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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숙 소설가의 산문집이 나왔다. 소설이라는 허구가 아니라 맨 눈으로 본 작가의 세상이 드러난다. 작가가 보았던 책과 영화, 다녔던 공연장, 만났던 사람들, 어린 시절의 추억 등이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정덕미 선생의 춤 공연을 보러가서 몸으로 말하는 방언을 이해하고 작가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통곡했던 이야기가 가슴에 남든다. 또한 로댕전시회에 가서 까미유 끌로델뿐만 아니라 로댕까지 이해하게 되는 경지에 감탄했다. 작가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함께 사는 이웃과 재배한 약초를 나누눴던 아버지, 자신에게 줄 감사를 더 어려운 이에게 돌리라고 충고한 의사, 어린 시절의 잘못을 용서한 다랑논 어르신 등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가 공감한 여러 한국 작가의 책에 대한 소개도 의미 있게 읽혔다. 동료 작가의 글을 보며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감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작가의 넓고 소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밖에 유경숙 작가가 소개하는 노예 만쿠르트의 이야기, 티베트의 성자 밀레르파 이야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통한 깨달음 등은 이전 작가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지경을 가늠케 한다. 작가가 책의 5부 '내가 따를 사표'에 등장하는 토마스 머튼, 니체, 토마스 아퀴나스 등의 철학자와 어떻게 조우했는지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참마음이 통하고서야 열린다는 '줄탁동시'의 기적이 책을 읽는 내게도 열리기를 염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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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그물코에 걸리지 않기 위해 산문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마다 주목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작가와 독자의 거리를 좁혀주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다. 산문은 내용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작가의 일상적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바탕이 되니 다양한 경로로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산문집은 독자들에게 작가를 향한 관심사를 얻기에 최적의 기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책을 들고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번갈아 보는 것만으로도 내용이 짐작되는 경우가 있다. 저자와의 교류가 빈번했거나 그의 책을 많이 접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때론 그것과는 상관없이도 가능할 때가 있다. '청어남자'와 '베를린 지하철의 백수광부'로 불쑥 다가온 작가 유경숙도 여기에 해당된다.
유경숙 작가의 산문집 ‘세상, 그물코의 비밀’은 작가의 일상적 관심사가 무엇이고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살필 수 있는 기회다. 이 책에 실린 글이 시간적으로 다소 폭이 넓다는 점과 글의 소재가 작가의 구체적인 일상에서부터 출발하여 특정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관심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모정’의 아홉 편, ‘세상 그물코의 비밀’의 열 편, ‘도원을 찾아서’의 열 편, ‘책과 영화의 뒷담화’의 열여섯 편, ‘내가 따를 사표’의 아홉 편으로 총 오십 네 편의 글이 실린 이 산문집은 유경숙 작가의 전부를 담았다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자잘한 일상에서부터 얻은 삶의 교훈에서 ‘맑고 흐린 세상 탓을 하기보다 자신이 결정한 삶의 방향을 거침없이 탐색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에 그동안 접했던 소설 속에서 비롯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많은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세상사, 창랑의 물이 맑은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책을 읽어가는 내내 이 문장에 주목했던 작가의 의중이 무엇일까를 찾아보려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삶과 발 딛고 있는 현실 사이의 틈의 깊고 넓은 정도에 따라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옳다고 믿는 바를 오늘의 일상 속에서 의지대로 꾸려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틈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지혜라고 본다면 작가의 물음은 울림이 깊다.
“장미 가시가 제 꽃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었다면 탱자나무 가시는 남을 지켜주기 위해 날카로움을 지녔다.” 탱자나무 울타리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작가의 마음은 온기를 품은 탱자나무 가시 그것과 닮아 있다. 내 품에 깃들 생명들을 지켜낼 가시를 키워가는 작가의 의지가 이 산문집에 실린 글로 읽힌다. 그 가시가 품은 온기는 나를 옭아맬 세상 그물코를 풀 열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