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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땐, 등장하는 폴란드인과 유대인의 이름이 또렷이 구별되지 않고 물고 물리는 운명의 연쇄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쓰고 계보도를 그려가며 읽어 나갔다. 어느 정도 윤곽을 잡고 보니, 운명의 장난도 이런 장난이 더는 없을 듯했다. 50여 년에 걸쳐 레오 거스키를 짓누른 배신감과 죄책감의 무게는 그를 거의 장님이나 죽은 자로 만들었다. 작품을 읽으며 그려본 등장인물 계보도이다. 레오와 앨마, 레오와 브루노, 앨마의 재혼(?) 관계를 나타내 보았다. 앨마가 레오 거스키와 정식 결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작의 존재를 뚜렷하게 나타내기 위해 모디카이와 재혼한 것으로 여기고 관계도를 그린 것이다.
레오는 구원의 여인 앨마 메러민스키와 평생 함께 할 것을 맹세한다. 독일군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먼저 미국으로 망명한 앨마. 레오도 곧 뒤따라 미국에 도착했지만 앨마는 레오가 폴란드에서 죽은 줄로 알고 모디카이와 결혼한 상태였다. 뱃속엔 레오의 아이 아이작 모리츠가 자라고 있었는데도. 우여곡절 끝에 레오는 앨마와 재회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하고 만다. 이후 레오의 남은 인생은 앨마와 아이작의 주변을 맴돌며 삶을 허비하는 일 뿐이었다. 사실상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이어간 것이다.
작품엔 또 다른 앨마가 등장한다. [사랑의 역사]의 작가로 알려진 즈비 리트비노프는 실은 원작자가 아니다. 레오가 자신이 쓴 초고를 친구인 리트비노프에게 보관해달라고 맡겼는데 리트비노프는 약속을 어기고 표절하여 출간해버린 것이다. 이 책을 칠레 여행 중이었던 앨마의 아빠 다비드 싱어가 구매하여 샬럿 싱어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사랑의 역사]를 읽고 감동한 다비드 싱어와 샬럿 싱어는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에게 소설 속 주인공인 앨마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이야기는 앨마의 엄마인 샬럿 싱어에게 제이컵 마커스라는 인물이 스페인어판 [사랑의 역사]의 번역을 의뢰하면서 급진전된한다. 엄마의 번역본을 읽던 앨마는 제이컵 마커스에게 흥미를 느껴 엄마와 연결해주려고 공작을 꾸민다. 그 와중에 대서사시의 전말이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몇 번의 곡절과 우연이 겹쳐진 후 [사랑의 역사]를 지은 레오 거스키와 [사랑의 역사]에서 비롯된 이름을 지닌 앨마는 광장에서 조우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마지막 대목에서 둘 사이에 오고 간 공감과 소통과 인정의 장면은 너무 뭉클하여 나도 앨마의 등을 두 번 두드려주고 싶었다.
심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난 이렇게 오래 살아왔어. 제발, 조금 더 산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잖아. 아이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내 사랑이 어떤 소소한 방식으로 그애에게 이름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잘못된 문장을 고르게 될까봐 두려웠다. 아이가 말했다. 아버지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그 아들-나는 아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두 번 더 두드렸다. 아이가 내 손가락을 꽉 쥐었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한쪽 팔로 나를 감쌌다. 두 번 두드렸다. 아이가 양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나는 두드리기를 멈췄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나를 두 번 두드렸다. (372~373)
앨마(메러민스키)를 생각하다가,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다잡으며 자신은 이미 죽어버렸다고 여겼던 레오폴드 거스키는 앨마(싱어)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살아난다. 자신의 사랑이 세상에 남긴 이름, 앨마를 계속 부르며. 앨마에게서 앨마로 이어지는 사랑의 역사는 그렇게 레오 거스키를 복권하고 부활시킨 것이다. 역사의 격랑에 휘둘린 사랑의 역사는 이렇게 운명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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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역사 #니콜크라우스 #민은영옮김 #문학동네 잃었지만 잃지 않았고, 잊었지만 잊히지 않았고, 놓쳤지만 놓지 않았던 ... 사랑. 기억한다는 것은 뭘까? 잊혀진다는 것은,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럼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되고 싶고, 결코 잊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세 갈래의 삶의 길이 부드러운 머릿결을 곱게 땋아가듯 서로 교차되며 전개된다. 매일 생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80대 소년 레오 거스키, 그의 곁에 피부처럼 환영처럼 붙어있는 친구 브루노의 이야기가 1인칭의 고백체로. 일기를 쓰듯 소제목 안에 소제목을 붙여가며 자기 이름과 연결된 그녀의 행방을 찾아나서는 14세 소녀 앨마 싱어의 1인칭 이야기가 겹쳐지고. 평생을 짊어지고 살았을, 숨기고 묻었다가 또 다시 파헤쳐 열쇠로 닫아놓았던 종잇장들 사이로 3인칭의 즈비 리트비노프의 회한과 슬픔이 묻어나오며 세 사람의 시공간이 연이어 달려나간다. 소설은 사람과 사람을, 과거와 현재를, 그와 그녀를, 너와 나를, 책과 책 사이를 한없이 연결해나간다. 거기에 앨마의 동생 버드와 리트비노프의 아내 로사가 시선을 더하면서. 마지막 한 페이지씩 짧게 짧게 교차되는 80대 소년과 10대 소녀의 장면들은 긴장감마저. 책장에서 서로의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뛰는 발걸음이 쿵쿵 심장을 울려댔다. 기억의 옷을 입고 사는 사내의 무거운 삶을 관통한 2차대전의 아픔. 전쟁이 끝나도 그의 삶은 여전히 짙고 어둔 그리움을 드리운다. 놓쳐버린 손, 잃어버린 사랑, 그리워도 부를 수 없는 이름들. 잃어버린 사랑의 조각을 더듬는 그의 뒷모습이 슬프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 기억이 그를 살아갈 수 있게 했는지도. 무거운 기억이 그를 짓눌러도 아예 벗어던질 수 없었던 건, 그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심장을 뛸 수 있게 해주었기에. 그래서 숨쉬며 살아갈 수 있었기에. 가쁘고 힘들어도, 고통스럽고 찢겨지게 아파도. 주체를 객체화하는 전쟁의 비극은 사랑의 역사를 온몸에 아픔으로 남긴다. 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을 새긴 채. 전쟁 이후의 평생 열쇠공이었음에도, 구깃구깃 접은 지도에 온통 스스로 연 문들을 빼곡히 그려나가면서도 결코 열 수 없었던 문 하나. 그 닫힌 문 속의 여인이, 어린 아들이 내내 심장에 박혀 홀로 살아가는 사람. 오직 혼자 방 안에서 아무도 읽지 못할 글을 쓰며 홀로 살아가는 사람. 읽히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도 읽히기를 바라는. 그 마음. 그 사랑. 몇 년 전,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의 쇳소리가 챙챙 울려퍼지는 얼굴의 길이 떠올랐다. 절규하는 표정, 슬퍼하는 표정, 넋이 나간 표정, 울고 있는 표정, 곳곳에 아이의 얼굴까지. 어두운 공간, 수를 셀 수 없게 바닥 한 가득 깔린 얼굴들 위로 좁다랗고 높은 곳에 한 줄기의 빛만이 고요히 차가운 온기를 스미게 했다. 스스로 버린 것이 아닌 원치 않게 잃어버린 사람을, 사랑을, 삶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여정이 쇳소리처럼 아프게 귀에 울린다. 또한 아버지를 잃고 답을 알 수 없는 이름의 역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소녀의 여정 또한. 아파하면서도 그 아픔에 기대어 회한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목숨을 부지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었던 소년의 사랑. 겉모습이 변하고 남들에게 오해를 받더라도 여전히 그의 눈은 맑을 것만 같다. 눈앞의 소녀를 몇십 년 전의 소녀로 혼동해도, 눈물 가득 고인 그 눈동자만은 여전히 밝고 환할 것만 같다. 그 나이 든 노인을 나는 여전히 소년이라 부르고 싶다. 그 무엇도 그의 의지가 아니었기에. 여전히 그의 심장은 소년의 심장으로 생생하게 뛰고 있기에. 보통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함께 감상하곤 하는데, 이 책은 머릿속에 그려진 나만의 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2016년에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느낌 그대로 한동안 이 사랑의 역사를 내 몸과 마음에 담아두고 싶어서. 어쩌면 가장 뻔하고 가장 통속적일 수 있는 소재인 사랑. 그 사랑으로 이렇게 아름답고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그려내다니. 작품 속의 그가 온 생애를 바쳐 오롯하고 생생하게 간직한 그 사랑, 그리고 사랑의 역사를 되짚어 달려가는 그녀의 사랑. 사랑이라는 - 눈에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 감정의 역사가 책 한 권으로 이어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텍스트만으로 이미 충만한 아름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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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은 먹먹함이었다. 세 명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들려주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다가, 군데 군데 편집이 굉장히 독특하게 되어 있다. 그런 구성들로 인해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자신의 조부모님들과 조너선에게 헌정했는데, 직접 조부모님들의 젊었을 때 사진 4장을 같이 붙여 놓았다. 그래서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작가의 조부모들처럼 실제 인물인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느낌과는 별개로 헌정하는 사람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은 처음 봐서 굉장히 신선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감상을 더 길게 늘어놓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은 그 뒷맛이 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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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에 관심을 가진건 2차 세계대전 언급이었는데 전쟁 중 상황보다는 그 때문에 몇십년 뒤에 일어난 일이 주였다. 읽으면서 누가 누구인지 몰라서 너무 궁금했는데 한 명씩 누군지 밝혀지고 관계가 밝혀지는 것이 개운했다 역자의 말에서 외로움이 많이 느껴지는 책이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그 만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그 사랑을 품고 살아갔다는 점에서 나는 캐릭터들이 외롭지 않게 보였다 “ 그는 진실을 견디며 사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견기는 법. 그것은 코끼리와 함께 사는 것과 같았다. 그의 방은 비좁아서 아침마다 욕실에 가려면 진실 주위를 비집고 돌아가야 했다. 속옷을 한 벌 꺼내러 옷장에 가려면 진실 아래로 기어가면서 그것이 바로 그 순간 얼굴 위에 주저앉지 않기를 기도해야 했다. 밤이 눈을 감으면 진실이 그의 위로 덮칠 듯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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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마디로 삶의 끝을 기다리는 노인과, 삶의 시작을 기다리는 소녀 사이에 이어진 길고 단단한 끈에 관한 이야기다. 나치 독일에 의해 폴란드에 있던 집과 가족을, 목숨처럼 사랑했던 소녀를 잃고 미국으로 망명해 수십 년을 홀로 살아온 팔십대 노인. 그리고 세상을 떠난 아빠가 오래전 엄마에게 선물한 책의 여자 주인공에게서 이름을 받은 열네 살 소녀. 그들은 각자의 인생을 관통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어느새 서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평생 거듭된 상실 속에서 텅 비어버린 노인과 이제 비로소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과 깨달음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한 어린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있는 존재들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끝에서 드러나는 거대한 사랑의 역사 속에서 이들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누구보다 긴밀하게 엮인 존재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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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이름이 사랑의이름이되고,
다시소녀의이름이될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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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어떻게하면, 육십년전에내가쓴책이다른언어로바뀌어 내우편함에도착할수있는걸까 ?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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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한소년이있었고, 그는한소녀를사랑했으며,
그녀의웃음은소년이평생에걸쳐 답하고싶은질문이었다 /22
- 웃으며울며쓰며기다리며 /52
- 세상모든것을표현할말들 /54
- 삶은아름다운것이자영원한기쁨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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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함께읽은책이었고 한국문학에집중된내독서취향에
아주반갑고즐거운 변화이자설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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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책. 인간성이 가장 훼손된 시기를 견뎌낸 유대인들은 모순적이게도 가장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실타래를 엮듯 시공간을 뛰어 넘어가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습니다. 내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내가 그 아이로 인해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는데, 단 한번도 이름도 제대로 불러볼 수 없는 삶이라니.. 주인공이 삶이 너무 고독하고 외로워 책장을 덮고도 한참 우울했어요. 옛날에 소년이었던 남자,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남자가 그 약속을 지킨 것은 고집스러워서도 심지어는 충실해서도 아니었다.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삼 년 반을 숨어 지내고 나니,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아들에게 품은 사랑을 숨기는 것이 생각할 수도 없는 일 같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하나뿐인 사랑일 여자를 위해 그래야 한다면, 어쨌거나, 완전히 사라져버린 남자에게 한 가지를 더 숨기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사랑의 역사 p26.』 침묵의 시대에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더 적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이 했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양손이 잠시도 잠잠할 수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시간은 잠들어 있을 때뿐이었다(때로는 잠든 동안에도 말했지만), 언어의 손짓과 삶의 손짓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었다. 가령, 집을 짓거나 음식을 만드는 노동은 사랑해 혹은 진심이야 하는 뜻을 전하는 손짓 신호에 버금가는 의사 표현이었다. 요란한 소리에 겁을 먹고 얼굴을 가리려고 손을 쓸 때, 무언가가 말해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떨어뜨린 무엇을 집기 위해 손가락들을 쓸 때도 무언가가 말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손을 쉬고 있을 때, 그 조차도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연히 오해가 있었다. 코를 긁으려고 손가락을 올렸는데 하필 그때 무심코 연인과 눈이 마주쳤다면, 상대는 당신을 사랑한 게 잘못이라는 걸 이제 깨달았어, 라는 뜻의 비슷한 손짓 언어로 오해할지도 몰랐다. 그런 일들은 가슴 아픈 실수였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 실수가 얼마나 쉽게 생길 수 있는지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이들이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환상을 품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상대의 말을 중단시키고 자신이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묻는일에 익숙했다. 때로는 잦은 오해가 도움이 되는 경우마저 있었는데, 덕분에 용서해줘, 난 그냥 코를 긁은 것뿐이야. 당연히 당신을사랑한 게 잘한 일이라는 걸 항상 알지, 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들이 빈번했으므로 용서를 구하는 손짓은 시간이 흐르며 가장 단순한 형태로 진화했다. 그냥 한 손바닥만 펼치면 그런 의미였다. 날 용서해. 『사랑의 역사 p111.』 내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내가 얼마만큼 그애를 위해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아침에 잠에서 깨는 것은 그애가 있기 때문이었고,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그애가 있기 때문이었고, 책을 쓴 것도 읽을 수 있는 그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역사 p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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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너무 좋았다. 정말 너무좋았다는 말을 읽고나서, 읽는 중에도 몇번이나 중얼거렸다. 마치 퀴즈를 푸는 것 같은 명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 도입부는 인물 파악이나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니 맞닿고, 맞춰지는 그런 순간들... 뭔가 소름이라는 굉장히 상투적인 말을 쓰게되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정말 좋았다. 조만간 다시 읽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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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했다는 사랑의 역사. 앨마는 책의 내용에 감명받아 여주인공 이름을 따서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의 내용에 관심을 갖게 된다. 스페인어로 출간된 "사랑의 역사"의 번역을 맡게 된 엄마. 앨마는 이 책의 번역을 맡긴 이가 누구인지, 이 책과 엄마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긍해 한다. 그리고 또 한명의 화자인 80대 노인 레오. 그는 폴란드에서 독일군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수십년을 홀로 지내다 노인이 되었다. 그의 목숨같았던 사랑, 그리고 멀리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아들. 오랜 세월을 혼자 지낸 그에게 남은 것은 쇠약해진 육체와 몸을 누일 수 있는 낡은 아파트 뿐이었지만 그에게는 사랑의 역사가 있다.
사랑의 역사 라는 책을 매개로 연결된 인물들의 일상을 통해 소녀의 성장을, 노인의 상실을 이야기하는 작품. 조금 다른 결이긴 하지만 위대한 집에서도 책상이라는 매개물이 등장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책 한권이 등장한다. 순수했지만 가슴 절절했던 사랑의 이야기는 여러 인물들의 마음을 울리고, 혼란한 세월 속에서 이 책은 사라질 뻔 했지만 결국 원래의 자리를 찾게 된다. 레오에게도, 앨마에게도 위대한 사랑의 역사로 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