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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박용길. ☆☆☆☆☆ 어찌 한 인간의 삶이 온통 사랑, 믿음, 신념. 이 고상하고 처절한 단어들로 꽉찰 수 있을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살아계신 울 엄니 생각도 많이나네요. "그 옛날에 목사 부인이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아이들 넷, 다섯을 대학까지 공부 시키셨잖아." 하는 부분에선 더 그렇구요.. 봄길: "어려서부터 친정어머니가 애끼는 걸 보고 자랐는데, 결혼 하고 나니까 시어머니는 더 애끼시더라. 풀을 쒀서 쓰는데 마르잖아? 그러면 물을 부어서 또 써. 아주 철저하시더라고. 그 옛날에 목사 부인이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아이들 넷, 다섯을 대학까지 공부 시키셨잖아. 나는 할머니하고 살면서 경제하는 게 더 몸에 뱄어. 런 닝샤쓰 떨어지면 이렇게 거꾸로 하면 위에는 성하거든. 거기다 고무줄을 넣어서 다른 속옷 해 입고 그런 것도 많이 했지." 문익환, 「손바닥 믿음」 이게 누구 손이지 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 손이 손을 잡는다. 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 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인정이 오가며 마음이 마음을 믿는다 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 새날이 밝아온다. 한빛교회 유원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길 위에는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누구라도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길이죠. 장로님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어요. 장로님은 누구에게든 그들이 딛고 갈 수 있는 길이었던 거죠. 봄길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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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박용길』은 박용길이 기록하고 모아놓은 글과 자료를 살려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펴낸 전기이다. 그리고 젠더 관점에서 박용길의 행적을 살려 주체적인 여성을 드러낸 박용길의 허스토리(Herstory)이다.
'봄길'은 남편 문익환 목사가 아내 박용길에게 선물한 호이다. 한빛교회 유원규 목사가 박용길에 대해 서술한 글이 그녀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길 위에는 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누구라도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길이죠. 장로님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어요. 장로님은 누구에게든 그들이 딛고 갈 수 있는 길이었던 거죠. 봄길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봄길이 되어주셨던 박용길의 삶이 존경스러웠다.
박용길은 4·19 혁명을 겪으며 민주주의와 정의로운 국가에 대해 깨우쳐 가기 시작했다. 기독교계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첫 순간부터 기도와 행동으로 동참했다. 구속자 석방운동을 하며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었고,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을 겪으면서 민주화 운동 투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남편 문익환이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는 동안 박용길은 밖에서 가족들의 투쟁조직을 이끌며 성장해갔다. 박용길은 거실벽에 간디의 글귀를 붓글씨로 쓴 것을 늘 붙여놓고 있었다고 한다. "신랑이 신부방에 들어가듯 감옥으로 가게 하라. 두려움은 작게, 기대는 크게 지니고서." 담대하면서도 부드럽고 거룩한 분노의 영성을 살았던 박용길이 옆에 있었기에 늦봄 문익환 목사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박용길의 부모님과 시어머니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이었다. 박용길의 어머니 현문경은 늘 몸가짐을 정갈히 하면서 시간을 정해놓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가정 예배를 드릴 때마다 "너희들이 받은 감사는 반드시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배운 만큼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자녀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일본이 점령하고 있지만 우리는 조선 사람이다. 일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무슨 일이나 할 수 있는 일은 사양하지 말고 자청해서 나서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박용길의 타고난 담대함이며 두루 이웃을 보살피는 태도는 어머니의 성품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한다.
박용길의 아버지 박두환은 틈틈이 딸들에게 수영도 가르쳐주고 자전거도 밀어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부지런한 생활 일과를 중요시해 방학에라도 늦잠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기(日記)가 월기(月記)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딸들에게 신신당부하며 규칙적이고 성실한 생활을 강조했다고 한다.
박용길의 시어머니 김신묵은 고부간 지지와 연대가 며느리에게까지 대물림되도록, 젊은 며느리 박용길이 사회활동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박용길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과 시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 덕분이었음을 짐작하게 되었다.
박용길은 아이들에게 종교생활에 대해 강요하기보다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도록 기회를 주었으며,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여 회복을 돕고, 부당한 고초를 겪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살림'의 삶을 사신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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