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르만 헤세는 독일계 작가로서 시인이자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탐독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그 내용이 흐릿해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헤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대학에 진학하고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상대적으로 외국문학 작품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고교 시절에 읽었던 <데미안>에 대한 기억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데미안>이 처음에는 작품이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고, 독자들이 헤세의 작품일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자 나중에 자신의 작품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데미안>은 1차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정신적 혼란을 담아내고 있지만,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정신적 방황을 헤쳐나가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헤세의 정신세계를 분석하고, 이를 그의 작품과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헤세에 대한 개략적인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또 내가 읽었던 작품의 내용 정도를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서, 헤세의 삶과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지 몇몇 작품으로만 접했던 헤세의 문학 세계를 그의 삶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헤세의 삶을 조명하고, 특히 그의 일생이 우울증으로 점철되었던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헤르만 헤세의 삶을 정신병리학의 관점에서 조명한 일종의 평전 형식이라 하겠다.
저자는 헤세의 삶에서 부모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파악하고 있는데, 그래서 헤세가 39세이던 1916년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내용은 그의 우울증의 연원을 설명하고자 마련한 장치라 생각된다. 목사인 아버지와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 어머니의 독실한 종교관, 그리고 당시 독일의 경건주의라는 분위기와의 갈등이 어린 시절의 헤세의 삶과 갈등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우울증, 경건주의, 그리고 정신분석’이라 붙였다. 650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한 내용으로, 헤세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실제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그러한 분위기에 순응했다면 과연 헤세의 작품들이 탄생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헤세의 내면적 정신을 분석하기보다는 강압적인 부모의 교육관과 그것을 용인했던 당시의 문화와 아이들에게 억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를 해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당시 독일의 교육적 환경 탓이겠지만, 부모의 뜻에 거스르고 조금만 반항적이면 곧바로 정신병원에 가두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왜 헤세가 17살이라는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그로 인해 자유로움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하여 헤세의 삶과 그의 문학 작품을 연계시켜 논하고 있으나, 한 사람의 삶을 개인의 정신분석으로만 논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와 함께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헤세의 삶을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서술하면서, 그의 작품 역시 헤세의 자전적인 면모가 반영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저자의 연구가 매우 깊고 전문적이어서, 적어도 헤세 연구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참고문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 그동안 자세히 파악하지 못했던 헤세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하나의 수확이라 생각한다. <데미안> 비롯한 헤세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하면서,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설명한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 작품을 꼭 작가의 삶과 연결시켜 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만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관점이 문학을 단조롭게 해석하도록 만든다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헤세의 삶을 짚어보면서, 외부 환경의 문제가 생활양식을 얼마나 강하게 규정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한때의 기억으로 스쳐갈 수 있는 사건도 누군가에게는 그의 정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헤세는 13살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꿨으나, 신학교에 보내져 끝내는 그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벗어나야 했다. 학교에서 탈출한 헤세는 부모에 의해서 몇 차례에 걸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에 대한 정신적 반항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후 헤세는 평생 부모를 원망하고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면서 살았다고 하였다. 저자는 그것을 헤세 특유의 양가적 인식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실상 누구나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강하게 표출되는가가 다를 뿐이라 생각된다.
헤세는 세 번의 결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안정을 느끼지 못하였고, 자식들 또한 헤세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어쩌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표출한 시와 소설들을 발표하고 뒤늦게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제는 문학가로서 헤세의 명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그의 가족들만큼은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여 꼼꼼하게 정리하고 분석한 저자의 노력으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논하는 저자의 작품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헤세의 삶과 연결시켜 논하는 저자의 인식에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헤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고 하겠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임.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1. 인간사랑님께서는 리뷰를 천천히 써도 된다고 하셨으나, 이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쓰려면 언제 리뷰를 쓰게 될지 기약할 수가 없게 되었다.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책장이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1차 리뷰를 저질러본다. 인간사랑지기는 역시 그만하는 게 맞는 거 같다. 인간사랑지기가 소라향기님으로 바뀐 거 같다. 으흐흠! ㅋㅋㅋ.
이 책은 헤르만 헤세의 인생을 얘기하는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병력부터 가족력, 유년기, 그리고 헤르만 헤세의 세계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우선, 내가 읽은 부분들만 조금 살펴보겠다.
2.
. 헤새의 우울증을 이해하려면 그 직접적인 유발인자인 아버지의 죽음이 준 충격을 이해해야 한다. - p.41
그가 11세가 되자 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견디지 못하고 리가에 있는 친척집으로붜 쫓아 보냈다. 이때부터 그는 휴일 이외에는 가족을 보지 못했다. 어리는 그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음을 느꼈을 것이다. - p.44.
헤세가 5살 때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요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경건한 그에게는 정의(즉 예수)는 심하게 고통 받게 마련이므로 , 고통은 선택된 사람의 증거였다. - p.46
헤세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헤세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외에도 몇 명 더 나온다. 헤세는 매질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긴 했으나, 어머니는 자녀들을 엄격히 다루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헤세의 부모는 어린 아들에게 문자 그대로 어려서부터 “자유 의지”를 꺾고, 젊은이의 마음에서 악을 퇴치하고, 호기심, 발견충동, 유희충동, 쾌락과 자기 ? 감각을 불신하며 잘라버리려 했다. - p.74
3. 1999년 슈테텐 정신병원의 울리히 라이클레 박사는 과거 병록을 종합하여 헤세의 진단은 신경증적 장애나 주요 우울증을 넘어 초기 정신병 수준이라고 했다. - p.115
그러고 보면, 헤르만 헤세의 정신상태도 심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가족간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충돌하면서 헤르만 헤세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지만, 사랑만은 참아낼 수 없습니다. 부활절에는 조용히 있게 내러벼두세요.! 저는 어떠한 사랑도 참아낼 수 없습니다. 적어도 기독교적 사랑은 말입닏. 그리스도가 만약 자기가 한 일을 안다면! 그는 무덤에서 돌아누을 겁니다.” “그(하느님)는 정말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생각하는 하느님과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느님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든 저에게 영햐을 끼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이제 어머니는 그망 예수와 하느님을 데려오시겠죠. 그러나 저는 그들을 모릅니다.” pp.117~118
헤세가 적극적으로 신을 배척하게 된 데는 아마도 부모와의 냉담한 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많은 경우, 부모 떄문에 신을 배척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부모가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자식이 억압을 당할 때 특히 그렇다. 이것은 옳다고 볼 수는 없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헤르만 헤세는 특히 “자유의지”를 강조하게 된다.
4. 『헤르만 헤세의 진실』은 6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또한, 그 내용도 쉽지 않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다루기도 하지만, 그와 동반하는 깊이 있는 내용을 실제적으로 다룬다. 그래서 그냥 전기 읽듯이 보는 그런 책과는 좀 다루다. 그래서 이 책을 일으려면 마음을 깊게 먹고 숨을 들이켜고 봐야만 한다. 교수님과 같은 분들에게는 이 책이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닐지도 모르나, 대부분은 쉽게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장 가치는 있다.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 보다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분들에에 이 책을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5. 인간사랑님께 인간사랑지기를 그만두고, 앞으로는 보고 싶은 책들은 신청해서 보겠다고 쪽지를 드렸다. 헤르만 헤세의 진실을 마지막으로 사임(?)하겠다고. 제대로 된 리뷰를 계속 쓰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컸다. 이번에도 역시 제대로 된 리뷰를 쓰지는 못했다. 언젠가 아직까지 완성된 리뷰를 쓰지 못한 것들은 다 쓰는 날이 오겠지. 내가 좀더 독서의 연륜이 쌓이면 말이다.
인생은 장기전이다. 눈앞의 하루 이틀, 그리고 한두 달 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현재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전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워놓는 것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걸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장기적으로 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헤르만 헤세의 진실』『자크 랑시에르와의 대화』『사서로 읽는 항우와 유방』 모두 인간사랑의 책으로, 1차 리뷰만 써놓고 장기휴업 상태인 책들이다. 이 책들이 언젠가 내게 깊은 의미로 다가와 미친 듯이 탐독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요즘에 내가 쓰는 리뷰들은 내 마음에 별로 들지 않는다. 그래도 썼다는 것에 만족하면서 길을 찾는 중이다. 찾다 보면, 언젠가 희망도 보이고, 길도 보이겠지. 그 길을 가기 위해 오늘도 팔을 저어보고, 다리를 움직여 본다.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길 함께 바라며, 오늘도 이 글을 보시는 당신의 미래까지도 아름답길 바라본다. - 이 리뷰는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
읽을수록 조금 이상했다. 그래서 찾아본 지은이의 약력. 아하! 민성길 :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서울시의사회 저술상 수상자. <난폭한 사회, 그러나 희망을(영문)>, 서울을 정신분석하다>(편),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맥라렌교수의 생애와 사상> 등의 저서가 있네요. 그리고 약간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는 표지 그림은 '군터 뵈머'가 그린 헤세 초상화네요.
헤르만 헤세가 3번이나 결혼을 했다니...... 그리고 그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끊임없이 자살 유혹을 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자살을 미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이지만 이렇게 자주 주기적으로 정신병 치료를 받고 자살 충동이 유전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더하기 헤르만 헤세가 자녀 양육에 그렇게 열심이지 않았지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그가 자신의 시대에 맞서 치열하게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독일 국민들이 선호하는 헤세의 작품과 미국 사람들의 선호도, 그리고 한국의 선호도가 각각 다르고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 책 <헤르만 헤세의 진실>을 통해 알게 되었구요. 그냥 <유리알 유희>가 궁금한 차원을 넘어선 궁금증의 해소와 더불어 헤르만 헤세를 더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민성길 지은이 입장에서 충실하게 추적하고 정신과 의사의 견해와 헤세 전문가들의 의견이 적혀있는 이 책은 세 번을 읽었지만 여전히 찬찬히 읽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직도 모르겠는 것 투성이인 상황. 그럼에도 마음을 흔든 파트 위주로 '독서기록'을 남기겠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부 현병력 2부 가족력과 경건주의 3부 과거력-성장 유년기(칼브), 위기적 청춘(마울브론-슈테텐) 4부 낭만주의 시대 시인의 길로(튀빙겐) 낭만적인 노래, 작가로서의 출발(바젤) 페터 카멘진트 결혼과 전원생활(가이엔호펜) <수레바퀴 아래에서> 광기의 시대(베른) <크눌프> 5부 정신분석 시대 정신분석(루체른) 새로운 문학 <데미안>과 동화들 열정적인 삶(몬타뇰라1) <혼돈 속으로 들여다 봄>. 제2의 위기와 융 정신분석 치료 <싯다르타>. 제3의 위기와 정화 (취리히) <황야의 이리>. 정신분석-기여, 한계, 오해, 그리고 비판 6부 다시 경건주의 프로테스탄트로의 귀향(몬타뇰라2)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지성의 길 (몬타뇰라3) <유리알 유희>. 말년의 영광과 봉사 <꺾어진 가지>. 사후의 헤세 7부 헤세의 진실 정신의학적 공식화. 창조성과 광기. 내면으로의 길, 구원의 길.
'지은이의 변'과 정신의학자로서의 자신감 표현(?)
지은이의 취지를 이해하고 마음 편히 읽어가면 되겠지만 만만치 않은 내용들이 있어서 마냥 부드럽고 편하게 읽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야릇하여라, 안개 속을 헤매는 것은! 인생이란 외로운 존재. 누구 한 사람 타인을 알지 못하나니 인간은 모두가 홀로이어라. _ 헤세의 시 '안개 속에서' 12쪽
이 시에서 느껴지는 헤세는 구루 또는 멘토 같은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헤세는 안정적이고 평온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헤세의 책 <수레바퀴 아래에서>나 <데미안>을 읽고는 그에게 투사한 이미지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제 한국 독자들은 헤세가 <데미안>을 쓴지 20여 년 후 그의 문학과 사상의 최종 결정판이기도 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대단히 금욕적이고 진지한 <유리알 유희>를 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헤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15쪽
1931년 이후 어려운 경제 생활 가운데서 안정을 찾았지만, 문학활동은 비교적 뜸했다. 이 소강상태는 마치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소강상태였던 것과 비슷하다. 한편 나치스의 발흥과 임박한 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서, 헤세는 문학 에서 다른 작풍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공동체"를 위한 질서와 의미를 강조하는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1936년 헤세는 스위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고트프리트 켈러 상"을 받았다. 446쪽
헤세는 64세인 1940년 성탄절에 '구세주' 라는 시를 쓴다. 매번 다시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경건한 귀에다 말하고, 귀먹은 귀에다 말하며,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가는 새로이 우리에게서 잊혀진다. 매번 다시 그는 외로이 일어나야만 하고, 모든 형제의 고통과 동경을 짊어져야만 하며, 항상 그는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힌다. 매번 다시 하느님은 예고하려 하고, 천국의 것은 죄인들의 계곡 속으로, 정신은, 영원한 것은 육체 속으로 스며들고자 한다. 매번 다시, 오늘날에도, 구세주는 축복을 주려고 오고 있다. 우리의 걱정과, 눈물과, 질문과, 한탄을 조용한 시선으로 맞이하고자, 하지만 그 시선 우리는 감히 대하지 못하니, 오직 어린이의 눈만이 그 시선 감당하기 때문이다. 452쪽 문제는 헤세가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은, 헤세가 전통적 기독교에 전적으로 귀의하기보다는, 범종교적 영성 내지 비기독교적 영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제23장 내면으로의 길, 구원의 길 참조). 이 시에서 예수는 신이라기보다 위대한 사랑의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다음은 <유리알 유희>(1943)에 포함되어 있는 크네히트의 유고 중 첫 시로서 제목은 '고발'이다. 이 시는 신에 대한 보다 복잡한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고발' 우리에게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는 파도이다 무엇이든 틈이 있으면 그리 흘러들어간다. 밤이든 낮이든, 교회든 동굴이든, 우리는 연합하는 모습을 추구하며 영원히 지나친다. 주형마다 채우며 쉴 틈이 없다 우리에게는 기쁨과 슬픔이 깊게 흐를 집이 없다. 우리는 움직일 뿐, 영원한 손님이다. 우리는 밭도 쟁기도 없고 수확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지 알 수 없다. 하나님은 놀이 하다: 우리는 그의 뜻에 맡겨진 진흙이다. 이겨질 뿐이고 말을 할 수도 없어, 우리는 웃지도 신음하지도 않는다. 그는 반죽하지만, 우리를 불로 가져가지 않아 돌같이 굳어질 수 없고 보존될 수 없다! 우리는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영원히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원히 머무는 것은 모두 공포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길에서 결코 안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의 원뜻은 고발인데, 영어 번역은 '애도'이다. 왜 애도라고 번역했을까? 애도 라는 제목은아마도, 어떻게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해 살려는 불안정한 인간상황에 대해, 그것이 신의 유희에 불과한 가 하는 무력감과 절망감을 표현하는 듯하다. 또한 이시는 기독교적이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해 불안과 원망과 동시에 소원도 표현하고 있다. 복잡한 양가감정적 심정의 표현이다. 454쪽
<유리알 유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시와 소설을 통해 헤르만 헤세를 알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작업이자 고단한 여정이지 싶습니다. 수많은 헤세 전문가들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것 역시 그 증명이라 하겠고요. 우엣든 <유리알 유희>는 표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신역동적 고찰 유희의 정신역동적 의미 어린이는 실컷 진지하게 놀다가 웃어버리고 그만둔다. 그리고 다음날 또 논다. 그러나 유희는 어른의 눈으로 보면 유치하고 불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인사회의 규칙을 습득한다. 유희는 어린이 자신도 모른 채 나중에 성인의 실제 삶에 대한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유희의 기억은 무의식에 녹아들어 인격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행동을 결정한다. 어른에게도 놀이는 필요한데, 이는 어린시절의 즐거움으로 도피나 퇴행함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어른은 놀이하는 동안 퇴행된 어린이 정신 상태에 있으나, 적절한 때 놀이를 그치고 현실로 돌아온다. 488쪽
독자들의 반응 일반 독자들에게 <유리알 유희>는 너무 길고, 복잡하고 이야기 자체도 지극히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어 읽는 재미가 부족하다. 또한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지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록 문학적으로 위대하다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별로였다. 그런 의미에서 <유리알 유희>는 소수의 식견 있는 독자들에게는 시대비평과 시간 극복을 의미했으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대단히 풍성하다. 495쪽
<유리알 유희>는 일반 독자인 제가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군요. 안도감도 생기지만 왠지 기분이 좀 상하네요. 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율리시즈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읽기 어렵지만 왠지 도전해야 하는 책을 만난 느낌입니다. 강하게 그런 생각이 드네요.
<헤르만 헤세의 진실>을 읽을수록 제가 헤세의 단편 단편만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책 본문을 읽고 혼자 생각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고요. 그리고 인간사랑 출판사에 감사하는 감정도 생겼습니다. 652쪽에 이르는 방대한 글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선호하는 독자가 과연 많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책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랑 출판사는 꾸준히 이런 류의 책들을 펴내고 있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진실>을 통해 충실하고 정성 가득한 출판사 하나가 고고히 그러면서도 세속적인 성공을 누리기를 기원하게 되네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사랑 출판사는 시세에 영합하기 보다는 읽는다면 세상이 좋아지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 같습니다. |
|
@헤르만 헤세의 진실 -우울증, 경건주의 그리고 정신분석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렸을때 형, 누나가 있는 친구집이나 나이 차 나는 이종사촌 형집엘 가보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책장의 이런저런 어려운 책들 사이로 시집 한두권, 혹은 누군지 몰랐던 헤세라는 시인이 있었군요. 그리고 그 한참의 사춘기적 격동기를 거처 저자처럼 비슷한 성장통을 겪으며 방황, 고민, 일탈 등의 시기를 관통하는 그시대의 시집들을 한장한장 넘기다보면 지금도 잊혀지지않는 '크놀프의 추억으로'로 읽히는 '방랑의 길에서'는 펼치는 시대의 표상처럼 자주 보았던 오롯한 기억이 납니다. 헤세는 끊임없이 부모에게 부모집을 떠나서 자유롭게 자신의 문학적 생애를 준비하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빈둥대다가 갑자기 집을 나가 살면서 부모를 당황스럽게 했다.(p. 120)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운 책들이란 학부1,2년의 절대과목들인 총론과 개론서들중 흔한 인간관계론, 민법총론 등 이었고 그렇게 접했던 다양한 저자의 시와 단행본들인 데미안, 도저히 읽다 포기한 유리알의 유희 등 중 일부는 내 팽게치듯 버림을 당하고 일부는 지금도 추억과 현실속에서 애정으로 들여다보곤 합니다. 내심, 딱악 to the 히 그렇게 명작이라는데..., 그러면서도 저자의 시 중엔 그의 멘탈을 대변하는듯한 '순례자' '안개' '기도' 등 중에 특히 '순례자'는 개인적 시선으로 저자의 전 생를 아우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로도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으로 시작하는 '행복해 진다는 것은'은 요즘도 블로그를 통해, 또한 혼자만의 사춘기를 추억케하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게하는 '젊음의 고개를 넘으며'는 읽을때마다 저자의 표현처럼 '다만, 그녀가 상냥하고 가냘픈 금발이라는 것 뿐'인 것처럼 개인적으로도 그 한때 가슴앓이하며 말한마디 못붙였던 한 학년 선배의 찰랑거리는 생머리 였었던 것 뿐 임을 풋풋했던 때로 기억하게 했습니다. 헤세는 평생 정체성 문제로 방황했다. 한편에는 아버지의 선하고 똑똑한아들로서의 정체성이 있고 다른편에는 아버지를 배반한 카인같은 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 헤세는 그 사이의 양가감정적 갈등속에 있었다. 이 두 정체성의 합일이 헤세 나름의 탕자의 귀환이 되고 자기실현이고 구원이 되는 것이다.(p. 253) 이번에 읽게 된 “헤르만 헤세의 진실”은 그런 인생 인연속에 사춘기 시절부터 들여다볼 수 있을 관심이 가고도 남음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전생애를 관통하는 고뇌의 산물인 삶을 통해 부모, 우울증, 정신병원, 종교적방황, 신학, 선교, 방황, 화가, 자살, 죽음, 고뇌 등은 그렇게 당시 곱슬머리인것도 불만스러웠던 내성적 사춘기를 촌스럽게 통과했던 개인적 기억을 소소하게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헤세의 전 생애를 들여다볼수 있기도하지만 많은 내용들중에 다만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헤세와 정신분석학자인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칼 구스타프 융과의 인연에대해 저자로 하여금 아버지를 대신하는 전환된 부형의 존재(p. 212, 219, 223,)로 인식하게 된 것과 후기로 넘어오면서 융의 정신분석에대한 분석 과정상의 학문적 비판과 존경(p. 388~9), 그리고 그 이후 프로이트로의 존경과 정신분석학자로서의 우호적 전환(p 121, 387)된 궁극적인 게기에 대해서 저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대한 애정과 학문적 깊에에대해 초창기부터 존경을 담았다는 결론을 알게 돼 반가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우울한 광기의 최종은 개인적으로 데미안의 서두속에 함축돼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오늘날까지도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진실로 내면의 자기로부터 우러나는 욕구에따라 살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아려웠던가?"(p. 253)는 안깐힘을 다해 버티고있는 저자의 정서적 위기를 대변하지만 어쩌면 전 지구인들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의 화살인 경제적인 문제의 복선으로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인류의 최대 장점이었던 친교나 동반자적 관계까지 파괴하는 코로나19같은 전염병 문제의 정적, 동적 위기까지 오늘을 살아가는 21세기 젊은이들에게도 비슷한 다른 형태로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21세기, 2020년 전반기 마지막 6월을 끈적하게 통과하면서 공동생활을통해 살아남은 사피엔스적 진화와 진보를 이룬 인류에게 또 다른 위대한 도전인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좀 다른 관점에서 이는 저자를 평생을 통해 고통속에 빠지게했던 문제들과의 인과관계적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헤세옹께서 데미안을통해 그토록 터부시하고 저주했던 모범적이고 평범함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것일지 해답이 보이는것 같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가치들을 위협하는 인류가치의 존재 자체를 담보한 지금까지 삶의 패턴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코로나19 이 후의 시대를 바라봐야하는것 같습니다. 이제는 고독을 좋아하는 인류가 돼야 하는것 같아요. * #헤르만 헤세의 진실 / 우울증, 경건주의 그리고 정신문석
#
#
|
|
요즘 젊은이들은 아마도 헤세가 우울증과 자살 생각에 사로 잡혀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살았다는 사실응 모를 것이다. 더군다나 목사의 아들로 청소년기에 성직가가 되기 위한 신학교 교육울 받다가 탈출하는 바람에 정신병원 입원했다가 중년에도 우울증에 걸려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은 헤세 자신도 숨기고 싶어하는 헤세의 진실 중 하나이다. 과연 천재 작가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진실된내면의 자기를 산다"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려운지,,, 고민해보자.
추천합니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인간사랑"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