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제목부터 90년대생을 겨냥한 듯한 트렌디한 느낌이 난다. 제목에 ‘떡볶이’가 들어가는 어느 베스트셀러 책을 떠올리게 하는 출판사의 마케팅 꼼수...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에는 제목에 이끌려 책을 구매했다. 이전에 묵돌님의 에세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때마침 새로 나온 신간을 빨리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원제 <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가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잘 표현해주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90년생이 온다> 등의 다른 90년대생들에 대한 책들과는 달리, 별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느낌이 없다. 그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 대한 90년대생의 푸념과 한탄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또 <90년생이 온다>는 90년대 초중반에 태어나 현재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진 느낌인 반면, 이 책은 9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학생들과 2000년대생들의 이야기까지도 포함한다. 그래서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나는 이 책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은 마카롱이 주는 달콤한 느낌과는 달리 꽤나 암울한 분위기를 풍긴다. 초반에는 장강명 작가님의 <표백>을 떠올리게 하는 세대 갈등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면, 후반부로 갈 수록 기안84의 <복학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형편이 어려웠다는 저자에 비해서 한참 더 나은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90년대생’이라는 공통 분모만으로는 쉽사리 묶어서 정의할 수 없을 개개인의 경험의 차이를 느꼈다.
다른 주제들로는 자녀들을 게임 ‘부캐’ 다루듯이 하는 부모들, ’프린세스 메이커’가 재현하는 씁쓸한 현실 (‘과연 게임의 해피엔딩이 이 딸에게도 정말 해피엔딩일까?’),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다가 정작 어른이 되고 나니 공부 이외에 것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기성 세대, 그리고 연애나 이성에 대한 관심을 금기시 하다가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라는 압박을 주는 이상한 사회적 분위기 등이 있었다. 나는 이런 내용의 대다수에 무릎을 치고 공감하며 읽었는데, 특히나 ‘이성교제 금지’ 교칙이 있던 학교에서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들이 그랬다 . 당연한 얘기지만 남녀 간에 연애를 금지한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없어질(?) 리는 난무했는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올바른 이성교제와 성에 대한 인식을 가르치는 게 우선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청소년기에 그런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고 갑자기 성인이 되어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많은 90년대생 당사자들은 기성 세대가 붙인 ’N포 세대’ 같은 꼬리표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애초에 무언가를 딱히 “‘포기’한 적은 없다.” “포기라는 건 목표든 희망이든 애초에 뭔가를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한때 우리가 가졌던 희망은 온전히 기성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29) ‘당신들의 희망은 우리였지만, 우리의 희망은 당신들이죠’라는 이 책의 소제목처럼, 젊은 세대는 부모님 세대의 꿈을 대신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 앞에서 자주 고꾸라졌다.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는 연애나 결혼 같은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젊은 이들이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작 90년대생들은 애초부터 기성 세대와는 다른 가치로 삶을 채워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90년대생들도 사실은 ‘00년대생이 온다’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이미 대학가에서는 ‘00년대생이 왔다’가 현실로 성큼 다가와 버렸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도 00년대생인 동생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고는 한다. ‘요즘 젊은 것들’로 묘사되는 90년대생 역시도 점점 기성 세대와 같아질 것이고, 언젠가는 90년대생들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꼰대’가 되어갈지도 모른다는 말이 비교적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책도 세대 간의 완벽한 이해를 보장해주지는 않을 거다. 다만 불가해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오랜 과정의 발판 쯤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우리는 이해하려 마음먹을 때 비로소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왜 이해를 못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서로를 더 외롭게 만들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달라’는 말 대신에 이렇게 말하겠다. 힘들어도 괜찮은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참 고생 많았다. 진심으로.” (59) . “‘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걸 가지고 난리야?’라는 건, 어떤 일에서든 상대적 우위에 있는 사람만이 꺼낼 수 있는 말이다. 조직 내 상하 관계든, 거래 관계든, 주변의 안관계든, 사람은 때와 장소 그리고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천차만별이다.” (118) . .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니? 세상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어요? 차라리 솔직하게 말씀해주지 그러셨어요. (중략) 세상에는 노력으로도, 기도로도 안 되는 게 있다고요. 살다 보면 전혀 평등하지 않은 기회도 있다고. 사실 노력하는 것도 공평하지만은 않다고. 어쩔 땐 노력하기조차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데, 우리처럼 가난하게 태어나는 경우엔 더 힘들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운이 조금이라도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그런 위대한 성공을 못한다고 해서 네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누구에게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조차 거대한 성공이라고. 반드시 남들만큼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셔도 됐잖아요. 노력하면 다 될 거란 거짓말보다는요...” (168-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