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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프리랜서다. 직장에 매여 원하는 때 원하는 무언가를 하기 힘든 나는 이 단어가 부럽다. 그러나 주어지는 게 없다는 사실은 막연함을 선사한다. 한 번 놓아 버리면 영영 쉬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자주 시달리는 게 바로 프리랜서다. 그는 교통사고로 고생을 꽤나 했다. 그것도 세 차례나 사고를 겪었으니, 나 같았으면 집 밖으로 나가는 거 자체가 두려웠을 듯하다. 여기저기 아니 쑤시는 곳이 없으므로 달리는 건 커녕 잠시 누워 있다 일어나는 것도 버거웠다. 무슨 이유에선가 그에게 꾸준히 달리기 대회 참가를 권한 이가 있었고, 연거푸 거절 의사를 밝히다가 마지못해 수락한 게 저자의 첫 달리기였다. 대개 성인이 된 이후로는 달리기와 거리를 둔 삶을 산다. 저만치 내가 탑승해야만 하는 버스가 있는데 그걸 놓치면 회사에 지각을 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한다면 달릴 일이 없다. 저자 또한 200미터도 못 가서 거친 숨을 몰아 쉴 정도로 달리기와는 안 친했다. 첫 달리기 대회에 참여할 때만 해도 입이 튀어나왔다. 왜 이른 아침부터 억지로 몸을 일으켜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건지부터가 그에겐 의문이었다. 처음부터 기록이 좋았을 린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이 반’이라고, 그는 다음을 기약하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기억을 급속도로 잊게 만드는 무언가가 달리기에는 분명 있었다. 책은 자신의 달리기 경험으로 가득했다. 그가 달리는 구간의 길이는 나로서는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내 경우에는 하루에 10km 가량을 걸으면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데, 그는 그보다 훨씬 긴 거리를 뛰었다. 처음부터 그리 달릴 수 있었던 건 물론 아니다. 대회 참가를 결정한 이후부터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입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좋은 기록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는 터라 달리는 거리, 속도를 높여 가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끽해야 동네 하천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가 달렸다는 사막이나 산 능선 등이 쉽사리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며칠씩 씻지도 못한 상태로 굳이 뛰어야만 하는 이유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운동을 않는 거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운동 중독’이 순간 떠오르기도 했다.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그가 보았을 풍경을 누리는 방법은 존재한다. 차를 타고 가로지를 수도 있을 거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난 오로지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만 집착을 했는데, 걷기를 즐겨왔으나 대부분의 순간을 혼자 걸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라고 노상 누군가와 함께이진 않았다. 그러나 대회에 참여할 때면 반가운 이들이 이에 동참했다. 각자의 페이스는 달랐지만 서로 응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어느 시점부터는 앞서거나 뒤선 그들의 존재로부터 힘을 얻었다. 아주 작은 규모의 대회여도 어김없이 사람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마을 주민들이 달리는 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힘을 불어넣었다. 마을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먹거리가 놓이기도 했다. 달리면서 건강을 되찾은 것도 물론 컸지만 온전히 인정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저자에게 끊임없이 달리도록 만드는 원동력이지 싶었다. 코로나19로 각종 활동에 제약이 생긴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항시 착용하는 마스크로 피부가 벌겋게 탈이 났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보는 습성이 요즘처럼 본능적으로 발휘된 적도 없었지 싶다. 달리기 대회의 패턴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얼마나 많은 인원이 모였는가가 회자되곤 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각자가 정해진 기간 동안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를 골라 달리는 버츄얼 러닝 형태의 대회가 늘었다.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한 차례 5km 달리기를 신청했다가 혼쭐이 났다. 아마 달려서 이동한 거리보다 걷거나 거의 기어간 거리가 더 길었을 거다. 달린 다음날부터 한동안은 뻐근함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달리면서 나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뭐든 직접 해 봐야 알 수 있다. 달리기도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