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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백선엽 장군이 타계하면서 장례식이 대전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되었다. <백선엽을 말한다>는 백선엽 장군의 일생에서 전반부를 그린 평전이다. 일제시대에 궁핍한 가난속에서 태어나 부친없이 자란, 말이 없고 명석한 소년. 어릴때부터 독서와 사색에 골몰하던 소년은 청년이 되어 군문에 들어간다. 만주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던 중 조국해방을 맞아 민족주의 지도자로 이름높던 조만식 선생의 비서가 되었으나 당시 북한에서 틀을 잡아가던 소련식 공산주의와 소련을 등에 업고 권력을 쥔 김일성으로 인해 월남하면서 미군정이 만든 군사영어학교에 들어간다. 혼란한 해방정국에서 백선엽은 임관한 이후 꾸준히 군대를 훈련하고 군사전법을 연구하며 맡은 소임에 충실했기에 미군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조만식의 비서로 있을 당시 김일성과의 짧은 만남이나, 정보국장이 되어 숙군작업을 할 때 남로당 군사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박정희 소령(훗날 박정희 대통령)을 구해준 일 등은 한편의 영화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숙군, 즉 군대에서 좌익을 척결하는 작업이 없었더라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눈앞이 아찔하다. 6.25는 준비없이 맞은 전쟁이다. 북한은 소련의 지원과 중공의 뒷받침으로 치밀하게 남침준비를 했다. 개전 초반에 북한군의 공세에 힘없이 밀렸던 국군의 사정을 감안해보면 숙군작업은 대단히 중요했다. 숙군작업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 군대는 더 빠른 시간안에 더 철저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p.130 백선엽은 숙군을 성공리에 마친 후에 일선지휘관이 되어 광주로 내려간다. 당시 전라도에는 빨치산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무장한 빨치산이 대한민국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남에서 준동하던 빨치산을 와해시키고나서 국군 1사단 단장이 된 백선엽. 그러나 불과 두 달 후에 6.25가 발발한다. 백선엽은 '군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없다'고 했다. 병력, 화력, 보급물자 외에 끝없는 훈련이 쌓여야한다는 말이다. 밀고 내려오는 북한군에 서울이 함락되고 결국 1사단은 철수하고 후퇴해야했다. 전쟁터에 미군이 투입되었으나 낙동강까지 밀린 국군은 이제 마지막 일전을 벌여야했다. 배수진을 친 다부동에서의 혈전. 양쪽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혈투였고 대격전이었으나 그 속에서도 백선엽은 미군의 준비성, 병력배치, 조직력, 전법을 배워나갔으며 마침내 다부동에서 북한군을 격퇴했을뿐만 아니라 덕분에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데 일조하면서 평양공격의 선봉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을 눈앞에 두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후퇴, 그리고 미국과 중공(중국)이 휴전을 희망하면서 휴전회담이 성사되는데 물론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우리 민족에게 통한스럽게도 휴전은 성립되고만다. 다만 이 때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전격적으로 석방해버렸으니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가 놀란 뉴스였고 참으로 속이 시원한 쾌거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자유와 민주의 틀을 놓았다면 뒤에서 미군과 교섭하면서(한미상호방위조약 등) 국군의 현대화와 증강에 힘을 쏟은 사람이 백선엽이다. 그의 리더십, 품성, 능력이 곳곳에서 빛을 발했고 신생 대한민국이 전쟁이 상흔을 딛고 다시 일어나 성장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백선엽 장군의 공로가 참으로 크다하지않을 수 없다. 서울현충원에서 국장으로 장례를 치러야 마땅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게 친일프레임을 씌우고 멋대로 폄하하는 지금의 작태를 보면 이 땅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느라 목숨을 희생했던 분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이 죄송할 따름이다. 그분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유지될 수 있었건만. 백선엽을 친일파라 매도하는 이들은 왜 백선엽을 그토록 미워할까? 답은 일전에 모방송에서 백장군은 6.25때 '우리 민족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라고 했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의 수렁에 빠지지않도록 굳건히 지켜냈기에 그토록 미워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걱정인 것은 오히려 지금이다. 그 때는 미군이 있었고 유엔군이 있었다. 그러나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미국과 중국은 우리나라가 분단된 그 상태로 휴전을 맺어버렸다. 물론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백선엽 평전을 읽으면서 그 때는 백장군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지금은?하는 걱정과 우려가 머리속을 떠나지않았다. 어쨌든 백선엽은 그의 일생을 자신이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세상을 떠난 분이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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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을 전쟁기념관을 방문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은 아주 단편적인 것이어서 안다고 할 수 없었다.ㅠㅠ “백선엽을 말한다”를 통해 장군의 면모를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었다. 딱 이 책 한 권으로 만났기에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큰 줄기를 중심으로 이제는 정의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부제는 “삶과 죽음 속의 리더십“이다. 저자 유광종 님은 10년 이상 백선엽 장군을 인터뷰하면서 6.25 관련 기록물을 남겼다고 한다. 저자의 기록을 따라가보자. 백선엽 장군은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유년을 보냈다. 덕흥리 고분이 유명한데 박물관에서 책에서 본 적이 있어 그 덕흥리가 맞는가 찾아보니 맞다. 고구려의 유적지에서 고구려의 강한 기운을 받으며 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이겨내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도서관에서 책 읽기를 좋아했던 말이 없던 아이. 그 아이를 저자는 애늙은이로 표현한다. 외 할아버지는 방흥주로 구한말의 군인이었으며 참령이라는 계급까지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외 할아버지의 초상을 보고 자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간도 특설 부대에 부임해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친일에 대한 논의로 자주 등장하는 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자세하게 또 깊게 다루는 부분이 아니라 언급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한 권으로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ㅠㅠ 일본의 항복 이후 평양으로 다시 돌아와 조만식 선생의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주변의 정세를 보니 김일성이 입지를 단단하게 굳히고 있었다. 그래서 남한으로 향하며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한다. 부산에서 근무하며 미군들로부터 그들의 전쟁과 전술 무기 등을 다양하게 책을 통해 익히며 연구하게 되는데 아마 끊임없이 배움을 쫓았던 것 같다. 배우며 익히며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에 나중에는 실전에서 대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군은 철저하게 평가 중심으로 한국의 군인들을 다루었는데 그 최상의 라인에 백선엽 장군이 있었다. 중간에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번의 인연도 등장하고 이승만 대통령과의 에피소드 그리고 아이젠 하워, 밴 플리트 장군과의 이야기 등 재미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소설 같은 삶을 살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한국전쟁 시기 힘들었던 고난의 시기와 이후 승승장구하던 시기까지 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위인전을 읽는 기분이었다. 모르던 면모를 볼 수 있었지만 다른 작가들의 쓴 다른 입장에서 바라본 백선엽 장군도 알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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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백선엽 예비역 대장에 대한 기사가 종종 올라와서 관심있게 읽곤 합니다. 요즘 올라오는 기사의 핵심은 1920년 생으로 이미 백 세인 백 장군의 사후에 현충원 안장 문제입니다. 여권에서는 백 장군이 과거 친일 행적이 있다며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고 있고, 반면 야권은 전쟁 영웅인 백 장군을 대전현충원이 아닌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백선엽 본인도 현충원에 안장해 달라고 말하고 있죠. 이 책은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이자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저자가 살아있으면서도 현충원 안장 논란 중인 백선엽 대장의 삶을 긍정적 측면에서 다룬 평전입니다.
백선엽의 가장 큰 치적은 무엇보다도 낙동강 전선 다부동 전투라고 하겠습니다. 수십 번 주인이 바뀌고 수천 명이 넘게 사망했다는 낙동강 전선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 고지의 사수로 대구를 지켜냈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이어지는 반격의 기반을 놓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후의 전공도 화려해서 북진 뒤 평양 최초 입성과 중공군과 성공적인 조우전, 중공군 치하 서울 탈환 그리고 기동전 방식 중공군 막바지 공세를 꺾고, 휴전회담 한국군 첫 대표를 역임한 뒤 지리산 일대에 준동하며 유엔군 보급선을 위협하던 빨치산을 근절했습니다. 이러한 군공으로 곧 육군참모총장에 올랐고, 최초 대장 진급이라는 기록도 수립했습니다.
요즘 논란되는 친일 행적의 핵심에는 만주군관학교 입학과 간도특설대에서의 활동을 들 수 있습니다. 본인도 1993년 일본에서 출간된 회고록 ‘간도특설대의 비밀’에서 우리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고,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며 그는 자신이 조선인을 토벌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간도특설대가 공격했던 '동북항일연군'은 엄격하게 말하면 중국 공산당의 지휘를 받는 부대로 엄밀한 의미의 '독립군'이라고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나마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 관동군의 강력한 토벌에 밀려 이들은 1940년 이후 소련 영토로 넘어간 경우가 많아서 백선엽이 간도 특설대에서 활동하던 1943년에는 이들이 벌써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으며 본인 스스로도 특설대에 있을 당시 특별한 작전 대상이 없어 부대 전체가 베이징 인근까지 진출했으며 대개 공산당 계통의 홍군을 추적했고, 그나마 교전하는 경우도 드물어 정보 수집 등에 종사했다고 회고한다고 합니다. 그럼 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해서 일본군 장교가 되었을까요? 백선엽은 한반도 강점 이후 세계 극강으로 향하던 일본의 힘이 어떤 지를 제대로 알고자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최근 논란에 대해서 찬성과 반대 어느 쪽 입장을 가지더라도 백선엽이 한국사에, 특히 한국군과 6.25에 미친 영향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이 책이 백선엽을 옹호하려는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백선엽에 대해서 이만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는 책이 없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각으로 읽어 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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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영웅 백선엽, 그는 1920년생으로 올해 101세십니다. 건강이 정정하지는 않으시고 건강이 안좋다고 하면서 정치권에서는 현충원안장에 대한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경력상으로 현충원안장은 너무도 당연한 건데, 여당에서 그의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일제대 독립군 토벌을 한 만주군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했던 이력때문입니다.- 책에는 이 시기에 대한 백선엽 시각의 기술이 있습니다. - 올해가 625 70주년이라고 합니다. 남북상쟁의 비극인 민족끼리 골육간의 비극을 낳은지 70주년이 되는겁니다. 그 당시 낙동강전투의 영웅으로 33세의 나이로 육군대장에 오른 그를, 정치색을 떠나서 <백선엽을 말한다>로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클 겁니다. 저자 유광종은 중앙일보에 2001년 입사를 해서 논설위원으로 퇴직을 하신 분이십니다. 기자시절에는 문화부, 사회부, 국제부, 중국권 특파원등을 거쳤습니다. 현재는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을 맡고 계신 중국전문가이기도 합니다. 백선엽장군의 책은 2009년 장군을 인터뷰하기시작하면서 10년간 이어지면서 <백선엽장군의 6.25 징비록> 을 완간했습니다. 이 정도면 박선엽장군 전문가라고 해도 될 듯합니다. 이 책은 백선엽이 태어나기전 그의 부친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합니다. 거의 110년전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현재는 가볼수없는 땅 평양인근이야기가 시작입니다. 똑똑했던 백선엽은 평양사범학교에 진학을 합니다. 지금의 중고등학교를 합쳐논 학교로 5년제로 이곳을 졸업하면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양성학교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면 각 지역의 4년제 교육대학을 나와야 하지만 그 전에는 교육대학이 2년제였고 일제시대에는 5년제 중고등학교였습니다. 박정희가 대구사범으로 군관학교를 나왔던 점이 두분의 공통점이네요. 그는 보통학교 교사(지금의 초등학교)로 가야하는데 가지않고 일본의 문물을 배우기위해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교를하게 됩니다. 여당에서 간도특설단 경력은 그 당시 독립군의 활동은 미미해서 주로 중국군 군벌들과 싸웠던 것으로 피해갔고 백선엽의 싸움상대는 중공군에서 45년 소련군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해방이 곧 닥칩니다. 그후 평양에서 독립운동가 고당 조만식선생의 비서가 됩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권력이 굳건해지자 백선엽은 서울로 탈출을 감행했고, 미 군정치하에서 군사영어학교다닌후 부산에 위관급 장교로 부임을 합니다. 그는 연대장까지 순조롭게 승진을 합니다. 제주4.3때 제주도에 있었는데 바로 서울로 발령을 받아서 제주진압과는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그를 서울로 이끌어준것은 미군이었다고 저자는 추측합니다. 그는 박정희전대통령을 사형수에서 구해준 이력이 있네요. 한국군 소령이었지만 그는 남로당군사책이었던 것이 밝혀져서 사형이 집행되어야 했는데 백선협이 구해준겁니다. 백장군은 지금도 박정희가 일으킨 516을 찬성하지않지만 그가 이루 경제적 성공은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군이 된이후 후방에서 미군에게 훈련을 받았고 정보국을 세우는 등 한국군의 토대를 현장에서 맡은 인물입니다. 그의 스타일은 때를 기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미군이 빨치산토벌지시를 내리면 그는 바로 군대를 움직이지않고 군대를 훈련시키면서 작전지역의 주민들을 만나 설명하고 견해를 묻고 협조를 구한후에 토벌을 수행한다는 겁니다. 625전쟁이전까지는 국군의 토대를 잡고, 빨치산토벌이 주업무라고 봐도 되겠죠. 운명의 시계는 625로 달리며 1950년 4월 백장군은 29세나이로 1사단장으로 부임을 합니다. 대령신분이었습니다. 625전쟁은 터지고 급속도로 쫒겨서 낙동강까지 국군은 밀립니다. 그때 백단장이 꺼내든 전술은 지연전이었습니다. 기다리는 겁니다. 미군이 올때까지 준비를 하면서 말입니다. 드디어 부산에 미군이 상륙을 하고 그는 별을 답니다. 백선엽의 1사단은 북한국 주공을 대적합니다. 9천의 병력으로 북한국 3개사단과 전투가 시작됩니다. 김일성은 815일까지 전쟁을 끝내라고 하달합니다. 낙동강전투는 처절해서 하루에 700명이상의 사상자를 만들었습니다. 다부동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꺽으면서 전세를 역전되고 맙니다. 그후 북진을 하던 국군과 미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리기 시작합니다. 이승만이 휴전협상의 불만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것에 대해 중공군이 매우 반발했는데 그 이유가 중공군포로가 중공이 아닌 대만을 선택하면 바로 적에게 2개사단을 헌납하는 것이고 세계에게 대만을 행선지로 택하므로 중공의 위신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합니다. 백선엽장군의 전과는 1953년 7월 금성 돌출부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는 미군이 참여하지 않은 오직 중공군 24만대 국군3개사단과의 전투로 2.4배의 병력차였지만 중공군이 6만6천명의 희생자를 내고 패퇴했고, 이는 국군의 성장을 뜻하는 전투였습니다. 백선엽은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군사학을 전수받았습니다. 특히나 2차세계대전을 승전으로 막 이끈 세계최고의 군대에게서 군사기술을 직접 전수받았다는것이 특징입니다. 그는 미군에게서 인정을 받았고 지원도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로튼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의 회고록에서금성돌출부전투의 성공을 보고, 한국군의 성장에 놀라움을 표했고, 미8군 사령관 테일러장군은 백선엽을, 냉정하고 깐깐하고 철저하게 타산적이라고 표현합니다. 백선엽장군이 군을 떠난것은 1960.5월 연합참모회의 의장으로 보입니다. 그후 그의 인생은 중국, 프랑스, 캐나다대사를 거쳤고 박정희시대에 교통부장관을 역임한후에는 1980년도까지 기업체 사장을 지내시고 1990년까지 기업체 고문을 하시다가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를 단순히 43년도 22세의 나이에 만주군소속 장교이어서 친일파로 공격할것이지 아니면 1950년 625의 영웅으로만 칭송할지를 떠나 군인이 아니었던 그가 인간 백선엽이 70세까지 기업체 사장과 고문으로 끊임없이 활동할 수있었던(물론 90년까지가 딱 정치군인의 시대였습니다^^) 그의 리더십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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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는 나에겐 익숙한 인물이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은 동 저자의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고 저자에 관한 정보를 조금 검색해봤기 때문에 중국과 한자에 관한 학식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백선엽 장군과 많이 관련돼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저자는 2009년부터 백선엽 장군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이후 10년 정도 동안 인터뷰를 계속하면서 관련 기록을 여럿 남겼는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1~3권), '백선엽 장군의 6.25 징비록'(1~3권) 등 백선엽 장군의 자서전의 정리에 많은 관여를 하였다.(총 8권) 그러면 이쯤에서 백선엽이 누구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백선엽은 누구인가? 그에 관해 현재 주목할 수 있는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친일'이라는 간판이다. 그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친일파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경우에는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정보를 가진 후에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와 더불어 광복 전후 상황과 6.25 당시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느낀 여러 상황들이 있었다. <첫 번째, 서로 다른 분위기의 소련군과 미군> 그가 평양에서 본 소련군의 인상은 전체적으로 음울했다. 얼굴이 어두워 보였고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옷감으로 만든 군복을 입은 채 군기마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평양 시내에서 민간인들에게 시계를 빼앗아 여러 개를 팔뚝에 걸고 자랑하는 소련군의 모습이 그가 인상 깊게 남은 이미지다. 그가 처음 대한 미군의 모습은 서울에서 지프차에 타고 있는 미군들이었다. 언뜻 보기에 질 좋아 보이는 군복, 입을 크게 벌리고 씹고 있는 껌, 손가락 사이에 끼워 뻑뻑 피워대는 담배 '럭키스트라이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처음 본 미군은 생기가 있어 보였으며 발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자유분방함이 넘쳐 어느 정도는 경박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두 번째, 광복 직후의 혼란스러운 '서울'> 1945년 9월, 그가 본 서울은 혼란 그 자체였다. 소련과는 다르게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가지고 방임적인 태도를 취했던 미군 군정 하의 남한은 어지러운 정국이었고 서로 피 튀기는 잔인한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다. 평양에 비해 서울은 활발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치적인 분위기는 혼란스러웠다. 그는 좌익과 우익이 편을 나눠 행진하면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특히 파고다 공원(지금의 탑골 공원) 앞에서는 서로 심한 다툼을 벌이고 있던 것을 본 적도 있다. 사람과 단체들이 서로 주도권과 실익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며 서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었던 어지러운 정국이었다. 군 분야에서도 시끄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광복군이나 일본군, 만주군 등 출신별로 서로 단체를 만들어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참고로 당시 군사 경력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해 활동을 벌이고 있던 단체는 30개가 넘었다. <세 번째, 광복 후 6.25 전후의 열약한 한국군> 미 군정청은 앞으로 필요한 군사 분야의 인재들을 육성하기 위해 군사영어학교를 만들어 운영했다. 미 군정은 하루빨리 군사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준사관 이상의 군사 경력자를 모집(+중학교 이상의 학력 소지자) 하였고 군사훈련 과정은 생략하였다. 교육 기간은 20일 정도였고 간단한 군사 영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처음 만들어진 한국군은 군대라고 모였지만 군대라고 하기에 많이 부족했다. 지금의 대한민국 군대처럼 전투복이나 녹색의 군복이 아니었다. 일본군이 입었던 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사병, 거의 민간인 복장에 가까운 옷을 입은 사람 등 복장부터 가지각색이었다. 무기는 일본군이 쓰던 총이 주류였다. 이 외에도 운명의 장난인지 6.25 전에 스쳐 지나가듯 만난 김일성, 5.16 전 박정희와의 인연도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였다.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고 말하긴 하지만 6.25 때 우리 대한민국 상황은 정말 존폐의 위기가 있었다. 만약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철수해 버릴 것이고 혼자 남은 한국군이 제주도까지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까? 그 후 제주도에만 남은 남한은 대만처럼 섬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대만에 비교하기에는 대만의 면적이 훨씬 크다. 아니면 제주도마저도 지키지 못해 한반도 전체가 북한이 되었을까? 그런 가정을 할 때면 6.25 상황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다. 백선엽은 광복 후 그리고 6.25 전쟁 때의 대한민국 역사의 크고 작은 장면에 연관이 많이 되어있다는 점에서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이 책이 도움이 된다.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광복 전후와 6.25 상황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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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현재 전쟁이 끝난 종전 상태가 아니라 않고 잠시 멈추어진 휴전 상태입니다. 과거에 비해서 북한의 위협이나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 위험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을 만큼 남한의 힘이 커진 것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현재와 반대로 북한이 힘이 더 강해졌으면, 생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남한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6.25전쟁에서 북한에 대항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준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수 많은 용사들 중에는 무명의 용사들도 있었고, 공로에 비해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중의 한 명인 백선엽 장군도 포함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백선엽 장군의 업적과 능력을 이 책을 통해 알림과 동시에 이 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책은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배우고 익히어 틀을 이루는 과정을 먼저 이야기 한 뒤에 전쟁에서 적과 싸우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전쟁 이후의 이야기와 명장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백선엽이 어린 시절에 어머니, 누나 그리고 여동생과 힘겨운 생활을 하였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 때 어머니가 존경하였던 군인이며 참령이라는 계급까지 하신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게 됩니다. 백선엽의 아버지도 전쟁놀이를 하는 도중 외할아버지의 눈에 띄어 혼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백선엽은 외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대한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공부를 하여 진학한 사범학교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보통학교의 선생 대신에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 군인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싸움의 기초를 배우게 되고 외국의 힘이나 움직임들도 알게 되기 시작합니다. 일제 시대를 생각한다면, 특별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존재가 있었기에 드물게 준비된 군인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가 지휘관으로서 능력은 책에 너무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정도 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그런 능력을 배우려는 노력도 있었겠지만, 타고난 기질도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지휘관으로서 전통적인 전략, 전술은 물론이고 비, 바람, 폭염이나 혹한과 같은 천운의 조건도 잘 활용할 만큼 민감하였다고 합니다. 적에게 이기기 위해 아군이 필요한 것을 먼저 파악하여 훈련하고 준비하는 것, 서로 으르렁대던 경찰과 군의 관계 개선을 이끌어 내는 행동, 민심을 얻기 위한 노력 등 단순한 군대의 전력으로 적을 이기는 것을 넘어 진정한 국가의 지휘관으로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항상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갈고 닦았던 그는 진정한 국가적 영웅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100세를 맞이하는 백선엽님이 병상에 계시다고 하니,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국가나 국민들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받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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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장군 백선엽을
기억해본다.한국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리더십의 백선엽을 조명하고 있다.대한민국 최초 4성 장군 최초 평전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자.중앙일보 외교안보 선임기자 유광종의 시선으로 적고있다.그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분분 하지만 저자가 보는 관점에서 그를 조명해 보고
싶다. 식민지 통치의 굴레를 벗어나면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인물들도 있었지만 해방이라는 안도감보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많았다. 격변기 소련과 미군의 개입으로 나라는 38선을 기점으로 둘로 나뉘고 한국전쟁 이라는 참상을 당하게 된다.장군 백선엽은 이 시기 전쟁의 총칼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한 명장으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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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과거의 이야기를 두고 후대들은
자기 나름의 해석이 있지만 결코 겪지 않은 전쟁에 대한 경험없이 떠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의 참혹한 곳에서 지휘를
맡은 장군의 심정은 어떨까? 정권이 바뀌면서 친일이라는 족쇄도 채우는 이들도 있지만 아버지 세대의 그의 행적은 기록으로 말해준다. 요즘 삶이
전쟁터이다.
우리의 상흔은 이미 70년의 전쟁이 겉보기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 아직 38선을 기점으로 대치 상태의 연속이다.역사는 감정의 기복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냉정하게 보고 기록되어야 한다.소년 백선엽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다.일제 강점기 힘들었던 가정사를 이 책에서 적고있다.굶주림에 가난에 허덕이다.일곱 살 즈음 아버지가 떠나버린 빈자리를 삼남매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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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속에 리더십은 그때
부터였다.선엽은 공부를 잘했던 모양이다.학생 선엽은 평양사범을 지원한다.당시 머리 좋은 엘리트들이 갈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었다.고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 식민지 관료 생활을 하는길,군인으로 나서는 길,그 중에 선호했던 것은 중학교나 초등학교 선생을 직업 삼는 길이었다.사범학교는
정부에서 학비를 대주고 있어서 가난한 가정의 엘리트들이 이를 선망했다. 무인(武人)집안의 DNA가 흐르는 선엽은 이 후 6.25전쟁에서도 기록적인 승리를 쌓게된다.일제 강점기에도 그는 잃어버린 조국을 생각했고 만주에서 일본의 힘을 읽는다.사범학교에서도 군사훈련을 받는다.청년 선엽은 더 나아가 영어를 공부하게 된다.일본인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는 만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일제 치하의 삶에서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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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사범학교를 마칠 무렵 그는 선생이
아닌 만주군관학교로 생각이 바뀌었다.여기서 싸움의 기초를 배우게 되고 군인의 길을 걷는다.육군 전술 전략과 무기 다루는 법을 비롯해 일본이
이룩한 모든 군사기초를 습득한다.그는 뜨는 미국과 지는 일본을 느낀다.중국상공에 B-29가 나타났으나 일본군 88식 75mm고사포 로는 고도에
도달하지 못했다.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일본과 만주군대는 무장해제 된다. 다시 소련과 미국의 대치상황이 이어지고 고향 평양으로 돌아온 선엽은 세를 읽기 시작했고 조만식 선생의 비서와 김일성을 만나게 되는 것 박정희와의 만남과 한국전쟁의 지휘를 하게 되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볼 수 있다.지금 생각해보면 처형 열흘을 앞둔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면 또 그를 생각해주지 않았다면 여러 생각들이 나지만 결론은 살려주는 쪽이었다.그리하여 전 후 5.16이라는 일대 사건의 조건을 만들어주는 역활을 제공한 셈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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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자만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백선엽은 좋은 군인이었다.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부산의 교두보 낙동강전투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지켜낸다.다부동
전투에서 위기속의 리더십을 배우게된다.죽음의 목전에서 나라를 지켜낸 수많은 병사들의 희생과 이름과 계급없이 죽어간 학도병들 숭고한 정신을
기려본다.
6.25 한국전쟁 70년의 세월을 맞이한다.이 시대에 백선엽을 평하는 것은 어쩌면 한 고령의 노병을 우리가 감히 검증할 자격이 있는가이다.그는 뼛속까지 군인이었고 정치가는 아니었다.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의 무사안일주의에 빠졌다면... 단지 용맹스런 대한민국의 뛰어난 지휘관 군인이었던 백선엽을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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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님은 평안남도 태생으로 평양 인근 마을에서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일곱살 때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아내와 3남매를 남겨두고 홀로 집을 떠났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의 기억은 남아 있지도 않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는 앞이 막막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했습니다. 다섯살 차이 나든 그의 누이가 울며 매달리며 그냥 죽을 수는 없다. 몇년만 더 살아보자 라고 어머니를 설득하였습니다. 백선엽은 행동이나 언행이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몸은 아이였지만 머리와 마음은 어른보다도 더 어른 다웠다고 해야 할까요? 25P 군인의 길은 숙명이었다. 『선엽의 외조부 이름은 방흥주, 구한말의 군인으로서, 참령이라는 계급까지 올라선 인물이었다. 참령은 말하자면 평안남도 주둔 사령부의 부사령관쯤 되는 계급이다. 꼿꼿한 성품에 군인으로서 강직한 성격이었으며, 행동거지가 진중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맏았다고 그의 어머니는 유년의 선엽에게 자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 그의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초상을 만들고 잘 보이도록 안방에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곤 외할아버지의 살아계셨을 때의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고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백선엽은 어머니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있었습니다. 이 계기로 백선엽은 군인의 길에 들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존경받던 외할아버지를 백선엽은 동경하고 있었고 군인은 무엇이며 어떤일을 하는지 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는 지에 물음표를 던지며 의식 하고 있었습니다. 157P "백선엽은 뭐하는 지휘관이냐" 『 백선엽은 여순 사건에서 돌아와 숙군 작업을 마무리 짓고 다시 5사단장을 맡아 지리산 공비 토벌에 들어갔던 것인데 (전임자인) 김백일과는 달리 작전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꽤 오랫동안 묵묵부답인 채로 있었다. (군사 고문단장인) 로버트 장군은 '백은 어떻게 된거냐'고 』 그렇습니다. 백선엽은 명령을 받고선 바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렸습니다. 작전이 성공 할 때까지 부대를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고 대신에 부대를 훈련 시키고 주변의 있는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협조를 구했습니다. 백선엽을 잘 몰랐던 로버트 장군은 일을 잘 못하는 지휘관으로 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때를 기다리며 훈련을 지속하였고 주변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 가며 적들이 숨을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그 작전이 성공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명령에 의한 복종만 했더라면 적들을 물리 쳤을 수 있었을까요? 어떤 것이 이 작전에 효과 적인지 생각하고 움직이는 백선엽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86P 왜 그를 명장이라 부를까 『 백선엽을 다루는 이유는 간단하다. 70년 전 벌어진 이 땽 위의 전쟁에서 그는 가장 두드러진 야전의 잔사였고, 모든 유무형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최고의 승부사였기 때문이다. 꼭 내가 나서야 할 싸움에서는 전력을 기울일 줄 알았던 승부사로서의 백선엽은 한국 사회의 커다른 연구대상이다. 』 6.25는 우리나라가 2개의 나라가 되어 각 자의 삶을 살게된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려고 애썼지만 애석하게도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져 버렸습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하게된 그들에게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학교 다녔을 때 교과서의 글로만 읽었었고 영화에서 다루어진 것을 봤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 들어가 있지 않았기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라는 소리를 듣고 사단장 자리를 물러선 백선엽은 예비역의 군복을 입고 군대로 갔습니다. 뼛속까지 군인이였습니다. 결코 물러 서지 않았던 백선엽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았을까요? 검색을 해보니 약간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때의 문제로 친일을 했던 자로 적힐 것인가.. 아니면 6.25 전쟁에 나선 우리나라의 영웅인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던 군인으로서의 전략적인 리더십은 인정할 만합니다. 전쟁의 여파는 컸고 백선엽도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 버렸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