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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F..C.는 arte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SF 페미니즘 클래식 시리즈로 이 책은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조금 생소한 감이 드는데,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었다. 생소하기에 더 기대가 되기도 했다.
SF는 페미니즘의 고전이며, 페미니즘은 SF의 현재이다. SF...F..C.가 다루는 작가들은 시대의 최전선에서 가장 창조적인 방법으로 한계에 맞섰다. 숙고하는 이성과 창조하는 상상으로 도래할 미래와 무지의 위험을 그리는 SF페미니즘 클래식 시리즈.
그 중 허랜드(Herland) 를 만났다. 저자인 샬럿 퍼킨스 길먼(1860~1935년 )은 사상가, 여성참정권론자, 강연가, 논픽션 저자, 잡지 발행인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유명사회개혁가였다. 가부장적 억압에 맞섰던 길먼이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로 선택한 장르가 유토피아 픽션이었다. 길먼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의식 또한 왜곡시킴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심각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보았다. 등장인물 중 테리가 대표적으로 그런 인물인데, 성에 대해서 아주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남성 우월주의에 빠져있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 사고의 변화를 서서히 겪어나가는 화자를 통해 약간의 희망을 볼 수 있기도 했다.
화자인 나는 친구 테리와 제프와 함께 대규모 과학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안내인들로부터 지방 부족들의 전설과 민간신화를 꽤 많이 알게되었는데, 그 중에서 남자는 없고 여자들과 여자아이들만 사는 기이한 나라의 존재가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남자들이 갈 곳이 못되는 위험한 곳, 보러 간 사람들은 있었지만 돌아온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는 그 곳을 찾아 떠났다. 돈이 많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테리는 예쁜 여자들은 가지고 놀 장난감이고 못생긴 여자들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제프는 여자에 대해 지나친 장미빛 환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화자인 나는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이 '허랜드'에 대해 수 많은 상상력을 펴면서 추측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여자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당시 우리는 그 누구도 여성 문제에 대해 진보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화자의 말에서 앞으로 만나게 될 허랜드의 여자들이 어떤 사고를 하는 사람들일지 조금은 유추해볼 수 있었다.
마침내 허랜드를 만난 그들의 눈 앞에는 아름다운 도시와 잘 가꿔진 숲이 펼쳐져있었다. 그 나라의 모습을 보고 그들은 분명 남자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여자와 여자아이들만 있는 것을 보면서······ 낯선 문화를 만나면 선입견을 가지기 마련이다. 남자들이 살아돌아온 적이 없다는 말때문이었을까? 허랜드의 사람들이 세 남자를 어떻게 다루게 될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세 사람을 손님으로 잘 대접했다. 그들을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싶어했다. 동경이라기보다는 앎에 대한 욕구,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서로의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고, 상대의 역사등을 배우면서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기록해나갔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남자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었고,여자들만 살고 있으니 모성과 자매애도 강했고, 아이들의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 여자들은 신체적으로 강인했으며, 그 나라에는 질병도 없고, 전쟁도 없고,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갔다. 평화로움 그 자체였고, 모두들 만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지력과 의지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굉장한 성취를 이뤄낸 나라였다.
여자들과의 멋진 경험들을 기대했던 테리는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보려고는 하지 않고, 이곳의 여자들은 전혀 여자답지 않다고 말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사랑, 투쟁, 위험도 없는 생활을 못견뎌할 뿐이었지만, 제프와 지적 호기심에 푹 빠져있는 화자는 지겨워하지 않았다. 화자는 여자들만으로 만들어낸 이 사회를 보면서 많은 충격을 받고 고민하고, 생각의 변화를 겪어나갔다.
모성이라는 본질적 특성이 문화 전체의 주조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이 여자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이 현저히 부족했다. 이에 나는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여성적 매력들'이 사실은 전혀 여성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성이 반영된 것뿐이라는 확신을 즉각 얻었다. 남자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발달되었을 뿐, 발달 과정에서의 진정한 성취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는 특징들인 것이다.-p 97
여자라는 말을 쓸 때는 여성, 즉 성별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2000년동안 끊임없이 발전해 온 여성 문명 속에서 살아온 이 여자들에게는 자기들이 이루어 낸 사회 발전의 한도 내에서 여자가 그러한 거대한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단어였고, 남자는 단지 남성 즉 성별만을 의미했다.-p222
허랜드의 여자들은 남성이라는 성이 존재하는 바깥 세상을 배척하기보다는 배우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 테리,제프, 화자는 두 문화의 결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결혼을 했다.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낼 수 있었을까? 테리에겐 평소 여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해서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으며, 제프는 허랜드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렸다. 그 중 가장 이상적인 커플이 화자와 엘라도어였다. 엘라도어는 완벽한 삶의 터전인 허랜드에 대해 한 치의 부정적인 생각이 없었지만, 바깥 세상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화자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기를 두려워하면서 여자들이 이뤄낸 허랜드에 대해 경외심을 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책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읽기는 했지만, 디스토피아보다 더 불가능해보이는 유토피아 세상이었다. 이 책이 쓰여진 때(1915~1916년)로부터 1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성에 대한 시각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조제 오웰의 <1984>와 같은 세상에는 더 빨리 도달했지만······ 왜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빨리 달려오는 것인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여자들이 많이 있었다. 결혼과 출산, 교육, 일, 종교등 아주 많은 주제들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저자가 그리는 유토피아적인 삶과 실제 현실의 모습을 대입해가면서 비교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유토피아인 허랜드의 완전무결한 세상보다는 오히려 상대를 이해해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를 그려나가는 모습들에 더 끌렸던 책이었다. 저자도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그런 저자와 함께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세상은 조금씩 변화가 되고 있긴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보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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