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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이 출간되었을 때 3권이 이리 늦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긴 내가 쓰는 것이 아니고, 그리고 저자가 답사기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1권과 2권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진지라 책을 받아들고서도 괜히 심통이 난다. 3권을 읽기 전에 1권과 2권을 읽으면서 메모해 두었던 노트를 찾아 읽어본다. 연상작용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전편들의 내용을 머릿속에 담고서 읽기 시작한다. 헌데 조금 전에 읽기 시작한 것 같은데 답사일정표가 나온다. 이런 책은 천천히 두고두고 읽어야 하는데,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내친 김에 읽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난 것도 알지 못한 것 같다.
1권과 2권이 서안에서 시작하여 하서주랑을 거쳐 돈황에 이르는 실크로드의 동쪽지역을 답사했다면, 3권에서는 본격적으로 타클라마칸사막지역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들을 답사한다. 실크로드는 학자에 따라 개념이 확장되기도 하지만 전통적인 개념은 중국서안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 시리아에 이르는 총 6,400킬로미터를 뜻한다고 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 실크로드를 말할 때 가리키는 구간은 돈황에서 타클라마칸사막 건너 카슈가르에 이르는 2400킬로미터의 구간을 뜻했다. 이는 실크로드라는 개념이 낳은 거대한 장애물, 즉 타클라마칸사막을 관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위구르어로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타클라마칸사막은 유동사막으로 남쪽은 곤륜산맥, 북쪽은 천산산맥, 서쪽은 파미르고원, 동쪽은 고비사막에 둘러싸인 달걀모양의 타림분지 한가운데 위치한다. 타림분지에는 실크로드가 열리기 전부터 작은 오아시스 왕국들이 널리 퍼져 있었고, 카라반의 상품교역은 이런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를 이어가며 행해졌다고 한다. 우리는 실크로드라고 하면 우선 서역과 중국을 이어주는 선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처럼 오아시스 도시와 도시, 즉 점과 점으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가 답사를 했던 오아시스 도시들을 살펴보면 그 말을 실감할 수가 있다. 실크로드의 서역남로와 서역북로는 돈황의 옥문관과 양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서역북로는 투르판에서 다시 천산남로와 천산북로로 갈라진다. 저자는 천산남로에 있는 도시들, 투루판과 쿠차를 답사한 후 쿠차에서 타클라마칸사막을 횡단하여 서역남로에 위치한 호탄을 거쳐 천산남로와 서역남로가 만나는 카슈가르에서 답사를 마친다. 그전에 그는 지금은 사라진 도시이지만 서역남로와 천산남북로로 갈라지는 도시 누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답사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유적지에 대한 설명보다도 그곳의 역사를 먼저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아시스 도시들이 있는 타림분지는 현재 중국의 신강위구르자치구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이곳에는 서역 36국이라 불리는 오아시스 도시왕국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제국이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운명적으로 만난 흉노와 대결하고 이후 위구르 왕국이 건설되기 전까지 중국왕조와 흉노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8세기 중엽 위구르가 제국을 건설하면서 오아시스 도시들을 지배했고, 14세기 초 위구르왕국이 멸망하면서 오아시스도시들은 중국에 병합되어 오늘에 이른다고 하니 그들의 역사 또한 기구하기만 하다. 이들 도시들은 위구르에 통합되기 전까지 불교국가였다. 그래서 수많은 석굴들과 도시유적은 불교색채를 띠고 있다. 인도에서 발아한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기 전 이곳을 통과했으니 그 영향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다 위구르인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불교건축물들은 파괴되거나 폐쇄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세기 제국주의 탐사단이 무분별하게 유적들을 수집하고 약탈하면서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들의 만행을 2권 돈황의 답사기에도 적나라하게 적고 있다. 돈황은 물론 오아시스 도시들의 유적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을 읽으면서 당시 예외일 수 없었던 우리의 문화재 약탈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라진 도시 누란, 그리고 투르판, 쿠차, 호탄, 카슈가르. 타클라마칸사막 남북에 퍼져있는 5개의 오아시스 도시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에 남은 곳은 유적지도, 유물도 아닌 타클라마칸사막이었다. 중국은 1993년과 2007년 모래바다를 종주하는 사막공로를 가설했다고 한다. 저자는 2007년 개설된 북쪽의 쿠차에서 남쪽의 호탄까지 연결된 424킬로미터의 신사막공로를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횡단했다. 저자가 전하는 사막의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실크로드를 걸었던 카라반들, 그리고 수행을 위해 천축으로 떠났던 많은 승려들, 그들은 사막을 건너기 위해 모두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저자는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사막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돈과 신앙이라고 했지 싶다. 지금이야 굳이 목숨까지 담보로 걸면서 사막을 건널 필요는 없지만 타클라마칸사막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끊임없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인연을 맺은 지도 20년이 훨씬 지났다. 처음 답사기를 어떻게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에는 없지만 어느 순간 답사기 다음 권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아마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고, 가본 곳이라면 향수와 함께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중국편 실크로드 답사기는 실크로드에 대한 궁금증 외에도 중국의 수많은 도시를 가보았음에도 서쪽 내륙 깊숙이는 들어가 본 적이 없는지라 더욱 호기심이 들었던 것 같다.
저자의 답사기를 읽을 때면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알면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들의 문화유산을 보면서 그 옛날 그들과 우리의 관계를 생각해보고 싶다. 저자의 말처럼 중국과 우리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하서주랑과 돈황, 그리고 오아시스 도시에 살던 유목민족들, 흉노, 돌궐, 위구르, 서하 등 중국 변경지방을 살아가던 그들의 채취를 느껴보고 싶다. 저자는 중국편 답사기를 끝으로 전공인 한국미술사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답사기로 돌아오게 되면 본격적인 중국 답사를 시작해 먼저 중국의 8대고도중 하나인 서안과 낙양으로 떠나겠다고 한다. 중국의 8대 고도라니. 또 다른 나의 기다림이 시작될 것 같다. 헌데 국내편인 [서울편]의 경우 총4권으로 쓰겠다고 했고 그 중 1,2권이 나왔다. 3,4권은 언제 나오려나, 뜬금없이 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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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왕국, 선선국(敾善國) 혹은 누란(樓蘭)
‘실크로드의 도시국가’라고 하면,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되었다는 누란(樓蘭) 혹은 크로라이나(Kroraina)가 먼저 떠오른다. ‘방황하는 호수’ 로프누르(Lop Nor) 부근에 위치했다는, 고대 인도유럽어계 토하라인(Tocharians)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국가는 오랫동안 환상 속의 국가로 알려져 왔다. 왜냐하면 다른 실크로드 도시국가와는 달리 아예 흔적자체가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시국가 ‘누란’의 이야기는 수많은 탐험가들이 이 곳을 방문하도록 유혹하고, 여러 이야기꾼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불의 검> 등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혜린(1962~ )의 단편 만화 ‘로프누르: 잃어버린 호수’(1996)나 ‘꽃’, “꽃을 위한 序詩’, ‘부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 등으로 유명한 김춘수(金春洙, 1922~2004)의 시 ‘누란(樓蘭)’(1980)도 이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쉽게도 이 지역이 1990년대 말까지 핵실험장소로 45차례 사용되면서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탓에 상주하는 사람도 없고 로프누르 호수도 말라버렸다고 한다.
천산 남북로의 교차점, 고창국(高昌國) 혹은 투르판[吐魯蕃]
투르판[Turfan, 吐魯蕃]은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갈라지는 길목에 위치해 위치해서 실크로드의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로 꼽혀왔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장대한 도시 유적지인 교하고성과 고창고성, 비록 제국주의 탐험가들에 의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베제클리크 석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많은 유물을 전하는 아스타나 고분군, <서유기>에 나오는 전설 속의 화염산, 근대 이슬람 유적인 소공탑(蘇公塔, 에민 미너렛), 거기에다 삶의 슬기가 낳은 인공수로인 카레즈” [p. 56] 등이 남아 있어 실크로드 답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이다. 게다가 이곳은 아리안계의 차사인(車師人)이 세운 차사국(車師國, ~460), 한족(漢族)인 국(麴)씨가 지배하던 고창국(高昌國, 502~640), 위구르족의 천산위구르[高昌回 , 843~1209] 왕국 등 지배자와 주민이 바뀌면서 계속 새로운 문화가 들어와서 ‘문명의 용광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 만큼 실크로드의 변천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지인들은 교하고성(交河古城)을 ‘아르호토’라고 부르는데, ‘언덕 위의 성’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흙을 쌓아 세운 것이 아니라 지하로 파 내려가면서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으로 조성된 천연의 성채로, 서역 36국 중 하나인 차사국(車師國)의 왕성이었다 고창고성(高昌古城)은 교하고성의 4배나 되는 규모의 도시로 고창국(高昌國)의 왕성이었다. 교하고성과 달리 흙벽돌을 쌓아 조성되었는데, 20세기 초 독일 탐험대에 의해 철저하게 마니교의 벽화, 네스토리우스교[景敎]의 벽화, 조로아스터교의 벽화 등이 도굴되고 약탈되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2km 정도 가면 국씨 고창국과 당(唐)나라의 서주(西州) 지방[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 지배층의 공동묘지인 아스타나[阿斯塔那] 고분이 나온다. 투르판 불교 유적을 대표하는 베제클리크 석굴[Bezeklik Caves, 柏孜剋里 千佛洞]은 약 800년간 83개의 석굴이 조성되었는데, 일반에게는 6개만 공개되고 있다. 이곳의 벽화들은 14세기부터 이 지역이 이슬람화하면서 1차 훼손되었고, 20세기 초 독일 탐험대에 의해 흙벽에 붙어있는 수많은 벽화가 떼어져서 약탈당했다. 게다가 유물보존능력을 핑계로 약탈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 탐험가들의 변명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베를린 공습으로 베제클리크 석굴의 대형 벽화 28폭은 영원히 사라졌다.
인도 페르시아 문화와 중국 문화의 교차로, 구자국(龜玆國) 혹은 쿠차 [庫車]
투르판에서 천산남로를 따라 좀 더 들어가면 위구르어로 ‘십자로’라는 뜻을 가진 쿠차 [Kucha, 庫車]가 나온다. 구자국(龜玆國)의 도읍이기도 한 이 곳에는 키질 석굴, 쿰투라 석굴, 수바시 사원 등 불교 유적지가 몰려 있다.
백양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걸으면, 최초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쿠마라지바[鳩摩羅什, 344~413]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을 지나 도착한 “키질 석굴은 용도와 구조에 따라 승방굴(僧房窟) 중심주굴(中心柱窟), 대상굴(大像窟), 방형굴(方形窟)로 나뉜다. 승방굴을 스님이 거주하며 생활하는 공간이고 일반적으로 거실, 통로, 작은방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 중심주굴은 예배, 공양 등 종교 활동을 위한 곳으로 석굴 중앙에 방형의 중심기둥이 있어 탑을 상징하며, 기둥 양옆과 뒤로 난 통로를 통해 탑돌이를 할 수 있는 구조다. 대상굴은 중심주굴과 구조가 비슷하나 중심주 정면에 커다란 불상을 모신 구조다. 방형굴은 주실 평면이 네모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승려들이 불경을 강독하던 공간” [pp. 206~207]이라고 한다. 쿰투라[庫木吐拉] 석굴도 다른 석굴처럼 이슬람화에 따라 파괴되고, 20세기 초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의 탐험대에 의해 벽화가 약탈되어 성한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녕왕릉의 매지권(買地券)처럼 제작 연대와 승려 이름, 불상의 이름, 도상의 내용을 적어놓은 제기가 많이 남아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13세기에 폐사(廢寺)되어 절터만 남아 있는 수바시[蘇巴什] 사원은 “서역 불교의 총본산이었을 뿐 아니라 인도의 불교와 중국불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 [p. 257]을 한 중요한 유적지다. 불교 문화에서 이슬람 문화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것은 신강성의 양대 청진사(淸眞寺, 이슬람교도들의 예배당) 가운데 하나인 쿠차대사[庫車大寺]와 1759년 청(淸)나라 건륭제로부터 쿠차왕의 작위를 받은 아오떼이[鄂對, ~1778 ]의 후손들이 살아왔던 쿠차왕부[庫車王府]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어, 우전국(于 國) 혹은 호탄[和田]
‘황량한 사막 산’이라고도,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도 해석되는 타클라마칸 사막은 끝없는 모래언덕과 사나운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죽음의 땅이다. 이곳을 건너면 옥과 불교의 도시 호탄[Khotan, 和田]이 있다. 호탄은 서역 불교가 성립한 곳으로 평가 받고, 쿠차와 함께 서역 불교의 양대 종가로 불리기도 했지만 1006년 이슬람 국가인 카라한 왕조에 점령된 이후 불교건축물이 단 한 곳도 남지 않을 정도로 이슬람의 색채가 강한 곳이 되었다. 호탄옥은 중국 4대 명옥(名玉)의 하나이면서 ‘옥 중의 옥’으로 알려져 있다.
실크로드의 진주, 소륵국(疎勒國) 혹은 카슈가르[喀什]
호탄에서 곤륜산맥을 왼쪽에 두고 서역남로를 따라 이동하면 카슈가르[Kashgar, 喀什, 카스]가 보인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파미르 고원이 맞닿고, 천산남로와 서역남로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하지만 “막상 카슈가르에서 답사할 곳은 많지 않다. 이슬람 사원인 아이티가르 청진사, 향비묘(香妃墓)로 알려진 ‘아바 호자 능묘’, 그리고 카슈가르 고성(古城) 정도다” [p. 391]라고 한다. 카슈가르로 향하는 길에 놓치지 않아야 할 곳은 야르칸드 한국[葉爾羌 汗國, 1514~1680]의 수도였던 야르칸드다. 이곳에는 ‘열두 무카무[十二 木 姆]’라는 이름으로 위구르 민족의 춤과 음악을 체계 있게 정리해서 민족의 동질성을 지킬 수 있게 한 아마니사한(Amanisahan, 1526~1560) 왕비의 영묘(靈廟)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이번에 마무리 된 실크로드 답사기 이후 전공인 한국미술사에 매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언젠가 서안과 낙양에서 시작하는 본격적인 중국 답사기가 이어질 것을 기대하며, 아쉬움 남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리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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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은 들어본 지역의 이름들. 책 앞에 실어 놓은 지도를 들추어 짚어가면서 읽었다. 그러나 곧 그만두었다. 드넓은 중국 땅 어딘가에 있겠지, 짧은 시간에 외울 수 있을 만큼의 수도 아니고 그냥 등장하는 장소에만 집중했다. 이제는 가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거리 감각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작가가 보여 주고 들려 주는 것만으로도.
한때 번창했으나 지금은 사라졌거나 저물고 있는 땅을 둘러보는 기분이란 어떠할까. 남아 있는 모습만으로, 특히 거의 무너지기 직전의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는 건축물의 일부나 자취만으로 그 시대를 더듬어보는 일이란, 꽤나 어지러울 것 같다. 다행히도 오랜 세월 속에서 제 모습을 남긴 것들 앞에서는 남긴 대로, 사람의 손을 비껴 내지 못하고 흔적만 남은 곳에서는 아쉬운 대로, '있음'과 '없음'에 대한 성찰이 절로 이루어질 듯도 하고.
여행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많이 설레도록 해 준 책이었다. 넉넉한 사진도 자세하고 풍부한 설명이 담긴 글도 다 좋았다. 책장을 넘기면 바로 앞 쪽에서 읽은 지역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새 지역으로 옮겨가도 괜찮았다. 어차피 한번 읽어 본 것으로 다 구별할 수 있을 것도 아니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니. 마음 둥둥 흘러가듯 거대한 사막 여행을 한 기분이다.
언젠가 한가할 때, 다시 펼치고 싶어 모아두는 책이다. 이 작가 덕분에 우리 땅, 일본 땅, 중국 땅까지 쉽게 가 볼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나 모습이 바뀌었다고 해도 상관없겠다. 내가 가서 확인하고 비교할 건 아니니까. 이대로도 아주 든든히 내 미래의 시간이 마련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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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남도 답사 일번지'의 서문에 있는 글이다. 그 당시 선풍적인 문화답사의 선봉장이 되었던 책. 인문학 계열의 책이 100만부가 넘는 판먀량으로 우리에게 충격과 신선함을 동시에 주었던, 그래서 우리 모두가 우리의 곁에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던 책이다. 국내를 돌아 북한의 문화유산에 대한 책이 잇달아 나오고 그 후 서울을 비롯한 제주ㅇ를 비롯한 국내 2부를 거쳐 이제 바다건너 일본에 있는 우리문화의 찬란한 역사를 찾아 우리선조의 발자취를 기술했고 이번 시리즈는 중국이다. 동황과 막고굴, 실크로드의 관문을 거쳐 이 책에선 본격적인 실크로의 여정을 따라간다. 사막의 불타는 꽃인 실크로드는 서양과 동양을 잇는 무역의 교역 경로 전체를 아우른다 할 수 있겠다. 원거리 무역과 문명교류의 통로에 대한 상징성을 갖고있는 관용적인 명칭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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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작년부터 사서 있고 있습니다. 3권은 1년을 기다림셈이지요. 학창시절에 NHK CCTV의 실크로드를 보고 충격받았는데 작년에 유홍준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고 유투브로도 다시보게 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구입하고 시간나는대로 틈틈히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선선해 지면 다시 1권부터 다시 읽어도 좋을 듯합니다. |
| 황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실크로드의 뜨거운 햇살이 머리에 닿는 기분이었다. 쓸쓸하기 그지없음에도 2천년 전 그곳에 살던 사람들, 그곳을 지나다닌 사람들 이야기를 직접 본 것처럼 설명하는 안내를 넋을 잃고 따라갔다. 지구본에 손가락을 올리고 실크로드라 불리던 길을 주욱 따라가본 후 답사단이 찾아간 코스를 짚어본다. 국가가 얼굴을 갖는다면 처연하고 애잔한 얼굴이겠구나 싶은 누란의 흥망성쇠와, 천축국 부처의 가르침을 자신의 뿌리 반쪽인 중국을 위해 창작에 가깝게 의역해낸 쿠마라지바의 치열함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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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는 과거 비단길, 실크로드로 불리는 교통로와 오아시스 도시들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책으로서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적극 추천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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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막에서 피어난 꽃
실크로드를 통해서 많은 스님들이 이 길을 통해서 서역 인도 땅으로 들어간다... 최초로 서역기행문을 남긴 법현스님은 399년 이 길로해서 인도로 들어갔다. 또 629년 현장법사가 타클라마칸사막을 지나 인도로 갔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서역으로 갈 때 필요한 관문인 것이다. 그리고 동부, 중부, 서부에서 교역과 교류를 통해 들어오는 물품들이 많아 서로의 문화가 교류되어 발전해 나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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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편 3편을 모두 읽었다. 벅찬 시간들이었다. 책 속에 사진들도 글을 읽고 느끼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크로드 다큐도 모두 찾아 보게 되었다. 너튜브로 지금도 시청할 수 있다. 추천해드리고 싶다.
실크로드의 오랜 도시들의 흔적들을 보면서 처연하기도 했고 그 길을 걷고 개척해 가면서 살아낸 옛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뭉클했고, 벅차오르고, 경이로웠던 시간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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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는 내게 처음으로 유적, 유물, 여행을 접목 시킨 새로운 지식 세계를 열어준 작품이다. 1993년에 첫 권이 나왔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인정을 받아 온 말그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이다. 일본, 중국의 우리 문화 흔적 까지 지나오다보니 본의아니게 국내편의 진도가 더디 나가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기까지 하다. 이번 중국편은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는데 지역명이나 예전의 나라, 민족의 이름이 낯설어 상당히 어렵게 쫒아갈 수 밖에 없었다. 서안에서 시작된 여정은 하서주랑과 돈황을 거쳐 신강위구르자치구와 타클라마칸 사막 지역을 본격적으로 탐방한다.
특히 투르판, 쿠차, 호탄, 카슈가르 등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오아시스 도시들을 거치면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접할 수 있었는데, 같은 아시아 지역이지만 동북아 3개국 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행태를 보여두고 있다. 여기에는 20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약탈(물론 탐험과 개발이라는 포장으로 꾸민) 과정을 통해 밝혀진 "누란'에 관한 이야기는 '누란의 미녀'라는 유물과 어우러져 신비한 기분까지 들게 한다.
이번 중국 시리즈는 코로나 시기에 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상 여행을 제공한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몽골 제국의 흥망 성쇠와 맞물려 동서양을 오간 이름 없는 상인들과 그들에게 쉼터를 제공한 무수히 많은 오아시스 도시들로 우리를 안내하니 안전하게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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