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유유출판사의 책이다. 어떤 저자라든지 시리즈라든지 뭐 그런 이유로 책을 계속 산 적은 있지만 이렇게 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줄지어 사 읽는 경우는 나도 처음. 한 출판사에서 뚝심있게 일관된 책을 내놓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나에게도 잘 맞아서 찾아서 읽게 된다.
태도의 말들, 쓰기의 말들에 이어 도서관의 말들까지 읽었는데 이번엔 서점의 말들이란다. 출판사며 책이며 도서관이며 말, 글... 모아서 읽어도 읽어도 또 읽을만한 글이 나오니 신기하다. 서점은 어떻게 보면 그냥 책을 파는 곳이다. 그런 곳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건 책에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지. 없으면 읽고싶어서, 많으면 보관이 곤란해지는 책. 하지만 항상 갖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책. 그 책을 파는 서점에 대한 글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글들을 몇 개 옮겨 본다.
책을 샀을 때 그 책은 분명히 독자의 소유물이 된다. 옷가지나 가구를 샀을 때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책의 경우 이것은 겨우 일의 시작에 불과하며, 책이 정말로 독자의 것이 되는 것은 독자가 그 내용을 소화하여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었을 때다.
모티머 J 애들러 <독서의 기술>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을 보면 뿌듯함보다는 답답함이 느껴진다. 읽었다고 꽂아둔 책이나 아직 못 읽고 꽂아둔 책이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건 똑같으니... 책이 정말로 독자의 것이 되는 것은 독자가 그 내용을 소화하여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었을 때라는데 과연 이 책들 중 그런 책은 몇권이나 될까
당신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오르한 파묵 <다른 색들>
내가 특히 불행한 시기에 책을 가방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이상 불행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거. 인정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도피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쩌겠나. 삶이 힘들다면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읽었던 책인데 완전히 기억 속에서 잊혔기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인 줄 모르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후 돌려받지 못해서 누군가 책을 훔쳐가서 누군가에게 빌린 책인데 그 책을 분실해서 빌려 읽은 책을 돌려주고 보니 그 책이 꼭 필요해서 읽어 보니 너무 좋은 책이라 주변에 선물하기 위해 내가 쓴 책이라서 같은 책이지만 새로운 번역서가 나와서 비교해 보려고 같은 책이지만 새로 나온 책 표지가 더 예뻐서 가지고 있던 책을 고양이가 긁어서 가지고 있던 책에 강아지가 쉬를 해서 다 읽고 헌책방에 팔았는데 아쉬움이 남아서 책 정리가 힘들어서 차곡차곡 쌓아 두었는데 필요한 책이 거대한 기둥 맨 밑에 있어서
사람들이 같은 책을 다시 사는 이유
책을 사는 사람은 이렇게 핑계가 많다. 정재승 교수, 김영하 작가 등 많은 애서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경험 중 하나가 "집에 있는 줄 모르고 책을 또 샀다"는 거다. 그리고 요즘처럼 리커버가 유행이면 고민은 더 깊어진다. 한정판 이름을 달고 예쁘기까지 한 리커버를 보면 내 책장에 꽂힌 꼬질꼬질한 표지를 한 책이 미워보이니까. 더 화가 나는 경우는 빌려줬는데 못 받은 경우. 게다가 그 책이 10권짜리인데 1, 2권이 비었다면 더더욱! 같은 책을 또 살 이유는 백만개쯤 되는 듯!
나는 책방이 사상을 컨트롤해 책을 선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반대 사고의 책을 옆에 진열하기도 한다. 아무리 셀렉트숍인 척해도 결국 책을 선별하는 이는 항상 손님이다.
야마시타 겐지, <서점의 일생>
이 글은 좀 잔인하다. 책방 주인이 심혈을 기울여 책을 진열해놨는데 결국 책을 선별하는 이는 항상 손님이라니. 셀렉트숍인 척해도 소용없단다. ㅎㅎ 이러니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처럼 황당한 말이 없는거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건 쉽지가 않은데 한두번 본 사이에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난감하다. 그럴떈 베스트셀러 목록을 내미는게 더 나을지도.
어떤 독자는 두꺼운 책을 보면 뭔가 커다란 산을 앞에 둔 것 마냥 열정이 솟구친다. 저 책을 정복하겠다는 의지를 향한 쓸데없는 열정! 이것이 독자와 작가를 피 말리는 싸움터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책방 주인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이 모습을 은근히 즐긴다. 줄다리기를 하는 중간에 서서 호루라기를 입에 물고 있는 심판처럼 팽팽해진 양쪽 모두를 향해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보낸다. 묵직한 책은 보통 이런 식으로 쓰이고 소비된다. 그 중간에서 책방지기는 돈을 번다. 묵직한 책은 비싸서 제법 돈이 된다.
두꺼운 책을 바로 옆에 쌓아두고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구나 싶다. 뭐 정복까지는 아니지만 두꺼운 책을 보면 괜한 오기같은게 생긴다. 그래서 사는건 맞는데, 시간이 없어서 읽는게 힘들다. 두꺼워서 읽기 힘들었던 책 중에는 요즘 다들 한권씩은 집에 있는 <사피엔스>, <호모데우스>도 있을 것이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스티브 잡스>도 기억난다. 하나같이 다 읽고 나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읽어냈다는 뿌듯함은 있다. 뭐 비싸기도 하니 서점이나 출판사 입장에선 돈이 되긴 하겠지만 일년에 그런 책이 몇권이나 되겠나. 이래저래 힘든 출판계다.
'서삼치 書三癡'라는 옛말을 들어보신 적 있는지? 책에 관한 어리석은 행동 세 가지를 뜻하는 말이다. 그 첫 번째는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빌려주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가 빌린 책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누군가 우스개로 지어낸 말 같지만 나는 여기에서 굉장한 철학이 느껴진다.
역시, 이 책의 백미는 이 글이다. 책을 빌려달라는 것, 책을 빌려주는 것, 빌린 책 되돌려주는 것 모두가 바보같은 짓이라니. 책은 참 요망한 물건이어서 욕심을 낸다고 해서 다 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인연이 있어야 내것이 된다. 빌려서 내것이 될 물건도 아니고, 빌려준다고 내것이 아닌것도 아니니 신기하다.
읽으며 서점에 대한 책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던, 기억하고 싶은 서점과 책에 관한 글모음 <서점의 말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