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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은 영국의 수상이자 위대한 연설가였던 윈스터 처칠의 자서전이다. 윈스터 처칠은 내무 장관, 해군 장관, 식민 장관, 수상 등 여러 관직을 두루 맡았고 강한 신념과 능력을 통해 2차례나 수상을 역임할 정도로 인정받는 리더였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었던 1940년 영국 수상이 된 처칠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히틀러에게 빼앗길뻔 했던 영국과 자유 세계를 구하며 전쟁을 승리를 이끌어냈다. 또한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를 예측하여 이를 끝내고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강력한 리더십과 용기를 가지고 있던 윈스턴 처칠은 2002년 영국 BBC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뉴턴과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되었다. 처칠이 남긴 업적과 행동, 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뛰어난 정치가이자 연설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을 통해 어린 시절, 학창 시절, 생도, 하급생, 종군기자, 청년 정치인 시절의 윈스턴 처칠의 모습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영국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처칠은 집안에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말을 더듬는 데다 공부와 규율만 강요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하면서 저능아, 낙제생,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그러면서 집안의 걱정거리가 되었고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다. 세 번째 시험을 통해 육군사관학교의 기병 사관후보생으로 입학하여 150명 가운데 8번째 성적으로 졸업한다.
초임 장교가 된 처칠은 실전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페인군 당국에 허가를 받고 쿠바에 가서 스페인군과 쿠바 반군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내전에 참가하게 된다. 처칠은 인도, 수단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이때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과 기고한 기사를 통해 군생활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더 늦기 전에 군 복무를 그만두기로 결심한다.
보어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하게 된 처칠은 전쟁 포로가 되었지만 특유의 기지를 통해 무사히 탈출하여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영웅이 되었다.
이런 유명세와 함께 이후 치뤄진 선거에서 처칠은 근소한 차이로 보수당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글쓰기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윈스턴 처칠이 어린시절부터 이제 정치를 막 시작하게 된 청년 정치인까지의 모습을. 특유의 문장력과 섬세한 표현력, 새로운 관점과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을 통해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가진 청년 시절의 처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영국을 지켜냈던 불굴의 용기와 강력한 리더십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는점에서 의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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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의 회고록이 나왔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읽게된 책입니다. 50대의 나이에 자신의 20대시절을 회고하여 적은 자서전인데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의회에 입성하기까지를 회고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은 윈스턴 처칠은 빅토리안이면서 유서깊은 영국 귀족가문의 일원이라는 점입니다. 아버지가 둘째라서 공작 작위를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귀족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사립학교를 거쳐서 샌드허스트까지 엘리트 교육받았으며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이러한 배경의 힘을 충분히 활용하였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귀족 주류라고는 보기 힘들었던 점이 아버지 랜돌프 처칠의 정치적 행보와 어머니 제니제롬이 미국 금융가의 딸로 아버지 사후 많은 사교계 스캔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배경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처칠은 만만치 않은 개인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샌드허스트 졸업이후 임관하여 인도 주둔군에서 복무를 시작하여 인도북쪽 아프카니스탄 국경 분쟁, 수단 전쟁에서 옴두르만 전투, 보어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이 개인적인 연줄을 이용하여 온갖 방법으로 참전하였고 이런 영국 상류 사회의 모습은 좀 낯선 느낌이 드네요.
현역장교이자 종군기자이라 2중 신분으로 참전한 청년 장교 모습이 이채로왔지만 처칠은 대영제국의 최전선에서 복무하면서 자신의 경력을 쌓았습니다. 그렇기에 나치에 저항한 민주주의 지도자라는 우리 이미지보다 실상은 대영제국의 마지막 빅토리안이라고 봐야 될것 같습니다.
자서전이지만 가족의 나쁜 이야기는 가리면서 거의 대부분을 자신의 참전 경험에 대한 회고여서 영국이 식민지에서 벌렸던 전쟁의 실상을 읽을수 있는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또한 기병의 쇠퇴와 점점 무기의 발전이 전장에서 발휘한 영향력에 대한 증언이기도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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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중 한 명인 영국수상 윈스턴 처칠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위인전의 주인공으로도 등장하는 처칠이지만 막상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더구나 불굴의 의지력과 강한 인내심을 갖춘 이 위대한 인물이 어릴 때는 가문의 수치라 불릴 정도로 학업성적이 형편없던 열등생이자 문제아였다는 사실을 안다면? 물론 처칠의 전기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인생역전이라고할까 학생시절에는 그닥 두각을 나타내지못하던 그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군인으로 기자로 활동하고 이윽고 정계에 진출하면서 성공과 유명세를 누리게되는 행복한(!) 결과를 알고있겠지만 평전을 쓰는 제3자가 아니라 처칠 본인의 입으로 아니 그가 손수 쓴 청춘시절의 자서전을 통해 그의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비롯하여 젊은 시기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잘 쓰여진 평전이라해도 저술자가 비록 주관적일망정 전기의 주인공인 본인만이 알고있는 사실이나 본인의 느낌, 감정까지 모조리 알 수는 없는 노릇이기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명문귀족가문에서 태어났고 조부도 부친도 정치인이었으므로 일찌감치 집안의 후광과 부모의 혜택을 받고 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학교에서는 라틴어와 수학을 못해서 거의 항상 성적은 꼴찌였고 때문에 우울한 학창시절을 보내야만했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뛰어난 기억력과 문필력, 유머감각, 독특한 배짱을 보여주고있는데 이 자서전에 언급되고있는 여러 에피소드에서도 그런 점이 여실히 드러나있다. 내가 라틴어 글자를 틀리게 읽을 때마다 선생님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 같았다. 훗날 아스퀴스 총리도 각료회의에서 내가 라틴어 관용어구를 인용할 때마다 똑같은 표정을 짓곤했다. -36쪽 삼수끝에 간신히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성적이 좋은 사람은 보병대에 들어갔지만 성적이 나쁜 처칠은 기병대에 들어가야했다. "보병은 시종 한 명이면 되지만 기병은 시종에 말 한 필이 더 있어야된다."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기병을 너무 만만하게 보신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말 한 필이 아니라 두 필이 필요했고, 거기다 사냥용 말에 폴로경기용 조랑말까지 있어야했다. 아버지는 매우 폭발하셨다. -53쪽 이렇게 근근히 육사에 입학하기는 했어도 처칠은 군대에서는 적응을 잘했으나 한편으로는 일찌감치 정치에도 흥미를 느끼고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나중에 재무상까지 지낸 부친의 영향도 있었겠으나 불과 21세에 부친을 여읜 처칠은 이제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야했다. (앞에서 기병사관에게 필요한 말때문에 랜돌프 경이 폭발한 이유는...이 책에는 그런 말이 없으나 윈스턴 처칠의 부모는 영국의 내노라하는 귀족 중에서는 그다지 부유하지못한 편이었다. 그러니 랜돌프 경이 아들땜에 폭발하지..ㅋㅋ) 학교를 졸업한 처칠은 쿠바에서 기병대 장교로 실전경험을 쌓은 후 인도로 간다. 그는 군인인 동시에 신문사 특파원 즉 종군기자 자격으로 말라칸드 전투에 참여했고 이어 파슈톤 족과의 전투,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옴두르만 전투 등 그 시대에 있었던 영국군의 전쟁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겪어본 처칠의 시각으로 읽어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특히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부분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생생하며 흥미만점이다. 그 뒤에도 처칠은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전투에 여러번 참전했으며 마침내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기까지 그가 어린시절부터 청년기에 겪었던 경험이며 생각이 두루두루 이 자서전에 펼쳐져있다. 처칠이 젊었던 그 무렵 영국 정계의 사정, 군대와 전투, 그 시대 사회모습이며 관습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청년기에 겪었던 숱한 경험과 모험, 생각이 훗날 그가 위대한 정치가가 될 수 있었던 바탕이고 원동력으로 작용했음은 분명해보인다. 세기말에서 20세기로 전환하던 시대의 영국의 모습과 윈스턴 처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처칠의 육성이 들어있는 이 젊은 시절의 자서전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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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 윈스턴 처칠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존경받은 영국의 총리였던 사실은 알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필력이 좋은 작가였다는 것 까지는 모르는 이들이 꽤 있다. 처칠이 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에 관한 것으로 실제 수년간 어린 시절 장난감병정의 열을 세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가 태어나 기억할 수 있었던 유년 시절부터 이야기는시작되는데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라틴어를 어려워 해 선생님께 혼이 나거나 친구와 작문과 라틴어를 서로 도와주며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는 일화등을 표현하는 글솜씨가 탁월해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중심인 몇몇 고전들과 비교해봐도흥미로운데다 잘 읽혔다. 특히 강압적인 기숙학교 시스템과 거의 꼴등을 벗어나지 못해 성적으로 보면 늘 뒤쳐져있어 힘들어했던 점과 유모의 영향으로 종교적으로 자유롭지 못할 때 느껴지는 답답함등은 유사한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유년기의 힘겨움등은 공감도 되었다. 물론 영국은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였기에 초창기 기병대에 일원으로 인도에 주둔했을 때의 인도에서는 누구나 적은 돈으로도 왕 못지 않은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쟁점에 있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부분까지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런 부분은 정계와 사교계에서 이미 누릴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소위 말해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과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존중하며 읽었다. 이런 염려를 더 걷어내고 보자면 앞서 언급한것처럼 ‘젊은 이들이여’를 운운하는 인생선배의 흥미로운 조언으로 받아들이기에 좋았다.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거나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젊음을 유혹하는 모험, 그리고 모험을 위한 모험이었다. 105쪽 그저 놀고만 싶은 나이에 기숙학교에 들어갔지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제한이 많았던 탓에 몸이 약해져 다른 학교에들어가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가톨릭에 대한 종교적 편견도 버릴 수 있었고 동생들과 놀다 크게 다쳤을 때에는 아버지와 비교하면 부족한 아들이지만 오히려 이 시기에 여유롭게 정치의 흐름과 현실을 공부하며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뿐아니라 스스로 정계에 나가고자 하는 바람을 꿈꾸게 되었다. 이후 전쟁을 지나치게 미화하여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만큼 열심히 전시와 훈련에 참가하던 그가 총알을 가르는 진짜 전쟁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삶에 가장 존경하는 동료이자군인들의 일화도 소개해준다. 전쟁은 물론 병영생활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가 유쾌함과 동시에 자긍심으로 소개해주는 많은 부분들에 있어 기대만큼 공감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말처럼 젊은 시기에는 움츠려들기보다 행동해야하는 것, 지금의 불행이 오히려 큰 행운으로 느끼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삶속에 수차례 반복하며 다가온다는 사실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항복은 홀로 있으며 무장을 하지 않았을 때만 사면될 수 있다.” 위대한 나폴레옹이 했던 이 말이 가슴 아프게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왔다. 304-305쪽 참전했다하더라도 행군시 맞이하는 드넓은 자연과 이를 바라보는 처칠의 경의에 찬 시선은 이따금 아름답기도 했지만 그에게 적군이 되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부족민들의 모습은 독자에게는 그저 참혹한 전쟁의 모습일 뿐이었다. 다가오는한 남자를 두고 그저 죽여야겠다는 생각만했다는 내용들을 마주할 때면 씁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참전과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은 물론 어깨탈골로 그 흔한 팔베고 책보는 것마저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격렬한 연설조차 조심스러워할 정도의 부상은 물론 폴로로 잡히는 순간 등 독자로 하여금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긴 해도 혹시나 싶어 조마조마한 상황을 두루거치면서도 도대체 그가 생에 거는 확고함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금수저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조부가 또 아버지가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경제적인 여유를 얻을 수 있었는지는 1900년 전후의 영국 사정을 언급하는 부분을 통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면서 그 시절에는 그저 허상에 가까웠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그 당시에 당연한 일들이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졌다는 것을 아느냐고 묻는다. 그의 전술이나 정치활동에 대한 술해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숨죽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위로를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철학과 신념과 반하는 부분에있어 불쾌한 감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가 이 자서전을 집필하려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 젊은이의 분투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흥미롭게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나의운명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펼쳐놓으려고 노력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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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망한 눈매와 다부진 입술을 가진 한 젊은 청년이 그려진 이 책은 처칠의 자서전이다. 그가 살아온 삶의 역사이자, 그의 지극히 개인적일 일기장. 내가 알고 있는 처칠은 너무나도 단편적인 사실만이 전부였다, 이 책에는 풋풋했던 그의 어린시절부터 사관생도 시절의 청년기 그리고 정치계에 입문해 보여주는 장년기의 모습들이 쓰여있다. 외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처음 윈스턴 가문의 소개로 시작되는 책의 서두부터 낯설었다. 하지만 대단히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시대상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처칠은 어머니로부터 인간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진 못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유모가 대신해주었고, 다행히도 유모의 사랑으로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웠던 거 같다. 특별히 학업에 뛰어났던 학생이 아니었기에, 처칠은 육군사관학교로 입학하고자 시험을 치른다. 본인이 잘하는 것에만 흥미를 가졌던 처칠은 어렵사리 시험에 통과해 사관생도가 된다. 다양한 전쟁을 겪으며 그 속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지혜는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그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글을 쓰게 된다. 그 결과는 나중에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이끌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타인에게 호소력이 짙은 글을 쓰는 문학가이자 작가였던 그는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면서 일반사람들이 잘 아는 영국의 총리 '처칠'로 발돋음 하게 된다. 총리시절 그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을 지휘하며 나치의 지배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가 사관학교 출신일때 직접 전장을 뛰며 몸으로 익혔던 경험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그 만의 특출난 언변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단하고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처칠이 일반 학생들처럼 문제아였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학업에 부진하여 성취도에 부담울 느끼는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은 이 위인과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시작과 과정이 어떻든 간에 그 시기를 겪는 동안 자신에 대한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삶을 진실되게 살아온다면, 후세에 대단하게 기억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훌륭한 사람은 태생부터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을 다시 깨달으며, 지금도 늦지 않았을 내 삶을 더 소중하고 성실히 살아보고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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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은 20세기 중반, 세계가 악마의 손에 넘어갈 뻔한 파멸적 순간에서 반인도주의 진영을 격파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하지만 나면서부터 좌절과 실패 없는 평탄한 인생을 살아 왔는가 하면 그런 축복 받은 경로와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그는 신분 질서가 유독 까다롭게 지켜지는 영국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명문가문 태생이었지만 작위와 재산은 다른 형제에게 상당부분 양보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쳐도 그는 귀족 가문 출신에게 보장되다시피한 다른 엘리트 인생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고 자신의 격정과 본능, 지혜가 이끄는 가장 험악한 선택만을 골라서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놀라운 점이며, 그랬기에 히틀러가 프랑스 영토 거의 3/5를 함락할 시점 영국 정부가 무조건 항복 안까지 검토할 절망적 시점에서 "단호한 항전"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본디 귀하게 자란 인생은 잔혹한 시련이 닥칠 시 일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나약한 선택을 하기 일쑤이며, 20세기 중반 영국은 그 정도로 낡고 쇠약해진 상태였습니다. 이런 인물이 출현하지 않았다면 유럽은 물론 세계 전체가 히틀러를 위인, 신인으로 숭배하는 체제 하에 살고 있었을 터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은 어찌해서 그런 그릇과 배포가 길러졌는지 그 젊은 시절을 중점으로 살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런 훌륭한 인물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누렸고, 그가 죽을 때까지 약 20년 동안 변하지 않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다(p94)." 이 말은 그가 젊은 시절 군에서 모셨던 브라바존 대령을 두고 한 것입니다. 그 성씨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아일랜드계이며 책에는 "가난한 아일랜드 지주 출신"이란 말이 나옵니다. 지주가 "가난하다"는 건 형용모순일 수 있으나 저 무렵 아일랜드 지주들은 위에서는 잉글랜드의 압박을 받고, 아래로부터는 동족인 아일랜드 소작농들의 거센 반란에 직면하는 등 고충 끝에 신분이 몰락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는 시스템의 본질을 잘 이해하고 직분에 충실한 장교였으며, 꼬장꼬장한 원칙주의자로서 젊은 윈스턴의 인성을 형성하는 데 한몫을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 , 그리고 얼스터 문제조차도 우리의 우정을 갈라 놓지 못했다."는 부분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적어도 북아일랜드 이슈만큼에서는 윈스턴과 대령의 의견이 매우 크게 갈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민족 간의 원한에 엮인 거라 그리 작은 대립도 아닐 텐데, 성숙한 인격체들은 언제나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빌미를 사전에 피합니다. 제국주의 영국은 히틀러의 도발을 트리거 삼아 전후 거의 한순간에 해체되다시피했습니다. 이에는 소련의 공산주의 이념이 식민 각국에 민족주의 이념을 전파한 공도 있을 테며, 애초부터 대영 제국 내부의 모순, 즉 넓은 해외에 분산된 광대한 영토를 해군력 하나만으로 관리하기가 어려웠다는 근원적 이유를 도외시하기 어렵습니다. 영국의 하층민, 서민 출신들은 처음부터 군에 입대하여 병으로서 식민지에서 복무함으로써 출세를 도모했고, 윈스턴처럼 터프하게 경력을 가꿔 나가려는 인물들은 장교나, 혹 그게 안 되면 종군기자로서 현장 경험을 쌓으려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선택은 좀 유별난 편이었습니다. 인도에서는 지금도 크리켓이나 폴로 경기가 큰 인기를 끄는데, p194에는 더럼 경보병 연대 팀의 무적 기록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럼 식민지 출신 팀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비실비실한 상대이기만 했냐면 그렇지 않아서, 같은 페이지에는 "마하라자의 자존심도 가볍게 쓸려나갔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실 북서부 인도, 현재의 파키스탄 접경 지역 주민들은 오랜 동안 인도 전역을 통치해 온 무사 출신의 후예들이거나 그들과 불굴의 라이벌 관계를 이뤄 온 종족들입니다. 체격도 정신적 무장도 세계 어느 종족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건한 이들이죠. 아무리 통치국이라고는 하나 식민지를 지배한다는 게 얼마나 터프한 일인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폴로 이야기는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데 p150, p254 같은 대목도 재미있게 읽어 볼 만합니다. 빈돈 블러드 경(p163) 같은 매우 특이한 캐릭터도 젋은 처칠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무려 찰스 2세 시절(그러니 이 시절 윈스턴보다 230년 전 사람) 왕실의 보물을 훔치려 한 블러드 대령의 후손이라는 점을 크게 자랑스러워 했다니... 그런데 이 부분 행간을 잘 읽어 보면, 당시 각종 부채 때문에 재산이 저당잡혀 있던 찰스 2세가 고의로 절도를 사주했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기 물건에 대한 절도의 교사범이 찰스 2세였던 셈이죠. 여튼 이런 캐릭터의 범상치 않은 과거사가, 심지어 파슈툰 족의 공감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윈스턴의 해석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영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프랑스 혁명보다 더 심각하고 더 처절했음을 목격했습니다. 지배층은 정치적 기득권을 모두 빼앗겼으며, 재산과 토지도 잃었습니다... (p116)" 우리는 흔히 영국식 계급구조가 불변의 공고함을 지니는, 세계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오해합니다만 보는 시각에 따라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처칠은 이 의견에 동조했다는 것이며, 이 말을 한 사람은 폴 캉봉 프랑스 대사였습니다. 어쩌면 이 말이, 존 F 케네디가 자신의 졸업 논문으로 제출한 <Why England slept>의 대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영국은 묻는다 위기가 임박하면 인도의 아들은 죽기살기로 싸울 것인가? 바다 건너 위대한 백인의 어머니여 영원히 제국을 통치하고 오랫동안 다스리고 영광과 자유가 위대한 백인의 조국에 있다"(p158) 지금 시각으로 약간 역겨울 수 있지만 식민지에 주둔하던 어떤 연대의 군가 가사라고 합니다. 연대에는 물론 인도 현지에서 징병된 병사, 부사관들도 많고, 이들 중 상당수는 제국주의의 질서에 순치된 이들이라 이런 가사가 매우 자연스럽게 입에서 불려지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이후 1차 대전 당시,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조차 영국군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종전 후 독립을 보장받자는 움직임이 컸으며, 놀랍게도 간디 역시 여기에 가담, 주도하는 처지였습니다. 무작정 선과 악, 흑과 백으로 나눠서 볼 게 아니라 이런 시대상도 정확히 알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 영국은 이후 그 약속을 아주 뻔뻔스럽게 위반했죠. 처칠은 원래 자유당 소속이었다가 뒤에 당적을 옮겨 보수당원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도 당시에는 말이 많았는데 처칠은 위트 있게 이런 공격을 받아넘긴 일화도 유명하죠. p269에는 제임스 모들리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살아온 경력을 보면 처칠 같은 이와는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는 게 분명한데도 노동당은커녕 자유당도 아닌 보수당 출신입니다. 한편으로, 19세기 초 극심했던 노동 착취상과 달리, 이 무렵이면 노동자 계급 출신 중에서도 자주성가한 사람이 많이 나온다는 뜻도 되며, 그런 현상을 보고 처칠 같은 귀족 출신이 (혹시 저들이 우리를 앞지를지 모른다는 속 좁은 조바심이 아니라) 국가가 제대로 되어 간다는 안도의 생각을 품는다는 게 이 책에도 잘 나옵니다. 그게 맞죠. 백성이 가난하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니 귀족인들 무사하겠습니까? 같은 시대 러시아를 보면 무슨 꼴이 나는지 알 수 있죠. 한편으로 재미있는 말도 많이 나오는데, 밸푸어 하원의장(우리가 아는 그 사람입니다)이 젊은 윈스턴을 두고 "약속된 청년(promised, 즉 전도양양한)인 줄 알았더니 약속만 하는 청년이었군(즉 자기 말을 지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한다거나, 4대째 들어 다시 나막신(가난한 계층이 잠시 출세하는 듯하다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풍자를 담은 속담)" 같은 게 있습니다. 이 시절의 회고에서 나중에, 처칠 앞 임기에 나치 상대로 유화정책을 편 체임벌린 같은 이도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인생의 가장 낮은 단계로 타락할 때 "막장"이란 단어를 쓰는데, 이게 탄광업 용어에서 유래했습니다. 물론 한국도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해당 업종에 종사하는 어려운 분들이 있었습니다만 이미 없어진 지 오래된 직업인데 왜 근래들어서 이 말이 유행하는지는 알 수 없죠. 여튼 젊은 윈스턴은 남아프리카 식민지까지 그 부지런하고 모험심 가득한 발을 뻗어 포로 수용소를 탈출하고 막장 체험을 하는 등 태생이 고귀한 부잣집 도련님으로서 상상도 못할 고생을 합니다. 이래서 옛 사람들 말이, "귀한 자식일수록 험하게 키우라"고 했나 봅니다.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전도서 4:31, 이 책 p363에서 재인용) 자, 이렇게 험한 고생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를 많이도 쌓은 젊은 윈스턴은,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국 여왕 한 사람만을 그 머리 위에 둔 수상 직위를 노년에 두 차례나 지냅니다. 왕은 아니어도 왕 다음 가는 높은 사람이었던 그도, 말년에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도전을 해 오면 무척 성을 낸다거나 괴팍한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실 그가 조금만 더 여유를 가졌으면, 이처럼이나 반항기 넘치고 모험심 가득하며 기성 체제에 대한 회의와 도전을 삼가지 않았던 자신의 젊은 날을 봐서라도 더 위트 있게 대했을 만도 한데요. 거의 정확히 이 책이 다룬 시기를 영상으로 옮긴 작품으로는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간디>를 연출한 그 사람입니다)이 1972년에 찍은 <영 윈스턴>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단 이 책과는 별개의, 윈스턴처칠이 쓴 다른 회고록에 바탕을 두었죠. 또 윈스턴 처칠의 2차 대전 후 은퇴 시기를 다룬 책으로는 좀 램스덴이 쓴 <Man of the century>가 있으며, 을유문화사에서 이종인 씨가 옮긴 번역본으로 나와 있으니 이 멋진 책의 후편 읽는다 셈 치고 참조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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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이 책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이다. 우리는 윈스턴 처칠을 떠오르면 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라는 것이 제일 먼저 떠올린다. 그도 그럴것이 제 2차 세계대전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큰 사건이었고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청년 처칠의 이야기가 담긴 도서로 처칠의 젊었을 때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경험했는지 파란만장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영국의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2002년 BBC가 영국인 1백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위대한 영국인 100명’ 가운데 아이작 뉴턴과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처칠이 1위를 차지했던 적도 있을만큼 역사적으로 영국에게 윈스턴 처칠은 영국 그 자체였다.
처칠은 제7대 말보로 공작 존 스펜서 처칠의 삼남 랜돌프 헨리 스펜서 처칠과 미국의 부호 레너드 제롬의 딸 제니 제롬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칠은 사실 어렸을 때 낙제상일 정도로 말썽꾸러기였다고 한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나중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처칠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수성가한 인물이라고 하지만 처칠은 명문 귀족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상처입은 낙제생이였다고 한다. 처칠의 전성기의 시작은 전쟁 포로에서 전쟁영웅이 되고 그 후 처칠의 파란만장한 인생기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이 책의 목적은 뚜렷하다. 바로 윈스턴 처칠의 청춘성장기다.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며 읽을 수 있고 영국의 위대한 인물탐구로서 독서할 수 있다.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이 책은 필수적인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쨌든 윈스턴 처칠은 영국 총리가 되어 제1,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위대한 지도자로 발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의 청춘의 시간들을 읽는것만으로도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큰 유익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윈스턴 처칠은 좋은 부분만 있는 것이 어니다. 부정적인 판단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인물을 알아갈 때 완전한 자로 바라보아선 안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어느 관점이든지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아래서 역사, 환경, 리더십, 인물사적인 잣대에서 평가하고 좋은점들을 배울 수 있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죽을고비까지 겪어가며 나중에 정치가로서 하원에서의 첫 연설에 이르기까지 처칠의 청춘은 상상할 수 없는 시간으로 거슬러 우리에게 크나큰 메시지를 던지는 시간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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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영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BBC 조사에서는 영국인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학창시절에는 공부를 매우 못하는 학생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도 3수를 거쳐서 겨우 들어갔으며, 그것도 아버지가 원했던 보병이 아니라 입학 커트라인이 가장 낮았던 기병이었다. 임관 이후에는 보어군과의 전투에서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1차 대전 당시에는 영국 최초의 해군 장관이 되는 영예를 얻었지만, 전함 2대를 아끼려다 300만의 오스만군을 적으로 돌렸으며, 그가 입안한 갈리폴리 전투는 영연방군의 무덤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투에서 종군기자를 하면서 책을 집필해 영국인들에게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정계에도 입문하게 되었다. 영연방군의 무덤이 된 갈리폴리 전투로 장관직에서 해임되었으나, 2차 대전에서는 총리가 된 후 됭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수십 만의 장병을 무수히 구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국본토항공전 등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최종적으로는 독일을 패퇴시키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자서전으로 읽어 보게 되었다. 바로 임종원 역의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 『원스턴 처칠, 나의 청춘』 행;북이다.
처칠. 그는 처음에는 세계사로 접했지만, 정치학과 윤리 철학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윤리 철학에서 그를 접한 내용은 칸트의 철학인 정언명령과 가언명령이었다. 총리가 된 후 그는 독일군의 V 로켓 공격을 런던 밖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런던 남부에 떨어지고 있던 V 로켓이 런던 북부에 떨어지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이 결정으로 런던은 무사히 지킬 수 있었지만, 런던 남부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어야 했다. 과연 그의 결정이 옳았을까? 무엇이 그를 이런 결정을 내리도록 했는지 그의 삶을 살펴보기로 했다.
과거 초강대국이었던 대영제국의 흥망을 함께한 윈스턴 처칠. 이 책은 그의 시각에서 본인의 인생은 현대사와 카리브해, 인도, 아프리카에 등에서의 영국의 식민지 경영과 전투는 물론 영국의 정치 등의 영국의 현대사를 담고 있다. 처칠 그는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었을지 모르지만, 영국인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영국인이었으며, 문학적으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반열에 오른 위대한 인물이다.
무엇이 낙제생을 처칠을 이토록 위대한 영국인으로 만들었을까? 바로 그의 삶과 경험이다. 그는 모국인 영국과 유럽은 물론 쿠바와 인도, 아프리카를 두루 거쳤으며, 군인으로서, 작가로서, 종군기자로서 활약했다. 그의 삶은 마치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인디아나 존스를 보는 것 같다. 이 책은 50대의 처칠이 20대의 찬란했던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쓴 글로 이 책은 대부분 1928년에 쓰였다. 그렇기에 이 책에 청년 처칠의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이다. 그의 삶을 통해서 군인, 종군기자, 위대한 정치인은 물론 문학가로서의 그의 삶도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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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 : 라리루 이 책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청년 처칠의 자서전이다. 원제는 “My Early Life”로 처칠의 이른 시기의 삶에 대한 내용을 전해주는 책이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는 명언을 남긴 처칠은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BBC가 영국인 100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국인’으로 처칠이 선정되었다는 것은 그가 영국사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처칠의 정말이지 파란만장한 유년기를 시작으로 하원의원이 되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 때까지의 기록만 담고 정말 담백하게 “끝”으로 마무리하는 책이다. 처칠은 서문을 통해 “이 책을 집필하면서 생애 전반을 뒤돌아볼 때 나는 이미 사라진 시대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회의 성격, 정치의 토대, 전쟁의 방법, 젊은이의 인생관, 가치관의 기준 등 이 모든 것이 어떤 강력한 혁명 없이 이루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변화되었다. 다만 그것들이 모든 면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p. 4)”는 내용을 전한다. 자신의 생애 전반을 뒤돌아보았을 때 이미 먼 과거 시대의 초상이 되어버린 것을 언급하면서 짧은 시간 속에서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고 그 가운데 좋은 것도 있지만 더 나빠진 것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처칠은 “한 젊은이의 분투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흥미롭게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나의 운명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고 담백하게 펼쳐놓으려고 노력했다(p. 5)”고 자신의 자서전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설명해준다.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는 처칠의 인생은 ‘도전’ 그리고 ‘승리’라는 공식이었다. 우리는 도전을 주저하거나 회피하려는 경향을 점점 더 갖게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도전을 통해 원하는 것이 좌절될 때가 있고 그것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칠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었던 육군 사관학교 시험의 결과는 그의 도전 정신을 꺾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처칠은 수학이라는 새로운 지원군을 전선에 투입시켜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p. 40). 왜냐하면 수학만이 유일한 지원군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혐오했던 수학이 자신의 지원군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지만 6개월을 수학과 함께 보낸 시간을 통해 승리의 기쁨을 처칠은 경험했다. 이 책은 영국이 낳은 위대한 정치인 처칠이 하원의원에 오르기까지 그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특별히 청소년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과연 위대한 한 인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과정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인지 배우며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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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유럽을 석권할 기세로 대륙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즈음 히틀러에게 유화책만 구사하다가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챔벌레인 수상의 후임으로 전시내각의 수반을 맡게 된 처칠은 하원에서 대독 결사항전의 연설로 의회와 국민의 단합을 이끌어 냈다.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전시내각의 수상으로 등장한 윈스턴 처칠의 고뇌와 결단의 시간 동안의 심리를 잘 묘사하였다. 영국 유럽 원정군은 천운이지만 덩케르크에서 처참한 몰골로 귀환했을 때 처칠의 심리는 오히려 더 굳건해졌다. ‘Never give up! never, never!’라고 일갈한 그의 외침은 세계대전의 승리로 이끌어 졌고 그의 탁월한 지도력과 판단력은 지금도 회자되고 존경받고 있다. 문득, 윈스턴 처칠의 젊은 시절의 모습도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탁월한 영도력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대영제국의 영화를 이끌어 낸 원천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처절한 실패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에 가까웠다고 한다. 특히 아이러니한게 장교 겸 종군기자로 참전한 보어전쟁에서는 포로생활까지 할 정도였고 1차 대전 당시 해군장관과 육군장관, 전쟁장관을 모두 역임했으나 하나도 성공한 작전은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반대의 이력은 그에 대해 더 궁금해 졌고 그의 젊은 시절을 스스로 고백한 자서전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은 그렇게 첫 페이지를 펼치게 되었다.
명문가 귀족 자제였지만 저능아 취급을 받았고 낙제생이었던 그는 그야말로 우울한 청춘을 보냈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처칠의 젊은 날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수에 찬, 어딘가 모를 결여의 존재였다. 성장 후 그의 장년기를 지배한 것이 독일의 도전과 응전이었다면 젊은 날의 처칠은 결격사유 많은 그의 ‘실패학’이 아닐까? 출신은 금수저였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꼴통’에 ‘무능력자’라는 딱지를 떼기 위한 처절한 고난과 역경의 나날이었다. 전혀 뜻밖이지만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의 그의 처절한 역경극복의 노력이 결국 상처후 든든한 굳은 살이 되어 전무후무한 국난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들을 격려하고 군대의 사기를 북돋는데 큰 밑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윈스턴 처칠이 가진 세계사적 의미와 별개로 아일랜드 총독이던 조부와 부친 밑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1901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계에 입문하던 시기까지를 다룬다. 그의 젊은 시절만 국한해 보더라도 불우한 유년기와 육군사관학교 졸업후 장교로 쿠바, 수단 등에서의 전쟁 경험과 포로가 되었지만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고 영웅이 된 모험담만으로 소설같은 캐릭터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청년 처칠이 어떻게 위인으로 칭송받을 만큼 훌륭한 인격과 지도력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