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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좋다. 얼마간은 고문과도 같은, 그녀의 의식의 흐름대로 쓰여진 작품들을 읽어내기란 어려운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간간히 발견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에, 그녀의 이야기에 기쁨에 휩싸일 때가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만큼 난해하지만, 어디선가 만난 것만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박솔뫼 작가, 그리고 그녀의 <그럼 무얼 부르지> , 참 매력있는 작가와 책이다. 며칠 전 나의 최애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이효리가 한 말이다. "요즘은 포기할 건 포기하는 시대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세대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내낸 말이 아닐까? 박솔뫼 작가님의 <그럼 무얼 부르지>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나'는 악착같이 성취해내는 인물이 아닌, 포기할 건 포기하고 순응하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포기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없다. 그냥 그날그날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영화를 보고 또 여행을 간다. 여행을 가서도 어디 근사한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한적한 어촌마을을 산책하고, 교회에 가고,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적당한 가격의 식사를 한 후,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이 책은 7편의 단편집이 실려있다. <차가운 혀>, <안 해>, <해만>,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 <그럼 무얼 부르지>, <해만의 지도>, <안나의 테이블>이 그것이다. 겨울과 봄은 실제로 다르지 않다. 더하고 뺀 합으로 보자면 말이다. 되도록 일찍 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차가운 혀> P.10 <차가운 혀>의 나는 봄과 겨울이 결국은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시작한다. 싱그럽고 따스한, 에너지가 넘치는 봄과 찬바람이 불고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은 잉여로움과 잉여롭지 못함을 가졌다는 면에서 서로 같다고 이야기한다. 봄의 잉여가 겨울의 잉여롭지못함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 '나'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바에 출근하기전의 나는 잠을 자고, 바의 사장은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는다고 했다. 사장의 삶이 다채롭고 풍요롭다고 해서 나의 풍요롭지 못한을 어찌해주지는 못한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결국 텅 비어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뿐이지. <해만> P.94 회사를 그만둔 '나'는 남쪽의 작은 어촌 마을인 '해만'으로 떠났다. 해만은 존속살인을 한 범죄자가 숨어들어도 좀처럼 수사하기 힘들만큼 외진 곳이었다. 유명하지도,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닌 해만을, 나는 수도에서의 월세보다 저렴하다, 날이 따뜻하지만 비가 자주 온다, 그러한 이유들로 해만을 찾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고여있고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기만 하는 해만에서 모두를 멀리, 원래 멀었다면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찾았다고 했다. 여름이 끝나고 수도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가볍고 바람이 통과하고 텅 비어있고, 질문들은 빈 공간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어떻지는않았다. 사라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P.93) 모든 것이 천천히 멀어지고 사라지고 나면 텅 비어 버린이 강렬해질 뿐이라고. 구어체가 뒤섞여있는 문장들은, 읽다보면 매력있는 4차원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하기도 하다. 이 책에 실린 소설의 절반 정도는 바닥에 앉아 침대 위에 컴퓨터를 놓고 썼다니, 나도 가능한 편하게 읽어보려고 했다. 그녀가 하고싶은 말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문장들 자체가 그녀 자신이고, 그녀의 속에 있는 무언가를 써내려간 것이지만 큰 뜻이 담긴 문장을 쓰겠다고 천명하듯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바득바득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것도, 그녀가 원하는 바는 아니지 않을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초판 작가의 말에서 '소설들도 나름대로 발이 달려서 어디로 간 것 같다'고 한 것처럼 이 작품들이 어떤 발이 달려서 독자들을 향해 걸어 가든, 아니면 독자들이 보기에 어떤 발이 달려있다고 해석하든 그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 아닐까? 무엇보다 여지가 많은, 텅 비어 있지만, 강렬한 그런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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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잘하게 되는 데 필요한 건 열심히가 아니라고 그게 남들이 보기엔 열심히로 보여도 당사자에겐 아니라니까 열심히가 아냐 무작정이 아니란 말이야 좀 더 구체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항목이 당사자와 함께 달려 나가는 거에 가깝다니까. 뭐 양보해서 열심히가 중요하다고 쳐도 정말로 열심히의 세계가 있겠어? 있다 해도 그게 튼튼해? 검은 옷 당신의 말처럼 열심히의 세계로 만들어진 노래가 자기의 몸을 부수고 세상에 던져질 만큼 튼튼해? 게다가 열심히로 만들어진 노래라니 조금도 듣고 싶지 않잖아. 안 그래? 정말로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생각이라는 것을 했는데 아니라고 생각해. -'안 해' 중에서, p.53
박솔뫼의 첫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는 2014년 출간 당시 이 작품집으로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6년이 지나 이번에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 시리즈로 재출간되었다. <오늘의 작가 총서>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2000년대 이후 출간작 중, 문학적 가치와 소설적 재미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정으로 독자를 만나기 어려웠거나, 다시 단장할 필요가 있는 5종의 소설을 동시에 선보였다. 신작이 아니라 독자들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기존 작품들을 새로운 표지로 보여준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이번에 만난 작품은 표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서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는데, 사라지고 나면 남는 것들에 대한 사유가 근사하게 표현된 이미지라 작품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에는 지명을 공유하는 작품이 두 작품 있고, 공간과 등장 인물이 공통적인 작품이 두 작품 있다. <안 해>라는 작품에서는 노래방에 손님을 가둬두고 막무가내로 노래를 시키는 검은 옷 남자가 등장한다. 여고생 두 명이 손님으로 오면 한 명은 노래를 계속 부르도록 시키고, 같이 온 친구는 노래방 뒤에 있는 방에 가둬두는 식이다. 노래를 부르던 여고생이 밖으로 나가려 하면, 문을 발로 차고 가둔다. 검은 옷 남자는 어떤 기준에선지 사람들을 고른 후 가두었고, 누군가는 가두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시킨다.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고 정말로 열심히 부르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면 그때 그 사람의 노래가 완성되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데, 물론 무작정 노래를 해야 하는 당사자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 중에 누군가가 기세 좋게 남자의 논리를 거부한다. ‘구름새 노래방’이라는 공간과 ‘검은 옷 남자’라는 노래방 사장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이라는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두 작품을 연작이라고 보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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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나고 나는 수도로 돌아왔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책을 읽던 남자가 말했던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해하고 나자 그 말은 당연하게 여겨져 어째서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지 오히려 의아했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지? 어느 때고 그렇지? 여전히 나는 가볍고 바람이 통과하고 흔들거리고 텅 비어 있고, 질문들은 빈 공간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돌아가고 싶어지는 때도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어떻지는 않았다. 사라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해만' 중에서, p.93
<해만>과 <해만의 지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해만'은 육지로부터 배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섬이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섬에서 서너 달 머무르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의 돈이 생겨 해만에 가게 된다. 그곳을 알게 된 것은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존속 살인을 한 범죄자가 해만에 숨어들어 한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고, 볼거리도 없는 그곳에 가게 된 이유치고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곳은 마냥 안온하거나 평화로운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그곳에 온 여행자들이었다. 이야기는 그곳 여행자들의 숙소를 중심으로 어린 대학생, 책을 읽던 남자, 직장을 그만두고 온 '나'를 비롯해서 섬에 들어왔다는 존속살해범의 여동생이라 자처하는 여자까지 자발적으로 육지를 떠나 그곳을 찾아온 이들의 사연을 풀어낸다.
그 밖에도 5.18을 겪지 않은 세대가 '광주'라는 사건에 대해 갖는 역사적 태도를 보여주는 <그럼 무얼 부르지>, 사람이 테이블이 되어 가는 이상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 부조리극 분위기의 <안나의 테이블>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박솔뫼의 소설들은 독특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쉽게 잘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무슨 얘기인가 싶은 게 있고, 연작처럼 보이는 작품임에도 뭔가 어긋나 있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서사가 갑작스레 돌발적인 곳으로 향하기도 하고, 삶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결여한 것처럼 보이던 인물에게도 욕망이 있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작가의 색깔이 뚜렸하다는 점이 박솔뫼의 소설들이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서사의 '재미'적인 요소는 조금 덜하지만,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읽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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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총서 3번째 시리즈다. 앞의 두 권은 장편소설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작가의 이름이 특이하다. 솔뫼라는 이름이 왠지 한글 이름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작가의 이름만큼 소설 속 각 상황들도 평범하지 않다. 대부분의 단편소설집이 그렇듯, 7편의 단편 중 한 작품의 제목이 소설 전체의 제목이 되었다. 제목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이 소설 속에는 평범한 게 하나도 없다. 평범한 것이 뭐냐는 질문에 나는 과연 뭐라고 답할까? 아마 보통의 평균적인 삶을 이야기할 테지... 그런 틀에서 보면 이 작품 속 등장인물 누구도 평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만 같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고, 익숙하지 않고, 공감 가지 않는 낯선 삶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두 편의 소설이 기억에 남는다. 표제작인 그럼 무얼 부르지 와 차가운 혀다. 바에서 일하는 나와 대학생인 누나. 동거 아닌 동거 같은 생활을 하는 둘의 관계는 뭔가 기묘하다. 애인 같지만, 애인 같지 않은... 내가 일하는 바로 누나는 알바가 끝나면 찾아와서 돕는다. 닭과 돈가스를 튀기고, 오렌지와 사과를 깎고, 청소와 재떨이를 비운다. 안주가 되는 과일 하나와 과도를 들고 나는 아름다운 삼각형을 떠올린다. 과일과 과도, 나 사이에도 있는 아름다운 삼각형이 누나와 나 사이에는 없는 것 같다. 나는 계속 그 생각을 한다. 누나는 과일처럼 반으로 자를 수 없기에, 누나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바에서 일하며 나는 점점 살이 찐다. 사장은 그런 내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바에 출근 전에 무엇을 하는지 사장은 나에게 수시로 질문을 한다. 사장의 질문에 나는 대답할 거리가 없다. 어김없이 알바가 끝나면 내가 있는 Bar로 오는 누나. 도와주던 누나가 언제부턴가 술을 먹는 양이 많아졌다. 맥주 한 캔에 위스키 두 잔을 먹던 누나가 세잔, 네 잔 양이 늘어난다. 결국 그런 누나를 본 사장은 나를 자른다.(어차피 누나는 아르바이트생이 아니었으므로) 다른 일을 구하는 나. 여전히 술에 빠져사는 누나.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지내가며 나는 다시금 생각한다. 친하지 않았던 사장과 나 누나의 삼각형을 말이다.
그럼 무얼 부르지 에는 1980년 5월 18일이 담겨있다. 유학생 해나와 광주 출신 나는 우연한 만남을 가진다. 해나는 내가 광주 출신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당시의 기사를 발췌해 이야기를 나눈다. 직접적으로 광주의 이야기가 드러나진 않는다. 그저 massacre(학살)이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누구에 의해서, 왜 등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그 학살이라는 한 단어에 축약되어 있을 뿐이다. 오히려 소설만 보면 해나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가게 주인이 추천해 준 음식류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 학살 2라는 제목의 시만 기억에 날 뿐이지만 감춰져 있지만 알고 있는 이야기라서 더 소름 끼치듯 안타까운 이야기기도 하다.
이 책에 담겨있는 작가의 소설 모두 뭔가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에둘러 표현한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근데 그렇기에 어렵지만 박솔뫼 라는 작가만의 색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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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다시 읽게 될 줄 알았어> 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은 박솔뫼 작가의 [그럼 무얼 부르지]. 지인들이 난해하다고 이야기했던 이승우 작가의 [지상의 노래]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두 번째 책인 조해진 작가의 [여름을 지나가다]도 인상깊었는데, 강적이 나타났다! 앞선 다른 두 작가와 마찬가지로 박솔뫼 작가의 책 또한 처음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건만, 생각보다 너무 어렵다! 총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인데 제대로 이해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 같은 느낌. 눈으로 글자는 좇되, 책과 내가 하나됨을 느낄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다고 할까.
단편집을 읽을 때는 표제작부터 읽는 지라 <그럼 무얼 부르지>부터 펼쳤다. 샌프란시스코를 여행 중이던 '나'는 버클리 대학 인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어를 배우는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카페에서 한국어로 된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이런 모임이 있는데 나오지 않겠느냐고 권해서 나가게 된 모임. 그 곳에서 만난 해나라는 여자가 건넨 프린트물. May, 18th 에 관한 자료. 30여 년 전 광주에서 태어난 '나'인데도 어째서인지 프린트물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헤어질 때 해나가 건넨 또 다른 종이에는 김남주 시인의 [학살 2]가 적혀 있었고, '나'는 이 시에 대해서 역시 '외국 사람의 시, 게르니카에 대한 글, 1947년의 타이베이에 대한 글' 같은 느낌으로 바라본다. 해나를 다시 만난 것은 3년 후의 광주. '나'는 둘이 들어간 어느 바에서, 역시나 손님으로 들어온 어떤 남자가 '그해에 서울에 있는 광장에서 부를 수 없게 된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청하고, 역시 손님으로 있던 또다른 어떤 남자가 그 노래를 왜 들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럼 무얼 불러야 하지?'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있다. 지난 3년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순간순간 30년 전의 광주를 연상하게 하는 일들이 몇 있었지만 '나'의 시선은 그 때의 광주에 가닿지 않고, 마치 '몇 개의 장막이 쳐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뿐이다.
작품 해설을 읽었는데도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작품 속 '나'와 30년 전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 사이에는 '시간'이라는 구분선이 있고, 그 시간의 폭만큼 '나'는 광주의 그 사건에 아무 느낌도 가지고있지 않다는 것 정도. 그에게는 그 사건이 별다른 의미를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김남주 시인의 [학살 2]를 읽어도 외국 사람의 시, 다른 나라의 상황과 관련된 글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몇 개의 장막'이 쳐져 있는 듯한 감각으로, 멀리서, 그야말로 남의 일처럼 광주의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많은 젊은이들의 상황. 을 그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표제작을 비롯, 작가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파악하기 쉬운 작품이란 그야말로 단 하나도 없었다. <차가운 혀>를 읽으면서 '우웅? 했던 감상은 <안 해>와 <그때 내가 무얼 했냐면>의 이상한 노래방 주인을 만나 정점을 이루었고, <안나의 테이블>에서는 '대체 이런 작품을 쓴 이유'에 대해 고심하게 만들었다. 분명 박솔뫼 작가를 좋아하고 그의 글에 열광하는 독자들도 있을 터인데, 나는 이 [그럼 무얼 부르지]만 접해서는 그의 세계에 빠져들어가기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냥 손에서 놓고 싶지는 않다는 오기. 그 오기로 모든 이야기를 다 읽어냈으니, 일단은 한걸음 내딛었다고, 그리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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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은이) / 민음사 (펴낸이) 세기적으로, 세계적으로 극찬하는 명화를 보면서 '이 작품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문외한이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거라는 위안으로 오히려 작품을 혼자만 인정하지 않았던 기억.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을 대할 때도 그렇다. 이 작품을 통해 글쓴이가 하려 하는 말은 무엇일까? 도무지 쉽게 그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글쓴이. 그런 작품이 고전에도 현대문학에도 존재한다. 이 책 <그럼 무얼 부르지>의 저자 박솔뫼의 작품이 내게는 그렇다.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마치 낯선 세상의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느낌. 그런데 그녀의 작품은 내게 큰 자극을 준다. 보편적일 것 같지 않은 주제를 선택했을 그만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묘한 느낌. 이 책 <그럼 무얼 부르지>에 담겨있는 작은 이야기들은 때론 독립적이고 때론 퍼즐처럼 이어지는 느낌을 함께 전해준다. 순식간에 읽힐 이야기들이지만 책장을 덮고는 생각의 시간을 절대 짧게 주지 않는다. 긴 여운이 남는 이 책 <그럼 무얼 부르지>로 저자 박솔뫼의 생각에 한걸음 다가가본다. '차가운 혀'라는 단편에서 두 사람을 본다. 시간이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르바이트 생. 시간이 날 때면 여행이며 책이며 친구를 만나는 사장. 그 두 사람을 통해 저자에게서 생각을 강요받는 느낌. 꿈이나 희망이 없을 것만 같은 나태하고 지루한 느낌의 아르바이트생. 뭔가 열심히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윗세대 사장. '안해' 와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도 독특한 박솔뫼의 캐릭터 설정과 생각을 강요받는 느낌이다. 노래방에온 손님을 감금하고 노래를 시키며 '열심히'를 설명하는 검은옷의 남자. 갖힌 사람들은 젊은이들이었다. 작품 속에서 그들의 특별한 저항이나 탈출의 시도를 발견하지 못하였기에 저자가 의도한 생각의 초점을 다른곳을 탐색하게 만들었다. 역시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짧은 시간이 아쉽기만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를 가장 깊은 생각의 늪으로 끌어들였던 작품 '그럼 무얼 부르지'. 작품 전체가 나와는 거리가 먼 세상의, 나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느낌으로 이 책을 보았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작가' 시리즈 중 다섯번째 도서 '도시의 시간'을 통해 독특한 설정과 문체를 경험한 이유로 이번 작품 <그럼 무얼 부르지>역시도 내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간차, 즉 세대. 다른 세대에게서 느껴지는 새로운 시각이랄까? 그럼에도 작품속에서 전세대와 이어지는 그 무엇의 작은 실타래를 발견한 느낌이다. 그 줄을 잡아당기면 결국 지금과 닿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첫 단편 '차가운 혀'와 두 번째 단편 '안해'에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저자 박솔뫼의 생각을 읽지 못한 느낌이 남아 못내 아쉽다. 그녀의 작품 모두를 볼 생각으로 작품의 이해를 잠깐 미뤄두려 한다. 작품해설 속 평론가의 말로써 작품이 가지는 메세지를 머리속에 넣고 싶지 않기에, 몇번이고 읽고 싶은 책으로 남을 작품이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긴 이야기가 아님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글쓴이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라 생각하기에,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 총서' 작품 3편을 통해 많은 메세지를 얻으려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세 작품 모두 오래 기억될 작품으로 책장에 고이 꽂아두니 뿌듯함이 남는다. 고전문학이 가지는 매력도 좋지만 현대문학이 가지는 매력이 이렇게 값지다는걸 새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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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얼음 같은 표지. 책을 읽기도 전에 서늘할 것만 같았는데, 그 느낌이 맞았다. 서늘하다. 스릴러의 서늘함과는 다른 서늘함. 혼자 남겨진 자의 서늘함이었다. 책은 총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독특하게도 연작처럼 느껴지는 단편이 각각 두 편씩 총 네 편이고 새로운 이야기가 세 편이다. 일곱 편 모두 독창적인 매력이 가득해 마치 각기 다른 작가가 쓴 글처럼 느껴진다. 형식도 그렇다. 작가마다 고유의 문체가 있지만 그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나 박솔뫼 작가의 문체는 때론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야기를 생생하게 묘사하는데 있어서 문체가 하나의 장치화 되기 때문이다. 독특한 경험이다. 독자가 느끼는 낯설음 마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장치다. 책을 펴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단편 ‘차가운 혀’는 마치 공중파에서 쉽게 보기 힘든 단막극 같다. 보는 이로 하여금 편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중파 드라마들 사이에서 단막극은 친절하지 않은 상황과 독특한 인물들이 등장해 낯설게 느껴지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묵직하게 감정을 건드는 점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화자는 술집 주방에서 일하는 남성이다. 그에게 행위는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듯하다. 그는 우울하며 우울은 염세주의가 되어 그를 감싼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설명해야한다면 ‘차가운 혀’와 같을까.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사람도 결국엔 사람임을.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은 이미 무엇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임을 말이다. 종국에 가서 그는 그저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인간이었음을 느낀다. 그때부터 연민이 시작된다. 다른 단편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인 불안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니, 불안하고 외롭기 때문에 스스로를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도록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어쩌면 당신의 인생에서 모르고 지나쳐도 상관 없을 사람들. 박솔뫼 작가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는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인 것처럼. 그래서 책을 읽고 있자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박솔뫼 작가의 글을 빌어 내 앞에 드러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그 사람이 된다. 그 경험은 작가는 그 사람들과 나를 이어주는 무당 혹은 메신져 같다고 생각되어질정도로 생생하다. 역지사지.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라도,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연민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있던 연민은 불안하고 외로운 나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면서 나의 깊숙한 감정을 건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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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혀
바의 주방에서 일을 하고 서빙을 하며 지내는 주인공은 사과와 오렌지와 자신을 하나의 점으로 이어서 만들어지는 삼각형에 안정을 느끼는 사람으로 꼭 과일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모든 관계는 3개의 선으로 연결되어져야 안정적인 공간과 관계가 되는 사람. 3개의 점이 완성이 되면 그 외의 것에는 어떤 희망도 욕망도 없이 지내는 하루가 길기만 하고 시간은 느리기만 한 남자의 이야기
누나는 사과 같고 오렌지 같고 사슴같고 토끼같다. 누나는 내가 평생 보는 것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장이 존 것을 보지 못해 우는 누나가 보는 것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사장은,사장도 같아.이 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우리는 누군가의 삼각형이 되지 못하지만 우리 셋은 같다.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 p.33 )
안 해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
인적이 드문 손님이 별로 없는 구름새 노래방 사장은 손님들중에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감금하고 노래방에서 노래하기를 강요한다. 그가 감금하는 사람은 열심히 노래하지 않는 사람을 감금해서 열심히 노래하기를 강요하고 열심히에 대해 상대가 수긍을 하던 수긍을 하지 않던 일장 연설을 하고 강요하고 협박한다. 좁은 공간에 갇힌 피해자와 또 다른 피해자와의 만남. 열심히 노래 부르기를 강요 당하며 수긍하지 않을 시 폭력을 당하는 장면을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데 날이 날카로운 시린 잔인함이 돋보이는 이야기이다. 이 두가지 이야기는 연작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게 되는데 각각의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남자는 열심히에 대해서 말하지? 하지만 잘못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서 안되는게 있다면 아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 않지? 하는 비뚤어진 교정의식과 아 나는 열심히 하는데 왜 안 되지? 하는 피곤한 자학 이 둘뿐이었다. (p.52)
해만 / 해만의 지도
이 두편의 이야기도 이어진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작가는 이 해만이라는 가상 도시를 상상할 때 인류가 멸망할 때 사람들이 다 죽고 한두명이 살아 남으면 어떻게 되나 라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로 가는 마을인 해만에 가서 돈이 떨어 질때까지 지내다가 자기 자리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이곳에 가게 되는 여주인공. 두어 달 다녀온 후 사촌 동생의 해만에 가겠다는 말에 도움이 되어 주겠다며 자신의 기억으로 해만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해만에서 같이 지내던 우석을 만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와 그 동생이라고 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하던 중 자신이 본 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혼란스럽다.
여전히 나는 가볍고 바람이 통과하고 흔들거리고 텅 비어 있고, 질문들은 빈 공간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도 돌아가고 싶어지는 때도 없다. 언제나 그랬지만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중략)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결국 텅 비어버린 자신이 강렬해 질 뿐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 (p.94)
그럼 무얼 부르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행중에 나는 한 대학 근처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모임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고 거기에서 5월의 광주에 대해 토론중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차후 여행에서 돌아와 모임에서 만난 혜나와 다시 광주를 찾게 되며 항쟁의 시와 노래들을 접하는 이야기로 시공간을 왕래하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그 시간에 도달할수 없는 그런 영역이 있다는 것을 다시 자각하게 되는 이야기.
총 7편의 단편집으로 되어 있는데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물음표를 머리에 띄우고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았던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느 책보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던 책이었다.단편이 주는 강렬함 .장편의 주는 스토리나 흐름.읽다 보면 어느 정도 상상을 하게 되고 스토리를 구상하고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되는데 ..음..한편을 읽고 나면 연작인가 싶은 몇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뚝 끊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책이었다고나 할까
특이한 점은 문체라고 볼수 있는데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해서 마음속의 말과 뱉어내는 말이 공존하는 느낌이 읽다 보면 자연스레 문장을 소리내어 읽게 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을 들수 있다. 말하듯이 하나하나 따라 읽어 가다 보면 느낌이 더 잘 전달되는 그런 기분이 든다. 육하원칙 그런거 배제하고 의식의 흐름대로 줄줄 뱉어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의식과 무의식이 같이 둥둥 글로 떠다니는 듯한 묘한 기분에 빠져들고 때로는 괴기스러운 공포가 스며들기도 하는 부분은 좋았는데 그럼에도 이해력 부족인가 내겐 살짝 어려웠다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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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요즘은 명확함 보다는 모호하게 흐릿한 선을 따라 가는 것 같다.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도 없고, 하더라도 그것이 수학공식 마냥 딱 떨어지지 않는다. 질병과 재해가 얼마나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하고 있는 요즘 흐릿한 눈으로 바라보듯 텅 빈 세계를 그린 작가가 있다. 박솔뫼 작가는 이전에 <도시의 시간>을 통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다. 장편의 호흡을 통해 그가 그린 회색빛의 세계를 관통하며 무감하고 차가운 색감을 많이 나타낸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 무얼 부르지> 역시 같은 색깔을 띄고 있다. 누군가는 눈이 안 좋으면 안경을 써서 명확하게 바라보려 하지만, 누군가는 안경을 쓰지 않고 세상을 흐릿하게 본다고 한다. 많은 것들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너무나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때때로 나 역시도 많은 것들을 선명하게 보려 노력하지만 한 편으로는 흐릿한 세계가 더 편할 때가 있다. 박솔뫼 작가가 그린 인물들은 그 어떤 액션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삶에서 수긍하며 살고 있다. 2014년에 출간된 이 단편집은 총 7편의 작품을 엮어 만든 책이다. 이전 보다 훨씬 더 멋집 옷을 입고 나온 이 책은 단편이 주는 색다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단편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지금껏 장편에서 느껴보지 못한 실험적인 소설이나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로 하여금 독자에게 짜릿함을 안겨준다. 박솔뫼 작가의 단편역시 단편의 장점과 더불어 실패한 세계에 대한 사랑과 더해지지 않는 현실의 이야기를 과감없이 그려낸다. 마치 수학공식을 그려내듯 증명을 해 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순간순간 장막을 들춰보이듯 보이지 않는 이면 속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치 안경을 벗고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그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파도에 밀려나가듯 그렇게 이야기를 타고 흘러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박솔뫼 작가가 그리는 의미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구나 하고 말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그리고 있는 배경의 면면 까지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로 관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제자리에 서서 그저 상상만을 하며 멈춰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얼음 같은 삶이 책 속에 숨어 있다. 요즘 같이 모호하고 모호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맞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명확한 이야기를 좋아함에도 어딘지 모르고 관통하는 이야기처럼 우리의 삶 역시 이와 같이 명확히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 여전히 나는 모든 게 같다고 생각해.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하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해.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한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나는 내 시작이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빨리 흐른 적이 없었다. 늘 하루가 길기만 하다. 태어날때부터 지루하고 이미 늙은 사람 같다. 나는 할아버지가 손녀를 보는 것처럼 누나를 보았다. 누나는 사과 같고 오렌지 같고 사슴 같고 토끼 같다. 누나는 내가 보는 것을 평생 보지 못할 것이다. 사장은, 사장도 같아. 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우리는 누군가의 삼각형이 되지 못하지만 우리 셋은 같다. 이것으로 우리 셋은 똑같다. -p. 33 해만에서 우리는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그러다 말이없고 흔들흔들거리고 떠나고 돌아가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처럼 해만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천천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 결국 텅 비어 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뿡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 - p.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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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하다.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묘한 책이다. 젊은 작가들을 언급할 때 들어 알고 있는 이름이었지만 실제로 작품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작가가 초대된 모 팟캐스트를 들으며 이 작가의 작품은 내 이해 정도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작가의 책을 만났다. 반 정도는 이해한 것도 같고 납득하지 못한 부분이 반 넘어인 것도 같기도 하다. 작가가 젊기 때문일까 추측도 했지만 이해의 어려움은 꼭 세대 차이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작품 해설에서 힌트를 얻었다. 박솔뫼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이상한 것을 써야지. 예쁨 받을 수 없는 것을 써야지. 나는 그런 마음을 가졌다. 금요일 밤의 마음. 차가운 한밤중 홀로 어딘가를 달려 나가는 마음. 내가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여기는 것은 아무래도 그뿐이었다. p.241, 박솔뫼, 「수상소감ㅡ 제1회 자음과 모음 신인상」, 《자음과 모음》, 2009년 겨울호, 23쪽 '이상한 것', '예쁨 받을 수 없는 것'을 쓰겠다는 작가였다. 작가로서 그런 작품을 작정하고 쓰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작품을 쓴다는 것,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내놓으려한다는 것은 독자를 전제한 일일테다. 그런데 이상하고 예뻐할 수 없는 것을 누군가 봐주길 바라며 만들어낸다니 작가의 책이 묘한 이유가 있다 싶었다. 더 이상한 일은 책장을 넘겨가면서 일어났다.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사과와 오렌지를 깎으며 삼각형을 꿈꾸는 바 직원 이야기, 원인과 결과를 도무지 이어붙일 수 없는 노래방 납치 사건, 서커스단 단장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이 테이블이 되어가는 이야기 등을 '읽을 수' 있었다. "납득할 수가 없군" 생각하면서도 "그래서 다음은, 다음은" 책장을 넘겼다. 이런 일이 작품 해설에서 말하는 '사건적 성격'의 시작일까. 작가와 이야기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서로 무심함에도 불구하고 박솔뫼의 글이 문예지에 발표되는 소설의 형태로,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책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것을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사건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것이다. p.240, 작품 해설 中 책에 실린 7편의 단편 중 흥미를 끈 것은 「해만」, 「해만의 지도」, 「그럼 무얼 부르지」 세 편이었다. 해만이라는 이름의 섬을 방문한 나의 서술로 이어지는 앞의 두 단편은 여행이라는 모티브가 친근했다. 여행지에서 있을 수 있는 목적없는 그러나 기억을 남기는 만남이 그려진다. 해만에서 우리는 문을 열고 인사를 하고 그러다 말이 없고 흔들흔들거리고 떠나고 돌아가고 그리고 생각한다. 그처럼 해만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천천히 모든 것이 멀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사라진 곳에 대고 묻는다. 결국 텅 비어 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뿐이지. 아, 정말 그렇지? 질문들도 빠져나간 텅 빈 곳에 대고 대답했다. 아, 그렇네 하고. p.94, 「해만」 아버지를 살해한 존속 살인범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서사의 큰 줄거리와는 관계없다. 등장 인물들이 대화하는 소재로 쓰일 뿐이다. 정해진 목적없이 그냥 떠나는 여행에 대한 느낌, 여행지의 환경과 사람에게 느껴지는 낯섦과 호기심같은 것들에 공감해서 이해해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쉬운 단어들로 쓰여진 다른 단편들이 어렵게 생각됐던 것은 작가가 가진 생활의 배경과 나의 것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혹은 생활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여러 감성의 자장을 나와는 아주 다르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 무얼 부르지」는 광주 태생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광주'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교토에서 그리고 광주에서 '광주'를 소재로 타인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이야기는 보통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나'는 광주의 역사성을 모호하게 느끼고 다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광주'와 '나' 사이에는 '장막'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명확한 세계에 없었다. 마치 아주 복잡한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거기는 어디지? 하고 들여다보아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사자는 아니며 또한 명확한 세계의 시민도 아니었다.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었으므로. p.145, 「그럼 무얼 부르지」 광주를 보는 지금의 시점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광주는 아픈 과거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나 그 역사를 '당사자'로서 느끼기 어렵게 됐다. 그렇게 말하는 것 또한 죄스러운 일이라 또 솔직하기 어렵다. 작가는 그 어려움을 담담히 쓴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나'에게 '광주'의 시간들은 "내가 모르는 시간으로 내가 더하거나 내게 겹쳐지지 않는 시간들'이다. 주인공은 애써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광주'를 기억하는 실마리가 남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내게 너도 광주 사람이지 하고 말했는데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아득함을 느끼고 고개를 휙 돌리고 반응도 하지 않고 맥주만 마셨다. 반대편의 말끔한 중년 남자는 매실이 들어간 술을 금세 비웠으며 몇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매실이 들어간 술을 마신 적이 없다. pp.150-151, 「그럼 무얼 부르지」 '매실이 들어간 술'을 마지지 않는 것,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이런 행동이 지금 광주에 대한 기억을 고통스러워하는 것 아닐까. '80년에 광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본 매실이 들어간 술을 피하는 일 말이다. 소설가가 말하고자 했던 어떤 것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것만 같은 책읽기였다. 이해의 정도를 신뢰할 수 없으니 참신하다고도 신선하다고도 말할 바가 못된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작가의 의도 언저리에 닿기라도 한 것이길 바란다. 부디 그 의도에서 그린 먼 곳은 아니었길. 우리는 어디에 닿았을까? 거기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면 결국 그리 먼 곳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겠지 그곳은. 여기가 아니라 어딘가. p.202, 「안나의 테이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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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작가에 관해 알게 된 것은 민음사 유튜브를 통해서다. 편집자님의 책상을 구경하는 컨텐츠였던 것 같은데, <인터내셔널의 밤> 문체에 관한 설명을 들었을 뿐이지만,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지는 흥미로운 설명이었다. 이 책의 문장은 아름답지 않다. 한 문장 한 문장 들여다보면 주절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각 단편의 줄거리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사건으로 가득하다. 비간 감독의 영화 <지구 최후의 밤>이나 <카일리 블루스>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장이 모여 만들어내는 장면이 싫지는 않았다. 무엇에 관한 비유인지 모르는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도, 왜인지 읽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가장 읽을만 했던 단편은 5.18 광주 민주 항쟁을 다룬 이 소설집의 표제작 <그럼 무얼 부르지>였다.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꾸 자신의 고향 광주에서 일어났던 5.18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각각 다른 시점에, 다른 공간에서 들은 이야기지만 주인공은 이 모든 사건이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나는 한국인들은 정말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면 죽는다고 생각하니? 설마 산소 부족이 이유라고 생각하는 거야? 같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데. 어쨌거나 거기서 듣는 5월의 이야기는 마치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이라거나 칠레의 피노체트가 저지른 일과 억압받았던 그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명백하고 비교적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처럼 들렸다." -p.129 "그때는 5월이었고 두 번째 시를 받게 되는 때도 5월이며 그 사이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중간에 교토가 점처럼 찍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공기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3년 전의 시선으로 3년 후를 보았으며 내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웠는데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그대로였으며 (후략)" -p.143 자신조차 기억하지 않던 일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듣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에 관한 단편이었다. 이 알 수 없는 소설이 궁금한 사람들, 독특한 소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