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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신의 권위와 권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종교는 늘 위기였다. 신과 종교는 박해 받는 근거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박해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사랑과 포용을 주장하는 종교임에도 사람을 통해, 사람에 의해 전파되는 신의 말씀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종교는 전 지구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 3대 종교로 통칭되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가 그렇다. 이들 종교 중에서 기독교는 자신들의 경전에 나온 말씀을 스스로 증명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 모든 종교가 그렇겠지만, 십수명의 신도에서 세계 3대 종교로 성장한 기독교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을 듯하다. 버트 어만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는 기독교가 중세를 거쳐 전 세계 1/3을 지배할 수 있었던 시작에 대해 분석한다. 다양한 자료와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을 논박하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요점은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가 되었던 데는 신의 권능이나 기적은 필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비과학적인 부분에 대한 논쟁은 거부한 채 과거의 기록과 시대상황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기독교의 성장을 분석한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한복음 20장 29절)”고 한 말에 대해 저자는(역사학자들은) 복을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적에 대해서 “역사학자가 명확하고 단호하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말은,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어왔다는 정도다.(p.154)”라며 명확히 선을 긋는다.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다신교 사회에서 유일신 사상은 별세계의 이야기임은 저자가 누누이 말한다. 당시 로마 사회는 다신교 사회이며, 종교에 대해서 매우 개방적이 포용적인 사회였다. 다신교 사상은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 현재 우리가 일신교 사상에 익숙하듯, 그들은 다신교 사상에 익숙했다. 기독교는 여기에 역행하는 종교다. 배타적이다. 게다가 “종교는 통치 체제와 사회 질서, 매일의 삶과 통합되고 촘촘히 엮인, 삶의 일부였다. (p.220)” “신들이 제국을, 도시를, 가족을, 그리고 개개인을 떠받쳐주었다. (p.221)” 그런데 어떻게 이런 토양에서 배타적인 기독교가 주도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된 걸까. 저자는 “전도 성향과 배타성의 조합은 결국 기독교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작용(p.267)”했다고 말한다.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일신주의다. 하나님외에 다른 신은 인정하지 않는다. 즉 기존의 컬트 종교(다신교주의, 이교)는 각자의 신들이 공존했지만, 기독교는 공존하지 않는다. 개종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전도를 통해 개종자가 늘어날수록 기독교도는 늘어나지만, 이교도의 수는 점차 줄어 든다. 기독교도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장악하는 데는 신의 기적이 필요하지 않았다.(p.373~374)” 꾸준히 자신들의 성서와 교리에 따라 강권하기만 하면 되었다. 신도가 가족, 친구, 친척, 이웃 등 한 영혼만 구원해도 충분했다. 기독교는 그렇게 로마를 지배했다. 서양을 지배했고, 서양은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양 세계의 승리는 결국 기독교 문화의 승리다. 기독교 문화는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영향력 아래에 꽃피운 현대문명은 기독교의 배타성이 남긴 상처를 공유한다. 저자의 말대로 기독교가 로마를 지배하면서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방대하고 풍성한 종교적 표현의 다양성(p,608)” 즉 관용이다. 우리 역시 근대화, 합리성이라는 명목하에 우리의 전통은 미신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잊을 것을 강요 받았다. 때때로 기독교는 여전히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음 역시 마찬가지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보기에 달렸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패자들의 다양성과 관용은 영원히 기억하지 못할테다. --------------------------------------------------- 아놀드가 보기에 현대의 배운 자들은 더 이상 종교가 주는 위안을, 전능하고 사랑 넘치는 신의 존재와 길 잃은 자들을 구하고자 이 땅에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이 주는 구원을 누리지 못한다. 기독교 신앙이 물러가고 생긴 빈자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혼란스럽고 질서 없는 공허함뿐이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은 다른 사람들, 생의 불확실과 고통과 불안을 함께 짊어질 수 있는,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존재로 간신히 일부만 메워질 뿐이다. p.8 다른 어떤 위대한 종교도 로마 제국을 장악하고 서구의 지배적 종교가 되지 못했다. 지배적인 종교가 된 것은 기독교였고, 일단 그렇게 된 다음에도 지배 이데올로기 대신 사랑과 봉사 이데올로기를 설파한 것도 기독교였다. 이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구 세계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 p.16 모든 승리는 패배이기도 하며, 패한 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이긴 자들이 느끼는 환희와 맞먹는다. p.28 우리가 살펴볼 인물은 고귀하신 황제(콘스탄티누스 대제) 그리고 핍박받은 궁핍한 노동자(사도 바울), 두 사람이다. 이들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개종자들이다. 하지만 후자가 없었더라면 이 역사는 결코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p.87 넓은 의미로 말해서, 같은 종교를 믿는 무리를 향한 종교적 폭력이 가장 끔찍한 법이다. p.98 예수는 구세주는 구세주이되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구세주였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되살림으로써, 그의 죽음이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훨씬 큰 구원을 가져다줬음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외세의 탄압에 시달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들을 영생으로 인도해주려고 온 것이었다. 이것이 가장 초창기의 기독교도들이 주장한 메시지다. p.107 어떤 용어를 사용하건 바울이 한 경험은 고도의 자각을 불러왔다는 면에서 더없이 경이로운, 아주 획기적인 변화였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이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임무를 맡겼다. 바울에게 이는 조금 남다른 직업 선택의 수준이 아니었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바울의 사명은 먼 옛날 선지자들이 다가올 하나님의 왕국을 고대하며 예언한 것이었다. 이제 바울은 세상의 역사를 예정된 정점으로 데려가는 임무를 맡은 셈이었다. p.125 역사 연구의 원칙과 역사가들이 사용하는 도구의 성질을 봤을 때, 어떤 역사학자라도 결코 위에 나열한 사건들이 ‘어쩌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고 믿을 테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그 논쟁에 끼어들 수 없다.(신학자라면 시도는 해볼 수 있다.) 역사학자가 명확하고 단호하며 양심의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말은,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어왔다는 정도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기적을 직접 봐서가 아니라 기적에 대해 얘기를 듣고서 믿었다. p.154 바울은 그저 기독교사 초기 몇 년, 혹은 기원 후 첫 번째 세기, 혹은 초대 교회의 역사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기독교 개종자라는 주장 말이다. 심지어 바울이 없었으면 우리가 아는 기독교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p.156) 있다. p.157 신(들) 그리고 신을 숭배하기 위해 행하는 정해진 의식들에 관하여 다른 것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일단의 신학적 관점들이 반영된, 통일성을 갖는 일련의 사고방식과 신념, 관행(p.168)체계를 종교라 정의한다면, 이른바 이교 종교라 하는 것들 중 어느 것도 그 범주에 들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로마 제국 전역에 퍼진 종교적 관습의 총체를 하나의 통일된 객체로 묶어 종교라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p.167 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정리하는 데 신화가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의 종교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보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전통적인 신화들은 대부분의 고대 종교 관습에서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위대한 문학작품 속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보통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그냥 대단한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졌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은 그런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강조했다. 신화는 과거에 일어난 일의 기록이 아니라 유쾌하고 항상 재미를 주는 이야기, 잘해봐야 아주 교훈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화는 상당수의 고대 문학이나 연극, 미술 작품의 바탕이 됐지만 유(p.170)대교 성경이나 신약의 복음서처럼 고대 종교의 ‘신학적 기본’이 되지는 않았다. p.171 이교 종교들은 거의 전적으로 재의를 중심으로 한 종교, 즉 신도들의 행위, 신들에게 응당 바칠 것을 바치는 행위가 가장 중요한 종교였다. 신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지를 머릿속에서 믿는 대신, 경외와 헌신을 겉으로 드러내는 의식 행위가 주를 이루는 종교였다. p.171 다신주의의 이런 개방성 때문에, 사실상 ‘개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새로운 신을 숭배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됐고, 지금까지 해온 숭배를 그만둬야 한다거나 새로운 신에게만 전적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기대도 없었다. 유대교의 세계 밖에서는, 종교적 배타성(오직 하나의 신만 섬겨야 한다는 신조)은 사실상 아무도 모르는 개념이었다. p.175 모든 이도교는 여러 명의 신을 섬겼고, 그 신들은 가진 권능이 절대적이건 상대적이건 각자의 위대함으로 숭앙받았다. p.178 ‘컬트cult’라는 단어 자체가 ‘신들에게의 보살핌’을 뜻하는 라틴어구 쿨루스 데오룸 cultus deorum에서 왔다. 컬트 의식이란 신을 경외해서 혹은 신을 숭상하려고 행하는 모든 제식화된 관행이다. 이교 종교들은 그 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교리와 윤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p.179 대략적으로 이교 종교에서 세 종류의 활동이 있었다. 제물 희생 의식, 기도 의식 그리고 점치였다. p.180 고대 로마인들도 그 비슷한, 일곱 글자로 이루어진 의미심장한 축약문을 사용했다. ‘n.f.f.n.s.n.c.’ 풀어쓰면 non fui; fui; non sum; non curo인데 ‘나는 없다가, 있었고, 이제 없으며,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의미는 분명하다. 태어나(p.184)기 전에는 존재가 없었다.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존재한다. 그러다 죽음 후에는 다시 존재가 없어진다. 그래서 그 사람은 슬퍼할 수조차 없다. 그 대신 두려워할 것도 없다. 태어나기 전에도 괴로워하지 않았듯, 죽은 뒤에도 괴로워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다. p.185 신의 분노는 거의 항상 인간이 책임을 등한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신들(아니면 적어도 그중 한 명)이 제대로 혹은 충분히 경외 받거나 숭배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한 핵심 논리였다. 이 신앙심 없는 무리가 신들을 숭배하기를 거부한 대가로 모두가 지옥을 맛보게 되리라고 본 것이다. p.186 모라 제국이 몹시 관용적이었지만 무한히 그러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만약 어떤 종교 의식이 물리적 해를 끼치거나 전염성 강한 사회적 문젯거리를 만들어내는 등 사회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판단 될 경우 당국은 제재에 나서기도 했다. p.193 현대의 기준으로 아무리 고대 로마의 종교가 놀랍도록 다양하고 관용적이었다 해도 아무 제한도 없이 그렇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한계선은 분명 있었다. 그 선은 용납 가능한 사회 규범으로 정해졌다. 타락과 범죄행위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극단의 처벌이 따를 수 있었다. p.196 비교적 구시대적 시각은 마법이 신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라면 종교는 겸허하게 탄원하는 것이라(p.197)는 식이었다. 또한 마법은 더움의 힘들을 조종하는 반면 종교는 빛의 힘에 순종한다고 봤다. 그러나 20세기 하반기에 학자들은 마법적이라고 할 만한 행위와 종교적이라고 할 만한 행위 사이에 명확하고 확정적인 선을 긋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법도 많은 경우 종교와 똑같은 기법을 사용하며, 종교와 똑같은 목적을 추구한다. p.198 종교는 국가의 곳곳에 스며 있었고, 삶의 구석구석에도 스며 있었다. 사실상 어디에나 있는 존재였다. p.204 종교는 통치 체제와 사회 질서, 매일의 삶과 통합되고 촘촘히 엮인, 삶의 일부였다. p.220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방식에 따라 신들을 올바로 숭배하는 것이 국가의 순조로운 운영에, 그리고 그 국가에서 사는 백성들의 성공과 번영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제국 전역에 걸쳐 암묵적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신들이 제국을, 도시를, 가족을, 그리고 개개인을 떠받쳐주었다. p.221 그런 환경에서 기독교가 부상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 연구자들이 해답을 찾으려 애쓴 주요 의문점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그토록 색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가 싹트고, 자라고, 번성할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기독교도들은 국가와 도시와 가정이 섬기는 신들에 반대했다. 그들은 다수의 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황제가 신이라는 주장도 거부했다. 자기들과 다른 형태로 이루어지는 숭배의 타당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통적인 신들이 인간에게 이득을 준다는 것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전통적인 신들이 인간이 아는 세계의 사실상 모두를 속인 사탄이라고 믿었다. p.222 초기 기독교에게 승인받았다고 봐도 좋을 형태의 기독교에서, 개종은 ‘이것도 저곳도 다’가 아닌 ‘이것 아니면 저것’의 종교였다. 기독교도(적어도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부류의 기독교도)들은 자기네 종교가 추가적인 종교가 아니라 제한적 종교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기독교의 전파에 결정적으로 중요했던 건 바로 이 차이였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지론을 받아들였고, 이는 결국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지배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p.232 새로운 종교적 신념과 제의를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 잠재적 개종자라면 신의 영역에 대해, 그리고 신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지에 대해 이미 여러 가지 추정을 하고 있을 텐데, 새 종교는 그런 추정에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추지 않고서는 상대를 개종시킬 가망이 없다. 만약 기독교가 철저히 생소한 종교였다면 아무도 그것을 개념화할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매력이 없는 종교 정도가 아니라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종교로 비쳤을 것이다. 이교도를 개종시키기 위해 기독교도들은 그들과 공통의 기반을 다져야 했다. 나아가 유의미한 접촉이 이루어진 지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우월성을 보여줘야 했다. p.233 로마 제국에서 점점 커진 택일신주의의 인기가 사실 신은 하나뿐이며 그분만 숭배해야 한다는 기독교 선언의 길을 닦아줬다고 본다. p.236 기독교가 널리 퍼진 한 가지 이유는 기독교가 이런 식의 활동이 이루어진 유일한 종교여서였다. 이 말은 곧 다른 종교들은 전도를 하지 않았고 배타적이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p.255) ... 기독교는 성장하는 동시에 이교주의를 말살해갔다. p.256 기독교는 달랐다. 기독교의 신은 보통 숭배할 여러 신 가운데 하나로 선택되지 않았다. 이 경우 선택은 배타적이었다. 하나를 특별히 택하는 것은 다른 모두를 저버리는 선택이었다. 농어를 먹기로 했으면 농어만 먹는 식이었다. 대부분의 이교도가 생각하기에 기독교는 딱 그만큼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p.257 전도 성향과 배타성의 조합은 결국 기독교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p.267 기독교는 성장하면서 필연적으로 다른 종교들을 파괴했고 로마 제국에서 그렇게 한 유일한 종교였다. p.270 기독교를 로마 제국을 통틀어 모든 이교 종교와 구분 지어준 또 다른 특징은, 그전까지는 항상 종교와 별개로 치부되었던 삶의 모든 면을 아울러 지배했다는 것이다. ... 이교의 종교들의 경우 숭배 의식 자체가 곧 종교였다. 그러나 기독교의 경우에는 ...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관계되는 종교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교였다는 말이다. / 그 결과 기독교도들은 자기네 종교를 하나의 응집된 시스템으로 개념화하는 바람에 기독교 밖에 있는 모든 것을 기독교와 경쟁하는 응집된 시스템이라고 보기 시작했다. p.271 기독교도들이 전통적인 이교 종교를 따른 이들과 구분되는 부분은 남들을 자기네 하나님을 섬기도록 개종시키려는 의지와, 적어도 그들 중 일부에 한해서는 그리고자(p.277) 하는 열정, 일단 개종했으면 그전에 숭배하던 신들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는 고집, 또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헌신에는 종교 의식 말고도 윤리적 행동과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에 대한 교리에 따른 올바른 이해까지 포함된다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이교도에게 최초로 알려진 선교사인 사도 바울이 내세운 형태의 기독교였다. p.278 역사학자라면 늘 자신의 명백한 편향성을 인식해야 하는 법이다. p.294 개종자가 제 가족과 친구와 이웃, 지인들에게 자신이 믿게 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식으로, 다양한 개인 인간관계망 안에서 구전으로 기독교를 전파했다.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기독교도들이 내세운 새로운 교리도, 기독교의 숭배 의식에 관한 소문도, 심지어 기독교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다는 수많은 미덕도 아니었다. 효력을 발휘한 건 기독교의 메시지를 실증해준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권능은, 예수(p.338) 자신의 범상치 않은 생애와 선교 활동에서는 물론 그의 사도들, 또 그 제자들의 활동에서까지, 실제적이고 피부로 느껴지는 방식으로 드러났다. 하나님은 분명 역사하고 있었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기적적인 행위를 선보여 그것을 증명했다. / 물론 이렇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신앙의 기적을 실제로 목격한 이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꼭 목격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건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그리고 어쩌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믿음뿐이었다. 그들은 전문적인 웅변가가 아니었고, 그저 자신이 듣고 믿게 된 것을 전달한 평범한 이들이었다.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그것도 확신을 가지고 반복할수록 듣는 이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p.339 각각의 기독교도가 한 번에 가족의 일원 한 명, 친구 한 명, 이웃 한 명만 전도하면 충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성과는 축적되었다. 누구든 기독교인이 된다는 건 이교주의를 완전히 떠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p.340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장악하는 데는 신의 기적이 필요하(p.373)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기적이었다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역사가는 그 주장의 진위를 가릴 길이 없다. 그러나 기독교가 승리하는 데는 초자연적 힘의 개입이 굳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가 앞의 장들에서 설명한 이유들로 점점 개종하면서, 그저 꾸준한 속도로 성장하기만 하면 됐을 것이다. p.374 기독교가 불법적인 종교여서 정부 기관에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고 신도 수천 명을 순교시켜 결국 교회가 로마 카타콤(지하 묘지)으로 숨어들기에 이르렀다는 관념은 전부 객관적 역사라기보다는 할리우드의 영화적 상상에 더 가깝다. p.379 기독교도들이 (어이없게도) 자기네 신 말고 다른 어떤 신도 숭배하지 않으려 한 것이 박해의 이유였다. p.419 영생이 걸린 경주에 자의적으로 뛰어드는 것과 그것을 승인 권한으로 강제하는 것은 다르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 p.475 종교적 신념이 사법적 형벌을 특히 더 과격하고,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램지 맥멀런 p.505 맥멀런은 우리도 이미 살펴본 기독교와 전통 이교 종교들 간의 핵심적 차이를 한 가지를 더불어 강조한다. 바로 종교적 윤리의 구심성이다. 이교도가 일반적으로 기독교도보다 딱히 더 윤리적이거나 덜 윤리적이지 않았던 건 맞다. 하지만 이교 집단에서 윤리적 가르침은 존속살해 같은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종교가 아닌 철학의 영역에 속했다. 그런 이유로 이교 컬트들은 일상의 바른 행동이나 나쁜 행실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도 취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달랐다. p.505 온 세상이 이교이기를 멈추고 기독교가 된 단 한 순간, 이를테면 하나의 전환점 같은 건 없었다. 로마 제국의 주민 대부분은 자신이 중대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든가 주변에서 생사를(p.520) 가르는 싸움(이교주의의 혼을 끝장내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주민 대부분은 4세기 말까지 이교도로 살아갔다. 인구의 대다수에게는 신학적 질문과 종교적 헌신의 문제가 그렇게 압도적으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까지 쭉 거슬러 올라가 권력 집단 사이에서는 무척 중요했을지라도 말이다. p.521 배타성은 오직 하나의 특정한 종교적 신념과 숭배 의식을 따르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이 택한 길만이 진실에 닿는 유일한 길이라고 우기지 않으면서 배타적 관점과 믿음을 취해왔다. 고대 로마에서도 유대인 대부분은 자신들 일에 한해서는 배타적인 동시에 자기네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게는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p.546 불관용은 다른 문제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다른 믿으뫄 숭배 관행은 무조건 잘못되었거나 위험한 것, 혹은 둘 다로 규정하는 원칙적 거부다. 언뜻 생각하면 불관용이 엄격한 배타성의 유독 신랄한 파생가지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명백히 그렇지 않다. 단순히 로마의 이교주의 같은 비교적 포용적인 전통을 따르는 신자들도 때로는 불관용적이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p,546 기독교도들이 신성시하는 경전은 그들에게 다른 모든 종교 전통과 풍습에 반대하라고,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비신도들을 개종시키라고 명하고 있었다. 일부 기독교도는 이런 지시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선택지는 명확했다. p,568 또 다른 기독교의 고유한 특성도 불관용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바로 참된 진리를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다. p,568 영생을 얻기 위한 ‘올바른 믿음’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까닭에, 이 배타주의 종교에 잠재돼 있던 불관용성은 일찌감치 맹목적인 열정으로 불타올라, 광범위하지만 분명 일반적이지 않은 불관용 정신으로 발전했다. 잘못된 믿음은 너무나 위험해서 참아줄 수 없다는 태도였다. p,569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역사가 목격(p,588)한 가장 위대하고 강력한 제도가 될 터였다. p,589 기독교의 승리에서 소실된 것 한 가지는, 한때 이교 세계 어디에서든 발견되었던 방대하고 풍성한 종교적 표현의 다양성이었다. p,608 관용은 권장해야 하는 것이었다. 종교의 자유는 포용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조명해봤을 때 고대 이교주의의 가장 위대한 면 중 하나는 기꺼이 다양성을 수용하고 나아가 그것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광범위하게 공유된 태도였다. 그것이 기독교가 승리하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 그런데 그와 함께 종교와 윤리, 철학, 신화를 인간의 사고와 삶이라는 현실의 영역과 분리해서 취급하던 세상도 변해버렸다. 기독교가 승리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인생 전체를 몇 마디 말로 압축해버리는, 종교에 관한 ‘전체주의화’ 담론이 등장했다. 그 담론은 기독교의 제식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따르는 도덕적 계율에도 영향을 주었고, 그들이 신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도, 그들이 하나님만이 아니라 현실과 관련해서 받아들이는 관점에까지 모든 면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바꿔놓았다. 가난한 자와 약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에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들이 받아 마땅한 보살핌을 제공할 공공정책과(p,610) 제도를 마련하는 길을 활짝 터주었다. 정부의 관행과 입법 경향, 미술과 문학, 음악, 철학, 나아가 (훨씬 근본적인 수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수십억 사람들의 이해 자체에 영향을 준 대변혁이었다. 이 변화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 즉 서구 세계의 기독교화가 인류가 소중히 여길 만한 승리였든 아니면 애석해할 패배였든, 우리 세계가 경험한 가장 기념비적인 문화적 변모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p,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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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W 연구소가 추정한 2020년 현재 종교별 인구에 따르면 기독교가 24억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어서 이슬람 19억 명, 힌두교 11억 명으로 뒤를 잇는다. 무슬림의 출생률이 높고 기독교의 성장이 주춤거리고 있어 이슬람이 기독교를 앞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라는 표현이 금세기까지는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천 년 전에 열두 명의 제자로 출발한 기독교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종교를 제치고 역사의 승자에 오르게 된 메커니즘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남을 사랑하고 남에게 유익하게 행동하라고 명한다면, 게다가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는 그가 다가올 신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오직 하나다. 기독교인은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도록 종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그가 구원받고 영원한 벌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아울러 기독교인이 남을 향한 사랑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장의 당위성은 될 수 있을지언정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올라서게 된 메커니즘에 대한 답변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저자 역시 이와 같은 기독교의 당위성을 설명하자고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다. 신학에 문외한인 내가 저자가 치밀하게 논증한 메커니즘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저 알아들은 것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기독교 이전에는 다신(多神)주의였고, 다신주의에서는 새로운 신을 숭배하고 싶다고 해서 지금까지 숭배해오든 것을 그만 둘 필요가 없었다. 당시 유대교를 제외하고는 ‘자기들이 믿는 유일신 말고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 배타성’은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이 배타성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완강하고도 불관용적인 열성을 보였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끼리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지만 다른 종교의 삶의 방식에 간여하지 않는데 반해 기독교인은 전례도 없고 비교할 바도 없는 전도활동을 통해 유일신 이외의 신을 숭배하는 것을 금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그때까지 천 년이 넘도록 모든 지역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온전히 진실한 것으로 여겨온 종교들을 악하고 그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기독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종교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경쟁상대를 제거해가면서 성장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종교가 그대로 건재해 기독교가 성장해도 교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따라서 역사의 승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기독교의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교리가 몹시 불편했다. 배타성이 무례함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그것이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웠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배타성이었다니, 그 배타성이 아니었으면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니 나로서는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배타적이고 불관용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의 논증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자신은 없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저자는 예수의 가르침을 기독교라는 종교로 구체화시킨 것이 바울이라고 서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유일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바울은 자신이 구세주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구세주라는 주장이 참람하기 이를 데 없었을 뿐 아니라 구세주가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예수의 주장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끔찍하고 위험한 모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을 보고 예수가 부활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저자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것에 대한 기사를 정황으로 보아 문학적 목적으로 다듬어진 이야기로 해석한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 기적을 행한 것이고,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자임을 뜻했다. 예수가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자라면 왜 하나님은 예수가 처형당하게 내버려뒀을까? 그것도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가 당하는 십자가형으로. 바울은 그 상황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이니 그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죽은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저지를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게 틀림없다’는 당위적인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예수는 희생양이고, 그의 죽음(희생)으로 다른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혔거나 그들의 죗값을 대신 해준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의 죽음은 인류를 위해 준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을 것이다. 만약 구원이 선민의 무리에 속한다는 것으로 또는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이 택한 메시아가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을 맞아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르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과 하등 관계가 없는 게 분명했다. 만약 율법이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유대인으로 사는 것은 구원 받는데 필수적인 요구사항이 아닐 것이다. 유일한 요구사항은 예수가 베푼 희생의 속죄를 받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시 구원의 메시지가 유대인을 위한 것만이 아님을 의미했다.”
바울의 생각이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변화했다면 바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유대교를 바로잡은 것이 된다. 저자는 바울의 전기작가인 앨버트 해릴을 인용해 “바울은 유대교였다가 기독교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유대교 경전에 드러난 모든 예언의 실현이라고 깨달았다”고 언급한다. 그러니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확신한 것이고, 그것이 ‘배타적 기독교 신앙’의 뿌리가 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바탕에서 출발한 배타적 기독교는 비록 다른 종교와 공존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전파하는 방식은 위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동안 종교와 별개로 치부되었던 삶의 모든 방식까지 종교가 지배했다. 로마시대인 4세기에 기독교인은 대규모 전도집회를 연 적이 없다. 그 대신 새롭게 기독교인이 된 이들이 자신들이 믿게 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개인적인 인간관계 망 안에서 구전으로 전파했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기독교 교리도, 기독교 숭배의식도, 기독교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었던 많은 미덕도 아니었다. 기독교인이 삶을 통해서 기독교 메시지를 실증해준 것이 놀라운 효력을 발생한 것이다.
저자는 당시 교회 공동체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교회는 장소라기보다는 공동체였다. 그것도 아주 긴밀하고 핵가족만큼 유대가 단단한 공동체였다. 교회 설립자나 지도자는 아버지였고 동료 교인들은 한 대가족에 함께 속한 형제요 자매였다. 게다가 이들은 상호 애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이기를 추구했다. 사정이 어려운 구성원들을 물질적으로 돕고 교회로 찾아오는 모든 이들에게 정신적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이런 방식으로 외부인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당시 교회는 폐쇄적 공동체였고 외부인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전까지 그런 혜택이 있는 것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얼핏 위의 서술은 앞선 “기독교인이 삶을 통해서 기독교 메시지를 실증해준 것이 놀라운 효력을 발생한 것”이라는 언급과 상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인이 살아가는 모습 때문에 개종자가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기독교인으로 개종했을 경우 그들이 굳건한 믿음을 지키면서 결속력을 높이는 이유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성장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기독교가 승자로 올라서기 전의 로마제국은 경이로울 만큼 다양성을 보유한 사회였지만, 그럼에도 ‘지배(dominance)’라는 가치는 일관되게 유지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지배를 부정하는 다른 이데올로기를 설파했다는 것이다. 즉, 신 앞에 모든 사람은 동등하며 따라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결국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올라선 데에는, 비록 그것이 성장의 직접적인 동력이 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기독교인의 이와 같은 삶의 태도가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성장하던 기독교는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종하면서 집중 포화의 대상에서 묵인 받는 종교가 되고 다시 로마제국의 공식 국교의 자리에 오르면서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저자는 그때까지 로마제국은 제국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신들이고 국가는 그 신들을 숭배하는 풍습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될 수 없었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신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기독교가 차지하게 된 것이니 정교일치 형태는 자연히 그대로 지속되었다.
저자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나아가 서구세계 전체를 정복함으로서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정하는 방식마저 바꿔놓았다고 서술한다. 그 결과 근대적 감성과 가치 윤리까지도 전부 기독교 전통에 극단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를 역사의 승자로 올려놓은 메커니즘이었던 ‘배타적 불관용’은 로마제국의 통치가 이루어진 전 지역에서 기독교인들마저 경악할만한 파괴로 이어졌다. 모든 곳에서 신상을 철저하게 훼손했고, 신상을 모두 십자가로 대체했으며, 신상의 이마에 십자가를 새겼다. (지금 기독교인마저 혐오하는 극단주의자들의 다른 종교에 대한 폭력적인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마저도 뿌리가 있다는 말인가?) 더 나아가 수도사 무리가 신상을 때려 부수고 가면 기독교 주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세례를 통해 그 자리를 정화해 성지로 만들어 이를 전유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18세기에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을 인용해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로 올라선 메커니즘으로 배타적인 불관용 이외에도 영생의 교리, 초기 기독교인들이 행한 기적, 기독교의 엄격한 도덕성과 더불어 강력한 성직 체제를 꼽는다. 당시 이교도들은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생을 누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절실하게 원했으며, 이교의 기강이 해이했던데 반해 기독교는 도덕성을 엄격하게 요구했고, 이교와 다르게 그들의 신념을 전파하는데 효율적인 성직계급 체계를 확립해 월등한 조직력을 갖춘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어떻게 역사적 승자가 되었냐는 책 제목에 이끌려,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기독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준 저자의 이름에 이끌려, 기왕 저자의 책을 읽기 시작했으니 번역판으로 소개된 일곱 권 전체를 읽어보겠다는 욕심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읽고 이해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했고, 저자의 치밀한 논증을 따라가기에는 신학에 대한 내 이해가 거의 무지에 가까웠다. 그랬으니 같은 분량의 다른 책 읽는데 드는 시간의 배를 넘게 붙들고 있었으면서도 읽어가면서 숱하게 길을 잃었다. 읽었으되 읽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는 가운데 이해한 것 하나는 기독교가 역사의 승자가 된 것의 가장 큰 동력이 바로 ‘배타적 불관용’이었다는 점이다. ‘배타적 불관용’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는 함의처럼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세상과 화해할 수 없는 종교이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요 화평을 만드는 종교라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두 개념 사이의 간극이 바로 지금 내가 당면하고 있는 딜레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남은 시간 힘을 쏟아야 하는 일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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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바꿔놓았다. … 정부의 관행과 입법 경향, 미술과 문학, 음악, 철학, 나아가 (훨씬 근본적인 수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수십억 사람들의 이해 자체에 영향을 준 대변혁이었다. 이 변화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 즉 서구 세계의 기독교화가 인류가 소중히 여길 만한 승리였든 아니면 애석해할 패배였든, 우리 세계가 경험한 가장 기념비적인 문화적 변모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 중 발췌
버트 어만은 역사 속에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물리치고, 다수를 점하게 된 상황을 승리로 보는 관점을 취하지 않고 있다. 대신 역사학자로서 중립을 지키며, 기독교의 승리가 다른 종교의 상실에서 온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기독교가 폭넓게 세력을 넓혀왔지만, 인류가 잃은 것에도 주목한다. 그것은 바로 다양성의 상실이다. 기독교의 승리와 맞바꾼 것은 다신주의 세계에서 인류가 가진 자산 중 하나였던 '다름에 대한 관용'이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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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을 기독교 승리의 분수령으로 여긴다. 그의 개종 이후 길지 않은 동안에 기독교는 박해받는 비주류에서 로마 제국의 종교로 자리 잡으며 지배층은 물론 백성들도 대거 개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버트 어만은 콘스탄티누스가 개종하지 않았더라도 기독교는 성공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정치적 역학 관계에 따라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또 “당시에는 자신의 기독교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지 않는 기독교인이 무수히 많았다”고 어만은 말한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기독교 역사에서 콘스탄티누스를 넘어 가장 중요했던 개종자로 바울을 꼽는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구원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만 묶이지 않고, 모든 이방인에게 효력이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유대교를 넘어 보편 종교의 반석을 놓은 바울에게는 복음과 그것을 땅끝까지 완수할 사명이 있었다. 온 세상의 운명이 달린 사명이었다. 그 바탕에는 기독교의 뚜렷한 특징으로 꼽는 3가지, 즉 전도 성격이 강하고, 배타적이며, 삶 전반에 관여한다는 종교적 성격이 있다. 한마디로 배타적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그 배타적인 성격이 기독교의 승리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에는 종교 의식 말고도 윤리적 행동과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에 대한 교리에 따른 올바른 이해까지, 즉 기독교는 당시 이교들과는 다르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할애되는 빈틈없는 시스템이었다. 이는 바울이 내세운 종교의 형태였으며, 기독교가 왜 배타적인 성격을 띠었을까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