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수 사랑에 주렸던 이들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205)를 구매해서 읽어보았습니다. 형과 멀어진 뒤로 형이 떠난 뒤 동생이 형을 위해 쓴 책같더라고요. 형과 서로 떠난지가 팔년이 되었다면 길고도 긴 시간일 수 도 있고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8년이면 외형도 좀 변했을거라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치스러운 심문을 받을 때에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었던 형이니 마음이 편치않을 듯 합니다. |
|
사랑에 주렸던 이들이라는 제목이 중의적이라고 느꼈는데 표면적으로 자신이 믿는 종교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거기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개인적으로 작가 자신이 투영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역시 재미있는 작품이다 |
|
아무려나 이 모양으로 신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동경으로 갈 결심을 한 것 이요. 그러고 나서 내가 학비 주시는 은인을 움직이는 일이며 교회 여러 직 분들의 추천을 얻노라고 얼마나 고심을 하였는지 그것도 형께서는 짐작하시겠지요. 어쨌으나 이 모양으로 고심참담하게 경영한 결과로 동경에도 가게 되고, C학원 신학부에도 입학을 하게 되고, 그보다도 더욱 행복되게 형네와 함께 있게도 되었소이다. 아아 그렇게 된 때 ── 내가 학교에 입학까지 하여 놓고 형의 집으로 막 이사짐을 다 나르고 처음 형의 집에서 형과 매씨와 같이 식탁을 대할 때에 ── 아아 그때에 내가 얼마나 기뻤겠소? 얼마나 행복되었겠소? 이때로부터 나는 더운 날이나 추운 날이나 눈이 오거나 비가 오거나 거의 십리나 되는 학교에 터덜터덜 걸어다니는 것도 힘드는 줄을 몰랐고 또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도 고생되는 줄을 몰랐소이다. 그리고 어찌 하면 내가 눈과 같이 희고 깨끗한 사람이 되고 복음을 위하여 불덩어리와 같이 뜨거운 사람이 될까, 어찌하면 내가 복음을 위하여 구주 예수와 같이 십자가에 달려 죄 많은 세상을 위하여 사죄와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피를 흘리는 사람이 될까. 그때에 매씨가 먼 빛에서라도 ── 극히 먼 빛에 서라도 내가 십자가에 달린 것을 보아만 주면 나의 일생의 소원은 달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지요. |
|
나는 그 길로 그 누명을 뒤집어쓰고 동경을 떠났소이다. 떠나는 길에 한번만 형을 보고 갈 양으로 몇 번이나 형의 집 앞에서 오락가락하였을까. 그러다가도 문소리가 나면 혹 형이 나오지나 아니하는가 하여 몇 번이나 몸을 숨겼을까. 늦은 가을 동경에 유명한 궂은 비가 부슬거리는 그 침침한 골목에서 살아서 영원히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나의 행색이 얼마나 가련하였을까. 더우기 사랑하는 형네 남매와 이주년이나 친 동기와 다름없이 지내다가 마침내 내가 형과 맟 형의 매씨에게 대하여 감히 못할 더러운 죄를 지었다는 누명을 쓰고 제가 있던 집에 다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어슬렁어슬렁 떠나가는 내 심사가 얼마나 하였을까 ── 형아, 아마 형은 상상하리라고 믿는다. 또 만일 그때에 내가 정말 죄인이 아니요, 진실로 애매한 사람이었다 하면 더욱 나의 심사가 얼마나 하였을까. 형아, 이 말에 놀라지 말라. |
|
이광수 사랑에 주렸던 이들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205)을 읽어보았습니다. 김씨와 한 방에 있게 된 때에 선배에게 대한 예로 남창을 향한 자리를 그에게 내어준걸 보고 배려가 깊은 주인공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자신의 맘 한국석에 일어나는 그에게 대한 반항심을 누르고 누르며 있는 힘껏 그에게 공손하게 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줄 알는데 그걸 실천하다니.. 대단하네요. |
|
이광수 사랑에 주렸던 이들 (근현대 한국문학 읽기 205)을 읽어보았습니다. 자신이 어디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가르침을 지어버리지 아니하려고 전력을 다하였건마는 칠년째 잡히던 때부터 검점 맘 속에 일종의 적막과 슬픔을 느끼게 된건 아이러니하네요.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인지 아닌지. 예수께서 모든걸 알고 판단하여 알려줄것은 아니겠지만 답변을 들으려는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엿볼 수 있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