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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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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라는 숫자, '광주'라는 지명, '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과학용어, 그리고 '40년'이라는 시공(時空)이 우리를 여리게 한다. 광주폭동 또는 광주사태라 일컫던 이름은 이제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명(正名)을 찾았다. 그러나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의문으로 남은 게 있다. "누가? 왜? 어떻게?" - p. 5 中에서 -  김삼웅 선생이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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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이라는 숫자, '광주'라는 지명, '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과학용어, 그리고 '40년'이라는 시공(時空)이 우리를 여리게 한다. 광주폭동 또는 광주사태라 일컫던 이름은 이제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명(正名)을 찾았다. 그러나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의문으로 남은 게 있다. "누가? 왜? 어떻게?"

 - p. 5 中에서 -

 

 김삼웅 선생이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의 서문을 통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 규명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과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진상 규명 -> 책임자 처벌 -> 보상(배상) -> 바른 기록'으로 마무리되어 역사에 기록되어야 할 이 사건은 그 첫 단계인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회적 갈등과 정쟁의 대상으로만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상황이다. 더구나 2018년 9월, 국가 차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구성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공방은 물론이고 극우세력과 일부 정치인들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면서 폄하와 왜곡을 시도하고 있으니 '진상 규명'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다. 심지어 사건의 가해자들은 허위사실과 함께 자신들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이들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 역시 그러한 왜곡 과정에 적극 동참하고 있으니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게 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시민들은 보다 객관적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그 사건에 대한 무지가 바로 그 객관의 실체라는 점이다. 어쩌면 『꽃잎』, 『화려한 휴가』, 『택시 운전사』와 같은 영화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의 진실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역사가 해야 할 일을 영화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 사건은 진실로서 기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꾸준히 부정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에 의하여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빈족사 연구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선생은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을 통하여 지금까지 알려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정을 다루면서 이를 통한 이해와 반성이 없다면 다시 이러한 비극이 반복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발생 원인은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5.17 쿠데타라' 할 수 있다. 사실 '5.17 쿠데타'는 1961년의 '5.16 쿠데타'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비하여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데, 이는 1980년 5월 17일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이 정권 장악을 위해 주도한 비상 계엄 확대 조치에 따른 사건이다. 이 사건 다음날인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는 이를 위한 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폭압적인 진압에 경악한 시민들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함께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바로 신군부 세력이 5.17 쿠데타를 통하여 비상 계엄 확대 조치와 함께 바로 광주에서의 시위를 촉발하고 또 이를 강하게 진압할 계획을 미리 세웠다는 점이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통하여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정치 군인들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들을 키워준 박정희와 같이 그들 역시 그들만의 정권 창출이 바로 그 목적이었다. 하지만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커진 상황에서 그들이 곧바로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1980년 '서울의 봄'으로 대변되는 그 희망을 곧바로 야권의 분열이라는 정치적인 계략을 획책함과 동시에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그러한 음모를 계획한 것이었다. 오늘날 그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있지만, 1980년 초반부터 수도권에서 충정(忠正)부대를 조직하여 강도높은 충정훈련(忠正訓練)을 실시하였다는 점은 신군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오히려 유도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충정훈련(忠正訓練)은 군(軍)이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실시한 공세적 진압 훈련으로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루어졌다. 이는 이미 신군부가 광주를 타겟으로 하여 시위를 촉발하여 그 과정의 혼란을 틈타서 그들의 정권 장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당시 야권 정치인들과 대학생들 역시 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에 1980년 5월 18일 이전에 시위를 자제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더라도 광주의 전남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 공수부대를 배치한 것은 신군부의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강도높은 충정훈련(忠正訓練)을 받으면서 광주에 공산주의 세력이 침투했다는 식으로 세뇌당한 공수부대는 곤봉으로 학생들을 거칠게 다룸으로써 학생들을 자극하였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광주에서의 시민봉기로 이어지게 된다. 신군부는 잠시 광주 외곽으로 철수하였지만, 이는 광주를 완전히 외부와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병력을 증강하여 완벽하게 광주를 진압하기 위한 조치였다.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와 협상을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신군부는 도리어 시간을 끌면서 병력 투입의 타이밍을 재고 있었으며 결국 1980년 5월 27일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던 전남도청을 공격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결국 신군부의 의도대로 진압에 성공하게 된다.

 

 통절한 양심으로 행동했던 많은 사람이 상하고 죽었다. 시민들을 살육한 계엄군의 작전명은 '상무충정작전', 국민과 국가에 충성하고 정의의 군대가 되라는 '충정(忠正)'의 의미가 흉물스러운 벌레들의 놀음으로 변한 것이다.

 - p. 272 中에서 -

 당시 계엄군이 저지른 일에 대한 김삼웅 선생의 이러한 평가는 지금까지 알려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적의 후방 또는 전략적 요충지에 급파되어 적들을 혼란에 빠뜨려야 할 공수부대가 시민들을 향하여 온갖 만행과 학살을 저질렀다는 점은 실로 충격적이다. 더구나 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의미없는 사격을 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점이나 전남도청을 공격하는 과정은 시위진압이 아닌 군 작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기에 소름이 돋는다. 정치 군인들로 구성된 신군부는 자신들의 정권 장악을 이유로 군인과 시민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게 함으로써 6.25 이후 또 하나의 비극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계엄군이 광주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으나 극렬한 폭도들에 의해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약화되는 조짐을 보여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군을 투입하게 됐다."

 - p. 278 中에서 -

 상황이 종식된 이후 계엄군이 발표한 이 담화문은 사건의 진상을 조금만 이해해도 뻔뻔한 발표임을 알 수 있지만, 놀랍게도 이 담화문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이 여전히 이 담화문과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이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그대로 이 왜곡된 담화문을 사실인양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하여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사실로 믿는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의 양상마저 당당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역사를 이해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이 책의 내용은 우리로서는 쉽게 지나칠 수 없다. 4.19 혁명 이후에 5.16 쿠데타로 인하여 독재가 시작되었는데, 이후 12.12사태와 5.17 쿠데타를 통하여 다시 독재가 반복되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었고, 이것이 훗날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졌으니 뒤늦게나마 민주화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갖는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의 비극은 언제라도 다시 반복될 여지가 있다.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촛불시위와 탄핵이 진행되면서 일부 정치군인들이 계엄령 선포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만 보더라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규명과 함께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우리로서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특히 김삼웅 선생의 언론에 대한 비판 역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비록 신군부 세력이 광주를 완전히 포위하면서 이외의 지역의 시민들과 차단시켰지만, 언론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신군부에서 발표한 담화문을 그대로 발표하거나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현장에서의 기자들이 쓴 내용들 역시 윗선에서 차단시킴으로써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일하게 외신들이 그러한 사실을 전할 뿐이었다. 심지어 일본의 외신마저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카파이즘(Capaism)'으로 대변되는 언론의 원래 역할은 당시 상황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눈치를 보고, 6.25 전쟁 당시에 서울이 점령당하자 김일성을 찬양하였으며, 군부 독재 시절에는 역시나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써왔던 그들에게 그러한 기자정신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러한 언론이 오늘날 기득권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진실이 아닌 왜곡과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자극적으로 가공하여 편향된 여론 형성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만 보더라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보여준 언론에 대한 비판은 현재에도 유효함을 알 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사망자와 부상자, 행불자 등은 항쟁 40주년이 되는 현재까지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신군부 세력에 의하여 관련 자료가 소실되었으며, 최근에야 뒤늦게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추진되었지만 보수 야당의 방해로 특위 구성이 지연되면서 진상 규명은 더욱 요원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5월 18일이 되면 자극적인 표현과 행동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무리들이 등장하곤 한다. 결코 보수(保守)라 할 수 없는 것들이 스스로 보수(保守)라고 칭하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지역 감정을 조장하는 그들의 행태에 넘어가는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또 비극적인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의미를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g*******7 2020.06.11. 신고 공감 14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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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의 광주를 기억하며!
"1980년의 광주를 기억하며!" 내용보기
1980년 광주의 비극이 일어난 지 벌써 40주년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진실이, 여전히 법적으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지금 우리가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형인 ‘전두환의 재판’은 그 역사의 진실을 법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하나의 고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여전히 단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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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의 비극이 일어난 지 벌써 40주년이 되었다세상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진실이여전히 법적으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지금 우리가 닥친 현실이기도 하다현재 진행형인 전두환의 재판은 그 역사의 진실을 법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하나의 고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그러나 여전히 단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마음의 상처가 다시 도지는 것만 같다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들의 태도에 분노하고기나긴 시간 동안 여전히 한을 품고 사는 이들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이다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1980년 이른바신군부가 저지른 쿠데타의 준비 과정과 진행 상황그리고 그 과정에서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던 광주항쟁의 진행 과정과 그 의미에 이르기까지를 기록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5.18 광주 혈사라는 책의 부제는신군부의 총칼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영혼들의 고귀한 삶을 '피의 역사'라는 표현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근현대사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 저자에게, ‘광주항쟁’ 역시 반드시 기록하고 또 남겨야만 하는 의무라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근거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고이를 통해 역사의 진실에 한결음 더 내디딜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그리고 마침내 가해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인정하고 진솔하게 용서를 비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이 책은 40년 전에 일어났던 광주항쟁에 대한 저자의 부채감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리고 신군부 쿠데타의 전사(前史)’와 이들에 의헤 자행된 광주학살의 배경을 먼저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그리고 항쟁과 학살의 전주곡으로서 5.18전야의 광주 분위기와 신군부의 움직임 등을 서술하고항쟁이 진행되던 10여일 동안의 움직임을 꼼꼼한 자료들에 의거하여 기록하고 있다맨손의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한 계엄군들의 행위를 일컬어 저자는 인간의 탈을 쓴 악귀들의 만행이었다고 단언한다계엄군들의 총칼을 앞세운 위협 속에서도 질서를 지키면서 서로를 위해 마음을 썼던 광주시민들의 움직임도 상세히 담아내고 있다

   

결국 광주에서 일시 후퇴했다가 재진입한 계엄군의 무자비한 살상으로 인해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신군부의 무자비한 진압 실상이 다양한 기록과 자료들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여전히 밝혀지지 않는 희생자가 있다고 믿어지며최근 광주 일대 곳곳에서 암매장한 흔적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저자는 언론인 출신으로서 당시의 언론들에 의해 자행된 왜곡 보도의 실상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짚어보고 있다그리고 비록 40년이 지났지만역사의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남은 과제와 제언그리고 기억의 측면까지도 제시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독일에서는 지금도 당시 나찌 정권에 협력했던 이들을 찾아서 법정에 세우고 있다고 한다비록 가해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반드시 진실을 확인하고 그것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그런 의미에서이 책은 40주년이 되는 이 때에 광주항쟁에 관한 진실의 한자락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저자의 의지로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독자들 역시 광주항쟁이 그저 역사책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치유 과정에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i*****n 2020.06.05. 신고 공감 9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꺼지지 않는 5월의 불꽃 _ 김삼웅 지음
"꺼지지 않는 5월의 불꽃 _ 김삼웅 지음" 내용보기
202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 되는 해이다. 벌써 40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의문으로 남아있는 진실이 여러가지다. "누가? 왜? 어떻게?"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나 사태는 대체로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보상(배상) → 바른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마무리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유독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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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 되는 해이다.

벌써 40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의문으로 남아있는 진실이 여러가지다.

"누가? 왜? 어떻게?" 역사적으로 큰 사건이나 사태는 대체로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보상(배상) → 바른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쳐 마무리 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유독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첫 단계인 진상 규명에서부터 벽에 부딪혀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5.18 진상조사가 없지는 않았다. 1988년 국회 청문회부터 검찰 수사, 재판, 진상규명위원회까지. 발포 명령자, 민간인 희생자 숫자, 행방불명된 사람들, 암매장 장소, 헬기 총격 실태, 미국의 역할 등 핵심 사실들은 여전히 베일에 싸인 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 중 가장 큰 원인은 '가해세력의 존재'일 것이다. 전재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는 그 분은 왕년희 부하(공범)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허위사실로 역사를 버젓이 왜곡하는 회고록을 쓰고, 재판을 받으러 나와서는 "이거 왜 이러냐고." 당당히 소리친다. 그가 만들었던 정당의 후예들은 광주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민주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해방 이후 6.25 한국전쟁, 제주 4.3항쟁에 이어 가장 많은 국민이 희생딘 비극적인 사건이다. 6.25와 제주 4.3은 미 군정기에 시작된 참사이기에, 사실상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자국 군대에 의한 최대의 국민 대량 학살 사건이다.

우리 군이 통치하는 자국 국민에게 총질을 한 정말 말이 안되는 사건이었다.

그 군인들조차 우리 국민이고, 때로는 자신의 고향이거나 친척이 있었을 수도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1979년에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정치군인들의 헌정파괴 행위인 5.17 쿠데타에 맞선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의 위대한 항쟁으로 시작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동학농민혁명 → 3.1혁명 →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혁명의 계승이요, 국제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기원하는 시민저항권 사상의 계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촛불혁명으로 승화되었다.

 

박정희의 품에서 자란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신군부 반란세력은 박정희 정권이 조장한 지역감정의 그릇된 사고를 바탕으로 고아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자신들이 집권하는 데 최대 걸림돌로 인식한 김대중을 제물로 만들어서 광주시민들을 희생해서 정권탈취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여러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은 그날의 비극을 반도 못 그려냈을 것이다.

 

봉건군주시대 사람인 맹자도(물론 유학 사상 중 가장 저항권을 강조한 민본주의자긴 했다) "백성을 학대한 죄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라는 시민저항권 사상을 주창했다. 그렇다. 죄는 물어야 하고, 용서는 죄지은 자가 잘못을 반성할 때에만 가능하다. 

5.17 신군부 쿠데타 주동자, 즉 '죄지은 악당들'은 한 사람도 사죄하지 않았다. 사죄는커녕 기회만 있으면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해 망언을 일삼는다. 

그들은 여전히 호의호식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반복은 결국 정의에 저항하기보다 지배층의 개가 되는 척구폐요의 인간을 양성할 뿐이다. 

척구폐요 - 도척의 밥을 먹는 개는 아무리 주인이 악당이라도 주인이 시키면 요임금과 같은 성인에게까지 서슴없이 짖어댄다는 뜻이라고 한다.

5공 시대 부역한 악인들과 그 후예들은 민주주의를 향해, 광주를 향해 여전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고향이 경상도였고, 친가,외가,처가 흔히 말하는 삼족이 모두 경상도라 전라도를 처음 가본 것이 스무살을 넘어 대학생이 됐을 때였다. 

사실 내가 어릴 때는 특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그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더욱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 이미 수많은 역사책을 읽으면서 나름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비록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마음속 부채를 안고 전남지역 여러 지역을 돌아봤다. 

 

전두환과 그의 추종 세력 하나회들은 박정희 사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잡는다. 사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종말을 맞이했기에 혼란기와 권력 공백이 발생했고, 이 틈을 군인들이 노린 것이다.

그렇게 정권을 탈취한 군부세력이 가장 무서워 한 것은 정통성이었고, 또한 서울과 전남 광주를 두려워했다.

서울은 대학이 밀집되어 있고 반유신 저항운동의 진원지가 되고, 광주는 학생운동의 전통과 함께 반유신에 이어 10.26 이후에도 학생, 노동자,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신군부는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5월 17일 24시) 이전에 이미 전국에 충정부대를 극비리에 급파하여 주요 대학을 점령하도록 했다. 특히 고아주에는 정예부대인 7공수여단을 투입했다.

 

전두환 신군부는 5월초에 시국수습 방안을 모색할 당시부터 이미 국민이 크게 반발,저항할 것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여 '강력한 탄압'의 방법으로 시위를 진압하도록 평소에 훈련된 공수부대를 투입할 것을 계획하고,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전에 미리 전국의 대학과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을 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광주에서 일정한 규모의 소요를 일으켜 집권의 명분으로 삼고자 기도한 신군부 측은 수시로 상황을 보고받으면서 사태가 악화하는 쪽으로 몰아갔다. 특수훈련을 받은 공수대원들의 무자비한 폭력행사가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면서 학생들의 시위는 시민항쟁으로 비화하게 되었다. ---p.78

 

군사정권의 시대에서 젊어서부터 구너력의 꿀맛에 젖어온 5.17 쿠데타 주동세력은 민주주의나 인권, 국가안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입으로는 안보를 들먹였으나 이들에게 그것은 그저 수사에 불과했다. 오로지 권력과 정권 차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광주 시내를 점거하고 저항을 시작했다. 이런 시민들을 공수부대원이 투입되어 시위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책에는 당시 시민들의 육성이 많이 나오는데 차마 글로 옮길 수가 없다. 마음이 아프다.

이 와중에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인 외신 기자가 광주의 현실을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국내적으로는 군부에 의해 장악된 언론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군부에 협조한 불의한 언론도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총칼을 들이미는데 그 사람들에 '당신들은 정의를 지켜라'라고 오로지 물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일부 한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하더라도 추후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시점에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응분의 불이익도 감수해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 언론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바른 정의를 행하지도 않았다.

 

대검이 와서

그의 가슴을 찌르자 뒤에서는

개머리판이 와서 그의 뒤통수를 깠어요.

으윽- 한낮의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고꾸라지자 이번에는

군홧발이 와서 그의 턱을 걷어찼어요

피를 토하며 거리에

푸르고 푸른 5월에

 ------김남주, <학살 4> 중에서

 

계엄군은 의도적으로 사망자를 감추고, 현실을 부정했다. 아마 수백명의 사람이 그 과정에서 희생되었을 것이다.

 

독립운동사 및 근현대민족사 연구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민중화운동을 유발한 전두환 신군부의 실체부터 광주항쟁의 역사와 의의,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앞으로의 과제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은 미완으로 남겨져 있는 역사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현재까지 확인되거나 알려진 사실과 자료들을 토대로 그 시대를, 또 그 사건을 잘 모르는 세대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5·18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는 결국 기록의 산물이다. 가장 필요한 작업이다.

더 우리의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이 책은 저자가 동시대인으로 광주항쟁 때 싸우지 못한 ‘형이상학적인 죄’의 부채감에서 쓴 ‘5·18 광주민주화운동사'이다. 저자는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바람을 적었다.

“앞으로도 거짓과 왜곡 속에 가려진 진실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속에서 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학살자들의 재심과 진심어린 사과를 비롯해 망언자들의 처벌 등이 뒤늦게나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는 심정으로 썼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사실 나는 그 당시의 군인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군인이 당시 불의를 내부에서 저항했으면 좋았겠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군인들은 상명하복하고, 가려진, 왜곡된 진실에 의해서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 군인들에게 이용 당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아픈 날을 기억하고 꺼지지 않는 정의의 불꽃으로 이 시대의 아픈 역사를 통렬히 반성하고, 정의에 분연히 일어선 사람들을 기리고, 또 잘못된 사람들을 시간이 얼마나 흐르더라도 반성하게 만들고, 응당한 처벌을 할 때 우리는 역사를 바로보게 되고, 불의가 흐르지 않는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한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도덕불감증과 인권, 예의, 정의가 떨어진 것은 이런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단죄되지 않음을 역사속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늦지 않았다.

항상 정의가 승리하고, 언젠가는 정의가 드러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2020년 6월, 40년이 흐른 시점에서 다시 그들을 생각한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d*****2 2020.06.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형이상학적인 죄’의 부채감에서 ‘5·18 광주혈사’ 쓰다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형이상학적인 죄’의 부채감에서 ‘5·18 광주혈사’ 쓰다" 내용보기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의 정식 명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당시에는 군부 정국주도세력이 '폭동' '사태' 등으로 규정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약 열흘간 총칼로 수백 명이 희생됐고,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해방 이후 6·25 한국전쟁, 제주 4·3 항쟁에 이어 가장 많은 국민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이다.4·19 혁명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형이상학적인 죄’의 부채감에서 ‘5·18 광주혈사’ 쓰다" 내용보기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의 정식 명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당시에는 군부 정국주도세력이 '폭동' '사태' 등으로 규정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약 열흘간 총칼로 수백 명이 희생됐고,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해방 이후 6·25 한국전쟁, 제주 4·3 항쟁에 이어 가장 많은 국민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이다.

4·19 혁명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고, 훨씬 더 잔혹하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큰 희생을 치른 광주민주화운동은 이후 한국의 민주화를 이끄는 활화산이 되었고, 마침내는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광주에서의 희생자들은 '가신 님'이 됐고, 살아 남은 시민들은 '남겨진 자'가 됐다.

남겨진 자들은 가신 님들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 등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권을 잡은 신군부의 탄압은 오히려 거세졌다.

광주 오월의 뜻을 살린 명칭으로 되돌리기에만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5·18’이라는 숫자, ‘광주’라는 지명, ‘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 그리고 ‘40년’이라는 시공(時空)이 우리 마음을 또 다시 뜨겁게 한다. 광주폭동 또는 광주사태라 일컫던 이름은 이제 광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명(正名)을 찾았다. 그러나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의문으로 남은 게 있다.

“누가? 왜? 어떻게?” "발포 명령자는?" "헬기 투입 기관총 난사" 등 책임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아 진상 규명을 향한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를 하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광주민중항쟁을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의 실체부터 광주항쟁의 역사와 의의, 그리고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지금까지 확인되거나 알려진 사실과 자료들을 토대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잘 모르는 세대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피로 쓰인’ 5·18의 역사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부제 : 5·18 광주혈사)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신군부 쿠데타와 광주학살의 배경 등 광주항쟁이 벌어지기 전의 전주곡과 같은 역사, 그리고 광주항쟁 첫날부터 계엄군에게 진압되는 마지막 날까지 치열하고 끔찍했던 항쟁의 나날들, 마지막으로 광주학살의 주범과 공범, 광주항쟁 이후 남은 과제 등이다.



먼저 앞부분은 5·17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그 일당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의 면면과 역사를 알려준다.

그들은 왜 하필 광주를 찍었는지, 충정부대는 왜 사전훈련을 했는지, 5·18 항쟁 전야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도 자세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5월 18일 첫 시위와 격돌이 시작된 날부터 무자비한 진압과 학살이 자행된 열흘의 모습을 하루씩 나누어서 보여준다.

계엄군의 무차별 진압과 학살의 잔인함,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해방 광주’의 평화로운 모습, 그리고 계엄군이 가공할 무기로 전남도청을 최종 진압하는 마지막 날의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순간까지 빠짐없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광주항쟁이 끝난 뒤에 권력을 차지하는 전두환을 비롯한 광주학살의 주범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죄상은 무엇인지 낱낱이 들춰낸다. 또한 신군부 세력이 광주학살의 주범이라면 광주항쟁의 진실을 왜곡보도하거나 신군부를 추켜세우며 공범을 자처한 국내 언론들의 민낯도 보여준다. 언론들은 광주를 두 번 죽인 공범들이었다.

저자는 5·18의 특징을 열 가지로 정리하고,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일러준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역사성과 함께 반역사 현상도 남겼다. 5·17 쿠데타의 주범 전두환과 그 공범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광주항쟁을 폭도로 몰았던 언론과 망언을 계속하는 정치세력은 광주가 살린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민주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봉건군주시대 사람인 맹자도 ‘백성을 학대한 죄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以討虐民之罪)’라는 시민저항권 사상을 주창했다.

그렇다. 죄는 물어야 하고, 용서는 죄지은 자가 잘못을 반성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5·17 신군부 쿠데타 주동자, 즉 ‘죄지은 악당들’은 한 사람도 사죄하지 않았다. 사죄는커녕 기회만 있으면 광주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해 망언을 일삼는다.

‘척구폐요’라는 말이 있다. 도척, 중국 춘추 시대의 도적 우두머리)의 밥을 먹는 개는 아무리 자기 주인이 악당이라도

주인이 시키면 요(堯)임금과 같은 성인에게까지 서슴없이 짖어댄다는 뜻이다. 전두환 정권의 악인들과 그 후예들은 민주주의를 향해, 광주를 향해 여전히 짖어대고 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전후 독일인의 ‘4가지 죄’를 들어 일대 참회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했다. 4가지 죄는 형사상의 죄, 정치상의 죄, 도덕상의 죄, 형이상학적인 죄를 말한다.

‘형이상학적인 죄’란 히틀러 치하에서 싸우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일컫는다.

이 책은 저자가 동시대인으로 광주항쟁 때 싸우지 못한 ‘형이상학적인 죄’의 부채감에서 쓴 ‘5·18 광주혈사’이다.

저자는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바람을 적었다.

“앞으로도 거짓과 왜곡 속에 가려진 진실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광주민주화운동이 역사의 정좌(正座)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학살자들의 재심을 비롯해 망언자들의 처벌 등이 뒤늦게나마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저자는 전두환 신군부의 5·17 쿠데타 당시 광주항쟁이 없었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없을 수도 있고,

이후 민주화운동은 크게 지체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와 유신정변을 겪은 한국민이 또다시 그의 후계자들에 의한 ‘예고된 쿠데타’를 당하고도 저항에 나서지 않았다면 국제사회에 부끄러움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5·18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저항권의 발동이었다.

광주항쟁이 추구한 가치와 큰 목표는 김대중 석방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짓밟은 전두환을 타도하고, 불법적인 계엄령을 해제하고, 민주화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민주화’였다. 민주주의는 3·1 혁명으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이 추구해온 ‘민주공화’의 기제에 속한다.



광주항쟁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훼손하고, 다시 전두환이 짓밟은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국민저항권의 발로였다.

지역성과 정파성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가치였다. 광주항쟁은 독재자 박정희의 암살이라는 사태에서도 군부 일각이 교훈을 배우지 못하고 권력에 눈이 멀어 역사를 반동으로 몰아가는 반역에 저항하는 의거였다. 이 의거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전두환 정권을 비정통적·반동세력으로 규정함으로써 향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5·18의 역사성과 가치, 성과는 무엇이고, 지금 어느 지점에 이르렀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자가 정리한 5·18의 특징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복합적인 시민혁명의 성격을 갖는다, 둘째, 5·18의 목표가 뚜렷했다, 셋째, 5·18은 무장봉기였다,

넷째, 민족자주정신을 체현했다, 다섯째, 시민공동체 정신을 발현했다, 여섯째, 고도의 도덕성을 유지했다,

일곱째, 광주항쟁으로 인해 신군부에 의해 수립된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국민적 정통성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여덟째, 군부의 정치개입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아홉째,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진 영남 출신이 대통령을 차지하여 정권을 독점해온 것을 광주항쟁의 정신이 호남 출신의 김대중으로 잠시나마 교체됨으로써 지역평준화를 이루게 되었다,

열째, 광주항쟁은 ‘동학혁명→만민공동회→의병→3·1 혁명→임시정부→의열단→독립군→광복군→4월혁명→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항쟁→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족사의 정맥(正脈)을 잇고, 향후 민주화와 민족통일운동의 동맥(動脈)으로 작용할 것이다.



신군부쿠데타의 전사(前史)

광주학살의 배경

항쟁과 학살의 전주곡

도청 앞의 첫 격돌과 시내시위

둘째 날의 항쟁과 진압

셋째 날의 항쟁과 살육

넷째 날의 항쟁과 살육

다섯째 날의 항쟁과 질서회복

여섯째 날의 항쟁과 시민 자위

항쟁과 수습대책

여덟째 날: 시민자치와 계엄 당국의 음모

최후까지 협상 시도했지만 재진입한 계엄군의 무자비한 학살

신군부의 무자비한 진압 실상

광주 두 번 죽인 왜곡보도와 학살자들

탄압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

남은 과제와 제언 그리고 기억

하루 단위로 들려주는 광주항쟁, 그리고 광주학살의 주범과 공범들



저자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 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 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필화사』,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이회영 평전』, 『노무현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김영삼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나는 박열이다』, 『박정희 평전』,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송건호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매천 황현 평전』, 『3·1 혁명과 임시정부』, 『장일순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등이 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글입니다.>


c*****0 2020.06.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