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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작가는 오래전에 [글쓰기의 최전선]이란 책으로 처음 만났다. 자기계발서류는 잘 읽지 않음에도 글쓰기에 관한 책은 가끔 읽는지라 만난 책이었지만, 그 책을 읽은 이후로 작가에게 반해 버렸다. 하도 오래전이라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아직껏 생각나는 대목은 ‘키워드 글쓰기’이다. 작가는 예를 들자면 사랑, 청춘, 혹은 가족과 같은 키워드를 정해놓고 자신의 삶을 직시하면서 살아온 삶 자체를 글로 옮겨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쓰기 훈련은 물론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라는 글쓰기의 대명제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요즘도 글을 쓰면서 항상 생각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후 작가의 책이 나오면 가능한 읽으려 했고, 그래서 몇 권의 책을 더 읽은 것 같다. 이 책 역시 선뜻 읽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작가의 글쓰기에 반해서 아마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로 나온 산문집이려니 했는데 이미 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2008년 겨울, 개인 블로그에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생활에서 자라나는 감정에 시를 덧대어 글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다 운좋게 출판기회를 얻어 2012년 책을 펴냈지만 3년 후 출판사사정으로 절판된 것을, 5년 만에 원본 그대로 다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맨 처음 펴낸 글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다.
책에는 마흔여덟 편의 시가 담겨있다. 작가는 그 시의 내용을 빗대어 삶에 부대끼는 자신의 감정을 내보인다. 사는 일이 버거울 때 시를 찾았다는 그녀는 결혼과 육아 그리고 일에 관한 생각을 여자, 엄마, 작가의 관점에서 써내려간다. [글쓰기의 최전선]에 나오는 ‘키워드 글쓰기’는 이미 이때부터 작가의 머릿속에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여자, 내 생을 담은 한 잔 물이 잠시 흔들렸을 뿐이다’에서 작가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들을 보면서 사랑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일 뿐이며,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사랑이 있을 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남는 장사라고 말한다. ‘결혼도 이혼도 인연을 쓰는 한 방편일 뿐이며 이것들 모두는 삶의 어느 국면에서 생을 담은 물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 단지 그것일 뿐이’(68쪽)기에 우리는 어쩌면 그 사랑을 견디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내가 반 웃고 당신이 반 웃고’에서 그녀는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고 좋기만 한 관계는 가짜이고, 아무런 사건도 생기지 않은 무탈한 일상이 행복은 아니었다.’(112쪽)고 말한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한 자신의 삶 속에서 부딪친 엄마로써의 수많은 고통들 속에서도 늘 회의하고 배우는 주체로 살아가려는 삶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아마 내가 그런 삶을 살지 않는 남자여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 사는 일은 가끔 외롭고 자주 괴롭고 문득 그립다’는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비단 작가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살아야만 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이 외롭고, 괴롭고, 그리운 것은 느끼고 찾아 헤매는 것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추구했던 삶의 가치들은 세속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과 가족너머 세상의 모든 아픔을 향하기에 그만큼 그녀의 실패는 쌓여만 간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시를 위로삼아 분투하는 그 모습이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의 글을 읽어가면서 그녀가 위로 받았던 그 시들을 나도 읽어본다. 시와는 별로 친하지 않은지라 처음 읽어보는 시들이 대부분이지만, 마주한 절망에서 시를 통해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글들을 읽으며, 나 또한 그 시들을 빗대 나만의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내 삶에서 일어났거나 혹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고통과 실패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분투할 것인지. 그래서 상처를 응시하고 새로운 꿈을 꾸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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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는 주로 에세이를 쓴다. 요즘 나오는 에세이란 '어떤 류'라고 몇 가지로 퉁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소재에 비슷한 감상이다. 그런데 종종 들여다보게 되는 에세이가 있다. 은유와 이슬아의 글이다. 은유 작가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먼저 살아간 이로써 말하는 것 같아 믿음이 간다. 시종일관 대화하는 듯한 문장 하나하나마다 감정을 급하게 보여주지 않고, 주장하지 않고 조곤조곤 할 말을 이어간다. 특히 이 에세이에서 자꾸만 미소를 짓게 된 부분은 작가의 딸, 꽃수레가 등장할 때이다. 작가의 말투처럼 자기만의 언어로 예쁘게 말하는 아이를 상상하니 흐뭇했다. 은유 작가는 작가 - 독자가 아니라 사람 - 사람으로도 말을 건넬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작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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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 가장 고통없이 글을 쓴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만해도 심신이 고통받았던 지난 1년동안 읽고 쓴 글들이 지금의 글들과 사뭇 다르므로 그렇다. 고통스러웠고 불행했다. 장마철의 폭우처럼 미친듯이 쏟아지고 범람한 위로의 에세이들을 읽으며 한 톨도 위로받지 못했고 점점 입을 닫았고 주눅 들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위해 고통스러운 책들을 읽었고 그 안에서 나름 행복하게 지냈다. 불행과 행복이 어울리진 않지만 공존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지금은 불행했던 시기를 지났지만 또 다른 고통이 찾아왔고 그런 내게 선물같이 등장한 이 책은 ‘이젠 시를 만날 때’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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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노을입니다. 문자로 신간소식듣고 얼른 책구매부터 꾸욱 ㅎ 언제나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새책소식이 그 응답마냥 기쁩니다. 은유샘은 제겐 처음이자 마지막 글쓰기 선생님이셨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저는 뼈를 깎는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평화로운 일상을 잘 견디며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계속 치열하게 살아서 글쓰고 계신 은유샘의 삶에 항상 박수보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