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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모두 ‘너(나)를 봤다’...『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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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났다. 올해 이곳은 유난히 무덥고 습한 날씨의 변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길었다. 언제 지나가나. 언제 가을이 오려나 했는데 기어코 가을은 왔다. 여름이 끝났고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했고 선선한 바람이 반소매로 감싸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일게 했다. 가을은 누군가를 추억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했지. 추억할 누군가를 떠올리기에 사랑 소설만 한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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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났다. 올해 이곳은 유난히 무덥고 습한 날씨의 변주가 이어졌다. 그리고 길었다. 언제 지나가나. 언제 가을이 오려나 했는데 기어코 가을은 왔다. 여름이 끝났고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했고 선선한 바람이 반소매로 감싸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일게 했다. 가을은 누군가를 추억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했지. 추억할 누군가를 떠올리기에 사랑 소설만 한 건 없다. 그래서 나를 보고 싶어하는, 소중한 친구가 건네준 이 책을 조심히 손에 들었다. 왠지 여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차일피일 손에 들기를 미루었던 건 그래서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표지를 장식하는 물결이 청록빛을 띠게 될 때쯤은 어김없이 가을이라 믿었다. 지면을 달구는 뜨거운 태양과 옷깃만 부딪혀도 불쾌지수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여름은 바다의 물결마저 탁한 빛을 띨 거라, 뭐 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더운 바람에 머릿속이 엉켜있을 때보다 가을의 선선함이 『너를 봤어』와는 어울린다. 그의 삶과 사랑도 그렇다. 외부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자신을 드러내길 거부하는 자, 유일무이하게 사랑하지만 차라리 사랑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자, 그의 삶은 드러났지만 감춰져 있고 그의 사랑은 뜨거웠지만 선선했다. 가을과 무척이나 어울리는 그의 삶, 그들의 사랑이 이미 내 옆에 성큼 와있는 가을바람을 더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내게, 간절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아무것도 없는 걸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내 전신을 감쌀 때, 나는 많이 슬퍼졌다. 삶이라는 것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빈' 것이라고 해도, 살면서 간절한 것 한가지 정도는 가져보는 게, 그나마 덜 슬픈 일 아니었을까. 간절한 무엇 때문에 아프더라도, 불행해지더라도, 그것을 갖기 위해서 내 인생을 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세상에 와서 인간답게 살고 가는 게 아닐까, 라는 꽤 그럴듯하면서, 농담 같은 궤변을 시종일관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건 모두 정수현 때문이었다. 마흔여섯에 지키고 싶은 여자, 첫사랑을 시작했다고 말하는 그 남자, 때문이었다. 이런 남자라면 나도 모든 것을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같은 호기도 들었고 그의 말대로 차라리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말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방향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나 혼자만 좋자고, 멋대로 하는 게 아니거든.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심장의 간절한 울림이 필요한 거거든. 수현의 자살한 아내 지연의 삶을 그럴싸한 예로 들어도 될는지 모르겠다. 혼자만의 사랑,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 상대를 멋대로 휘두르려 했던 그녀의 최후는 왜 사랑이 한 방향을 바라봐야 하는지 전적으로 보여주는 섬뜩하고도 눈물겨운 예가 아닐까.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너는 흔적은 그곳에 남아...

 

삶은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거라 생각했다. 사랑도 그 안에서 흘러가는 것이다. 삶에 곁들여지는 맛깔스러운 양념처럼, 때로는 눈물 쏙 빠지도록 매워서 아프고, 때로는 혀가 살살 녹도록 다디달아서 행복해서 미칠 것 같고, 때로는 너무도 쓰고 떫어서 얼얼한 혀를 몇 번이고 쓸어주며 눈물 바람을 하는 게 사랑이 흐르는 모습이다. 왜 이제야 알았을까. 수없이 반복됐던 사랑 안에서는 알지 못했다. 한발 물러서서 관조적인 입장, 타인의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사랑을 바라보면서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 타인이 실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소설 속에서 감정이입을 바라는 이들이라는 게 조금은 우스운 일이다. 소설이 우리의 인생 조각을 잘게 빚어 알음알음 갈무리해둔 집약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하면 또 그런 게 되고 만다. 그러니 우스운 일이라는 건 소설을 통해 바로 보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건 바로 내가 지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을 김려령의 『너를 봤어』가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남자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간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여자인 김려령 작가가 남자의 시선을 흐르듯 따라간 것이라는 전제가 내 무릎을 탁 치게 했다. 동성이 동성을 바라보는 시선, 동성이 이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히 다르다. 때로는 같은 성별의 종족보다 더 정확하게 짚어낼 수도 있음을, 그럴 때가 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성별이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더 그럴듯할 수도 있다는 걸, 왜 항상 막다른 곳에 당도해서야 알아채는 걸까 우리는.

 

세상은 환상만큼 아름답던가. 아니. 세상은 내가 보지 못한 것, 보려고 하지 않았던, 딱 그만큼의 틈새를 둔 채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틈새로 보이는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서 드러낼수록, 알아가려 할수록 우리는 아름다움보다 슬픔과 상처, 고통 같은 것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면 고고하고 찬란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너무도 아프다. 차라리 수현과 영재가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면 덜 아팠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게 말처럼, 생각처럼 이성적으로 움직이던가. 아니다. 아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낱낱이 들여다볼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반면 고통도 비례하는 것이다. 사랑이 끝난 뒤, 날개가 있었으면 했다. 너에게 날아가 심장에 노크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는 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 끝난 사랑 앞에서 제아무리 날갯짓을 해봐도 제자리걸음이었기 때문이다. 날아갈 수 없었다. 그게 사랑이 끝난 뒤 각자가 따르는 전철이다. 그러면 때로는 바랄 것 같다. 수현처럼. 죽어서라도 목숨만큼 사랑했던 사람을 지켜보고 지켜줄 수 있기를. 혹자는 수현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또한 처음에는 그랬다. 대다수 사람들은 '실수'는 실수라 생각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래서 그는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을 거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실수'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했으니까. 두려움과 증오, 무관심, 연민으로 점철된 아버지와 형과의 관계를 끊어냈던 것은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한다 해도 죽도록 사랑하는, 그래서 차라리 사랑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던 여인에게까지 뻗어 나가는 폭력성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벅차기만 했던 게 아닐까. 그런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게 형체가 없는 무의 존재로 남아 유한한 흔적을 남기는 거였다고 말한다면, 이에 그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안도현의 시가 떠올랐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中)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나에게 뜨거운 사람은 누구였는지 같은 사소한 물음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 시를 정수현, 서영재, 유지연, 정도하에게 대입해보면 참 명확하게도 답은 나오는 게 더 아이러니한 일이다. 정수현과 서영재는 서로를, 유지연은 정수현을. 도하는... 글쎄, 서영재이면서 정수현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수현의 어머니는 아마도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건설현장 소장과의 벌거벗은 정사에서 자식들은 나 몰라라 했지만, 그 시절이 오기 전 그녀의 삶에 있어 자식들은 뜨거운 무엇, 자신 또한 뜨거운 엄마 정도였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한탄의 말을 뱉어낸다. 췟, 삶이 무어란 말인가. 무엇인데 이토록 삶은 힘겨운가. 힘겹다 못해 독하고 아픈가. 그 뒤에는 언제나 평행선을 달리는 진부하지만 중요한 '사랑'이 존재한다. 이성 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관계에서 파생되는 사랑 등. 세상의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고 말하기보다는 힘겹다 말해야 옳지 않은가. 내가 바라는 사랑의 완성은 명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게 항상 명료한 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라는 걸, 오래전에 알았다. 사실 소설은 '수현과 영재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로 끝맺었으면 더 좋았을 거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뭔가 일반적이지 않은,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그게 소설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일반적이지 않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반적이면서 보편적으로 살아가게끔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 말이다. 어쩌면 선물이라고 말하는 내가 오류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김려령이라 이런 결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너(나)를 봤다’...

 

청소년 문학계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한 그녀다. 일명 19금, 성인 소설로의 도약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도약을 해보고자 했고 읽는 독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의 작품을 써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정말 김려령이 쓴 것 맞아?" 꽤 수위가 높은 문장들에서는 나 역시 그랬다. 자유로운 아이들의 사고를 지지했던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선생님 같았던 그녀가 맞는가 싶었다. 작품 후기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녀는 김려령이 맞았다. '너'는 바로 김려령이었다. 나는 그런 김려령, 당신(너)을 봤다. 제목 '너를 봤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중첩된다.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할 다른 남자에게 안겨있는 어머니의 벗은 몸을 바라보던 배고픈 아이의 시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교차하는 형제의 시선, 허상 같았던 죽은 아내가 계속해서 주변을 맴도는 시선, 46년 만에 보이게 된 첫사랑 영재를 향한 시선. 그리고 각자의 삶을 바라보는 나(우리)의 시선. 이 모든 의미가 씨실과 날실처럼 엉겨붙어서 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 끝에는 저자 김려령의 시선이 있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토해내고 싶었던 수많은 사연과 고통은 결국 '너'를 보여줌으로써 완성된다. 소설의 내용이 문단, 출판계를 다루고 글 쓰는 이들의 일상을 다루고 죽도록 사랑하지만 죽이고 싶은 이들 각자의 삶을 통해 보고 싶었던 건 결국 그녀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너'는 결국 김.려.령. 자신이었다. 청소년 소설을 쓰던 그녀의 첫 성인 소설은 자신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낯설면서도 잔상이 오래 남는 그녀의 첫 성인 소설 『너를 봤어』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가 느끼는 것들이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이야기이며 흘러가는 삶이니까. 

 

세상에는 왜 이토록 죽이고 싶은 인간들이 많을까. 급기야 그녀가 이런 소설을 써내게끔 부추긴 원동력이 된, 이런 세상의 이런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정수현, 서영재, 윤도하 이들처럼 누군가에게, 이토록 간절하게, 뜨겁게, 가닿았던 누군가가 맞느냐고. 그런 삶을 살았느냐고. 아니라면 우리,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수현의 삶이 아프다. 그래서 내가 대신, 그가 못다 한 삶을 살고 싶다. 죽어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떠돌고 싶었고 지켜주고 싶었던 약하디약한 사람, 그는 늦깎이 사랑 앞에서 움츠러들기도 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했던 것, 그거 사랑이라고. 그러니 편히 쉬라고...그게 네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라고... 이쯤 되면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수현이 뛰어든 음습한 저수지를 다시 찾은 영재와 도하가 건네던 마지막 바람의 완성품을 통해 증명되지 않던가. 그는 없지만 그의 흔적은 영원히 이곳,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남았다. 태어나 삶을 살고 사랑하며 살다가 종래에 소멸할 때, 나의 흔적을 기억해주는 누군가는 남는다는 것, 그게 우리가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삶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너를 본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너(나)를 봤다’...

 

 



w*****8 2013.09.08. 신고 공감 17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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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모진 삶을 물에 장사지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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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지만 때로는 남들보다 못한 관계로 전락하고 말아 식구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서로에게 기생하여 양분을 갉아 먹다 중국에는 파멸의 길에 이르고 마는 경우가 있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밤을 낮 삼아 발품을 팔며 모진 시간을 버텨내느라 자식에게 원망 섞인 푸념을 어머니는 폭죽처럼 터뜨리며 화를 낼 때가 있었다. 휘둥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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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이지만 때로는 남들보다 못한 관계로 전락하고 말아 식구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고 서로에게 기생하여 양분을 갉아 먹다 중국에는 파멸의 길에 이르고 마는 경우가 있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밤을 낮 삼아 발품을 팔며 모진 시간을 버텨내느라 자식에게 원망 섞인 푸념을 어머니는 폭죽처럼 터뜨리며 화를 낼 때가 있었다. 휘둥그레진 엄마의 눈이 나를 주시할 때면 엄습한 공포에 짓눌려 위축돼 잿빛처럼 우울했던 아동기의 기억이 떠올라 슬픔이 더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때면 검정 고무신을 신은 채로 섬진강으로 내달려 내 안의 슬픔을 강물에 실려 보내곤 했다. 이지러진 마음을 달래며 울분을 삭이고 살아야 할 일이 많음을 이른 나이에 직감하여서인지 소설 속 수현의 농축된 슬픔이 눈물을 흩뿌리게 한다.

 

  상상하는 세계를 인과적 구조에 담아 소설을 쓰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글쓰기는 또 다른 치유력으로 현실에서 못다 한 일들을 가공된 세계에 담아낸다. 현실적 고통이 클수록 쉽사리 버릴 수 없던 앙금을 상상력 속에 용해해 자정하려는 의도가 강한 것처럼 보인다. 빈궁한 생활 속에 가족 구성원들의 정신은 황폐화로 치달아 관계를 회복하여 개선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평범한 일상까지 앗아 가버렸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빠진 식구들은 서로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영문도 모른 채 형은 아버지에게 얻어 터졌고 동생은 형의 갖은 폭력 아래 무너져 내리면서도 가해자의 행동을 발설하지 않는 가운데 가족들 간의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이어졌다. 가족이라는 허울 아래 묶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평범한 가정의 단란한 모습과는 달리 서로를 가학하며 또 다른 욕망을 추구하는 피상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은 헤어나기 힘든 나락의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학대를 가하는 이에게 품었던 증오는 켜켜이 쌓여 고착화되었다.

 

  큰물이 지나갈 때 아버지를 개천 물속에 장사를 치른 형제의 공조는 우발적이면서도 폭력의 고리를 끊고 싶은 마음에서 계획된 것처럼 보여 우두망찰해지고 만다. 폭력으로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형제 사이에 자리한 적대감은 서로의 가슴을 짓눌러 융화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았다공사장 인부들 밥을 해주며 생계를 도왔던 어머니는 자식들의 굶주림도 잊고 소장 허벅지 위에서 남자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달랬는지도 모른다. 개천에 남편을 수장하고 음산함이 불길한 공포로 자리하는 공간에서 어머니는 둘째 아들의 돈에 기생하여 살아가는데 그 돈마저 큰 아들의 횡포를 막는 도구에 그쳐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헤어날 길이 없어 보인다. 재생 불능의 음울한 공간에서 폭력의 희생물로 추하게 낡아가는 어머니를 볼 수 없어서인지 수현은 지상에서 형의 존재를 제거해버렸다. 가난마저 집어삼킬 공포 아래 짓눌려 신음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이들을 구원하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결혼 전 품었던 환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깨지게 되더라도 연인은 사랑하는 이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에서부터 불화하여 싸움을 벌일 때도 있지만 서로를 닮은 자식을 키우며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결혼 생활을 그릴 때가 있다. 하지만 정수현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잠시 쉬고 싶은 생각에 애정 없는 결혼을 서둘러 소설가 아내를 맞았지만 부부는 평행선을 그으며 살았다. 동일한 집에서 각기 다른 양상을 띠고 각자의 생활에 충실함으로써 냉각된 공기를 데워 줄 사랑과 온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욕정을 풀고 형식적으로 응대하는 부부의 결혼 생활은 아내의 죽음으로 끝이 나버렸다. 소설가 후배 서영재와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었던 따스함은 아내에게서 찾지 못하였던 분홍빛 사랑으로 행복을 줬다. 폭력으로 서늘해진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서인지 수현은 있는 그대로의 영재를 인정하여주며 그녀 자체를 사랑하며 조금씩 인간적인 모습을 띤 남자로 자리해 갔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경우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알고 싶은 마음은 내재한다. 후배 영재역시 선배 수현도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가슴에 지른 빗장을 열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날과는 달리 수현의 일방적인 애착은 둘의 관계를 파멸로 이끈다. 영재를 안고 따스하게 잠들고 싶었던 날 욕망에 이끌려 휴대폰 전원을 꺼둔 영재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자의적으로 금기를 깨버린 수현의 충동적 사랑은 정적이 필요했던 그녀의 자유를 앗아버렸다. 서로가 간절히 원할 때만 욕정을 풀었으면 한다는 영재는 연인이 되어 설레고 행복했던 날의 기억까지 깨지 말아 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실어 지른 ,

  ‘’나가‘’

  외마디 절규는 수현의 마음 깊숙이 자리한 괴물이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걷잡을 수 없는 폭행으로 치달아 여리고 맑은 영재를 고통의 심연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수현은 영재의 숨구멍을 옥죄고 있던 손을 풀고 영재와 닮은 후배 작가 도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의탁하고 다시는 열리지 않을 문을 뒤로 하고 돌아섰지만 살아갈 이유를 잃고 말았다.

 

   일회용 취급을 당하면서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소설을 써내려 간 영재는 죽을 힘을 다해 소설을 갈무리하였지만 그 작품까지 태워버려 재생할 힘까지 빼앗고 말았다. 사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의 단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포용할 때 생명력이 길어질 수가 있다. 아내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죄책감으로 번민할 때도 영재는 수현의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는데 수현 스스로 비루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속죄할 수 없는 형벌을 자초하고 말았다죄책감으로 번민하던 수현이 따스하다고 여겼던 영재가 차갑다고 여긴 순간 멍 자국을 알로에로 문지르며 속죄의식을 치르고 싶지만 이제는 선배 여자가 아니라는 말은 비수가 되어 수현의 영혼을 삼키어버렸다. 자신은 소멸해가면서 서로를 살게 할 후배 소설가 도하에게 영재를 부탁하며 공동작인 연작 소설을 갈무리함으로써 나와 닮은 너를 우리 속에 융화하려 했다. 어쩌면 수현은 신산했던 삶의 파편을 송두리째 던짐으로써 저수지에 비축해 둔 물처럼 유용지물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n*****9 2013.09.04. 신고 공감 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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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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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잡곡밥을 곱씹어 먹듯 문장을 입속에서 되새김질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문장 과 문장 사이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참을 들여다 보게된다. 그렇다고 저자의 생각을 읽어 낸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성숙(어쩌면 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간 쌓아두었던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기는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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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잡곡밥을 곱씹어 먹듯 문장을 입속에서 되새김질하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문장 과 문장 사이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한참을 들여다 보게된다. 그렇다고 저자의 생각을 읽어 낸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성숙(어쩌면 숙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간 쌓아두었던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기는 하네. 누군가는 말하지,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라고. 표지 그림이 마음에 들어 오염되지 않은 코발트빛 바다가 표지안으로 들어와 있다. 사람이 머물지 않은 고요한 바다라는 것도 좋았어. 내가 바란건 하나였다. 나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 (p.101) 책속에서 찾아낸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다.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둘 것, 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간섭이 잔소리로 변모해가는 것은 싫거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지만 어딘가에 억매여있는 것과 같다. ​어쩌면 한권의 책을 탈피하는 순간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만킥하기도 하겠지. 아버지는 형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형은 동생인 나를 때리면서 불만을 해소해갔지. 무엇이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은 싫어. 어딘엔가 해소할 방편이 있어야 당한 사람도 살아갈 길이 열리잖아. 주인공 정수현 작가는 세상에 숨겨논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동료 작가이자 아내였던 유지연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 같이 살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살던 다른 사람이 의심을 받게 된다. 그 사람이 죽은 이유에 당신이 포함된 것 아니냐고.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이지는 않았다. (p.97)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죽이지도 않았다는 정수현, 상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이유가 죽을 이유가 되나 생각했다면 내가 너무 삭막한가?

아내는 글 쓸 때가 가장 좋다고 했고, 영재는 놀이라 했다. (p.134) ​이미 죽은 아내와 살아있는 영재와 비교하는 것은 둘 모두에게 기분나쁜 일 아닐까? 이미 여러권의 책을 출간해 낸 중견 작가 남편과 같은 입장의 중년작가 아내, 어쩌면 둘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잘 살아갈수 있었을텐데. 살다보면 사랑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처음부터 사랑이 아닌 편리에 의한 선택을 한 정수현이나 껍데기라도 곁에 두고싶어 했던 끝내는 사랑받길 갈구하다 사랑의 방편으로 죽음을 선택해 버린 아내나 선택에 따른 책임은 의식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죽음을 앞둔 자의 눈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p.187) 뒤늦게 찾아온 첫사랑 영재,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 폭력을 행사한 날 정수현은 자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았을까?

사랑에 대한 수단으로 폭력(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 요즘 시대에 ​정수현의 고민은 그래더 더 아름답다. 속력을 내어 빠른 속도로 읽다보면 못봤을지 모를 생각들이 문장 중간 중간 머리속을 차지하고 들어와 앉는다. 가끔은 주인공 입장이 되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표지에 실려있는 코발트빛 바다를 보면서 그 안에 뛰어들고 싶어져. 나를 포근히 감싸 안아줄 것 같아. 내가 바란건 오직 하나였다. 나를 그냥 가만히 두는 것. 내가 지금 그것을 바라는 것은 귀차니즘 탓이겠지. 아무것도 하지않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며 가만히 있는 것 그저 조용히 있는 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뒹글거리며 책을 읽고 책과 소통하는 것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고 할까. 책을 읽는다는 자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해당되지 않네. 나른함을 느끼는 한여름 오후에 우렁각시가.

 

s*******1 2016.07.31. 신고 공감 8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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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생의 연가 戀歌《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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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갓 잡은 활어처럼 팔딱팔딱 거린다. 날 것 그대로의 삶과 조우하는 기분처럼 , 팔딱거리는 생의 활어는 언젠가는 또는 어디선가 보았던 누군가와 오버랩 된다. 생은 묘하게도 스쳐가며 보았을 때나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름다워 눈물이 나다가도 현미경을 통해 보는 형체에는 언제나 비극을 품고 있다. 마치 산에서 굴러내려온 바윗돌을 죽을 힘을 써서 올려놓으면 다시 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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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갓 잡은 활어처럼 팔딱팔딱 거린다. 날 것 그대로의 삶과 조우하는 기분처럼 , 팔딱거리는 생의 활어는 언젠가는 또는 어디선가 보았던 누군가와 오버랩 된다. 생은 묘하게도 스쳐가며 보았을 때나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름다워 눈물이 나다가도 현미경을 통해 보는 형체에는 언제나 비극을 품고 있다. 마치 산에서 굴러내려온 바윗돌을 죽을 힘을 써서 올려놓으면 다시 떨어지는 시지프스마냥 저마다 타고나는 생의 무게는 시지프스의 바위만큼이나 힘겹고 무거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삶의 무게가 실질적인 형체로 다가오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전작 《완득이》와 전혀 다른 느낌의 《너를 봤어》는 폭력이라는 비극의 옷을 입었지만,  연인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戀歌연가를 담은 이야기이다.

 

#마흔 여섯에 첫사랑이 찾아왔다.

 

한 출판사의 편집자이면서 소설가로서도 명성을 얻은 꽃중년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남자  ‘정수현’의 아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피상적으로, 이 두 사람의 결합은 완벽해 보이지만, 남자와 여자의 거리는 타인보다 더 먼 거리였다. 아내는 너무도 차가웠고 살뜰한 정이라고는 없는, 돈으로 남편을 샀을 뿐이었고 불우한 가정사를 가진 정수현은 그저 여자가 내민 손을  구원처럼 잡았을 뿐이다. 폭력으로 점철 된 가정사를 가진 정수현.  이후 아버지의 죽음과 형의 죽음은 ‘정수현’과 무관하지 않게 일어났고,  유일하게 남겨진 어머니는 수현에게  거머리처럼 들러 붙어 수현의 돈을 피처럼 흡혈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형은 죽고나서도 수현의 등에 달라붙어 수현을 숙주 삼아 기생하는 괴물로 자라나 수현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고  어울리지 않게 사랑을 갈구하던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타살인지는 모르지만......)그런, 그의 앞에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사랑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이 남자에게 찾아 온 사랑은  그의 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다. 마흔 여섯에 찾아온 첫 사랑은 어두운 수현의 생을 환하게 비추게 하고, 수현은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폭력의 가정사라는 고리를 끊고 싶어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것이 그것이라면, 내 삶으로 기꺼이 맞이할 생각이다.  

폭력과 사랑과 삶,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이 세가지의 꼭지점

 

이상하게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화차》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동물병원 앞에서 강아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여자, 그녀는 가녀리며 어딘가 삶의 끈을 놓아버린 듯 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사랑에 빠진 한 남자. 남자는 여자의 말이 없고 순수한 모습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의 이면에는 거대한 살인마가 자리잡고 있었듯이 정수현도 그의 아내 유지연도, 삶의 이면에는  화차의 여주인공처럼 비극을 품고 있었다. 상처를 가슴에 담고  심연의 외줄 위에서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그들의 몸짓은 바윗돌이 떨어지면 어김없이 다시 원위치에 돌려놓아야 하는 시지프스의 숙명과도 같아 보였다. 거대한 삶의 수레바퀴아래 깔려 버린 사람들,  그것은 소설의 주인공인 정수현만이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이면의 모습들이 아닐까.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음에 자꾸만 동요가 일렁였다. 폭력으로 점철 된 가족들의 이야기에  마치 엑스레이선을 찍은 듯 그려져 있는 삶의 무늬가 마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처럼 느껴져 자꾸만 울먹였다.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린 정수현이나 , 화차의 그 가련했던 여주인공의 삶이 이제는 소설속의 이야기가 아닌, 이미 현실에서 재현된지 오래이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삶을 너덜너덜 조각내어 마침내는 비극의 장막을 내린다. 이들의 사랑 역시도 끝을 알고 시작한 듯 슬프지만, 그래서 더 치열한 아름다움이 있다.  폭력과 사랑과 삶,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던 이 세가지의 꼭지점이 서로 긴요하게  연결되어져 우리의 생을 더욱 투명하게 비추고 있다.  이들의 가여운 사랑은 소설의 끝과 동시에 끝이 나지만, 폭력에 멍들어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숙명처럼 남겨진다. 우리들의 이야기 , 어떻게  쓸 것인가. 그것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몫인지도 .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3.09.05. 신고 공감 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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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청소년문학 작가의 새로운 도전, 일반문학을 쓰다.
"『너를 봤어』청소년문학 작가의 새로운 도전, 일반문학을 쓰다." 내용보기
『완득이』로 처음 김려령 작가를 만났다. 그 전에 아이들 독서 관련 책으로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가 집 책꽂이에 있었지만 읽을 생각을 못했고, 『완득이』로 인해 책을 닳도록 아이들과 나, 신랑까지 온 집안 식구가 몇 번씩 돌려보았다. 중학생인 둘째 아이는 김려령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느냐며 자주 질문할 정도이다. 물론 『완득이』를 영화로 만든 것까지 봤을 정
"『너를 봤어』청소년문학 작가의 새로운 도전, 일반문학을 쓰다." 내용보기

『완득이』로 처음 김려령 작가를 만났다. 그 전에 아이들 독서 관련 책으로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가 집 책꽂이에 있었지만 읽을 생각을 못했고, 『완득이』로 인해 책을 닳도록 아이들과 나, 신랑까지 온 집안 식구가 몇 번씩 돌려보았다. 중학생인 둘째 아이는 김려령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느냐며 자주 질문할 정도이다. 물론 『완득이』를 영화로 만든 것까지 봤을 정도로 우리집의 스타 작가이다. 작가, 김려령은. 지인으로부터 김려령 작가의 신작, 그것도 청소년 문학이 아닌 일반 문학으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책을 구입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열심히 클릭질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

 

 

이번에 새롭게 청소년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다가올 『너를 봤어』는 역시 김려령 작가의 필력을 알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에서 동화 작가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다른 청소년 문학을 읽었을때도 그녀가 동화 작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청소년 문학은 청소년도 읽지만, 어른이 더 많이 읽지 않나.

 

 

우선 『너를 봤어』는 연애소설이라고 분류되어 있다.

맞다. 연애소설이다. 하지만 연애소설에서 주로 볼수 있는 달달함은 거의 없었다. 3,40대가 가지는 그들만의 열정과 약간의 건조함이 있는 사랑 얘기랄까. 또는 한 사람에게는 간절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했다. 작가 김려령은 이 연애소설에서 폭력을 이야기하고, 또는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랑' 으로 다가온 소설가, 여자 서영재. 그 여자를 바라보는 중견 소설가인 한 남자 정수현의 이야기이다. 또한 베스트셀러 작가였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정수현의 아내의 이야기, 또는 모든 소설가 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것은 다 가졌으면 좋겠는 사람이, 지금 여기 있습니다.  (163페이지)

 직업이 소설가 인 사람들, 책을 읽는 독자들이 보는 소설가들은 연예인 못지 않게 관심의 대상이다. 소설가인 주인공들 답게 그들은 모이면 책이야기를 한다. 모여서 책 이야기를 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술을 마시면서도 온통 책이야기 뿐이다. 소설가들에게 다른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그저 소소한 것들이다. 글이 써지지 않음에 대한 것,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누군가 걸려온 전화 때문에 쓰던 원고를 다 버려야 했던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래서 은둔하듯 글을 쓰는 구나 싶었다. 하물며 이 작은 리뷰를 쓰는데도 맥이 끊기면 문맥이 이상하잖나.

 

 

 

 

잘나가는 중견 소설가에다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는 수현에겐, 수현을 콕 찍어 편집 일을 맡기며 수현과 결혼하고 싶어했던 아내가 있었다. 그런 아내를 수현은 집안의 정물처럼 바라보았다. 수현에게는 오랜시간동안 수현의 마음을 어지럽혀 온, 손밑의 가시같은, 엄마가 있다. 수현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소설가 답지 않게, 살인자이기도 하다. 그가 살인자라는게 어쩌면 그가 쓰는 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는 수현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형에게, 형은 수현에게 했던 폭력 때문이었는지, 수현이 살인자라는 걸 믿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아마도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이었을수도 있다. 소설가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인지도. 

 

 

그런 그가 처음으로 사랑에 눈을 떴다. 내 것이었으면 하는 사람, 서영재를.

서영재는 아직 젊지만 여러번 문학상을 받은 촉망받는 신예 작가이기도 하다. 주로 소설 속에서 누군가를 많이 죽이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런 예쁜 작가를 마음에 품었다. 그가 가는 곳엔 언제나 아내의 환영이 보였다. 사랑하지 않는 아내였지만, 아내를 위해 냅킨을 깔고 물잔을 놓는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는 수현이다. 영재를 만나 사랑하면서 수현은 자신의 아내를 조금쯤은 이해를 하고 보내고 있었다.

 

몰라. 그냥 좋아. 처음으로 내 것이었으면 하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가졌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 또 그렇게 나를 가졌으면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기까지 사십육년 걸렸다.  (124페이지)

 『너를 봤어』라는 제목은 소설속에서 수현이 차기작으로 정해놓은 제목이다.

또한 서영재와 윤도하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다. 제목에서의 너는 수현이 바라 보는 영재의 모습이다. 김려령 작가는 서영재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 같았다. 집필 과정이나 원고를 썼다가 버리는 습관도 닮았다 했다.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하는 것들, 작가는 밥을 먹듯이 글을 썼다 했다. 밥을 먹듯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은 것도 같다.

 

저수지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 도하랑 영재랑, 또는 영재랑 수현이랑.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조금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발칙하다. 그들의 시선이 얽히는 곳, 저수지의 물결과 그 끝이 왠지 아련하다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3.07.02. 신고 공감 7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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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차갑고 더럽고 무거운 물속으로...
"【너를 봤어】차갑고 더럽고 무거운 물속으로..." 내용보기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마음이 될 줄은 몰랐다. 이미 다른 이웃님의 리뷰를 읽었기에 대충 어떤 내용이구나 하는 감은 있었지만 이건 그런 단순한 감을 빗나가 버렸다. 어떤 비극적 상황에도 심하게 공감할 수 있는 밤이라는 시간에 읽었어야 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한 남자의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눈물이 왈칵 솟을 줄은 몰랐기에, 출근길 전철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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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마음이 될 줄은 몰랐다. 이미 다른 이웃님의 리뷰를 읽었기에 대충 어떤 내용이구나 하는 감은 있었지만 이건 그런 단순한 감을 빗나가 버렸다. 어떤 비극적 상황에도 심하게 공감할 수 있는 밤이라는 시간에 읽었어야 했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한 남자의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눈물이 왈칵 솟을 줄은 몰랐기에, 출근길 전철안에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나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 두 페이지 사이에 확 몰려드는 허무함, 안타까움, 허탈함, 원망과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이해가 한꺼번에 내 맘속에 몰아 친다

 

어려서부터 늘 3자이고 싶어했던 수현의 시선 속에는 분명히 를 그냥 두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늘 조용했기에 누구도 그가 다른 사람의 생을, 그것도 자신의 가족의 생을 끊어 버릴만큼 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그렇게 조용히 존재하며,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패륜을 저지르고, 정말 나중에 자신이 최종 심판자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는 수현, 그는 이제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형을 심판한다. 늘 그렇듯이 조용히, 아무일 없듯이 말이다.

어려서부터 잘못 연결된 고리는 폭력에 폭력을 부른다. 아버지는 형을 때리고, 형은 그를 때린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작은 아들이 죽음의 길로 몰아 넣고, 다시 살아 나오려는 아버지를 형이 마무리한다. 하지만 큰 아들에게 피를 빨리는 어머니의 고통은 미처 몰랐다. 남편과 맏아들의 죽음 뒤에야 찾아오는 삶의 평온함. 하지만 그가 밉다. 이왕 어머니에게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면 좀 더 시간을 연장해서 함께 하는 시간도 주었어야 했다. 누구 하나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이 상황을 어쩌면 좋을 것인가.

나이 마흔의 중반에 들어서야 사랑을 발견하는 남자, 그냥 결혼이라는 허울이 필요했던 여자와 가정이라는 안식이 필요했던 남자였지만 처음부터 사랑을 배제한 생활은 절대로 정상적이지 않았다. 거짓을 뒤집어 쓰고 자신의 존재감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아내마저도 자신이 선택한 죽음에 이르렀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삶에 영재’, 그녀만이 그에게 삶이고, 사랑이고, 살아야 할 이유였다.

 

처음부터 도하와 영재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온전히 영위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이다. 그랬기에 그들이 서로 눈치채지 못하는 그들의 사랑을 예쁘게 바라보며 자신을 사랑하는 영재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질투하지 않고, 떨어뜨리려 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작품을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영재에게 상처를 준 자신을 스스로 조용히 세상에서 제거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두려움도 없이 미련도 없이

다른 사람을, 그것도 가족을 죽음으로 넣어 봤기에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리 초연할 수 있는 것일까? 그가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때는 이미 자신의 죽음까지도 준비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이 시작한 죽음의 의식에서 드디어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혼자 남은 사람이 상처받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다 내놓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따뜻한 손길이 그저 그리웠을 그가 한번쯤은 어머니의 따스한 밥상을 한 번 받아봤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까? 아내에게서 받지 못한 밥상, 그리고 사랑하지만 따스할지라도 음식자체가 맛 있지는 않았을 영재의 그 밥상이 그에게는 기꺼운 것이었을까? 적어도 죽어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도하와 영재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미련이 없는 것인가?

 

P48 그녀들보다 영재가 왜 더 좋은지는 알 수 없다. 그녀들에게는 내 마음이 그냥 가지 않은 것처럼 영재에게는 그냥 가는 것이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해로울 게 빤한 담배를 물고 있어도 불을 붙여주는, 절실하고 미련한차에 함께 있는 모습을 누가 보아도 좋았다. 다시 과장된 염문이 퍼져도 이제는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 테니. 그 쓸쓸하고 터무니없는 상상마저 좋았다.

P64 집에는 늘 이길 원하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의 첫 자살시도를 막은 건 그런 죽음이 곁에서 벌어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까다로운 작가에게도 직업적 친절을 보여야 하는 편집자의 자세, 그것으로 아내를 살렸다.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을 안 아내가 끝내 목숨을 버렸다. 많은 사람이 요절한 아내를 애도하고 아내를 잃은 나를 위로한다. 나도 아내를 애도한다. 그러나 사랑은 아니다. 목숨으로 흥정하는 사랑은 죽어서도 그것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흥정이 아닌 삶의 모습으로 얻는 것이다.

P201 그런 영재를 도하가 안는다. 나 살았을 때 내 직관이 말한 모습. 어쩌면 나는 저 모습을 그때 미리 보았나 보다. 영재 곁에 있지만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떠난 자리에 도하가 있어주길 바랐다. 결국 이제 둘은 완벽한 하나가 되어 나타났다. 내가 영재에게 도하를 주고 왔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내가 도하를 덜 질투할 수 있을까. 후후후. 내가 하고 온 것이 사랑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 때나 달려가고 싶고, 그렇게 내게로 왔으면 좋겠고, 지금도 간절히 그러하다는 것뿐.

 

에필로그를 통해 그 남자 수현의 시선을 보여주어 그나마 작가님께 감사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또 그 남자 수현의 상처로 가슴이 아프고, 그렇게 조용한 걸음으로 사라져 버린 그의 자취에 가슴이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남자 수현에게는 다행이다. 정말 사랑을 시작하기에는 안타까운 그 짧은 시간에, 시작한 모든 것을 내어 주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그도 온전히 영재를 사랑했고, 그 여자 영재도 그 남자 수현을 온전히 사랑해 주었으니 말이다.

 

e*******e 2014.05.10. 신고 공감 6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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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핵심을 돌파하는 진정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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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수현’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공히 인정받는 중견 소설가이자 유수한 출판사의 편집자이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그에겐 지옥과도 같은 과거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내는 주위의 모든 이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섬뜩한 차가움을 가졌다. 그녀는 오로지 수현의 애정만을 갈구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수현은 아내를 은연중에 자살로 내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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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정수현’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공히 인정받는 중견 소설가이자 유수한 출판사의 편집자이다.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그에겐 지옥과도 같은 과거들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내는 주위의 모든 이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섬뜩한 차가움을 가졌다. 그녀는 오로지 수현의 애정만을 갈구하지만 그것을 몰랐던 수현은 아내를 은연중에 자살로 내몬다. 또한 수현은 어릴 적 극심한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의문사에 일조한다.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자기 안의 괴물을 품은 수현에겐 아버지의 폭력을 대물림해서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형과, 수현과 아내에게 끊임없이 돈을 뜯어내려 하는 치욕스러운 어머니만이 남아 있다.

너 그렇게 자랐구나. 영재가 할머니 벽장에 숨은 것처럼 나는 개천 상류 숲에 숨었다. 하늘도 맑고 바람도 좋은데 나는 늘 왜 아픈지, 너럭바위에 누워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그곳만큼 나를 잘 숨겨주고 편하게 해주는 데가 없었다. 너럭바위를 돌절구 삼아 벌레와 나비를 찧으며, 오늘은 얼마큼 맞았나, 사람은 몇번을 찧어야 이렇게 가루가 될까, 사람도 송충이처럼 툭 터뜨릴 수 있을까 하는 상상으로 나를 다독였다. (118면)

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가족과의 끈질긴 악연과 자신의 이중성으로 나락에 빠져들게 되는 수현에게 어느날 마주한 후배 작가 ‘서영재’의 존재는 유일한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뜨겁고도 발랄하고 애틋한 수현과 영재의 사랑은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다. 작가가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끝내 버릴 수 없는, 그러면 안되는 사랑, 그것으로 이제 독자를 만난다”(작가의 말)고 말한 것처럼 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사랑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작품의 또하나 중요한 특장은 ‘수위가 세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도 소설에 깊게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이야기에 당위성을 불어넣는 한편 작가의 깊은 사유를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한번도 진심어린 애정을 경험해보지 못한 수현이 영재와 뜨겁게 사랑하면서 나누는 성애의 묘사는 아름다운 사랑에 행복해하면서도 생의 끝으로 달려가야 하는 수현의 절절한 심정을 공감하게 해준다.
몇 차례 등장하는 돌연한 폭력의 장면들은 숨 막힐 듯 팽팽한 긴장감과 잔혹한 충격을 전하는데, 이는 예술을 향유하면서 안락한 일상을 누리는 우리네 세속적인 삶 바로 한 꺼풀 아래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극단적인 폭력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폭력의 시퀀스는 가정 내에서조차 회복할 수 없는 갈등을 야기하는 하층 계급의 비참한 현실이나 철저한 자본의 논리 속에 망가져가는 현대인의 삶의 또다른 모습인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8 2016.09.22.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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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랑과 늑대의 용기가 다 필요한 엄마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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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읽은 작가의 책 <완득이>와 <가시고백>에서 솜사탕처럼 가벼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책은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섬뜩하다. 등장인물들의 재기발랄한 대화는 여전한데도 전체적으로 어둡고 괴기스러운 이 기분은 뭘까. 어두운 과거를 딛고 살아가려는 정수현에게 끝까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작가의 모진 마음이 책 전반에 드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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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색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읽은 작가의 책 <완득이>와 <가시고백>에서 솜사탕처럼 가벼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책은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섬뜩하다. 등장인물들의 재기발랄한 대화는 여전한데도 전체적으로 어둡고 괴기스러운 이 기분은 뭘까. 어두운 과거를 딛고 살아가려는 정수현에게 끝까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작가의 모진 마음이 책 전반에 드리워졌기 때문일까. 이렇게 음산한 기운을 낼 수 있는 작가라니. 작가의 명성이 가볍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선택할 수 없었던 탄생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휘감아버린다면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정수현과 그의 아내 유지연은 성공한 작가들이다. 남들이 보기에 괜찮을 부부의 인연 같은데 둘의 사이는 냉랭하기만 하다. 둘은 모두 간신히 개천을 벗어난 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지연은 과거와 연결된 모든 것은 작은 것이라도 혐오하고 무시하길 반복한다. 이런 지연에게 정을 느낄 수 없었던 수현은 일 속으로 숨어드니 둘의 사이는 겉치레에 불과했다.


보기엔 꽃중년 같은 수현이지만 그에겐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아픈 과거가 있다. 그 과거를 떨쳐버리고 싶지만 오히려 발목을 잡히고 만다. 그가 46년 만에 처음 느꼈다고 말하고 싶은 서영재와의 짧은 사랑이 이 책의 주제다.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호감이 생기고, 좋은 것은 먼저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고 언제든 보고 싶다는 감정이 드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수현은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 행복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하는 수현의 처지가 끔찍하다.


역시 이 소설에서도 나는 어머니의 역할을 보았다. 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견디고, 자식의 폭력까지 견디는 어머니의 인내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남편을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그것 때문에 일생동안 남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들의 입장이 수현이다. 큰아들은 이런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며 어머니를 갉아먹고 산다. 어머니는 남편과 큰아들에게 갉아 먹히면서 그 자신은 또 다른 아들을 착취한다. 남편과 두 아들을 먼저 보낸 뒤에 홀로 남은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떨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현실은 이야기보다 더 이야기 같다고 했으니 이런 어머니도 있을 것 같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신과 같은 사랑뿐만이 아니라 아이를 지켜낼 용기와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중년의 나이에 아내보다 늦게 만난 첫사랑으로 인해 행복했던 수현이 그 짧은 사랑도 제대로 다 누려보지 못하고 떠난 이야기여서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번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 쓰고 싶은 내용을 썼다는 느낌이 든다. 삶은 참 여러 가지의 가면을 들고 기다리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t******e 2014.01.04. 신고 공감 4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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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구입했다. 어른이 읽어도 가슴 뭉클한 청소년 문학을 누구보다 잘 쓴다고 표현해도 좋을까? 독자 입장에서 김려령 작가의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어 1석 2조 같은 책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까 기대를 많이 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이번에는 청소년 문학은 아니구나 싶었다. 작가의 역량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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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구입했다. 어른이 읽어도 가슴 뭉클한 청소년 문학을 누구보다 잘 쓴다고 표현해도 좋을까? 독자 입장에서 김려령 작가의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어 1석 2조 같은 책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을 가지고,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까 기대를 많이 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이번에는 청소년 문학은 아니구나 싶었다. 작가의 역량을 한 분야로 한정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다소 의외였다. 19금 까지는 아니더라도, 김려령 작가도 이런 내용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싶어서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아쉽다고나 할까?

 

이 책의 화자는 작가이자 편집자인 정수현.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적당히 책도 팔리고, 이름도 날리고, 직장도 갖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삶과는 다르게 그의 유년시절은, 그리고 현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내는 주변을 섬뜩하게 만드는 차가운 마음의 소유자이면서 수현의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수현은 그런 아내를 조금도 사랑할 수 없었고, 은연중에 아내를 자살로 내 몬다. 수현은 화려한 현재와는 다르게 말 할 수없는 유년의 과거가 있었다. 술을 먹으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비가 오는 날 술을 핑계 삼아 죽음으로 내모는 의문의 행동을 했다.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수현에게는 폭력이 대물림 되어 의연 중에 잔인함을 내 보인다. 그런 그에게 사랑하는 후배가 나타나고 그는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게 될까?

 

이 책을 읽고 생각했다. 사랑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남녀의 사랑도 있지만 가족의 사랑도 있고, 선후배의 의리 같은 사랑도 있고, 친구간의 사랑도 있다. 남녀 간의 사랑으로만 좁게 해석한다면 모를까 우정이든 의리든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그 바탕은 결코 끈끈하지 못할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사랑은 눈에 보이고 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글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랑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마음 안에서 뒹글고, 자라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폭력이 또 다른 사랑의 이름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폭력에 노출 되어 있던 사람은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거절을 당하면 순간 불안해져 폭력을 휘두른다.

 

뭐 하나 되는 놈 있다 싶으면 지가 그놈인 양 설치고, 골수까지 빨아먹고도 더 빨아먹을 거 없나 군침 흘리는 게 가족이야. (28) 가족은 어디나 따스하고, 결국은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가정은 얼마나 될까? 실제로는 남보다 못하고, 있는 것조차 화가되는 가족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래도 가족이니까... 이런 말 아닐까? 조금이라도 잘 된 자식에게 “여자는 골라도 어머니는 못 고른다고 했어. 발에 채는 게 여자라도 어머니는 하나라고.” (51), 죽어도 벗어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가족이라는 관계 (115) 하면서 돈을 뜯어가고 싶은 사람이 부모라니... 그에게 사랑은 폭력 아니었을까? 힘을 얻고, 누군가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자리에 앉은 후엔 그도 똑같이 그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 그래서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을 폭력이란 수단으로 표현했던 주인공의 인생이 아련하고 씁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이 또 하나 있다. 주인공 화자가 작가여서 일까? 소위 잘 나가는 작가, 많이 팔린 책을 가진 작가라는 사람들도 글에 대한 고민을 하다니... “그럼 어떻게 써야 할까요?” (81) 나 같은 창작의 ‘창’자를 모르는 사람도 리뷰를 쓰기 위해서 고민한다. 나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고 나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 글이 나의 삶은 아니어도, 왠지 내 삶을 표현하는 것 같고, 내 생각이 맞는 것인지 수없이 되묻기도 한다. 과연 잘 쓰는 방법이라는 게 따로 있을까? 과연 잘 사는 방법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그런 방법이 있다면 나도 배우고 싶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더니 그건 참 나쁘고 그건 참 좋습디다. 그러니 당신들은 그렇게 하십시오. 이게 과연 올바른 지침일까? 모르겠다. 글로 웃고, 글로 울고, 글로 아파하다보니 그새 시간이 흘러 내가 했던 질문을 이제 내가 받는 자리에 서 있다. (81)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늘 묻고 싶었다. 뭔가 극적인 삶을 살았다면, 글 쓰는데 보다 나은 소재가 있었을까?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은 소재 자체가 식상하고, 획기적일 일이 별로 없을까?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과 폭력을 쓰는 남자. 언뜻 잘못 만난 사랑의 작대기 같다. 그렇게 만나서는 안 될 것 같은 조합이지만, 이 세상은 참 웃긴 게... 안 될 것 같은 조합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람도 많다. 배웠다는 것, 그리고 성공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의 인격이 그와 함께 비례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화자, 정수현. 그는 너를 봤기에 그런 폭력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았겠지.. 그리고 끊고 싶었을 거야. 너를 사랑했으니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3.06.30. 신고 공감 4 댓글 20
리뷰 총점 종이책
너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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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작가의 소설, <너를 봤어>. 책장을 덮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팠지만 실제처럼 느끼며 공감할 수 없어 아쉬웠달까. 나와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며 빠져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냥 그렇게 동떨어진 세계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문체나 스토리는 좋았으나 상황 설정이 너무 정말 소설 같았달까. 주인공이 어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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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려령 작가의 소설, <너를 봤어>. 책장을 덮고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팠지만 실제처럼 느끼며 공감할 수 없어 아쉬웠달까. 나와 전혀 다른 이야기임에도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며 빠져드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냥 그렇게 동떨어진 세계로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문체나 스토리는 좋았으나 상황 설정이 너무 정말 소설 같았달까. 주인공이 어쩌면 너무 정형화된 캐릭터로 존재했던 건 아닐까 싶다. 문단에서 성공을 거둔 소설가, 그러나 가정 폭력과 살인 등의 숨겨진 어두운 가족사와 여전히 그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어머니, 사랑없이 결혼한 아내와의 생활과 그녀의 자살.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후배 소설가 영재와의 첫 눈에 반한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을 지키기에는 어쩌면 너무 불완전하고 두려웠던 수현.

 

  어두운 유년 시절의 결핍과 죄책감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끝내 그 사람을 쫓아다닌다. 수현은 그 극단적인 예가 아니었을까.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녀와 결혼했던 건 자신이 내내 시달리고 괴로워했던 그 결핍을 그녀에게서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또 그래서 그녀를 보기 싫어했을 테고.

 

  무엇보다 나로서는 도하와 영재의 관계가 사실 이해하기 조금 어려웠다. 아끼는 사람을 맡겨두고 간 수현도, 선배의 여자였던 영재와 선배를 추억하며 함께 하는 도하도. 갑자기 최근 읽었던 박범신 작가의 <소소한 풍경>이 문득 떠오르며, 이들의 관계도 어쩌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지도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수현으로서는 그것이 그가 사랑하던 여자와 자신을 지켜낼 마지막 방법이었을까.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는 것이 제발 사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사랑하는 남자가 아닌 사랑했던 남자가 되고 싶다고 한계를 지으면서도 막상 그녀의 작은 거절에도 무차별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남자가 되어버렸던 것일까. 결국은 자신이 혐오하던 가족의 모습을 자신에게서 발견하고선 그런 자신이 두려워 자신과 영재를 지켜내기 위해 세상에서 사라짐을 선택한 수현. 그것이야말로 그가 선택한 최선의 진정한 사랑이었을까.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워졌던 <너를 봤어>.

 

  책을 다 보고 나니 표지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 안 어딘가에서 수현이 누군가를 여전히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k*****u 2014.06.29. 신고 공감 3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