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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또는 국가를 통하여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안에 속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직접 설명할 필요없이 국가 또는 권력을 가진 소수의 계층에 대한 언급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역사는 바로 개인보다는 사회 또는 국가 단위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구성원이 개인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개인을 통하여 거꾸로 국가 또는 사회에 대한 묘사 역시 가능하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국가 앞에 개인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오히려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획일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관점으로 그 시기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를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티부이의 [THE BEST WE COULD DO(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 역시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기에 눈길을 끈다.
2005년 11월, 뉴욕의 한 병원에서 출산을 앞둔 티부이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보통의 임산부들과는 달리 느껴지게 된다. 아이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그녀를 강하게 짓누르는 무언가가 그녀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더불어 가족들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1975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녀의 이력을 본다면 이 책이 왜 '그림으로 그린 베트남 회고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지 이내 이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해에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현재 미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 나의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그 유명한 '보트 피플(boat people)'의 존재였다. 베트남이 공산화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거친 바도를 작은 보트에 의지하여 탈출을 감행했던 그들의 존재를 어렸을 때, 우리는 반공 교육의 일환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난을 이념 교육의 수단으로 우리는 배웠던 것이다.
어려서 부모님과 형제들과 함께 미국에서 살게된 티부이의 기억에서 당시 베트남의 상황은 희미하게 존재할 뿐이다. 아니 전무하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는 뒤늦게 그림을 배우면서 그래픽 노블로 베트남 전쟁 전후의 과정을 어떻게 그려낸 것일까? 항상 집에만 머무르면서 소극적이면서도 어두운 분위기의 아버지와 가족을 위하여 갖은 노동에 시달리던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왜?'라는 물음이 바로 이 책의 동기가 되었다. 그녀의 부모님의 삶을 통하여 저자가 직접 경험 또는 기억하지 못한 베트남에 대한 상황을 거슬러 올라간 세대의 기억을 통하여 바로 이 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이 책은 초반부에 언급한 것처럼 평범한 개인들의 삶을 통한 베트남의 현대사를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여정을 거슬러 올라 바다를 건너 전쟁을 지나 모든 것을 제가리로 돌려놓을 진짜 이야기를 찾아 베트남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온가족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에서 티부이는 여전히 과거를 탐색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베트남의 상황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면 아이를 낳은 그녀가 진정 완전한 어른이 될 수 없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자유를 선사해준 부모님의 노고를 직접 확인하면서 자신의 아들에게는 그러한 자유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집필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추측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독립을 쟁취하지만, 이내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으로 얼룩진 베트남의 현대사를 티부이는 그녀의 부모님의 가족사를 통하여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역사서와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프랑스에 의한 재점령과 미국의 개입은 티부이의 아버지의 가족들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곧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독립을 갈망하는 민족주의와 더불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가족들 역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하여 갈등을 겪게 된다. 어머니의 가족들은 부유한 계층이었으나, 이들 역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하여 결국에는 생존을 위한 압박을 받았다는 점에서 역사의 무거운 부담을 몸으로 직접 겪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만난 티부이의 부모들은 이제 막 아이들을 갖게 되면서 동시에 베트남 전쟁의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하여 보트로 해상 탈출을 하여 말레이시아의 수용소에 머물다가 미국으로 가는 여정은 단순히 생존이 아닌 자유에 대한 갈망임을 보여준다.
네 아이의 부모로서 자유를 갈망하여 미국에 도착하지만, 그 이방인의 나라에서 그들이 살아가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일하면서도 자식들이 올바르게 성장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한다. 그 과정에서 그러한 비극적인 가족사와 전쟁, 이방인의 세계에서의 차별을 경험한 아버지의 위축된 모습이라든지 자신의 이전 경력이 무시된 채, 살기 위하여 온갖 노동을 해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티부이 자신이 누렸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더불어 아이의 엄마가 된 티부이에게는 그러한 슬픔의 유전자를 아이에게 물려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한다. 그녀가 누린 모든 것들이 이맘때의 자신들의 부모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임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전쟁이나 상실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트래비스와 나에게도, 지금 내게는 아주 우연히 내 인생과 꼭 묶여 있는 새로운 인생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 p. 334~335 中에서 -
[THE BEST WE COULD DO(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이 비록 베트남의 회고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우리 역시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으며 심지어 그 결과마저 같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티부이라는 한 타인의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었다. 또한 그들의 현대사에 우리의 역사 역시 깊은 관련이 있으며, 오늘날 그러한 점들이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비극을 그래픽으로 생생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등장인물을 한국식으로 바꿔서 그대로 적용해도 그리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으리라 생각한 부분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거대한 역사적인 서술을 동원하지 않고, 오히려 한 여자의 이전 세대의 가족사를 통하여 그 역사를 그대로 유추할 수 있음은 거꾸로 그 비극의 역사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슬픔의 유전자'로 명명한 그녀의 두려움과 걱정도 우리는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을 서서히 극복한 그녀와는 달리 우리는 그러한 상황이 여전히 진행중이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티부이의 이야기이자 베트남의 회고록이요, 또 다른 형태의 우리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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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지원받은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 Q. 예상했던 내용과 실제 내용의 차이?
아이였을 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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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을 한다. 대조군 A와 실험군 B를 준비한다. A와 B의 조건을 똑같이 맞춘 후 알고 싶은 부분만 서로 달리 한다. 이후 연구원들은 관찰한다.
환경은 생물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들도 자라온 환경이 다르면 키, 성격, 지능이 달라진다고 한다.
책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을 보면서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순간 순간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현재의 자리에 서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이 안고 자라야 했던 저자의 아버지는 어릴적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생존이라는 환경을 부여받지 못했다. 믿고 뿌리를 내려야 할 땅이 뿌리가 자라기 전부터 흔들려 버리자 아버지는 삶이라는 가지를 뻣지 못했다. 오로지 안전, 안전을 위한 선택.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수 없는 불안한 심리 상태. 그의 환경은 그에게 불안, 공포를 심어주었고 그의 불안은 아이들에게 곧바로 전해졌다.
아이들에게 타인을 경계하게 만들기 위해 조장한 공포, 온갖 미신들로 가득찬 집안의 분위기는 꿈을 키워야 할 아이들에게 분명 적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여기서 아이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공포에 순응하느냐, 공포를 이겨내느냐. 저자는 공포를 이겨내는 쪽을 선택했고, 더 강한 아이로 자라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며 자란 저자의 어머니는. 지아비의 무기력한 모습 속에서 자녀를 길러내기 위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끊임없이 나아가는 일을 선택했고, 그 탓에 아이들은 더욱 뒷전이 되어버렸다. 그 선택으로 인해 저자의 집에는 가족의 끈끈한 유대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이 또한 선택에 의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가정의 따뜻함 보다는 경제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과 산책을 하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우리 둘이 그 때 결혼을 안했다면?', ' 너무 힘들었던 그 때 다 포기했다면' 등등의 질문의 끝에는 항상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행복한 거잖아"가 되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존경을 받아 마땅함을, 최악이라고만 생각한 인생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음을, 모든 사람들에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음을 이해해야함을 말해주는 책이었다.
'매순간 우리가 했던 선택은 최선이었고, 다음 할 일은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라는 깨달음을 끝으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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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 인연이 좀 있다. 희망도서로 작년 가을엔가 신청을 했는데 만화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가 어제 도서관에서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정기 구매로 사들인 모양이다. 독자가 요청하면 안되고 자기들이 판단하면 오케이란 말인가? 기분이 좀 그랬다. 최근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도 희망도서로 신청하면서 이 케이스 때문에 조마조마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통과됐다. 도대체 기준이 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은 베트남 패망 이후 보트 피플이 되어 미국으로 이주한 티부이 씨가 포함된 부이 가족의 회고록이다. 미국인 남편 트래비스와 결혼해서 완전히 미국 사람이 된 티부이 씨의 기록은 3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베트민 거물로 민족해방을 위해 프랑스 식민주의자 그리고 미군과 싸운 전사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은 자유를 찾아, 자신의 조국을 침략한 미국으로 이주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티부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재 별거 중이다. 그녀의 부모들은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건만 전란 중에 6명의 자식을 낳고 그 중에 두 명을 잃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게 된다. 티부이의 두 명의 언니들인 란과 비크는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부이 가족의 품을 떠난다. 물론 그녀 역시 비슷한 삶의 궤적을 항해한다. 어린 나이에 베트남을 떠나 미국인이 된 그녀에게 베트남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미국인 남편 트래비스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면서 티부이는 조국을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부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어머니 항은 막내 탐을 자진해서 보트피플이 되어 조국을 탈출해서 도착한 말레이시아에서 낳지 않았던가. 생존 만큼이나 끈질긴 재생산의 과정의 한 단면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티부이의 부모 남과 항은 구 베트남 체제의 지식인이라 불릴 만하다.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인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이점인지 아마 그들은 몰랐으리라. 그래서 말레이시아 난민수용소에서 망명지를 고를 때, 언어가 통하는 프랑스를 처음에 떠올렸다. 하지만 결국 부이 가족은 다른 가족이 둥지를 틀고 있던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수십년에 걸친 전란은 기억마저도 바꾸는 것일까? 부부의 별거에 대한 과정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억이 전혀 다르다. 아무리 사범학교를 졸업한 지식인 계급이라고 하지만, 전통적 베트남 가부장제의 구습을 버리지 못한 아버지는 저임금이라도 받는 대신 가족을 위해 미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대신 집안일을 택한다. 어쩌면 이것도 별거의 사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대신 어머니가 가장이 되어 돈벌이에 나선다. 그들이 베트남에서 받은 학위는 당연히 미국에서 인정이 되지 않고, 시급 3달러 짜리 일자리로 6명을 부양해야 한다. 항의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일본군과 싸우던 베트민이 베트남의 북부를 장악했지만, 곧바로 식민모국 프랑스가 종주권을 주장하며 진주하게 된다. 그 결과 1차 프랑스와의 베트남전쟁이 시작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이 그래픽 노블의 중점은 베트남 사람들의 민족해방전쟁보다 공산화가 된 뒤 보트피플이 되어 탈주하는 이야기와 미국 이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물론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찬성했던 베트남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도 등장하지만, 그것은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잠시 등장할 뿐이다. 베트민이 장악한 북부에서 22만명이나 되는 지주들이 숙청되었다는 이야기는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패망 이후 어떤 후과가 있으리라는 것에 대한 예후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티부이 작가가 구사하는 그림체는 서구, 특히 프랑스 만화들이 추구하는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 만화들이 보다 정교한 그림체라면 서구의 만화 스타일은 선이 빚어내는 공간의 미학이 대세라는 느낌이다. 작가는 <우리가 했던 최선의 선택>을 그리기 위해 수년 동안 준비를 해왔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베트남 역사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베트남, 말레이지아 그리고 미국으로 이어지는 베트남판 디아스포라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한 때, 총부리를 서로 겨눴던 적국 출신의 작가(물론 미국화되긴 했지만)의 작품도 품을 수 있는 미국 문화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체험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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