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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영화 다시보기... 오늘은 "Madame Bovary", 우리말로 "보바리 부인"이다. 워낙 유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유도 있지만, 그 내용이 시대를 걸쳐 꾸준히 강조되고 공감되는 이유로 반복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동명의 소설은 1857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실제로 발생했던 사건을 5년 동안 취재해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사실주의 소설의 걸작으로 불리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작품이다. 인간의 환상이나 욕구, 허상에 대한 이야기로 평가되지만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선과 다른 이야기를 나는 해보려 한다. 프랑스 시골 부농의 외동딸로 태어난 주인공 엠마는 어린 시절부터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전통적인 교육보다 연애소설을 좋아했던 그녀는 호기심이 많고 새로움을 즐기지만 잦은 일탈적 행동으로 수녀원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부모의 중재로 시골 의사와 결혼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엠마는 결혼생활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현실은 일에 몰입하는 남편과 한가로운 시골생활에 실증을 느끼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환상을 꿈꾸는 엠마에게 찾아온 기회는 유혹이 되어 삶을 망가뜨리고 외도로 이어지다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내용인데, 사랑에 대한 정의나 쾌락을 추구하는 정도에 따라 엠마를 비난하거나 이해하는 관점에 차이가 생길 수 있겠다.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세부적인 내용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큰 변수는 되지 못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한 인간이 제한된 공간에서 욕구가 해결되지 못하는 상황,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만나는 유혹은 기회로 착각하게 만들며 사람을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의 수렁에 빠지게 하고 만다. 다양한 중독이 그 예가 될 수 있겠고, 지금은 정신과적 질환으로 분류되는 집착이나 우울증도 비슷한 요인에서 해석되고 있다. 나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만났고,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여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녀는 보바리와 많이 닯았었다. 육체적 사랑에 집착을 넘어 중독 수준에 이를 만큼 격렬했고 끊임 없이 실증내며 새로움을 추구했다. 이런 현상은 현실보다 환상을 먼저 배우며 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19세기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자란 엠마는 많은 연애소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성장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 부모가 현실적인 교육을 조금이라도 시켰다면 그렇게까지 환상을 가지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혀 교육에는 무관심했던 부모, 아니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대적 배경이 상대적으로 욕구가 강했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구속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더구나 사회적 활동이나 의사표현이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이라면 그 갑갑함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을테고, 역사를 보아도 비슷한 사례로 비난 받고 소박 맞은 여인들이 많았다. 생존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여인들이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타락하는 상황은 영화나 드라마로도 자주 다루고 있는 소재다. 그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영화에서 유래한 "보바리즘"이라는 말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이유겠다.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욕구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동물과 다른 인간이기에 사랑을 학습하며 성장하면 육체적 쾌락 정도는 우습게 넘어설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실제로 내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고, 오히려 육체적 욕구를 넘어 더 강하고 지속적인 쾌감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주인공 엠마의 경우도 사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남편 이전에 부모와의 관계에서라도 사랑을 느끼고 교감할 수 있었다면 그 인생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확신한다. 일 밖에 모르는 남편이기는 하지만 부부간의 사랑이라도 조금 더 키워갔다면... 남편이 가끔이라도 아내를 위한 애정을 표현하고 사랑을 키워갔다면... 엠마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최소한, 한 번의 실수를 바로 잡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엠마의 파멸은 결국 사랑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남편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사랑을 다른 남자들을 통해 채우려 했지만, 그것들 역시 사랑이 아닌 욕구 충족에 불과했다. 소설에서 배웠던 환상적인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았거나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결국 비극적 종말로 이끌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도피를 선택한다. 그 결말만으로도 엠마의 성장과정에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시대적 배경이 그러했으니 영화 속의 엠마는 이해한다고 해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인간들도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는 암울하고 부족한 시대였기에 나약했다면, 지금은 풍요속에 필요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무지가 나약함을 만들었다. 우리 주변에 보이는 나약한 존재들을 위해 경험했던 사람들의 작은 배려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지가 만든 나약함이라면 알려주면 되는 일이다. 또 다른 엠마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나부터 작은 노력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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