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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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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으며, 19세기 고딕소설 최고의 걸작이라는 메리 셸리의 대표작이다. 제우스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지식과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피조물을 만든 결과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구를 파멸의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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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로 회자되고 있으며, 19세기 고딕소설 최고의 걸작이라는 메리 셸리의 대표작이다. 제우스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에게 지식과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처럼,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생명을 불어넣은 피조물을 만든 결과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구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넣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영화로 본 기억으로는 피조물의 흉측한 외모를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만 했는데 책으로 읽으면서 피조물의 내면 심리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소설의 모티브를 얻은 계기도 너무 유명한 일화여서 읽고 싶다는 기대감을 더해주었다. 셸리 부부와 바이런 경 부부가 모인 자리에서 유령 이야기를 하나씩 쓰자는 제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유전자를 지니지 않고 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명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출생을 어느 날 문득 던져진 존재라고 하는데, 이 피조물이야말로 그에 딱 맞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실험정신은 높이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지 않고 과학자의 성취에만 모든 것을 걸어도 되는 걸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제1권의 시작은 월턴 선장이 영국의 새빌 부인에게 서신을 전하는 내용이 나오고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가 제2권의 2장까지 이어진다. 이어 3장부터 8장까지는 피조물인 괴물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한다. 피조물을 쫓아 북극까지 왔다가 거의 죽기 직전의 프랑켄슈타인을 월턴 선장이 구조 해준 인연으로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주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인간이나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의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과학도 프랑켄슈타인은 어머니가 사망 후 대학에 가기 위해 집을 떠난다. 이미 17세에 몇 개의 언어를 할 줄 알고 잉골슈타트 대학에서 가르치는 자연과학 이론과 실험에 통달하여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경지에 이른다. 과학에 대한 열정과 간절함으로 연구하다가 날을 새기도 하면서 2년의 연구 끝에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피조물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쪼글쪼글한 피부에 검은 입술을 한 흉측하게 생긴 외모에 공포와 혐오감을 갖게 되고 도망치게 된다.

 

 이름도 없는 피조물은 보통 사람보다 키도 크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들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덩치만 큰 피조물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겉모습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에 빠지고 절망하게 된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윌리엄이 살해되었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하녀 유스틴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인 괴물의 짓이라고 단정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호기심과 부당한 일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에 참담한 심정이 된다. 재판이 진행되지만 거짓 자백을 함으로써 유스틴은 희생양이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피조물을 만들지 않고, 그 과학적 재능을 다른 일에 썼더라면 어땠을까. 피조물을 창조한 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좀 더 숙고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이왕 만들었다면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났으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애정을 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후회와 고통에 사로잡힌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든 인간은 버림받은 자를 증오하지. 그런데 그 어떤 생물보다 더 비참한 내가 어째서 미움 받아야 하는가! 나를 창조한 당신도 피조물인 나를,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끊어지는 관계로 당신과 묶인 나를, 증오하고 경멸하지. 당신은 나를 죽이려고 든다.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당신의 의무를 내게 다하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게 내 의무를 다하겠다. 당신이 내 조건을 들어준다면, 그들과 당신을 가만히 두겠다. 하지만 거부한다면, 당신의 남은 친구들의 피로 만족할 때까지, 죽음에 굶주린 위를 채우겠다.”(P139)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과 마주치고 분노하자, 피조물도 지지 않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선택의 여지없이 생명을 부여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피조물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라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 자신의 피조물에게 사악한 악마라고만 치부할 자격이 있는지 묻게 된다. 나약하고 소중한 생명이 잔혹한 학대의 대상이 되어 스러지는 오늘의 현실도 떠오른다.

 

 버림을 받고 추위와 배고픔에 떨다가 어느 오두막집에 숨어들어 먹을 것을 훔치고 연명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다양한 감각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끼지만, 점차 보고 듣고 냄새를 느끼고 각각의 감각을 구별하기 시작한다. 사물을 인지하고 감각을 익히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불을 발견하고 온기를 느끼며 좋아했는데 그 속에 손을 넣었다가 뜨거워서 기겁을 한다. 보살펴주고 위험요소를 인지시켜주는 보호자가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익혔을 텐데.

 

 가난한 오두막집의 우리에 숨어서 살면서 그들이 가난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땔감을 해다가 쌓아놓으며 도움을 준다. 그들 앞에 나서지도 못하면서 그들이 놀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들이 경험과 감정을 소통하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찰하다가 불, 우유, 빵 등 단어를 배우고 쓸 줄 알게 되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러다 투명한 웅덩이에 비친 괴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굴욕감에 빠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언어의 기술을 배우려 노력하고 감각을 익히고 사람들의 연민과 사랑을 배우려고 애썼다. 그들이 기쁘면 자신도 기쁘고 그들이 슬프면 자신도 슬퍼한다. 그렇게 공감능력이 생기자 피조물은 자신의 이런 마음을 전하고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운다. 젊은이들이 모두 밖에 나간 사이에 앞 못 보는 노인 드 라세를 만나러 방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아들과 딸들이 들어오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딸 아가타는 흉측한 외모에 기절을 하고 팰릭스에 의해 거절당하고 내쫓기자 오두막집에 불을 지르고 그곳을 떠난다.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며 인간의 정을 느끼고 싶었던 피조물은 흉측한 자신의 외모 때문에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숲속에서 어린 소녀를 구해주는 선행을 베풀었음에도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인간을 향해 증오심은 더욱 커지고 복수하기로 맹세한다.

 

 글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자 옷 주머니에서 발견한 종이에서 피조물의 끔찍하고 증오스러운 형상이 세세하게 묘사된 내용을 읽으면서 더욱 고통으로 몸서리친다. 이제 남은 것은 악과 복수심 밖에 남지 않았다.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서 자신과 같이 흉측한 외모를 지닌 여자를 하나 창조해 달라고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거라고. 언변이 좋은 피조물에게 설득 당한 프랑켄슈타인은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친구 클레르발과 함께 영국으로 떠난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곳에서 그 작업을 마치려고 클레르발과 잠깐 헤어진다. 하지만 그 일에 몰두하다가 생각을 바꾸고 만들다 만 피조물을 부숴버린다. 이 모습을 지켜본 피조물은 복수심은 극에 달한다. “네 결혼식 밤에 내가 할 것이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과학적 열정과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생명체를 만들었지만 신의 영역을 침범한 대가를 특특히 치렀다. 살아있어도 사는 것이 아니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끝까지 쫓아가다가 결국 주검이 된다. 피조물은 죽은 자신의 창조주를 바라본다. 증오심으로 여러 사람을 죽였지만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하며 이제 죽음만이 유일한 위로라고 한다. 인간 세계의 정을 나누고 싶었던 피조물은 그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수많은 아류작을 낳는 모티브가 되었던 이 유명한 작품을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욕망과 성취 사이에서 책임감도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인간의 선악과 실존에 대한 궁금증 등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7 2020.06.18. 신고 공감 6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프랑켄슈타인의 ‘그 사람’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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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그 사람’을 위한 변명   이 책은    이 책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메리 셸리가 불과 18세의 나이에 써낸, 19세기 고딕 소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이 책은 또한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구조   서간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액자형 소설이다.서간문 속에 다른 이야기를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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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의 그 사람을 위한 변명

 

이 책은 

 

이 책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메리 셸리가 불과 18세의 나이에 써낸, 19세기 고딕 소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또한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구조

 

서간문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또한 액자형 소설이다.

서간문 속에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어, 아주 정교하게 짠 한 폭의 테피스트리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게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

 

생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대학생이 되자 생명 창조라는 영역에 도전하게 된다. 결국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그는 시체로 만든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피조물을 보는 순간, 그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그 괴물을 버려두고 도망을 치게 되는데.....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두 개의 세상

 

이 소설에는 두 개의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하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 빅토르가 살고 있는 세상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 반대편에 선 빅토르의 피조물인 괴물이 살고 있는, 괴물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다.

 

이 두 세계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맨 처음에 빅토르는 다른 세상을 창조한다.

이름도 주어지지 않은 괴물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 괴물은 키는 8피트에, 그와 같은 비율의 체격을 갖추고(73), 관절은 더 유연하게 하여, 그보다 강하게 만들었다. (140)

 

빅토르는 이렇게 새종족을 생각한다.

새로운 종족은 나를 창조주이자 생명의 근원으로 축복할 거라고 여겼습니다.(74)

 

그러나 막상 그가 그 괴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나서 본 그 괴물의 모습은 그가 생각하던 것과는 달랐다. 해서 그는 내 손으로 창조한 면면을 견딜 수 없어 실험실에서 뛰쳐나’(80)갈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그는 그 괴물을 방치해둔다.

 

이렇게 둘은 헤어져, 만나지 못하게 되고, 빅토르의 동생 윌리엄의 죽음을 매개로 하여 다시 만날 때까지 다른 세상을 살아나간다.

 

괴물이 살고 있는 세상 - 피조물인 괴물을 위한 변명

 

한편 괴물은 흉물스러운 외모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배척을 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괴물은 한 허름한 집의 축사에 숨어들면서 마음이 따뜻하지만 어렵게 살아가는 한 가족, 펠릭스의 가족을 지켜보게 된다. 자신을 감춘 채 이들을 몰래 도와주는 한편, 그들을 살피면서 언어도 배우게 된다. 또한 버려진 책을 주워 읽으며 점차 인간의 언어와 감정을 깨우치게 되는데, 그가 읽은 책이 실낙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젊은 베르터의 슬픔이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책을 읽으면서 사적으로 내 감정과 처지에 많은 것을 적용시키기도 했다.> (178)

 

특히 그가 실낙원을 읽으면서 아담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상황이 눈물겹게 여겨지기도 했다. (179)

 

아담처럼 나도 존재하는 그 어떤 이와의 연결 고리 없이 창조되었다.

내 상태를 더 적절히 상징하는 존재는 사탄이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내 마음은 이 상냥한 이들에게 알려져서 사랑받기를 갈구했다. (182)

 

나는 친절과 공감을 요구했다. (183)

나는 사탄처럼 마음에 지옥을 품고 있었다. (189)

내 존재에 필요한 공감을 나누며 함께 살 수 있도록 .....(199)  

 

그 괴물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됐을까 

웅덩이의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는 괴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나는 그들의 완벽한 모습우아함, 아름다움, 섬세한 피부를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그러니 투명한 웅덩이에서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겁에 질렸던가! 처음에는 거울 같은 수면에 비친 모습이 정녕 나라는 것을 믿지 못해 놀라 뒷걸음질했다. 그러다가 실제로 내가 괴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쓰디쓴 실의와 굴욕에 빠졌다. (159)

 

이 부분을 읽으니 두 명의 다른 인물이 떠오른다.

먼저 에덴동산의 하와다. 존 밀턴은 하와가 호수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이렇게 몸을 굽혀 호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호수 속에서 어떤 형체가 몸을 굽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잔잔한 수면에 나타나 희미하게 비치는 것을 보고서,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더니....(생략)

그때 내게 이런 경고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아름다운 자여, 네가 거기서 보고 있는 것은 너와 함께 오고 너와 함께 가는 네 자신일 뿐이다. 그러니 너는 너의 그림자에게는 신경을 쓰지 말고, 나를 따라오너라.’

(실낙원, 존 밀턴, CH북스, 168)

 

또 한 명의 인물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키소스다.

어느날 사냥을 마치고 더위와 갈증으로 목을 축이려 샘물가에 가서, 엎드려 물을 마시려는 순간,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는 보게 된다. 그 모습에 반하게 된 그는 결국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이야기.

 

프로메테우스가 창조한 괴물, 안타깝게도 그는 실낙원에서 하와에게 경고했다는 그 목소리는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놀라는 비명소리만 듣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사악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사악한 감정은 공감을 얻으면 사라질 것이다.(202)  

다른 이의 사랑은 내가 죄를 지을 이유를 없애주고

내 악행은 내가 혐오하는 강요된 고독이 낳은 것이다. (203쪽)

 

그래서 그는 창조자 빅토르를 만나, 하소연한다.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신 나는 타락한 천사가 되어,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당신에게서 기쁨을 빼앗겼다. 사방에서 더없는 행복이 보이는데 나만 결코 그것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자애와 선을 베풀었지만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140)

 

내 창조자가 나를 혐오한다. 그런데 내게 아무런 의무도 없는 다른 인간들에게서 내가 어떤 희망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나를 경멸하고 증오한다. (140)

 

내 말을 믿어라.

내 이야기를 들어 보라.

하지만 먼저 내 이야기를 들어 보라.

내 말을 들어 보라.

내 말을 들어 달라. (140-141)

 

그 괴물은 그를 창조한 빅토르에게 피맺힌 절규를 쏟아낸다. 내 말을 들어달라고.

하지만 그를 설계하여 제작하고 생명을 불어넣어 이 세상에 나오게 한 명실상부한 창조주는 냉정하다 못해 증오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을 뿐이다.

꺼져라! 네 증오스러운 꼴을 보지 않게 해 다오.”(141)

 

이렇게 두 사람이 위치한 두 세계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게 멀어진 두 사람, 두 세계는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한다. 둘 중 누군가는 사라져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죽고, 그 괴물은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나는 당당히 장례 장작더미에 올라가 고문하는 불길이 가하는 고통 속에서 환희를 느낄 것이다. 불길이 내는 빛은 잦아들 것이다. 내 재는 바람에 바다로 날아갈 것이다. 내 영혼은 평화롭게 잠들 것이다.> (306)

 

 

이 글을 읽으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죽음이 떠오른다.

 

고통을 참지 못한 헤라클레스는 나무 장작을 쌓아놓고 스스로 나무 단에 오른다. 그리고 제우스 신의 사제들에게 자신을 산채로 화장하라고 지시한다.

 

이렇게 줄거리를 마무리한 것은 저자가 괴물의 죽음을 헤라클레스 차원으로 장식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생명체, 마땅히 아담이 되어야 했지만 이름도 없이 괴물로만 남게 된 존재를 생각하면서, 실제 창조주와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생각하게 된다.

 

그저 아무런 자각도 없이 불쑥 프랑켄슈타인의 실험실에 던져진 생명체로 등장한 그 괴물처럼 우리 인간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창조주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한 결과 괴물이 되었듯이 우리도 자칫하면 그런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닌지 

 

내말을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그 괴물처럼, 우리도 그렇게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애타게 헤맨 적은 없는지?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대화가 막히고, 들려오지 않던 적은 없는지 

 

이 책이 그런 인간의 존재를 묻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물음을 담고 있어, 이 책을 고전이라 하는 것이리라.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s***h 2020.06.12.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서평) 프랑켄슈타인
"(서평) 프랑켄슈타인" 내용보기
세 번째 만나는 '프랑켄슈타인' 처음 읽었을 때는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란 사실에 놀랐다.2018년 영화'메리 셸리 프랑케슈타인의 탄생'을 보기 위해 다시 읽게 된 <프랑케슈타인>은 또 다른 지점에서 나를 흔들어 주었다.(고전은 언제나 그렇다.^^) 재판이란 에피소드를 통해'괴물이란 존재에 대해 좀더 다양한 질문이 따라 왔다고 해야 할까...해서 처음 읽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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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만나는 '프랑켄슈타인' 처음 읽었을 때는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란 사실에 놀랐다.2018년 영화'메리 셸리 프랑케슈타인의 탄생'을 보기 위해 다시 읽게 된 <프랑케슈타인>은 또 다른 지점에서 나를 흔들어 주었다.(고전은 언제나 그렇다.^^) 재판이란 에피소드를 통해'괴물이란 존재에 대해 좀더 다양한 질문이 따라 왔다고 해야 할까...해서 처음 읽을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프랑케슈타인'에 관한 이야기를 '살림지식총서시리즈'를 통해 살펴볼 수 있었다. 노란표지를 보자 마자 반가웠던 건 프랑켄슈타인에 관한 심도 있는 또 다른 이야기에 관한 책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라는 시선으로 읽어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그러나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된 <프랑켄슈타인>이었다. 순간,당혹스러웠지만...아직 풀지(?)못했던 시선 하나가 있었기에 읽어야 할 타이밍이 왔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프랑켄슈타인의 목소리만 들려서 놀라웠다.^^

 

"내 혈관 속에서 피가 자유롭게 흘렀지만 절망과 회환의 돌덩이가 심장을 짓눌렀고 그 무엇도 그것을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내 눈에서는 잠이 달아났습니다.나는 악령처럼 떠돌아다녔습니다.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고 아직 더 더욱 큰 것이 남아 있었으니까요(...)나는 회환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의 지옥을 향해 나아갔습니다"/127쪽

 

번역 효과인지,독자의 마음 가짐이 오롯이 프랑켄슈타인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무튼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박사의 절규와 고통과 후회와 공포와 불안이 읽혀졌다. 처음 읽을 때는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두 번째로 읽을 때는 재판을 통해 괴물의 형상들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상상했다. 연극으로 보게 된 프랑켄슈타인에서는 피조물의 절규가..그리고 소설에서도 역시 피조물에 대한 연민과,박사의 이기심이 원망스러웠는데..세 번 째 읽기에서야 비로소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었던가에 대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앞서 두 번 읽기에서 박사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라 생각했었던 거다.해서 그는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걸까..생각했는데..시작에서 부터 끝까지 거의 박사의 생각으로 꽉꽉 차 있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조물에 대해서 만큼은 마음으로부터 사과하지 않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지만 말이다.어쩌면 그의 정신이 거기까지 갈 수 조차 없을 만큼 피폐해져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믿고,성공을 기대했고,그러나 기대와 달랐던 상황에서 인간은 결코 이성적인 사고를 작동할 수 없었음을...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지만,그렇게 한 것 자체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그는 절규하듯 토해내고 있었다.그런데 나는 이제서야 프랑켄슈타인의 그 절규가 들린거다.어디 그 뿐인가,친구인 클레르발을 통해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알게 된다.그렇게 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겠지만.그는 절규하듯,사람들에게 고한다.다시는 나와 같은 전철을 사람들이 겪지 않기를.(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괴물이 되어 또 다른 괴물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괴물의 시선으로 읽게 될 때는,누가 진짜 괴물인가?에  대한 물음이 따라왔다면,박사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는 건 오만함의 끝이 아닐까 싶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w*******i 2020.06.08. 신고 공감 4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대를 앞서간 클래식 SF
"시대를 앞서간 클래식 SF" 내용보기
나는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분주했다. 우리 본성에 알 수 없는 공포를 일으키고 오싹한 두려움을 깨워 낼 이야기, 독자가 무서워서 피를 얼어붙게 하며,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할 이야기.     (19쪽)      클래식  명작 SF 소설 언젠가 ‘프랑켄슈타인’이 19세기 소설이라고 했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헐리우드가 만든 줄 알았는데 오래전 누군가의 상상력이고, 그게 여성 작가의 창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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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분주했다. 우리 본성에 알 수 없는 공포를 일으키고 오싹한 두려움을 깨워 낼 이야기, 독자가 무서워서 피를 얼어붙게 하며,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할 이야기.     (19)

 

 

 

  클래식  명작 SF 소설

 

언젠가 프랑켄슈타인19세기 소설이라고 했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헐리우드가 만든 줄 알았는데 오래전 누군가의 상상력이고,

그게 여성 작가의 창작이었음에 더욱 경이롭기도 했다.

 

원작을 읽어볼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완역판으로 만났다.

 

고전소설하면 우선 두꺼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얇아서 신기했다.

아울러 번역의 덕인지 가독성도 수월해서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과학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실험을 하다가 어느날 생명체를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하고, 흥분과 광기가 뒤섞인채 인간과 흡사한 생명체를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막상 완성하고 났을 때 그가 갖게 된 감정은 기쁨이나 환희가 전혀 아니었다.

 

외양은 인간과 흡사하지만 괴물인 존재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자괴감을 느꼈고 그 연구실을 급히 빠져 나왔다.

자신이 만든 ‘그것’은 종적을 감추었고, 프랑켄슈타인은 끔찍한 기억을 애써 잊고 가족과 함께 지낸지 2년이 지났다.

 

 

 

그런데 2년째의 어느날 동생 윌리엄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했고 누군가가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억울하게 다른 지인이 누명을 쓰고 죄인으로 수감되고 그 사람마저 곧 죽음을 맞고 만다.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서 프랑켄슈타인은, 그 살인마가 자신이 창조했던 괴물 생명체일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존재를 찾아서 떠나게 된다.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은 다른 걸 떠나서 너무도 재미있어서 놀라웠다.

1818년에 처음 발표되고 이후 개작을 거쳐서 1831년에 완성된 소설.

여성 소설가도 드물었던 시대에, 이렇게 현대적인 이야기를 쓴 작가가 있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소설은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찾아 떠나면서 추적극의 형태를 띈다.

탐정물, 수사극 같은 요소들도 자연스럽게 곳곳에서 펼쳐진다.

 

읽으면서, 1830년대 작품이라는 것을 잊고 손에 땀을 쥐며 읽다가

올드한 감탄사가 나오거나, 당시 시대 배경이 나올 때야 비로소 옛날 작품이라는 걸 느끼고는 소름이 돋았다.

 

그만큼 재미있게 읽히고, 현대의 안드로이드 이야기 -블레이드 러너 같은-

원형을 발견하게 되어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주저하는 독자가 있다면 당장 읽으시라고 자신있게 말해본다.

200년의 시간을 뚫고, 여성 소설가니 남성 소설가니 하는 ‘제약’도 잊고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책 중에서

 

제 계획을 지지하거나 수정해 줄, 상냥하지만 용감하고, 담대하면서도 교양있는 마음을 가진, 저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34)

 

나를 보고 배우세요. 내가 지킨 규칙을 보고 배우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 사례를 보고 지식의 습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천성이 허락하는 것 이상으로 위대해지기를 염원하는 인간보다, 태어난 고향이 온 세상이라고 믿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 배우기 바랍니다.  (72)

 

이 경이로운 이야기들은 내게 낯선 감정을 불어넣었다.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성하고 고결하며 장엄하면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비열하단 말인가? 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어째서 법과 정부가 존재하는지 오랫동안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악행과 유혈 사태에 대해 세세히 듣고 나자 궁금함은 사라졌고, 혐오감과 증오심을 느끼며 돌아섰다.   (167)

 

"인간이여." 내가 외쳤습니다. "지혜를 자랑으로 삼으면서 그대는 얼마나 무지한가!" 

        (275쪽)

 

 
YES마니아 : 로얄 b********5 2020.06.12.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반쯤 만들어지다 만 존재 - [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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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만들어지다 만 존재<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요즘 '어벤져스'를 필두로 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불의의 사고나 과학 실험으로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영웅들이 악의 무리에 맞서 지구를 넘어 우주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과거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 속에서 악당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져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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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만들어지다 만 존재

<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읽고

 

 

 


    요즘 '어벤져스'를 필두로 한 슈퍼히어로 영화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불의의 사고나 과학 실험으로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영웅들이 악의 무리에 맞서 지구를 넘어 우주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과거에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 속에서 악당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악당은 저마다의 사연과 신념을 가진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부각되어 관객들로부터 상당한 호응과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슈퍼히어로 영화 속 캐릭터 및 세계관 구축의 측면에서 궤를 같이 하는 책이  영국 작가 메리 셸리 SF소설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출간된 지 20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책,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대중문화 속에서 재생산되고 있다고 하니 슈퍼히어로 영화 제작에도 적지 않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프랑켄슈타인’은 어릴 적 우연히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접했던 동명의 흑백영화에서 자신을 창조한 과학자를 살해한 기괴한 얼굴과 거구의 이미지로 남아있었다. 그의 이름은 누가 봐도 ‘프랑켄슈타인’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의 이름은 프랑켄슈타인이 아니었다.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를 뿐더러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괴물’이라 부르고, 심지어는 ‘악마’라고 부를 뿐이다. ‘이름’의 다른 이름을 ‘정체성’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와 구별되고 타인에게 어떠한 존재로 인식되어지는 과정에서 이름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에서 이름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와 그의 창조주 사이에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서술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마치 달리기 선수가 계주에서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듯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번째 주자는 월턴 선장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미지의 세계로 여겨졌던 북극을 탐사하는 배의 선장으로서 프랑켄슈타인의 과거 모습을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북극에서 자신의 미래 모습이 될 수도 있었던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누이에게 편지 형식으로 전달한다. 월턴 선장은 둘의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프랑켄슈타인과 달리 개인의 욕망과 명예보다 선원들의 생명과 안녕을 위해 항로를 바꾸고 귀향하기로 결정한다. 이 대목에서 그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 <모비딕>의 에이햅 선장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욕망을 위해 선원들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였기 때문이다.

 

    선장은 예전의 나처럼 지식과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이, 그 소망의 성취가 당신을 무는 독사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46쪽)


    다음 주자는 에이햅 선장과 같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해 비극적 결말을 맞은 프랑켄슈타인이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 상류층 출신으로 화목한 가정환경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낸다. 잉골슈타트대학 유학시절에 만난 왈트만 교수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킨다. 화학, 의학, 해부학, 전기학 등 다양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생명 창조를 시도한다. 그 결과로 탄생한 피조물의 기괴함에 놀란 그는 극도의 죄책감과 혐오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피조물을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으로 만들 수 있었던 골든타임을 놓친다. 그 대가로 괴물에 의해 가족과 친구, 끝내 연인과 자신마저 잃게 되는 비극을 초래한다. 개인의 명예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행해진 실험의 결과가 비록 학문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초래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프랑켄슈타인을 마냥 선의의 피해자라고만 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때 흐릿하고 노란 달빛이 창의 덧문 사이로 뚫고 들어와 그 저주받을 것-내가 창조한 불쌍한 괴물이 보였습니다. 그는 침대의 커튼을 들추었고, 그것을 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두 눈이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의 턱이 움직였고, 불분명한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미소를 지으니 뺨에 주름이 졌습니다. 그는 말을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듣지 않았습니다.(80~81쪽)

    마지막 주자는 이름도 없이 '반쯤 만들어지다 만 존재'이다. 세상이라는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버림받은 그가 처음부터 악화일로를 걷게 된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이후 그가 저지른 일련의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다만 그의 입장에서 그간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창조주에게 버림받은 그는 생존 본능으로 숲에서는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은신처로 택한 한 오두막에 사는 가족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눈을 뜨게 된다. 놀라운 속도로 언어와 지식을 습득한 후 나름의 계획을 세워 오두막의 가족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그의 외모로 인해 그들에게 부정당하고 자신은 그저 한낱 괴물임을 통감하게 된다. 이후 그는 창조주를 만나 자신의 반려자를 만들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고민과 갈등 끝에 무산되고 결국 둘은 서로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서로 쫓고 쫓기다가 북극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한 뒤 월턴선장의 두 눈 앞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죽음을 맞게 된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괴물이 유유히 사라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나는 그 귀한 것을 꼭 쥐고 내 우리로 돌아왔다. 다행히 책은 내가 시골집에서 배운 언어로 적혀 있었다. <실락원><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한 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다. 이 보물을 갖게 되어 몹시 기뻤다. 그때부터 친구들이 자기 일과를 돌보는 동안 나는 이 책을 끊임없이 보면서 정신을 단련했다.(177쪽)

 


    한 작가의 경험과 사상은 어떤 식으로든 그가 남긴 작품 속에 일정한 흔적으로 남겨지게 마련이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메리 셸리의 상상력만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우선 과학소설로 분류되지만 정작 소설 속에서는 특별히 과학적 이론이나 지식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부분이 없다. 출간 당시의 여러 분야의 과학이 발전하고 있던 시대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아마도 대중 역시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거나, 혹은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작가가 의도적으로 전문적인 과학지식보다는 보편적인 과학 현상이나 원리 수준으로 표현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이 이동하는 장소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소설 속에 또 하나의 작은 여행기가 수록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작가의 여행에 대한 견문이 녹아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도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무절제한 과학적 호기심과 신념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적 운명에 대한 작가의 경고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소설 속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그것으로 치환해본다면, 가정과 사회의 각 소속집단 구성원에 대한 사회화 기능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피조물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해줬다면 둘 모두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를 맞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비단 괴물만이 자신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차별을 받은 것은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죽마고우인 앙리가 괴물에 의해 희생되는 사건에서 아일랜드 주민들은 프랑켄슈타인을 다른 언어를 쓰는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표출하며 용의자로 의심한다. 두 경우 모두가 나와 다르거나 사회 통념상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어쩌면 괴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들 모두가 '반쯤 만들어지다 만 존재'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도 여기서 자유롭진 못할 것 같다. 지금까지 인류 발전의 이면에 나타난 각종 문제와 부조리를 지켜보노라면 여전히 우리는 불완전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메리 셸리는 우리 인류가 시행착오를 발판삼아 끊임없이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믿었기 때문에 우리를 일깨우기 위해 그녀의 전령과도 같은 이 작품을 남긴 것 같다. 끝으로 문득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진 괴물이 자신의 말처럼 정말 죽은 것인지 궁금해진다. 혹시 작가를 대신해 불멸의 존재가 되어 이 세상 어디에선가 때로는 우리를 향해 경종을 울리고, 때로는 조용히 우리를 응원하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k*****o 2020.06.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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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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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존재인 괴물.프랑켄슈타인은 영화로 많이 봤어요.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설정은 많지만 가능성있어 보이는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건 프랑켄슈타인이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인간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복잡한 성격이 현대적이구요.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가 여성이었고 불과 18세에 쓴 작품이라니 200년 앞서간 천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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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존재인 괴물.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로 많이 봤어요.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설정은 많지만 가능성있어 보이는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한 건 프랑켄슈타인이 처음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고 인간의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는 복잡한 성격이 현대적이구요.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가 여성이었고 불과 18세에 쓴 작품이라니 200년 앞서간 천재성을 원작 소설로 만난다니 기대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탄생은 정말 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재시인 바이런의 이웃에 살게된 메리 셸리가 작가들과 모여 유령 이야기를 만들기로 합니다. 셸리는 고심끝에 악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해냈고 친구들은 그 이야기를 길게 써보라고 했어요. 


이 책에는 1818년 초판의 서문과 1831년 개정판의 서문이 있습니다. 개정판에서는 이야기의 탄생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이야기는 선장 로버트 월턴이 누나 마거릿 새빌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합니다. 월턴은 개와 썰매에서 발견된 한 남자를 구하게 되는데 그가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에요. 빅토르는 자신이 누구를 쫓고 있다며 숨겨둔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빅토르의 어린시절부터 그가 대학에서 과학을 공부하고 죽은 시신을 살려내는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 죽어 가는 한 줄기 빛에피조물이 흐릿한 노란 눈을 뜨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숨을 힘겹게 몰아쉬더니 발작하듯이 팔다리를 움직였습니다. 

이 재앙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내가 헤아릴 수 없이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여 만들어 낸 그 가련한 존재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p.49


뜻밖에도 되살아난 시체는 윤기나는 흑색의 머리칼에 균형잡힌 팔다리를 가진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멍한 두 눈, 그 눈 구멍과 쪼글쪼글한 피부의 색, 검은 입술때문에 감소했지만요. 이런 묘사는 월턴의 시각으로 본 거대한 체구의 비율이 왜곡된 흉물스러운 존재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빅토르는 뭔가 말하려는 그에게서 달아나버립니다. 이후 빅토르의 어린 동생 윌리엄이 교살당하고 가족들은 큰 충격과 상심에 빠져요. 빅토르는 자신의 괴물이 저지른 일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지만 무고한 유스틴이 잡혀 억지 자백을 하고 사형당합니다.


빅토르는 자신의 괴물을 만나고 그에게 맹렬한 혐오와 경멸을 담은 말을 쏟아부어요. 악마라고 불린 그가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버림받은 자를 증오하지 그런데 그 어떤 생물보다 더 비참한 내가 어째서 미움받아야 하는가! 나를 창조한 당신도 피조물인 나를,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끊어지는 관계로 당신과 묶인 나를, 증오하고 경멸하지. 생명을 어떻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지? 당신의 의무를 내게 다하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게 내 의무를 다하겠다. 거부한다면 당신의 남은 친구들의 피로 만족할 때까지 죽음에 굶주린 위를 채우겠다."p.139


괴물은 상당히 지적이고 철학적입니다. 빅토르는 그를 부정하고 증오해요. 그러면서도 괴물에 대해 알려고 합니다. 빅토르가 달아난 후 그는 혼자 깨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해요.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동경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집니다. 눈먼 노인의 가족을 지켜보다 마침내 용기내어 다가가 친구가 되어달라하지만 그 가족들은 그를 보고 경악해 달려들고 그는 달아났어요. 


그는 빅토르의 동생을 죽인 것을 말하고 빅토르에게 여자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당신은 내게 여자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내 존재에 필요한 공감을 나누며 함께 살 수 있도록. 이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당신이 거절할 수 없는 권리로 그것을 요구하는 바이다"p.199

결국 빅토르는 그에게 맹세를 시키고 여자를 만들어주기로 합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빅토르는 변심해 만들지 않기로 해요. 괴물이 빅토르에게 "네 결혼식 밤에 내가 할께할 것이다"라는 무서운 말을 남깁니다.  


괴물은 이름이 없고 한 번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합니다. 이 소설의 제목 '프랑켄슈타인'은 빅토르의 성이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이름이기도 하지요.   


소설을 읽으면서 괴물을 만들어 낸 빅토르의 심적 갈등과 괴로움, 피살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괴물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가벼운 기분인가를 느꼈습니다. 자신의 존재자체를 부정당하고 위선적인 창조자를 보며 한편으론 애정을 갈구하는 건 인간이 신에 대해 가지는 감정과 비슷해요. 말과 표현이 시적이어서 세월을 뛰어넘은 명작이라는 이유를 실감하게 합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b***t 2020.06.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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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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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먼저 봤어요. 어둡고 기괴한 고딕 소설을 쓴 작가가 스무살 여성이었다니 급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녀가 만든 괴물에게 어떤 사연이 있길래 200년 넘게 이 책이 사랑받는지 궁금하던 차에 예스24 서평단에 뽑혀 신간을 받는 행운이..ㅎㅎ  원제가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예요. 프로메테우스라 하면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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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먼저 봤어요. 어둡고 기괴한 고딕 소설을 쓴 작가가 스무살 여성이었다니 급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녀가 만든 괴물에게 어떤 사연이 있길래 200년 넘게 이 책이 사랑받는지 궁금하던 차에 예스24 서평단에 뽑혀 신간을 받는 행운이..ㅎㅎ

 

원제가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예요. 프로메테우스라 하면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죄로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먹히던 그 분, 인간을 흙과 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설도 있네요.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이 인간 창조 실험을 하는 것을 프로메테우스에 빗댄 거겠죠. 그러니까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 이름이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괴물은 이름 없이 '그것'이나 '괴물' '악마'로 불립니다.

 

18세기 제네바, 지적 호기심이 강한 귀족청년 프랑켄슈타인이 대학에서 과학 실험에 몰두하다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비법을 알게됩니다. 위대한 창조주가 되고픈 욕망에 외딴 실험실에서 거대한 크기의 인간을 만들죠. 그런데 생명을 얻어 깨어난 창조물의 외모가 너무나 끔찍한 겁니다. 마치 시체가 환생한 것처럼 괴기스러운 모습에 공포와 혐오를 느낀 프랑켄슈타인은 실험실을 뛰쳐나옵니다. 그러고는 두려움에 나몰라라 떠나버리죠.

 

문제는 졸지에 생명을 얻은 '창조물'입니다. 언어 능력, 사고 능력 다 갖추었지만 추악한 외모 때문에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야 하죠. 누구라도 마주치면 비명과 함께 달아나버리니까요. 유령, 악마, 사탄 취급을 받는데, 개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스스로 수긍할 정도이니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에 맡길게요. 노틀담의 꼽추나 오페라의 유령과는 비견할 수 없을 만큼 공포스러운가 봅니다.

 

이 소설이 단순한 괴기물을 넘어서 심리소설로 읽히는 이유는 <2부> 괴물의 독백 부분 때문일 겁니다. 창조주에게 버림받는 순간부터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밤에 이동하며 의식주를 찾는 것,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는 참을 수 있지만 친구가 없는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것, 독학으로 언어를 익히고 길에서 주운 책을 읽는 것, 이야기를 나눌 단 한명의 친구를 갖고싶어 하는 것. 괴물의 독백을 읽다보니 어느새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버렸어요. (프랑켄슈타인, 이 나쁜 놈. 결혼해서 애나 낳지 창조주 놀이는 개뿔. 이 불쌍한 괴물은 어떡할겨ㅠ) 버림받은 사람의 유년시절에 상처처럼 박혀있는 외로움, 따돌림, 무시, 냉대의 원형이 이 작품 속에 있었군요. 삶의 한 켠에 이런 어두운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요? 세상에.. 괴물에게 감정이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희망을 짓밟힌 괴물은 비뚤어지고, 자신의 창조주인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복수를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대결하는 장면은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갈등구조가 확실하고, 감정이 폭발하는 극적 상황이 많아서 대형 뮤지컬로 제격이겠어요. 이렇게 스케일이 큰 소설을 이백 년 전에, 그것도 스무살에 쓴 메리 셸리 작가가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녀도 외로움의 순간들을 절절히 느껴봤기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거겠죠. 여자 작가라고 출판이 거절돼 하마터면 남편이 쓴 책으로 둔갑할 뻔했다는데, 끝까지 자기 이름을 지켜낸 그녀에게 박수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s*****a 2020.09.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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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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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영화 메리셸리 였다.평소 프랑켄슈타인엔 관심도 없었고, 단순히 아이들이 보는 괴물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작가의 일대기가 그려진 영화를 보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어 검색해 보니 여러권이 있었는데, 그중 초판본 디자인에 매료되어 (주)미르북컴퍼니에서 나온 프랑켄슈타인을 사서 읽었다.생각보다 소설은 나의 기대 이상이였고, 18살이 쓴게 맞아?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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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영화 메리셸리 였다.

평소 프랑켄슈타인엔 관심도 없었고, 단순히 아이들이 보는 괴물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작가의 일대기가 그려진 영화를 보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어 검색해 보니 

여러권이 있었는데, 그중 초판본 디자인에 매료되어 (주)미르북컴퍼니에서 나온 프랑켄슈타인을 사서 읽었다.


생각보다 소설은 나의 기대 이상이였고, 18살이 쓴게 맞아? 싶을 정도로 수준있는 내용에 놀라웠다.

실제 여행에서 도움을 받았을 법한 생생한 자연 묘사라던가,

단순히 괴물 얘기가 아닌,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도 서스펜스마져 챙겨가는,

굉장히 흡입력 있는 소설이였다.

이 도서의 가지치기로 실낙원이란 책도 궁굼해서 읽었는데,

너무 많은 인용으로 배경지식이 부족해 버거워서 미루고 있는 중 ㅠ 



서평단 신청에서 반가운 이름이 보여 누르게 되었다. 읽었던 책이니 다시 신청할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구경이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클릭.


일단 내가 읽었던 초판본과 다른점은

-1831년 작가 본인인 메리의(1818년 초판 서문은 남편이 작성) 서문이 첨부되있다.

-설정들이 달라짐 ( 월턴이 편지를 보내는 새빌부인이 동생으로 그려진데에 반해, 이책에선 누님,엘리자베트를 혈연관계가 아닌 고아로 설정함)


그리고 초판본의 역자 해설은 포커스가 작품 자체인데 반해, 

아르테 출판사의 역자 해설은 당대 소설 기조, 문학 사상의 배경등 좀더 풍부한 해설이 있어서.,

초판본만 읽었을 때 몰랐던 내용들을 알게 되어 좋았다.


개인적으로 디자인은 초판본 디자인을 이길수 없... ㅠㅠㅠ

아르테 출판사 것도 나름 매력이 있긴 하지만 때도 너무 잘타겠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아르테 출판사의 프랑켄슈타인이 더 끌렸다.

무엇보다도 메리 셸리의 서문을 볼수 있다는 것과, 역자의 해설이 나는 아르테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워낙 작품가지고 할얘기들이 많아서, 읽고나서 다른 사람과 얘기하고 싶어지는 책,

독서 모임을 가진 분들이라면 한번쯤 주제책으로 선정해 보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n****3 2020.06.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프랑켄슈타인, 그의 인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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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기괴할정도 큰 키에 머리에 박힌 못, 피부 위의 수많은 바늘자국까지. 그런데 정작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만들어낸 박사였다니! 다양한 매체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를 접하고 소비했으면서 원작을 읽어볼 생각을 못했다. 19세기의 고전이 계속 읽히는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아! 어떤 인간도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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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기괴할정도 큰 키에 머리에 박힌 못, 피부 위의 수많은 바늘자국까지. 그런데 정작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만들어낸 박사였다니! 다양한 매체에서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를 접하고 소비했으면서 원작을 읽어볼 생각을 못했다. 19세기의 고전이 계속 읽히는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읽게 되었다. 




/




아! 어떤 인간도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다시 움직이게 된 미라라고 해도 그 괴물처럼 끔찍할 수는 없을 겁니다.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도 그를 보았지요. 그는 그때도 추했습니다. 하지만 그 근육과 관절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그건 단테조차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p.81



프랑켄슈타인은 새로운 인류를 창조해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괴물'을 창조해낸다. 그는 "해부실과 도살장에서 얻은 재료"로 이루어졌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을 보고 역겨워하며 실험실을 버리고 도망친다. 자신이 창조한 괴물에 대한 걱정으로 시름시름 앓던 어느 날 프랑켄슈타인의 어린 형제가 살해된 채 발견되고 그 범인으로 유스틴이 처형당한다. 이 살인이 '괴물'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자신 때문에 두 명의 사랑하는 사람이 희생되었다며 고통스러워한다. 



"내가 인간 세상을 영영 떠나 무해한 삶을 살지, 너희들 인간의 재앙, 지체 없는 파멸의 원흉이 될지, 당신에게 달렸다."

p.142

프랑켄슈타인을 찾아온 괴물은 당신이 나의 창조주이니 자신의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종용한다. 


"나는 혼자이고 비참하다. 인간은 나와 교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기형에 끔찍한 여자라면 나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내 동반자는 같은 종이어야 하며 같은 결함을 가져야 한다. 이 존재를 당신이 창조해야만 한다."

p.198


괴물의 이야기는 다소 비극적이다. 처음 눈을 뜨고난 뒤 언어도 감각도 없이 무지의 상태였던 이 피조물은 혼자 산에 살며 도토리를 주워먹고, 한 가족을 보고 언어와 사랑을 배운다. 다정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 다가가지만 상처만 얻고 프랑켄슈타인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동족을 만들어주길 강요한다. 이를 거절한 프랑켄슈타인에게 "네 결혼식 밤에 내가 함께할 것이다"라는 경고를 남기고 괴물은 떠난다. 


나는 왜 죽지 않았을까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비참한 내가 어째서 망각과 휴식으로 빠져들지 않았을까요? 죽음은 막 자라나는 아이들을, 그들을 소중히 사랑하는 부모들의 유일한 희망을 숱하게 앗아갑니다. 건강과 희망으로 피어나다가 순식간에 구더기의 먹잇감이 되어 무덤에서 썩어 간 신부들과 젊은 연인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나는 대관절 무엇으로 만들어졌기에 이토록 많은 충격적인 사건이 마치 돌아가는 물레바퀴처럼 끊임없이 고통을 되살려 내는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걸까요?

p.244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괴물의 입장에서도 프랑켄슈타인의 입장에서도. 서로의 복수와 요구 모든 게 어긋난 채 프랑켄슈타인은 죽고 괴물은 살아남지만, 죽음을 내비친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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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입장에서 쓴 이야기고 그가 만든 괴물은 이름도 없이 괴물이나 악마로 지칭되지만 나는 이 괴물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며 읽었다. 이 피조물이 원한건 인간과 비슷한 삶이었다. 사랑과 슬픔과 기쁨,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 그러나 이 피조물에게 그걸 가르쳐 줄 사람은 없었다. 그는 모든걸 독학했다. 그가 호의를 가지고 인간에게 다가가면 경악하며 도망치기 일쑤였고, 심지어는 폭력을 휘둘렀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가 평범한 인간처럼 사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저지른 살인은 정당화 될 수 없지만, 애초에 그를 사회화 시켜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불을 내준 사람이다. 제목의 프로메테우스는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중 누구를 수식하는 말일까 생각했다.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고 야망에 눈이 멀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 프랑켄슈타인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다소 해탈의 경지에 오른 괴물인가. 둘 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버전의 프랑켄슈타인을 읽어본적이 없어서 어떤 부분이 다르게 번역된건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버전의 프랑켄슈타인도 읽어보고 싶다. 


아직도 프랑켄슈타인이 초록 피부에 바늘 자국이 가득한 괴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4 2020.06.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프랑켄슈타인 :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 다 떠나서 책으로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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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훌륭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YES24" 와 도서출판 "arte(아르테)"에 이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일단 이 책을 이야기 하자면정말이지 정성스럽게 번역된 프랑켄 슈타인 책입니다.서문도 1818년 초판본 , 1831년 개정본 에 대한 2가지 다 실려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1818년 초판본을 원본으로 삼고 번역한 작품입니다.참고- 2장 첫머리에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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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이렇게 훌륭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YES24" 와 도서출판 "arte(아르테)"에 이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일단 이 책을 이야기 하자면


정말이지 정성스럽게 번역된 프랑켄 슈타인 책입니다.


서문도 1818년 초판본 , 1831년 개정본 에 대한 2가지 다 실려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1818년 초판본을 원본으로 삼고 번역한 작품입니다.


참고- 

2장 첫머리에 본인의 나이를 17살로 소개하면 초판본

아니면 1830년도 개정본


우선 저한테 "당신이 이 책이 정성스럽게 번역됬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영문전공도 아니면서....."


라고 집요하게 묻는다면 제가 드릴 말씀은 없지만


일단 이 책은 일반 소설책과 달리  다양한 서문과 해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주석을 달면서 이해의 폭을 넓힌 책입니다. (안그런 책이 참 많지요)


 그리고 편견일지 모르지만 1818년도 초판본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물을 대하고 이야기 하는 과정, 그리고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더 비중있게 다루는 느낌입니다. 1831년도 작품이 재미가 없다는건 아닙니다. 오히려 박사가 창조물을 쫒는 극적인 면은 개정판이 더 재미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럼 거꾸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정성스럽게 번역된 이 책에 비해 다른 책은 어떻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할수 있겠지요.

 보면 앞서 말씀드린대로 

 초판본과 개정판을 마치 발췌해서 섞어서 번역하거나 재 창작(?)에 가깝게 번역한 책들이 제법 많습니다. 심지어 축약해서 번역한 책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건 소년문고 혹은 청소년 문고판이라서 그럴수 있다손 치더라도 멀쩡한 어른용 메리셀리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고도 축약, 발췌, 재창작으로 번역한 예전 책들이 상당합니다.


 알고 보니.... 이게 수십년전에 일본의 추리 동호회, SF동호회 목적으로 출간한 책을 중역한 책들을 검증없이 그대로 가지고 온 족보없는 번역판본이 이렇다더군요. 

 다행히 지금의 이름있는 출판사와 번역가분들이 그러한 오류를 붙잡아 가고 있지만

 수십년전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 아직도 서점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떤이는 SF .. F..C - SF 패미니즘 컬렉션 이라고 생각하면서 뭔가 다른 생각을 기대할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렵습니다. 작가 메리 셸리 (Mary Shelley) 본인의 삶이 파란만장했다는  (젊은 나이에 남편과 아이를 잃고 사회적 편견을 깨고 SF 소설사에 길이 남을 역작을 남긴점)  점을 제외하고 소설 자체로만 보면 정말이지 훌륭한 SF 고전 그 자체입니다.

 그저 제목 뿐입니다. 훌륭한 SF 그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특히 초판본 번역중에 박사와 박사의 심중... 이 심오하고 어려운 대사를 무게감있게 번역한 이 책을 높이 평가합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j*******3 2020.06.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