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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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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은 무엇인가신정론(神正論)은 "신(theos)"과 "정의(dikee)"를 의미하는 두 헬라어 낱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말로서,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성경 속에서도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신정론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직접 사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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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은 무엇인가

신정론(神正論)은 "신(theos)"과 "정의(dikee)"를 의미하는 두 헬라어 낱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말로서,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성경 속에서도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신정론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직접 사용한 것은 루터란이요 철학자요 자연과학자였던 라이프니츠로 알려져 있다. 라이프니츠는 1670년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인간의 자유>(Von der Allmacht und Allwissenheit Gottes und der Freiheit des Menschen)라는 논문을 통해 본격적인 신정론을 다룬 이후 1710년 <신정론: 하나님의 정의, 인간의 자유와 악의 근원에 대하여>(Essais de Theodicée)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 용어를 다루고 있다. 이후 이 용어는 신의 정의(正義) 문제를 다루는 이론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정론은 신에게 능력과 선함을 동시에 귀속시키려 하는 모든 형태의 유신론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세계적 천재들이 씨름한 신정론

신정론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딜레마로 표현될 수 있다. '하나님은 악을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않거나, 아니면 막으려 하지만 막을 수 없거나 이다.' 여기서 만일 후자가 옳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고, 전자가 옳다면 그는 자비하지 않다는 논리가 된다. 여기에 신정론의 일반적 딜레마가 있다. 악의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실 철학의 플라톤 때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가장 역설적 형태의 신정론은 기독교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독교가 창조의 선성을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십자가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악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접근한 이후 루터와 칼빈 그리고 라이프니츠를 거쳐 이후 임마누엘 칸트, 헤겔, 화이트 헤드, 칼 바르트, 포사이스(P. T. Forsyth, 1848-1921), 몰트만 등에 이르기까지 신정론의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철학과 신학의 거물들이 이 문제에 뛰어들었지만 결론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 문제가 초월의 문제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신학자 벌콥도 하나님과 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비밀로 남아있다고 언급한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나 하나님을 힘써 아는 일(knowing God)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창조의 젊은 연대가 신정론 해석에 우호적인가?

창조과학 운동이 신학과 괴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필자의 거듭된 충고로 최근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이 신학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난 2011년 여름 한국창조과학회가 주최한 모임에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병훈(조직신학) 교수는 창조의 오랜 연대를 수용한 지적설계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윌리엄 뎀스키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오랜 연대를 수용하면 악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불가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지적설계 운동을 비판하기보다 창조과학 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덕담이었다고 생각된다. 정통 신정론자(神正論者)들은 한 번도 연대 문제와 연관하여 이 쟁점을 거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적 존재(마귀, 귀신 등)의 기원이 결코 젊은 창조 연대에 유리하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악의 문제도 결코 젊은 창조 연대에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다. 악을 창조 주간(6천 년 전)의 창조에 묶어 놓는다고 악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 물론 지적설계운동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뎀스키처럼 악의 문제를 창조 6천 년 바깥으로 연장해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악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수백 년 동안 성경, 신학, 철학 분야에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초월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신비의 영역일 뿐이다.

기독교적으로 악의 문제를 다룰 때는 세 가지 전제가 있다. (1) 악은 존재한다는 것 (2)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 (3)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점이다. 기독교신학은 이 세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그냥 "십자가"가 답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간단하나 사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성경적 답을 찾아 논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바로 십자가로 귀결되도록 원인을 제공한 마귀의 기원, 악의 기원 자체가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마귀와 악의 기원 자체를 잘 모르는데 어찌 답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여기서 연대 문제는 파고들 자리가 없다.

설계(設計)는 근본적으로 설계의 도덕성, 미학, 선악, 최적 또는 완벽함과는 다른 문제이다. 또한 지적설계가 도구로 삼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도 도덕이나 선악과는 별개 개념이다. 설계의 왜곡(반목적론)은 설계를 거부함으로써가 아니라 설계를 받아들인 다음에 악의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설명되는 것이다. 즉 악의 문제는 신학적이다. 젊은 창조 연대 입장을 거부하는 뎀스키의 견해는 이 같은 신학적 각성에서 나왔다고 본다. 즉 신학은 결코 젊은 창조 연대 쪽에 신정론적 승리가 있다고 편들지 않는다. 신정론 문제에 접근한 어떤 학자도 젊은 창조 연대를 편들지 않는다.

p****m 2020.07.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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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은 무엇인가신정론(神正論)은 "신(theos)"과 "정의(dikee)"를 의미하는 두 헬라어 낱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말로서,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성경 속에서도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신정론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직접 사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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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은 무엇인가

신정론(神正論)은 "신(theos)"과 "정의(dikee)"를 의미하는 두 헬라어 낱말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말로서, 이 세계에 있는 수많은 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뜻한다. 성경 속에서도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하박국 선지자나 시편 등을 통해 끊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다. 하지만 신정론이란 용어를 가장 먼저 직접 사용한 것은 루터란이요 철학자요 자연과학자였던 라이프니츠로 알려져 있다. 라이프니츠는 1670년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인간의 자유>(Von der Allmacht und Allwissenheit Gottes und der Freiheit des Menschen)라는 논문을 통해 본격적인 신정론을 다룬 이후 1710년 <신정론: 하나님의 정의, 인간의 자유와 악의 근원에 대하여>(Essais de Theodicée)를 통해 공식적으로 이 용어를 다루고 있다. 이후 이 용어는 신의 정의(正義) 문제를 다루는 이론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정론은 신에게 능력과 선함을 동시에 귀속시키려 하는 모든 형태의 유신론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세계적 천재들이 씨름한 신정론

신정론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딜레마로 표현될 수 있다. '하나님은 악을 막을 수 있는데도 막지 않거나, 아니면 막으려 하지만 막을 수 없거나 이다.' 여기서 만일 후자가 옳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고, 전자가 옳다면 그는 자비하지 않다는 논리가 된다. 여기에 신정론의 일반적 딜레마가 있다. 악의 문제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실 철학의 플라톤 때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가장 역설적 형태의 신정론은 기독교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독교가 창조의 선성을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십자가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악의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접근한 이후 루터와 칼빈 그리고 라이프니츠를 거쳐 이후 임마누엘 칸트, 헤겔, 화이트 헤드, 칼 바르트, 포사이스(P. T. Forsyth, 1848-1921), 몰트만 등에 이르기까지 신정론의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철학과 신학의 거물들이 이 문제에 뛰어들었지만 결론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 문제가 초월의 문제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신학자 벌콥도 하나님과 죄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는 비밀로 남아있다고 언급한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나 하나님을 힘써 아는 일(knowing God)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창조의 젊은 연대가 신정론 해석에 우호적인가?

창조과학 운동이 신학과 괴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필자의 거듭된 충고로 최근 한국의 창조과학 운동이 신학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난 2011년 여름 한국창조과학회가 주최한 모임에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김병훈(조직신학) 교수는 창조의 오랜 연대를 수용한 지적설계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윌리엄 뎀스키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오랜 연대를 수용하면 악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 불가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지적설계 운동을 비판하기보다 창조과학 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덕담이었다고 생각된다. 정통 신정론자(神正論者)들은 한 번도 연대 문제와 연관하여 이 쟁점을 거론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적 존재(마귀, 귀신 등)의 기원이 결코 젊은 창조 연대에 유리하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악의 문제도 결코 젊은 창조 연대에 우호적이라고 볼 수 없다. 악을 창조 주간(6천 년 전)의 창조에 묶어 놓는다고 악의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 물론 지적설계운동의 중심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뎀스키처럼 악의 문제를 창조 6천 년 바깥으로 연장해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악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수백 년 동안 성경, 신학, 철학 분야에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초월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신비의 영역일 뿐이다.

기독교적으로 악의 문제를 다룰 때는 세 가지 전제가 있다. (1) 악은 존재한다는 것 (2)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 (3)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점이다. 기독교신학은 이 세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그냥 "십자가"가 답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간단하나 사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성경적 답을 찾아 논증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바로 십자가로 귀결되도록 원인을 제공한 마귀의 기원, 악의 기원 자체가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마귀와 악의 기원 자체를 잘 모르는데 어찌 답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여기서 연대 문제는 파고들 자리가 없다.

설계(設計)는 근본적으로 설계의 도덕성, 미학, 선악, 최적 또는 완벽함과는 다른 문제이다. 또한 지적설계가 도구로 삼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도 도덕이나 선악과는 별개 개념이다. 설계의 왜곡(반목적론)은 설계를 거부함으로써가 아니라 설계를 받아들인 다음에 악의 문제를 직면함으로써 설명되는 것이다. 즉 악의 문제는 신학적이다. 젊은 창조 연대 입장을 거부하는 뎀스키의 견해는 이 같은 신학적 각성에서 나왔다고 본다. 즉 신학은 결코 젊은 창조 연대 쪽에 신정론적 승리가 있다고 편들지 않는다. 신정론 문제에 접근한 어떤 학자도 젊은 창조 연대를 편들지 않는다.

p****m 2020.07.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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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론 논쟁, 꽤나 흥미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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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오는 이야기인 신정론 논쟁은 조금은 학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도서이다. 아래는 책을 읽고 적어 둔 간략한 메모.  악을 도덕적인 악과 자연적인 악으로 나눈다면, 도덕적인 악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기에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는 (본질적 케노시스 관점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인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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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오는 이야기인 신정론 논쟁은 조금은 학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도서이다.

아래는 책을 읽고 적어 둔 간략한 메모.

 악을 도덕적인 악과 자연적인 악으로 나눈다면, 도덕적인 악은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기에 하나님에게 책임을 물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는 (본질적 케노시스 관점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인 사랑이 궁극적으로 표현되었고, 자발적인 하나님의 자기 제한으로 인해 주어진 자유의지로 인한 악에 대한 비난은 창조주가 아니라 창조된 피조물이 받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연적인 악 혹은 불필요한 악은 왜 존재하는가? 왜 하나님은 이러한 악을 막지 않으시는가?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 완벽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에, 그나마 몇 가지 납득할 만한 추측 또는 답변만이 가능해 보인다. 
 일단 내가 생각하기에 자연적인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알 수 없고, 그러한 악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즉,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말에 이르러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고, 인간은 모든 진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에, 불가지의 영역으로 남겨 두되 실천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알 수 없는 부분에 과도한 답변을 하는 것보다는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알 수 없다면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불필요한 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조금 인용하자면, 5가지 관점 중 하나에서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지만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고 불순종하거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무시할 수도 있다." 고 이야기한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불필요한 악을 이해한다면 인간의 불순종 즉 죄로 인한 악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런 악을 막지 않는 이유는 다시 첫 문단의 '하나님의 궁극적인 본질인 사랑으로부터 주어지는 자유의지'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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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근데 사실 나도 내가 뭐라는지 모르겠다....(?)

YES마니아 : 골드 l********h 2023.11.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