시간을 들인 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려준다.” (김인환, 『타인의 자유』 27쪽)
『타인의 자유』는 공들여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너무 어려우니까. 동학과 중세철학, 과학기술과 모던 팝, 릴케와 라캉이 하나로 묶인 책이라니. 75세 문학평론가의 배움의 과정을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여러 번 찢어졌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끝까지 따라갔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으며 오랜만에 뿌듯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헤매며 읽었는데, 뿌듯함이라니. 묘한 기분으로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읽는 동안 한 가지 열쇳말이 떠올랐다. 배움의 태도. 그 태도의 측면에서 책을 다시 읽었다. 전에는 두드러지지 않던 새로운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 “로자의 『자본축적론』도 읽어보았으나 나는 그녀의 경제 이론이 논리적인 체계에 있어서 다소 미흡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을 이해하는 능력은 자기에게 필요한 책을 선택하는 능력 또는 맥락을 구성하는 능력과 다른 것이 아니다.” “누가 팔정도의 바야마와 육바라밀의 비르야가 어떻게 다른지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법신-화신-보신의 구조를 하느님-부처님-얼사람의 구조로 풀어보고 싶다.” “상징과 사물이 얼크러져 만드는 공간을 나는 두루뭉수리라고 옮겨보았다.” - 배움의 길에서 언제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었던 저자가 ‘나는’의 얼굴을 하고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모를 땐 묻고 배우면 사용해보고, 이렇게도 풀어보고 저렇게도 옮겨보라고. 어떤 책의 의미는 다른 책과 맺는 관계 안에서 알 수 있다고. 공들여 천천히 읽고 시간을 들일 때만 알려준다는 ‘무엇인가’가 그제야 보이는 것 같았다. “한 권의 책을 정밀하게 읽어서 그것의 밑바닥에 있는 의미를 해석하는 방법은 책의 다양한 의미를 제한하게 된다. 의미는 책의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들이 다른 책들과 맺는 무수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책들과 책들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들의 결을 파악하려면 깊이의 비전 대신에 옆으로 보는 비전을 따라가야 한다. 측면의 독서만이 맥락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쪽)
저 단락 속 ‘책’의 자리에 ‘철학’ ‘음악’ ‘사람’ 등을 넣고 보니, 상관 없는 주제들이 한 데 묶였다 싶던 책의 인상이 달라졌다. 맥락을 구성하는 능력을 갖출 때, 배움은 얼마나 넓어질 수 있는지, 평생의 배움이란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그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유연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이 책은 11개 꼭지 내내 증명하고 있었다. 어려운 용어들에 지레 겁먹지만 않는다면, 공들여 천천히 읽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한다면 당신도 결국 만나게 될 것이다.1946년에 태어나 검은 교복을 입은 채 신나게 색소폰을 불던 한 명의 고등학생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즐거운 배움의 길 위에서 좋은 길잡이이자 길벗이 되어 줄 솔직하고 유연한 한 사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