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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읽은 이 저자의 왕실, 권력 그리고 불화와 내용이 비슷하지만 좀 더 자료 면에서 자세하다. 사찰 순례를 하다보면 서울 주변 사찰에서 가끔 고급스런 불화들을 만나자지만 그 유래를 알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불화들의 '역사'를 알려 준다. 나는 그동안 사찰 순례를 하면서 조선시대의 불교 문화는 대부분 자생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고려는 통일 신라와 고려는 굉장히 이른바 '글로벌'화된 나라였다. 실크로드를 통해 서양과도 교류를 했으니 다양한 문화가 들어왔을 것이고 불교 문화도 인도, 중국을 통해 많이 들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중국의 명나라 자체가 약간 쇄국의 분위기로 가고 조선이 유교 국가가 되면서 대륙으로부터의 불교 문화 유입은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 실크로드마저 15세기에 감퇴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감로도나 신중도, 삼장도를 보면서 자생적인 불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 전기에도 꾸준히 불화가 왕실 후원을 받으며 명나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겉으로는 유교를 표방했지만 비빈들 뿐만 아니라 왕들까지 불교를 후원했다는 것이 놀랍다. 유교 군주를 내세웠던 정조는 아버지를 위해 용주사를 창건하고 그 곳에 많은 문화적 역량을 쏟아부었다. (정조는 정말 아이러니한 군주이다. 고전체 문장을 고집해 문체반정을 일으켰지만 자신은 한글과, 한자, 이두가 뒤섞인 황당한 편지를 남겼다.) 제1장 조선왕실과 불교, 불교미술 1) 왕실이 후원한 불교 미술은 민중이 발원한 미술보다 양식적으로 뛰어난 작품이 많다. 2) 고려의 전통양식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 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명나라의 영향을 받았고 고려 불화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도 발달했다.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와 불교 관련 교류 기록이 남아 있다. 1550년 도갑사 관음보살32응신도 - 성당대 돈황석굴 45굴의 보문품변상 1562년 청평사지장시왕도 : 하이라이트 기법- 명대 사녀화에서 많이 볼 수 있다. 3) 비싼 재료를 많이 사용하였다. 비단, 순금화 4) 조선 전반기에는 불화 속에 산수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도갑사 관음보살32응신도, 지온인소장 오백나한도, 향림사 나한도, 사라수탱, 왕실의 도화서 화원들이 그렸으므로 송대,명대의 이곽파화풍 등 당시 유행하던 산수화 적 요소를 반영했다. 5) 조선 후기에는 왕실에서 사찰건축, 불상조성과 개금, 탱화조성, 불서 간행등 다양한 불 사를 했으나 도화서 화원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용주사(김홍도) 빼고는 드물다. 대부분 각 불사를 담당하는 승려들이 있었다. 6) 왕실 구성원뿐만 아니라 왕실주변 인물들도 왕실의 안녕을 위해 불교미술을 발원, 조 성했다. 조선후기(19세기 이후)에는 상궁들이 불사에 적극적 참여. , 왕실의 심부름을 하거나 고위 관료들과 함께 불사. 상궁들은 당시 많은 월급을 받아 경제력이 있었다.
문정왕후 때 그려진 불화가 400점이 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10점도 되지 않는다. 일부는 불탔고 일부는 아마도 일본의 어느 절이나 개인 소장자의 벽장에서 잠자고 있을 듯하다. 앞으로 고려불화와 조선초기 불화의 연구는 그런 숨어 있는 일본 소장자들을 얼마나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현재에도 가끔 고려 불화가 일본에서 '발견'된다. 일본의 경제가 나빠질 수록 더 빨리 발견될 것 같다.
https://blog.naver.com/best1golden/221946290627 이 책에서 소개된 그림들을 설명하고 있는 블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