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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 황석영 언젠가부터 드라마를 잘 안 보게 된다. 잘생긴 배우들이 나와도 왜 감흥이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 드라마가 그리는 모습이 너무 비현실적이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 속에서 개인이 맞닥뜨리는 돈, 가족, 친구, 연인, 결혼, 양육 등의 문제가 너무도 간단히 축소되거나 생략되는 드라마 판타지가 내겐 좀 어색하고 괴이하다. 드라마는 예전부터 줄곧 비현실적이었을텐데 내가 나이가 들어서...?이제와 달리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마치 드라마 판타지처럼, 한국 문학도 현실로부터 꽤 떨어져 있다. 보기 좋은 어여쁜 소설들이 주류를 형성한 반면에 노동이니 자본주의니 그런 말들이 섞여 들어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거북함을 느낀다. 어설픈 감성에 기대어 자본주의를 깎아 내리려 하며 실망만을 안긴 몇몇 작품들 탓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런 담론을 다룰 만한 배짱 지닌 이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창작과비평> 계간지 가을호에 실린 황석영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왜 이제껏 한국문학이 근대로부터 이어져 온 노동자 이야기를 다루지 못했는가 만시지탄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그간 느꼈던 갈증을 일흔 여덟 노년의 작가가 해소해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바로 황석영의 신간 <철도원 삼대>를 만났다. -나는 우리 근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몇몇 빠진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중략)... 대부분이 단편소설이거나 도시빈민 일용노동자 또는 룸펜 계층을 다룬 것들이며 산업노동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장편소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까지 쓰인 장편소설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농민을 위주로 한 작품들이었다. (p.615, 작가의 말) <철도원 삼대>는 영등포를 배경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이후,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증조할아버지 이백만-할아버지 이일철-아버지 이지산-이진오”로 이어지는 한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1. 이백만은 영등포 철도공작창의 노동자였다. 2. 이일철은 철도학교를 졸업한 조선인 기관수였으나 해방 이후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활동에 전념하다가 아내와 아들을 영등포에 두고 홀로 월북을 한다. 동생 이이철 역시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옥사한다. 3. 이지산은 아버지 이일철을 찾아 월북했다가 낙동강 전선의 기관수로 보내지고 포로로 잡힌 뒤 다시 영등포집으로 돌아온다. 4. 이진오는 그 피를 물려받기라도 한듯이 45미터 높이의 굴뚝 위에 올라가 해고된 노동자의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사백일 동안 장기 농성을 하고 있다. 이씨 가문 삼대(정확히는 사대)를 둘러싼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가 정말 지독하다. 출판사에서 이 책에 붙인 홍보문구 “한반도 100년을 꿰뚫는 서사의 힘”이 더없이 적절하다. 원고지 2,000매에 달하는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어느 가족 일화가 아닌 ‘생생한 한국 근현대생활사’를 읽고 있는 것만 같다. 마지막장을 덮으며 느끼는 이 먹먹함, 쿵 하고 떨어지는 무게감을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지독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조선 민중의 삶은 해방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는다.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이들은 이제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어 민중을 억압한다. ‘사회주의’는 일본과 미국 모두의 적이었기에 생존권 투쟁에 앞선 조선 노동자들에게 모두 빨갱이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그때 그곳에 조선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러니 굴뚝에 올라가야 했던 노동자 이진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돌연변이가 아니다. 그에게는 뿌리가 있다. -나는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것은 이지러지고 뒤틀리고 하면서도 풍우의 세월을 견뎌온 한국문학이라는 탑의 한 부분에 돌 하나를 끼워넣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p.616, 작가의 말) 역사는 선택적으로 발췌된 과거라서,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첨예한 과거사에 대해서는 안간힘을 쓰고 쉬쉬하려 든다.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를 공부하며 크게 충격 받은 내용들은 하나같이 ‘교과서 역사’로는 선택받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교과서에서 반듯하게 역사라고 배운 것들이 이미 뭉텅뭉텅 잘려나간 누더기 같다는 걸. 황석영의 서사는 잘려나간 한국 노동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역사 속에서 나란히 이어 주려는 치유의 시도이다.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 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p.617,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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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운이 좋게도 사전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간 직전에 가제본판으로 먼저 읽게 되었다. 본작품의 3분의 1정도를 간추려 만들었다는 가제본판임을 감안하고 읽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가 막 시작되려는 지점에서 끝나버려서 아쉬움이 많았다. (나중에 미리 예약구매를 해둔 본책을 받아보니, 가제본판은 본책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음 - 전체 619페이지 중 156페이지;) 그러나 가제본판 읽어봐도 이 작품이 얼마나 깊고 방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_첫페이지 시작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아파트 16층 높이와 비슷한 발전소 공장 건물의 굴뚝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용변을 보는 한 남자(이진오)가 있다. 25년간 공장 노동자로 일했지만 회사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그는 한달 전부터 이 곳에서 숙식을 하며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굴뚝에 설치한 도르레를 통해 농성 동료들로부터 식사를 비롯한 생필품 등을 제공받으며 사방이 휑하니 열려 있고 비좁은 굴뚝 위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그는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데 어느날 밤 그는 꿈결처럼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이때부터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진오의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3대를 거쳐 내려오는,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늘 존재했던 노동자들의 기나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을 읽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면, 3대 가족 구성원뿐만 아니라 워낙 다양한 인물의 이름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자꾸 앞페이지를 뒤적거리게 되는데, 따로 노트를 준비하여 가계도 등을 메모하며 읽는다면 이야기의 흐름을 더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오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 할아버지 이일철, 아버지 이지산. 3대에 거쳐 철도원으로 일했던 이들을 통해 일제 강점기 일제가 온갖 횡포를 부리며 건설했던,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철도의 슬픈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일제 식민지 조선의 백성이자 노동자이기도 했던 이들이 필사적으로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생생하게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진오의 작은 할아버지인 이이철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배움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과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꽤 상세하게 그려졌는데, 일제 강점기 시대를 지낸 우리 조상들의 이중 삼중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각 인물들이 가진 고유한 (일종의) 일대기를 황석영 작가답게 맛깔스럽게 풀어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이진오의 증조할머니인 주안댁의 무용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뭔가 전설속에나 있을 법한 천하장사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술술 풀어놓는데, '에이, 이게 뭐야' 하면서도 막상 손에서 책을 놓을 수는 없었다. _본격적인 이야기가 막 시작되는 부분에서 아쉽게 끝나버린, 워낙 짧게 잘라낸(?) 가제본판이어서 더 이상의 후기는 남기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뒷이야기가 더 궁금하다. 게다가 619페이지에 달하는 본책을 받고나니 더 그렇다. 짧은 식견이지만 이런 종류의 작품 -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장편소설 - 이 출간된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아마도 황석영 작가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_그리고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무심코 그냥 지나쳤을 뉴스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기사는 분명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355일 만에 ‘하늘감옥’서 내려온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 참고) http://naver.me/5WaCV5B6 _아직 본책을 읽지 않았지만 이리저리 살펴보다 책 뒷편에 인쇄된 글귀가 마음에 쏙 들어와 남겨본다.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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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님의 철도원 삼대 리뷰입니다. tv에서 리뷰를 보고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알아서 바로 샀습니다. 최근에 읽을 만한 묵직한 소설이 드물기도 했고, 제목에서 주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잘 읽히지가 않아서 좀 고생했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한반도 백년을 꿰뚫는다는 야심찬 작가님의 포부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중에는 인물 하나하나가 어딘가에 실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름 없이 가려진 한국의 노동자를 만나게 되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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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월의 네 번째
증조할아버지 이백만, 할아버지 이일철, 아버지 이지산, 그리고 나 이지산.. 그들의 삶이 관통한 한반도 100년의 역사.. 끊임없이 싸워왔던 아픔의 역사이다.그 아픔의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고 조금씩은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보기로 한다.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던 철도는 식민지 근대화 제국주의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세계의 근대는 철도 개척의 역사로 시작되었다. 나는 식민지 시기부터 분단된 후기 자본주의 세계화체제의 한반도에서 지난 백여년 동안 살아온 노동자들의 꿈이 어떻게 변형되고 일그러져왔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감춰지거나 사라졌지만 그들의 삶의 조건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인간의 인생살이를 꿈처럼 그려볼 생각이었다. 역사적 사실 보다는 개인의 일상적 일화들로 줄거리를 만들고 영등포를 중심으로 한 민담적 세상을 그려보려고 하였다. 역사적 사실들이 가끔 이러한 시도를 방해하기는 했지만 항일노동운동가들의 활동들 옛이야기식으로 다루었다. 가끔 정색할 때가 있었지만 결국 옛날이야기는 퇴색한 사진이나 골동품처럼 날카롭고 선명한 사실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것 같었다. (작가의 말 중)'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할아버지 이일철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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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원 삼대
"맑은 날, 폭풍의 날도 다 지나간다. 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져간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거다" (p44)
<작가의 말 > 『철도원 삼대』에 대한 구상은 1989년 방북 때 평양에서 만난 어느 노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그가 서울말을 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더구나 요즈음 표준어가 아니라 서울말의 옛날식 억양과 단어를 쓰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고 그는 '서울'이라고 대답했으며 다시 '서울 어디'냐고 묻자 '영등포'라고 대답했다. 영등포는 우리 가족이 1984년에 평양을 떠나 삼팔선을 넘어 월남하여 정착했고 내가 고등학교 시기까지 유소년기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그와 나의 영등포에 대한 추억은 둘 사이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이로 그는 전국노동조합 평의회 소속 철도 기관수로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그 노인과 만나 소주를 마시며 다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영등포 철도 공작창에 다니던 이야기며 그가 철도학교에 들어가던 이야기,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우리 근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몇몇 빠진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단편소설에 비해 훨씬 질과 양이 떨어지는 장편소설 부분과 그중에서도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는 점이다. 일제강점기에 잠깐 있었던 카프의 흔적에서도 대부분이 단편소설이거나 도시빈민 일용노동자 또는 룸펜 계층을 다룬 것들이며 산업노동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장편소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까지 쓰인 장편소설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농민을 위주로 한 작품들이었다. 나는 이 시기의 노동운동 자료들을 살피면서 식민지 시대 이후 조선의 항일 노동운동은 너무도 당연하게 사회주의가 기본 이념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생존권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했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되면서 수십 년 동안의 개발독재시대에 모든 노동운동은 '빨갱이 운동'으로 불온하게 여겨졌다. 우리가 기나긴 분단시대를 거쳐오면서 애초의 출발점부터 북한에 대하여 민족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남한 민중이 근대화의 주체가 되어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피와 땀으로 이룩한 정통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직 부족하고 미흡하다는 점에서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나과 북의 정통성 논쟁은 자제해야 할지고 모른다.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철도는 식민지 근대와 제국주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세계의 근대는 철도 개척의 역사로 시작되었다. 나는 식민지 시기부터 분단된 후기 자본주의 세계화체제의 한반도에서 지난 백여년 동안 살아온 노동자들의 꿈이 어떻게 변형되고 일그러져왔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감춰지거나 사라졌지만 그들의 삶의 조건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하였다. 또한 이것은 이지러지고 뒤틀리고 하면서도 풍우의 세월을 견뎌온 한국문학이라는 탑의 한 부분에 돌 하나를 끼워 넣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 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마 좀 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철도원 삼대을 덮으며》 삼대에 걸친 이야기로 이어지는 우리네 삶. 개인의 일상적 일화에 묻어 있는 이야기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인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2021년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은 100년 전보다 더 나아졌는가? 삶의 현장에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동은 삶의 원천이며 살아가는 힘이다. 격동의 시대를 겪으며 내일은 오늘보다 더 괜찮은 날이 될 거라고 믿고 믿으며 굽이굽이 넘어온 세월이다. 대한민국의 한 노동자로서, 한 엄마로서, 한 국민으로서 희망 고문이 아닌 희망찬 내일이 보이고 함께 행복을 꿈꿀 수 있는 그런 나라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약자를 보호하고 봐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밥은 펜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맴돈다.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에서 이일철과 아버지 이지산을 통해 그에게 전해진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삶은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속된다는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늘을 살아낸다.(P206~207)
《왜 이진오는 굴뚝으로 올라갔을까?》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평지를 탈출하여 허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름도 없고 가난하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저희가 겪은 억울한 일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길은 험한 상황을 버텨내는 길고 긴 과정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온 세상은 우리의 편이 아니며 겨우 한 발짝씩 아주 느리게 변할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잘 알게 되었다. (p407)
"세상이 변할까? 점점 더 나빠지구 있잖아." "살아 있으니까 꿈틀거려보는 거지. 그러다 보면 쬐끔씩 달라지긴 하겠지." "그래두 오늘 살아 있으니 할 건 해야지." 이전에는 여러 사람이 전염병에라도 걸린 듯 스스로의 몽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먹힌 결과였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해고는 살인이다.(p202)
"같이 좀 살자, 못된 것들아. 같이 좀 살아."(p410)
《철도원 삼대 필사》
p33.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비 오는 날도 있고 폭풍이 몰아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춥거나 덥거나 하여든 날씨란 별것이 아니었다. 지루하고 화딱지 나고 시시껄렁하고 슬프고 기쁘고 하는 마음의 변화 또한 하룻낮 하룻밤이면 지나가버린다.
그는 죽지 않고 여기 살아 있으나 세상은 그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아내조차도 그와 통화를 할 적에는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측근들의 소식을 전하듯 말했다. 이진오는 차츰 지상에서의 시간을 벗어났고 굴뚝의 일상은 이미 현실이 아니게 되었다.
P44.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거다"
P105. 조태준은 글자에 불과했으나 해고하고 회사를 넘겨버린 장본인이었다. 다섯 해의 복직투쟁 기간 동안 수백 번 외친 이름이었으나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얼굴도 인상도 모르는 상태였다. 서류 위에서 글자로만 익힌 이름이었다. 책에 의하면 그것은 자본의 추상적 기호에 지나지 않았고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침묵 속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다만 이진오와 그의 동료 노동자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그들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조태준에게 그들은 벽지의 흠집처럼 거기 있어 잠깐 시선에 걸리는 하지만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아 익숙해진 작은 흔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P110. 노동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P116. 세상은 쌀보다 돈이 더 필요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P126.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쪽은 역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무산자를 배경으로 한 사회주의 계열이라고 했다.
P213."세상일은 자꾸 되풀이된다는데, 그건 뭐 세상이나 사람이나 달라 지구 풍속두 달라졌는데도 그렇다는구나. 아마 사람 사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겉만 달라졌지 내용은 같다는 얘기겠지"
P364. 취업은 한다는 것은 그가 사회의 제도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
P412. 해고당했던 날이 생각나네. 갑자기 세상에서 쫓겨난 거 같더라구. 쓸모없다고 버려진 거잖아."
P415. 의견이 있는 노동자는 이 땅에서는 언제나 빨갱이가 된다. 수걱수걱 주는 대로 몇 푼 받고 일만 직사하게 하면 착한 백성이라고 한다. 노예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P585.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다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p588. "너무 표내지 말구 살아라."
p604. 깊은 계곡을 빠르게 굽이쳐 흘러가는 성난 물경의 소용돌이 같은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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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는 꽤 두꺼운 분량임에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주변에서 있을법한 살아있는 주인공을 내세운 황석영의 저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장편 소설입니다.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노동자들의 애환을 대변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백만의 증손이자 공장 노동자인 이진오의 이야기가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날에도 노동자들의 가슴아픈 사고가 끊이지않는 이때 많은 분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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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느끼지만 황석영 할아버지는 천상 이야기꾼이다. 티비에 나와 말하는 것만 봐도,,, 그러고 보면 작가들은 말도 참 잘하더라.. 떨지도 않고 말이야... 볼때마다 글 잘쓰는 사람들은 말도 잘하나보다며 감탄한다. 난 말을 잘 못하니,,, 그러니 글도 잘 못쓰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역사라는 커다란 수레바퀴는 굴러가며 이번에도 역시도 민중들의 삶을 어지럽힌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관련 소설이나 영화 볼때마다 매번 확인하게 되는 개인의 슬픔과 한 같은것 이번에도 또한번 아주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이 바라는건,, 단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것 뿐인데,, 시대는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언제나처럼 아주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야 만다. 나는 늘 세상을 등지고 정의보다는 내가 보고싶은 것 갖고 싶은것만 생각하고 살고있지만,, 가끔 이런 시대에 맞서는 사람들이 나오는 책이라도 보면서 만약 나였다면,,, 하며 가만히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계속 전쟁을 하고 있고,, 여전히 소수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힘없는 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작가는 그래도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다고 세상은. 그렇게 희망을 전하던데,,, 그 말이 맞겠지? 언젠가 나에게도 결정의 순간이 왔을때 내가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 |
| 글의 흐름을 모르고 무턱대고 열어서 읽기 시작한 처음 도입부는 너무 지루했습니다. 그런데 잠들기전 이상하게 하루하루 조금씩 읽게 되더니 결국 근 석달만에 완독을 했습니다. 사실 두달 반정도 걸려서 앞에 1/3 정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지나면서 부터 재미를 느낀거 같네요. 그 이후엔 후다닥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게 되더군요. 중요한건 꽉 짜여진 내용의 글을 앞뒤 퍼즐을 맞춰가며 읽는 즐거움을 다시한번 일깨워준 아주 소중한 작품이라는 겁니다. 황석영 작가의 다른 글들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소중한 경험을 되새기게 해준 작가의 글솜씨에 다시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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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소설을 개밥바라기 별 이후로 읽지 못했다. 그 때 읽었던 개밥바라기 별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해서 나의 대학 생활이 한 권의 문학책으로 기억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뿐이다. 그 이후로 황석영 소설을 읽어 보고 싶어했는데, 볼 수 있는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 철도원 삼대라는 책을 보게되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철도원 삼대는 이 땅의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그들의 시린 삶의 역경을 대변 해주는 듯 하다.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삶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심리적인 묘사도 훌륭하고 내가 대학 때 느낀 개밥바리기 별의 감동을 30대가 되어서 노동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앞으로도 황석영 관련 작품이 나오면 꾸준하게 읽어보아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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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읽고 싶어하셔서 선물해 드릴려고 구매하였습니다.
배송이 엄청 빠르게 왔어요. 깜짝 놀랐네요. 저는 읽어 보지 못했지만, 왠지 철도원 삼대라는 제목만 보아도 뭔가 삶에 대한 고뇌와 역경이 묻어나 있을 것 같네요. 아버지께서 다 읽으시면 저도 한 번 읽어 보려고 생각 중 입니다. 책을 많이 보아야 하는데 예전처럼 책을 보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 같네요. 철도원 삼대를 계기로 책이랑 다시 친해지려고 노력해 보아야 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