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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면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물론 그렇게 관심을 두게 한 계기는 있었다. 재일조선인 이야기가 나올때면 어김없이 말하게 되는 서경식님의 난민과 국민사이, 그리고 지난해 보았던 영화 우리학교를 통해서 바로 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도 일본에서 디아스포라적인 위치 일 수 밖에 없는 정체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섯편으로 짜여진 이 글들 속에서 나의 제일 우선 관심은 재일조선인의 이야기였다. 저자는 사실의 바탕을 픽션으로 썼다고 했지만 수영부의 해체 과정에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아이의 마음은 결코 책 속의 사실 보다 심할수는 있었도 약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어렵지 않게 그러나 가슴 속으로 부터 저릿한 마음의 감정이 나오게 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소설이라기 보단 역사적 사실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을 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이야기들 속에선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른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왜 이렇게 많이 보이는지..장애아반을 맡으려 하지 않는 선생님들...장애아를 그저 장애아로만 보려 했던 편견들...전쟁의 아픔을 찾아 보려고 나선 어른스런 아이들 어린이들에 보인 선생님의 이중적인 모습들... 이런 풍경은 지금도 종종 뉴스로 그리고 주변 이야기로 들려오는 이야기들이다. 장애학교를 집값을 내린다는 이유로 건립에 어려움을 겪고... 교직원 자녀들의 입학에 대한 특혜도 뉴스로 펑펑 터지는 것이 우리의 교육 현실이다. 저자는 학교가 가르치는 것에만 너무 충실하여 어린이나 학생의 목소리가 교사에게 닿지 않는 것이 걱정 되었고,풍요롭기만 한 가운데서 진정 배운 것이 없다고 말을 했다.
이 말에 얼마나 많은 공감을 했는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책속엔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에게도 배려 하는 마음 그 마음 속엔 이 책속에 나열 되었던 그런 마음들 모두가 담겨 있었다고 본다.
처음엔 재일조선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말에 관심을 가게 한 책이었지만..다 읽은 후의 느낌은 살아가는 가운데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이란 인사가 그저 가벼이 할 수 있는 그런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터 우러 나오는 마음의 정이 담긴 인사가 되려면 책 속에 나와 있었던 그러한 마음들이 나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 있어야 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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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겐지로의 책은 꼭 읽어주고 싶었던 차였는데 그의 단편들을 묶어 놓은 이 책은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하이타니의 혹은 바로 우리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겠다. 아주 오래전 학창시절 프랑소와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란 책을 읽은 기억이난다. 사실 그 책 제목을 처음 접했을때는 슬픔이란 것과 헤어지는 이야기일까 생각하며 읽었는데 알고 보니 이제 슬픔이란 녀석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었다. 성장기에 놓여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어느 소녀의 성장기를 다룬 책으로 그당시는 사실 충격적인 내용이 아닐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조금 많이 다른 사회적 현실에 놓은 우리 청소년기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성장기에 놓인 그 시기의 감성들은 다 비슷한것이어서 슬픔이란 놈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게 되는 참으로 가슴 아릿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 책의 제목 '우리와 안녕하려면'이란 글을 읽었을때도 같은 생각을 갖고있었다. 헤어지는 인사라고 느꼈으므로,.,... 하지만 책을 읽으며 하이타니겐지로와 함께 만난 책속의 주인공들은 이제 막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바로 내가 겪어온 그 시기의 청소년 아이들이었다. 일본인속에 왕따를 당하고 있던 조선인의 이야기는 아마도 하이타니 겐지로가 진심으로 우리 민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담아 우리를 대신해 그들 무리속에 꿋꿋이 남아 우뚝 설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는듯 들렸으며 낯선곳에서의 여행길에 만난 불쌍하고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 또한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고 있느냐는듯 그렇지 못하고 한없이 처참한 상황속에 있는 청소년기의 아이들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정상적인 아이들과 격리된채 외따로이 뚝 떨어져 살아가는 장애아들도 자신들의 감정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냐는듯 치기어린 맘으로 우연히 그들을 맡게 된 난처한 선생님의 감성을 통해 함께 자극받게 하고 얌전하고 공부잘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의 마음을 통해 주위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이 받고 있는 거부감과 반항심이란 것들을 억누르고 살고 있는 부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가까이 다가서려 애쓰지만 가까워지지 못하고 자꾸만 삐끄러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정말 그런 청소년들과 반갑게 악수하려고 손을 내밀고 있는것일까? 그저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기대로 가득한 부담스런 눈길로 글 아이들을 붙잡으려 하는것은 아닐까? 하이타니 겐지로와 함께 만나게된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된것은 한발짝 뒤로 물러서서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바라보아 주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결코 방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따듯한 시선으로 그 아이들을 이해해주고 바라보아 준다면 그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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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집 [우리와 안녕하려면]은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마치 수필같이 느껴지는 그의 이 단편소설들이 참 맑다. '한국어판 서문'에 고백한 그 자신의 이야기가 다섯 편의 단편에 고스란히 담겨서일까. 자기 경험과 생각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이야기들은 굳이 남의 이야기라 할 것도 없는, 작가가 주인공이고 화자인 꾸밈없는 진실이 느껴진다.
다섯 단편들에선 모두 약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 그들을 온 몸으로 보듬으려는 따뜻함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첫 작품인 <물이야기>는 내가 한국인 독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겠지만, 재일한국인으로 살며 억울하고 분한 삶을 일본 소년들과의 수영시합 이야기로 담담히 풀어낸 것에서 더 깊은 감명을 받는다. 또 비슷한 맥락의 작품인 <손>은 불구인 손을 가진 선생님께 드리는 학생의 편지글로 일본인으로서 갖는 전쟁에 대한 반성과 회환이 깔끔하게 잘 담겨있는, 내겐 가장 좋았던 작품. 전혀 격하거나 유치한 직설적인 표현은 없지만 이야기 전개와 서술방식은 상당히 매력적이면서도 깊고도 슬픈 울림을 갖는다. 그리고 장애 어린이 학생과 선생님의 이야기인 <소리>, 인도네시아 여행 중 만난 어느 남루한 소년과의 눈의 대화 이야기인 <눈>, 불합리한 교육환경과 친구들의 예쁜 이야기인 <친구>까지, 다섯 단편들은 하나같이 작지만 정교하고 소중한 보물과 같은 이야기다.
[우리와 안녕하려면],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는 우리 모두와 더불어 함께 안녕하기를 원했던 것일 게다. 참 오랜만에 완전하게 순수하고 따뜻한 시선이 가득한 작품들을 만나 행복하다. 이 책,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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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겐지로를 이 책으로나마 만나게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책을 읽기전 그의 약력을 보니 어린시절 전쟁을 겪고,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하고 교사가 되었더군요.그러다 가족의 불행한 일로 교직을 그만두고 아시아등을 여행했고요. 그런 작가의 짧지만 약력을 보고 나니 이책의 내용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인이지만 자신들이 저질렀던 전쟁에 대해 사죄하는 마음과 재일동포를 돌아볼 줄 아는 그의 마음이 참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교직에서의 경험이나 여행에서의 경험등이 이 책속에 짙게 반영되어 있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 또한 급속도로 좋아지게 되었고요. 책을 처음 봤을때 책 크기가 한손에 잡기에 좋은 작은 사이즈라 마음에 들었어요. 양도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니라 쉽게 읽을수 있겠다 싶었고요. 물론 글은 잘 읽어집니다. 하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나에겐 내용이 그리 쉬운 것도 만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편을 읽고 다음 편을 읽을때까지 숨도 약간 고르고 그 사이에 내용도 음미해보고 생각도 해 보고요. 그렇게 이 책은 한편 한편이 모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내게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는 다섯 편의 단편이 들어 있습니다. 다섯 편을 읽고 모두 이해했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한국어판 서문에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있어 훨씬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섯 편의 작품중 개인적으로는학교 현장을 다룬 [소리]와 [친구]가 제일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같은 동양권이기 때문일까요? 일본의 학교 생활이 우리나라와 너무 유사하다는 점 또한 이 두 작품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특수반을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 않는 선생님들, 어쩔수 없이 맡게 되었지만 조금씩 아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아이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소리]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그 아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기때문에 소리를 낼수 없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참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히 [친구]는 읽으면서 선생님들의 작태에 분노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역시 지금도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들이라는게 더 마음이 아픕니다. 교육이란 것이 입시위주로 흘러 공부만 잘하는게 최상이 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그런 현실이다 할지라도 선생님과 제자들, 부모와 자식간의 의사소통이 단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나는 강한 것이나 너무 풍요로운 것에서는 무엇 하나 배운 것이 없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약한 것,가난한 것에서 생명의 빛을 발견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말처럼 약하고 가난하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생명의 빛을 발견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수 있습니다. 이 책의 다섯 편이 약하고 가난하고 때로는 절망적이거나 슬프더라도 우리는 그것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마음이 따스해 집니다. 희망을 보았기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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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일본작가라는 생각이 안들게 하는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 많이 읽어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그 느낌이 전부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왠지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술렁이던 마음도 조용하게 만든다. 바다의 풍경을 읽었을 때만 해도 바다의 한 가운데에 섬이라 고립된 문화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주인공들의 대화속에서 느낌이 그랬다. 이 책 "우리와 안녕하려면"에서 짧막한 단편들에서는 특히, "물이야기"는 같은 동포인 소순이의 이야기라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그의 입장이 되보지 않고 학교와 무조건 맞서게 하는 아이들을 효과적이 설득방법은 무력이 아니라 진정한 대화와 행동이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수영장에서의 일전은 속도감과 긴장감을 불러다 주었다. 두번째, "손"에서 여행중에 느낌을 고스란히 선생님께 편지형식으로 전하면서 전쟁의 아픈 기억을 가진 할머니의 만남이 가슴 찡 하게 만들었다. 세번째, "눈"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기차역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라라그라종에서 만난 소년과의 조우는 말이 아닌 눈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네번째, "소리"편은 우연히 장애아반을 맡게된 주인공이 그들을 가르치면서 겪게 되는 일화를 통해 오히려 소리가 아니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다섯번째 이야기 "친구"는 선생님과의 갈등, 사실 학창시절 속으로만 화내고 겉으로는 표출하지 못했던 일을 누군가 나대신 말해줬으면 하는 바램을 이타미의 반항적인 말에서 시원한 느낌을 들게 했다. 작문시간에 일어난 일, 흔히 교실에서 불공정하다고 느꼈을 이야기중에 하나다. 교실이 다만 일본이라는 것외에는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저자는 내면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적고 있다. 갑자기 나는 몸에 힘이 빠졌다.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마사코의 어깨를 꽉 안고 걸었다. "마사코는 부처님이랑 이야기하려고 그랬지." 내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랐다. p139 어두운 밤에 저멀리서 비추고 오는 한 줄기빛을 봤을 때처럼 반가운 책이었다. 아 나는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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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스스로 맞서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남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다들 너무나 순순히 규칙을 따르고 너무나 욕망에 약해요. 하이타니 겐지로의 '우리와 안녕하려면'은 모두 다섯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물이야기'는 수영부의 해체이야기에서 시작을 하여 단순히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그보다 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물론 '차별'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재일한국인'에만 한정되어 있는 이야기는 아닌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일본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다면 더한 감동으로 읽을 수 있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손'은 전쟁의 참혹함과 그 결과에 대해 지금 우리가 배워야 하는 반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눈'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면서 느낀 그들의 아름다움, 문화유적지에서 만난 한 소년의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는 진실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간략한 내 느낌을 적었지만, 다섯편이 이야기는 모두 감동적이다. 그리고 평화와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깊은 성찰과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전쟁을 반대한다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진정 어떠한 삶의 모습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강하게 외치는 것인지,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하이타니 겐지로는 참말로 의지가 곧고 올바르며, 정의와 평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부드러우면서도 타협없는 강한 실천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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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이름만으로도 그의 이야기에 흐르는 정신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오키나와에 대한 역사적 배경 지식도 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읽으며 정말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우리만이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태양의 아이>를 읽으며 또한번 느꼈었는데.... 참 오랜만에 그의 작품을 읽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이야기, 손, 눈, 소리, 친구> 처음에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읽지 않았던 탓인지 작가가 하고 싶은 진짜 말이 무언지 빨리 와닿지 않았다. 뭔가 겉도는 느낌이랄까. 작품 하나하나가 뜻하는 표면적인 주제는 뭔지 감이 잡히면서도 그것이 아닌 뭔가 다른 뜻이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며칠 동안 그게 뭘까 뭘까 물음표를 그리며 다녔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책을 펼쳐서 작가의 말이 실린 서문을 다시 읽어봤다. 그때 ‘저항’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깊이 가라앉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었던 제목이 떠올랐다. ‘우리와 안녕하려면’ 그래 ‘우리’와 ‘안녕’. 그리고 ‘저항’ 이 세 단어는 어딘가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제 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괜시리 두근두근 거렸다.
나는 이 이야기를 ‘우리’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지난해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며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다. 참 따뜻하고 포근한 말처럼 느껴지면서 또 그 반대편에 서있는 사람들에겐 단단한 벽이고 강이 될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우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우리’속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속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그 ‘우리’에게 저항하기 위해 다시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 낸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등한 우리’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다른 타인을 구별 짓기 위해서 버릇처럼 습관처럼 사용해왔던 것이 아닌지 내 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떤 모임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아주 호의적으로 저항없이 받아들이거나 아직은 우리속에 넣을 수 없다며 계속 딴지를 걸기도 한다. 그리고 이미 우리속에 들어와 있는 사람도 우리와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바깥으로 내몰기도 한다. <물이야기>에서의 소순처럼. 학교라는 커다란 우리에 맞서기 위해 수영부 아이들은 수영부라는 우리를 만들어 저항한다. 수영부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다며 소순을 따돌리며. ‘생각이 다른 놈하고 같을 길을 갈 수 없잖아요’ 하며 못마땅하게 내뱉던 돼지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 ‘정말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것인가’ 그 다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마음의 깊이를 넓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라는 말은 참 힘이 있는 이름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 이름으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힘을 주기도 한다. <친구>에서처럼 친구의 맘을 미처 살피지 않고 우리끼리 결정한 선행은 그것이 선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기도 한다. 우리의 이름으로 한 결정이니까. 우리는 때론 한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에게 불행을 주기도 한다. 우리들의 평화를 위해서 행해지는 전쟁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평화를 깨트려야만 얻을 수 있는 우리들의 평화라면 그것이 진정 평화라는 이름이 될 수 있는지 <손>과 <눈>이라는 작품을 읽으며 생각해봤다.
다섯편의 이야기 중에서 <친구>는 이해도 쉽고 가장 공감이 많이 가는 이야기였다. ‘원숭이 우등생’ ‘속도 위반’ 어딘가 달라 보이고 쉽게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도 모두 ‘우리’다. 왜 책 제목이 <우리와 안녕하려면>인지 알 것 같다. 우리와 안녕하려면 동등하지 않은 우리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다르지만 , 피부색은 다르지만, 살림살이도 다르지만 , 다른 말을 사용하지만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아주 복잡한 퍼즐을 풀고 난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것도 잠시겠지만.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은 그 순간 독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에 독서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몰랐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몰랐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을 읽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내기가 더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 같다. 점점 더 생각하며 행동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나도 내가 가진 많은 우리와 안녕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야 더 큰 우리, 진짜 우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아직은 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상냥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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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시선으로 본 다섯 편의 이야기. 그러나 난 이 이야기들 가운데 가슴에 와 닿아 마음에 남는 이야기는 단 두편 뿐이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짧게 이어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들을 모두 다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누구의 시각으로 썼는지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뭔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진한 절망과 고독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은데 난 왜 낯설게 다가오는 것일까.
특수반 아이들의 "아-우, 어-어" 하며 괴성을 지르는 듯 대화하는 소리, 하늘색 샌들이 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다케시가 지르는 "먀!"라는 단어를 일반 사람들은 알아듣질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무미건조하게 내뱉는 말들보다 괴성과 같은 이 말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소리"라는 이 단편을 읽고 있노라니 예전 장애우들이 예배를 보는 곳에 봉사를 간 일이 생각난다. 몇번 왔다가 오지 않을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1년이 넘게 마음을 주지 않던 아이들이 하나둘 곁으로 모여들고 웅성웅성 떠들며 내게 말을 하는데 도대체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핸드폰을 만든 사람을 얼마나 고마워했던지. 한 아이가 불편한 몸으로 힘들게 핸드폰을 꺼내어 글자를 만들어 내게 보여줬을때 "아, 몸만 불편할뿐이지 생각은 깊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로 종종 컴퓨터로 채팅을 하기도 했는데 분명 한자 한자 단어를 치기가 힘들텐데도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반성을 했는지 모른다. 불편한 몸을 가졌다고 바보로 생각하거나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대화가 된다고 생각했을때 받은 놀라움이란 아마 그 아이들을 나와 똑같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충격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소리"의 단편에서 "아, 어, 우" 정도로 의사표현을 하며 대화하는 아이들을 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 잠시 옛 기억에 잠기게 된다.
나하의 불탄자리에서 폭탄을 건드려 오른손을 날린 선생님을 추억하며 편지를 쓰는 "손"의 단편글을 읽으며 총알이 터져 손을 잃은 외삼촌이 생각나서 내가 겪지 않은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듯이 깜짝놀라게 된다. 내가 직접 겪지 않았다고 "전쟁"의 기억이 사라지겠는가. 대부분의 단편들이 이렇듯 암울한 반면에 "친구"라는 단편은 선생님 같지 않은 선생님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조금은 밝은 마음으로 읽게 된다. 비록 나의 학창시절이 생각나서 아이들에게 동조하여 울컥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닌 일이 그때는 왜그 렇게 죽을만큼 절실하게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씁쓸한 기분이 든다.
고독과 절망, 깊은 슬픔에서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면 정말 내 마음도 우울하여 계속 가라앉는 듯한 기분만 느낄텐데 다섯 개의 시선으로 읽어간 다섯 편의 이야기들에는 희망도 보인다. 뱉어냄으로써 상처가 조금 치유가 되고 더불어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얻게 되기에 완전하게 마음에 와 닿지 않은 이야기들이지만 짧은 단편들의 결말이 나지 않은 이야기들의 끝은 희망을 담고 있기를 바래본다. 강한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닌 약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니까, 희망과 행복이라도 있어야 세상은 좀 공평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죽을만큼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삶이라도 희망이 있기에 또 살아가게 되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