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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연 시인의 시를 즐겨읽어 온 사람으로서 이런 평가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불쾌할 지경입니다. 정말 시적 맥락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뜬금없고 피상적인 해석으로 작품을 폄하하고 있네요. 도대체 푸름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푸름이는 왜 어른스러워야 하나요? 청소년 시는 감수성과 성장 과정에서 겪는 고민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장르입니다. 그런 시에 등장하는 화자를 "집안일을 도울 줄 모르면서" "엄마아빠의 응어리를 살필 줄 모르면서"라고 비판하는 것이 옳은가요? 모든 청소년이 집안일을 돕고, 부모의 말 못하는 응어리까지 속내 깊이 이해하는 것 마냥 그려져야 좋은 시라고 하는 것이 맞는 비판일까요? 저도 청소년 시절에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일은 저에게 ‘나쁜 일’이었습니다. 청소년 시절의 제가 그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나 감정이 안쓰러운 일이라고 하면 그것이 바람직한 어른의 태도겠지요. 그런데 그런 감수성을 잔잔히 그려낸 시를 안쓰럽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철없는 말이 드날리는구나 싶어요."라니요.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가지는 아름다운 미숙함이나 솔직한 감정을 '철없다'는 말로 깎아내리는 것도 매우 불쾌합니다. 게다가 시의 비유적인 표현을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시는지 정말 놀랍네요. "비바람이 들이칠 적에 나무가 막말을 한다니, 나무하고 마음으로 말을 나누지 않는군요." 정말 이 부분을 읽고 폭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나무가 막말을 했다는 걸 나무가 쌍욕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신 건가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가 문제인가요? 청소년은 쌍욕을 해도, 들어도 안되니까요?) 시인이 마음으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서 나무와 같이 성스러운 자연물과 ‘막말’이라는 나쁜 단어를 결합한 거란 식으로 말씀하시네요. 이건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강한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마치 분노하거나 절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거죠. "나무가 막말을 한다"라는 것은 자연과 감정의 연결을 시도하는 시적 장치인데, 나무와 마음으로 말을 나누지 않아서 그런 시를 쓴거라고요? 무슨 맞춤법을 교정하듯 구절 하나하나를 교정해놓은 부분을 보면서는 정말 기함을 할 뻔했습니다. 이건 비판이 아니라 시인을 모욕하는 일인 동시에 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태도입니다. 시는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쓰는 게 아니라, 감정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거죠. 시어(詩語)의 자유, 단어 선택의 뉘앙스, 시인의 의도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무슨 교정기가 맞춤법 교정하듯 문법적으로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대체 무슨 일인가요. 차마 못 할 욕들을 공중에다 휘갈기나 → 차마 못 할 막말을 하늘에다 휘갈기나 → 차마 못 할 말 하늘에다 막 휘갈기나 진짜 이런 짓 하지 마세요. 공중과 하늘이 같은 말인가요? 공중은 하늘보다 훨씬 추상적인 공간이고, 하늘은 자연적 요소가 강조되는 표현입니다. 시인이 하늘이라는 말을 몰라서 공간이라는 말을 썼겠습니까? 교정이라고 써 두신 것들을 보면 원래 시적 리듬과 느낌이 완전히 깨져요. 이런 식으로 쓰고 싶으시면 직접 시를 쓰셔야죠. ‘욕’이라는 단어도 불편하셔서 ‘막말’로 바꾸셨으니 ‘휘갈기나’ 또한 썩 거친 표현인 듯 느끼셨을 것 같은데 흩뿌렸나, 이런 말로 바꿔보시면 어떠세요. 뒤에 다른 교정들까지 하나하나 다 반박할 필요도 못 느껴 제일 앞의 예시 하나만 썼습니다… 뒤에 교정해 두신 것들은 더 어이가 없어요… 맞춤법 교정은 워드프로그램이 해준 지 오래 됐습니다. 요즘 집에 컴퓨터 없는 사람 어디 있다고 이런 거 모를까봐 여기에 친절하게 적어주신 건가요… 무엇보다 불쾌한 것은 비평을 다신 분이 시인의 문장을 "틀렸다"는 듯이 교정하는 태도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문학 작품은 논문이나 교과서처럼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감성과 표현이 중요한 예술입니다. 시는 정해진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가 다양한 해석을 늘어놓을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여기 적은 저의 해석도 시인의 의도와 또 다를 수도 있겠죠. 시인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는 의도가 담겨 있는데, 이를 기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 자체가 작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에 물을 붓고 칼을 긋는 것만 작품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자께서 여기에 이런 비평을 달아놓는 것도 지극히 작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제 느낌으로는 신문사에서 교정을 보는 일을 오래 하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비평을 하시는 것까진 좋으나 비평도 시인의 작품과 수준을 좀 맞춰주셔야죠… 이런 수준의 비평을 가지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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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2.20. 노래책시렁 465 《가장 나다운 거짓말》 배수연 창비교육 2019.10.10. 푸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주기에 어른스러울까요? 푸름이가 저마다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살피며 걸어가도록 씨앗 한 톨을 나누듯 말씨앗을 나눌 적에 어른스럽다고 느낍니다. 채찍질을 하거나 다그치거나 손을 놓거나 콧방귀를 뀌거나 등돌리는 말씨를 흩부릴 적에는 하나도 안 어른스럽습니다. 눈치를 보거나 쭈볏거려야 할 푸름이가 아닙니다.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동무랑 이웃을 나와 같은 숨빛인 사랑인 줄 알아보면서 빛나는 푸름이입니다. 《가장 나다운 거짓말》은 ‘청소년시’라는 이름이 붙기는 하는데, 집안일이 무엇인지 마주하거나 도울 줄 모르면서, 엄마랑 아빠가 어떤 마음과 사랑으로 우리를 낳았는지 살필 줄 모르면서, 엄마아빠가 어떤 앙금과 응어리를 그저 속으로 삭이기만 하면서 말길을 못 트는지 바라볼 줄 모르는, 아무래도 철없는 말이 드날리는구나 싶어요. 비바람이 들이칠 적에 나무가 막말을 한다니, 나무하고 마음으로 말을 나누지 않는군요. 푸름이가 달리기를 하며 땀을 내듯, 엄마아빠는 저잣마실을 다녀오고 집안일을 하며 땀을 오지게 쏟습니다. 동무를 ‘못생긴’ 아이로 딱 자르는 마음이야말로 ‘저만 아는 얕은’ 속알일 텐데요. 엄마가 국수집에서 일하면 ‘나쁜 일’이라니, 너무 안쓰러운 글잔치입니다. ㅅㄴㄹ 공원의 나무들은 뭣이 그리 억울해서 / 차마 못 할 욕들을 공중에다 휘갈기나? (태풍/10쪽) 달리기 같은 건 왜 하는 거야 / 잘 달리는 걸로 상은 왜 주는 거야 / 50미터를 10초 안에 달리는 게 뭐가 좋은 건지 / 얼굴이 떡 반죽이 되고 / 겨드랑이가 축축 젖어버리는데도 / 가슴이 덜렁대고 / 이마가 훌렁 벗겨지는데도 (계주/11쪽) 엄마는 기분이 상하거나 힘이 들 때 / 부엌에서 탕탕 소리 내며 일을 하는데 / 아빠와 나와 동생의 가슴을 / 쾅쾅 팰 수 있다고 / 믿고 싶은 모양이다 (가족/40쪽) 아빠가 사라지고 / 주부였던 엄마는 우동집 주방에 취직했어 / 이건 나쁜 꿈 슬픈 꿈 창피한 꿈 (나쁜 꿈/42쪽) 하루는 우리 반에서 / 무지 못생기고 이기적인 애가 / 생일 파티를 했다 / 아무도 가지 않았는데 / 연준이만 갔다 / 그 애 엄마가 케이크를 잘라 주었다고 했다 (80쪽) + 《가장 나다운 거짓말》(배수연, 창비교육, 2019) 차마 못 할 욕들을 공중에다 휘갈기나 → 차마 못 할 막말을 하늘에다 휘갈기나 → 차마 못 할 말 하늘에다 막 휘갈기나 10 달리기 같은 건 왜 하는 거야 → 달리기 따위 왜 해 → 왜 달려야 해 11쪽 파란 분필로 천장에 원을 그리면 그 홀을 통과할 수 있지 → 파란가루로 위에 동글게 그리면 구멍을 나갈 수 있지 → 파란가루로 위쪽에 둥글게 그리면 거기로 갈 수 있지 14 누군가는 뺨이 금지되었다 → 누구는 뺨이 안 된다 19 혼이 난다는 건 대체로 할 만한 일이다 → 꾸지람은 그냥 받을 만하다 → 꾸중은 그럭저럭 받을 만하다 23 새들은 영문도 모르면서 → 새는 영문도 모르면서 28 엄마와의 세계 대전 아침∼시!땅! → 엄마와 한판싸움 아침부터! → 엄마와 큰싸움 아침부터! → 엄마와 아침부터 크게 붙다! 38 양배추 환, 냉장고의 오디즙은 언제 다 먹지 → 동글배추알, 싱싱칸 오디물은 언제 다 먹지 43 하루는 우리 반에서 무지 못생기고 이기적인 애가 생일 파티를 했다 → 하루는 우리 모둠서 무지 못생기고 괘씸한 애가 잔치를 했다 → 하루는 우리 모둠 무지 못생기고 미운 애가 빛잔치를 했다 80 샤리라∼ 내가 등장하면 → 샤리라! 내가 나오면 → 샤리라 내가 나타나면 1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