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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5] 몽골 제국, 세계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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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기원 세계화는 국가간의 상호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가 단일한 체계로 나아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흔히 세계화라고 하면 WTO[세계무역기구] 출범에 따른 자유무역의 확대를 떠올린다. 물론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과 이에 따른 유럽의 식민지 개척시기를 ‘1차 세계화’ 혹은 세계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세계화의 기원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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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기원

 

세계화는 국가간의 상호 의존성이 증가함에 따라 세계가 단일한 체계로 나아가는 현상을 의미한다이에 따라 흔히 세계화라고 하면 WTO[세계무역기구출범에 따른 자유무역의 확대를 떠올린다물론 콜럼버스의 신대륙 상륙과 이에 따른 유럽의 식민지 개척시기를 ‘1차 세계화’ 혹은 세계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 세계화의 기원을 그 보다 앞선몽골의 정복사업에서 찾는다도대체 무엇이 저자로 하여금 몽골의 정복사업을 세계화의 기원으로 여기게 했을까 

 

 

칭기스의 교환의 뜻

 

미국의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스비(Alfred W. Crosby, 1931~2018)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혹은 우연한 상륙이 신대륙과 구대륙의 동물식물병원균문화의 직간접적 교환[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을 통해 다양한 사회를 변화” [p. 28]시켰다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몽골의 정복사업이 세계사에 초래한 획기적인 전환을앨프리드 크로스비가 만든 콜럼버스의 교환에서 착안한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이라고 부른다물론 콜럼버스가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몽골의 세계 정복도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제국을 형성하여 기술사상문화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 세계적인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다시 말하면저자는 학문 연구에서 ‘위대한 인물’이라는 개념을 고려하는 것은 최근의 경향과 거리가 있지만진정으로 위대한 남성 혹은 여성이 때때로 나타나 세계를 극적으로 변화시키거나 최소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길로 역사를 이끌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칭기스 칸) 성취는 다른 사람들을 자극했고군대에 시동이 걸리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몽골 제국이 분열한 이후에도 대략 85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칭기스 칸의 후손들이 지배했고이웃 국가들은 그 후손들과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어야 했다칭기스 칸이 사망한 후 수십 년심지어 수 세기가 지난 뒤에도 그의 그림자는 예전의 제국과 그 너머에 드리우고 있었다만약에 세계를 몽골 제국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본다면그 사이에 세계가 매우 달라졌으며 상호 연관성이 훨씬 더 커졌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pp. 28~29]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몽골족이 세계주의를 선도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는 몽골족이 그러한 조건들을 마련했고 촉진자 역할을 수행했지만, ‘칭기스의 교환의 대부분은 몽골족에 복속한 사람들과 외부에 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생겨난 결과” [p. 29]라고 주장하고 있다.

 

 

칭기스의 교환의 구성

 

이 책의 1부와 2부는 성격이 다르다. ‘1부 촉매가 된 몽골의 정복은 몽골 초원의 미약한 세력이었던 보르지긴 씨족이 칭기스 칸이라는 지도자를 만나 유라시아 세계를 통합하기까지의 과정과 칭기스 칸 사망 이후 후계자들에 의해 제국이 원(제국일 칸국차가다이 칸국주치 칸국(=킵착 칸국/금장 칸국[金帳汗國])이라는 4개의 영역으로 분리되고 이후 더 많은 계승 국가들로 분열되는 양상을 압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몽골사에 관심 있는 이에게 1부는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한다.

 

반면이 책의 ‘2부 칭기스의 교환은 에서는 몽골 제국에 의한 유라시아 세계의 통합이 어떻게 세계화의 시작이 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4장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에서는 무역을, ‘5장 새로운 전쟁방식에서는 전쟁방식과 무기를, ‘6장 몽골의 행정에서는 몽골의 정치 조직과 행정 체계를, ‘7장 종교와 몽골제국에서는 종교를, ‘8장 몽골족과 흑사병에서는 14세기 유라시아 세계를 휩쓴 흑사병의 유행을, ‘9장 이주와 인구의 추세에서는 파괴를 피하기 위해서 혹은 몽골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이주와 인구의 추세를, ‘10장 문화교류에서는 사상예술음식물품의 교류를 각각 이야기 한다.

몽골 제국의 등장은 교역로를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국가들을 절멸시키고사고방식에 변화를 일으켜 유목민과 정주민의 전통적인 교역 방법을 바꾸어놓았다” [p. 163]는 말처럼 기존의 고립된 인간의 삶을 파괴했다그리고 그 위에 몽골 제국은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그 내부를 촘촘히 이어나갔다역참 제도를 통해 교역로의 안전과 편리함을 보장하고통행료와 세금을 줄이고효율적이고 장기적인 행정 기구를 설치하자 상인뿐만 아니라 종교인군인기술자노예와 피난민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했다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화의 싹이 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결이 가져다 준 부작용도 있었다바로 14세기 흑사병의 유행이었다과거였다면 산발적이고 국지적인 유행에 그쳤을 이 전염병이 몽골제국에 의한 연결망을 따라 세계적인 규모로 퍼져나갔고이로 인해 노동교육의학종교 등의 분야에 의미 있는 변화가 발생했다.

(인구 부족으로 인해) “일부 직업은 이제 여성을 받아들였다실제로 14세기 후반과 15세기 중반에 맥주와 에일 생산에서 여성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장원에서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는 데에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임금 노동이 증가했다사람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급료를 반드시 지급해야 했다임금이 충분히 높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났다.


교육에도 변화가 생겼다. (흑사병으로혼란한 시기이다 보니 시민들은 자연히 낯선 사람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그래서 일부 대학들은 단지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다른 한편 흑사병 이후 부유한 후원자들이 지역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대학을 건립했다학생들은 주로 해당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에 국제 통용어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었고이로 인해 라틴어보다는 지방 언어 사용이 크게 늘었다.


네 종류의 체액(검은 담즙노란 담즙)을 강조했던 갈레노스파 의학은 흑사병을 설명하지 못했고갈레노스파 의사들의 처방한 치료법도 효험을 보지 못했다. (그 결과 갈레노스파 의학을 대신해서해부학을 강조하는 새로운 경험주의 의학이 발전했다이는 좋은 현상이었지만새로운 의사들은 대부분 이발사였다.


(종말론이 강조되면서 새로운 수호성인을 숭배하거나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해서 속죄하려는 사람도 늘어났다어쨌든교회는 죽은 성직자를 대체할 새로운 목사들을 임명해야 했다너무 급하게 목사들을 대체하다 보니 때때로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목사들이 생겨났고라틴어나 올바른 예식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예배에서 지방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이단의 견해도 증가했다이러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교회는 목사를 점차 대학에서 충원하게 되었는데대학의 학생들은 철학과 같은 다른 분야도 공부했기 때문에 교회가 배척하는 신념들도 지니고 있었다이 기간에 르네상스뿐만 아니라 종교개혁의 뿌리가 일부 형성되었던 것이다.” [pp. 303~307]

 

지금의 세계화와 코로나 19의 유행은 어쩌면 몽골제국의 세계화와 흑사병의 유행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혹시 세계화나 이런 측면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이 책의 2부가 참고되리라 생각한다.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사계절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w******f 2020.07.11. 신고 공감 20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몽골 제국의 세계사 속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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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의 역사적 흔적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세계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몽골 제국의 영향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또 서구의 모든 것들이 동양과 연결되게 만드는데 기폭제가 된 것이 이들의 행보다. 몽골제국은 근대 이전에 동서를 연결시킨, 세계화를 이루게 만든 나라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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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의 역사적 흔적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세계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몽골 제국의 영향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또 서구의 모든 것들이 동양과 연결되게 만드는데 기폭제가 된 것이 이들의 행보다. 몽골제국은 근대 이전에 동서를 연결시킨, 세계화를 이루게 만든 나라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들은 서남아시아를 통해 아프리카까지 나아갔고, 유럽을 침공했으며, 동북아시아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이 남긴 행로를 쫓아보는 것은 근대 세계사의 근간을 아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몽골 제국이 가지는 중요성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는 영역이다.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다. 크기는 대략 아프리카 대륙의 넓이 만하다고 한다. 범위는 더 넓은 것을 보여준다. 유라시아와 그 너머까지를 그들의 영역으로 볼 수 있겠다. 또 하나는 자료가 수많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몽골제국이 점령지의 문화를 최대한 존중하는 입장에 서 있었기에 다양한 언어로 몽골의 세계가 기록되어 있다. 주로 한문과 페르시아어 이지만 그 외에도 몽골어. 러시아어. 슬라브어, 프랑스어. 일본어. 이탈리아어, 아르메니아어, 위구르어, 티베트어 등 다양한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몽골의 세계를 연구하는 어려움이 되기도 하려니와 싱그러운 보고로 볼 수도 있다.

 

이 책은 이런 다양한 언어로 된 몽골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세계사적 위치를 투명하게 재인식해 보고 있는 글이다. 몽골제국을 온전히 아는 일에는 정말 다가가기 쉬운 것이 아니다. 많은 언어들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방대한 내용을 점검하기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비교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역사를 찾아가는 일은 세계를 재음미해 볼 수 있는 거대한 일이기에 행하는 자들에겐 큰 즐거움과 보람이 될 것으로 인지된다. 토머스 올슨의 몽골제국주의> <몽골제국의 상품과 교류> <몽골 유라시아에서의 문화와 정복등은 그의 작품으로 몽골제국의 성격을 구명한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등 서구인들이 쓴 동방에 관한 이야기 등도 몽골제국을 이해하는 자료가 된다. 페르시아어, 아랍어 자료들도 몽골제국을 이야기하는데 요긴하다. 한문으로 된 책은 원사가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조합되어 이 책의 바탕이 되고 있다.

 

칭기스 칸이 사망한 후 수십 년, 수 세기가 지난 후에도 그들의 영향력이 존재함을 볼 수 있다. 확실히 몽골 제국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본다면, 세계가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저자는 말한다. 몽골 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칭기스의 교환은 대부분 몽골족에 복속한 사람과 외부에 있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졌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직접 행한 것도 물론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테무진이 몽골리아를 통일하는 과정들이 제시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테무진은 타타르와 금에 심각한 타격을 입으면서도 자체적인 세력을 길러간다. 그의 성공은 기마병과 초원의 힘이었다. 옹기라트족과 타이우치트족이 편입되면서 거대한 세력이 되어간 그는 타타르족을 끝장내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전쟁의 양상이 조금씩 변화를 시작한다. 이전까지 전쟁이 약탈의 성격을 지녔다면 이제는 정복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테무진은 공격 시 약탈 금지의 명령을 내린다. 이 일은 획기적인 싸움이 되고 그 후 전쟁에 승리할 때 그는 귀족들은 쓸어버리고 평민들은 흡수해 나가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머리를 길러 자신의 종족들을 통치하도록 만들어 나갔다. 몽고 제국의 지배방식이 이 때부터 정해져 나가기 시작했다. 점령지에서 그들 중 테무진과 가까운 자 증에서 머리가 나왔다. 그것은 몽고 제국의 뿌리를 튼실하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

 

테무진이 죽고 여인의 섭정이 조금 이루어지다가 뭉케가 나온다. 제국을 다스리는 자는 칭기스 칸의 후예여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다른 조건이 없었기에 경쟁 후보들 간에 전쟁이 빈번했다. 뭉케가 죽은 후 그의 동생 중 아리 부케와 쿠빌라이 사이에 긴장이 고조된다. 그리고 각자는 서로 다른 곳에서 칭왕 한다. 둘이 전쟁을 하여 쿠빌라이가 승리하나 이미 영향력에서는 많은 손실을 어쩔 수 없다. 쿠빌라이는 남송과의 전쟁을 열심히 했고. 한국 일본에까지 손을 내민다. 1276년까지 계속된 남송과의 전투는 서방에서 가져온 투석기, 그리고 해군력 등으로 이룬 승리였다. 싸움에서도 진보된 방식이 사용될 수 있었던 것도 광범위한 그 세력권이 바탕이 된다.

 

몽골 제국이 거대하게 퍼져 나가면서 사라진 여러 왕국과 제국도 있다. 물론 그들의 후손들이 그 지역에서 세력을 잃고 존재했겠지만, 지배계급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국가들은 금 제국, 타타르 연맹, 커레이트, 나이만, 서하, 카라키타이, 호레즘 제국, 불가르, 킵착연맹, 아바스 칼리프 조, 아유브 왕조의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이집트의 아유브 왕조, 모술, 룸의 셀주크 술탄국, 블라디미르-수즈달, 키예프, 알라무트와 쿠히스탄의 이스마일 국가, 송 제국, 대리, 킬리키아, 안티오크 공국 등 큼직한 것만 헤아려도 많다. 그들의 세력 확장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자료다. 하지만 그들도 4칸 국으로 분리되고, 차츰 그 세력을 잃어가기도 했다. 지금의 몽골이 그들의 후예로 남아있다. 제국이 사라지면서 다양한 범주의 계승자들이 명멸해간 흔적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그들이 지배했던 모든 곳에 상당하게 남아 전해져 온다.

 

몽골 제국은 전쟁뿐만 아니라 교역에 관심이 많았다.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그들의 제국은 교역로를 제공했고, 통행료와 세금 정책도 상인들에게 유리하게 해주었다. 이는 동서 교역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실제로 동서 문물이 급속도로 교류가 되었다. 종이, 인쇄술 등도 이들에 의해 서구로 전해지고, 서구의 문예부흥과 산업혁명의 주춧돌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들은 상인이 찾아오게 만들었고, 모든 교역로의 혜택을 주기도 했다. 실크로드도 당시의 영향아래 형성된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우구데이 때는 카라코룸을 만들어 상인들을 모으기도 하고, 교역이 이루어져 나가게도 했다. 몽골 제국이 이뤄나간 것은 거대한 연결이다. 그 혜택을 동서양은 마음껏 수용을 했고, 이용했다.

 

십자군전쟁 시기 몽골이 그들의 전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몽골의 전투력이 십자군들의 움직임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몽골의 유럽 침공, 시리아 침략 등은 그들의 전쟁에도 변화를 주는 요인이 되었다. 또 무기의 선택과 전술의 운영이라는 것으로 중동 전쟁의 형태를 바꾸어 놓았다. 휘어진 칼을 사용하게 되고, 그 칼은 말을 타고 싸우기에 용이하게 만들었다. 동서양의 많은 전투 경험들이 이용되기도 했고, 그것은 전투력이 되기도 했다. 몽골 제국이 당대의 가장 강력한 세력이고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의 고려시대에 해당된다.

 

몽골은 종교에는 지극히 관용적이었다. 13세기 몽고족은 그랬기에 다양한 종교 세력들과 조우하면서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즉 종교적인 관점에서 몽골 제국은 유일무이한 관용적인 정책을 폈다고 할 수 있다. 점령국 각자들이 원하는 대로 두었다. 즉 문제 삼지 않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는 내륙아시아로부터 나머지 지역으로 수출되면서 이 문제에 있어서 걸림돌은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들이 초기에 샤마니즘을 믿었는데, 배타적인 세계관을 전수하는 포괄적인 경전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런 형태로 나타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각지에서 몽골 제국에 대한 긍정의 신호로 수용할 수 있는 요인도 되었다고 보여 진다. 몽골 제국은 제국 전반에 걸쳐 종교 공동체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었다. 또 종교 성직자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고, 몽골제국의 힘이 되기도 했다.

 

몽골 제국은 흑사병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얻는다.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사망했다. 몽골이 직접 흑사병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이들로 인해서 쉽게 세계로 퍼져갔을 것으로 인식되기에 그들에겐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흑사병은 중앙아시아로부터 북인도에 유입된 후 북인도는 황폐화가 되었다. 이 질병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고기에 균이 있을 수 있고, 그 고기가 군인들의 식량으로 사용되었기에 그 쪽으로 전파 가능성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찌되었던 이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번졌고, 몽골제국의 쇠퇴의 한 요소가 된다.

 

몽골의 광범위한 제국 형성은 인구의 이동도 가져왔다. 원래 유목민으로 출발한 몽골 인들이 도시도 만들고 지역적으로 사람들이 살만한 곳을 찾게 되다보니 많은 이주가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주가 나타나고 있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경우도 이런 예로 생각할 수 있겠다. 문화, 예술 방면에서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동양의 선진화된 문화가 서양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고. 아랍이나 서양의 발달된 기술이 동양으로 유입될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이 시대 후에 서구에서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산업혁명 등이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몽골 제국이 세계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또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칭기스와 교환이 이루어진 다양한 루트도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이 책은 몽골 제국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낸 바탕이 되었는가를 점검해 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저자의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 정리한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j****3 2020.07.19. 신고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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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은 어떻게 나타나서 무엇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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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몽골의 정복이 세계사에 초래한 획기적인 전환(표지 설명)을 뜻한다. 이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발생한 엄청난 사회 변화를 지칭하는 ‘콜럼버스의 교환 Columbian Exchange'을 차용한 표현이다. 제목을 처음 대했을 때 바로 콜럼버스의 교환이 떠올랐는데 예상대로였다. 콜럼버스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칭기스 칸과 그 후예들의 영향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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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몽골의 정복이 세계사에 초래한 획기적인 전환(표지 설명)을 뜻한다이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발생한 엄청난 사회 변화를 지칭하는 콜럼버스의 교환 Columbian Exchange'을 차용한 표현이다제목을 처음 대했을 때 바로 콜럼버스의 교환이 떠올랐는데 예상대로였다콜럼버스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칭기스 칸과 그 후예들의 영향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본다



  그렇다이 책은 칭기스 칸의 등장 이래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광대한 지역을 정복하고 세상의 문화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몽골제국의 역사와 그들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을 드러낸다몽골제국은 유럽중동동아시아중앙유라시아심지어 남아시아의 일부로도 설명될 수 있다(P.9). 하지만 그렇게만 봐서는 제국의 실체를 과소평가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전체를 보아야 하는데 책은 그런 시각을 제공한다거대했던 몽골제국의 특성 상 그들이 지배했던 지역 별로 기록이 남았고 언어의 한계 때문에 일정 시점까지는 그런 지역 단위로 분할해서 몽골을 이해했지만 최근 들어 이런 자료들을 종합해 제국의 전체 모습을 그리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제국에 대한 이해가 바뀌는 추이라는 점도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책 뒤표지의 문구가 인상 깊다. 판데믹 시기의 구호처럼] 

 


책은 2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몽골의 역사를 다루고 2부는 몽골이 남긴 영향가치를 일곱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다룬다. 1부의 내용은 흥미롭지만 광범위한 정복 과정과 권력 다툼이 녹아있고 익숙하지 않은 이름제도 등과 끊임없이 맞닥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그래도 2부를 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이므로 흐름을 정리하면서 읽어야 한다기실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그리고 글쓴이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2부에 들어있다고 여겨진다. 각 부의 앞 부분에는 이해를 돕는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1부는 몽골제국이 발흥한 과정과 정복의 시기를 거쳐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 과정을 정리한다또한 4개의 칸국으로 분리되는 배경과 각각의 칸국이 해당 지역에서 겪는 커다란 변화제국의 축소와 여전히 남아있는 영향력 등을 설명한다이를 통해 테무진이 칭기스 칸이 되기까지 겪었던 각종 사건과 그가 초원에서 권력을 쟁취하게 된 사정을 알 수 있으며 그의 사후 후계의 흐름과 정치적 의사결정을 행하는 몽골의 체계를 읽게 된다.

  몽골제국의 형성사를 잘 정리된 형태로 읽는 처음이지만 그 흐름을 이해하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몽골을 중심으로 그 동쪽과 서쪽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발생 시기 순서에 따라 내용이 진행되므로 시간대가 뒤섞이지 않는다왜 그런 전쟁을 했는지 어떤 이유에서 해당 전쟁을 마감하게 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상황을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전쟁 이후에 전개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도 별 어려움은 없다다만 전반적으로 많이 압축된 형태로 빠르게 내용이 펼쳐지므로 사전에 확보된 역사 지식이 없다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적어도 큰 흐름은 잡고 읽어야 한다. 1부를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몽골제국의 후예들>,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같은 책을 곁들여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글쓴이는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때를 칭기스 칸의 자식인 우구데이 칸의 통치 시기로 본다사실 칭기스 칸의 행동은 세계 정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칭기스 칸의 목표는 정주 문화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외부의 위험에서 몽골리아를 보호하려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P.68) 이 책에서건 다른 책에서건 칭기스 칸의 전쟁 활동을 보면서 정복을 통한 몽골의 확장이 정책의 기본이지 않았나 하고 짐작하고 있었다그러면서도 공격 성공 후 정착해서 지배하지 않고 군대를 철수하는 장면을 보고는 칭기스 칸의 정복 개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아있었다그런데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내용을 보고 칭기스 칸의 전쟁 목표를 이해하게 되었다궁금증이 해소되었다

  한동안 원나라 붕괴 이후 몽골의 초원으로 밀려나 힘없는 국가민족으로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심지어 19세기까지 중앙아시아러시아 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무지했던 역사 인식을 일깨운다인도의 무굴제국이 몽골의 진출 결과라는 사실도 새삼스럽다예전에는 유목민족을 떠올릴 때 덜 문명화되었다잔인하다체계 없이 생존 본능만 강했다 같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역사는 이런 편견을 깨부순다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부족하겠지만 견제와 균형의 추를 지녔던 정치 체계나 다른 문명을 인정하고 활용하는 포용성 등에 대해서는 배울 점이 있다 하겠다.

  2부에서는 몽골제국이 남긴 유산을 다룬다글쓴이는 이 유산을 교역전쟁 방식행정종교전염병인종 간 교류문화 교류 등의 일곱 가지로 구분한다이런 유산은 몽골제국의 운영에만 연관된 것이 아니라 몽골과 접촉한 많은 국가들의 체계를 바꾸도록 하거나 물류에 영향을 미쳐 그 사이클의 크기를 확대하도록 조장하는 등의 효과를 발생시켜 세계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곱 가지 항목을 다 설명하지는 않겠다.)

  몽골제국의 등장은 교역로를 지배하고 통제하고자 했던 국가들을 절멸시키고 사고방식에 변화를 일으켜 유목민과 정주민의 전통적인 교역 방법을 바꾸어놓았다(P.163). 몽골제국의 등장 이전에도 유목민과 정주민 간의 교역은 있었지만 그 방식은 국가의 허가 없이 은밀히 거래하거나 정주민에게 복종하고 조공을 바치면서 행하거나 유목민들의 침략으로 상품을 획득하는 형태였다몽골제국은 교역을 원하는 이들이 자신들을 찾아오게 함으로써 기존의 방식을 뒤집었고 하나의 제국이라는 특성을 활용해 교역로의 안전을 확보하여 동과 서를 가로지르는 교역 확대를 창출했다여기에는 몽골의 독특한 역참 제도가 큰 역할을 했는데 이 제도는 나중에 다른 국가들에서도 본받아 활용하게 된다.

  몽골의 전쟁 방식을 정리된 형식으로 보기는 이 책이 처음이다소위 밀덕은 아니라서인지 빠른 속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가벼운 군장기마 병력의 활용 정도로 어설프게 그들의 전쟁 방식을 이해했고 그 방식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그런데 칭기스 칸의 등장은 엄격한 규율과 새로운 전략의 도입군사학교의 설립십진제 조직의 채책을 통해 초원의 전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런 군사적 혁명이 향후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날 전쟁의 발전에 영향을 끼친 것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P.191). 기마궁수의 활용과 평형 투석기의 공성전 투입-평형 투석기는 유럽 공성전 애기에서만 보다가 여기에서 보게 되니 무척 신선했다-곡선 형태 검의 사용 등 물리 요소와 속임수 전술능숙한 심리전 같은 심리 요소를 병행하면서 그들과 맞섰던 상대들은 무너졌고 살아남은 상대들은 이 방식을 자신들의 군대에 적용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엄청나게 바뀌었다전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일종의 합참본부 체계를 운용하고 항상 적의 지휘 체계를 파괴하려고 시도하던 몽골의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도 응용되며 그 자취를 길게 남긴다.

  케식과 카라치 베이 같은 몽골만의 행정 제도는 몽골 이후의 세계에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칭기스 가문의 제왕들이 유라시아로 퍼져 나갈 때 칭기스 혈통의 권위와 칭기스 가문만이 칸의 칭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을 유지해주었다(P.243). 몽골제국은 점령지의 자치성과 독자성을 상당히 인정했다고 알려져 왔지만 최근 일부 연구자는 간섭의 정도가 매우 심했다는 결과를 내어놓기도 했다다만 몽골의 행정을 완벽하게 다룬 연구서는 없어서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논의를 마무리한다

  글쓴이는 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이 일반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지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다(P.374)고 토로하며 책을 마무리한다특히 문화 영역에서의 영향에 대한 연구의 부족을 인정한다그러면서도 앞으로 밝혀질 몽골제국의 영향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다갈 길이 많이 남은 영역인가 보다

  결국 몽골제국은 개방과 교류의 확대, 사고 방식의 급격한 변화, 시스템 혁신, 타 문화에 대한 포용성 등을 통해 좁은 지역 중심의 생활과 사상을 그 근본에서부터 흔들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세계화를 유발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방법처럼, 몽골제국의 등장은 그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속도와 너비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고.  

 

책의 문체는 매우 담담하고 건조해서 별 감정이입 없이 이런 사건전쟁이 있었고 이런 경과로 점령지를 확대했다는 사실 중심으로 읽게 된다몽골군이 잔혹했다는 평가를 일부 반영하고 있지만 이런 평가도 있었다는 정도로 기술할 뿐이다다른 주제에 대한 기술도 대체로 그러하다서술은 간결하고 명징해서 긴 내용을 읽어 나가는데도 흥미롭다번역 역시 깔끔하다번역자가 이 영역의 전공자로서 본문 내용 중 오류를 지적하고 바른 내용을 적시하는 바는 책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몽골이라고 하면 우리와의 여러 인연이 떠오른다고려 시대에 있었던 침입과 점령수탈의 역사도 있었고 몽고반점 같은 인종상의 관계도 있다그런 연관성 때문인지 몽골제국의 세계사적 위치에 대한 글은 항상 흥미를 끈다이 책은 그런 관심과 흥미를 채우는데 상당히 기여했다입문서라고 하기에는 복잡하고 전문서라고 하기에는 평평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쪽 영역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P.S.

글쓴이의 의도가 무엇이든 책의 제목에 대해 불만이 없지 않다칭기스 칸과 몽골제국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이 시기 상 콜럼버스의 그것보다 앞선다는 점과 영향력도 더 크다는 생각에서이다유럽 백인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썼다는 느낌인데 언젠가 칭기스의 교환보다 더 나은 표현이 통용되기를 희망한다.

  물론 몽골제국에 대한 기록이 여러 언어로 남아서몽골제국이 거대한 4개의 칸국으로 나뉘어 있었고 이들 모두가 지배 지역을 완전히 몽골화하려 하지 않았다― 하나의 체제로 묶어서 이해하는데 큰 벽이 놓여있었음을 고려해야 한다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중앙아시아와 북부 인도 지역 등에 몽골의 지배가 이어지면서 어떤 현황이 그 지역 자체의 풍토에 기인한 것인지 또는 몽골의 영향 탓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a******9 2020.07.15. 신고 공감 7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내용보기
몽골제국, 나는 세계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은 동서양에 걸쳐서 가장 광범위한 제국을 만들었다. 몽골제국은 그들의 발원지인 몽골고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일본 제외, 두 차례 원정에서 결국 태풍(일본인들은 신풍(가미카제)이라고 부른다)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다, 수전에 약한 몽골의 특징도 있다), 서아시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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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나는 세계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들은 동서양에 걸쳐서 가장 광범위한 제국을 만들었다. 몽골제국은 그들의 발원지인 몽골고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일본 제외, 두 차례 원정에서 결국 태풍(일본인들은 신풍(가미카제)이라고 부른다)으로 인해 결국 실패한다, 수전에 약한 몽골의 특징도 있다), 서아시아,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 동유럽까지 당시 지구인이 알고 있던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정복한 최초이자 최후의 제국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신대륙은 발견전이었으므로)

 

저자가 말한 이 책의 처음 제목은 '몽골제국은 세계사이다' 저자는 과거 그 어떤 제국보다 몽골이 가장 넓고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면서 '팍스 몽골리카'를 이룩했고 상인과 선교사들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교류하게 되고 영토안의 모든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삶이 안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제국하면 떠올리는 로마제국이나, 알렌산드로스의 제국보다 몽골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이 작지 않음에도 저평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느 분 리뷰를 보니 이 책의 제목인 '칭기스의 교환'이 '콜럼버스의 교환'의 아류 정도로 평가하는 서양인의 시각이라고 했는데 저자 티모시 메이는 적어도 이 책에서 그런 의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Monggol Conquests in Word History(세계사속의 몽골 정복)이다. 칭기스의 교환은 역자가 번역하면서 티모시가 쓰는 개념의 하나를 차용해서 이해하기 쉽게 또 마케팅적으로 붙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몽골제국을 연구한 위대한 역사학자 존 앤드류 보일은 1970년대에 이미 '몽골 세계 제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몽골이 중세 세계를 지배했고, 일부 지역으로 한정하여 볼 수 없는 제국임을 분명히 인식했다.

여러 측면에서 몽골 제국 시대는 전근대와 근대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동아시아 연구자 아서 윌드론은 근대사 연구를 몽골제국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몽골이 세계사의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추적하고 알아보는 것이 근대 역사연구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세계사에서 몽골 제국이 가지는 중요성은 두가지 측면에서 아주 분명하다. 첫번쨰는 제국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거대한 영역이다. 몽골 제국은 하나로 연결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비록 제국은 정치적으로 분할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의 영역을 통해 유라시아와 그 너머를 가로지르는 상당한 규모의 상호 교류가 존재했음으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몽골제국 연구에 사용되는 자료가 수많은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료의 언어권별 비중을 고려하면 가장 중요한 언어는 한문과 페르시아어이겠지만, 그 외에도 몽골어, 러시아어, 옛 슬라브어, 아랍어, 라틴어, 옛 프랑스어, 위구르어, 티베트어 등 수많은 언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언어에 능통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된다. 결국 많은 학자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다양한 언어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몽골제국은 정치적 이유로 원과 4한국 등으로 나눠지지만 이는 지역적인 관점에서 분명 유용하지만, 13세기 말까지 제국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아니라도 다양한 측면에서는 결국 하나의 단일한 실체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몽골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언어다. 상당수의 언어가 각자의 나라와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고, 이를 다 잘하기 힘들어서 결국 이것을 통일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부분이 어렵다. 

또한 경쟁의식으로 발굴현장 등에 함부러 갈 수도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를 일원화 시키고 있고, 오류 등도 바로잡고 있다. 

서양에서 몽골이 알려진 것은 두 편의 유명한 기행기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다. 이븐 바투타는 맘루크 왕조의 저자가 아니지만 그의 저술은 몽골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븐 바투타는 몽골제국은 물론, 맘루크 술탄국과 델리술탄국 같은 몽골의 이웃 지역까지 탐험하고 기록을 남겼다. 

 

또한 가장 중요한 한문 자료는 <원사>이다. 원사는 원을 몽골초원까지 쫓아내고 중원을 장악한 명나라대인 1369년 원이 남기고 간 기록을 토대로 편찬했다. 일부 내용에서 결함이 있지만 풍부한 전기 정보라 할 수 있다.   

아직 <원사>는 글로벌어로 번역이 안된 것 같다. 원 역시 자신들이 중원을 정복하고 <금사>와 <송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몽골제국 혹은 다른 어떤 국가,정치체,민족이든 그 영향에 대해 연구할 때에는 특정한 선행 사건들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필연'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몽골의 활동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저자는 몽골제국을 형성한 수 차례의 정복은 세계사에서 기념비적인 역사적 변화의 핵심이자 직접적인 원인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변화를 위한 촉매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게도 세계의 여러지역을 퇴행시킨 세력이 아니었다. 또한 정복이 다양한 방면에서 촉매역할을 했다는 점을 이책의 여러 페이지를 통해 말하고 있다.

몽골의 정복이 끝났을 때 20개 이상의 국가가 사라졌다. 서하, 금, 송 같은 동아시아 국가부터 이스마일 왕국, 나이만 연맹 등 중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사라졌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유라시아의 지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이 책의 1부에서는 몽골의 정복, 유라시아의 정치적 지리에 끼친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여파를 검토하고 있고, 2부에서 주로 다루는 칭기스의 교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기본 틀을 제공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하인츠 구데리안, 달라이 라마,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웨인 겉으로는 모두 제각각이고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름들이지만 이들 모두는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용어를 붙일 수 있는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혹은 우연한 상륙이 신대륙과 두개륙의 동물, 식물, 병원균, 문화의 직간접적인 교환을 불러왔듯이 몽골의 정복과 제국은 기술, 사상, 문화, 종교,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분야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만큼 몽골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칭기스 칸이 흥기하지 않았다면 몽골 제국과 그로 인한 영향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몽골제국은 분열한 이후에도 대략 85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그의 후손들이 지배했고. 이웃국가들은 그 후손들과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를 맺어야 했다.

 

1부는 몽골제국의 형성과 제국의 분열 흔히 말하는 4한국을 다루고 있다.

또한 1350년의 세계는 그 자체로서 글로벌 세계임을 말하고 있다.

몽골제국을 세계적 제국으로 만든 칭기스칸의 이야기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테무진(칭기스칸의 어린 시절 이름)이 태어날 무렵 몽골족은 세력이 분열되어 있었고, 대대적 적수였던 몽골리아 동부의 타타르족과 북중국의 금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사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세계적 제국을 건설한 칭기스 칸은 기적 그 자체였다.

칭기스칸의 일대기를 읽다보면 역시 한족 이외의 민족이 중국을 지배하고 나아가 세계적 대제국을 건설한 일대기가 무척이나 재미있다.

또 그들의 후계 구도 역시 재밌다. 대체로 한족 이외의 몽골족이나 만주족은 장자 상속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편이다. 그로 인해 후계가 불안정하면서도 이 후계를 위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칭기스칸의 후계인 우구데이의 통치 시기였다. 세계 정복이라는 개념이 칭기스 칸 시기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사실 칭기스 칸의 행동은 세계 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특히 몽골의 확장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쿠빌라이 칸의 정복기가 펼쳐진다.

쿠빌라이는 스스로를 중국 황제라고 자칭했고, 중국식 왕조 이름인 원과 책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최상위 지배층은 대체로 비한족인 몽골족, 위구르족, 페르시아인 들을 중용했다.

 

2부 칭기스의 교환이 이 책의 핵심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팍스 몽골리카와 교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특히 우구데이의 상업진흥 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우구데이는 재위기간동안 금괴와 은괴부터 직물에 이르는 사치품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는 물론이고, 세금으로 거둔 곡물을 저장하기 위한 곡물창고도 설립했다. 우구데이는 몽골의 궁정으로 모여드는 물품의 양을 관리 및 체계화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관할할 정부 부처를 새로 만들었다.

 

새로운 전쟁방식 역시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십자군과 중동에 미친 영향이 컸다.

몽골은 또한 무기의 실제 선택과 전술의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중동의 전쟁을 바꾸어놓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휘어진 칼이 널리 퍼져 나간 것이다. 이런 일은 다른 곳에서도 나타났지만, 휘어진 칼이 중동 전역과 전 세계의 기병대에서 선호하는 무기가 된 것은 몽골의 성공 덕분이었다.

책 중간중간 다양한 사진과 사료를 통해 몽골제국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역사책이지만 정복국가의 역사답게 매우 재미있고 역동적이다.

 

몽골의 행정의 원천은 케식(칸의 친위대와 집안의 하인들)로부터 나왔다.

 

유목민이었더 몽골족은 땅보다는 사람을 조직했다. 물론 땅을 중심으로 조직하는 일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몽골이 조직의 도구로 처음 사용한 것은 밍간(천호)이었다. 밍간은 몽골제국의 기본적인 군사 단위였을 뿐만 아니라 징세와 징발의 단위이기도 했다. 1000명의 사람 혹은 가정으로 이루어진 단위들은 십진제를 선호한 몽골에서 잘 운영되었지만, 제국이 확장되면서 더욱 정교한 통치구조들로 통합되었다.

몽골이 새로 획득한 땅을 통치하는데 중요했던 제도 중 하나는 탐마였다. 행정적인 차원에서 몽골이 처음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군대에 인력을 동원하는 일과 약탈 및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포상할 물품을 조달하는 일이었다. ---p.244

 

몽골과 종교에 대한 설명도 나온다.

몽골은 세계적인 대영토를 지배하다보니 그 안에 있는 많은 종교와도 마주하게 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밀교, 힌두교 등 거의 모든 종교가 그들이 지배하는 영토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몽골은 스스로를 하늘 혹은 뭉케 쿠케 텡그리(영원한 푸른 하늘)가 칭기스칸과 그의 아들들에게 세계를 지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믿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믿었다. 텡게리즘의 개념은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신, 무슬림의 알라, 하늘 혹은 신성한 영혼 등 다른 모든 개념은 텡게리로 교묘하게 흡수될 수 있었다. 그들은 같은 신을 숭배했기 때문에 종교적 이유로 누군가를 박해할 이유가 없었다. 종교적 관용이 드물었던 시기에 몽골이 모든 종교에 놀라울 정도로 관용적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후 몽골과 흑사병 문화교류 등 몽골이 세계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서 꼼꼼한 서술을 하고 있다.

음식, 물품, 의복 등 수많은 분야에서 몽골의 문화는 유럽에, 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갔다. 그들이 지배한 영토에서 그들의 문화와 사상이 교류되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몽골 제국은 유례없이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고 그 내부를 촘촘히 이어나갔다. 역참 제도를 통해 교역로의 안전과 편리함을 보장하고, 통행료와 세금을 줄이고,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행정 기구를 설치하여 상인뿐만 아니라 선교사, 군인, 기술자, 예능인, 노예와 피난민들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하기 시작하며 세계화시켰다. 세계는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이는 풍경을 어색해하지 않게 되었다. 각지에 흩어져 살던 사람들의 삶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이른바 진정한 제 1의 ‘세계화 시대'가 열리는데 기여했다.

 

몽골제국사와 세계의 교류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아는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여러 장에서 여러가지 분석과 영향을 통해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고려시대에 몽골의 부마국으로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몽골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역사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큰 역할을 함은 부인할 수 없다. 너무 재미있는 내용이었지만, 집에서 육아를 하며 책을 보았기에 읽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몽골족의 역사를 알았으니, 다음으로 내가 관심있는 만주족의 중국 지배인 청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좀 더 공부해 볼 생각이다.

얼마 전 궁비한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책을 시간이 나면 읽어볼 생각이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d*****2 2020.08.05. 신고 공감 3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칭기스의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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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일거라는 기대에 신선한 내용, 전문적 내용, 학술적 내용이 많지 않을까 하여 내심 서평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몽골 세계제국이라는 과거의 영광과는 별개로 지금은 다소 역사 등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마는 요즘의 몽골이다. 그렇지만 역사분야 관심에 더해 오늘날 이미 회자되는 세계화, (몽골 이전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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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일거라는 기대에 신선한 내용, 전문적 내용, 학술적 내용이 많지 않을까 하여 내심 서평으로 부담스러웠던 책이다. 몽골 세계제국이라는 과거의 영광과는 별개로 지금은 다소 역사 등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면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로 치부하고 마는 요즘의 몽골이다. 그렇지만 역사분야 관심에 더해 오늘날 이미 회자되는 세계화, (몽골 이전의 세상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규모와 결합의 세계적) 네트워크에 대해 깊게 들어가보면 몽골의 침략과 정복에 기인한 세계화와 네트워크는 몽골제국이 세계사에서 등장과 그 역할과 비중은 절대 빼놓고 설명될 수는 없다.

 

이러한 전제와 부연한 설명으로 많은 이 분야의 역사학자들은 몽골의 역사를 논하기 시작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앞서 얘기했듯 <칭기스의 교환>은 크게 무겁지는 않지만 학술서 양식도 갖춘 책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본격 시작되기에 앞서 저자 티모시 메이 교수는 책 서두에서 말한다. 책이 출간될 시점에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영향과 그것의 세계사적 의의라는 이 분야의 현재 일정 이루어진 연구의 학문적 성과와 앞으로 더 활발히 연구가 요구되는 주제와 분야 등을 종합적으로 언급하며 독자를 책 속으로 안내한다.

 

보통 이런 학술서 또는 전문적 연구서는 이 분야를 전공했거나 오랜 기간 해당 분야에 견문을 넓혀온 그런 독자가 아니라면 이런 책을 어떻게 접근할지 내지는 마땅한 독서방법을 못찾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본인 또한 그 중 한 명이다.

 

책 초반은 예전에 중학교 때 영화감상부 써클에서 야외학습으로 영화관에서 '칭기즈칸'을 봤던 영상과 기억이 이미지가 되어 많이 떠올랐다. 칭기스 칸(테무진)의 어린 시절은 정말 (주관적 표현이지만) 야생과 고난, 시련의 시간이었다. 흔히 말하는 영웅이 겪는 통과의례, 시련의 연속,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은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제국을 이룩하는 초석을 놓게 되며,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책은 1부~3부, 미주, 용어해설, 왕조의 계보, 참고문헌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제든 몽골과 관련한 주제, 예컨대 전쟁사에서 새로운 강력한 전쟁술(방식)의 등장 같은 내용, 전염병 흑사병, 동서양의 문화교류 등 특정 주제를 찾아보기가 쉽도록 내용이 배치, 나열되어 있다. 책 체계가 잘 잡혀있어 재독하기에도 원활한 구성과 편집이다.

i*****2 2021.01.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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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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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상호 작용과 통합의 과정을 뜻하는 ‘세계화’라는 개념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지금의 의미를 확립했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화의 기원을 정의하고 있으며,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 역시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세계화의 기원을 정의한다. 티모시 메이가 주목한 세계화의 기원은 바로 몽골 제국의 탄생이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있으며, 1부에서는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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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상호 작용과 통합의 과정을 뜻하는 세계화라는 개념은 1970년대에 들어서야 지금의 의미를 확립했다. 많은 학자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화의 기원을 정의하고 있으며, 이 책의 저자 티모시 메이 역시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세계화의 기원을 정의한다. 티모시 메이가 주목한 세계화의 기원은 바로 몽골 제국의 탄생이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있으며, 1부에서는 몽골의 정복과 분열 과정을 소개하고 2부는 저자가 칭기스의 교환이라 명명한 몽골의 정복이 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소개한다. ‘칭기스의 교환은 미국 역사학자 앨프리드 크로비즈가 제시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 이 후 발생한 변화를 뜻하는 콜럼버스의 교환이라는 용어를 저가가 차용한 것이다.

 

1부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각 장은 몽골 제국의 형성, 제국의 분열, 제국의 분열이 세계에 미친 영향력과 대중문화에 각인된 몽고 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소개한다.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조건이 별로 좋지 않았던 테무친이 몽골리아를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하며 칭기스 칸이 되는 과정과 거대한 제국이 여러 가지 문제로 (대부분 차기 후계자 자리를 두고 벌인 권력 다툼과 반목)으로 분열되는 과정 그리고 몽골제국에 의해 사라지거나 탄생한 국가들의 흥망성쇠와 같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야기들을 간략하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2부는 저자가 명명한 칭기스의 교환즉 몽골 제국이 세계의 교역, 전술, 행정, 종교, 흑사병, 이주, 문화교류 분야에 남긴 영향력을 (혹은 유산)7장에 걸쳐 서술한다. 몽골이 군사적 이유로 건설한 얌 (물자나 정보의 전파를 위해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워진 병참기지)을 통해 시작된 교역, 유행병 전파 (흑사병), 문화 교류가 세계화의 촉매가 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하며 몽골 제국이 세계화의 근간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 책의 초점은 몽골 제국의 흥망성쇠가 세계화의 기원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세상을 송두리째 바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접촉 (발견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적절하지 않다)의 촉매가 되었던 아시아와 유럽의 향신료 교역의 시발점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였다. 그리고 나는 만족스러운 답을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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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 2020.07.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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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이 전세계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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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으로 상징되는 몽골 제국의 역사를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사실 오늘날 유라시아의 거대한 국가들인 중국, 러시아, 인도, 중동의 대부분은 한때 몽골인이 세운 제국들로 편입된 적이 있고 그 경험으로 변화를 겪었다면서 세계사 속에서 몽골 제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절반 가까이는 칭기스 칸의 일생으로 시작해 거대한 몽골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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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으로 상징되는 몽골 제국의 역사를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사실 오늘날 유라시아의 거대한 국가들인 중국, 러시아, 인도, 중동의 대부분은 한때 몽골인이 세운 제국들로 편입된 적이 있고 그 경험으로 변화를 겪었다면서 세계사 속에서 몽골 제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절반 가까이는 칭기스 칸의 일생으로 시작해 거대한 몽골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역사를 조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칭기스 칸인 테무진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죽음, 포로 생활, 형제 살해, 아내의 납치, 군사적 패배 등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결코 유력 지도자로서 부상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테무진이 태어날 무렵 몽골족은 여러 군소세력들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1185년 칸으로 선출될 당시 테무진은 아직 어렸고 자신을 선출한 삼촌과 다른 친족들보다 경험도 상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를 칸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테무진이 유순해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꼭두각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곧 주변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칭기스 칸의 경우 전쟁에 임해 자신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 아무도 약탈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군대는 적진에 다다르면 약탈을 감행하여 획득한 것들을 말에 싣기 바빴지만 그는 전리품에 빠져들기 전에 적에 대한 완벽한 승리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면서 말이다.



칭기스 칸은 몽골리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대체로 적대 부족의 귀족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가족들만 유일한 귀족으로 남겨두었으며, 혼인을 통해 연맹을 맺는 방법으로 변경의 부족 집단들에 대한 통제를 유지했다고 한다. 칭기스 칸은 서쪽으로 페르시아와 아프가니스탄까지 무너뜨린 뒤 점진적으로 철수했는데, 군대를 지나치게 확장하지 않고 정복한 지역의 일부만을 차지하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한다. 칭기스 칸이 낙상으로 인한 내상으로 1227년 사망했을 때도 장군들에게 도시가 함락될 때까지 자신의 죽음을 드러내지 말고 자비를 보이지 말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이어 우구데이가 새로운 칸으로 선출되었고 정복 전쟁을 계속 펼쳐 나갔다고 한다. 사실 칭기스 칸의 목표는 정주 문화를 지배하는 것보다는 외부의 위협에서 몽골리아를 보호하려는 쪽에 가까웠지만 우구데이는 정복이라는 개념을 강화하여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는 믿음을 북돋았다고 말한다. 1240년대 우구데이가 사망하며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은 탓에 칭기스 칸의 손자들 사이에 내재하고 있던 갈등이 드러났다고 하는데, 여러 명의 아들과 어머니가 섭정을 통해 통치를 이어갔으나 뭉케 칸이 사촌 바투와 동생 쿠빌라이의 조력에 힘입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송을 정복하기 위한 원정 중 뭉케 칸이 사망하자 몽골리아에 남아있던 동생 아릭 부케와 원정 길에 있던 쿠빌라이가 각각 칸으로 올라서 둘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전쟁에서 쿠빌라이가 승리했으나 곧 몽골 제국은 네 개의 칸으로 쪼개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몽골리아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원 제국의 역사나 다름 없다고 한다. 원 제국을 만든 쿠빌라이는 남송과의 전쟁, 외부의 침입, 다른 칸국들과의 전쟁 및 내부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냈으나 그의 후계자들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지닌 거대한 제국을 물려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쿠빌라이의 후계자들은 홍건적의 반란과 함께 일어난 명나라에 항복하였고, 그 때 원 제국의 황제였던 토곤 테무르는 몽골리아로 달아나 아릭 부케의 후손들과 전쟁을 치루었다고 한다. 이 와중에 일 칸국, 차가다이 칸국, 주치 칸국 등 나머지 칸국 역시 경쟁자들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고 지방의 지배자들이 독립하여 하나의 거대한 제국에서 수많은 독립적 정치 체제들이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몽골 제국이 사라진 이후 수많은 계승 국가들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서 오스만 제국이 가장 오래 지속된 몽골의 계승자였다고 한다. 주치 칸국은 크림, 우즈벡, 카자흐 칸국 등으로 분열되었고,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칭기스 칸의 옥새를 획득하여 계승자를 자처했다고 한다. 이어서 몽골 제국으로 인한 세계의 교역 증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교역로에 호위병들을 배치하면서 안전한 교역로를 제공하였고, 특히 우구데이는 가져가는 물건이 무엇이든 그 가치의 2배를 제공해서 많은 상인들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의 전쟁 방식은 기마궁수를 활용해 수적 우세가 아닌 기동성, 화력, 속임수에 의지했다고 하는데, 화살을 빗발치게 퍼붓는 전술과 치고 빠지기 전술을 결합시켰다고 말한다. 특히 일반 몽골 기병은 세 마리에서 다섯 마리의 말을 보유하여 한 마리를 잃어버리거나 타고 있는 말이 지치더라도 기동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휘어진 칼을 사용했고, 운반에 문제가 많아 동아시아 바깥에서는 화약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몽골의 전쟁 방식은 현대에 와서 탱크에 적용하여 공격 시 속도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경형 탱크의 속도와 중형 탱크의 화력을 결합하는 방식, 그리고 군용기를 선봉에 두고 빠르게 움직이는 탱크 행렬과 한 몸이 되게 진격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한편 칸은 전제 군주가 아니었고 비록 후보자의 범위가 제한되기는 했지만 선출에 의해 지위를 획득했으며 제국의 지방 감독관들을 정주 세계의 도시와 지역에 배치시켜 칸에게 충성을 바쳤다고 한다. 그들은 지방 정부를 감독했을 뿐만 아니라 조세를 징수하여 칸에게 보냈고, 필요할 경우 지역의 군대를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몽골이 지방 차원에서는 새로운 행정 체제를 강요하려 하지 않았지만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서도 제국의 인사들을 행정부의 새로운 계층으로 배치하여 혼합된 형태의 정부를 창설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몽골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몽골 제국의 종교정책은 매우 관용적이었는데, 종교 지도자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면 피정복민들의 적개심과 반란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결과적으로 몽골족은 자신들이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종류의 종교적 관습과 의례든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몽골 제국이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교와 불교로 개종하였지만 기독교로는 개종하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그 밖에 눈길을 끌었던 언급은 중세 시대 창궐한 흑사병이 중부 유라시아의 초원에서 시작해 몽골 사냥꾼들을 통해 교역로를 따라 움직이며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것, 레슬링과 같은 씨름이 몽골족이 가장 좋아하는 오락 활동 이었다는 것, 학문적으로 천문학을 많이 후원했기에 몽골 제국에서 코페르니쿠스보다 거의 200년 앞서 태양계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는 것, 이탈리아 상인들이 몽골과의 교역에서 얻은 부를 통해 몽골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대중들에게 국수를 전파한 것은 몽골 제국이었다는 것, 그리고 고려인들이 발명한 금속활자와 인쇄술이 몽골을 통해 유럽으로 전해져 구텐베르크에게 도달했다는 점 등이었다. 전반적으로 칭기스 칸으로 대표되는 몽골 제국의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었고, 그 제국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력을 되짚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d****o 2020.07.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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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 몽골제국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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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아주 흥미로운 도서가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은 [칭기스의 교환: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입니다. 역사학자 티모시 메이가 저술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몽골사 전문가 권용철 씨가 번역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몽골과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서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는데,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중앙유라시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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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아주 흥미로운 도서가 출판되었습니다. 제목은 [칭기스의 교환: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시작]입니다. 역사학자 티모시 메이가 저술한 책으로, 국내에서는 몽골사 전문가 권용철 씨가 번역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몽골과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나서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고 있는데,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거 중앙유라시아 역사의 신이라 불린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별명이 호동 칸이라고 하죠)를 필두로하여 몽골제국 관련 책들이 다수 출판되었는데, 이에 다른 신진 학자들도 대중적인 교양서를 다수 출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것들만 해도 러시아를 지배한 [킵차크 한국(the Golden Horde)]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이 있고, 또는 몽골제국이 붕괴하면서 탄생한 후계국가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몽골의 유산을 이어받았는지를 설명하는 [몽골제국의 후예들]이라는 책도 출판되었습니다. 이 흐름 중에서 출판된 가장 최신의 도서가 바로 [칭기스의 교환]입니다. 


2. 먼저 제목은 정말 섹시하게 잘 지은 책인 거 같습니다. 몽골제국이 세계에 어떤 임팩트를 주었나와 같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문장을 사용하기 보다 저자는 이런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칭기스의 교환]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그는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하는데, 적절한 표현인 것으로 보입니다. 콜럼버스의 교환이란, 말과 병균이 신대륙으로 건너가고 토마토 감자 코코아 같은 작물들이 구대륙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사건들을 포괄하는 말로, 세계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저자는 몽골 세계제국이 콜럼버스의 교환만큼이나 세계사에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저자가 제기한 또 한 가지 지적사항이 있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몽골제국은 세계제국이었고, 몽골제국에 대한 기록은 몽골어는 물론 위구르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슬라브어, 티벳어, 중국어(한문) 등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 사료에만 의존하여 몽골제국을 해석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 학계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 가령 동아시아의 원나라 전문가, 페르시아 및 중앙아시아 전문가, 러시아 및 유라시아 전문가 들 간의 협업으로 몽골제국을 보다 입체적이며 포괄적으로 조망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고 합니다. 


4. 본 책의 1부는 몽골제국의 탄생과 팽창에 대한 일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칭기스칸이 누구였는지, 그가 어떻게 주변 부족들을 북속시켰는지, 그의 후계자들이 어떻게 중동을 정복하고, 중앙아시아를 정복하고 또는 유럽 앞마당까지 진출하였는지 등을 서술하는데, 이 부분은 아마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부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부분인데, 몽골제국이라는 국가가 아직 생소한 독자에게는 분명 중요한 인트로일 것입니다.


5. 이 책의 강점은 2부에서 설명하고 있는 몽골제국의 경제, 무역, 행정, 종교 등 실제로 칭기스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제에 대한 관념]입니다. 몽골의 칸들은 칭기스칸 본인부터 시작해서 상업에 대해 실용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고, 상인들을 우대하였습니다. 약간 과장에서 말하자면 오늘날 국가들이 해외자본유치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듯이 몽골의 칸들은 상인들을 계속 끌어들이고자 노력했고, 동서를 상인들의 카라반에 [개인재산으로 투자]했다고 합니다. 특히 우구데이 칸은 상인들에게 높은 값을 쳐주면서 그들의 물건을 시중가보다 높게 쳐주면서 구매했다고 하는데, 꽤 놀라운 일입니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왕에게 [개인재산]이란 게 없고, 국왕이 상인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거나 또는 대출을 받는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몽골의 군주들은 그런 점에서 오히려 서양의 군주들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국가권력과 일부 대상인들이 결탁하여 독점상인으로 군림하여 여러 폐단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어쨌든 꽤나 신선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 [사유재산] 관련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관념이 심지어 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유지되었다는 점입니다. 몽골제국이 분열하고 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일 때조차, A 칸국에 있는 칸은 B 칸국에 있는 자기 재산에서 나오는 수입을 계속 제공받을 수 있었고는 반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인다고 해도 한국인의 재산이 일본에서 압류당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과 같은 일이죠. 


7. 몽골제국의 행정 또한 인상깊은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몽골인들은 어느 한 민족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민족들을 등용하여 행정을 꾸렸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처음 제국으로 부상했을부터 제국의 행정은 몽골인이 아니라 거란인 황족 야율초재가 도맡았습니다. 여담이지만 거란은 본래 키타이라고 발음하는데, 요나라 때부터 대제국을 이룩해 북중국을 지배했던 민족입니다. 그래서 키타이가 곧 중국을 의미하게 되는 말이 되었고, 러시아를 포함한 슬라브어권에서는 중국을 여전히 키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참고로 홍콩의 캐세이퍼시픽(Cathay Pacific)항공의 Cathay도 키타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기조는 쿠빌라이 칸 시대까지 이어졌고, 그는 중원을 정복한 이후에도 많은 수의 색목인을 통해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베네치아인 마르코폴로도 그 중 한명이었죠. 그리고 쿠빌라이가 건설한 도시 칸발리크(Khanbaliq)는 무슬림이 건설한 도시였고, 한족은 이를 대도(大都)라고 불렀으며 이는 후일 북경이 되었습니다.  


8. 몽골제국은 한편 종교적으로 상당히 개방된 제국이었습니다. 그들은 칸의 권위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 그 어떤 종교도 수용했습니다. 이슬람, 기독교(네스토리우스파, 그리스정교회, 로마가톨릭 등), 불교 등. 심지어 각 교파의 사제들을 불러 어느 신앙이 가장 우월한지 토론하게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몽골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몽골인들의 영적 구심점이 된 것은 티벳불교였지만, 쿠빌라이 시대까지만 해도 기독교 또한 꽤나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인데, 의외로 몽골제국 상층부의 귀족부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기독교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인 칸들도 종종 있었고, 쿠빌라이 또한 칸발리크(북경)에 주재한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로마가톨릭 선교사에게 자네의 신앙이 그렇게 좋은거라면 선교사 100명을 한번 보내오라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그러한 파견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오늘날 북경에 최초의 로마가톨릭관구가 생긴 것은 쿠빌라이 치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톨릭 선교사들은 신약성서를 위구르어(또는 위구르문자 - 당시 몽골인들은 위구르문자를 사용)로 번역했는데, 북경에 거주하는 사람이 위구르어로 성서를 번역한다는 것은 당시 북경에서는 위구르어가 국제어(lingua franca)였다든지 또는 한족을 상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든지 등의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10.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몽골제국의 탄생은 세계사의 탄생이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라시아 전체가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어 물자와 사람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새로운 발명들 또한 아주 짧은 시간에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가지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화약과 나침반 등이죠. 그리고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역사를 탄생시켰는데, 몽골제국의 궁중역사가 라시드 웃딘은 [집사]라는 역사서를 저술하였고, 여기에는 몽골의 역사뿐만 아니라 몽골이 정복한 무수히 많은 민족들의 역사까지, 심지어 가보지도 못한 서유럽의 역사까지 망라하려고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아르메니아에서 투르크인들과 몽골인들을 상대한 아르메니아계 가톨릭 귀족은 훗날 프랑스 파리에 건너가 프랑스어로 [동방의 역사]를 저술하였고 중국(키타이), 돌궐, 호레즘, 쿠마니아, 인도, 페르시아 등 14개국의 역사를 포함했을뿐만 아니라 몽골의 역사도 포함하였고, 마지막으로 서유럽과 몽골의 동맹을 통해 성지를 다시 탈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몽골세계제국, 우리나라와도 사실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고려왕국과 고려국왕의 위치가 무엇이었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고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l****3 2020.07.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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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몽골 제국 이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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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년, 보르지긴(Borjigin) 부족의 지도자인 테무진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칭기스칸'의 칭호를 받은 이후, 몽골인들은 초원을 넘어 온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칭기스칸과 그의 후계자들의 이끄는 몽골인들은 유라시아를 휩쓸며 금(金), 송(宋), 대리(大理), 서하, 카라 키타이, 압바스 칼리프조, 룸셀주크, 블라미디르-수즈달 공국, 키예프 공국, 알라무트의 이스마일파 이맘국
"『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몽골 제국 이후의 세계" 내용보기

1206년, 보르지긴(Borjigin) 부족의 지도자인 테무진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고 '칭기스칸'의 칭호를 받은 이후, 몽골인들은 초원을 넘어 온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칭기스칸과 그의 후계자들의 이끄는 몽골인들은 유라시아를 휩쓸며 금(金), 송(宋), 대리(大理), 서하, 카라 키타이, 압바스 칼리프조, 룸셀주크, 블라미디르-수즈달 공국, 키예프 공국, 알라무트의 이스마일파 이맘국 등 수많은 나라들을 무너뜨렸으며, 중국과 중앙아시아, 중동과 러시아 초원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역이 몽골 제국의 통치 아래 놓였다. 칭기스칸 이전만 하더라도 유라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몽골인들은 알려지지 않은, 그저 흔하디 흔한 초원의 유목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칭기스칸이 등장한 이후, 몽골은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세운 제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칭기즈칸 사후 50년도 지나지 않아 제국은 쿠빌라이가 다스리는 중국의 원(元), 차가타이 가문의 중앙아시아, 훌레구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중동의 일칸국, 주치 가문이 지배하는 러시아 초원의 킵차크 칸국으로 분열되었고, 각 국가 역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쿠빌라이(Kublai)가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을 수도로 중국을 다스리는 새로운 왕조를 세운 1271년으로부터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1368년 원의 황제 토곤 테무르(Toghon Temur)는 명(明)에 쫓겨 대도를 버리고 몽골 초원으로 달아났다. 1258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마지막 압바스 칼리프를 처형한 훌라구의 후손, 즉 일칸의 중동 지배는 1335년 일칸국의 칸 아부 사이드(Abu Said)가 사망하면서 붕괴했다. 중앙아시아의 차가다이 가문과 러시아 초원의 주치 가문은 중국과 페르시아의 친척들보다는 더욱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과거 제국의 전성기에 비할 힘은 지니지 못한 여러 군소 유목 왕조로 쪼개졌다. 단일한 '제국'으로서 몽골 제국의 역사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몽골은 그저 일시적으로 왔다가 파괴만을 남기고 사라진 초원의 야만인에 불과했을까?


티모시 메이, 『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 권용철 옮김, 사계절, 2020.

Timothy May, The Mongol Conquests in World History, Reaktion Books, 2012.


올해 번역되어 출판된 티모시 메이(Timothy May)의 『칭기스의 교환: 몽골 제국과 세계화의 시작(The Mongol Conquests in World History, 2012)』은 몽골 제국의 정치적 지배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어도, 단순한 파괴 이상의 영향을 세계사에 남겼음을 보여준다. 총 2부 10개 장으로 구성된 국내 번역본에서 메이는 2부 전체, 더욱 자세히는 4장부터 10장까지 7개 장을 할애하여 "칭기스의 교환(Chinggis Exchange)", 즉 몽골 제국이 촉발한 유라시아 여러 공동체 사이의 문화, 경제, 사상, 종교의 교환과 교류를 설명한다. 교역, 전쟁 방식, 행정, 종교에서부터 심지어 전염병과 인구 이동, 사상, 예술, 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몽골 제국의 등장으로 이루어진 유라시아적 차원의 교환과 변화를 분석된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적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메이가 제시하는 분석은 몽골 제국이 이룩한 정치적 통합 덕분에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단순한 서술에 그치지 않는다. 몽골 군주들은 먼 지역에서 카라코룸까지 상인들이 찾아올 유인을 제공하고 교역로의 안정을 확보함으로써 유라시아 전역의 교역 활성화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산품과 상품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했다(본서 189쪽). 뿐만 아니라 몽골은 간접적으로 또다른 교환, 즉 콜럼버스의 교환에도 영향을 미쳤다. 몽골 분열 이후 유라시아 교역로의 안전이 흔들리자 많은 유럽인들이 새로운 교역로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섰고, 그 중에서 서쪽으로 향한 콜럼버스도 있었던 것이다(190쪽).


몽골은 그들조차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다. 수베데이가 그루지야(조지아)를 공격하면서 그루지야가 시리아의 아이유브 왕조를 공격하는 틈을 타 십자군 본대가 이집트를 공격한다는 5차 십자군의 계획이 틀어졌고, 바투가 킵차크 초원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팔려나간 킵차크 투르크 노예들은 이집트의 맘루크가 되어 일칸국의 숙적인 맘루크 왕조를 세웠다. 또한 몽골인들이 동유럽을 유린하면서 독일인과 헝가리인들이 바로 가까이에 있는 이교도를 우려하며 먼 곳의 십자군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는 바람에 레반트의 십자군 왕국들은 인력 부족에 시달렸으며, 다른 어떤 지역보다 오랫동안 몽골을 상대해야 했던 러시아에서는 초원의 기병 전략이 특히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사료를 세밀히 검토하여 몽골군이 유럽 및 중동에서 화약무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보여주는 분석은 역사가가 갖추어야 할 비판과 분석 능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216-222쪽). 다만 2차 세계대전 독일의 전격전이 몽골의 기동전략을 차용한 결과라는 주장은 다소 의심스럽다(225-234쪽). 물론 2차대전 독일 전차군단의 전격전과 몽골이 아무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메이는 몽골 제국이 남긴 가장 큰 군사적 유산을 정확히 지적한다. "여전히 유효한 것은 몽골의 성공이 군사 전략가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계속 제기한다는 사실이다. '칭기스 칸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234쪽)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몽골 제국의 종교를 다루는 7장이었다. 몽골인들은 왜 피정복 사회의 종교에 관용을 보였을까? 처음에는 자신들의 전통적 신앙을 따르던 몽골인들이 왜 갑자기 이슬람교(킵차크, 일, 차가다이칸국)나 불교 등 피지배자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일까? 메이는 몽골 제국의 분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몽골 제국이 분열되고 칭기스 가에 속하는 여러 칸들이 난립하고 경쟁하면서 "신 혹은 하늘은 단 하나뿐"이기에 "세상에 칸은 오직 한 명만 존재"할 수 있다는 몽골 제국 초기의 종교-정복 이데올로기인 텡게리즘(Tenggerism)이 흔들리지 않았을까(289쪽)? 제국의 분열이라는 정치적 위기가 곧 종교적, 이념적 위기로 이어져 텡게리즘에서 보편 종교로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을까? (293쪽) 이러한 신앙적 혼란 상황에서 몽골인들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불교와 이슬람(더욱 정확히는 수피즘)이 몽골인들의 선택을 받았고, 결국 티베트 불교가 몽골 초원의 주요 종교로 자리잡고 수피즘이 중동에서 더욱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294-295쪽)


몽골 제국에서 교류되었던 종교와 군사기술, 교역처럼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예술, 건축, 의복, 음식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10장에서 메이는 동아시아의 인쇄술의 유럽으로의 전파, 주자(朱子) 유학의 성장, 고려 말 단군신화의 형성 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는 사상적, 문화적 변화에 미친 몽골의 영향에 대해서 설명한다. 이러한 문화적 교류 과정에서 몽골 군주들이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 - 특히 몽골 군주들이 직접적으로 후원한 예술 분야에서 - 은 사실이지만, 메이가 몽골 제국과 그 영향을 일방적으로 긍정적으로만 그려내는 것은 아니다. 메이는 몽골 제국이 가져온 변화가 몽골 군주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 유라시아의 교류를 촉진하겠다는 목표에 따른 결과가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위에 언급한 변화는 몽골 제국이 "가져온" 영향이지, 몽골 "덕분에"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몽골인들이 무엇보다 추구한건 정복과 지배였을 뿐, 그들이 유라시아 공동체의 교류와 교환의 촉진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큰 뜻을 품고 초원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콜럼버스의 교환'이 긍정적인 의미만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듯이, '칭기스의 교환' 역시 파괴와 혼란, 그리고 흑사병을 가져왔다. 역설적이게도 이처럼 암울한 이야기를 다루는 8장은 메이의 서술이 가장 유쾌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몽골 제국의 영향을 평가하는 작업은 때때로 몽골인을 단순한 파괴자, 약탈자, 학살자로 바라보거나 또는 몽골인을 13세기 세계화와 인류 발전을 위해 힘쓴 선구자로 바라보는 시각 두 양극단 중 하나에 함몰되기도 한다. 『칭기스의 교환』이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두 시각 사이의 균형이다. 다음은 몽골군이 남긴 파괴와 학살에 관해 티모시 메이는 다음과 같이 정확히 지적한다:


"고대와 중세의 자료들에 나온 수치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지만, 그 수치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사람들이 이전까지 보지 못했거나 상상해본 적 없는 황폐화와 인명 손실을 겪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몽골 군대의 능력과 효율성, 몽골 제국이 교역과 문화에 끼친 영향 및 전반적인 충격에 더 매혹되기 쉽지만, 몽골은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317쪽)


따라서 몽골 제국이 남긴 영향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수식어는 긍정 또는 부정이라는 양극단의 어휘가 아닌 '다층적'이라는 단어가 않을까. 몽골이 자행한 파괴와 학살, 몽골 침공으로 초래된 혼란은 분명히 피해와 충격을 남겼다. 그와 동시에 몽골이 가져온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변화는 몽골 이후의 세계사의 향방에 부정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어떤 측면에서 바라보든 세계사에서 몽골이 남긴 영향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고, 14세기 이후 어느 지역의 변화를 살펴보던 몽골은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인으로 남아 있다. 


비록 몽골이 분명히 여러 공동체의 파괴자이자 압제자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메이가 3장에서 소개하는 이분법적 시각, 즉 유목 야만인과 정주 문명인, 동양과 서양 그리고 우리와 (적대적) 타자라는 구분에 토대를 둔 시각은 몽골이 남긴 유산은 무엇이었으며 그 유산이 다양한 공동체의 이후 역사적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모든 문제의 책임을 몽골에 돌리는 것은 간편한 방법이기는 하다. 메이는 '몽골 책임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레닌과 러시아 혁명, 러시아의 알코올 중독, 중동 이슬람권의 쇠퇴, 심지어 9/11 테러와 디스코 음악까지 몽골 제국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적 사건과 현상의 원인이 다 몽골이라는 주장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티모시 메이의 『칭기스의 교환』은 단순화된 '몽골 책임론' 또는 '몽골 만능론'의 양극단에 놓인 함정에서 벗어나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역사에 남긴 그 부정할 수 없는 거대한 영향을 보다 진지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독자에게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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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7 2020.07.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칭기스의 교환], 티모시 메이 지음, 사계절출판사
"[칭기스의 교환], 티모시 메이 지음, 사계절출판사" 내용보기
칭기스 '칸'이 아닌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주제로 저자 티모시 메시는 몽골의 초원에서 유럽, 아사아, 아프리카, 중동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끼친 몽골족과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합니다.칭기스 칸의 어린시절 테무진으로 불리던 그 시절의 위태롭던 상황을 어떻게 뚫고 살아남았는지, 추종자들을 이끌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된 부르테와의 결혼 이야기 등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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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 '칸'이 아닌 '칭기스의 교환'이라는 주제로 저자 티모시 메시는 몽골의 초원에서 유럽, 아사아, 아프리카, 중동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력을 끼친 몽골족과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합니다.

칭기스 칸의 어린시절 테무진으로 불리던 그 시절의 위태롭던 상황을 어떻게 뚫고 살아남았는지, 추종자들을 이끌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된 부르테와의 결혼 이야기 등이 펼쳐집니다. 사실 우리가 몽골이나 칭기스 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며 떠올리는 것은 결국 '칸'이 되어 초원을 가로지르는 무시무시한 용사이자 지도자라는 것에 한계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몽골 제국의 형성 된 배경부터 칭기스 칸이 사고로 죽은 이후 분열 되는 제국의 모습과 이후로도 계속 되는 칭기스 칸의 아들들, 관리들의 세력확장으로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많은 교류가 이뤄졌음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몽골리아를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하는 세력과 정주를 통해 한족과 같은 국가 시스템을 도입해 중국화 되어가는 세력간의 전쟁과 내분으로 거대한 몽골 제국은 유럽의 로마 제국처럼 팽창하고 분열 되고를 반복합니다. 원 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이 정주 세력의 중심이었다면 중앙아시아를 유산으로 받은 차카다이, 아릭 부케와 페르시아의 일 칸국의 홀레구, 주치 가문의 킵착 칸국 등 '칸'을 계승한 수많은 자손들은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실크로드라 불리는 비단길의 무역상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왕래 할 수 있는 역참제도를 정비 한 것도 몽골인들의 작품이었으며, 종교에 있어서도 몽골 제국은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고 여전히 토템신앙도 자리잡고 있었으며, 원 나라의 경우 불교를 국교로 삼았음에도 타 종교에 대한 박해는 없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이븐 바투타의 책들을 통해 이슬람의 모스크와 불교 사찰이 함께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초기 시절과 티베트 불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등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몽골의 독특한 행정체계가 사방으로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잘 모르던 국가나 민족에 대해 그 시작부터 사라지는 순간까지 역사를 살펴보는 기회는 쉽지않습니다. 수많은 유목민족과 정말 다양한 인과 관계의 13세기~20세기까지의 몽골족, 칭기스 칸의 영향력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칭기스의교환 #티모시메이 #사계절출판사


YES마니아 : 골드 i******u 2020.07.22. 신고 공감 0 댓글 0